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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I 조기덕 회장의 역경과 기도       글/주경식사진/권순형드디어 레드백 장갑차 호주와 계약 체결3조 1,500억원(24억 달러) 규모의 한화 ‘레드백’ 장갑차 호주로의 수출 계약이 2023년 12월 8일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호주 육군은 기존 사용하던 미국의 M113 장갑차가 노후화되면서 신규 장갑차로 교체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2018년 8월 호주 국방부는 신규 장갑차 사업으로 입찰 제안 요청을 오픈 공포하고 이에 대한민국의 한화 디펜스가 입찰한지 5년 만에 이루어 낸 결실이다.   호주 국방부 소식지는 지난 12월 8일 한화 에어로 스페이스의 호주 현지 법인인 한화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HDA, Hanwah Defence Australia)와 호주 정부, 획득관리단(CASG) 간 레드백 수출계약이 체결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The Albanese Government has signed contracts with Hanwha Defense Australia to deliver and support 129 locally built Redback infantry fighting vehicles for the Australian Army (호주 알바니즈 정부는 한화 디펜스와 호주 육군용으로 현지 제작된 ‘레드백(Redback)’ 보병 전투차량 129대를 납품 지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www.minister.defence.gov.au/media-releases/2023-12-08/contracts-signed-infantry-fighting-vehicles   한국 방위산업 역사상 가장 큰 대규모의 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루어 낸 것이다. 2021년 한화의 K9 자주포 수출에 이어 2023년 ‘레드백’ 장갑차 수출까지 한화가 호주로 무기를 수출하게 된 것이다.   한국 방위산업의 호주 시장으로의 수출은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먼저 이번 호주 시장 진출은 세계 굴지의 글로벌 탑티어 방산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번 레드백 장갑차 수출은 미국, 영국, 스웨덴, 독일등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방위산업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그동안 한국 방산이 수출한 나라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이 자리했다면 이번 수출은 호주 선진국에 한국 방산이 인정받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 방산 기술의 발전을 세계시장이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번 호주와의 계약을 통해 영국, 미국을 포함한 세계 선진국들도 한국 방산산업을 눈여겨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방산 산업분야에서 전통적으로 강한 독일과의 최종 경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무기체계의 우수성을 드러낸 쾌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의의가 있다.   이렇게 최종 계약이 체결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운 고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비들을 넘기고 호주정부가 한국과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까지는 한화의 적극적인 도전정신과 기술력 그리고 한국정부 특히 국방부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쾌거에는 안보이는 숨은 애국자가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GDI(Global Defence Industries Pty Ltd)의 조기덕 회장이다.   GDI 조기덕 회장  조기덕 회장(88)은 고스포드(Gosford)에 살고 있다. 지난 7월 27일 호주 국방부가 한화의 레드백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4일 조 회장을 고스포드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때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조 회장은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되었어도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인터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인터뷰를 연기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날 우선협상 대상자가 되었지만 호주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실제 계약이 백지화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식계약을 체결 한 후 지난 12월 18일 고스포드 그의 자택에서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GDI(Global Defence Industries) 에이전시 대표이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의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와 호주 국방부를 처음 연결한 중개인이다. 그가 호주에서 방산 중개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 쾌거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원래 그는 방산 중개 비즈니스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우연 같은데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인도해 오셨다고 고백한다.   “지나고 보니 제 뜻대로 된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보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셨더라고요”  그는 7남매의 6번째로 함경북도 웅기읍 백학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해방을 맞았지만, 해방 후 김일성이 소련 공산당과 함께 북한에 들어오게 된다.   당시 조만식 선생이 창당한 조선 민주당 웅기지부였던 관계로 숙청 대상이 된 아버지는 소련군에 의해 호송되는 도중 도망치려고 달리는 짚차에서 뛰어내리다 부상을 당해 56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1947년 둘째 형과 함께 월남을 하였다.   “북한에서 월남 한 후 남산 기슭의 해방촌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남산 밑에 해방촌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해방촌이라 불렸습니다. 처음에 이렇게 저랑 둘째 형과 형수와 함께 해방촌 하꼬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잘해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60년 공군 장교로 입대해서 많은 토목공사를 군생활 가운데 감독하게 된다. 1960년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수원 10전투 비행단 기술 선임장교로 보직을 받고 수원 전투비행단 공항 활주로 공사를 총 감독했다.    그 후 그는 여러 토목공사의 공훈을 인정받아 공군 대위 시절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공군대학(Air University) 토목공학 과정 단기 유학을 국비로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김해, 사천, 성남, 강릉 비행장 확장 공사와 경부 고속도로 비상활주로 건설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는 공군장교이자 토목공학 엔지니어로 12년 동안 대한민국 중요 비행장 건설에 젊음을 바쳤다.   그리고 1972년 예편을 하고 경남기업 해외 토목사업 본부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김해 비행장을 경남건설이 수주를 맡아 건설을 했기 때문에 그때의 인연으로 경남건설 정원성 회장이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그 후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토목사업 본부장으로 근무를 하다가 1980년 호주로 이민을 왔다.   칠전팔기의 인생  그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부의 정책변화로 인해 그의 인생이 여러 번 고비를 겪게 되었다. 사실 호주로 이민 온 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 때문이었다.   그가 근무하던 경남기업의 창업주가 갑자기 박정희 정권하에서 외화도피 반출이라는 억울한 죄목으로 인해 기업주가 바뀌게 되는 바람에 사표를 내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현지 기업에서 5년 동안 근무하다가 아들의 교육문제가 걸리게 되었다.   첫째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는데 하이스쿨까지는 인터네셔널 학교가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의 대학은 모두 현지어로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대학공부를 위해 영국의 학교를 찾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호주 대사관 직원이 호주 대사관 직원이 호주대학을 추천하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호주로 이민온 후 그는 1981년 비콘 엔지니어링(Beacon Engineering)을 인수했다. 그리고 한국의 여러 대기업들의 하청공사들을 호주  현지에서 해나가던 중 국제건설의 가스파이프 라인 건설공사를 맡을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때 국제건설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그가 맡은 공사가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두 번째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세 번째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바로 울릉공에 ‘한인산업센터’ 건설을 하고자 모든 것을 투자했다가 주 정부 정책이 바뀌게 되어 그의 투자는 물거품이 되고 전 재산을 날리게 된 것이다.   “제가 1987년 한인회장에 당선된 후 정부 지도자들도 만나고 다른 커뮤니티들을 둘러보니 한인 커뮤니티가 다른 커뮤니티들보다 열악한 거에요. 그때만 하더라도 한인 동포들이 전문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청소나 용접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때 마침 NSW 주정부의 방침이 발표되었는데 시드니는 주거와 상업지역으로만 사용되고 모든 산업시설은 시드니 바깥쪽으로 내보낸다는 거에요. 그때 산업지역이 북쪽으로는 와용(Wyong) 남쪽으로는 울릉공(Wollongong) 서쪽으로는 캠벨타운(Campbeltown)이 발표되었어요.   마침 잘 알고 지내던 전 울릉공 시장인 토니가 조상 때부터 울릉공 지역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산업시설 DA를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울릉공에 ‘한인산업센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은 거예요.   그러면 우리 동포들이 거기서 일을 하면 어려운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국 중앙상공인 연합회’에 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당신들이 이곳에 공장을 세워주면 우리 동포들이 가서 일을 하게 되면 동포사회도 좋고 한국에도 유익이 된다.   그랬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고 울릉공 정부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해서 당시 600만 불을 투자했습니다. 돈이 모자라니 돈을 빌려서 땅을 매입한 거죠. 그런데 호주에 경제위기가 오는 바람에 주정부 계획이 백지화되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저는 파산을 하고 모든 계획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그는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시 북경 시장이었던 가경림 시장과 그의 부인 마담 림을 알고 지냈는데 그 부인이 자기 사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조 회장은 록데일(Rockdale)에 있는 그녀의 공장 부지를 새로 개발하기 위해 DA를 받고 그곳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 들어와 있던 대우건설에 투자를 의뢰했다. 그는 한국에 나가 김우중 회장을 직접 만나 투자를 따내고 건설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에 IMF가 오고 대우기업의 자금난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1997년 네 번째 실패였다.   그렇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이렇게 파산을 한 채 와신상담하고 있는데 ADI(Australia Defence Industries, 호주 방위 산업)에서 연락이 왔다.   호주에서 여러 번 실패를 했지만 다 망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사업들을 통해 호주 정치가, 사업가들과의 네트워크가 그의 자산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ADI(호주 방위 산업청)에서 조 회장에게 연락을 해왔다. 공군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벨지움 산 경기관총을 호주에서 만들고 있는데 이것을 한국에 팔아 주면 좋겠다고 의뢰를 해왔다. 이것이 그가 방산 중개 에이전시 비즈니스에 뛰어들게 된 시초가 되었다.   GDI(Global Defence Industries) 에이전시  조 회장의 표현대로라면 ‘먹고 살기 위해서’ 경기관총을 팔려고  한국에 사방으로 수소문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자루도 팔지 못했다.   그런데 1998년 ADI에서 두 번째 연락이 왔다. 호주 국방부가 낙후된 M113 장갑차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하는데 당신이 한국에 입찰 참여를 알아봐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ADI가 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호주 ADI의 요청이 제가 방산 중개 비즈니스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년 호주 국방부는 M113 장갑차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때 마침 한국에서는 대우 중공업이 장갑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조 회장의 중재로 대우중공업의 K200 장갑차가 공개입찰에 참여하였고 2003년까지 5년간의 치열한 경쟁 끝에 K200이 최종 승자로 선정되었다.   이 기간 동안 호주 국방장관을 포함한 많은 군 관계자들이 대우의 창원공장과 일선부대를 방문 시찰하였고, 한국의 방산 기술을 호주에 알리는 첫 기회가 되었다.   대우중공업으로 업체 선정이 확정된 후 호주 국방부에서는 조 회장의 GDI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군의 장갑차 부대의 동티모르 파견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를 한국 국방부가 받아들여 1개 대대가 동티모르에 파견됨으로써 양국 간의 유대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의 대우그룹이 몰락하여 해체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대우중공업은 산업은행이 보증을 서고 K200 장갑차 양산과 양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증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빌미로 삼아 호주 국방부 장갑차 업그레이드 사업은 독일로 이양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다섯 번째 실패이다.   이 소식을 들은 호주의 프리힐(Freehill) 로펌에서 조 회장에게 연락을 해왔다. 이것은 호주 정부의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우리가 당신을 대신해서 호주정부와 소송을 할테니 당신은 합의금에서 우리 소송비만 주면 된다고 접근해 왔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했다.   “그때 제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개인 대 개인의 소송이 아니라 결국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걸린 일인데 이 소송으로 한국과 호주의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에 보니까 이것이 잘한 일이었습니다. 호주 국방부에서 저에게 고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호주 국방부에서도 내심 저희가 소송을 할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소송을 하지 않으니까 저를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이번 일로 손해가 많았을 텐데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없겠는가? 그리고 3개월 후에 ADI(호주 방  호주 국방부는 ADI를 통해 조 회장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2003년 ADI는 155mm 포탄 공급사업을 조 회장에게 의뢰해 왔다. 조 회장의 중재로 155mm 포탄 공급입찰에는 풍산이, 포탄 발사체 입찰에는 한화가 합동입찰 체제로 진행하였고 2004년 첫 공급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실패로 인해 조여졌던 조 회장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열리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제가 소송을 안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소송을 했었다면 오늘의 쾌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시 118:17)  이후에도 조 회장은 크나 큰 좌절을 한 번 더 맛보았다. 조 회장은 2003년 호주 국방부가 주관하는 Land 17 자주포 사업에 삼성 테크윈의 K9 자주포를 AS9 호주식으로 개칭하여 입찰에 참여하도록 주선하였다.   호주 방산 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삼성이 관심을 갖도록 그는 임원들의 호주 방문 주선부터 삼성이 입찰에 뛰어들도록 공을 들였다. 조 회장의 방산 중재 에이전시는 한국 방산제품의 홍보 및 알선, 정보수집 및 교환, 입찰안내와 추진, 양국 간 상호교류 그리고 방문 주선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우선 자비로 수행한다.   그리고 계약이 체결되면 그때 약정된 수수료를 수령하는 것이다.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그 모든 비용은 다 조 회장 몫인 것이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공을 들여 삼성테크윈의 AS9 자주포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호주 국방부의 사인을 마치고 호주 정부 NSC(National Security Committee)의 최종 집행 승인만 기다릴 때였다.   호주 국방부가 승인했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승인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2012년 줄리아 길라드 총리는 국고 예산 적자 보충책으로 이미 책정된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시키고 Land 17 자주포 사업을 전면 백지화시켜버렸다.   이일로 삼성의 손실은 막대했다. 그리고 조 회장 역시 큰 좌절을 맛보았다. 그때 조 회장은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삼성이 이 사업을 10년 동안 끌어오는 동안 US 달러로 10밀리언 달러(호주화로 1천500만 달러) 이상을 소비했습니다.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다 되었다고 판단하고 파티까지 했는데 이게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리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같이 일했던 삼성 임원진에게도 볼 면목이 없고 저도 낙담이 되어 살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아내에게 다 같이 죽자고 하니 아내가 죽으려면 당신이나 죽지 왜 죄 없는 내가 같이 죽냐며 매몰차게 꾸짖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조 회장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기적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 후 유럽의 지형이 바뀌면서 동구 유럽 나라들이 자국의 자주적 방어를 위해 군비 증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삼성테크윈은 그동안 개발했던 자주포 사업의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않고 유럽시장을 공략하는 데 눈을 돌렸다.   그리고 방산 중재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던차, 10년 동안 보아왔던 조 회장의 아들 리차드에게 같이 일하자고 러브콜을 보내왔다. 조 회장의 아들 리차드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조 회장과 같이 일해온 방산 중재 비즈니스 전문가였다.   그렇게 3년 계약직으로 삼성에 들어간 리차드는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자주포 사업설명회에 홀로 참석하게 되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나토  (NATO) 회원국이잖아요. 아들 얘기로는 독일이 NATO 회원국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벌써 독일제로 기울어져 있더래요.   사업 설명회가 끝난 후 리차드가 혼자 외로이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데 마침 그날 설명회에 참석했던 노르웨이 국방부의 담당자들이 커피숍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 옆에 앉은 리차드와 자연스럽게 얘기가 오고 가는데 노르웨이 국방부 직원들이 질문을 하더랍니다.   “호주도 NATO 회원국인데 같은 NATO 회원국인 독일 자주포를 선택하지 않고 왜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자주포로 결정했냐?”   그래서 리차드가 삼성과 호주가 10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사항들을 모두 설명을 해줬답니다. 그랬더니 노르웨이 국방부 직원들이 그렇다면 우리도 공정하게 테스트를 거쳐서 결정하자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삼성 자주포를 공정하게 테스트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리차드가 삼성에 3년간 계약직 직원으로 간 것부터 노르웨이의 커피숍에서 우연히 노르웨이 국방부 담당자들을 만난 일까지 우연 같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가 있었다.   이러한 공정한 평가를 통해 한국의 자주포가 독일제보다 우월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노르웨이를 선두로 덴마크, 핀란드, 에스토니아까지 삼성의 자주포를 선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호주 국방부에서도 지난 번 자주포 백지화가 미안했던지, 미국의 레이시온(Raytheon)사를 배제하고 한국의 삼성에 시기에 제한없이 자주포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해 왔다.   호주 국방부와 삼성 간의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 기업의 미래 대항책으로 특정 기술 집약 사업이 시행되면서 삼성은 반도체만 집중하기로 하고 삼성테크윈의 자주포 사업을 한화로 이양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GDI는 한화의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 회장은 한화에 호주의 Land 8116 자주포 사업에 다시 참여해 줄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2012년 호주 정부가 보여준 부당한 정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한화는 망설였다.   그러나 조 회장의 끈질긴 요청과 오랜 고민 끝에 한화가 호주 자주포 사업에 참여하고 독일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2021년 호주 국방부는 한국의 한화로부터 자주포 공급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2023년 독일의 링스(Lynx) 장갑차를 제치고 한화의 ‘레드백’(Redback) 장갑차까지 결정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계약이 체결되기까지 늘 살얼음을 겪으며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그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이번에 큰 위로를 주셨다. 그러나 이번 레드백 계약에도 고비가 있었다. 지면상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리고 숨막히는 고투 끝에 최종적으로 레드백이 선정된 것이다.    조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가 고백하는 시편의 말씀이 꼭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말씀처럼 다가온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시 118:17) 〠 주경식|본지 편집국장권순형|본지 발행인 

