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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대지에 갖힌 말라버린 영혼들영화 “드라이”는 광활한 대지를 먼지 바람으로 덮어버리는 가뭄처럼, 인간의 죄성에 의해 갈라지고 황폐하게 된 인간의 현실, 그리고 죄의 결과에서 영원히 피할 길이 없음을 잘 드러내는 영화다. 영국계 호주 작가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주정부 영화부서에서 지원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그렇듯이, 소박하고 원시적이기까지 한 호주 환경을 배경으로 이야기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사건 전개로 진행된다. 여기에 산만의 여지가 없을 만큼 집중적인 카메라의 포커스 앞에서, 여과없이 드러나는 호주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단순한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모든 것들을 드러낸다.이 영화의 배경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시골 마을 케와라, 이곳에 젊은 농부루크가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다. 영화의 시작은 루크의 옛 친구인 연방경찰 폴크가 장례식을 위해 고향에 갔다가 루크의 부모님의 부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면서 시작된다. 죽은 루크의 아내가 남긴 메모에서 ‘그란트’란 이름이 발견되고, 루크의 농장을 탐내고 있었던 ‘그란트’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그란트는 폴크가 살인자로 의심받아 그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었던 죽은 엘리의 오빠였기에, 사건을 팔수록 폴크의 옛 상처들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의외로 실제 범인은 폴크에게 가장 교양 있게 대했던, 이 마을과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교장 휘틀럼으로 밝혀진다. 노름빚에 몰린 그가 학교 지원금 (그란트)을 사취하는데, 그 사실을 루크의 아내가 밝혀내자 살인사건을 벌이고, 이를 모두 루크의 행위로 뒤집어씌웠던 것. 이 사실을 밝혀낸 폴크는 과거 친구들을 생각하며 엘리가 죽었던 냇가로 갔다가, 엘리의 가방을 발견하고 엘리를 죽인 것이 엘리의 아빠이자 오랫동안 그녀를 학대했던 엘리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다시 마을로 향하며 영화는 끝난다.이 영화는 세가지의 배경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여러가지 메시지를 우리에게 도전한다.오랜 가뭄으로 황막해진 대지는, 개척정신과 기술 발전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연세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뭄은, 호주에서는 화석 연료 문명시대의 부작용을 말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대자연의 제약을 보여주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토지 매매’에 대한 이해 갈등은 환경문제도 결국 이를 통해 반응하는 인간에 의해 더 큰 모순과 문제,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드러낸다.이런 광활한 대지에 소박하게 놓인 마을은 인간이 그동안 보여준 모험심과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모이면 생기는 모순, 특히 자기 죄악을 감추기 위해 희생양을 세우는 데 거리낌 없는 인간 군집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우리 인종, 우리 가족, 우리 그룹을 앞세워 벌어지는 셀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이, 이 한심할 만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졌던 교회가 이들의 삶과 가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별로 기독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와 신앙에서 말하는 사랑과 은혜가 노예제도, 백호주의, 인종차별이라는정치적/ 사회적 통념이나 경제적 이해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했던가.  그나마 장례식장이라도 제공해 개인들을 위로해 준다는 정도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의 묘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희생된 엘리와 그 희생양으로 마을에서 도망가야 했던 폴크, 그의 탈출은 결국 남은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마을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축복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도록 자신을 이용했던 친구, 루크의 죽음 앞에서 그의 억울함을 푸는 과정이 자신과 엘리에 대한 진실 규명으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삶에서 성공과 실패의 구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다. 동시에 폴크에게 가장 친절했던 교장 위틀럼이 루크를 죽인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겉모습과 교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이 영화는 기독교나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아픔, 갈등, 모순들은 우리가 가리고 싶어하는 인간죄성을 잘 보여주는 예화 역할을 한다. 그냥 보기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 손으로 해결 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직접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창조자의 사랑을 알기에, 이 영화는 은혜를 더 분명히 보게 하는 ‘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석원 리뷰어

  07/09/2021
  Eastwood NSW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의 혼인 건수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인구 변화, 사회/경제적 상황, 인식 변화 등의 여러 요소들로 인하여 2012년부터 9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교회 안에 결혼하지 않은 지체들이 증가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동체 안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고 믿고 있는 교회 안의 분위기 때문이다.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일까? 마치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듯한 저 발칙한? 질문에 답해 주는 웹툰이 있다. 안정혜 작가의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연스레 묵인하고 감당해야했던 성차별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여성 혐오적인 마음을 발견했다. 그 마음과 함께 성차별적 신학이 정당화된 교회 안에서 남성들에게 권위가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맞는지 알기 위해 이 작품을 시작했다.‘비혼주의자’와 ‘마리아’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누군가에게는 제목부터 불경스럽게 느껴질 이 웹툰은 참 흥미롭다. 마리아라는 한 청년이 비혼주의자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한국 사회와 교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탄탄한 스토리로 엮어냈다. 결혼을 준비하던 마리아는 예비 배우자에게 상처를 받아 비혼을 선포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나 동생 한나를 통해 참석하게 된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신랄한 논쟁을 하고, 예비 배우자였던 사역자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을 돕는 과정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해 나간다.“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써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그거는 아니지. 니 언니 시집 보내기 전까지는 한나 니도 안 되는 것이여.”“너 미쳤니? 너 그리스도인이야! 예수 믿는 사람이야!! (결혼은 당연히 해야지.)”“나는 당연히 결혼은 창조 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일단 여성 그리스도인은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제일 소중한 사명인 것처럼여기는 분위기”“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어도 보지 못했다.”“목사님은 저한테... 그냥 아버지 같은... 영적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우리가 흔히 교회 안에서 듣는 이야기들이다. 이 웹툰은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독서 모임을 통해 거침 없이 논쟁을 하고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교회 안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진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교회와 신앙에 회의적이었던 마리아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남성과 여성, 그리고 교회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고 참된 신앙에 눈을 뜨게 된다.이 웹툰은 자연스러운 전개 가운데 유교적 문화, 가부장적 사고방식, 성차별의 기저에 깔린 성경 이해와 해석, 페미니즘, 사제주의, 그루밍 성범죄, 현실에 맞지 않는 교단법,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 여성 혐오, 남성의권위를 강조하는 교회 안의 교육, 우상숭배 등의 문제들을 잘 다루었다. 이를통해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에 있는 남성들에게는 던져진 문제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반성을 돕고, 여성들에게는 스스로 답을 찾아 자립 가능한 신앙의 길을 걷도록 의식을 깨워주는 웹툰이다. 신앙은 개인의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향유하는 것이다.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대표적 성경 구절은 창세기 2장 18절과 3장 16절이다. 2장 20절의 돕는 배필의 ‘돕는’을 뜻하는 히브리어 ‘עֵ֖זֶר(에제르)’는 보조적인 도움이 아닌 스스로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가 도움을 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주로 하나님의 도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을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3장 16절의 남자가 여자를 다스린다는 내용 역시 죄로 인한 저주의 일부로써 주어진 것이지 창조 질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면상 다 다루지 못하지만 웹툰 안에는 이러한 설명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첫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창조 질서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일까? 팀 켈러에 따르면 세속주의는 개인을 우상으로 여김으로써 가정을 거부하지만, 뿌리 깊은 전통 종교들은 반대로 가정 그 자체를 우상처럼 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단 기독교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는 가정과 양육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온 것이다. 스탠리하우어워스는 《교회됨》이라는 책에서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적 종교들과 다르게 ‘비혼’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팀 켈러는 자신의 책 《결혼을 말하다》에서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 독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좋은 조건이며, 결혼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고 하였다.