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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이야기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20년 친구 사이인 뉴질랜드와 호주 남자 3명이 돈을 모아 산 로또가 1,700만 뉴질랜드 달러(약 134억원)에 당첨되자 배분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뉴질랜드의 한 신문이 5일 보도했다. 자료에 따르면 2008년 7월 뉴질랜드 혹스베이 출신의 유진 제임스 테 파이리는 개리 존 갈릭, 브렛 프레티 등 호주 친구들과 함께 호주 로또 복권을 샀다. 테 파이리는 로또 복권 추첨이 있는 날 3명의 친구들이 440달러를 모아 프레티의 집에서 즉석 파티를 하면서 모은 돈에서 34달러를 떼내 복권을 사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복권은 1,700만 달러에 당첨됐고 프레티가 2명의 친구에게 선물을 몇 개 사주는 것으로 입을 씻으려하자 싸움이 벌어졌다. 프레티는 친구들에게 그들의 몫을 충분히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친구들은 프레티가 너무 탐욕스럽다며 돈을 더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테 파이리와 갈릭은 법원에 고소장을 내 파티를 위해 모은 돈으로 복권을 산 것은 일종의 ‘합작투자협정’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이 당첨금을 3분의 1인 560만 달러씩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파티비용을 낸 액수에 따라 상금을 배분할 경우 돈을 가장 많이 낸 테 파이리가상금의 54.41%인 900만 달러 정도를 갖게 되고 갈릭은 23.53%, 프레티는 22.06%를 자기 몫으로 챙기게 된다. 이들이 법정 싸움으로 들인 법률 비용은 2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로또 때문에 20년 우정도 법정 싸움으로 끝날 것으로 사료된다.  인생역전의 역설로또 1등에 당첨돼 인생역전에 성공했던 50대 영국 남성이 돈 걱정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해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로또로 인생역전에 성공했지만 5년 만에 당첨금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전직 제빵사였던 케이스 고우 씨는 5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됐다. 하지만 당첨금을 가지고 경마, 축구경기 내기, 음주 등을 통해 모두 날렸다. 그는 마침내 동전 하나 없이 돈을 써버렸다며 결국 돈 걱정으로 시름하다 심장마비에 걸렸다고 한다. 이는 돈만 있으면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확천금을 좇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제빵 일을 하던 고우는 2005년 6월 900만 파운드(약 156억원)에 달하는 로또 잭팟에 당첨된 후 대부분의 돈을 경마, 자동차레이스 등으로 탕진했고, 수중에 단 한 푼의 돈도 남기지 않은 채, 얼마 전 슈롭샤이어주 텔포트의 프린세스로열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돈을 주체할 수 없었던 고우는 로또 당첨 2년 후 아내와 이혼, 그때부터 폭음을 시작하는 등 건강마저 급격히 나빠졌다. 일찌감치 돈을 다 날려버린 그는 이혼 후 조카 집에 얹혀살며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냈다. 그는 지난해 “내 인생은 눈부셨지만 로또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인간을 슬프게 만드는 돈이 무슨 소용이냐? 누군가 신문가판대로 다가간다면 나는 절대 로또티켓 만은 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피땀 흘려 번다면 수백 년은 족히 걸릴만한 그 어마어마한 돈을 그토록 쉽게 흥청망청 유흥비로 사치품목 구입으로 탕진하고 말까?  하우스 머니 효과한국에는 설날에 일가친척들에게 세배를 올리면 세뱃돈을 받는 문화가 있다. 세뱃돈은 새해 첫날에 받는 돈이기에 기분 좋게 쓰라는 의미로 신권으로 주고받곤 한다. 그러나 분명 거액의 돈을 세뱃돈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텅 비어있는 지갑을 마주한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평소에 돈을 아껴 쓴다며 소액의 배달비, 배송비 등에는 돈을 아까워하면서, 설날에 받은 거액의 세뱃돈은 쉽게 써버리는 것일까?기대하지 않았던 이익을 얻을 때 전보다 더 위험을 감수하려는 현상인 ‘하우스 머니 효과’(House Money Effect)로 이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존 노프싱어 교수가 실시한 연구에서 도박꾼들이 큰 예상치 못하게 큰돈을 땄을 때 다시 그 거금을 올인하여 배팅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존 노프싱어 교수가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전 던지기 게임’으로 돈을 잃은 사람은 41%만 다시 배팅에 참여했지만, 돈을 얻은 사람은 77%가 다시 배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즉, 쉽게 얻은 공돈은 원래 자신의 돈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돈에 대한 위험 기피 성향이 낮아져서 돈을 쉽게 쓰게 되는 것이다.사람들은 같은 액수의 돈이어도 자신의 심리나 상황에 따라 그 돈의 가치를 더 크거나 작게 느끼곤 한다. 자신이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알바비라면 자신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라 생각해 쉽게 쓰지 못하지만, 설날에 친척에게 받은 세뱃돈은 자신이 아무 노력 없이 받은 공돈이라고 생각해서 그 돈을 쉽게 써도 되는 돈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 돈을 막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인간은 본능적으로 ‘손실회피 경향’이 있기에, 기존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도박을 한다면 단번에 거금을 올인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공돈, 즉 ‘내 돈이 아니다’라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면, 그 돈을 막 써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돈을 공격적이고 위험한 투자로 쉽게 사용한다. 벼락 맞기보다 낮은 확률그렇다면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있는가? 불행히도 그 가능성은 814만 분의 일, 이 확률은 매주 복권을 사서 일등에 당첨되려면 2억 년 걸리는 확률이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은 확률이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난 틀림없이 될 거다’란 생각으로 싱글벙글한다. 바늘귀보다 더 좁은 그 확률에 들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어느 해 연말, 한 여성 포털 사이트가 네티즌 2,367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원’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72%가 로또 당첨을 소원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로또’ 열풍에 휩싸여 있다. 한번 대박으로 행운을 잡자는 심리이다. 로또 복권을 처음 시작한 나라가 이태리로, 이태리 말 ‘로또’는 행운(Lucky)란 뜻이다. 옛날 네로 때부터 복권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은 1947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이 갈 돈이 없어 복권을 발행해 선수들이 올림픽에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 복권이 만들어질 때는 이런 소박한 목적도 있었다.그런데 이 로또 열풍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방에 확!’하는 한탕주의에 빠져 로또 당첨으로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으려 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외국 근로자들도 한국에서 번 돈을 로또에 돈을 걸고 있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20대 남자 28.3%, 30대 50% 이상, 49.5%, 40대 46.2%로 천만 명 넘는 인구가 로또에 중독되어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같이 일등에 당첨된다는 확신(사실은 착각) 속에서 그 당첨된 상금 60억, 70억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하며, 잠을 설친다고 한다. 어디로 이사 갈까, 어떤 집을 살까, 차는 무엇으로 바꿀까... 이런 흐뭇한 착각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옷은 어디 가서 사입고, 여행은 어디로 갈까 하룻밤에도 지구를 다섯 바퀴 이상 돈다. 이런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전국민의 19%라고 한다. 로또에 모든 것을 다 배팅하다가 죽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어느 30대 중국집 종업원은 인생역전을 꿈꾸며 3천만 원어치나 복권을 샀다가 몽땅 낙첨되자 목숨을 끊었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20대 청년은 통장 잔고 전액인 270만원을 모두 틀어 복권을 산 뒤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부산에 한 남자는 이른 아침에 지하철 철길로 뛰어 들며 “로또!”하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한다. 요행히 로또에 당첨됐지만 풍족함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다. 3년 전 포항 사는 어떤 사람은 우연히 구입한 로또가 2등에 당첨된 것을 확인한 후 은행으로 달려가 4,500만원의 돈을 탔다. 그런데 그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던 이 사람은 갑자기 죽었다. 로또에 당첨된 기쁨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술을 마신 후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도박꾼의 오류1913년 8월 18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호화로운 보자르 카지노가 게이머들의 탄식이 쏟아지는 가운데 술렁이기 시작했다. 룰렛 게임이 벌어지는 테이블에서 구슬이 20번이나 연거푸 검은색으로 떨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27번째에 가서야 구슬은 붉은색에 멈추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대다수 게이머가 수십억 원을 잘못 배팅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들은 파산하고 말았다.몬테카를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 믿을 수 없는 일 덕분에 ‘몬테카를로의 오류’(Monte Carlo fallacy)라는 말이 생겨났다. 정기적 개연성에 대한 원리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다. 그 결과 과거에 관찰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미래에 대해 예상하는 잘못을 범하는 걸 말한다. ‘도박사(혹은 도바꾼)의 오류’(Gambler’s error)라고 한다. 같은 뜻으로, 기회의 숙성 오류(Fallacy of the maturity of chances)라는 말도 있다.“그동안 계속 잃었으니 이번엔 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평소 승률이 50%라면 100번을 연이어 돈을 읽고 난 다음이라도, 실제로 101번째 이길 확률은 여전히 50%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말한다.카지노와 같은 도박장에서는 고객들이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면 빠질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그래서 이들은 건물 구조, 실내 장식, 운영 방식 등을 통해 분위기를 들뜨고 흥분되게끔 몰아감으로써 고객들이 환상에 빠지게끔 유도한다. 명심하시라. 카지노는 ‘도박사의 오류’에 끝까지 붙들어 두기 위해 다음과 같은 그들의 교묘한 운영 원칙들이 있음을!카지노 설계 시 창문은 만들지 마라. 빛이나 소리가 외부에서 들어올 수 없는, 철저히 밀폐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카지노에 흐르는 공기는 항상 일정한 온도와 산소 농도를 유지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변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객이 집에 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시간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시계도 없어야 한다. 실내 장식은 가능한 한 빨간색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 열광과 자극을 위해서다. 웨이트리스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술은 공짜로 제공하라. 고객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님이 고독감을 느끼게끔 하라. 자리를 뜨지 말고 계속 도박에 몰두하게끔 하기 위해서다.도박사의 오류는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자주 저질러지는 오류 중의 하나로, 특히 주식 투자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어제와 오늘 떨어진 주식은 확률적으로 내일 오를 것이라고 믿지만, 오늘 떨어지면 내일도 떨어질 수 있는 게 주식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가가 왜 오르는지, 무엇 때문에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찾아 대응하기보다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일부 사람들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복권’을 계속 사는 이유도 물론 ‘통제의 환상’ 때문이다. 사실 많은 도박은 ‘그날의 운’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에 도박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운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곧잘 빠져든다. 실험 결과,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에서도 참여자들은 자신과 겨루는 상대방의 인상에 의해 거는 돈의 액수를 달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카드를 뒤집어서 둘 중에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을 하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말쑥하고 날카롭게 보이면 걸 수 있는 돈 25달러 중 9.28달러를, 상대방이 멍청해 보이면 16.72달러를 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제비뽑기를 할 때에도 자신이 직접 뽑은 것과 다른 사람이 뽑아서 준 걸 받았을 때에 각기 당첨 확률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자신이 직접 뽑은 것에 훨씬 높은 당첨 확률을 부여했다.인생역전 불변의 법칙왜 현대사회는 복권, 카지노로 대표되는 ‘도박산업’이 흥왕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의 한국 사회는 불안한 사회라는 서글픈 반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느끼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면 더 이상 노력할 동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과는 무관한 ‘팔자’나 ‘운명’으로 돌리는 ‘운명론자’가 된다. 사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미리 알아보려는 노력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자신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미래가 자신이 꿈꾸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또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일의 삶은 이런 ‘실존적’ 불안에 대처하는 노력의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방(혹은 한탕)의 우상’은 다양한 종류의 도박이나 투기도 덩달아 성행하게 한다. 그러나 인생역전 불변의 법칙은 ‘성실한 노력’에 있다. 이 법칙에 예외는 거의 없다. “아무리 머리가 아둔한 사람도 10년만 노력하면 한 분야의 유식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S. 스마일즈) 했고, 짐론은 “당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일주일에 책 한권씩을 읽는다면 10년 후에 당신 분야에서 최상위 1%에 해당되는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오늘의 성실한 공부가 내일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엄격한 법칙이다. 템플대학의 러셀 콘웰 박사가 4천명의 백만장자를 면밀하게 분석해보니, 이들에게 세 가지 특징이 발견되었다. 첫째, 뚜렷한 비전과 목적을 갖고, 그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살았다. 둘째, 만사에 열심히, 성실히 부지런했다.셋째,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거나 원망하거나 핑계대지 않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성경의 법칙도 동일하다. 게으른 사람에게 일하라고 하니 “길에 (날 잡아먹는)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잠언 26:13)하면서, 벌건 대낮에 나타나지도 않는 사자를 핑계를 대며 위험해서 못하겠다고 하는 한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2/06/2022
Rhodes NSW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이 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항상 선택(Choice)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하루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삶들은 대략 하루에 150번 정도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출근하면서 옷은 어떤 것을 입을까? 어떤 신을 신을까? 약속은 어디에서 할까? 특히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같은 고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나에도 수천 번의 고민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오죽하면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책까지 나왔을까? 이 책에서는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즉 슈퍼마켓 진열대 A의 시식대에는 잼 6종을 놓고, 다른 쪽 진열대인 B의 시식대에는 잼 24종을 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시식대에 놓인 잼이 많은 B의 쪽으로 사람이 더 몰렸다.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맛본 잼의 개수는 A, B 둘 다 서너 개 정도로 비슷했다. 그런데 실제로 잼을 구매한 비율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시식대에 진열된 잼이 적었던 A에서는 시식자들 중 약 30%가 잼을 구입했지만, 진열된 잼이 많았던 B에서는 겨우 3%의 사람만이 잼을 구입했다. 이 책의 저자 배리 슈워츠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선택 안이 많으면 소비자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탓에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그래서 아예 결정을 안 하기로 결정하고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이렇듯 선택의 폭이 넓어서 선택하는데 더 어려운 과정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선택’하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아예 선택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물론 다양한 선택 앞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비 시장에서는 선택을 어려워하고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비자의 취향, 성격, 연령 등을 분석한 뒤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해 크게 각광받고 있다. 