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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선진국일까 여전히 개발 도상국일까? 2021년 7월 2일 개최된 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바 있다. 이는 1964년 UNCTAD가 생긴 이래 최초의 사례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개도국 위치에서 IMF 국가부도사태를 겪었지만, 이제는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으로 상징되는 세계적 위상을 가지게 현재. 이 급작스러운 변화를 마주하며, 저자는 우리는 진정으로 선진국인가 라는 질문을 사회 현상 해석을 통해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 책은 한류를 찬양하거나 한국 자화자찬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란 질문 만을 던지며 달려왔다 말한다. 반만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막상 2차 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가로서, 한국은 미성숙한 근대화를 거치며 선진국을 따라잡기에 급급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를 너머, ‘왜’와 ‘무엇’을 생각해야 할 시기가 왔다 말한다.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선진국의 조건과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살펴 보는1,2부, 그리고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3부 AI의 시대 편이다. 여기서는 후자는 전문 정책에 관한 내용이라, 일단 전자 내용에 초점을 맞춰 리뷰를 해 본다. 저자는 선진국에 걸맞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도전 하며, 과거 반성과 미래 전망을 제시하는데, 그중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면서 저자의 생각을 소개하고,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그 내용을 평가하며 마치고자 한다. 산업 4.0 – 정의하는 사회독일 정부는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산업 4.0 (Industry 4.0)’라는 앞으로의 산업전망 보고서를 내 놓았다. 이 책과 동시에 나온 것이 ‘노동 4.0’ 보고서인데, 각 사회 영역(공기업, 협회, 일반기업, 학문, 분야)의 토론과 의견을 모아 정리한 준비연구에 해당한다. 2년의 대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노동 4.0’인 것이다. 우리는 독일이 4년전에 만든 이 자료를 지금에서야 교과서처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준비야 말로 선진국다운 사고방식이 뭔지를 보여주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신뢰자본을 가진 사회한국의 또다른 이슈는 신뢰자본 문제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사람사이의 믿음이 10% 올라가면 GDP가 0.8%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서울역은 현재 검표원없이 개찰구가 열려 있고, 승객은 차표를 꺼낼 필요 없이 기차를 탄다. 신뢰자본과 IT기술 덕에 생겨난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정직하게 탑승하고, 혹여 몰래 남의 자리에 앉을 경우, 자동으로 적발된다. 그러면 검표원은 조용히 몰래 앉은 사람에게 가 표를 요구하고, 10~30배 가량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자본과 기술발달은 한국의 민간영역에서 많은 발전을 가져왔지만, 정부 정책으로 들어오면서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서로 봐주기식 법 집행 때문인데, 고위직 부정사범의 집행유예비율이 70%을 넘어가는 것이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검열 폐지와 문화적 조화또 다른 이슈는 검열폐지와 문화적 조화의 힘이다. 1996년을 기점으로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전 검열이 폐지되었고, 공연윤리위원회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창작자들은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며 문화를 생성해 가기 시작하더니, 아카데미를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나 전세계로 퍼져가는 네플릭스 드라마들을 만들어 냈다. 영화나 드라마를 넘어 BTS나 K-pop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재능의 자유로운 결합은 통제보다 더 큰 문화적 발달을 가져온다는 점을 한국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글의 변화언어의 발전은 그 문화의 발전을 결정한다: 저자는 1521년 교황청의 제지를 무릅쓰고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의 예를 꼽으며, 일반인들의 언어로 번역함으로서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을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지적한다. 반면 한국은 아주 짧은 기간에 근대와 현대를 동시에 거치면서,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현대 한글 표현은 모두 ‘다’로 단조롭게 끝나는 데, 저자는 이를 너머 더 풍성한 함의를 이끌어 내는 한글이 되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고장난 인센티브 시스템한국은 잘못된 상벌구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형벌을 피해간다(집행유예). 산재사망률은 OECD 최상위권인데도, 과실자들의3%만 징역 및 금고형을 받다. 