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에 대해 압박감을 주지 않았다. 당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상속 받을 자녀가 없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머지 않아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며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믿음 가운데 독신을 선택하는 것을 권하기도 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결혼도 독신도 다 복음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전 7:7).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동시에 비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는 포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결혼하고 출산을 하는 것만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아니다(창 1:27-28). 문자적인 해석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선교사들을 앞세워 전쟁과 침략을 일삼던 역사의 전철을 밟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뒤에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라는 명령도 주셨다. 단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너머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종종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들과 성경적 가치를 혼동하곤 한다. 성경적 가치들은 문화와 함께 전승되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혼과 비혼, 모두 복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혼인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복음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이 웹툰은 떼 본 적 없는, 주체로서의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떨렸다. 만약 당신이 그리 길지 않은 이 웹툰을 끝까지 보게 된다면, 굉장히 큰 유익과 도전이 될 것이다.Jona Lee 리뷰어

  24/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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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두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선택 앞에서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너무 뻔한 답이 나온다고 느껴지는가? 그러나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라면 어두움 가운데서 희망을 선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우리는 구원의 감격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영적 도전’은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원작명 ‘The Shawshank Redemption' 의 직역이 쇼생크 구원 혹은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면, 영적 도전을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1994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된 흥행작들 때문에 당시에는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비디오로 출시 되면서 전세계 관객들이 뽑은 인생영화 1위로 인정을 받았다. 아마도 영화가 제시하는 구원이란 주제가 모든 인간 내면에 울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자유가 없는 곳에는 희망도 없다/ 희생을 통한 구원 경험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희망이다. 희망은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고, 자유한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은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쇼생크 감옥에서는 이런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밥을 먹으라면 먹고, 씻으라고 하면 씻고, 화장실을 가라하면 가는,수감자들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상실된 상태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자신의 이름 마저도 번호로 불려질 뿐 이었다.여기에 성공가도를 달리던 부은행장 출신의 젊은 인재, 앤디 듀프래인가 쇼생크 감옥으로 들어온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두번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 곳에 들어와 위대한 선택들을 통해 수감자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동료들에게 자유인처럼 밝은 태양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해 주고, 6년간의 노력 끝에 감옥 내 도서관과 음악 감상실을 설치할 수 있게 만들고, 젊은 죄수의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간수들의 세금 신고를 도와 주는 등, 자신의 유용함을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그는 큰 곤역을 치룬다. 하지만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 곳에 자기를 기꺼이 희생해 희망을 공급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선택영화의 감동은 세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앤디와 레드 그리고 브룩스를 통해 각인된다. 레드와 브룩스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각각 40년 50년간 지낸다. 레드도 감옥 안에서 못 구하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유능한(?) 죄수였고, 브룩스 역시 오랜 수감생활의 노하우(?)덕분에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룩스가 50년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자, 그가 다시 접하게 된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고,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 잡았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생활에서 모든 선택과 결정을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I don’t like here. I’m tired of being afraid all the time I’ve decided.’   '결국 브룩스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 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비교되는 인물이 레드다, 엔디가 탈출을 성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40년 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브룩스가 머물게 된 숙소와 일터가 브룩스와 같았다는 설정은, 이들이 닥친 같은 충격을 잘 드러낸다. 레드역시 변화된 세상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앤디가 쇼생크를 탈옥하기 전날에 했던 말과 약속들을 떠올린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바쁘게 살던가, 바쁘게 죽던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바쁘게 살기를 선택 할 것이다” ‘희망은 자유를 주고, 자유는 선택을 준다.'그리고 묘연한 한마디 '태평양 연안에서 만나자' 역시 레드를 브룩사와는 다른 선택, 두려움을 떨치고 평생 처음으로 희망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가두던 제한들을 벗어던지고, 앤디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결국 앤디 꿈에 그리던 태평양 바닷가에서 앤디와 재회하게 되고 영화는 마친다.세상의 요구 앞에서 두려움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치 영화 속의 쇼생크가 아닐까?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고, 그 방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하거나 혹은 거스르면 따르는 고통 때문에, 꼼짝없이 세상이 원하는 방식에 따라,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 가는 게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죄없던 앤디가 쇼생크라는 감옥에 들어와 절망 속의 죄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그 곳을 떠나는 모습에서 예수님을 연상 떠올린다. 바로 이 때문에 쇼생크 탈출 속에서 나는 소망과 구원, 선택과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열어 주신 구원의 문 앞에서, 우리는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 열려진 구원의 문은 그리스도안에서 소망을 품은 자 만이 선택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레드의 고민처럼, 우리도 현실 속에서 소망을 품는 결정은 솔직히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한다면, 소망은 우리의 것이 된다.  심사장면속에 레드속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영화의 전체 흐름은 세번에 걸친 레드의 가석방 심사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는 수감생활 20년째, 30년째, 그리고 40년째 때 심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석방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품었던 앞의 두번 심사는 좌절감만을 안겨줬다. 수감 40년째 다시 찾아온 심사에서, 레드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심사 위원들에게 답변한다.(당신은 자신이) '교화되었다고 생각 합니까?' '오래전 바보 같은 어린 녀석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도 이젠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젊은 놈은 오래 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이 늙은 놈만 남았습니다. 쓸데없이 나의 오후 시간을 뺏지 말고 그냥 돌아가십시오'앞의 두번의 심사에서 그는 자신을 적극 변호했지만, 희망은 절망이 되었고,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앤드를 통해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자기 현실을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함 속에서, 심사관들은 도리어 감동을 받고 석방으로 이어진다레드 같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현실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디서 찾아질까? 우리의 죄성과 소망을 가장 잘 드러내신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는 두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가와 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하지만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 갈수록 우리는 소망과 기쁨 그리고 자유의 영역은 더 커진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예수를 믿는 진짜 이유기도 하다김정근 리뷰어는 오래된 영화를 좋은 고기를 씹듯 계속 음미하며 누리며, 록다운에 답답함 속에서 사람들과 차 한잔을 나누는 여유를 그리워하고 있다.