빵부터 속 재료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브랜드에서는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어울리는 조합 몇 가지를 선정해 이른바 ‘꿀 조합 샌드위치’를 광고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널려있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능력이었는데, 요즘은 선택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 타인의 선택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대신해 BJ가 선택을 대신 해주는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끈다. ‘전문가가 권하는 7대 여행지’ 같은 식으로, 상품 소비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이 하나의 마케팅 패턴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큐레이터 같은 남이 대신 선택해줄 순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작은 것 하나 결정하는데도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가 하면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까지 소환할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훗날 이 행동은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되었다. ‘햄릿 증후군’은 햄릿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말을 ‘결정 장애’(혹은 ‘선택 장애’)라는 용어로 이미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선택의 어려움 결정장애는 의학적으로 질환이 아니다.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해 마치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사실 결정장애는 ‘사회 심리학적 현상’이다. 심리학자들은 결정장애를 ‘지연행동’(procrastination)으로 정의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기회에 노출돼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서구 심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메이비족’(Generation Maybe)이라 부른다. 결정장애는 물건을 살 때나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더욱 심해진다. 결정 장애의 원인은 다양하다. 인류사를 통틀어 경제 사회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이 결정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이유는 뭘까? 첫째, 과거보다 너무 많은 선택 기회가 주어진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과거에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선택하면 됐지만 현대에는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해결이 가능하게 됐다. 선택 기회가 너무 많아 역설적으로 결정을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어 선택의 폭이 필요 이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과잉기회’가 낳은 모순이 결정장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자기주도적 습관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나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결핍 없이 살았기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알아서 다 해준다. 아이가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보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부모가 알아서 결정을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과잉보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자녀는 결국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결정을 내려주는 것에 익숙해져 성인이 돼도 아주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둘째, 삶의 선택은 늘 어렵다. 특히 실패의 두려움으로 인해 선택을 피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기회가 많았다. 경제성장기였기에, 좋은 대학을 못 가거나 성적이 나빠도 취직 걱정을 덜 했다. 방황하느라 시기를 놓쳐도 공부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완전히 낙오되고 패자부활전은 점점 줄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셋째는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결정을 쉽게 못한다. 삶은 순간순간이 중요하고, 그 선택은 시험과는 다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때가 많다. 답을 고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고른다는 것은 각기 장단점이 존재하며 그 합의 비슷한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이사할 걸 두고 고심한다고 해서 정답과 오답을 나눌 수가 없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완벽하지 못한 결과를 얻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거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마음속에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혹은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다. 최선을 다했으나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의 상실감이 줄여 나머지 선택을 하지 않고, 시작도 하지 않고 남겨두려는 마음이다. 선택을 위하여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아닌 이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조차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아래 항목을 체크해 보시라   1. 메뉴를 선택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결정해준 메뉴를 따라 먹을 때가 많다.  2. 혼자서는 쇼핑하지 못한다.   3. 선택하는 것이 두렵고,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4. 다른 사람의 주장에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5. 선택에 고민이 생겨 SNS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6.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면, ‘글쎄, 잠시만, 잘 모르겠어’ 같은 모호한 말을 먼저 뱉는다. 이 6개의 항목 중 4개 이상의 증상을 보인다면, 심각한 결정장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정 장애를 개선하려면 스스로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떨쳐버리고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무덤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참고로만 하고 항상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다보면 사소한 ‘결정 장애’ 증상을 개선될 수 있다. 다음의 목록은 뉴질랜드판 에서 소개한 결정에 도움이 될 항목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찬찬히 정리하면서(기록하면 더 좋음) 생각을 전개한다면 좀 덜 고통스러운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1.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만한 중대한 문제인가부터 짚어본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코트를 입을지 점퍼를 입을지는 오래 고민할 문제가 아닌 매우 사소한 문제다.  2.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A가 아닌 B를 선택할 경우 무슨 일이 생기기에 망설이는지 그 두려움에 직면하는 게 필요하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3.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A와 B 각각을 선택할 경우 장단점을 적어본다. 선택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이다.  4. 데드라인은 언제인가? 한없이 생각을 질질 끌면 더욱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외부의 조건과는 별대로 40분, 또는 하루, 일주일과 같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기한을 설정한다.  5. 얼마나 이기적으로 생각하는가? 종종 의사결정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 등을 생각하거나, 그들의 조언을 고려하느라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주변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다.  6. 후회보다 더 큰 희망이 있다면? 지금은 좋은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내일이 되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선택이 가져올 기회는 무엇인지 적어보자. 오늘 당장 회사에 사표를 쓰는 게 내일 아침 ‘이불킥’을 하게 만들지 몰라도 또 다른 희망이 있지 않은가.선택에 박수를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이 마치 정답으로 이뤄져 있는 것만 같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영봉 높은 직장이 정답이고, 30대 중후반이 넘기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개성을 미리 재단하여 그 범위를 한정해버리고 있다. ‘완벽한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는 정답을 맞히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삶이 서너 가지 정답으로 뭉뚱그려지기엔 우리의 개성과 인격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백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만 개의 세계가 있다. 당연히 백만 개 이상의 선택이 발생할 것이다. 결정을 망설이고 미루는 것은 ‘정답이 있는 세상’과 ‘나만의 세상’과의 갈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는 것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이다.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 이후가 무척 중요해진다. 최선을 다해 그 길을 정답으로 일궈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어느 날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 선택을 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택했건 그 이후의 태도와 노력에 스스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완벽한 결정은 없다. 단지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믿어주고 거기에 온 힘을 쏟아 최고의 결정으로 만드는 일은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5/06/2022
Rhodes NSW

“그런 줄 몰랐다”100년도 훨씬 더 지난 1886년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극단적으로 분리된 자아의 선악이 공존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능하고 자비로운 의사인 주인공 지킬 박사는 명망이 높은 훌륭한 인품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밤이 되면 자신이 발명한 약물을 마시고, 내면의 ‘악(惡)’을 분리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자아 ‘하이드’로 변해 폭행과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낮에는 성자와 다름없는 존경받는 의사로, 밤에는 끔찍한 악마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렇게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채 한 몸 안에서 역설적인 동거를 어색하게 이어나간다.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인간 내면의 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더럽고 위험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정신역동이론가 융(Jung)은 이를 그림자(shadow)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밝으면 밝을수록 내면의 그림자는 짙어지기 마련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을 캐릭터화한 것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이다. 스스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인식했다 한들 인정하기 싫은 것이 그림자(shadow)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그러한 내면의 그림자가 튀어나와 현실의 자신을 바꿔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너무나 자주,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존경받는 종교인이나 교육자들이 평소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게 도덕적으로 추문에 휩싸여 추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관전평은 한결같다.“그가 그런 사람이었어?”“그 사람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실망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그런 인물에 대한 품평이 이루어진다. 그 품평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그렇게 존경받던 그 사람이 천하에 둘도 없는 몹쓸 사람으로 난도질되고 만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과거의 존경과 현재의 혐오를 어떤 함수관계에 있는가? 성경에도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1)고 했는데, 한 인격체 안에서 성인과 악마의 모습이 발현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안전지대는 없다 앞서 언급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한 사람이,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분리되어 한 몸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다중인격 장애’(정확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견디기 힘든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인격이 여러 개로 해체(혹은 해리)되는 질환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똑같이 한 인격체 안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때로는 각각의 인격에 따라 목소리와 말투, 자신의 이름과 언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 최고의 호황기를 대표하는 대통령 클린턴은 여러모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치명적인 흠결은 인턴과의 불륜관계 여과 없이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드러났다.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묘사된 그의 스캔들은 소위 ‘지퍼게이트’란 조롱을 받기에 이른다.      전세계적인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대통령직을 이어나갔고, 때로는 여러 가지 미담기사를 채우며 연임한 2기 행정부를 마쳤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 지금은 전세계를 누비며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자선규모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클린턴 자선재단은 해마다 9월이 되면 세계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각계각층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거액의 모금활동을 펴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가 쓴 책 <나눔(Giving)>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 3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온갖 고뇌와 갈등 그리고 회개와 거듭남에 따른 결심이, 남을 돕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꿈을 실현하는 삶의 기회를 갖게 하는 데 여생을 바치겠노라는 진솔한 고백이 배어 있기도 하다.세계 최고 권좌의 유능한 인물과 지퍼게이트의 주인공이란 도무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 어색한 두 역할을 클린턴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1인 2역을 잘 연기해냈다. 그의 1인 2역을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하는 성격적 특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카소주의 작은 마을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을 견디며 힘겨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여러 가지 모순적인 모습들을 때때로 서로 다른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여기며 지내온 것이다 ‘구획화’라는 방어기제는 자신의 내면에 공존하기 어려운 모순되는 특징들 사이에 구획(벽)을 세워 그들을 함께 유지하는 형태이다, 다중인격의 방어기제인 ‘해리’가 자기 내면의 서로 모순되는 마음들로 결국 스스로를 둘로 쪼개버리는 양상이라면, 구획화는 격벽으로 나뉘어진 사무실처럼 억지로 그들을 한 인격체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은 ‘공적인 나’이고, 인턴과의 일은 ‘사생활의 나’라며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이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화는 그 사람의 학력, 종교, 인격과 도덕성, 사회적 신분 등과전 거의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특별히 악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일탈이 주는 짜릿함과 쾌감’이 조성될만한 환경이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합리화와 변명으로 무마해보려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순간의 실수는 평생 치명적으로 남는다.      내 안에 사는 23명의 사람들 다중인격의 극단적인 유형을 묘사한 것으로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를 들 수 있다.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과 그에게 납치된 소녀 ‘케이시’ 사이의 사건들을 담은 스릴러 영화이다. 주인공 ‘케빈’은 다중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23개의 인격이 있으며 인격들은 서로 완벽히 구획화 되어 존재한다. 성별, 성격, 나이, 기억,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다른 23명의 타인들이 케빈의 안에 공존하고 있다. 인격들은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들은 협의를 통해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장악권인 ‘불빛’의 사용자를 정한다. 어느 날 모종의 이유로 ‘불빛’의 권한이 인격들 중에서도 가장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3명의 인격에 의해 장악되고 만다. 3명의 인격들은 숨겨진 24번째 인격 ‘비스트’의 숭배자들로, 그들은 초월적인 힘과 파괴력을 지닌 ‘비스트’가 케빈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인격이 되길 원한다. 비스트를 위한 제물로 그들은 3명의 소녀들을 납치하게 된다. 케빈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소녀들과 그런 그녀들을 막는 케빈의 인격들, 그리고 그녀들을 도우려는 또 다른 케빈의 인격들 사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영화는 전개된다.주인공 케빈의 다중인격 장애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해리 정체성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편람인 DSM-Ⅴ에서는 해리 정체성 장애를 두 개 이상의 인격 상태, 반복되는 기억상실, 간헐적인 기능적 신경적 증상 등으로 정의한다. 또한, 진단 기준으로 “인격이 바뀌었을 때의 방대한 기억으로 중요한 개인 정보를 회상할 수 없는 상태(일반적 건망증으로 설명되지 않는)에 있을 것”과 “술에 취했을 때의 의식 상실과 같은 행동 직접적인 물질의 생리학적 영향 또는 일반적인 질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함”을 제시한다.이러한 해리 정체성 장애는 아동기에 경험한 극도의 스트레스나 외상이 장애의 주원인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해리 정체성 환자 중 90%는 어린 시절에 육체적, 성적으로 심한 학대를 당했거나 방치되었으며, 학대를 받지 않았더라도 부모의 상실 등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방어가 장애 증상을 낳는다고 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인격을 키워, 스스로를 현실과 트라우마 기억으로부터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음은 전쟁터<23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빌리 밀리건’은 1977년 성폭행 용의자로 체포되었다가 다중인격의 존재를 인정받고 무죄를 선고받은 인물이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그의 안에는 무려 24개의 인격이 존재했다. 10개의 초기 인격과 이후 발견된 14개의 인격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나이와 성별, 성격도 모두 달랐다.그러나 다중 인격이 정말 발현됐는지, 발현됐다고 해도 그러한 이유로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지 등 여러 의문이 생긴다. 때문에 빌리 밀리건의 사례는 아직까지도 세간에 큰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해리 정체성 장애 환자들의 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이슈는 뜨거운 논의 주제이다. 보고에 따르면, 해리 정체성 장애 환자의 대체 인격이 요정, 신, 악마 등의 초자연적 대상인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고 한다. 트라우마를 이겨낼 만한, 보다 강한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리 정체성 장애는 문화권에 따라 ‘빙의’와 같은 오컬트(occult)적 요소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중 인격은 더 이상 미스테리나 미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치료 가능한 ‘마음의 병’이다. 합리화된 치부, 범죄는 점차 곪아갈 뿐이다. 하이드 씨의 악행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 결국 지킬 박사를 집어삼켰듯이, 언제까지나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얼굴을 못 본 체하고 외면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전쟁에서 악이 승리하면 하이드 씨가 될 것이고, 선이 승리하면 비킬 박사가 될 것이다. 이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07/06/2022