25/01/2024

“우리를 지켜준 참전용사들, 기억하고 보은하겠습니다” 글/주경식사진/권순형호주를 방문한 UNPK 대표단은 무어파크에 있는 NSW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왼쪽부터 이종구 부회장, 양윤덕 재향군인회 사무처장, 신광철 회장, 방승일 재향군인회장, 송광우 부회장) ©크리스찬리뷰지난 11월 11일 (사)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회장 신광철 | UNPK, Memorial Association UN Participation in Korean War, 이하 UNPK) 대표단이 시드니에 도착했다.   신광철 회장, 이종구 상임부회장, 송광우 부회장 등 대표단 3명은 11월 17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시드니와 캔버라에서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 △캔버라 전쟁기념관 한국관 방문 △참전 용사 초청 오찬 △참전용사 가정 방문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 날리기 (Thank you Australia train kite) 등의 보은행사를 크리스찬리뷰(발행인 권순형)와 재향군인회 호주지회(회장 방승일) 등과 협력하여 진행했다.   UNPK는 한국전쟁 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하여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보은의 마음을 전하고 참전국가와의 평화적인 우호증진을 목표로 보훈부의 승인을 받아 2019년 세워진 단체이다.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 (UNPK)를 설립한 신광철 회장.©크리스찬리뷰원래 UNPK 단체의 모체는 1996년 시작된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라 할 수 있다.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는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에디오피아의 참전 용사와 그 가족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에디오피아의 경제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1996년 설립된 단체이다.   에디오피아는 1951년 한국전쟁 때 황실근위 사단에서 지원자를 모집해서 6천37명의 최정예 용사들을 파병했다.   당시 에디오피아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는 에디오피아 부대를 ‘강뉴부대’(초전박살)라 명명하고 “침략군에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나라가 있다면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저 먼 곳에 있는 한국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라”고 훈시하고 한국을 위해 기꺼이 파병했다.   에디오피아 강뉴부대는 미군 제7사단 32연대에 배속되어 한국전쟁 때 혁혁한 공을 세웠다. 238번의 전투를 치렀는데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사실 이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는 순전히 신광철 회장 개인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  신 회장의 고향은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춘천이다. 그런데 이 춘천에 또 하나의 명소가 있는데 바로 ‘에디오피아 집’이다. 기자도 대학생 때 친구들과 춘천으로 놀러가서 에디오피아 집을 방문하고 춘천 닭갈비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신 회장은 1968년 참전 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한 에디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보게 되었다. 에디오피아 황제는 춘천 에디오피아 참전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춘천에 왔고 신 회장은 이날 제막식을 위해 동원된 학생들 틈에 있었다.   그는 에디오피아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인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 1974년에 군에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우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에디오피아가 공산화되어 셀라이에 황제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제가 어렸을 때이지만 가까이서 직접 봤던 에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쇼킹했습니다. 춘천이 제 고향이고 춘천에서 자랐고 춘천 사람들은 에디오피아와 누구보다도 가깝습니다.   그런데다가 제가 중학교 때 참전비 제막식에 동원되어 참석했다가 에디오피아 황제를 가까이서 보았는데 그 황제가 처형되었다니 얼마나 가슴아팠겠습니까?”   NSW한국전 참전기념비(Moore Park) 앞에서 보은의 연을 날렸다.©크리스찬리뷰 그래도 마음만 아파했지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대하고 결혼도 하고 무역업을 하던 1995년 MBC 다큐멘터리에서 제작한 ‘잊을 수 없는 전쟁, 잊혀진 용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신 회장은 1995년 MBC에서 제작한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런데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공산화된 기간동안 너무 힘들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오피아가 1974년 공산화되어 1991년까지 공산정권이었는데 이때 참전용사들이 겪은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핍박이 너무 심해 어떤 참전용사는 자신이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것을 숨기며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즉시 “이게 내가 할 일이다”라는 결심을 했다.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머나먼 한국에 와서 피를 흘린 용사들인데, 그분들이 오히려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그분들 덕분에 잘살게 된 우리가 도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침 그는 로타리 클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때였다.   시드니의 유명 관광지 맨리비치에서 이종구 부회장이 호주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을 날린 후 관광객들과 기념촬영.©크리스찬리뷰송광우 부회장이 관광객들에게 기차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그는 1996년 6월 20일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를 만들고 총무·상임이사를 맡았다. 처음에는 로터리 클럽을 중심으로 후원활동을 하던 것을 범 로터리 클럽 차원으로 점차 확대해 나갔다. 그는 현재까지 에디오피아를 방문한 숫자만 100번이 넘을 정도로 에디오피아에 진심인 사람이다.   그는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의 낙후된 집들을 보수해 주고 참전용사들의 자녀와 손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학교 개선과 장학금 및 컴퓨터를 지원하는 사업을 해왔다.   사실 이것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다. 하지만 그는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실태를 보고 가슴이 아파 그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것이다.   지난 28년 동안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는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에게 산타클로스로 불리울 정도로 그들의 희생에 보은해 왔다.   그리고 지난 2019년, 신 회장은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 다되어 가는데, 에디오피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다른 나라 참전국 참전용사들을 위해서도 보은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해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UNPK)를 설립했다.   6.25 한국전에 참전했던 16개국 국기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연에 매달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배경으로 날렸다.©크리스찬리뷰 UNPK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  “사실 현재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6.25 때 풍전등화에 있던 한국을 위해 피흘렸던 참전용사들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때 한국을 도왔던 나라들이 모두 22개국인데 이중 군대를 파병했던 나라는 16개국이고 의료로 지원했던 나라는 6개국입니다. 다행히 이들 국가들이 대부분 잘 사는 나라들이지만 현재 어려운 나라들도 있습니다.   에디오피아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튀르키예 같은 나라들의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은 어려운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곳에 일차 지원을 해나가지만 아울러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분들이 떠나시기 전 대한민국이 당신들의 은혜를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다.   이것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하루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은혜를 갚아야죠.”  UNPK도 이렇게 그의 보은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UNPK 대표단의 호주 방문도 그 일환으로 오게 된 것이다.   UNPK에는 7명의 부회장이 있다. 이번에 UNPK 대표단 일행으로 함께 온 이종구 부회장은 아시아 오세아니아 참전국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예비역 대령 출신이다.   UNPK 창립 초기 발기인 모임 때부터 참석한 그는 춘천의 작은 군인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로이기도 하다. 2017년 전역을 한 후 그는 NGO 단체에서 봉사하고 싶은 비전이 있었다.   벨로즈에 있는 가평 길을 찾아간 송광우 부회장.©크리스찬리뷰벨로즈에 있는 가평 길을 찾아간 송광우 부회장.©크리스찬리뷰그런데 마침 그가 2000년에 2군단의 군단 비서실장으로 춘천에서 근무할 때 6.25 전쟁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처음으로 신 회장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때의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중 그가 예편한 후 본격적으로 UNPK 일에 뛰어든 것이다.   함께 온 송광우 부회장은 컴퓨터학과 교수 출신이다. 그는 현재 UNPK 부회장으로 대외협력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UNPK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매우 신선하다.   그는 2년 전 은퇴한 후 새로운 취미로 연날리기에 몰두했다. 그냥 단순히 연을 날린 것이 아니라 연을 날리면서도 의미를 찾았다. 그러던 중 그가 거주하고 있던 용인의 튀르키에 참전비 기념탑에서 연을 날리면서 한국전쟁 참전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그는 6.25, 8.15 등 한국의 기념일에 자발적으로 독립기념관과 각 지역의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탑에 가서 연을 날려 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UNPK의 일을 돕게 되었다.   그는 현재 UNPK의 대외협력 담당 부회장으로 그의 네트워크와 연날리기를 통해 UNPK의 지경을 세계로 넓히고 있다. 이번에 그가 가지고 온 연을 통해 호주에서도 대표단이 가는 곳마다 연날리기 행사를 통해 UNPK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호주 참전용사 보은행사  UNPK 대표단 일행은 뉴질랜드에서 보은행사를 마치고 11월 11일(토) 밤 늦게 시드니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에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 후 오후 2시에 무어팍에 있는 NSW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서 가서 헌화를 함으로 호주에서의 보은행사를 시작했다.   호주 재향군인회 방승일 회장과 양윤덕 사무총장이 UNPK대표단을 참전 기념비에서 맞이하고 함께 헌화에 참여했다. UNPK 대표단과 호주 재향군인회는 헌화를 마치고 참전 기념비 앞에서 보은 연날리기 행사를 시연했다. UNPK 대표단의 송광우 부회장은 한국 연연맹 기획단장이기도 하다. 그는 연날리기 행사를 통해 UNPK 기념사업일을 돕고 있다.  이후 대표단 일행은 맨리 비치(Manly Beach)와 노스 헤드(North Head)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크리스찬리뷰 서포터들과 함께 호주 참전용사 보은 연날리기 행사를 가졌다.  송광우 부회장이 가져온 대형 가오리연과 꼬리에 달린 기차연들이 맨리 비치와 노스 헤드 하늘에 올라가자 많은 관광객들이 환호했다.   참전용사들과 한인사회 단체장들이 함께한 보은행사 전경. ©크리스찬리뷰 UNPK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초청, 스트라스필드 대삼원에서 보은 행사를 가졌다사진은 양국 국가를 제창하고 있는 참석자들.©크리스찬리뷰13일(월)에는 호주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스트라스필드 대삼원에서 오찬을 베풀었다. 이날 호주군 참전용사인 이안 크로포드 제독(Ian Mclean Crawford) 부부를 비롯하여 레이너 시버(Raynor Seaver, 크리스찬리뷰 2021년 5월 호 참조), 로널드 로벨(Ronald Lovell), 샤무스 오브라이언(Shamus O’Brien), 케빈 존 바인햄(Kevin John Bineham) 외 호주 NSW UN 협회 부회장 탐 포드(Tim Ford)가 참석했고 한국군 참전용사들인 장은성, 안광호, 김영신, 서병필, 박치용, 민수동, 염길환, 최시온 씨가 참석했다.   오찬을 함께 나눈 참전용사 초청 보은 행사의 이모저모.©크리스찬리뷰인사하는 이안 크로퍼드 제독(전 호주 한국전 참전 기념위원회 회장) ©크리스찬리뷰참전용사 케빈 존 바인햄 씨에게 기념배지를 달아주는 신광철 회장 ©크리스찬리뷰이외에도 오혜영 한인회장을 비롯하여 각 단체장들까지 오십여 명이 참석하여 UNPK가 준비한 보은행사를 통해 식사와 선물을 전달하며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찬 행사 후에는 스트라스필드 인근 양로원에 입원 중인 6.25 참전용사 장석인 목사(대령 예편)를 방문하였다.     캔버라 방문  캔버라를 방문한 UNPK 대표단은  한국전 참전비에 헌화하고 참전용사 가정을 방문하는 보은 행사를 가졌다.©크리스찬리뷰신광철 회장은 사업상 한국에서의 급한 일정 때문에 14일 오전 비행기로 한국으로 떠났고, 이종구 부회장, 송광우 부회장, 기자와 권순형 발행인 등 4명은 캔버라 보은행사를 위해 캔버라로 출발했다.   오후 4시쯤 캔버라 한국전쟁 참전비에 도착하니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대표단 일행이 캔버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대사관의 김진부 국방 무관과 전조영 공사 겸 총영사, 안상천 서기관 등 직원 일행이 참전비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부 국방무관의 안내에 따라 대표단 일행은 한국전쟁 참전비 앞에서 헌화를 하고 참전용사들에 대해 예를 표했다. 그리고 무관의 설명을 통해 호주군의 한국전쟁 참전에 관한 역사를 간단히 들을 수 있었다. 헌화가 마친 후 일행은 미리 연락해 둔 캔버라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콜린 베리만(Colin Berryman)의 집으로 향했다.  콜린 베리만(90세)은 한국전쟁 시 제1대대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이다. 그는 지금도 그가 전투했던 임진각, 문산, 파주 심지어 감악산 지명까지 기억하고 있다. 콜린 베리만 옹은 병원에서 퇴원한지 며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으로 대표단 일행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행을 위해 치즈 플레이트와 와인까지 준비하고 일행을 맞이했다.   기자는 여러 명의 참전용사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한 참전용사는 처음이었다. UNPK 대표단은 콜린 베리만 옹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15일(수) 오전,  일행은 캔버라 한국 대사관에서 소개해준 참전용사 노만 리(Norman Lee)를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실버타운으로 갔다.   그는 96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정했다. 심지어 운전까지 한다고 자랑하며 그가 소유하고 있는 빈티지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까지 일행들을 데리고 내려가 보여 주었다. 일행은 그와 짧은 담소를 마치고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대표단이 준비해온 선물을 증정했다. 그는 잊지 않고 자기를 찾아와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후 일행은 캔버라 전쟁박물관을 방문한 후 대사관 관저로 이동했다. UNPK 대표단 일행이 캔버라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완중 대사가 오찬에 초청했다.   김완중 대사 초청으로 한국 대사관저에서 오찬 모임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했다.©크리스찬리뷰 지난번 인터뷰(2023년 10월호 참조) 이후 두 달 만이다.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는 김완중 대사의 따뜻함이 다시 한번 감동을 준다. 이종구, 송광우 부회장도 김완중 대사의 관심과 따뜻한 초청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찬을 마치기 무섭게 일행은 캔버라 구 국회의사당 광장으로 이동했다. 구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연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연을 날리기 위해 두 주 전부터 캔버라 국회의사당 보안팀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틀 전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을 날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캔버라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호주 참전용사와 호주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 날리는 행사를 구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가졌다.©크리스찬리뷰 대신 구 국회의사당을 추천해 주었다. 하는 수 없이 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보은 연날리기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되었다. 구 국회의사당에서 연을 날리게 되어 신 국회의사당의 배경을 다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캔버라 한인 교민 카톡방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동참을 요청했다. 이갑순 씨와 캔버라 한인회 이정애 이사(간호사)가 나와 일행을 환영했다. 이날 하늘도 맑고 바람도 적당했다. 캔버라 푸른 창공을 보은 연들이 아름답게 수를 그리며 날았다.   90세를 넘긴 고령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과 함께 보은 행사를 마친 후 기념촬영. 대한민국은 결코 이들의 희생과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크리스찬리뷰시드니 동부 라페루즈(La Perouse)에서 2개의 기차연을 높이 날렸다시드니로 돌아오는 길에 신광철 회장의 인사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72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참전하시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이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당신들의 희생과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 주경식|본지 편집국장권순형|본지 발행인 