  17/08/2021
  Eastwood NSW

아마도 DOS Game 시절 컴퓨터를 통해 디스크를 바꿔가며 오락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페르시아 왕자>를 기억할 것이다. ‘게임의 교과서’와 같은 이 게임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UBI SOFT는 <페르시아 왕자: 어쌔신> 프로젝트를 개발하던 중 모종의 이유로 개발을 취소하게 된다. 그 세계관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2007년 등장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이다. 이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승승장구하며 유비소프트가 발매하는 게임 중 가장 많이 팔린 시리즈가 된다. 동시에 2017년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게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비교적 명성이 높은 게임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 2020년 11월 10일, 12번째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가 나오며 여전히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이 게임의 이해를 위해 어쌔신의 시작, 그 역사 속 기원을 알리는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2017년 발매)을 선택하여 리뷰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인은 ‘모든 게임의 유해성(중독성)에 대해 동의하는 바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에 대한 단절보다는 잘 알고 접근하여 지혜롭게 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게임 소개2017년 10월 발매된 게임으로, 콘솔/PC용으로 발매되었다. 개발은 유비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하였으며, 영국 아카데미 비디오 게임상 최고의 게임 부문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탄탄한 내용과 비주얼을 보여준다. 등급은 ‘MA15 /청소년 이용불가’이며 장르는 3인칭 오픈월드 액션 RPG로 구분되나, ‘잠입 암살 액션’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가격은 기본 89.95AUD(65,000원), Gold Edition의 경우 134.95AUD(95,000원)이다. 게임 분석배경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이며, 한 작은 마을 ‘시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바예크는 메자이[1]로 살던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이 괴한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원수를 갚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 본 게임의 시작이다. 한 가정의 복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경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 있는데, 바로 비밀결사단의 존재가 그러하다. 이집트를 집어삼키려는 세력이 그 뒤에 있고, 바예크는 이들을 하나하나 무찌르며 방대한 이집트 전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클레오파트라를 도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세력들을 처단해 나가지만, 이후 프톨레마이오스가 죽고 클레오파트라와 시저가 고대 결사단과 손을 잡은 뒤 배신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인 바예크는 이제 동료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고백(신조; Creed) 위에 단체를 세운다. 바로 그 신조가 어쌔신 크리드가 된다. 게임은 중심 스토리를 이어가는 메인 퀘스트와 어느 지역에서나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보조 퀘스트를 통해 레벨업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다양한 무기의 종류와 그에 따른 고유 스킬들이 존재하며, 모든 과정이 스토리와 연계되어 흘러가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적인 역사 고증을 통해 얻는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유튜브 <게임으로 보는 인문학 게임 야화 22~28화, 감독편>[2]을 살펴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역사적 고증을 했는지 알려준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게임을 접하면 유비소프트가 얼마나 위대한 작업을 게임을 통해 이루어냈는지 알 수 있다.둘째로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 라인이 메인 퀘스트와 보조 퀘스트로 나뉘어 유저의 기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모든 퀘스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NPC(게임 속 인물들)와 스토리를 잘 연결한 점 등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끝으로 다양한 전투를 통해 스킬을 올리는 시스템은 전사, 사냥꾼, 선지자로 발전할 수 있도록 Skill tree를 구성하였다. 사냥 등을 통해 기본 아이템을 제작, 레벨업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부적인 요소들을 적소에 배치해 두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초반 스토리라인에서 보여지는 지루함과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형제단의 존재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또한, 반복적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결국 어쩔 수 없는 반복적인 렙업 노가다를 해야 한다는 점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작은 언덕 같은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엔딩을 볼 정도로 게임을 하며 많은 장점들을 발견한 게임이며, 왜 <어쌔신 크리드>가 지금까지 롱런해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본 게임의 평가이제 이 게임을 직접 해 본 목회자로서 게임에 대한 내용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게임 속에 신약시대의 익숙한 표현과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언덕 길가에 서 있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들이나, 드라크마를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리스 시대의 옷이나 아고다, 원형극장 등의 재현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신약시대 모습의 파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이 게임이 갖는 장점일 수 있다. 역사적 고증이 치밀하게 전개될수록 로마의 폭정이나 사람들의 고통의 목소리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듯한 상상력을 키워준다. 또한 세부적인 도시의 디자인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잠입 액션 자체가 가지는 특성상 사람을 암살하는 일이 빈번하고, 소리없이 죽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경험치를 얻게 함으로 쾌감을 주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여전히 발동하여 그것을 계속 찾게 만든다. 주인공 바예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지만, 실제로 그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게임의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잔인함의 표현(배를 가르고 시체를 손질하는 것이나 인체 절단 등)이 게임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잔인함의 간접 경험이 오히려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을 무뎌지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아울러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게임 개발팀에 대한 설명(이 게임이 다양한 종교, 성적 성향 및 정체성을 가진 다문화 팀에서 기획∙개발∙제작하였음을 명시)이 나온다. 게임 안에서 이와 같은 사항이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지만, 이집트의 종교에 대한 접근, 사후세계에 대한 표현 등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포스트모던한 모습도 게임 가운데 선명히 드러난다. 실제 주인공은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는 자로 나타나며, 그 권력의 문제들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 폭력이라는 것을 주저없이 사용한다. 약자를 돕기 위해 강자를 죽인다는 설정은 결국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기합리화밖에 되지 못한다. 