Rhodes NSW

내가 최고?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이런 생각과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과장된 표현(혹은 ‘허풍’)을 거리낌 없이 즐기고, 작은 일을 뻥튀기하여 확대재생산하며, 극적(혹은 극단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소위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시대(자기애적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자기의 품격을 높이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각광받는, 본격적인 나르시시즘의 시대이다.그렇다면 이전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이전에는 나 개인보다는 가문의 명예, 조직의 가치, 집단의 목표와 그 안에서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었던 시대이다. 그래서 개인의 주장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나 기준을 존중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 영락없이 ‘꼰대 대열’에 들어서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던 시대’에서 ‘모난 돌도 그 개성을 인정받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이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변화이며, 추세이다. 또한 이와 같은 개성과 개인성을 존중하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건강하고 성숙한 변화 방향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실이다!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인 것이다.문제는 이런 개인 중심의 시대에 ‘내가 최고’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기애 인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 어디를 가도, 어느 집단이나 조직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매일 만나야 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가 이런 자기애적인 인격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 한번 살펴보시라. 이런 사람이 없는지!자신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적인 말을 자주하는 사람.성공과 권력, 아름다움, 이상적인 비현실적인 상에 집착하는 사람.지나친 존경을 주변에 요구하는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늘 자신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타인을 질투하거나 타인이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성취나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여 말한다. 딱히 이룬 것도 없음에도 자신은 “급이 달라. 결이 달라” “수준이 달라” “언젠가 난 큰 인물이 될 거야!”하며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고 인식되기를 바란다. 왕자병, 공주병누군가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같은 직장에서 주목받고 매력적인 사람에게 당당하게 접근하면서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특별히 내가 고백한다” “내가 큰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바쁜데도, 너니까 특별히 마음이 간다”는 식이다. 문제는 정작 상대방은 전혀 관심도 없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특별히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지?”라는 스탠스로 상대방을 대한다. 이들은 ‘소중한 자신’이 거절 받는 상황은 애초에 상정조차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정중하게 거절해도 눈치도 못 채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정색을 하며 불쾌감을 표시하면 그제야 억지로 억눌러왔던 무의식적 불안,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닐까?’ ‘내가 매력 없는 건 아닐까?’하는 현실적인 생각에 부딪힌다. 그러면서 가냘픈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면서 또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자 애를 쓴다. “네가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일부러 이야기 안했는데, 나 능력 있어. 우리 집 잘 살아. 이러이러한 사업 구상하고 있어” 등등 자신을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연극을 한다. 이런 애틋한 노력에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이제는 자신의 열등감과 상처입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과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한다. “네가 뭔데 날 거부해? 날 무시해?”로 시작해서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분명히 말 안했어? 나를 보고 간을 잰 거야?”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기도 한다. 그 다음엔 합리화과정으로 넘어간다. “어차피 저 사람이랑은 오래 못갔을 거야. 알고 보니 성격도 별로야!”하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이처럼 자존감이 과하게 높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해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을 가진 나르시시스트들(한국말로는 ‘왕자병’ ‘공주병’이라고 -은 같이 어울리기 상당히 거북한 사람들이다. 주변 삶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저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토록 짜증나는 성격을 갖게 된 걸까?’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발전되어 왔다. 심리학자 코헛(Heinz Kohut)은 발달단계의 문제, 특히 부모와의 공감 실패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애성 인격성향인 사람들은 부모에게 끊임없이 칭찬받고 과시하고자 하는 소아의 단계에 고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로 브루멜만(Eddie Brummelman)은 이와 반대로 부모로부터 성장기 동안 지속적으로 과대평가를 받은 아이들은 나르시시스트 어른으로 자랄 확률이 뚜렷이 높았다고 한다. 여기서 ‘과대평가’는 아이에게 “너는 또래 친구들보다 뛰어나고,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는 평가를 아이의 능력이나 실제 행동에 상관없이 내리는 걸 뜻한다. 아이는 점점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의 핵심이다. 기존 정신분석학에서는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나르시시스트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나르시시즘 대신 적당한 자존감(self-esteem)을 길러주는 방법은 왕자병, 공주병 아이를 길러내는 과대평가 교육과는 다르다. 애정(affection)과 공감(appreciation)으로 키워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고착된 문제와 남 탓사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본능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들키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조율해가는 세련되고 성숙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자기애적 인격성향은 노골적으로 이런 욕구를 표현하거나 과도하게 고착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에 대한 과도한 이미지, 이상화된 자기상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과 받아들일 수 없는 나약한 부분들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즉 쉽게 ‘남 탓’을 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이 있고(물론 왜곡된 믿음이긴 하지만), 무척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너무 소중해.” “나는 인정받아 마땅하고, 성공할 거야!”신기한 것은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인격성향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비호감 그룹도 아니다. ‘저 사람은 잘난 척하고, 허세를 떨면서 푼수같이 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한결같아. 큰 사기꾼도 아니고, 엄청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며 의외로 크게 미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예측가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허세나 과장된 말에 태클만 걸지 않으면 이들은 딱히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특히 이들은 직장에서 모임과 분위기를 주도하고,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할 때 윤활유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나르시시스트라면 무시하거나 핀잔을 주면 그만이겠지만, 상사일 경우는 때로는 적절이 맞춰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1. 직면시키지 말 것이들은 누구보다 공감을 원한다(반사회적 인격성향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상사가 말하는 허세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말고, 상사의 열등감이나 외로움에 집중해야 한다. 눈치 없이 사실을 거론하며, “에이 부장님, 그건 못 믿겠는데요? 그거 진짜에요?”라는 태클을 걸면, 아마도 미운털 1순위의 부하직원이 되어,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나르시스트들은 자존감이 높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열등감이 깊다. 누구보다 수치심에 약하고, 민감해서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부끄럽고 ‘쪽팔린’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주변에서도 쉽게 그걸 눈치챌 수 있지만, 본인은 끝까지 모른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사실을 직고한 이들은 모두 벌을 받고 왕국에서 쫓겨났다. 물론 끝까지 거짓말로 임금님께 아부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이들에게 직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오직 이들 자신이다. 최소한의 인식과 통찰이 생기고 나서야 이들은 타인의 쓴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물론 그 타이밍은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걸린다.2. 들어주기만 해도 평균 이상이들은 타인의 진정한 지지와 관심을 받기 어렵다. 어린 시절, 도무지 끝날 것같지 않던 어른들의 잔소리를 누가 큰 관심을 갖고 감동하여 오래오래 기억하며 인생의 길잡이로 쓴단 말인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당연히 이들의 껍데기뿐인 허세와 과시는 공감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다.      이들의 자기과시적인 자랑과 허세에 대해 이들과 다투지 말고, 이들의 내면의 아픔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성숙함을 까발리지 말고 인정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들은 자신의 언행이 극적이고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에도 퍽 민감하다. 영혼 없는 칭찬이나 아부는 금방 눈치 채고 거부반응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들의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외롭다. 따라서 이들의 말에 약간의 인내심만 가지고 최소한의 반응과 비언어적인 지지적 추임새(눈 맞춤, 고개 끄덕임 등)만 넣어줘도 그 효과는 엄청 크다.3. 그의 다른 점을 칭찬하기상사가 “나 대학 때 춤으로 날렸어! 인기 짱이었어!”라고 허세를 부릴 때, 누가 봐도 그럴 확률은 병아리 눈물 짜기 정도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면,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부장님은 사실 목소리가 좋아요” 라든가, “일 처리가 정말 깔끔해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으시잖아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하세요” 등등 사실에 근거한 다른 점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다 “부장님은 일하실 때 보면 열정이 대단하세요! 항상 좋게 생각하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칭찬으로 되돌려주는 센스까지 가졌다면 어떠한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상호 간에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자신에게도 남들 못지않은, 뛰어난 장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에 대해 진짜 관심과 인정을 받는다면 그 상사는 더 이상 쓸데없는 허영과 과시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의 열등감을 지적하고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짓 이상화’된 자신에게서 실제의 관심을 전환해주는 것이다. 이럴 때 그 상사는 부하의 신중한 배려에 오히려 감사할 것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생각은 내가 누구보다 잘났다,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 부시만(Brad Bushman)

27/05/2022
Rhodes NSW

신데렐라 내러티브너무도 착한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집안을 차지한 계모는 여왕처럼 군림하며 온갖 구박하며 힘든 가사 노동을 떠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이 술렁이는 큰 파티(잔치)가 열리고, 주인공은 특별한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비루함을 탈피한다. 그러나 잔치는 금세 끝나고 주인공은 다시 남루하고 초라한 본인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파티의 주최자에겐 주인공은 이미 가장 완벽한 이성으로 각인이 돼있다. 결국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던 그곳에서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통해 주인공은 초라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 모두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결혼식을 올리고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이 이야기를 읽으면 대부분 서양 전래동화 ‘신데렐라’를 떠올릴 것이다. 또 누군가의 머릿속엔 화려한 궁정, 유리구두, 호박마차가 스쳐갈 것이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영향이다.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오직 서양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350여 종의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인류의 첫 신데렐라 이야기로 기원전 5세기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을 꼽는다. 당시 이집트엔 전설적인 미모를 지닌 여성 로도피스가 있었다. 로도피스는 발칸반도 동부인 트라키아 출신의 노예였는데 이집트로 팔려와 매춘부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로도피스의 신발 한 짝을 매가 물어가 파라오 앞에 떨어뜨린다. 이 인연으로 로도피스는 이집트의 왕비가 된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던 여성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짝과 만나는 신데렐라 서사의 전형이다. 이후 이 서사는 세계로 퍼진다. 서양으론 ‘양모 소녀’(터키), ‘고양이 체네렌톨라’(이탈리아), ‘상드리용’(프랑스), ‘재투성이’(독일), ‘골풀 모자’(영국)로 전해진다. 동양엔 ‘아름다운 헤나’(예멘), ‘한치 이야기’(인도), ‘콩쥐팥쥐’(한국), ‘누카후쿠와 고메후쿠’(일본)로 발전한다.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 서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인류 문화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도 다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어디서든 여성들은 억압받았고,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했고, 결혼 제도를 통해 신분 상승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특히 이 서사는 계모가 전처소생인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머리에 ‘계모는 나쁜 사람’이라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물론 동화 ‘백설공주’에도, 한국의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에도 예외 없이 성미가 고약한 계모가 등장한다. 계모는 나쁜 사람?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사건은 반복됐다. ‘조선왕조실록’엔 중전의 자식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궁들이 등장한다. 로마시대 황제 자리를 둘러싼 다툼도 마찬가지다.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의붓자식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처의 자녀는 떼어버리고 싶은 ‘얼굴의 혹’보다 성가실 수 있다.지금 당장이라도 ‘아동학대’ ‘계모’ 등의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해보시라. 얼마나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은가? ‘인간이 이토록 악하고 잔인해질 수도 있는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만한 기사가 범람한다. 영화 ‘어린 의뢰인’의 실화사건인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개요는 다음과 같다.