15/12/2023

지난 토요일 (12월 2일) 뉴잉턴에 위치한 새길교회에서 10년차 찬양팀 모음의 정기 찬양 집회가 있었다.다음은 모음의 김성규 대표와 1문 1답한호일보: 이번 집회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김성규: 예전에는 전통 집회 방식으로 많이 했다. 그러나 최근부터 음악인으로 구성된 팀의 특성을 살려서 찬양을 최대 14곡까지 하고 말씀은 짧고 굵게 하는 것으로 했다. 또 우리가 호주에 살기 때문에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을 위해 영어 자막을 달았다. 오늘 참석자 중에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2명 있었다.한호일보: 집회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김성규: 우리 팀은 2014년 시드니 거주 음악 전공 크리스쳔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음악을 전공한 뮤지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들 생계를 위한 또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팀원들 모두가 생활인으로서 가족이랑 시간도 보내야 할텐데 귀한 시간에 모여 집회 준비를 하고 연습을 했다. 다들 큰 희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다들 시간이 없다 보니 한국에서와 같은 실력이 안나오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생각한다. 함께 협조해 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하다.한호일보: 한인 교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김성규: 찬양예배를 원하는 교회가 있으면 이것 저것 안 가리고 우리가 찾아 가서 섬기고 있다. 예수님 밖에 무엇이 필요하겠나. 우리가 먼저 열심히 하겠다.정리: 손민영 gideon@hanhodaily.com

08/12/2023

샬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도하며 호주시드니한인교회교역자협의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11월 29일에 있었던 NSW 주 정부 의원들과의 미팅이 주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잘 성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 크리스천을 옹호하는 좋은 의원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그 중 다문화장관의 비서를 만나게 되어서 이는 앞으로 우리들이 힘써 악한 법안들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항입니다. 알렉스 그리니치(Alex Greenwich)의원이 옴니버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평등’ 법안을 28일 밤에 국회에 상정하였고 국회에서 reading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주 총리, 법무부장관, 다문화장관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아래와 같이 옴니버스(평등) 법안의 요점을 알려드립니다. -아래–주정부가 성전환법안을 금년 안에 통과시키려던 것을 내년초로 연장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요청 한 바 중에 하나이고, 많은 한인교회들과 다른 종교단체들이 협력하여 이룬 작은 성과입니다.하지만, 이것은 끝난 것이 아닌, 단지 보류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사항입니다.우려되는 부분 중 또 하나는 입법부가 "평등" 법안의 나머지 부분에서 "전환 관행"을 분리하는 그리니치씨의 법안에 관한 절차적 동의를 통과시켰습니다. 이 동의안은 또한 "평등" 법안을 내년 3월 15일까지 연장하고 2월 8일에 우선 토론을 실시할 것이며, 3월 14일 투표를 보장했습니다. 그리니치 ‘평등’ 법안의 다섯 가지 주요 문제1.  이 법안은 NSW 어린이의 건강과 복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어린이와 부모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 이 법안은 미성년자가 부모와 가족의 후견인 감독 없이 스스로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예. 어린이(만16세 미만)가 부모의 동의 없이 성 지향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 성전환 수술 동의 없이 받을 수 있다) 2. 이 법안은 종교기관이 신앙 기반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이 법안은 종교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것인지에 대한 개인적 신념이 크게 다를 수 있는 판사에게 종교기관에 대한 전례없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예.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종교기관에서 내쫓을 수 없다. 신앙 기반 자선단체가 동성 커플에게 양육 서비스와 결혼 상담을 제공하도록 요구) 3. 이 법안은 종교 교육기관이 신앙 기반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이 법안은 동성 및 트랜스젠더 권리와 관련하여 종교 학교의 종교 자유 권리에 대한 차별금지법1977의 모든 균형 조항을 제거합니다. (예. 종교 학교에서 동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 교사나 스태프를 거절할 수 없다. 종교 학교는 교사에게 결혼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을 가르치거나 지지하지 말라고 지시할 수 없다. 종교 학교는 생물학적 남아가 여아 화장실에 접근하거나 시설을 변경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을 판사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4. 이 법안은 매춘을 특권화하고 NSW 여성의 복지를 훼손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NSW의 매춘과 관련된 다양한 형사 범죄를 담고 있는 1988년 약식범죄법의 3부를 삭제합니다. 이는 NSW에서 매춘 관행과 권유를 자유화할 것입니다. 또한 이 법안은 놀랍게도 NSW 차별법에 ‘성노동자’라는 새로운 보호 속성을 추가했습니다. (예. 집, 학교, 교회 또는 병원 근처 또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 매춘을 권유하는 것은 더 이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 공공 매춘 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더 이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 5. 이 법안은 법령집 전반에 걸쳐 자기 성 정체성과 기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성별 이데올로기를 소개합니다. 이 법안은 NSW 법령집에서 성별에 따른 언어와 구별을 근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 16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법적 선언을 통해 성별 변경을 등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한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는 횟수나 빈도에 제한이 없다. 법적 선언을 하면 성전환 수술 없이도 생물학적 남자가 법적으로 여자로 인정 되어서 여성화장실이나 여성 전용 장소에 출입 가능, 여성 전용 스포츠 가능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큰 우려를 안겨줍니다. "개종 관행" 법안은 그리니치 의원의 법안 중 유일한 문제가 아니며 두 법안을 분리해도 나머지 "평등" 법안의 문제가 덜한 것은 아닙니다.그리니치씨의 "평등" 법안은 종교의 자유와 부모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모든 신앙 공동체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법을 결정하는데 도구로 사용되는 하원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반대하는데 힘쓰겠습니다.기사 제공=시드니교역자협의회

08/12/2023

성재훈 담임 목사가 이끄는 젊은 교회시드니 새순교회 송선강 담임 목사 설교2023년 10월 1일(주일) 오후 4시 디딤돌 교회(담임목사: 성재훈)가 창립예배를 가졌다.지난 1월부터 에핑에서 예배를 드려온 이 교회는 9월 카슬 힐에 위치한 라이트 로드 커뮤니티 센터 (Wrights Road Community Centre)로 자리를 옮겨 오후 2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디딤돌 교회는 "복음의 충만함을 매일 새롭게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 중심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디딤돌 교회는 대양주예수교장로회 북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성재훈 목사는 "복음이 중심에 있는 신학적 비전을 가진 사역자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며 그들과 함께 숲을 이루는 꿈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목사는 또한 인삿말에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예수님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공동체로 성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날 창립 예배에서는 시드니 새순교회 담임인 송선강 목사가 "주님이 꿈꾸시던 바로 그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성재훈 목사는 호주장로교 신학교인 Christ College를 졸업하고 다음교회, 새순교회 부목사를 거쳤으며 복음 중심의 교회를 꿈꾸며 새순교회 출신 청년들과 교회를 개척했다. 호주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1.5세 젊은 담임 목사가 일으킬 변화에 교계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E-mail: steppingstonesydney@gmail.comSunday Worship Service매주일 오후 2시Function Room | Wrights Road Community Centre, Castle Hill 한호일보 손민영 기자 gideon@hanhodaily.com