게임을 하면서 성경적 가치관과 부딪히지만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공간이기에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며<어쌔신 크리드>를 처음 들을 때 일반인들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목회자의 입장에서 가장 귀에 거슬렸던 부분이 바로 제목이었다. 사도신경을 말하는 Apostle’s Creed를 그대로 차용해서 만든 Assassin’s Creed는 암살자의 이미지를 경건하게 바꿀 뿐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암살을 자행하는 일을 역사 속 설정을 통해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위험천만한 이러한 사상이 게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저 게임을 한다는 즐거움으로 플레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게임을 막을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게임이 갖는 특징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함께 이야기하며 다음세대 문화로써 게임 장르를 살펴본다면 어떨까? 게임 안에서 대화의 고리들을 찾아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함께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쌔신 크리드>는 한국과 호주에서 모두 미성년자가 불가등급이라는 점은 부모님들이 잘 알고 계셔야 한다. 성인물 구입에 큰 여과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유해한 게임물이며, 본 리뷰 역시 성인 플레이어 입장에서 작성하였기에 미성년자의 게임 접근은 분명한 제한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강현규[1] 고대 이집트에 존재했던 치안 조직 [2] 유튜브 페이지 44층 지하 던전 게임야화 22-28편 참조(https://www.youtube.com/watch?v=y1Uy5ThFTd8)

  20/07/2021
  Eastwood NSW

영화 ‘소울’은 디즈니 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몬스터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이전 작품들의 인종차별 논란들을 고려하여 흑인만을 위한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도 코로나위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제작의 마지막 7주간은 봉쇄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각자 재택근무를 하면서 완성했다고 한다. 세계적 재즈 뮤지션인 존 바티스트 등 여러 뮤지션들이 제작에 참여하여 음악의 완성도를 높였고 마치 실사를 보는 듯 디테일한 3D그래픽이 돋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캐릭터에 맞춰 배경이 변하고 분위기에 따라 조명이 달라지는 등 애니메이션만의 장점들을 잘 살리고 있다.인생이나 행복 등 추상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매우 잘 구체화시켜 시각적 이미지로 잘 표현하고 있지만, 우연과 실수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지며, 어려운 주제와 복잡한 줄거리 등을 감안하면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영화같다. 육체를 떠난 영혼, 태어나기 전의 영혼, 우주를 의인화한 수많은 제리나 테리 같은 존재는 기독교적 관점과는 맞지 않음을 고려하며 볼 필요가 있다. 뉴욕에 사는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가 인생의 목적이고 삶의 전부이다. 비록 지금은 중학교 밴드부 교사이지만 유명 재즈 밴드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만 되면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그리던 최고의 재즈밴드와 공연을 앞둔 조는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조의 영혼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 떨어지는데 이곳은 새 영혼들이 멘토에게 도움을 받아 태어나기 전의 준비를 하는 곳이다. 조는 태어나길 거부하는 매우 시니컬한 영혼인 22의 멘토가 되어 함께 지구로 돌아오지만, 실수로 조의 영혼은 고양이 몸으로 들어가고 22의 영혼은 조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22는 조의 몸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데 피자의 놀라운 맛, 막대사탕의 달콤함, 지하철 환풍구의 바람, 버스커의 노래, 떨어지는 은행잎 등을 즐기게 되면서 처음으로 자신도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2는 조에게 자신은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조는 그런 것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며 비하하고 무시한다.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계획했던 재즈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조는 많은 칭찬과 환호를 받으며 드디어 밴드의 정식 멤버가 된다. 유명 재즈밴드에 들어가기만 하면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행복이 시작될 거라고 기대했던 조는 공연이 끝난 후의 허탈하고 공허한 느낌에 당황한다. 그런 조에게 재즈밴드의 리더가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를 찾아 헤매던 젊은 물고기에게 나이 든 물고기가 지금 여기가 바로 바다라고 말해줬다는 것.결국 조는 어릴 적 소중한 기억들과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을 회상하며 삶의 행복은 22의 말 대로 일상의 경험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심리학적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22는 낮은 자존감과 높은 불안으로 태어나기를 거부하지만 삶을 실제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게 된다. ‘삶과 단절된 영혼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영적 세계에서는 우울, 불안, 일이나 쾌락에 대한 집착 등을 가진 사람들의 영혼이 일상의 삶으로부터 단절된 병적인 심리상태가 시각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우울증으로 괴물이 된 22를 구해주려던 큰 배가 오히려 그에게 끌려가는 장면은 심한 우울증 환자를 도와주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매우 공감할 만하다. 조가 22에게 행한 것처럼 타인의 인격과 존재 자체에 대한 진실한 마음의 칭찬과 헌신적 노력은 언제나 치유의 힘이 크다.조 가드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오히려 공허함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끝까지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한탄하며 자신이 불행한 이유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영화 ‘소울’은 행복이란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을 즐기는 데에 있다고 가르쳐준다. 바로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삶에서 만나는 소소한 경험들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오늘을 불행하게 살기보다는 현재 이미 가진 것을 즐기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 (전8:15, 새번역)성경에서도 삶을 즐기라고 권한다. 다른 점이라면, 심리학이 그 이유를 단지 행복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성경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삶을 즐기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거나 경험하는 모든 것,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은혜이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하면 일상의 작은 경험들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게 느껴지고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즐기는 삶은 행복으로 귀결된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일상의 즐김은, 동시에 목표를 향해 노력하라(고전9:26)고 하고 푯대를 향해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라(빌3:14)란 말씀에 의해 보충된다. 일상을 즐겨야 하지만 현재의 행복에만 안주해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선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참여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최선을 다 하며 살면서, 동시에 오늘도 나에게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삶을 즐기고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다.영화 ‘소울’은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을 즐기지 못하고 멀리 있는 행복을 바라보고 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삶의 목적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고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이창일 