“2013년 칠곡에서 엽기적인 아동 학대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역시 계모에 의하여 자행된 것이었다. 그녀는 8살 된 의붓딸을 심하게 때린 뒤 피해자가 복통을 호소하였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장간막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아이를 숨지게 방치하였다. 아이가 사망한 이후에는 언니였던 12세 자녀에게 동생을 죽였다고 허위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이를 강요하기 위해 아이를 세탁기에 가두어 돌리고, 성추행과 물고문을 하는 등 친부인 배우자와 함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듯 계모에 의한 학대치사 사건들은 치명적인 폭행이 적어도 2년 이상 지속되어 아동이 결국 사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희생양이 필요한 계모?재혼은 재혼대로, 초혼은 초혼대로 힘들다. 재혼은 이미 이뤄놓은 결과물을 합치는 것이어서 더 어렵다. 초혼이라면 결혼생활을 하면서 규칙이 마련된다. 그런데 재혼 커플 사이엔 ‘결혼생활은 이래야 한다’는 서로의 고정관념이 충돌한다.결혼을 미루다가 나이 들어 초혼한 이들 중엔 아이는 한없이 착하고 예뻐야 한다는 환상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런 환상 때문에 굳이 아이 딸린 남자(여자)와 결혼하는 미혼남녀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밤에 잠을 안 자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말을 안 듣고 반항하면 환상은 깨진다. 아이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남의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결혼 전에 각오했다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자식은 전처가 키울 테니까, 혹은 부모님이 키워줄 테니까 아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믿고 결혼했는데, 막상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억울하다. 이게 인간의 마음이다. 부부 간에 갈등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둘 사이에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고 싶다보니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려든다. 재혼을 했는데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어디엔가 화풀이를 해야 한다. 자신이 힘들다보니 아이를 학대한다.자기가 소리를 질러서 아이를 울려놓고는 아이가 징징댄다고 학대한다. 아이가 말을 잘 들으면 야단치지 못한다.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약속을 강요하고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깨끗하면 야단치지 못한다. 그런데 자신이 씻겨주지 않고는 아이가 지저분하다고 야단친다. 겁에 질린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대소변을 못 가리면 그걸 핑계로 아이를 욕실에 가둔다. 아이가 열어달라고 소리치면 그런다고 또 때린다.  아이가 산만하고 마음에 안 들면 학대는 더욱 심해진다. 보통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어린이는 발에 ‘모터’를 단것처럼 하루 종일 움직이고 계속 사고를 친다. 충동적인 양상도 있어서 뭐라고 하면 맞서서 소리 지른다. 아이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하는 행동인데, 계모는 아이가 반항한다고 여겨 학대를 합리화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발달이 느린 아이도 학대의 타깃이 된다. 남의 아이인데 발달이 느리다면 평생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게 끔찍하다.이처럼 계모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계모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본능적으로 남편의 사별한 혹은 이혼한 아내 자식들을 자기가 낳은 자녀들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다. 남편에게 전처를 생각나게 하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질투심은 차치하고, ‘남편이 전처 아이를 더 애틋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애들이 나이가 많으니 대부분의 상속을 받지 않을까? 그 아이들 때문에 늘 후처 취급당하지 않을까?’는 생각에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계모이기 때문이 아닌, 성품 탓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계모는 ‘나쁜 여성’으로 보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로 나쁜 계모는 생각보다 적고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단지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그만큼 특이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계모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동정심은 타고난다. 여성은 본질적으로 모성을 가졌다. 대부분의 계모는 어느 정도 동정심을 지녔기 마련이다. 착한 여성은 착한 계모가 되고, 못된 여성은 못된 계모가 된다. 즉 본래 그 여성의 성품 탓이지, 계모이기 때문에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못된 친모보다 착한 계모가 더 나은 경우도 많지만 단지 뉴스에 보도되지 않을 뿐이다.대부분 계모가 학대하는 것은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 역시 나중에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때려서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문제, 주거환경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또 도와줄 사람이 없을수록 아동학대는 늘어난다.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 중에는 자신도 어려서 학대받은 이가 많다. 어려서 폭력에 노출된 트라우마나 불우한 성장과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감정 조절 못하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는 훗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이들 여성 폭력범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정신장애는 경계선 성격장애임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여성 폭력사범들의 공통점은 40%에서 76% 정도가 어릴 때 성폭력 피해에 노출된 적이 있으며 25%~73% 정도가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았던 피해자로 확인되기도 하였다.계모의 갈등과 아픔 ‘계모(繼母)’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이혼과 재혼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에 계모도 늘어나고 있다. 동화나 드라마, 각종 뉴스로 덧씌워진 ‘나쁜 계모’의 이미지와 사회적 시선은 감내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는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므로 모성 본능의 사랑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시선이 작동된다. 유전자가 1%도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 어머니의 내리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물론 계모에게 유전적 계승은 없다. 맹목적 사랑 역시 친모보다 옅을 수 있다. 대신 계모들에겐 더 강해진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다.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실패한 첫 결혼도 그랬고, 새엄마로 살아가는 점도 그렇고. 나는 왜 남들처럼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할까 고민하고 그런 게 열등감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남들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재기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의붓딸도 보란 듯이 잘 키우는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아이들을 위해서는 먹는 거나 입는 거나 모두 좋은 것으로 골랐다. 새엄마가 집에 오더니 애가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재혼하게 되면 미움과 싸워야 한다. 밉지만 않아도 얼마나 행복할까 싶을 정도다. 작은 미움이 큰 미움으로 정말 쉽게 번지더라. 그 감정의 소모 때문에 너무 쉽게 지친다.”그들은 주변에 인정받으려는 의지도 있었고, 가정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존재를 강하게 각인 받고 싶은 욕심도 컸다. 최근에 필자와 만난 한 중년 여성의 고백이다.“엄마와 사별한 아버지에게 특별히 감사한 것은 재혼을 하신 것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 만나 새 엄마는 소위 살갑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에게 가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주셨어요.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 키워보니, 배 아파 낳지 않은 ‘남의 아이’ 키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정의)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가족 간에) 관계 맺음의 질에 달려있다.” - 정수복

20/05/2022
Rhodes NSW

병적인 수집가?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어떤 것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동화책, 유명인의 신발, 편지, 빛바랜 사진, 해묵은 엽서는 기본이고, 진료비 청구서, 수프 캔, 썩은 피자꽁다리 등 일반 사람들이 쓰레기로 취급하는 잡동사니들을 꼼꼼히 모아 수백 개 상자에 채웠다. 그는 이 상자들을 ‘타임캡슐’이라고 불렀으며, 이 타임캡슐을 5층 건물 전체에 물건을 쌓아둬 실제 사용할 수 있었던 방은 2개였다고 한다. 워홀은 1975년 출간한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나 자신은 원치 않은 물건이라도 그걸 버리는 건 내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수집가라기보다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호더’(Hoarder)였다.워홀은 수집품을 병적으로 모으면서도 수집가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종이와 상자들. 나는 무언가를 집에 가져오면 아무 데나 놔두고 다시는 집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가 타임캡슐에 저장해둔 온갖 잡동사니들을 언급하고, 그렇게 강박적으로 저장함으로써 정신병을 창조의 요소로 받아들인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 환자로 결론짓는다. 실제로 워홀은 1954년부터 19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 이상 골판지 상자에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채워 넣고 그 상자를 보관했다. 워홀이 죽은 뒤 뉴욕에 있는 저택은 물건으로 가득 차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였다. 오늘날 정리수납전문가들도 그곳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쌓아둔 600개가 넘는 타임캡슐과 그 안에 들어있는 약 50만 개의 물건은 지금까지 남아서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에 어엿한 예술작품으로 보존되어 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람객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거기에 매혹된다.잡동사니 쓰레기 속에서 안락함을? 잊혀질듯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이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소위, 저장강박 증세를 지닌 호더의 이야기이다. 잡동사니를 절대 버리지 않고 잔뜩 쌓아둔 채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행동은 저장강박이라는 정신장애에서 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사거나 주워와 집안 가득 ‘병적으로 축적하는 행위’를 호딩(Hoarding)이라 부른다. 미국의 한 방송은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7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최근 들어 인기 직업군에 들어온 ‘정리수납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검색해보라, 가정집에서 수십 톤의 쓰레기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온갖 잡동사니와 각종 음식 쓰레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푸드 호딩’부터 수십 마리의 유기 동물과 그 시체들이 들끓고 있는 ‘애니멀 호딩’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종류, 그런 것에 애착을 갖고 모으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집 안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 두어 이웃들에게 악취, 해충 등의 피해를 끼치는 것은 기본이다. 작게는 잡동사니, 추억이 담긴 물건들, 희소한 물건들부터 시작해서 재산가치 목록에 끼우지도 못할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고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는 호더가 얼마나 많은가? 가벼운 정도라면 정리가 필요한 정도로 여기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치료를 필요로 한다.이들은 물건의 실제 가치와는 관련 없이 버리지 못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로 그 물건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것이거나 미학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 소유물에 대한 감상적 애착, 소유물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등의 이유로 호딩을 멈추지 못한다. 주로 공허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 마음속 허전함을 물질로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호더들은 공통으로 우유부단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며, 회피적이고, 꾸물거리고, 조직의 어려움을 겪으며, 산만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타인으로부터의 거절로 인한 자존심 손상 등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호딩이 심해지면 그 자체로도 일상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침대 위에서 잠을 잘 수 없거나 의자 위에 앉을 수 없기도 하고,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넘어 타인의 활동 영역까지 침범하여 물건을 쌓아 두는 탓에 타인의 행동까지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보통사람이라면 그곳에서 자거나 밥을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호더들은 그렇게 저장해 놓은 물건(사실은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락함과 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웃고 있다. 추억이 담긴 물건, 구하기 힘든 수집품, 손톱 등을 저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라가 된 ‘남편의 시신’을 집에 저장한 여성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 물건들을 건드리면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다른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 많은 물건들을 ‘좀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심장이 요동을 치고 심하게 불안해지고 ‘극도의 두려움’까지 느낀다. 모든 것을 걸고 저 물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좀체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치워도 내가 치운다’며 다른 사라들의 도우도 한사코 거절하고 정리를 계속 미룬다. 보다 못한 가족이 호더가 없을 때 물건들을 버리고 정돈이라도 해버리면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다음에 꼭 필요할 때 찾아서 쓸 수도 있는 데 그걸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버렸다는 것에 대한 원망’과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러한 심리는 전형적인 저장강박증이다. 물건에 대한 사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버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일환으로, 습관적인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별개로 심각한 증세가 보일 경우 치료가 절실한 정신질환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의사 결정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저장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도대체, 왜? 저장강박증의 원인은 정확히 규명된 것이 없지만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뇌의 활성화에 대한 능력 상실과 우울증과 불안한 정서에 동반되는 강박장애다.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됐기 때문에 물건이 필요한지, 버려야 하는지 가치평가를 내리지 못해 일단 저장해 두는 경우를 저장강박으로 보는 것이 의학계의 주된 입장이다.또 유아기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장강박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신적 문제로는 유아기 시절 주변의 관계인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못 받았을 경우 이를 심리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갖게 된다. 이는 유아들이 자기 물건에 다른 사람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실 또는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그 아픔을 보상하려는 심리로부터 만족감을 느끼고 강박증 증상을 가지게 된다.주목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호더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생각으로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물건을 저장한다. 이 저장을 통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준비되어있다고 안심하면서 잘못된 패턴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일한 생각이 저장강박증의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실제로 세계 인구통계의 2~5%가 저장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저장강박증 사례를 연구한 마이크 넬슨에 따르면 설문응답자 879명 중 51%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마이크 넬슨, 잡동사니 증후군, 큰나무, 2011, p.13).중요한 것은 강박증을 앓고 있는 실제 환자들이 모으는 것이 무용하고 저급한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특정 물건을 모으는 우리의 일상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느 누구나 저장강박증에 쉽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저장강박증의 치료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환자가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의지를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강박장애보다 치료가 쉽지만은 않은데 그러한 부분에서 약물치료보다는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상담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저장강박증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사회와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 또 호더들이 자신들의 심각성과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찾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지지해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줘야 한다.