06/10/2023

연약한 천재들“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프리드리히 니체의 이 단호한 명제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사람들이 있다. 정신건강 등 의학과 과학 분야를 전문으로 다룬 저널리스트 클로디아 캘브는 <앤디 워홀·아인슈타인도 정신병 앓았다>에서 워홀을 비롯해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은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강박장애에서 헤어나지 못한 영화 제작자 하워드 휴스, 우울장애를 앓았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등 저명인사 열두 명이 겪은 내적 고통을 소개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들은 각 분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에 이름을 새겼지만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약물중독, 도박중독, 자기애성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과 연관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마릴린 먼로(경계성 인격장애), 하워드 휴스(강박장애), 다이애나 세자빈(신경성 폭식증), 에이브러햄 링컨(우울장애), 크리스틴 조겐슨(성별 불쾌감[트랜스젠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자기애성 인격장애), 베티 포드(물질사용장애), 찰스 다윈(불안장애), 조지 거슈윈(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박장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아스퍼거 증후군) 등 각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매력적인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이 책은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인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물론 정신병이 창조성에 기여하는 긍정성만 강조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심리적 장애가 창조적 노력을 어떻게 비극적으로 끝장내는지도 고찰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부터 하워드 휴즈에 이르기까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궁극적 비극의 무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현대 미국 음악의 거장인 조지 거슈윈은 어린 시절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싸움질을 일삼았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였다. 그가 치료제인 리탈린을 복용했다면 ‘랩소디 인 블루’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억제되지 않은 야성적 에너지 덕분에 강렬하고 화려한 그의 음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찰스 다윈은 툭하면 복통에 시달렸고, 과학자 모임에서 몇 분간 발언하고는 24시간 동안 계속 토하는 등 ‘불안장애’ 증세를 보였다. ‘강박증’이 있던 하워드 휴스는 문을 열 때마다 손잡이를 화장지로 감싸 쥐었으며, 그가 먹을 과일 통조림을 따는 사람은 사전에 세 쪽짜리 지시문을 읽어야 했다.다이애나 영국 세자빈은 지속적인 좌절감,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열패감, 슬픔과 두려움 등의 감정에 사로잡혀 여러 번 자해를 했다. 마릴린 먼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머니가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외삼촌 한 명은 자살하는 등 유전성이 강한 정신질환으로 고생했다. 먼로는 편지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알고 싶어.”미쳤거나 천재거나 체자레 롬브로조는 ‘범죄인론’을 통해 범죄자들이 지닌 생물학적 특징을 찾아낸 범죄학 전문가이다. 그는 한때 정신병자 수용시설의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일련의 연구로 범죄학을 창시하고, 법의학의 성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189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에 ‘천재성’의 문제에 매달렸다. 천재들이 지닌 특징을 세밀하게 나누어 분류하고 보통사람들과 다른 그들의 실체를 정의하고 천재성의 원인을 찾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미쳤거나 천재거나>이다.이 책에도 우리가 알만한 역사적 인물들의 기괴한 사례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희한한 내용들도 많다. 천재들은 키가 작은 경우가 많았다. 알렉산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부터 몽테뉴, 베토벤, 찰스 램까지 모두 단신이었다. 또 독신을 고집하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혹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조숙함도 천재의 특징이다.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에게 연시를 써 보낸 단테를 위시하여 파스칼과 콩트는 열세 살에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하이네나 바이런은 방랑벽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음악적 영감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마치 꿈처럼 불쑥불쑥 떠올랐다고 한다. 혹은 꿈속에서 영감을 얻는 천재들도 많았다.하지만 천재에게 이런 신화적 특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범한 기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광기 어린 행동들도 많았다. 줄리어스 시저,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헨델 등은 모두 간질 발작이 있었다. 천재의 숙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우울증은 대다수에게 발견된다. 괴테는 평생 자신이 즐거웠던 날들을 다 헤아려도 4주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엄살을 부렸다. 조르주 상드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 쇼팽은 말년의 우울증이 너무 심했다. 뉴턴, 쇼펜하우어, 루소, 파스칼, 소크라테스 등 천재들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면 그 속에서 비정상 혹은 광기 어린 특징들을 더 많이 찾게 된다. 한마디로 천재와 광인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특질들, 다시 말해 천재란 실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과 얼마나 비슷한가를 알 수 있다. 대체 천재들은 왜 그럴까?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탁월한 지적 능력과 무서운 집중력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여러 가지 결핍현상이 나타나는데, 사회 부적응,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 자기의 관심사 외의 것에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무관심 등등이 그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늘상 헤매기 일쑤다. 사회지능(SQ)을 조사해보면 대략 두 자리수일 것이다.심리학에서 이러한 천재들의 특성을 ‘고기능성 자폐증’이라 진단한다.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다른 부분에 대해 장벽을 형성하고, 그 결과 저능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재들의 괴팍스러움은 스스로 원한 것이라기보다 천재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겪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천재들은 살아가면서 고기능성 자폐가 불러오는 수없이 많은 우행과 기행, 착오를 저지른다. 천재, 뉴턴의 일화평생을 독신으로 산 뉴턴이 개와 고양이를 길렀는데, 한 벽면에 고양이가 다닐 구멍을 하나 뚫어주었다. 그런데 구멍이 작아 개는 다닐 수 없겠다 싶어 그 옆에 큰 구멍을 또 하나 더 뚫었다. 친구가 물었다.“벽에 왜 구멍을 둘씩이나 뚫었어?”“개 하나, 고양이 하나가 필요하잖아.”“그럼 큰 구멍 하나만 뚫어 같이 다니면 되지.” “아, 참 그렇군.”또 뉴턴은 또 연구에 열중하다 계란을 삶기 위해 물을 끓이는 냄비 속에 계란 대신 회중시계를 넣어버렸다는 일화도 남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더욱 우리를 아연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뉴턴이 난로 곁에 앉아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난로가 뜨겁게 달아올라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참다못한 뉴턴은 곧 하인을 불러 난로 속에 있는 불을 끌어내라고 했다. 하인은 답답하다는 듯 뉴턴에게 말했다. “아니, 난로가 뜨거우면 불을 끌어낼 게 아니라 교수님이 앉은 의자를 뒤로 좀 물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제야 멍 때리는 표정으로 뉴턴이 대꾸했다. “아하! 그런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내가 왜 미처 생각을 못했지?”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봐 늘 전전긍긍했고, 동료 과학자들과 무섭게 경쟁적이었던 나머지 평생을 수많은 적들을 만들고 싸웠던 뉴턴은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말처럼 ‘우정, 사랑, 부성애 결핍 등 인간적인 면에서는 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미적분과 만유인력 발견 등으로 인류가 오늘의 문명사회로 성큼 다가서게 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 로켓을 우주로 쏘아올리는 것도 뉴턴 역학 덕분이다.천재, 아인슈타인의 일화이런 뉴턴에 꿀리지 않는 클래스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있을 때 집이 가까워 점심은 늘 집에 와서 먹었다. 걸어서 다니면서도 늘 머릿속으로는 ‘연구’를 하던 그는 길에서 동료를 만나 연구 얘기를 하다가 헤어질 때 동료에게 물었다.“여보게, 내가 집 쪽에서 오던가 연구소 쪽에서 오던가?‘“집 쪽에서 오셨죠.”“아, 그럼 점심은 먹은 거로군.”아인슈타인은 또 20년이나 산 자기 집의 주소를 끝내 외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뉴저지주 머서카운티 프린스턴시 머서가 112의 집주인은 매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로는 자신의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주소를 알았다고 한다. 물론 20세기 최고의 과학천재가 머리가 나빠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고기능성 자폐증이다.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발견한 상대성 원리로 인류는 우주의 탄생과 그 얼개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천재, 리언 레더먼의 일화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로 큰 성과를 거두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이 다른 물리학자(리정다오)가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신의 입자>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맨해튼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기초 미적분학 문제를 풀던 중 어려운 부분에 막혀서 쩔쩔매다가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생면부지의 승객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실례지만 혹시 미적분 할 줄 아십니까?” “아, 네. 조금 할 줄 압니다.” 그 승객은 노인의 문제를 받아들자 금방 풀어주고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노인이 지하철에서 미적분학 공부를 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그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서 문제를 풀어준 사람은 소립자론에서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으로 무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중국계 이론물리학자 리정다오(李政道) 컬럼비아대 교수였다.그러면서 레더먼은 자신도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풀어놓았다. 그도 지하철에서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하필 환자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오케이.그런데 잠시 후 간호사가 다가와 환자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 다음에 레더먼과 눈이 마주쳤고, 간호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댁은 누구세요?” “아, 네. 저는 리언 레더먼이라고 합니다. 페르미 연구소의 소장이고 노벨상도 받았지요.” 그녀는 레더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세어나갔다. “물론 그러시겠죠. 넷, 다섯, 여섯……”천재, 막스 플랑크의 일화양자이론을 제안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플랑크는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 27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워낙 동안인 플랑크는 40대에도 청년의 얼굴 그대로였는데, 하루는 플랑크가 어느 강의실에서 강의를 해야 할지를 몰라 과사무실 직원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플랑크 교수가 강의하는 교실이 어딘가요?”직원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젊은이, 거긴 가지 말게. 자넨 너무 어려서 플랑크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나이 60세 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플랑크는 이후 독일 전역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피곤한 사람은 플랑크뿐 아니라, 그를 싣고 독일 곳곳을 다녀야 했던 운전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었던지 한번은 강의하러 가는 도중에 운전기사가 뒷자리의 플랑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교수님 강의는 하도 많이 들어 저도 할 수 있겠습니다.”기사의 어깃장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플랑크가 대뜸 이렇게 대꾸했다. “그럼 이번엔 자네가 한번 해보게나.”이렇게 하여 뜻하지 않게 운전기사가 강단에 서서 열이론인 복사이론을 열나게 열강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강의 후 질문이 대뜸 날아들었다. 그러자 기사는 놀라운 임기응변을 보였다. “흠, 그런 질문은 제 조수가 답변해드리겠습니다.”플랑크가 얼른 강의를 배턴터치해서 무사히 끝냈다고 한다. 이런 인간미 넘치는 플랑크였지만 그만큼 비극적인 인생을 산 과학자도 드물다. 아내는 폐결핵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고, 1차 대전에 참전한 큰아들은 베르됭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두 딸은 모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 게다가 마지막 남은 둘째아들은 2차대전 중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늙은 플랑크는 히틀러에게 달려가 탄원했지만, 1945년 끝내 사형이 집행되었다. 2년 후, 1947년 플랑크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그는 끝까지 나치에 협력하지 않은 드문 독일 과학자였는데, 그를 기려 설립된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세계적인 과학 연구기관이다.천재, 볼프강 파울리의 일화역대 물리학자 중 최강의 독설가로 볼프강 파울리를 추대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00년 4월 25일 오스트리아 빈의 유명한 유태인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볼프강 파울리는 조숙한 천재로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드러냈다. 1918년 뮌헨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한 파울리는 19세 때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조차 난해한 수학과 생경한 개념으로 인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해 237쪽짜리 해설서를 썼다. 아인슈타인조차 이 해설서에 감탄했고, 아직까지도 특수 상대성 이론의 최고 교과서로 인정받는다.파울리는 이어 21살 때 이온화 수소 이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25년에는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했으며, 27살로 취리히 대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45년에는 파울리 배타원리 발견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 디락과 함께 초기 양자역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코펜하겐 해석자 멤버들 중 한 명이기도 한 파울리는 그의 천재성만큼이나 날카로운 논평, 강력한 독설로 유명했다. “새로 쓴 논문의 성공 여부를 미리 알고 싶으면 학술지에 발표하기 전에 먼저 파울리에게 검증을 받아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면 가차 없는 독설을 날렸다. 한번은 파울리의 지도를 받던 제자가 연구논문을 발표했을 때, 말없이 듣고 있던 파울리가 마지막에 한 마디 내뱉었다. “자네는 나이도 젊은데 벌써 무명 물리학자가 되는 데 성공했구만.”파울리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주눅 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몇 달 후 그 제자가 다시 완성한 논문을 들고 찾아왔을 때는 과학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발사했다. “이건 틀린 정도가 아니야! 틀렸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라고!”(Not even wrong!). 제자의 이름은 빅터 바이스코프인데, 스승의 혹독한 조련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훗날 훌륭한 이론물리학자가 되었다.이런 파울리의 독설은 자신이 아쉬운 부탁을 할 때도 여전했다. 한번은 자기 제자를 당시 과학계의 지존 아인슈타인에게 추천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아인슈타인 선생님, 이 학생은 제법 똑똑하기는 하지만, 수학과 물리학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되신 지 꽤 오래인 만큼 잘 보듬어주시리라 믿습니다.”천재성이냐, 창의성이냐인류사에서 천재가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다. 유럽의 계몽군주는 근대로 이행하는 급변기에 자신의 이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천재들을 활용했다. 모차르트가 신동 신화의 대표적 인물이 된 것은 근대 초기 시민계급 사회의 왕성한 교육열과 계몽군주들의 꿈이 만난 결과였다.20세기에는 많은 학자가 천재성의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인 루이스 터먼은 지능지수 검사법을 창시해 지능과 천재성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지능지수와 비범한 창조성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경과학자들이 뇌의 활동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서번트 증후군 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오늘날 천재에 대한 과도한 숭배 혹은 낭만적 우상화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다윈이 살던 시대와 달리 현대의 모든 분야는 전문화가 주류다. 한 명의 천재가 아닌 다수의 전문가가 활동하는 시대며, 다재다능한 천재의 비범함보다 대중지성이 각광 받는다. 그래서 최근의 천재성에 관한 관심은 한 인물에 대한 조명이 아니라 창의성에 대한 관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천재는 강요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원숭이가 시의회의 의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토마스 섬머빌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0/09/2022