  22/06/2021
  Eastwood NSW

시작 기독교세계관을 토대로 게임을 본다는 시도는 언제나 새로움을 준다. E-Sports 장르로 발전하고,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업이 움직이는 게임생태계에 대해 여전히 ‘게임은 죄’라는 도식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게임개발자들은 더 많은 유저를 게임에 붙잡아 두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배치시키고, 또 반대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게임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막상 목사로서 게임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내 이야기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취급되기 쉬운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미칠 작은 영향력이라고 기대하며 리뷰를 시작한다. 이번 게임 리뷰는 2020년 하반기를 강타했던 ‘하데스’라는 게임이다.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 ‘하데스’의 이름을 걸고 나온 이 게임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지옥에 대한 이미지와, 그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며 지상을 향해 무한한 죽음을 반복하며 올라가는 주인공 ‘자그레우스’의 도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는 게임 정보를 먼저 소개하고, 기독교세계관으로 살펴본 게임의 여러 요소들을 평가하는 단계를 통해 볼 것이다. 혹여 더 질문이 있으면 이메일 문의를 환영한다. 1. ‘하데스’는 어떤 게임인가? 2020년 9월 ‘슈퍼자이언트게임즈’는 자신들의 네 번째 작품 하데스를 공개했다. 이미 바스티온,트렌지스터, 파이어 등의 게임으로 많은 유저를 보유한 이들의 네 번째 게임 ‘하데스’로 바로 큰 주목을 받았다. 특별히 그래픽, 조작감, 스토리 등에서 최고의 찬사를 들었고, 2020년에는AIAS, BAFTA에서 최고의 게임상을 수상했다. 게임리뷰인 메타스코어에서도 93점의 높은 점수를 받은 이 작품은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취급된다. 게임 방식은 핵 앤 슬래시(다수의 적과 싸우는 액션), 로그라이크[1]방식이며, 2D 그래픽의 쿼터뷰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게임 중에 중간저장은 가능하지만, 재시작과 동시에 저장파일이 없어진다. 한 번의 실시간 게임으로 한번의 죽음 혹은 끝을 마주하게 된다는 특징은, 과거 오락실에서 100원짜리 동전으로 끝판을 깨는 액션-횡스크롤 게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하데스는 게임 내에 나름대로 연속성을 부여한다. 게임 내에서 얻은 재화를 통해 캐릭터를 발전시켜 다음 단계에서 도움이 되도록 만들고, 이미 한 번 정복한 중간보스가 스스로 변이하여 계속 등장하는 방식으로 계속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게임 내용을 살펴보면, 지옥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의 아들 ‘자그레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상으로 계속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 과정에서 죽으면 다시 지옥으로 돌아오기에 아버지인 하데스는 그의 의미 없는 행동을 말리지만, 자그레우스는 계속해서 지상으로 나가기 위한 도전을 한다. 게임 자체는 오락실게임처럼 가볍게 시작할 수 있지만, 각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서로 다른 보상은 주인공인 자그레우스에게 다양한 공격옵션을 주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계속 제공한다. 특별히 아버지를 떠나 지상으로 오는 자그레우스를 위해 지상의 신들이 도움을 주는데 제우스로부터 다양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게임 효과와 재미를 더해준다. 게임의 특징 – 무한 반복? No!! 계속되는 새로운 스토리로의 연결 이 게임의 장점은 아마도 무한 반복되는 게임 흐름 속에서도 질리지 않도록 계속 새롭게 배치되는 구성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이 대부분 그렇듯, 단순히 맵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수준을 넘어 보스의 진화나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무기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공격전술이 가능하며, 덕분에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신들을 통해 얻게 되는 축복은 다양한 게임방식에 백미라 할 수 있다. 무기에 따른 효과들도 달라질 뿐 아니라 각 신이 가지는 속성에 맞게 활용할 수 있어, 번개공격, 방어, 마비 등의 새로운 형태로의 공격이 가능하다. 이런 조건을 잘 활용하면, 너무 쉽게 마칠 수도 있다. 게임 조작방식 또한 이 게임의 큰 장점 중 하나다. 타격감 있는 기술이나 키 반응 속도도 좋아, 게임을 할수록 계속되는 타격의 묘미에 빠지게 되고, 이야기의 전개속에 깊이 들어가기 쉽다. 끝으로 이야기 흐름은,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중에서도, 매번 주인공이 죽을 때마다 아버지와의 관계나 지하세계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 돕는다. 리셋의 개념이 아닌 이야기를 진행하며 나아가는 방식의 전개는 게임의 끝을 보고서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케 해준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본 ‘하데스’의 주의할 만한 특징들 그리스/로마 신화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이 게임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적절한 액션과 재미를 준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는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몇 가지 이슈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주인공은 죽지만 부활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죽으면 모두 지옥으로 가지만, 지옥에 사는 이들에게 죽음은 리셋이라는 개념으로 지옥에 불려와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원리이다. 이는 윤회를 떠오르게 한다. 이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죽어도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 남겨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시각적 자극이나 메시지가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죽음의 연결고리를 윤회로 풀어내는 방식은 죽음 이후의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자꾸 떠오르게 만든다. 둘째, 게임의 주인공 ‘자그레우스’는 자기 인생에 대한 질문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대를 직/간접적으로 묘사한다. 꿈을 이루고, 도전을 완성하기 위해 실패를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는 주인공을 보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길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메시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를 위해 방해가 되는 자기 가족들과의 전투도 주저하지 않고, 심지어 더 큰 싸움을 위해 어둠의 신과 거래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선과 악의 경계선이 없고,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식이다. 이런 숨겨진 메시지가 장기적으로 더 강하게 각인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셋째, 핵앤슬레시 게임의 일반적인 특징인 폭력성도 주의 할 만하다. 오락실 게임을 떠올리면 알겠지만, 타격감이 좋은 게임일수록 통쾌함을 극대화 시켜준다. 이를 통해 가슴 속에 쌓였던 무언가 풀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때문에 잔인한 모습의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 게임은 한국에서는 15세 이상, 호주에서도 M등급으로 분류된다. 별로 심각한 위험수위는 아닐 수 있지만, 아이들이 게임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기 품목이라는 점에서, 구매 시 부모들은 깊은 고려가 필요할 수 있다. 결론 실제로 하데스를 해보면 다른 게임들 보다 더 순하고,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 시원한 타격감과 지루하지 않은 게임으로 보인다. 더 자극적인 게임을 추구하는 현재 시장추세에 비춰보면, 인기를 끌만 하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다신론적 배경이나, 지옥을 홈그라운드로 누비는 스토리라인은 아이들의 영적 건강을 좀 더 민감하게 관리하기 원하는 부모라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픽션이라는 장르와 일반적으로 접하는 고전신화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활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앞서 지적한 윤회에 대한 사후세계의 표현, 선과악이 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 타격감에 따르는 일부 폭력적인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게임은 부모와 자녀를 이어주는 연결점이 될 있지 않을까? 강현규