무엇보다 우리는 저장강박 당사자들이 단순히 ‘정리에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건들을 ‘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못 버리는’ 심리도 인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금방 놓아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것이 그 순간 전부라고 느껴서 붙들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갈등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마음속의 잡동사니여기서 잠깐, 저장강박 호더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나는 값비싼 쓰레기통 속에서 산다! 내 것과 내 마음의 75%는 잡동사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얼마나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많기에 그것만 전문적으로 치워주는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직업군이 생겼을까? 미국 최고의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브룩스 팔머는 10년 넘게 남의 집과 사무실, 차고 등에 쌓인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버리는 일을 도와온 베테랑이다.  그는 이 잡동사니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심리적 잡동사니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마음의 75%는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이 세상 물건의 75%, 우리 인생의 75%도 잡동사니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하고 값비싼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거꾸로 말해서 우리가 잡동사니를 치운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세상의 쓰레기를 치우는 대단한 일 아닌가? 브룩스 팔머는 “우리는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잡동사니에 중독돼 있다”고 한다. 막상 버리려 하면 멈칫하고 들었던 손을 놓게 만드는 잡동사니! 그것의 질긴 유혹, 중독에 무심결에 빠질 대가 얼마나 많은가? 아직 쓰레기처럼 흉하게 방치되어 있는 우리 마음의 ‘잡식성 욕망의 산물’같은 잡동사니를 치워내기 위해 미국 최고 잡동사니 정리 전문가의 아래의 열 가지 지침, 소위 ‘잡동사니 버리기 10계명’을 곰삭여 마음을 새롭게 해보자.  1.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무엇인가 어색하고 거북하다고 느껴지면 그 물건을 버려라.   2. 어떤 물건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데 우물쭈물한다면 그것은 잡동사니다.   3.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잡동사니다.   4. 물건이 비싸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잡동사니다.   5. 사진들은 대부분 잡동사니다. 살아있는 순간으로 가득한 사진들만 간직하라.   6. 만일 어떤 물건이 잡동사니라는 첫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잡동사니가 확실하다. 첫인상은 틀리는 법이 없다.   7. 트로피처럼 '소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눈 딱 감고 버려라.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한 물건을 간직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8. 과거가 지금보다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물건, 그때만큼 좋은 시절이 없었다고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현재의 인생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물건만 남겨라.   9. 망가져서 고칠 수 없는 것이나 고치고 싶지 않은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10. 잡동사니는 접착성이 탁월하다. 겹겹이 쌓여 있거나 뒤엉켜 있는 물건들을 주목하라. 그런 물건은 전부 잡동사니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그 물건이 선물하는 느낌을 갈구한다. 그런 느낌 속에 들어 있는 마약 같은 성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 안에 행복, 즐거움, 열정이 녹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우리는 소유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그 물건이 자신의 참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브룩스 팔머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05/05/2022
Rhodes NSW

“당신도 벗어!”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아주 큰 음악회가 열렸다. 이 콘서트에서 곡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지휘자는 온 정열을 다해서 지휘를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아주 혼신을 다해서 그 곡에 도취되면서 연주했다. 청중들은 조용하게 그 연주에 흠뻑 빠졌다. 바로 이런 기막힌 순간에 어쩌다가 너무 열정적으로 지휘하다보니, 이 가난한 지휘자 예복의 소매가 찢어지면서 펄렁펄렁 하더니 그만 이 소매가 떨어져 나갔다. 한쪽 소매가 떨어져나갔는데도 지휘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잠깐 쉴 때, 이 지휘자는 민망하니까 옷을 벗어버리고 그만 셔츠바람으로 지휘를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어수선해졌다. 망신스럽게 셔츠바람에 이게 뭐냐는 소리도 들렸다. 이때 맨 앞 에 앉아있던 귀족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자기 웃옷을 벗고 다시 앉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차례로 웃옷을 벗었다. 모든 사람이 웃옷을 벗고 오케스트라를 보게 되었다. 곡도 곡이지만 그 일로 인하여 그 음악회는 최고의 감동을 주는 음악회가 되었다. 지휘자의 옷이 찢어졌다고 비판하겠는가? “당신도 벗어!”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존중이요, 존경이다. 그의 입장에서 그와 같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것이 공감(Empathy)이다. 멀리 앉아서 교훈하거나, 가까이 서서 잔소리하거나, 바로 앞에서 충고나 교훈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생각해서 한 마디 한다”며 이래라 저래라 하고 ‘바른 말’로 훈계하는 것, 그건 생각해주는 것도, 존중하는 것도, 사랑도 아니다. 그가 부족하면 나도 부족한 것이요,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픈 법이다. 누구를 향해서 비판과 비난과 훈계를 하겠는가? 그와 같이 되는 것,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다.약자에게 보내는 갈채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약자를 응원하고, 갈채를 보내곤 한다. 특히 경쟁에서 지고 있는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약자라고 믿는 주체를 응원하게 되는 현상 혹은 이들에게 부여하는 심리적 애착을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고 한다. 이 현상은 특히 스포츠에서 자주 나타나고, 정치나 예술, 마케팅의 영역에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언더독 효과는 투견장에서 아래에 깔려서 지고 있는 개(underdog)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 ‘패배자, 약자’란 뜻이다. 상대 개를 위에서 누르고 있는 개(top dog)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옛날 벌목산업의 나무 자르기 관행도 이 표현의 유행에 일조했다. 큰 나무는 미리 파둔 땅 구덩이 위로 나무를 걸쳐둔 뒤 위아래로 톱질을 하는 방식으로 나무를 잘랐다. 그런데 구덩이 속에 들어가 톱질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고역이었다. 구덩이 속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언더독’, 나무 위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탑독’이라 불렀다. 19세기 후반부터 쓰인 말이다. 사람들이 지고 있는 개가 이기기를 응원하듯이 상대적 약자, 즉 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경쟁에서 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길 바라고, 응원하는 것이 ‘언더독 효과’라 불리게 되었다. 선거나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링과 결합해 언더독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마케팅은 ‘언더독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언더독 스토리텔링에 쉽게 감동도 하고, 잘 속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분식이나 국밥을 먹으며 서민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도 언더독 효과를 노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약자의 성공을 응원하고, 거기서 공감을 얻는 것이 대중의 보편적인 심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이런 언더독 효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많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언더독, 정치부터 스포츠까지언더독 효과는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치에서 열세 후보에 대한 동정으로 해당 후보에게 막판에 표가 몰리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언더독 효과로 진단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토마스 듀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지지를 받으며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련데 ‘안타깝다’라는 이유로 인해 낙선이 예상되던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었다. 언더독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난 대표적 사례이다.사회학 용어로 언더독 효과에 대배되는 개념으로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있다. 쉽게 표현해서 특히 선거와 관련한 밴드왜건 효과(대세론)는 “대세는 결정되었음니 나에게 줄을 서시오!”이다. 언더독 효과(동정론)'는 “(불쌍하고 연약한) 나를 좀 봐주세요!”이다. 감성적인 한국 사람들에겐 ‘언더독 전략’이 비교적 잘 먹히는 나라이다. 선거에서건 일상의 삶에서건 한국인들은 ‘언더독 스토리’, 즉 낮은 곳에서 오랜 세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승리하는 스토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인전이나 동화는 거의 언더독 스토리를 빼면 구성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만큼 언더독 스토리가 늘 한국 선거판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정당이나 정치인이 너무 속 보이는 언더독 전략을 쓰면 ‘엄살 작전’ ‘약자 코스프레 등의 말로 집중세례를 받기도 한다.스포츠는 역시 챔피언과 도전자가 맞붙으면 으레 도전자를 응원할 정도로 흔 언더독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이다. 선수와 나의 일치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그들의 도전정신은 우리가 더 크게 응원하도록 하는 요소이다. 랭킹 1위라고 항상 1등을 하는 게 아니기에 스포츠는 경기에 긴장감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동계 스포츠를 하기 어려운 아프리카나 더운 나라의 선수가 동계 올림픽 종목인 봅슬레이에 출전했을 때 한마음으로 응원하던 1988년 캘러리 동계올림픽이 언더독 효과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스포츠 종목에서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국가대표 1,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것 또한 언더독 효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불 수 있다.희망과 감정이입“우리는 이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언더독 포지셔닝 광고의 일환으로 에이비스(Avis) 캠페인에서 사용한 슬로건이다. 이들은 1등은 아니지만, 항상 더 노력한다는 모습을 부각하면서 소비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유도했다. 한국의 진라면이 ‘현재 매출 1위는 아니지만, 이렇게 맛있는데 언젠가 1위가 될 것이다’라는 식의 문구를 통해 소비자들의 응원을 받은 적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감정이입 성향이 언더독 상표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공감과 감정이입의 효과가 ‘돈도 벌게 하는’ 원천임을 알 수 있다.마치 신데렐라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언더독 스토리는 조금 더 현실적인 면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리하여 보는 이들에게 언더독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차례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그들은 약자가 강자를 제압하는 간접체험을 통해서 대리만족과 희열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약자라고 항상 약하기만 한 게 아니다. 누구든 마음먹고 열심히 노력하면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언더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마음의 상처와 ‘호오’와 놀람사람들은 사소한 일(당사자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에서 상처받기 쉽다. 특히 ‘언더독’일수록 그렇다. 그럴 때마다 위로받고 격려 받고 싶어 하며,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줄 친구나 상담자를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대방에게 공감하며 이해하고 위로해 주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 기분대로 말을 뱉으며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언더독 : (울먹거리며)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주변 환경이 모두 절벽처럼 느껴져.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친구 : (장난스럽게 싱긋이 웃으며) “뭐 그런 걸 가지고 힘들어 해. 그건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약과야,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 그럼 괜찮아져.”그러면서 이 친구는 다른 대화 주제로 대뜸 넘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친구의 위로(?)에 언더독은 아픈 곳이 다시 또 찔리는 기분이었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들 것이다. 이 문제로 온통 마음을 쏟고 며칠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괴로워했을 터인데, 언더독은 ‘별것도 아닌 일’에 ‘유난 떠는’ 개복치가 되어버린 기분일 것이다. 친구와 만나 그때 그 순간만큼은 아픔을 평가받기보다는 ‘공감’ ‘위로’ ‘격려’가 필요하다.친구는 그 고통을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언더독에겐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섭섭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물론 친구는 그가 겪는 일을 겪어보지 않았고, 어느 정도로 어떻게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언더독에겐 아플 수밖에 없다. 마치 넘어져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야, 피도 안 나네, 뭘 울고 그래 뚝. 그만 징징대”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뼈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놀란 게 먼저다. 순식간에 일이 일어났을 것이고, 아이들은 더욱이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이 없으므로 더 크게 놀란다. 그럴 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우리 귀요미, 많이 놀랐구나. 아프지~엄마가 호오 해줄게 호오~~”라고 아이의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 이게 무슨 큰 효과가 있을까? 놀랍게도 아이들은 울음을 뚝 그친다. 상처가 크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는 상처의 아픔보다는 ‘놀람’이 더 큰 법이다. ‘호오~’는 그걸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이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에게로 와서 ‘호오~’하는 시늉을 보이는 것 아닐까? 본인이 실제로 ‘호오’를 통해 나아졌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우리는 우리가 힘들 때, 타인이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이해가 없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는 겪어보지 않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 아픔이 어떨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너 많이 힘들구나!” 한마디면 충분할 때가 많다. 사실,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 옆에 있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마음의 상처는 조금 나아지기 때문이다충격과 에어백, 마음의 반창고똑같은 시련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받아들이는 에어백은 저마다 다르다. 이 세상 사람의 수만큼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문제에서는 남들보다 무딜 수 있는 반면, 어떤 문제는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사건의 종류에 따라. 충격의 정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치유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라서, 어떤 이들은 술이 최고의 치료약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운동이 그러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 마음이 아픈 ‘언더독’들의 공통된 치료책은, 약자에게 갈채를 보내며 응원하는 따뜻한 시선에서, 마음에 품고 있는 각양의 사연을 적극적으로 들어주며 호응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고, 위로이니까.누가 봐도 화자가 자신의 ‘아픔과 고통, 상처’에 대해서 말하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별거 아니네”라며 그것의 무게를 평가하고, '의지박약'취급을 해버린다면, 그를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소중한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와 어렵게 마음의 상처를 내보인다면, 혹여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모른 척 반창고를 슬쩍 붙여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된다. 그 시간을 잘 견디어 자연스레 그 상처가 아물고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누군가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치유 받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되찾은 적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믿을 수 있고, 개방적이고, 솔직한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상대방은 아마도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며 당신의 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칼 로저스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2/04/2022
Rhodes NSW