한 문장 인생한국의 신간 서적들의 책날개에 기록된 저자 소개를 보면 최상급의 현란한 수사들이 춤추는 것을 보며 현기증을 느낄 때가 많다. 이른바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일천한 젊은 필자일수록 심하다. “세계적인 학자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며...” “한국인 최초로 개발한....” 객관적인 경력과 학력 소개가 아닌, 검증되지 않은 일들에 초일류 형용사를 동원하여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물론 일 년에 수천종이나 발행되는 출판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제목을 띄우든지 필자를 키우든지” 하는 상업 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럴수록 겸손의 미덕을 최고로 삼는 선비정신과는 철저히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장이라도 어떤 책이든지 펴놓고 살펴보라. 이런 자화자찬적인 말을 비웃듯이 <타임>지 창간인 헨리 루스 부인으로서, 이태리 대사를 역임한 클레어 여사는 “모든 인물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한국의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언어 두세 마디로 그 인생이 요약되고,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K 전 대통령은 상당한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IMF로 나라 망친 대통령’이란 한 마디로만 기억한다. 그가 세 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을 펴내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을 고쳐보려고 처절하게 노력하지만, 그 자서전 내용대로 평가하거나, 그 내용을 몇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해서 기억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억울하다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세평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남긴 명언 한마디 정도나 명저 한두 권 정도 기억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 하면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분이라거나 ‘흑인 인권 운동의 기수’라는 단 몇 단어로 그 생애가 요약되고, 평가된다. 한 문장, 몇 단어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한 시간 이상 침 튀어가며 칭찬해주거나 장황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아니 이력서 한 장 정도로도 대답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만과 편견’이 가득한 말로 대답하기 일쑤이다. “응, 그 사람? 사기꾼이야!” 단 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그 사람, 참 웃기는 사람이야!” 역시 한 문장이다. “그 사람, 근처에도 가지 마!” 두 문장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 믿어도 좋은 사람이야!” 한 문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분,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야. 그만한 사람은 이제까지 못 만나 봤어!” 두 문장 정도다.이처럼 각 사람의 평가에 대한 문장의 내용은 다 다를지라도, 분명한 공통점은 단 몇 마디이거나, 한 문장이고, 길어봤자 두세 문장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두 문장, 세 문장으로 늘여서 칭송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 이하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다른 사람을 한 문장 이하로 평가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성품과 능력 이상으로 칭찬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한두 마디로, 한 문장도 안 되는 말로 가혹하게 평가할 때가 많다. 사람의 마음은 죄악된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천 가지 좋은 일에 대한 칭찬보다, 한두 가지 나쁜 일에 대한 악평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좋지 않은 평을 받을 때 우리는 분노하고, 잠 못 이루기 마련이다. 또 그런 세평들이 상당히 객관성이라도 보증 받은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나’로 낙인찍히고, 어느덧 나의 정체성처럼 되어버릴 때가 많다. 여기서 우리는 ‘스티그마 효과’(낙인 효과, stigma effect)를 생각해 본다.한 번 찍히면 끝난다?‘스티그마’는 고대 헬라 사회에서 뻘겋게 달궈진 쇠 인장으로 노예나 죄수, 범죄자, 윤리·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자들의 신체에 찍는 일종의 ‘낙인’(烙印)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즉 치욕, 오명, 오점, 불명예를 얼굴로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게 만들고 배척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흔적’(labelling)이었다. 이 낙인이 찍히는 순간 사회적으로 재기할 기회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세월이 흐른 1960년대, 하워드 베커(Howard S. Becker)에 의해 ‘낙인 이론’(labelling theory)이 등장 했다. 이는 제도, 관습, 규범, 법규 등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결국 스스로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사자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반도덕적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낙인 효과’는 이 낙인 이론에서 유래한 용어로, 범죄학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쓰인다. 특히 일탈행위자와 범죄자, 현대 청소년 문제 등을 논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처럼 낙인효과는 사회심리학에서 일탈행동을 설명하는 한 방법으로, 남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면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해 낙인을 찍게 되면 부정적인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긍정적인 기대를 받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이다.어떤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저 사람은 실수가 많아” “실수할 줄 알았어” “그 사람? 좀 그래” 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그 사람을 볼 때 늘 실수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생기고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한 번 ‘돌아이’ ‘고문관’ 등의 낙인 대상이 되면 스스로 낙인에 맞추어 살게 된다. 당당하지 못하거나 위축된 상태의 자아를 형성하고, 낙인찍힌 대로 생활태도를 변경해서 그런 삶을 받아들인다. 어린아이도 주위에서 지속적으로 ‘바보’라고 낙인찍으면, 아이는 점차 자신이 진짜 바보라고 의심하게 되어 결국 본인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자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넌 못해!” “넌 최악이야!”라는 발언(낙인)을 할 경우에는 공부에 대한 의욕뿐만 아니라 탈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과 칭찬, 격려의 말로 잘 이끌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는 사회가 비행청소년, 전과자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의지를 꺾고 사회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낙인은 결국 한 개인의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아호도 아닌 꼬리표우리가 잘 아는 ‘대도 조세형’은 자기 이름 앞에 아호도 아닌데 ‘대도’가 따라붙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유명한 절도범이었다. 주로 고위층의 저택에서 금품을 털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해서 대도로, 때로는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15년간 수형 생활을 마치고 종교에 귀의하면서 새 삶을 찾는 듯했다.그러나 그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죄목은 절도죄였다. 병적인 도벽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많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그를 ‘새 사람’으로 봐주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 그가 출소한 뒤 여기저기 간증 활동을 할 때도 전단지나 플래카드에 들어가는 그의 이름 석 자 앞엔 늘 ‘대도’가 수식어처럼, 꼬리표처럼 낙인이 찍혀 따라다녔다. 좋은 뜻으로 내주는 인터뷰 기사에도 ‘대도’란 말은 떠나지 않았다. 그런 전단지, 플래카드, 인터뷰 기사를 대했을 때 본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편했겠는가?개과천선한 인생으로 마무리가 됐으면 좋을 텐데, 얄궂게도 그의 삶은 나이 팔순이 넘어서 다시 범죄자로 전락했다. 다세대주택에서 5만원도 들어 있지 않은 저금통을 훔쳤다는 얘기에 대도라는 수식어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사 가운데 열에 아홉은 대도를 붙여 그를 설명했다.그에 대한 묵은 기사들을 검색하면서 죄를 범한 자는 분명 조세형이지만, 우리 사회가 그를 끊임없이 죄인으로 낙인찍고 있는 건 아닌지 멈칫하게 만들었다. ‘대도’란 그 낙인은 오랜 세월의 퇴적 속에 지워질 듯도 하지만, 희미한 흔적처럼 남아 좀도둑으로 재생되고 만 셈이었다.  조세형은 자기 이름 앞에 붙는 ‘대도’라는 수식어가 평생 그렇게 지우고 싶었지만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화인이요, 낙인이었다.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심지어 초청한 교회들조차도 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그걸 얼마나 크게 광고하고 알렸던가?낙인보다 지지와 격려둘러보면 낙인찍기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번지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가 부각되면서 ‘조현병 환자=잠재적 범죄자’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우울증 환자도 언젠가 큰일을 저지를 사람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병 환자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더 움츠러들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재기와 새 출발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는 활력을 잃는다.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다시 일어서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과거의 부정적인 이력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병 환자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더 움츠러들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재기와 새 출발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쏟아지는 ‘낙인 뉴스’의 쓰나미에 무심코 맞장구를 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니 돌아봐야 한다. 누구에게나 지울 수 없는 화인을 새기는 비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번 찍히면 끝장인 세상에서 새 출발, 패자부활전이 있을 수 없다. 한번 찍혀도 끝장이 아닌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 사람 잘 해내겠지. 이겨내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북돋아주는 마음이 모아져야 할 때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물론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더 많은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비록 실수와 실패의 현장에 있을지라도!“최상의 선생님은 당신이 마지막으로 저지른 실수이다”(Your best teacher is your last mistake)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하며,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기보다 위로와 격려와 공감이 필요한 시대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결국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제 다시 나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지금 무슨 단어 어떤 문장으로 요약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가?“위선자!” “거짓말쟁이!”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될 몹쓸 사람!" “지지자!” “격려자!” “칭찬하는 사람!” “위로자!”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 “다른 사람은 못믿어도 그 사람만큼은 믿을만해!” “ 그 사람 옆에만 가면 힘이 나!” “아무도 날 신뢰하지 않는데 그 사람만큼은 날 믿어주고 격려해!”.....어느 쪽일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요약한 한 마디 말, 한 문장은 어느 것에 가깝다고  생각되는가? “긴급 수배자 명단을 보면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저들에게 따스한 격려 한마디라도 해주었다면, 만일 저들에게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면 현재처럼 저렇게 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르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에데 칸토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6/08/2022

‘뜨거운 손’ 1985년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가 인지심리학회지에 기고한 “농구 경기에서 뜨거운 손”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손 현상’을 소개하였다. 농구 경기의 관중들은 흔히 이전에 던진 2~3개의 슛이 성공한 선수들에 대해 다음 슛 역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전 슛이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 슛의 성공 확률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농구선수의 슛은 각 시행에서 일어난 사건이 다른 시행에 일어난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독립시행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전의 슛과 다음의 슛의 성공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관중뿐만 아니라 경기를 뛰고 있는 동료 선수들 및 당사자 역시 그가 다음 슛을 보다 쉽게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마치 선수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뜨거운 손’을 가져 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착각한다.  뜨거운 손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전의 성공에 대한 관찰이 지각과 기억에서의 편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범주화 과정에서의 편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즉 여러 차례의 시도에 대해 사람들은 우연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비우연적이고 유사성을 가지는 것으로 지각할 때 보다 쉽게 기억하고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기에서나 평소보다 유난히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그리고 농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를 뛰어본 경험이 있다면 오늘따라 더 슛이 잘 들어가는 날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이는 ‘뜨거운 손’ 덕분이 아니라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자기충족적 예언이란 바라거나 예언하는 바가 현실에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자기충족적 예언을 처음으로 언급한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실제 상황보다는 상황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즉 이전의 성공은 다음의 성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는 그가 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비우연성과 의미를 부여해 상황을 해석한다. 한두 번 성공을 거듭하게 되면 동료들은 그를 ‘뜨거운 손을 가진 선수’로 의미부여해 더 많은 패스를 주고 당사자 역시 자신감을 얻어 보다 과감한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런 시도들이 그에게 더 많은 성공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 해석은 현실이 된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긍정적 방향, 부정적 방향 모두로 작용할 수 있다. 지고 있는 경기에서 “오늘 경기는 끝났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에게 낮은 기대치를 부여하면 그는 그 평가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여 낮은 기대가 현실화된다. 감독이나 코치의 이 한 마디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상기시켜 준다. 그저 한 말이 정말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속담이다. 정말 말이 씨가 될까? 놀랍게도 정말 말이 씨가 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의 의미는 ‘기대와 예언’을 뜻한다. 어떤 사람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가 원해 기대했던 대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기대가 구현되는 현상을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뜨거운 손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전의 성공에 대한 관찰이 지각과 기억에서의 편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범주화 과정에서의 편향으로 인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즉 여러 차례의 시도에 대해 사람들은 우연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비우연적이고 유사성을 가지는 것으로 지각할 때 보다 쉽게 기억하고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or Rosenthal effect)를 소환할 수 있다, 기대, 행동, 결과피그말리온 효과란 타인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믿음,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가 높은 성과를 이어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역으로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도 피그말리온 효과이다.사람들을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스키마(schema,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혹은 틀)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그 스키마가 지지되거나 반박되는 정도를 바꾸어 버린다. 무심코 자신의 스키마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을 대함으로써, 자신의 스키마를 옳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자기 충족적 예언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떠할 것 같은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기대는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원래 기대와 일치하는 행동을 하도록 조장한다. 그 결과 나의 기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현되고 만다.’ 그러므로 나의 기대가 중요하다. 나의 기대에 따라 그 사람은 나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평생 이해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먼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학급을 책임진 고등학교 교사의 예를 들어보자. A군은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학급에서 공부를 잘하던 학생과 흡사했고, B군은 이전의 문제를 일으켰던 불량 학생과 닮았다고 하자. 1) A, B에 대해 교사가 가지는 믿음과 기대 : 무의식적으로 교사의 마음속에는 A군과 B군에 대한 기대치가 설정된다. 그리고 교사의 믿음은 교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2) A, B를 대하는 교사의 행동 변화 : A군과 마주치면 기분이 좋아지고, 한마디라도 덕담을 하고, 사소한 것까지 챙기게 된다. 불편한 건 없는지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더 묻게 된다.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하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끔 동기부여를 주기도 한다. 어쩌다가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도 차근차근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반면에 B군을 볼 때는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성적이 잘 나오고, 학교생활을 잘 하는 모습을 보이는 기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B군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조언, 피드백도 별로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실수를 하면 기분이 쉽게 언짢아진다.3) A, B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변화 : 교사의 행동은 A군이 가진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 A군은 자신이 존중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느낀다. B군은 교사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학교생활을 잘 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다.4) A, B의 행동 변화 :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믿음은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A군은100% 노력하며, 더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에 매진한다. B군은 의욕이 없는 상태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학교생활을 한다.5) A, B에 대해 교사가 가졌던 믿음의 강화 : 위의 모습들이 교사가 A,B에 가졌던 최초의 믿음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교사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A군과 B군을 대하게 된다. 이처럼 교사가 애초에 A, B 학생에 대해 가졌던 최초의 믿음과 기대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현상이라고 한다. 좋으면서도 부담스런 칭찬피그말리온 효과를 쥐를 이용한 실험으로 증명해낸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 박사는 다음과 같이 피그말리온 효과의 핵심을 이야기한다.“우리가 상대방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거라 기대할 때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는 상대방을 특정한 방식으로 대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다음,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여신 아프로디테가 이에 감동해 여인상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면 결국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칭찬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 받는 사람은 인정받고 있다는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자아 존중감이 높아지면서 활동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칭찬받은 대로 행동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따라서 기대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게 되므로, 그에 걸맞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그런데 칭찬이 긍정적인 반드시 효과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른바 ‘칭찬의 역효과’이다.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다.“와, 이번에 95점 받았다면서? 정말 잘했다. 대단해 다음에는 100점 받겠구나!”“피아노 경연에서 은상 받았다고? 멋지다. 더 열심히 해서 금상 한번 받아야지?”“김 과장, 진급 축하해. 역시 능력자야 동기 중, 진급이 가장 빠르다며? 곧 차장 되겠네?”이렇게 칭찬은 우리가 살면서 흔히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런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하다. 특히 나타난 결과와 성과만을 가지고 하는 칭찬일 때는 더욱 그렇다. 결과와 성과가 좋지 않으면 칭찬은 언제든지 비난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보다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최소한 현재 수준의 결과와 성과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는 칭찬이다. 차라리 아무런 칭찬을 받지 않는 게 홀가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이런 식의 칭찬을 많이 받게 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자꾸만 의식하게 되고 불안해진다. ‘다음번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목표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생긴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거나 일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는 일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칭찬 받는 게 즐겁고 칭찬 받기 위해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열정이 식어버린다.칭찬과 아첨칭찬의 부정적인 효과가 또 있다. 필요 이상의 칭찬을 자꾸 받다 보면 자만에 빠져 수 있다. 과도한 칭찬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계속 추켜세우고 칭찬하는 횟수가 빈번할수록 자만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늘 자신을 경계하고 처신을 신중히 해야 한다. 칭찬 받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자신을 향한 칭찬이 당연하다고 여겨져 무감각해지면 교만한 태도가 몸에 밸 수 있다. 한 순간 건방지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닌데 누군가 자꾸 나를 칭찬하고 거북할 정도로 과분한 찬사를 넣어 놓으면 그 진의를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아첨이나 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은 상대방의 좋은 점이나 탁월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럴 만한 일을 많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첨은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이다. 아부도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것이다. 뭔가 목적을 위하여 객관적이지 않는 태도로 상대방을 과하게 추켜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목적이란 드러내지 않는 자기만의 이익이다. 상대방에게 아첨하고 아부해 환심을 사거나 비위를 맞춤으로서 자기의 유익을 얻기 위해 객관적이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지나치게 칭찬을 늘어놓는 사람은 지극히 경계해야 한다. 그것을 칭찬으로 여겨 끌려가면 낭패를 맞게 된다. 기대의 힘불교 용어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단어가 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 말이다. 나의 인지와 기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원효대사가 달콤하게 마셨던 물이 사실을 해골 물이었듯이 본인이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지하느냐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자기 충족적 예언을 우리 삶에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를 많이 품으면 된다. 더불어 편견을 고착화 시키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사모하고, 사숙하는 대로 형성되기 때문이다(A man is what he thinks).우리는 결과에 미리 낙담하지 않기 위해 결과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호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긍정적인 기대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긍정적인 기대를 품고 확신으로 행동한다면 분명 더 발전된 미래가 오리라 생각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영혼을 살찌우는 보약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우리에게 부, 성공, 즐거움과 건강을 가져다준다. 반대로 부정적인 마음가짐은 영혼의 질병이며 쓰레기다. 이는 부, 성공, 즐거움과 건강을 밀어내고 심지어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 나폴레온 힐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7/08/2022