이런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은 일확천금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른다며,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개혁하고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교육의 결핍저자는 한국이 '기본'에 대한 교육이 없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지속적인 학습능력을 잘 키워주지 못했는데, 문제는 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자기 학습능력의 부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 청소년의 94%가 운동부족이란 점도 주목할 문제다. 존 레이티 하버드 교수는 운동과 뇌의 활성화의 관계를 입증했다. 앉아서 하는 공부만을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은 단기적 문제를 푸는 데는 효과적일 지 모르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을 만들지는 못한다. 오래된 맛집의 비밀한 한국 음식배달 서비스 회사에서 한국의 오래된 맛집의 비밀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업체는 최종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오래된 맛집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가점포’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만의 특징 개발은, 한국현실에서는 기대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리단길은 최근들어 이국적 가게와 수제맥주집으로 핫플레이스로 부상했지만, 결국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 그런 특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한 평가저자는 한국을 선진국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어쩌면 아직 선진국이 되기에 멀었다는 해석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부정적 시각으로만 한국 상황을 보는 것도 별로 건강하지 않다. 기존 선진국들도 나름대로 어두운 부분이 있고, 한국만의 독특한 발전과정 때문에라도 이해해 줄 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꼬리만을 만지고 전체를 평가할 수 없듯이, 저자의 평가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돌아봐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 내면적 성찰을 위한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가 던지는 문제들은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 가기 위해 도전해야 할 것들이다. 세상은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세상 어디서도 완전한 희망을 볼 수 없다. 그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죄의 영향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불신과 부의 재분배 문제, 편향된 자원 등의 무시한 체, 나의 꿈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토대로 올라서야만 하는 경쟁사회를 바꾸지 않고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자들만의 리그를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복음을 외치는 것은 선진국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그 속에서 창조의 바른 원리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추구하며, 이것은 이 책이 말하는 식의 자성만으로는 이뤄지지않는다.   저자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 변화 이전에 개인의 내적 변화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빛과 소금의 소명이 더 간절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런맥락에서 오늘도 우리는 복음을 붙들고 세상을 향해 서야 할 것이다. 강현규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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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룹 속에서 말하는 것을 잘해본 적이 없습니다.”“저는 숫자라면 끔찍해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저는 건강을 위해서든, 취미로든 운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일단 움직이는 것이 싫으니까요”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만의 편견과 강한 확신에 갇혀서 살고 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잘하지도 않을뿐더러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또 삶의 특정 영역에서 극단의 렌즈를 통해 자기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영역은 중간 어디쯤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회색보다는 흑백으로 사물을 보는 오류는 ‘전부냐, 전무냐?’(all or nothing)의 성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런 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은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과 수준을 지나치게 폄하하며, 무한히 확장하고 뻗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우리 안에 잠재된 천재성우리는 특정한 분야에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이 있다. 특히 강점을 적성, 천부적 재능이라고 하거나 성경에서는 ‘달란트’라고도 할 만큼 개인차가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하는 분야가 있다. 이를 두고 괴테는 ‘개인 속에 잠재된 천재성’이라는 기막힌 표현을 했다. 그런가 하면, 놀랍게도 아직 발견되지 못한 숨겨진 잠재력도 참으로 많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보물찾기와 같다. 미로 같은 인생길에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지도에 단서를 찾아 인생의 보물찾기에 몰입하다가 길을 잃고 다시 막다른 끝에 갇히기도 한다. 