숨겨진 비밀‘종이에 쓰여진 글의 힘’을 통해 인생이 달라진 한 인물을 생각해 본다. 그는 한때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토크쇼의 여왕이디고 하다. 경제 잡지 「포브스」는 수년 전 그녀의 재산을 미화  40억 달러(약 4조4000억 원)로 추정했다. 그녀가 바로 대단한 인기와 영향력,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대중의 존경까지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가 바로 미국 최고 비즈니스 우먼 2위,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3위에 기록되기도 한 오프라 윈프리이다. 이처럼 경이적인 기록을 가진 한 흑인 여성이 ‘인종과 성’이라는 이중 장벽을 뛰어넘는 과정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다.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찢어지게 가나한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 집과 아버지 집을 오가면서 혼란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아저씨뻘 되는 친척의 성적 학대에 시달려 아기를 사산하기도 했다. 이토록 처참한 불행의 늪, 마음의 상처에서도 역전의 승리자가 된 유일한 비결은 ‘종이에 쓰여진 글’이란 글은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읽어치운 그의 왕성한 ‘독서열’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아홉 살 때 엄마는 내가 읽던 책을 다 빼앗아 내던지며 말했어요. ‘매일 책만 붙들고 있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던? 넌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저 책벌레에 지나지 않아! 널 도서관에 데려갈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그렇게 알아!’ 그렇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독서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유일한 탈출구였거든요.”오프라 윈프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노벨 문학상 작가 토니 모리슨은 “작가들을 제외하고, 그녀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책이 많은 집은 본 적이 없다. 모든 책에 손때가 묻어 있고, 정성 들여 읽은 흔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집을 꾸미기 위해 책을 이용하는데, 그녀는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정말 좋은 독자였다”라고 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삶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게 될 때마다 독서를 통해 해결했음을 밝혔다. “책을 읽으면 당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지 않으시겠어요?”이처러 참혹한 생활을 겪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사건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이 쉬운 일은 아니라서, 어떤 때는 에너지가 바닥나버리기도 하고 상처받는 일도 더러 있다. 손해를 보는 일도 생긴다. 관계 안에서의 불편이나 어려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감이나 걱정거리, 그리고 사람 때문에 지쳐버린 마음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책이 주는 위로사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입에 발린 백 마디의 위로보다, 딱 한 권만 읽어보라고 권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 우리의 슬픔과 불안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책 속에 있다. 그래서 사람은 책장이 펼쳐진 한 권의 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로해줄 존재가 언제나 가까이 있는 셈이다. 모든 책이 자신에게 꼭 맞는 지혜를 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빌리거나 허구 뒤에 숨겨져 있는 진리에 기대어볼 수는 있다. 그중에서도 고전은 이미 많은 사람의 정신을 돌보아왔다.고전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강조되었다. 고전이 위대한 이유는 세월의 침식에도 끈질기게 버텨오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도 기껏해야 백 년을 살아남기가 힘든데, 어떤 고전은 그 백 년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았다. 인터넷뉴스에는 매일같이 자극적인 소식들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자극적인 이야기들은 빛보다 빠르게 퍼지고 많은 이의 안줏거리가 되지만 유효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도 유효기간이 짧아져버린 요즘 시대에, 우리의 불안한 정신에는 시간을 버티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시간을 견디어 살아남는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삶에 녹여낼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 게 고전이라면 한 번쯤 믿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물론 고전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어렵고 난해한 경우도 많다. 비장한 마음으로 두꺼운 고전을 빌려왔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리하지 말고 마음을 끄는 책 한 권을 골라보자. 에세이든 시집이든 자기계발서든 자신에게 손짓하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어떤 분야의 책이라도 선입견만으로 무턱대고 밀어내지 않는 게 좋다. 작가가 한 권을 쓰는 데 들인 시간과 정성의 단 십 분의 일도 그것을 읽는 데 쏟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그 책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인생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기성찰을 하게 하는 책도 좋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고전도 좋지만 일단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책도 좋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갖게 하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충분하다. 그 책으로 인해 어떻게든 긍정적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성공이다. 누워서 걱정만 하는 사람보다 무언가 행동하는 사람에게 불안은 자세를 낮추기 때문이다. 소소한 변화라도 그것이 돌고 돌아 인생의 색깔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독서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다버지니아 울프는 사람에게는 무려 천 개나 되는 자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자아가 단일한 상태로 있지 않고, 마음의 단절과 대립들로 잘게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내면의 어떤 갈등에 맞닥뜨릴 때, 혹은 예상치 못하게 다른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독서는 그렇게 다양한,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이다. 우리는 그 만남 속에서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물음표로 남아 있었던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수확은 독서가 우리의 근거 없는 불안, 우리 삶 전체에 깔려 있는 불안을 위로한다는 것이다. 책 속의 또 다른 자아와의 만남, 그리고 타협을 통해서.이는 우리네 삶이 문학작품 속 서사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실제로 책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기도 한다. 문학치료 또는 독서치료(bibliotherapy)라고 불리는 이 심리치료기법은 독서의 특성을 심리치료에 적용한 것이다. 다양한 문학작품을 매개로 하여 일대일 혹은 집단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서적인 고통을 완화해준다. 이 독서치료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에 두고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영혼을 정화시켜야 한다고 보았고,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katharsis)다. 그는 문학이 카타르시스를 통해 마음을 정화시킴으로써 정신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서치료의 시초가 된다. 독서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전문적인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독서치료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 자신을 밀도 있게 탐구할 수 있었다고들 한다. 그동안 불안정한 감정에 대해 보통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넘겼다면, 이제는 독서를 통해 내면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그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큰 변화였다. 독서를 통해 무수히 다른 나와 만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도 발견하게 되면서 진실한 사람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몰입의 힘독서 행위 자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일상의 잡념들을 잊고 몰입(flow)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한다. 딱 한 권만큼만 집중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몰입의 힘’에 대해 연구해왔다. 특히 긍정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평생 ‘몰입’이라는 주제를 연구해왔다. 그는 몰입하는 행위가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 가운데 하나는 ‘경험표본방법’이다. 사람들에게 삐삐를 나눠주고 삐삐가 울릴 때마다 현재 시각과 그때 하던 일, 그리고 심리상태를 수첩에 기록하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경험을 수집하여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TV를 볼 때보다 독서처럼 자기가 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몰입의 경험에 대해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표현한다.이처럼 독서는 서사의 힘, 또는 몰입의 힘으로 불안을 치유해줄 수 있다. 책 읽는 나와 책이 분리되지 않고 내가 곧 책이 될 수 있다면, 그러한 몰아지경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불안을 완화할 수 있다. 빠르게 많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간혹 책을 잘 읽는다는 말을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빠르게 많이 빨리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권의 책이라도 오래오래 품고, 반복해서 읽다 줄을 긋고, 뭔가를 끄적거리고, 온종일 고민하고, 읽었던 내용을 생각하면 된다. 다 읽은 책을 타인에게 추천하며, 또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동시킨 책의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보기도 하면 어느 새 책이 삶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무언가가 삶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나의 슬픔과 기쁨, 불안과 허무에까지 스며들어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사는 게 뭐지?’ ‘삶이란 뭐지?’라는, 마음속의 어쩔 수 없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려면, 수많은 스승인 책을 만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리라.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지독히도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독서가이자 소설가이자 시인이면서 도서관에서 일을 했고, 노년에 눈이 멀었지만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끝까지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낙원이 있다면 아마 도서관의 형태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고, 세계를 단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호르헤 보르헤스! 그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읽은 모든 작가가 바로 나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내가 사랑한 모든 여인이 바로 나다. 또 나는 내가 갔던 모든 도시이기도 하며 내 모든 조상이기도 하다.”그는 유전적인 문제로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잃었지만 다른 세상을 찾고자 했고, 그것이 책이었다. 그래서 실명한 뒤에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창작도 독서의 연장선이었다. 보르헤스가 시력을 잃고도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불안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 새로운 세상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도 없고 오히려 더 지치기만 하는 것 같을 때 가까운 도서관부터 찾아가보는 게 어떨까. 그리고 딱 한 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물론 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거창한 길이 되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사회에서 에너지가 바닥나고 막막해졌을 때 손을 내밀어 방향을 안내해줄 누군가가 분명히 그 안에 있다. 영국 속담에 “녹슨 머리는 책으로 닦아라”는 말이 있다. 리더(Leader)는 리더(Reader)라는 말도 있다. “리딩(Reading)하면 러닝(Learning)하고, 러닝하면 어닝(Earning)한다!” 독서하면 돈도 벌 수 있다는 말로 들리지 않은가?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쓴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이 구절을 생각하면, 그의 영웅적인 삶에서 독서와 사색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꽂아놓았다. 그러나 이미 나는 조금 전의 내가 아니었다.” - 앙드레 지드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4/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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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법정에 선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악이 저토록 평범하다니!” 히틀러 정권의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학살 집행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아르헨티나에서 15년 간 숨어 지내다, 1960년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붙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이 증인으로 나왔다. “이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이 말을 듣고, 아이히만을 쳐다보는 순간 증인은 기절해 버렸다. 그가 깨어나자 다시 물었다.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까?” 전혀 대답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사람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을 정치 역사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말한다. “악이 저토록 평범하다니····”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학살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학살 대상이었다. 워낙 대규모로 저질러진 학살이라, 지금까지도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2003년 9월에 밝혀진 극비문서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2차 대전 발발 이듬해인, 1940년 1월부터 1941년 8월까지 독일 각 병원에 수용돼 있던 지체장애인과 정신장애인 27만 5천명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LA 시몬 바이센털 센터의 R. A. 쿠퍼 소장은 “나치정권은 장애인 학살의 살인기술을 연마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약용했다”고 비난했다.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하여 자주 논의되는 인물이 바로 위의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당시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과정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1963년에 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고력의 결여’는 어떻게 발생하며 무엇이 그 ‘결여’를 메워 주는가? 히틀러의 병사들에게 ‘명예’는 곧 ‘충성’이었고, ‘충성’은 곧 ‘명예’였다. 또 히틀러 일당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역사적이고 웅대한 의미를 부여하게끔 병사들을 세뇌시켰다. 2천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일이라는 걸 주입시켰다. 그리하여 병사들이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라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내 어깨에 걸린 역사적 책무가 참으로 무겁도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명령하는 국가, 수행하는 인간당시 아렌트가 송고한 기사는 곧 미국 전역에 걸쳐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학살을 저지를 당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던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인간관계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착한 사람이 저지른 악독한 범죄라는 사실에서 연유되는 곤혹스러움은 인간의 사유(thinking)란 무엇이고, 그것이 지능과는 어떻게 다르며, 나아가 사유가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게 만들었다.혹 학살의 정교한 분업 시스템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는 데에 일조한 건 아니었을까? 크게 나누어 명령을 내리는 자, 세뇌하는 자, 집행하는 자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갖게 될 것이다. 명령을 내리는 자와 세뇌를 하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의 끔찍한 현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조치하시오’라는 우아한 말 한마디, 또는 ‘국가와 영광을 잊지 말라’는 애국적인 말 한 마디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그들의 손엔 피 대신 향기로운 술잔이 들려 있을 것이다. 직접 살인하는 병사들도 그 순간 명예와 충성과 역사적 책무와 국가의 영광이라는 주문만 외우면 되는 것이고, 그들의 살인 행위도 단추 하나만 누르면 해결되는 것이라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졌을 것이다.물론 그러한 심리적 과정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여러 가지 다른 장치들이 개입된다. 학살의 집행자 또는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잔혹행위에 개입해 있는 그 ‘현실의 어처구니없음을 어떤 형태로든 어느 정도는 인식하게 마련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그 부정된 공백을 환상으로 메우려 하는 과정에서 ’위조된 세계‘를 창조한다고 한다.세뇌하는 사회, 불감되는 인간여기에는 현실과의 정직한 대면을 부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등장한다. 그 중의 하나가 베트남전쟁의 경우 군인들이 애용한 헤로인과 마리화나 등의 마약복용이었다. 독일군들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술과 고전음악을 즐겼으며, 수용된 여성들에 대한 변태적인 성적 학대를 즐겼다. 이런 수단들을 통해서 학살의 하수인들은 스스로 ‘심리적 불감’ 상태를 불러일으키며 정신적 공황을 메우려고 했다.