  09/06/2021
  Eastwood NSW

총 제작비 300억 대작이자 충분히 철학적인 수작 은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넷플릭스가 제작한 시리즈물이다. 조선일보 2020년 12월 22일자 기사[1]에 의하면 이 작품은 총 제작비 300억, 회당 3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이 작품의 기본 틀은 좀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전체에 전염병이 퍼지고 이로 인해 도시가 마비된다. 병에 걸린 사람은 괴물이 되고 인간을 사냥한다. 소수의 생존자들이 남아 괴물과 싸워 나가지만 인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드라마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그린홈이라는 곧 재개발될 예정인 낡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다. 그린홈의 주민들은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고 그로 인해 극심한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한다. 똑똑한 설정이지만 새로울 것은 없다. 최근에는 스페인 영화 (The Bar, 2016)가 잘 사용한 무대설정이다. 이 모든 사건 뒤에 대중에게 진실을 감춘 정부와 군대가 있다는 설정도 낯설지 않다. 의 기본 골격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모든 예술 작품은 서로를 복사하며 진화해 온 것 아니겠는가? 진부해 보이는 소재라도 그것을 얼마나 개연성 있게 잘 버무려 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은 이 모든 다양한 소재를 효과적으로 섞어낸 수작이다. 더욱이 은 기존에 잘 알려진 영화 문법에 여러 흥미로운 요소를 새롭게 추가했다. 그 중 한 가지는 괴물마다 특징이 있고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에 나오는 괴물들을 분석한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괴물이 되는 방식도 새롭다. 보통 서구 사회의 좀비 영화나 뱀파이어 영화에서 질병의 전파는 접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에서는 괴물에게 물려도 멀쩡하다. 목덜미가 물려도 괴물이 되지 않는다. 인물들을 괴물이 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분노이다. 인간 개개인 속에 존재하는 분노가 괴물을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들은 내재하는 분노에 굴복해 괴물이 되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 분노와 싸워가며 인간성을 지켜낸다. 이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철학적이다.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 우리들의이야기 그러나 이 드라마가 진짜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다. 1편 도입부에는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좀비나 흡혈귀 영화의 도입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작이다. 은 실제로 소위 ‘우리들의이야기’로가득하다. 사회 이슈들을 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초기에 괴물로 변하는 두 인물인 1411호 여성과 경비원을 생각해 보자. 1411호 여성(박아인분)은연예인이 되기 위해 스폰서 제안도 거절하고 다이어트를 지속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식탐 괴물로 변한다. 청년층의 실업 문제,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스폰서 문제 등을 건드리고 있다. 경비원(신문성 분)은 갑질의 희생양이다. 잠시 쉬기 위해 근무지 내에 마련한 침대를 치우라며 모욕을 당하고 주민이 선물한 상자 속에는 썩은 생선이 들어 있다. 이 경비원은 흡수 괴물로 변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차현수(송강분)는왕따 피해자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한 후 활발했던 소년은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은둔형 외톨이 은수는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떠 올리며 괴물이 되어 간다. 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기 엄마 임명숙(이봉련분)은민식이법을 생각나게 한다. 아이가 트럭에 치여 죽은 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엄마는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괴물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괴물이 된다는 설정에 주목하면 가정 폭력 가해자 김석현 (우현분)이괴물이 되는 것이 의아한 면이 있다. 김석현은 아내에게 막말과 폭력을 아무렇게나 행사하는 사람이다. 피해자가 괴물이 된다는 것이 공식이라면 매맞는 아내인 안선영 (김현 분)이 괴물이 되야 하지만 괴물이 되는 것은 김석현이다. 가정 폭력에서 가해자는 이미 괴물이고 피해자는 분노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대부분의 괴물들은 이렇듯 특정 사회 이슈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무엇보다 사회 문제의 희생자들이 괴물이 되어간다. 봉쇄되어 있는 재개발 그린홈 아파트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슬픈 현실이다. 부자는 나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현실 속에서 부인된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말로 괴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힘겨운 세상”에서 과연 희망은 있는가? 삶 자체보다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다. 지독히 염세적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친 발레리나 지망생,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난한 의대생, 아동 납치 살해범, 전직 살인 청부업자, 무명의 음악인, 장애인, 천식을 앓고 있는 간병인, 시한부 노인, 가정 폭력 희생자, 고아, 공무원 시험 5수끝에 합격했지만 일할 정부 자체가 없어진 고시생, 신분 상승을 꿈꾼 딸을 괴물에게 잃은 어린이집 원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모든 주요 인물들의 미래는 어둡다. 실제로 ‘살아갈이유’를찾기 어려운 사람들인 것이다. 정재헌, 모두가 희망을 잃은 공간에서 신의 뜻을 말하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인물 이런 상황에서 독실한 기독교인 국어교사 정재헌 (김남희분)의위치는 분명 매우 독특하다. 그는 1화 베이시스트 윤지수와 만나는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정재헌은 “주님께서는가끔 극복하기 힘든 시련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서는 안 되죠. 신의 뜻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다. 정재헌의 악수를 거절하며 윤지수는 말한다. “손에 담배 냄새가 절어 가지고.” 흡연을 핑계로 기독교인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는 것이다. 윤지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상식적이고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의 눈을 통해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은 고루하고 답답하고 전도에만 신경 쓰기에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괴짜라는 설정이 만들어진다. 괴물에 쫓기고 있는 사람을 향해 정재헌이 무심하게 “아는사람입니까?” 묻는 장면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또 다른 스테레오 타입이 등장한다. 이에 윤지수가 반문한다.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나대지 말고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는아니겠죠?” 기독교인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신의 뜻일 리 없다. 이후 정재헌은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우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가 주의 명한 대로 행하면 곧 주의 친구라.” 