그곳까지 탐험하며 투자한 본전을 생각하며 모든 희망을 잃기 시작 한다. 그러다 다시 힘을 내어 금속탐지기를 대는 순간, 실로 우연히 극적으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처음 출발할 때 지도에 빨갛게 표시했던 ‘X’자리-묻혀있던 보물자리, 즉 능력, 잠재력, 소명, 성공한 삶의 목적-에 다 도착한 것이다. 어떤 재능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신화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타고난 재능을 사장시키고 있다. 재능과 기술이 유전적이라고 믿는 문제는 사실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재된 능력, 그 천재성을 전혀 펼쳐보지도 못한 채 무덤까지 그대로 가지고 간다. 분명한 것은 인류의 문명 발달사에서도 증명하듯, 사람들의 한계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어떤 검사로도 인간의 잠재력은 측정할 수 없다. 꿈을 좇는 사람은 한계로 여겨지는 지점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나아간다. 우리의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고 대개는 아직 고스란히 묻혀있다. 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 만들어진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천재성이 있다. ‘천재’라고 하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 천재성은 다른 사람의 능력과 비교해서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깃들어 있는 능력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이 바로 천재성이다. 그리고 이 천재성이야말로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내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탐험 그리고 발견우리에게 숨어 있는 천재성, 잠재능력은 하나의 가능성이지 그 자체가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천재성을 탐험하여 발견하지 않으면, 또 개발하지 않으면 거의 무용지물이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은 단순히 매장된 보물을 찾는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며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우선 가장 관심 있는 분야, 매혹적인 일,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과 기술을 점검하는 것이 탐험의 첫출발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그에 대한 정보라면 아무리 수집해도 지루하지 않고 새로움만 더해진다면 ‘천재성 발견’의 깃발을 꽂은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런 일에 대한 성취를 점검해보는 것도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여 우리가 발견한 그 보물을 원석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기술로 갈고닦으며 투자할 때마다, 한 번에 하나의 능력을 보물선에 채우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실력과 기술을 갈고 닦기 위해서는 ‘달인’을 만나야 한다. 골프의 연습에는 4종류가 있다. 마구잡이로 연습하는 것, 현명하게 연습하는 것, 어리석게 연습하는 것 그리고 전혀 연습하지 않는 것 등이다. 여기서 ‘현명하게 연습하는 사람’만이 프로가 될 수 있다. 현명한 연습은 반드시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야 한다. 전문가는 많은 시행착오를 단축시켜 주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요즘은 관련서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얼마든지 많은 기회가 있다. 그래서 발전시킬 것과 개선할 것들을 구분하여 잠재력을 꾸준히 신장시켜 나갈 때, 어느 날 갑자기 금속탐지기가 광맥을 찾듯이 우리 인생의 광맥을 찾게 된다.“산 속에서 보물을 찾기 전에 먼저 자기 두 팔 안에 있는 보물을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자. 자기 두 손이 부지런하다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이 샘솟듯 솟아나올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두 손에 비상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기의 능력을 제 때 발굴하여 나름대로 유용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되자.” -스탕달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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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열풍이 뜨겁다. 넷플릭스가 사업을 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도 나왔고 넷플릭스 사상 최대 흥행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 상품에 전 세계가 큰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흥행 직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또 다른 한국 작품이 있다.  바로 DP이다. 이 작품은 2021년8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총 6회가 전격 공개됐다. DP는 2015년 2월부터 레전 코믹스와 한겨레에 동시 연재된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다. 이 6부작 드라마는 해외 리뷰어, 유튜버들의 전례 없는 관심을 끌었다. 