로또 이야기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20년 친구 사이인 뉴질랜드와 호주 남자 3명이 돈을 모아 산 로또가 1,700만 뉴질랜드 달러(약 134억원)에 당첨되자 배분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뉴질랜드의 한 신문이 5일 보도했다. 자료에 따르면 2008년 7월 뉴질랜드 혹스베이 출신의 유진 제임스 테 파이리는 개리 존 갈릭, 브렛 프레티 등 호주 친구들과 함께 호주 로또 복권을 샀다. 테 파이리는 로또 복권 추첨이 있는 날 3명의 친구들이 440달러를 모아 프레티의 집에서 즉석 파티를 하면서 모은 돈에서 34달러를 떼내 복권을 사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복권은 1,700만 달러에 당첨됐고 프레티가 2명의 친구에게 선물을 몇 개 사주는 것으로 입을 씻으려하자 싸움이 벌어졌다. 프레티는 친구들에게 그들의 몫을 충분히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친구들은 프레티가 너무 탐욕스럽다며 돈을 더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테 파이리와 갈릭은 법원에 고소장을 내 파티를 위해 모은 돈으로 복권을 산 것은 일종의 ‘합작투자협정’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이 당첨금을 3분의 1인 560만 달러씩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파티비용을 낸 액수에 따라 상금을 배분할 경우 돈을 가장 많이 낸 테 파이리가상금의 54.41%인 900만 달러 정도를 갖게 되고 갈릭은 23.53%, 프레티는 22.06%를 자기 몫으로 챙기게 된다. 이들이 법정 싸움으로 들인 법률 비용은 2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로또 때문에 20년 우정도 법정 싸움으로 끝날 것으로 사료된다.  인생역전의 역설로또 1등에 당첨돼 인생역전에 성공했던 50대 영국 남성이 돈 걱정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해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로또로 인생역전에 성공했지만 5년 만에 당첨금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전직 제빵사였던 케이스 고우 씨는 5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됐다. 하지만 당첨금을 가지고 경마, 축구경기 내기, 음주 등을 통해 모두 날렸다. 그는 마침내 동전 하나 없이 돈을 써버렸다며 결국 돈 걱정으로 시름하다 심장마비에 걸렸다고 한다. 이는 돈만 있으면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확천금을 좇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제빵 일을 하던 고우는 2005년 6월 900만 파운드(약 156억원)에 달하는 로또 잭팟에 당첨된 후 대부분의 돈을 경마, 자동차레이스 등으로 탕진했고, 수중에 단 한 푼의 돈도 남기지 않은 채, 얼마 전 슈롭샤이어주 텔포트의 프린세스로열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돈을 주체할 수 없었던 고우는 로또 당첨 2년 후 아내와 이혼, 그때부터 폭음을 시작하는 등 건강마저 급격히 나빠졌다. 일찌감치 돈을 다 날려버린 그는 이혼 후 조카 집에 얹혀살며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냈다. 그는 지난해 “내 인생은 눈부셨지만 로또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인간을 슬프게 만드는 돈이 무슨 소용이냐? 누군가 신문가판대로 다가간다면 나는 절대 로또티켓 만은 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피땀 흘려 번다면 수백 년은 족히 걸릴만한 그 어마어마한 돈을 그토록 쉽게 흥청망청 유흥비로 사치품목 구입으로 탕진하고 말까?  하우스 머니 효과한국에는 설날에 일가친척들에게 세배를 올리면 세뱃돈을 받는 문화가 있다. 세뱃돈은 새해 첫날에 받는 돈이기에 기분 좋게 쓰라는 의미로 신권으로 주고받곤 한다. 그러나 분명 거액의 돈을 세뱃돈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텅 비어있는 지갑을 마주한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평소에 돈을 아껴 쓴다며 소액의 배달비, 배송비 등에는 돈을 아까워하면서, 설날에 받은 거액의 세뱃돈은 쉽게 써버리는 것일까?기대하지 않았던 이익을 얻을 때 전보다 더 위험을 감수하려는 현상인 ‘하우스 머니 효과’(House Money Effect)로 이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존 노프싱어 교수가 실시한 연구에서 도박꾼들이 큰 예상치 못하게 큰돈을 땄을 때 다시 그 거금을 올인하여 배팅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존 노프싱어 교수가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전 던지기 게임’으로 돈을 잃은 사람은 41%만 다시 배팅에 참여했지만, 돈을 얻은 사람은 77%가 다시 배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즉, 쉽게 얻은 공돈은 원래 자신의 돈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돈에 대한 위험 기피 성향이 낮아져서 돈을 쉽게 쓰게 되는 것이다.사람들은 같은 액수의 돈이어도 자신의 심리나 상황에 따라 그 돈의 가치를 더 크거나 작게 느끼곤 한다. 자신이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알바비라면 자신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라 생각해 쉽게 쓰지 못하지만, 설날에 친척에게 받은 세뱃돈은 자신이 아무 노력 없이 받은 공돈이라고 생각해서 그 돈을 쉽게 써도 되는 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 돈을 막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실회피 경향’이 있기에, 기존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도박을 한다면 단번에 거금을 올인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공돈, 즉 ‘내 돈이 아니다’라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면, 그 돈을 막 써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돈을 공격적이고 위험한 투자로 쉽게 사용한다. 벼락 맞기보다 낮은 확률그렇다면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있는가? 불행히도 그 가능성은 814만 분의 일, 이 확률은 매주 복권을 사서 일등에 당첨되려면 2억 년 걸리는 확률이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은 확률이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난 틀림없이 될 거다’란 생각으로 싱글벙글한다. 바늘귀보다 더 좁은 그 확률에 들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어느 해 연말, 한 여성 포털 사이트가 네티즌 2,367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원’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72%가 로또 당첨을 소원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로또’ 열풍에 휩싸여 있다. 한번 대박으로 행운을 잡자는 심리이다. 로또 복권을 처음 시작한 나라가 이태리로, 이태리 말 ‘로또’는 행운(Lucky)란 뜻이다. 옛날 네로 때부터 복권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은 1947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이 갈 돈이 없어 복권을 발행해 선수들이 올림픽에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 복권이 만들어질 때는 이런 소박한 목적도 있었다.그런데 이 로또 열풍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방에 확!’하는 한탕주의에 빠져 로또 당첨으로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으려 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외국 근로자들도 한국에서 번 돈을 로또에 돈을 걸고 있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20대 남자 28.3%, 30대 50% 이상, 49.5%, 40대 46.2%로 천만 명 넘는 인구가 로또에 중독되어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같이 일등에 당첨된다는 확신(사실은 착각) 속에서 그 당첨된 상금 60억, 70억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고 한다. 어디로 이사 갈까, 어떤 집을 살까, 차는 무엇으로 바꿀까... 이런 흐뭇한 착각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옷은 어디 가서 사입고, 여행은 어디로 갈까 하룻밤에도 지구를 다섯 바퀴 이상 돈다. 이런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전국민의 19%라고 한다. 로또에 모든 것을 다 배팅하다가 죽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어느 30대 중국집 종업원은 인생역전을 꿈꾸며 3천만 원어치나 복권을 샀다가 몽땅 낙첨되자 목숨을 끊었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20대 청년은 통장 잔고 전액인 270만원을 모두 틀어 복권을 산 뒤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부산에 한 남자는 이른 아침에 지하철 철길로 뛰어 들며 “로또!”하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한다. 요행히 로또에 당첨됐지만 풍족함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다. 3년 전 포항 사는 어떤 사람은 우연히 구입한 로또가 2등에 당첨된 것을 확인한 후 은행으로 달려가 4,500만원의 돈을 탔다. 그런데 그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던 이 사람은 갑자기 죽었다. 로또에 당첨된 기쁨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술을 마신 후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도박꾼의 오류1913년 8월 18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호화로운 보자르 카지노가 게이머들의 탄식이 쏟아지는 가운데 술렁이기 시작했다. 룰렛 게임이 벌어지는 테이블에서 구슬이 20번이나 연거푸 검은색으로 떨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27번째에 가서야 구슬은 붉은색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대다수 게이머가 수십억 원을 잘못 배팅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들은 파산하고 말았다.몬테카를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 믿을 수 없는 일 덕분에 ‘몬테카를로의 오류’(Monte Carlo fallacy)라는 말이 생겨났다. 정기적 개연성에 대한 원리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다. 그 결과 과거에 관찰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미래에 대해 예상하는 잘못을 범하는 걸 말한다. ‘도박사(혹은 도바꾼)의 오류’(Gambler’s error)라고 한다. 같은 뜻으로, 기회의 숙성 오류(Fallacy of the maturity of chances)라는 말도 있다.“그동안 계속 잃었으니 이번엔 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평소 승률이 50%라면 100번을 연이어 돈을 읽고 난 다음이라도, 실제로 101번째 이길 확률은 여전히 50%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말한다.카지노와 같은 도박장에서는 고객들이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면 빠질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그래서 이들은 건물 구조, 실내 장식, 운영 방식 등을 통해 분위기를 들뜨고 흥분되게끔 몰아감으로써 고객들이 환상에 빠지게끔 유도한다. 명심하시라. 카지노는 ‘도박사의 오류’에 끝까지 붙들어 두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그들의 교묘한 운영 원칙들이 있음을!카지노 설계 시 창문은 만들지 마라. 빛이나 소리가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는, 철저히 밀폐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카지노에 흐르는 공기는 항상 일정한 온도와 산소 농도를 유지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변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객이 집에 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시간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시계도 없어야 한다. 실내 장식은 가능한 한 빨간색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 열광과 자극을 위해서다. 웨이트리스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술은 공짜로 제공하라. 고객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님이 고독감을 느끼게끔 하라. 자리를 뜨지 말고 계속 도박에 몰두하게끔 하기 위해서다.도박사의 오류는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자주 저질러지는 오류 중의 하나로, 특히 주식 투자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어제와 오늘 떨어진 주식은 확률적으로 내일 오를 것이라고 믿지만, 오늘 떨어지면 내일도 떨어질 수 있는 게 주식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가가 왜 오르는지, 무엇 때문에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찾아 대응하기보다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일부 사람들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복권’을 계속 사는 이유도 물론 ‘통제의 환상’ 때문이다. 사실 많은 도박은 ‘그날의 운’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에 도박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운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곧잘 빠져든다. 실험 결과,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에서도 참여자들은 자신과 겨루는 상대방의 인상에 의해 거는 돈의 액수를 달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카드를 뒤집어서 둘 중에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을 하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말쑥하고 날카롭게 보이면 걸 수 있는 돈 25달러 중 9.28달러를, 상대방이 멍청해 보이면 16.72달러를 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제비뽑기를 할 때에도 자신이 직접 뽑은 것과 다른 사람이 뽑아서 준 걸 받았을 때에 각기 당첨 확률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자신이 직접 뽑은 것에 훨씬 높은 당첨 확률을 부여했다.인생역전 불변의 법칙왜 현대사회는 복권, 카지노로 대표되는 ‘도박산업’이 흥왕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의 한국 사회는 불안한 사회라는 서글픈 반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느끼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면 더 이상 노력할 동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과는 무관한 ‘팔자’나 ‘운명’으로 돌리는 ‘운명론자’가 된다. 사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미리 알아보려는 노력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자신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미래가 자신이 꿈꾸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또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일의 삶은 이런 ‘실존적’ 불안에 대처하는 노력의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방(혹은 한탕)의 우상’은 다양한 종류의 도박이나 투기도 덩달아 성행하게 한다. 그러나 인생역전 불변의 법칙은 ‘성실한 노력’에 있다. 이 법칙에 예외는 거의 없다. “아무리 머리가 아둔한 사람도 10년만 노력하면 한 분야의 유식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S. 스마일즈) 했고, 짐론은 “당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일주일에 책 한권씩을 읽는다면 10년 후에 당신 분야에서 최상위 1%에 해당되는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오늘의 성실한 공부가 내일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엄격한 법칙이다. 템플대학의 러셀 콘웰 박사가 4천명의 백만장자를 면밀하게 분석해보니, 이들에게 세 가지 특징이 발견되었다. 첫째, 뚜렷한 비전과 목적을 갖고, 그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살았다. 둘째, 만사에 열심히, 성실히 부지런했다.셋째,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거나 원망하거나 핑계대지 않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성경의 법칙도 동일하다. 게으른 사람에게 일하라고 하니 “길에 (날 잡아먹는)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잠언 26:13)하면서, 벌건 대낮에 나타나지도 않는 사자를 핑계를 대며 위험해서 못하겠다고 하는 한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2/06/2022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이 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항상 선택(Choice)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하루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삶들은 대략 하루에 150번 정도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출근하면서 옷은 어떤 것을 입을까? 어떤 신을 신을까? 약속은 어디에서 할까? 특히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같은 고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나에도 수천 번의 고민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오죽하면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책까지 나왔을까? 이 책에서는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즉 슈퍼마켓 진열대 A의 시식대에는 잼 6종을 놓고, 다른 쪽 진열대인 B의 시식대에는 잼 24종을 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시식대에 놓인 잼이 많은 B의 쪽으로 사람이 더 몰렸다.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맛본 잼의 개수는 A, B 둘 다 서너 개 정도로 비슷했다. 그런데 실제로 잼을 구매한 비율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시식대에 진열된 잼이 적었던 A에서는 시식자들 중 약 30%가 잼을 구입했지만, 진열된 잼이 많았던 B에서는 겨우 3%의 사람만이 잼을 구입했다. 이 책의 저자 배리 슈워츠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선택 안이 많으면 소비자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탓에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그래서 아예 결정을 안 하기로 결정하고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이렇듯 선택의 폭이 넓어서 선택하는데 더 어려운 과정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선택’하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아예 선택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물론 다양한 선택 앞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비 시장에서는 선택을 어려워하고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비자의 취향, 성격, 연령 등을 분석한 뒤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해 크게 각광받고 있다. 빵부터 속 재료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브랜드에서는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어울리는 조합 몇 가지를 선정해 이른바 ‘꿀 조합 샌드위치’를 광고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널려있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능력이었는데, 요즘은 선택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 타인의 선택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대신해 BJ가 선택을 대신 해주는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끈다. ‘전문가가 권하는 7대 여행지’ 같은 식으로, 상품 소비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이 하나의 마케팅 패턴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큐레이터 같은 남이 대신 선택해줄 순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작은 것 하나 결정하는데도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가 하면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까지 소환할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훗날 이 행동은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되었다. ‘햄릿 증후군’은 햄릿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말을 ‘결정 장애’(혹은 ‘선택 장애’)라는 용어로 이미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선택의 어려움 결정장애는 의학적으로 질환이 아니다.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해 마치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사실 결정장애는 ‘사회 심리학적 현상’이다. 심리학자들은 결정장애를 ‘지연행동’(procrastination)으로 정의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기회에 노출돼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서구 심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메이비족’(Generation Maybe)이라 부른다. 결정장애는 물건을 살 때나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더욱 심해진다. 결정 장애의 원인은 다양하다. 인류사를 통틀어 경제 사회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이 결정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이유는 뭘까? 첫째, 과거보다 너무 많은 선택 기회가 주어진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과거에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선택하면 됐지만 현대에는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해결이 가능하게 됐다. 선택 기회가 너무 많아 역설적으로 결정을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어 선택의 폭이 필요 이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과잉기회’가 낳은 모순이 결정장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자기주도적 습관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나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결핍 없이 살았기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알아서 다 해준다. 아이가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보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부모가 알아서 결정을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과잉보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자녀는 결국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결정을 내려주는 것에 익숙해져 성인이 돼도 아주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둘째, 삶의 선택은 늘 어렵다. 특히 실패의 두려움으로 인해 선택을 피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기회가 많았다. 경제성장기였기에, 좋은 대학을 못 가거나 성적이 나빠도 취직 걱정을 덜 했다. 방황하느라 시기를 놓쳐도 공부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완전히 낙오되고 패자부활전은 점점 줄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셋째는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결정을 쉽게 못한다. 삶은 순간순간이 중요하고, 그 선택은 시험과는 다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때가 많다. 답을 고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고른다는 것은 각기 장단점이 존재하며 그 합의 비슷한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이사할 걸 두고 고심한다고 해서 정답과 오답을 나눌 수가 없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완벽하지 못한 결과를 얻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거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마음속에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혹은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다. 최선을 다했으나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의 상실감이 줄여 나머지 선택을 하지 않고, 시작도 하지 않고 남겨두려는 마음이다. 선택을 위하여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아닌 이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조차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아래 항목을 체크해 보시라   1. 메뉴를 선택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결정해준 메뉴를 따라 먹을 때가 많다.  2. 혼자서는 쇼핑하지 못한다.   3. 선택하는 것이 두렵고,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4. 다른 사람의 주장에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5. 선택에 고민이 생겨 SNS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6.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면, ‘글쎄, 잠시만, 잘 모르겠어’ 같은 모호한 말을 먼저 뱉는다. 이 6개의 항목 중 4개 이상의 증상을 보인다면, 심각한 결정장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정 장애를 개선하려면 스스로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떨쳐버리고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무덤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참고로만 하고 항상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다보면 사소한 ‘결정 장애’ 증상을 개선될 수 있다. 다음의 목록은 뉴질랜드판 에서 소개한 결정에 도움이 될 항목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찬찬히 정리하면서(기록하면 더 좋음) 생각을 전개한다면 좀 덜 고통스러운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1.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만한 중대한 문제인가부터 짚어본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코트를 입을지 점퍼를 입을지는 오래 고민할 문제가 아닌 매우 사소한 문제다.  2.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A가 아닌 B를 선택할 경우 무슨 일이 생기기에 망설이는지 그 두려움에 직면하는 게 필요하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3.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A와 B 각각을 선택할 경우 장단점을 적어본다. 선택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이다.  4. 데드라인은 언제인가? 한없이 생각을 질질 끌면 더욱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외부의 조건과는 별대로 40분, 또는 하루, 일주일과 같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기한을 설정한다.  5. 얼마나 이기적으로 생각하는가? 종종 의사결정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 등을 생각하거나, 그들의 조언을 고려하느라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주변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다.  6. 후회보다 더 큰 희망이 있다면? 지금은 좋은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내일이 되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선택이 가져올 기회는 무엇인지 적어보자. 오늘 당장 회사에 사표를 쓰는 게 내일 아침 ‘이불킥’을 하게 만들지 몰라도 또 다른 희망이 있지 않은가.선택에 박수를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이 마치 정답으로 이뤄져 있는 것만 같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영봉 높은 직장이 정답이고, 30대 중후반이 넘기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개성을 미리 재단하여 그 범위를 한정해버리고 있다. ‘완벽한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는 정답을 맞히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삶이 서너 가지 정답으로 뭉뚱그려지기엔 우리의 개성과 인격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백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만 개의 세계가 있다. 당연히 백만 개 이상의 선택이 발생할 것이다. 결정을 망설이고 미루는 것은 ‘정답이 있는 세상’과 ‘나만의 세상’과의 갈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는 것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이다.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 이후가 무척 중요해진다. 최선을 다해 그 길을 정답으로 일궈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어느 날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 선택을 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택했건 그 이후의 태도와 노력에 스스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완벽한 결정은 없다. 단지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믿어주고 거기에 온 힘을 쏟아 최고의 결정으로 만드는 일은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5/06/2022