이기적이며 가식덩어리였던 기독교인 정재헌은 괴물과 싸우며 진짜 신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각성해간다. 모두가 회피하는 살인 청부업자 편상욱 (이진욱분)을이해하고 용납해 주는 인물이 정재헌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편상욱은 정재헌에게 마음을 열고 기도를 요청하기도 한다. 정재헌은 결국 아파트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다 경비원 괴물과 함께 불에 타 생을 마감한다. 정재헌은 모두가 희망을 잃은 공간에서 신의 뜻을 말하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더 찾기 어려운 시대’에 신의 뜻이 무엇일까? 드라마는 술과 담배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신경 쓰는 교회의 모습이 신의 뜻 일 리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신의 뜻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정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드라마는 양복을 입고 성경을 끼고 전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걱정하는 모습을 오늘날 기독교인의 전형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없이 고통받는 공동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신의 뜻’과도 상관없다. 신이 정말 없어도 된다면 진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 드라마에서 정재헌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기독교를 조롱하지만, 다른 한편 희망을 잃은 시대에 진짜 신의 뜻을 알기 원하는 작가의 희미한 바람으로도 읽힌다. 신을 부정하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결국 신이 필요한 것이다. 150년 전 니체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책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2]라며 신의 부재라는 화두를 던졌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철학 책이 니체 관련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은 이제야 부모 세대의 종교를 부정하면서 진공이 되어버린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은 의미 없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드라마의 도입부 내레이션처럼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내는 그 이유는 매우 일시적이다. 강북 재개발 아파트에서 살면서 딸을 강남으로 보내는 학원 주인 아줌마의 삶의 이유는 딸의 신분 상승이다. 5수생 공무원의 삶의 이유는 시험 합격이지만 괴물의 공격 앞에 이 얕은 인생의 의미는 너무 쉽게 부숴진다. 진짜 인생의 의미가 필요하다. 진짜 인생의 의미는 오직 절대자만이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그 사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알고 있다. 이 보여주는 허무주의, 종교에 대한 조롱, 그리고 종교에 대한 역설적인 기대는 그러한 사실을 잘 드러낸다. 종교를 조롱하지만 참다운 신의 뜻이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신이 정말 없어도 된다면 진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갈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며울부짖는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우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젊은 한국 청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손민영

  25/05/2021
  Eastwood NSW

이민 1세대의 꿈 저마다의 ‘미나리’ 이야기가 있다 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아칸소에서 한국 농장을 개척하려는 이민자 제이콥(스티브 연)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아버지로서 뭔가 해냈다는 성공담을 들려주고 싶은 제이콥의 마음은 비단 이민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장의 로망이다. 병아리 감별사인 제이콥은 온종일 병아리 똥구멍을 들여다보는 삶이 쳇바퀴 도는 것처럼 답답하다. 모든 것을 잃을 지라도 자기 손으로 농장을 일구는 데 목숨을 걸고 싶다. 한편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대도시도 아닌 시골 마을로 이주한 것도 낡은 컨테이너에 살게 된 것도 농장을 시작하겠다는 남편도 달갑지 않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바쁜 부부를 돕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온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고군분투하는 모습 속에 우리 부부가 살아온 지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영화와 현실이 자꾸만 겹쳐졌다. 회계사였던 남편은 꽤 큰 규모의 호주 회사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워커 홀릭처럼 성실하게 일했지만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이민 1세대 동양인이 올라갈 수 있는 지위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내가 맞벌이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남편은 자기 비즈니스를 시작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자식들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이민 1세대들은, 아니 모든 부모들은 제이콥과 모니카 처럼 발버둥친다. 땅을 일구어 기필코 농장을 만들어서 아버지로서 뭔가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제이콥.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물길을 찾아야 한다. 물길을 찾아 첫 삽을 뜨고 마침내 우물 바닥의 물을 찾아낸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앨런 킴) 앞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제이콥의 모습에서 남편이 첫 가게를 오픈할 때 희망과 기대에 한껏 들떴던 모습이 떠올랐다. 제이콥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가장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계의 부담을 떠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가족에게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속 대사를 거꾸로 뒤집어서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맛도 없고 알도 못 낳아서 폐기되는 숫병아리들처럼 폐기되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옆에 당신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당신은 충분히 애쓰고 있습니다. 원더풀입니다.”라고.. 나는 예고편을 접한 뒤, 교사로 섬기는 한글학교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어떻게 호주에 오게 되었는 지 조사해 글을 써보도록 숙제를 내주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미나리’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에 나타난 기독교적 요소들: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이중적 인물 ‘폴’ 는 영화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가 가득하다. 보는 이에 따라서 기독교의 희화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시선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된 연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한 이중성을 대변하는 인물은 폴(윌 패튼)이다. 마을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 가지만 폴은 혼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간다. 어깨에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폴을 보고 제이콥은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폴은 “내 교회를 지고 간다”고 대답한다. 제이콥은 그런 폴을 향해 “미친 놈”이라고 말하지만, 그속에는 ‘어째 너도 나랑 같은 처지네’라는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제이콥의 농장에서 일을 돕는 폴은 제이콥 가족이 아칸소에서 함께 식탁 교제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outsider 폴은, 자기 땅에서 도리어 배척을 당하지만, 소외받는 자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셨던 예수님의 그림자를 비춰준다. 우리는 ‘미나리’ 같은 신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의 소금 & 중보자 에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명대사가 많다. 