‘심리적 불감’은 학살과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신들의 현실을 비현실화하는 심리적 과정과 연결돼 있으며, 이 과정엔 크고 작은 이데올로기와 도구들이 동원된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병사가 베트콩들의 시체 수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마다 귀를 잘라 모으는 짓(임진왜란 때 일본인들도 행한 짓)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베트남전쟁에서도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존재했다는 걸 말해 준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즉 기술적인 일만 성실히 수행했다. 이게 곧 아이히만의 대답이기도 했다. 닐 포스트먼은 “아이히만의 대답이 하루에 미국에서만도 5천 번 이상 나오고 있을 것이다. 즉, ‘내 결정의 인간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담당자는 관료주의의 효율성을 위해 맡은 역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뿐이며, 이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아이히만과 관련, 에리히 프롬은 ‘관료주의적 인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프롬은 관료주의적 방법은 인간을 물건처럼 다루고, 수량화와 통제를 보다 쉽고 값싸게 하기 위해서 이 물건을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프롬은 아이히만이 조직화된 인간의 상징이며 우리 모두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히만에 관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가 스스로 모든 것을 자백하고도 자신의 완전하고 선한 신념에 의거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프롬은 관료주의 체제엔 아직도 수많은 아이히만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수천의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점뿐이라는 것이다. 병원의 관료가 환자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는 그 병원의 규칙 때문에 중환자를 거절 했을 때, 그의 행동은 아이히만이 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적 규약의 어떤 조항을 위반하기보다는 빈민을 굶주리도록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사회사업가의 행동도 마찬가지라고 한다.“이러한 관료주의적 태도는 단지 관리들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사, 간호사, 교사, 교수들 속에도, 많은 부부관계와 친자(親子) 관계 속에도 살아 있다. 일단 살아있는 인간이 하나의 숫자로 격하되면 관료주의는 철저히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행동에 비례할 만큼의 지독한 잔인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대상물에 대하여 아무런 인간적인 연대감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료는 새디스트보다는 덜 포악하지만 더욱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심과 의무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양심이란 바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정과 공감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이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아직도 끝나지 않는 논쟁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독일인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2년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이 쓴 <평범한 사람들>은 “동료간의 압력, 출세주의, 조건 없는 복종”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홀로코스트에 동참하게 만든 요인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1996년에 나온 대니얼 조나 골드헤이건의 <히틀러의 자발적인 사형집행인들>은 브라우닝의 주장에 정면 도전하면서 독일의 병리현상인 ‘제거주의적’ 반유대주의에서 원인을 찾았다. 즉, 모든 독일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특성을 잘 읽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독일인과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5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2000년에 나온 에릭 존슨의 나치테러는 독일인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침묵은 통탄할 일이지만, 이방인들로 여겨지던 그들 유대인의 운명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과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침묵은 이해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제이 고넨의 “나치 심리학의 뿌리”는 골드 헤이건의 주장을 지지하면서 독일의 신화와 역사가 사악한 유대인이라는 ‘집단 환상’을 키워왔다고 주장한다.“사람들은 단순히 명령에 복종한다는 이유로 수직적 명령체계나 관료적 타성 때문에 집단 학살을 자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에릭 프롬은 “진실을 인식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라고 한다, 우리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사랑하고 존중하되, 조직의 부정과 불의에조차 따르는 조직의 노예가 되지 않는 건 영영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까? 아마도, 시대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옳은 편에 서서 좁은 길을 걸으려는 ‘순교적인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로 보여진다. 그래서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한 의인은 시대를 초월하여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로 하여금 당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이 아닌) 순전한 생각 없음 (thoughtlessness)이었다.” -한나 아렌트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06/04/2022
Rhodes NSW

뒷담화의 엔트로피사람들은 자기에 대해 남이 말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흔히 ‘뒷담화’라고도 하는 이 ‘남의 말하기’ 역시, 불변의 과학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처럼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뒷담화, 즉 남의 말하기는 으레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진행되며 방향도 무질서하게 사면팔방으로 흩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온라인, SNS의 발달로 ‘뒷담화의 진화’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명칭부터 ‘악플’(악성 댓글)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범위도 ‘뒷담화’시절엔 동네 한 바퀴 벗어나기에도 상당한 시절이 흘렀지만, 악플은 빛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게 전 세계를 휩쓸 정도이다.   지금이라도 포털 뉴스를 열어보시라. 특히 정치인, 연예인, 체육인들의 악플은 뉴스 보도와 더불어 실시간으로 수백, 수천 개씩 달리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악플 내용을 읽어보면 어지간한 사람은 심장이 터져 기절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욕설을 아무 죄책감도 없이 예사롭게 도배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악플에 상처를 받아 목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도 잊혀질만하면 다시 등장하곤 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과 혐오, 동정과 위로, 오해와 편견, 애정과 집착이 범벅된 수많은 악플들이 마치 토사물처럼 뒤덮고 있을 때, 어지간한 심정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특히 ‘사람’이 아닌, 상품 품평회 하듯 차가운 말을 쏟아내는 군중들의 ‘악플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특히 지독한 진영논리에 따라 내편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절대 악이라는 논리로, 상대방을 천하에 몹쓸 인간으로 만드는 댓글조작은 조직적, 체계적으로 예사롭게 일어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을 인터넷에서 총알처럼 쏟아 낼까?              그들만의 독특한 심리인터넷은 자신을 숨기기에 제일 좋은 공간이다. 컴퓨터라는 매개체 뒤에 숨어서 익명으로 오프라인에서는 하지도 못할 말들을 쏟아 내기도 한다. 영국의 행동 심리학자 헤밍스는 악성 댓글을 쓰는 이유가 “대다수 악플러가 오프라인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악플러는 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균형을 잃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인터넷에서 푸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밝혔다. 악플러 대다수가 사회에서 존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인터넷상에선 책임감과 자기 인식을 포기한다. 또한, 악플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비방함으로써 내적 열등감을 투사한다. 이러한 병적 심리는 악플러가 현실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공격성을 과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익명성은 악플러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다. 내적인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수준 낮은 인정 욕구가 더해지면, 어설픈 경험과 지식을 뽐내서 저급하고 왜곡된 우월성을 확인하여 병적인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악플을 달아도 익명성으로 인해 쉽게 보복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악플러들에게 공고하게 자리 잡은 것도 문제다. 자신처럼 특정 연예인을 비난하는 의견이 많아지면 ‘나 하나쯤 더 비난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군중심리가 작동해 무차별적인 악플이 양산된다. ‘누군가를 추앙해 스타를 만드는 것보다, 추락시키는 것에서 자신의 힘을 느낀다.’물론 익명성이 악플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익명이 아닐 때에도, 예컨대 자기 이름과 얼굴을 걸고 하는 페이스북 같은 공간에서도 흔치 않게 악플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사이버 닥터로 알려진 심리학자 린다 케이에는 “악성 댓글을 다는 이유가 사디즘, 정신병증 같은 성격적 특성도 있겠지만, 악성 댓글 같은 부적절한 행동은 악플러가 오락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헤밍스는 “악플러는 다른 악플러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관심을 통해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자아 가치를 느낀다”라고 말했다.다른 사람들이 혐오하고 싫어할 것 같은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내는 행동을 가시성이라고 한다. 악플러는 이러한 가시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더 강화한다. 자신이 쓴 악플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악플러는 스릴과 즐거움을 느낀다.인간이 추구하는 심리적 보상에는 칭찬이나 인정 등 긍정적 심리보상과 혼란과 무질서, 두려움 등 부정적 심리보상이 있다. 여기서 악플러들은 부정적 심리보상을 통해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반사회적 행동은 집단 속에서 제지되지만,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악플 피해자는 자존감 하락, 불면, 우울에 빠지고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지만, 악플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이 부족하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는 심리적 특징을 보인다.집단주의 문화에서는 ‘튄다’는 느낌을 주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악플러들은 뛰어난 외모와 부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에 대해 시기심과 상대적 박탈감(혹은 열패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처럼 지나치게 도덕적 잣대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옳다 아니면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인격모독적인 비난을 함에 따라 피해자가 발생한다.온라인상의 부화뇌동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단어와 표현, 욕설, 직간접적인 위협을 날리는 것, 또는 단어나 기호들을 사용해서 공격성을 내비치거나 모욕적이고 상대를 격하하는 언사를 하는 행위를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악플의 경우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에 해당된다.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의 레오니 뢰스너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동조’행위가 악플 증가에 한몫 한다. 연구자들은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의 공간, 즉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공간인 동시에 네 편 아니면 내 편, 여성 아님 남성, 가난한 사람 아님 부자 같이 쉽게 집단화하는 공간임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도 내집단과 외집단을 칼 같이 구분하는 편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더 작게 파편화된 정보들로도 쉽게 누가 자신과 비슷하고 다른지 편을 구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보다도 더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게 되고, 그 결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신과는 다른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집중 포화를 쏟아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댓글을 쓰기 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쓴 기존의 댓글들이 얼마나 온건하거나 온건하지 않은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댓글들이 공격적이지 않을 때에는 비슷하게 공격적이지 않은 댓글을 달았지만, 기존 댓글이 공격적이면서 추가로 익명성 또한 잘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언어폭력이 현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온라인상의 부화뇌동’이라고 할까? 사람들이 기존 댓글들의 톤에 큰 영향을 받아 우르르 악플을 달게 되는 것이 공통된 연구결과이다. 마치 두건을 써서 얼굴을 가리는 것만으로는 공격성이 폭발하지 않지만, 이미 잔뜩 화가 난 사람들과 함께 같은 두건을 쓰고 있을 때에는 집단적인 폭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사람들은 원래 좀 그래!‘사람들이 자기가 온라인에 쓴 글 하나만을 가지고 나라는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댓글은 중요한 사회적 문화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자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토론하듯이 온라인에서 각자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댓글 문화는 아테네의 참여 민주주의처럼 서로 의견을 보완하고 허점을 지적해 주는 등의 순기능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맹목적인 비난, 즉 악플을 소명처럼 달아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플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현주소이기도 한다. 건강하게 극복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잘못된 방법, 잘못된 통로로 분출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는 말이 있다. 온라인에서 쉽게 던지는 수많은 돌들로 인해 누군가는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히 포털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은 아리라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쓰고, 그룹과 조화를 이루려고’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뜻하지 않는 ‘뒷담화’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런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는 무엇보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심사숙고한 다음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 ‘팩트 체크’ 없이, ‘그래/tek면 그 사람 좀 그렇네...’ 정도의 이야기를 쉽게 한다. 나에 대한 시선은 그저 ‘그 이야기가 이 사람 얘기인가?’ 정도의 눈빛이었을 수 있다. 약간은 삐빡한 시선을 가졌더라도 나를 직접 대하면 오해를 쉽게 풀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일부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소위 정신과 교과서에 나오는 ‘성격장애자’는 인구의 10%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10명인 그룹에서 1명 정도는 애초에 성격적으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정치, 종교, 성별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 흔하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뒷담화는 자연스런 풍경이다. 이런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에 대한 뒷담화는 ‘반찬’으로 알고 받아먹고 잘 소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나의 체질에 맞지 않더라도!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면 그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억울하게 나를 비난하고, 그것을 생각없이 퍼뜨리는 세상에 환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면, 이들을 맏아들이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멀리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니다.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들은 원래 좀 그렇지 뭐.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억울함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할 수 있다.    “욕설을 욕설로 되돌려주는 기술은 상스러운 자들의 몫이다.” -프레데릭 2세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25/03/2022
Rhodes NSW