“그런 줄 몰랐다”100년도 훨씬 더 지난 1886년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극단적으로 분리된 자아의 선악이 공존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능하고 자비로운 의사인 주인공 지킬 박사는 명망이 높은 훌륭한 인품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밤이 되면 자신이 발명한 약물을 마시고, 내면의 ‘악(惡)’을 분리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자아 ‘하이드’로 변해 폭행과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낮에는 성자와 다름없는 존경받는 의사로, 밤에는 끔찍한 악마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렇게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채 한 몸 안에서 역설적인 동거를 어색하게 이어나간다.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인간 내면의 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더럽고 위험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정신역동이론가 융(Jung)은 이를 그림자(shadow)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밝으면 밝을수록 내면의 그림자는 짙어지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을 캐릭터화한 것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이다. 스스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인식했다 한들 인정하기 싫은 것이 그림자(shadow)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러한 내면의 그림자가 튀어나와 현실의 자신을 바꿔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너무나 자주,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존경받는 종교인이나 교육자들이 평소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게 도덕적으로 추문에 휩싸여 추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관전평은 한결같다.“그가 그런 사람이었어?”“그 사람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실망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그런 인물에 대한 품평이 이루어진다. 그 품평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그렇게 존경받던 그 사람이 천하에 둘도 없는 몹쓸 사람으로 난도질되고 만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과거의 존경과 현재의 혐오를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가? 성경에도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1)고 했는데, 한 인격체 안에서 성인과 악마의 모습이 발현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안전지대는 없다 앞서 언급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한 사람이,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분리되어 한 몸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다중인격 장애’(정확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견디기 힘든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인격이 여러 개로 해체(혹은 해리)되는 질환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똑같이 한 인격체 안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때로는 각각의 인격에 따라 목소리와 말투, 자신의 이름과 언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 최고의 호황기를 대표하는 대통령 클린턴은 여러모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치명적인 흠결은 인턴과의 불륜관계 여과 없이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드러났다.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묘사된 그의 스캔들은 소위 ‘지퍼게이트’란 조롱을 받기에 이른다.      전세계적인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대통령직을 이어나갔고, 때로는 여러 가지 미담기사를 채우며 연임한 2기 행정부를 마쳤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 지금은 전세계를 누비며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자선규모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클린턴 자선재단은 해마다 9월이 되면 세계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각계각층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거액의 모금활동을 펴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가 쓴 책 <나눔(Giving)>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 3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온갖 고뇌와 갈등 그리고 회개와 거듭남에 따른 결심이, 남을 돕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꿈을 실현하는 삶의 기회를 갖게 하는 데 여생을 바치겠노라는 진솔한 고백이 배어 있기도 하다.세계 최고 권좌의 유능한 인물과 지퍼게이트의 주인공이란 도무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 어색한 두 역할을 클린턴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1인 2역을 잘 연기해냈다. 그의 1인 2역을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하는 성격적 특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카소주의 작은 마을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을 견디며 힘겨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여러 가지 모순적인 모습들을 때때로 서로 다른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여기며 지내온 것이다 ‘구획화’라는 방어기제는 자신의 내면에 공존하기 어려운 모순되는 특징들 사이에 구획(벽)을 세워 그들을 함께 유지하는 형태이다, 다중인격의 방어기제인 ‘해리’가 자기 내면의 서로 모순되는 마음들로 결국 스스로를 둘로 쪼개버리는 양상이라면, 구획화는 격벽으로 나뉘어진 사무실처럼 억지로 그들을 한 인격체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은 ‘공적인 나’이고, 인턴과의 일은 ‘사생활의 나’라며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화는 그 사람의 학력, 종교, 인격과 도덕성, 사회적 신분 등과전 거의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특별히 악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일탈이 주는 짜릿함과 쾌감’이 조성될만한 환경이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합리화와 변명으로 무마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순간의 실수는 평생 치명적으로 남는다.      내 안에 사는 23명의 사람들 다중인격의 극단적인 유형을 묘사한 것으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를 들 수 있다.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과 그에게 납치된 소녀 ‘케이시’ 사이의 사건들을 담은 스릴러 영화이다. 주인공 ‘케빈’은 다중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23개의 인격이 있으며 인격들은 서로 완벽히 구획화 되어 존재한다. 성별, 성격, 나이, 기억,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다른 23명의 타인들이 케빈의 안에 공존하고 있다. 인격들은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들은 협의를 통해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장악권인 ‘불빛’의 사용자를 정한다. 어느 날 모종의 이유로 ‘불빛’의 권한이 인격들 중에서도 가장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3명의 인격에 의해 장악되고 만다. 3명의 인격들은 숨겨진 24번째 인격 ‘비스트’의 숭배자들로, 그들은 초월적인 힘과 파괴력을 지닌 ‘비스트’가 케빈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인격이 되길 원한다. 비스트를 위한 제물로 그들은 3명의 소녀들을 납치하게 된다. 케빈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소녀들과 그런 그녀들을 막는 케빈의 인격들, 그리고 그녀들을 도우려는 또 다른 케빈의 인격들 사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영화는 전개된다.주인공 케빈의 다중인격 장애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해리 정체성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편람인 DSM-Ⅴ에서는 해리 정체성 장애를 두 개 이상의 인격 상태, 반복되는 기억상실, 간헐적인 기능적 신경적 증상 등으로 정의한다. 또한, 진단 기준으로 “인격이 바뀌었을 때의 방대한 기억으로 중요한 개인 정보를 회상할 수 없는 상태(일반적 건망증으로 설명되지 않는)에 있을 것”과 “술에 취했을 때의 의식 상실과 같은 행동 직접적인 물질의 생리학적 영향 또는 일반적인 질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함”을 제시한다.이러한 해리 정체성 장애는 아동기에 경험한 극도의 스트레스나 외상이 장애의 주원인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해리 정체성 환자 중 90%는 어린 시절에 육체적, 성적으로 심한 학대를 당했거나 방치되었으며, 학대를 받지 않았더라도 부모의 상실 등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방어가 장애 증상을 낳는다고 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인격을 키워, 스스로를 현실과 트라우마 기억으로부터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음은 전쟁터<23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빌리 밀리건’은 1977년 성폭행 용의자로 체포되었다가 다중인격의 존재를 인정받고 무죄를 선고받은 인물이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그의 안에는 무려 24개의 인격이 존재했다. 10개의 초기 인격과 이후 발견된 14개의 인격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나이와 성별, 성격도 모두 달랐다.그러나 다중 인격이 정말 발현됐는지, 발현됐다고 해도 그러한 이유로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지 등 여러 의문이 생긴다. 때문에 빌리 밀리건의 사례는 아직까지도 세간에 큰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해리 정체성 장애 환자들의 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이슈는 뜨거운 논의 주제이다. 보고에 따르면, 해리 정체성 장애 환자의 대체 인격이 요정, 신, 악마 등의 초자연적 대상인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고 한다. 트라우마를 이겨낼 만한, 보다 강한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리 정체성 장애는 문화권에 따라 ‘빙의’와 같은 오컬트(occult)적 요소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중 인격은 더 이상 미스테리나 미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치료 가능한 ‘마음의 병’이다. 합리화된 치부, 범죄는 점차 곪아갈 뿐이다. 하이드 씨의 악행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 결국 지킬 박사를 집어삼켰듯이, 언제까지나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얼굴을 못 본 체하고 외면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전쟁에서 악이 승리하면 하이드 씨가 될 것이고, 선이 승리하면 비킬 박사가 될 것이다. 이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07/06/2022