그 가운데 성경 말씀이 연상되는 대사 하나가 눈에 띈다. 극에서는 여러 기능으로 쓰이는 ‘원더풀 미나리’라는 대사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잘 자라고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미나리는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그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아무 쓸 데 없어 후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것과는 달리 미나리는 짠맛이 살아있는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다. 감독은 ‘미나리 예찬’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당신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미나리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떠한 이유든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늘어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자의 모습이 어떤 것 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믿음이 연약해진 지체들, 예배의 자리에 더이상 보이지 않는 형제들,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세상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 세속정치의 앞잡이로 전락한 교회와 타락한 목회자들에 시험 든 성도들, 이렇게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이들… 그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베드로의 배반을 아셨지만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 같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미나리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믿음의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그래서 여러 가지 음식에서 맛을 내며 때로는 약으로도 쓰이는 미나리처럼 많은 열매를 맺게 되기를… 이주영 이 글은 로뎀나무아래 문화비평 커뮤니티블로그 underb.info/blog 와 www.facebook.com/underbroom 에도 실렸습니다. 미디어홍수시대에 기독교세계관적으로 모든 미디어들을 걸러보는 훈련장으로 마련된 문화비평 커뮤니티에 함께 하고 싶은 분은 underb.info/reviewerguide 보시고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생활속의 신앙을 원하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13/05/2021
  Eastwood NSW

편집자 주/ COVID19로 교육현장의 가장 큰 화두는 ‘온라인 교육’이다. 최첨단 기술이 교육과 만나면서, 학문과 학습은 더 이상 교실에 머무르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개별화·맞춤형 교육의 시대로 성큼 진입했다. 이에 새로운 흐름에 선구적으로 준비해온 알파크루시스대(이하 AC) 글로벌온라인학부장 송기태 박사를 만나 온라인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를 들어보았다. - 지금 우리는 빅뱅(Big Bang)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물결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세계를 삼킬 기세로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육계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 혼란 속에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요. 세계적 석학인 유발 하라리는 COVID19 이후 가장 큰 세계적인 ‘온라인 강의의 일상화’를 꼽았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세계의 거의 모든 캠퍼스는 폐쇄당하고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전환되지 않았습니까?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이제 ‘위기가 지난 후에 대학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 온라인 학습, 원격 수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등의 최첨단 기술이 교육과 만나면서, 학습이 더 이상 교실에만 머무르지 않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미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테크놀로지 기업들은 기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이 학습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몇 년 전부터 학교를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해왔습니다. - 지식정보사회, 지식폭발시대에 캠퍼스도 자꾸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할 만하겠습니다. 캠퍼스의 위기, 교육혁명은 COVID19 때문에 촉발된 것만은 아닙니다. 이 팬데믹 이전부터 오랫동안 물밑에서 진행돼 온 위기가 이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맞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의 본질은 지식 습득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맞닿아 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구글로 대표되는 검색 포털의 눈부신 진화에 있습니다. 구글을 통한 검색 건수는 전세계에서 하루에 56억 건, 1년에 2조 건이나 됩니다. 그 중 15%는 이전에 검색된 적이 없던 새로운 항목이다. ‘신지식’ 유입이 그만큼 활발히 이뤄진다는 뜻도 됩니다. 더구나 구글의 AI 알고리즘은 무려 200여가지 요소들을 고려해 불과 1초 사이에 최적의 결과를 찾아줍니다. 이쯤 되면 감히 ‘구글 대학(Google University)’이라 부를 만하지 않겠습니까? 또 월간 사용자 25억명의 페이스북과 유튜브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 혁명이 있습니다. 세계 유수의 기업과 연구기관, 언론사와 대학 등이 거의 예외 없이 페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야의 계정을 취사선택해 팔로우 하면 뉴스레터를 구독하듯 새로운 정보들을 받아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식의 습득은 이제 대학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포털과의 경쟁입니다. - 그럼 우리 AC는 이런 변화에 어떤 대처를 하고 있습니까? 흔히 대학이 가장 느리게 변화되는 집단이라고 하지요. 비근한 예로 제가 여러 대학 강의실을 둘러보면서, 그 물리적 공간 대부분이 얼마나 구식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지 놀랍기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AC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강의실 모두를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꾸었습니다. 온라인 강의 역시 기술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는 시대에, 그 시스템을 태어나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도 친근하고, 쉽게 재미있게, 그리고 영감 있게 접근하고자 계속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콘덴츠도 우리 학교 전임교수님들 외의 각 분야 최고의 교수님들에게 강의를 의뢰합니다. 다음 학기에도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세계적인 석학의 강의가 탑재됩니다. 온라인의 장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그분들의 콘덴츠를 송출할 수 있고, 또 학생들은 세계 어디에서든 그 강의를 수강할 수 있고, 오프라인과 전혀 차별 없는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학사, 석사, 철학박사학위까지 온라인으로 취득하며 자기개발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긴 세월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교과관리, 학생관리도 철저히 하여 오프라인에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제도 제가 호주 신학교를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유서 깊은 그 학교도 현대는 학생들의 거의 100%가 온라인이라고 하더군요. 이처럼 바쁜 세상에 세계적인 추세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학 쪽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우리 온라인 학부에 지원하시려는 분들에게 “하루 두 번 지성과 영성을 클릭하세요”라는 말로 새로운 미래, 새로운 사역의 지평을 넓히시라고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온라인학부장 송기태 박사 대담/ 이효선(AC 교수)

  24/06/2020
  Eastwood N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