돈 안드는 명약장도니크 보비라는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사고로 전신마비되고, 왼쪽 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절규했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친구 목사님 중에 후두암 수술을 받아 침샘이 말라버린 적이 있었다.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니면서 들이키며 그가 들려준 말이 얼마나 마음에 저려왔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더럽다고 퉤퉤 뱉어버리는 침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고 있네! 침샘에서 침이 나오지 않으니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씹을 수도 없고, 맛도 못보네. 입에서 냄새도 심하게 나고, 침이 마르니 가장 먼저 잇몸이 어떤 모습으로 빨리 상할지도 모르고...”팬데믹의 계절에 우리가 처절히 경험하는 것은 아무리 건강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불시의 사고, 세균 하나가 우리 몸에 불시 방문하는 날이면,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육체라는 사실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 씨는 온몸이 장애가 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은 점점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 씨가 이런 처방을 내렸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이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다. 그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한 마디로 감사는 돈 안드는 명약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행복은 어디에?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듯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는 신부와 평생 한 번 입을 턱시도를 입고 연신 웃음을 흘리는 신랑에게 제일 알맞은 인사는 역시 “행복하게 살아라”이다.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통계에 의존해서 말한다면 오늘도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새 가정을 이루는 젊은이들은 대략 30% 정도가 4년 안에 이혼으로 끝난다. 행복하게 살 것인지, 불행하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모든 행동은 개인적인 변인과 환경적인 변인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도 결국 나 자신과 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나 가치관이 크게 달라진다. 서구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영국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영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는 모든 식민지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를 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는 시각이 셰익스피어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이전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이 개인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이전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이다. 그의 대표적인 비극 작품으로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 대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테베의 왕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고 신탁에 나와 있는 아들이 태어났다. 고민하던 왕은 결국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막장 패륜을 저지르고 만다. 물론 본인은 자신이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이 비극의 핵심은 오이디푸스 왕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참 무섭고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도 ‘사주팔자’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본다든지, 이사할 때 택일을 하는 것 등도 다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면 주인공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변한다.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을 살펴보자. 갑자기 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겪은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정작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며 결행하지 못하고 만다. 널리 회자되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극명히 보여주는 명대사다. 결국 햄릿의 비극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다.운명인가, 성격인가?셰익스피어는 여러 유명한 연극의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위대한 극작가로 존경받게 되었다. ‘운명’과 ‘성격’ 중에 어떤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을 결정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 질문의 해답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식’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고 믿으면, 더욱더 성숙한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자기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분투노력하게 된다.현역 시절 투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한 후 1997년에‘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필 니크로라는 선수는 통산 318승 29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24시즌 동안 매년 평균 13승 이상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300승 이상을 올리는 투수가 될 수 있었냐고 할 때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내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300승 넘는 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물론 그 자신도 모른 채 마치 비극적인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는 위대한 투수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건에 반응할 수 있는 자신의 ‘성격’덕분에 위대한 투수가 됐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만 그 어려움에 성숙하게 대처했느냐 혹은 미성숙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투수 니크로도 통산 274패를 경험했다.반면에 70년대 미국의 팝계를 주름잡던 올리비안 뉴튼존이라는 여 가수 이야기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Let me be there’라든지 ‘Phisical’ 같은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미국 팝계의 전설적인 여왕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다. 그가 한참 잘 나갈 때 사업에 손을 댔다. 청바지와 캐주얼 옷을 파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처음에는 일취월장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과대하게 확장하면서 부도를 맞았다. 때맞추어 낸 음반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큰 고통을 겪게 되면서 건강도 악화되었다. 병원에서 검진하는 동안 92년에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말이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Why me?”(하나님 왜 하필이면 접니까?) 원망하며 보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데뷔곡으로 불렀던 노래 제목처럼 “If not for you”(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노력과 한계로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운명’인 하나님의 섭리에 달렸다고 믿었다. 그러자 그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의 의사가 깜짝 놀랐다. “당신의 유방에 암세포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그 이후 그는 암 환자들에게 간증하러 다니고, 환경운동가로서 환경 개선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 마음먹기“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듯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운명’을 믿든, ‘성격’을 믿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잘 살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존경받는 큰스님인 성철 스님도 “팔만대장경은 한 마디로 하면 마음 심(心)자 위에 놓인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교훈한다.그렇다면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발달에 대한 이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 필수 요인이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했겠는가? 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로서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확립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20세기 최대의 발견을 이렇게 피력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윌리엄 제임스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8/03/2022
Rhodes NSW

추측의 시대“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이 말은 성적 줄 세우기나 외모 비하가 절대 아니다. 자녀문제라면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부모들의 인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사람들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에서 당연히 공부 잘하는 아이, 예쁜 아이를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공부와 예쁨으로 다른 것을 재는 잣대로도 사용한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한다. 헤이로우(Halo)는 태양광 혹은 달빛이 만들어내는 빛의 띠로서, 어떤 사물을 더욱 빛나게 하거나 두드러지게 하는 배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후광효과는 ‘한 가지 좋은 특성을 가진 대상은 또한 다른 좋은 성품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현상이다. 즉, 대상의 두드러진 특성이 배경이 되어 그 대상의 다른 세부 특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손다이크(Edward L. Thorndike)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고 그 대상의 구체적인 행위들을 일반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경향’을 후광효과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사람이 덜 매력적인 사람보다 더 인품도 좋고, 더 고위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바로 이 후광효과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그 사람의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들 하는 것도 후광효과의 한 표현이다.침소봉대, 옹고집과연 그럴까? 더 정확히는 ‘하나를 보고 열을 추측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열’을 평가하는 극히 일부를 반영할 뿐이지, ‘열’을 알 수 있는 준거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작은 것을 침소봉대하여 지나친 일반화는 절대금물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없는데, 바늘구멍을 통해 보고 세상을 다 보았다고 한다면 이만한 옹고집도 없으리라.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광효과는 우리의 삶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실험을 통해 입증된 몇 가지 예를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매력적인 여 선생님이 가르치는 경우 더 재미있다고 평가하고, 더 뛰어난 교사라고 평가한다. 엄정해야 할 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재판정에서도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매력적인 피의자는 볼품없는 피의자보다 더 가벼운 형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자신이 변호하는 피고들에게 정장을 하고 용모를 말끔히 단장하고 재판정에 출두하라고 조언한다.이처럼 신체적 매력의 후광효과가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에는 취직이나 입시 등의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용성형이 성행하고 있다.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성형 수술 및 미용시술 건수는 세계 7위였지만, 인구 1000명당 건수는 13.5건에 달해 인구 대비 성형 건수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인구 대비 성형외과 의사 수 역시 한국이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방사효과, 일반화의 오류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후광효과로는 방사효과(Radiation Effect)가 있다. 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내품는 후광 덕분에 함께 있는 사람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이다. 용모가 뛰어난 연예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동반자도 역시 매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사진들을 특별한 기념물로 간직하며 자랑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특별한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도 그처럼 높은 평가를 받고, 자신의 인상을 좋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매혹적인 이성과 친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선거철에 전gus직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함께 나란히 서있는 사진을 선거홍보용 책자나 포스터에 싣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다음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대통령이나 유력인사의 옆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살벌한 신경전을 벌인다. 일반인들도 유명 연예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가깝게 밀착해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의 밑바닥에는 권력자나 유명인의 후광에 힘입어 자신도 힘이 있거나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다.TV에서도 이왕이면 매력적인 남자와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한다. 이 전략도 매력적인 아나운서의 후광에 힘입어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미용성형을 할 뿐만 아니라 복장이나 용모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전문적인 코치를 받기도 하고 많은 경제적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매력이 곧 밑천이기 때문이다.후광효과가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광효과는 사실상 일종의 인지적 편향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후광효과에 의한 착각은 곧 사라지게 된다. 선거나 인사선발에서 후광효과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문제는 특정인과, 특정 상황에서 발생한, 특정 경험에서 나온 결론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나 지역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특정 혈액형이 어떤 직무와 맞다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결론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사례들을 (나름대로는) 종합해서 내리는 결론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가지는 순간, 본인이 예상하는 바대로 편향된 관찰과 평가가 일어나게 된다. 자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특정 학교나 지역 출신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를 하거나 혹은 홀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 싫어하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 확실하니까!(라고 예상하니까!). 혹은 특정 혈액형의 사람을 해당 직무에 배치하고는 ‘저 친구는 일을 잘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도움을 제공한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혈액형은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사기와 조작과 후광효과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때 피해야 할 핵심적 금기사항 넘버원이 바로 인상에 의해서 판단, 평가하고 결론을 쉽게 내리는 후광효과이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대로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에 따라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몰되면 사기 당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사기꾼의 3대 특징이 외모가 수려하고, 말을 착 달라붙게 잘하며, 법에 대한 지식을 기막히게 풀어놓는다고 했을까? 찬찬히 풀어보면 모두가 후광효과와 연결되어 있다. 외모나 인상에 의해 성품과 인격, 능력에 대한 판단을 연결 지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사기꾼의 외모, 첫인상, 그리고 소위 ‘말 빨’은 절대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 유창한 ‘말 빨’에 녹아들어, ‘이토록 고상하고 거룩한 말을 하니 성품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첫인상이 후광효과로 작용하는 순간 사기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후광효과는 다양한 심리 조작술로 활용되기도 한다. 광고계에서는 이미지가 좋은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보낸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신뢰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광고로 내보내는 제품의 신뢰감 또한 높다고 소비자들은 인지하게 된다. TV 광고나 TV 홈쇼핑에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제품을 소개하면, 그 연예인이 그 제품을 사용해 본 다음 제품에 대해 만족하여 해당 광고를 촬영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연예인들은 그 제품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으며, 해당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도 않는 것이다. 광고 촬영을 하고 촬영 대가만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을 보고 왠지 그 제품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제품의 치명적인 하자나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숨기고 광고했어도 해당 연예인은 책임지지 않는다.아파트 분양 광고와 화장품 판매 광고에도 미모의 연예인이 곧잘 등장한다. 보험 광고엔 대개 나이 지긋한 유명 탤런트가 나온다. 소주 광고에도 젊고 섹시한 가수가 나와 뇌쇄적 몸동작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모두가 후광효과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다. 광고주는 이들을 앞세워 판매 극대화를 꾀한다. 주변에서 후광 효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핸드백이라도 유명인이 들고 있으면 왠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썼는데도 쓰지 않은 사람보다 더 지적일 것이라고 예단한다. 이처럼 후광효과는 진실을 질식시키며, 이성을 압도하고, 강한 사람을 약하게, 약한 사람을 강하게 보이게 하는 ‘요술방망이’이다. 이 방망이에 휘둘리지 않도록 아무리 주의해도 오히려 부족함을 명심하자  “인간은 대체로 내용보다는외모를 통해서 사람을 평가한다.누구나 다 눈을 가지고 있지만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마키아벨리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15/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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