내가 최고?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이런 생각과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과장된 표현(혹은 ‘허풍’)을 거리낌 없이 즐기고, 작은 일을 뻥튀기하여 확대재생산하며, 극적(혹은 극단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소위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시대(자기애적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자기의 품격을 높이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각광받는, 본격적인 나르시시즘의 시대이다.그렇다면 이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이전에는 나 개인보다는 가문의 명예, 조직의 가치, 집단의 목표와 그 안에서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었던 시대이다. 그래서 개인의 주장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나 기준을 존중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 영락없이 ‘꼰대 대열’에 들어서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던 시대’에서 ‘모난 돌도 그 개성을 인정받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이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변화이며, 추세이다. 또한 이와 같은 개성과 개인성을 존중하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건강하고 성숙한 변화 방향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실이다!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인 것이다.문제는 이런 개인 중심의 시대에 ‘내가 최고’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기애 인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 어디를 가도, 어느 집단이나 조직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매일 만나야 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가 이런 자기애적인 인격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 한번 살펴보시라. 이런 사람이 없는지!자신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적인 말을 자주하는 사람.성공과 권력, 아름다움, 이상적인 비현실적인 상에 집착하는 사람.지나친 존경을 주변에 요구하는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늘 자신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타인을 질투하거나 타인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성취나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여 말한다. 딱히 이룬 것도 없음에도 자신은 “급이 달라. 결이 달라” “수준이 달라” “언젠가 난 큰 인물이 될 거야!”하며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고 인식되기를 바란다. 왕자병, 공주병누군가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같은 직장에서 주목받고 매력적인 사람에게 당당하게 접근하면서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특별히 내가 고백한다” “내가 큰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바쁜데도, 너니까 특별히 마음이 간다”는 식이다. 문제는 정작 상대방은 전혀 관심도 없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특별히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지?”라는 스탠스로 상대방을 대한다. 이들은 ‘소중한 자신’이 거절 받는 상황은 애초에 상정조차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정중하게 거절해도 눈치도 못 채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정색을 하며 불쾌감을 표시하면 그제야 억지로 억눌러왔던 무의식적 불안,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닐까?’ ‘내가 매력 없는 건 아닐까?’하는 현실적인 생각에 부딪힌다. 그러면서 가냘픈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면서 또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자 애를 쓴다. “네가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일부러 이야기 안했는데, 나 능력 있어. 우리 집 잘 살아. 이러이러한 사업 구상하고 있어” 등등 자신을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연극을 한다. 이런 애틋한 노력에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이제는 자신의 열등감과 상처입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과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한다. “네가 뭔데 날 거부해? 날 무시해?”로 시작해서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분명히 말 안했어? 나를 보고 간을 잰 거야?”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기도 한다. 그 다음엔 합리화과정으로 넘어간다. “어차피 저 사람이랑은 오래 못갔을 거야. 알고 보니 성격도 별로야!”하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이처럼 자존감이 과하게 높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해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을 가진 나르시시스트들(한국말로는 ‘왕자병’ ‘공주병’이라고 -은 같이 어울리기 상당히 거북한 사람들이다. 주변 삶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저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토록 짜증나는 성격을 갖게 된 걸까?’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발전되어 왔다. 심리학자 코헛(Heinz Kohut)은 발달단계의 문제, 특히 부모와의 공감 실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애성 인격성향인 사람들은 부모에게 끊임없이 칭찬받고 과시하고자 하는 소아의 단계에 고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로 브루멜만(Eddie Brummelman)은 이와 반대로 부모로부터 성장기 동안 지속적으로 과대평가를 받은 아이들은 나르시시스트 어른으로 자랄 확률이 뚜렷이 높았다고 한다. 여기서 ‘과대평가’는 아이에게 “너는 또래 친구들보다 뛰어나고,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는 평가를 아이의 능력이나 실제 행동에 상관없이 내리는 걸 뜻한다. 아이는 점점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의 핵심이다. 기존 정신분석학에서는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나르시시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나르시시즘 대신 적당한 자존감(self-esteem)을 길러주는 방법은 왕자병, 공주병 아이를 길러내는 과대평가 교육과는 다르다. 애정(affection)과 공감(appreciation)으로 키워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고착된 문제와 남 탓사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본능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들키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조율해가는 세련되고 성숙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자기애적 인격성향은 노골적으로 이런 욕구를 표현하거나 과도하게 고착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에 대한 과도한 이미지, 이상화된 자기상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과 받아들일 수 없는 나약한 부분들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즉 쉽게 ‘남 탓’을 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이 있고(물론 왜곡된 믿음이긴 하지만), 무척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너무 소중해.” “나는 인정받아 마땅하고, 성공할 거야!”신기한 것은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인격성향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비호감 그룹도 아니다. ‘저 사람은 잘난 척하고, 허세를 떨면서 푼수같이 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한결같아. 큰 사기꾼도 아니고, 엄청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며 의외로 크게 미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예측가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허세나 과장된 말에 태클만 걸지 않으면 이들은 딱히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특히 이들은 직장에서 모임과 분위기를 주도하고,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할 때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나르시시스트라면 무시하거나 핀잔을 주면 그만이겠지만, 상사일 경우는 때로는 적절이 맞춰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1. 직면시키지 말 것이들은 누구보다 공감을 원한다(반사회적 인격성향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상사가 말하는 허세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말고, 상사의 열등감이나 외로움에 집중해야 한다. 눈치 없이 사실을 거론하며, “에이 부장님, 그건 못 믿겠는데요? 그거 진짜에요?”라는 태클을 걸면, 아마도 미운털 1순위의 부하직원이 되어,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나르시스트들은 자존감이 높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열등감이 깊다. 누구보다 수치심에 약하고, 민감해서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부끄럽고 ‘쪽팔린’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주변에서도 쉽게 그걸 눈치챌 수 있지만, 본인은 끝까지 모른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사실을 직고한 이들은 모두 벌을 받고 왕국에서 쫓겨났다. 물론 끝까지 거짓말로 임금님께 아부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이들에게 직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오직 이들 자신이다. 최소한의 인식과 통찰이 생기고 나서야 이들은 타인의 쓴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물론 그 타이밍은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걸린다.2. 들어주기만 해도 평균 이상이들은 타인의 진정한 지지와 관심을 받기 어렵다. 어린 시절, 도무지 끝날 것같지 않던 어른들의 잔소리를 누가 큰 관심을 갖고 감동하여 오래오래 기억하며 인생의 길잡이로 쓴단 말인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당연히 이들의 껍데기뿐인 허세와 과시는 공감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다.      이들의 자기과시적인 자랑과 허세에 대해 이들과 다투지 말고, 이들의 내면의 아픔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성숙함을 까발리지 말고 인정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들은 자신의 언행이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에도 퍽 민감하다. 영혼 없는 칭찬이나 아부는 금방 눈치 채고 거부반응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들의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외롭다. 따라서 이들의 말에 약간의 인내심만 가지고 최소한의 반응과 비언어적인 지지적 추임새(눈 맞춤, 고개 끄덕임 등)만 넣어줘도 그 효과는 엄청 크다.3. 그의 다른 점을 칭찬하기상사가 “나 대학 때 춤으로 날렸어! 인기 짱이었어!”라고 허세를 부릴 때, 누가 봐도 그럴 확률은 병아리 눈물 짜기 정도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면,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부장님은 사실 목소리가 좋아요” 라든가, “일 처리가 정말 깔끔해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시잖아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하세요” 등등 사실에 근거한 다른 점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다 “부장님은 일하실 때 보면 열정이 대단하세요! 항상 좋게 생각하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칭찬으로 되돌려주는 센스까지 가졌다면 어떠한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상호 간에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자신에게도 남들 못지않은, 뛰어난 장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에 대해 진짜 관심과 인정을 받는다면 그 상사는 더 이상 쓸데없는 허영과 과시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의 열등감을 지적하고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짓 이상화’된 자신에게서 실제의 관심을 전환해주는 것이다. 이럴 때 그 상사는 부하의 신중한 배려에 오히려 감사할 것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생각은 내가 누구보다 잘났다,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 부시만(Brad Bushman)

27/05/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