많은 한류 팬들이 이 드라마에서 태양의 후예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던 모양인데,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한국 군대 문화의 어두운 면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한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면서 성공했다면 DP는 반대로 그 꿈에서 사람들을 깨워 내면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실제로 K-Pop, K-Drama의 영향이 특히 큰 홍콩,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15개국에서 최고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덕분에 해외 유명 언론에도, 한국군대의 인권문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BBC는 김보통 작가가 인스타 그램에 올린 “DP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착각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말도 소개했다. 작가에 의하면 이 드라마는 2014년 한국 군대를 배경으로 한다.이 드라마의 충격은 군필자 중에서 시청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를 일으킬 정도다. 그 동안 군대 배경의 작품이 한둘이 아닌데, DP만 유독 이러한 반응을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기존 군대드라마가 한국 남성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낭만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DP는 군대를 전적으로 희망이 없는 암울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DP란 군무이탈체포전담조 (Desert Pursuit)의 약자인데 한국 군대의 경찰 격인 헌병 중에서도 탈영병을 영외에서 추적하여 체포하는 병사들을 뜻한다. 총 6회로 이루어진 DP 시리즈는 매회 각각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탈영병이 등장하고 탈영병이   체포되면서 각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이 시리즈를 세 가지 모티브로 살펴보자.첫 번째 모티브는 괴롭힘이다. DP에서 괴롭힘이 중요한 모티브인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 시리즈는 탈영에 대한 드라마이고 거의 모든 탈영의 이유가 괴롭힘이기 때문이다. 2화의 최준목 일병은 코골이가 심하다는 이유로 물이 차 있는 방독면을 쓰고 자야 하는 등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오직 잠을 더 자기 위해 탈영을 한 최준목은 지하철 안에서 수면을 취하며 이동하다 체포된다. DP에서 핵심캐릭터 중 한명인 조석호 일병도 괴롭힘의 희생양이다. 가해자들은 구타, 인격 모독뿐 아니라 “대공포 발사쇼”라는 이름으로 자위 행위를 강요하고 사타구니 주위의 털을 라이터로 태우는 등의 성폭력을 일삼는다. 이 드라마 최고의 빌런 황장수 병장은 제대하는 날 조석호에게 “형 때문에 고생 많았다. 좋은 추억도 나쁜 기억도 털자.”라고 말한다. 조석호는 가해자의 ‘쿨’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5화에서 조석호가 탈영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된다.더 큰 문제는 군대 내 괴롭힘이 일상화되고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잠을 자다 체포된 최준목에게 어머니가 면회를 온다. 어머니는 “이제 새로 시작하면 돼, 너를 괴롭혔던 나쁜 놈들 재판도 하고 처벌도 하고” 그러자 최준목이 대답한다. “걔네들이 전과자가 되거나 영창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데로 전출된다고.” 사병들뿐 아니라 한국 군대라는 시스템 자체가 괴롭힘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더욱 더 아이러니한 것은 폭력의 최대 희생자인 조석호가 폭력의 가해자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4화에서 조석호는 밤에 이등병들을 불러 내 폭력을 행사한다. 자신이 당했던 모든 말과 폭력을 그대로 후임병에게 반복한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사이 군대내 폭력은 일상이 된다.두 번째 모티브는 군대의 모습을 닮은 한국 사회에 대한 것이다. 1화에 등장하는 신우석 일병은 가혹행위를 참지 못해 탈옥을 한다. 하지만 탈영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신일병은 유흥가에서 보조원으로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 신우석은 안준호에게 빌린 라이터로 연탄불을 켜 놓고 여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 사건은 안준호가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는 신우석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 그가 군대에서 겪었던 가혹행위가 사회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안준호 역시 입대 전 이미 가혹 행위를 경험했다. 피자 배달을 하던 안준호는 잔돈을 주지 않았다며 인격을 무시하는 고객의 갑질과 밀린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의 횡포를 겪었다. 입대 후 겪게 되는 황장수 병장의 괴롭힘은 투박한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갑질에 다름 아니다. 제대한 황장수 병장이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사장의 갑질은 군대 내 가해자였던 황장수가 세상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왜 군대가 이 세상과 닮아 있는 것일까? 군대에서 의식화되고 교육받은 남성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인간 사회는 원래 부조리한 군대와 같다는 것일까? DP는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세 번째 모티브는 방관이다. 6화에서 황장수를 납치한 조석호에게 한호열은 “군대가 바뀔 수도 있잖아.”라며 자수를 권유한다. 이에 대해 조석호는 여전히 625때 만들어진 수통을 사용하는 한국군의 현실을 지적하며 “바뀌려면 머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다. 전 시리즈를 통해 군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행된 유일한 노력이다.여관에서 불을 피우고 자살한 신우석 일병의 납골당을 찾아 간 안준호는 신우석 일병의 누나를 만난다. 그녀는 안준호에게 동생이 군대에서 어땠느냐고 묻는다. 신일병이 착하가 성실했다고 대답하는 안준호에게 누나는 재차 질문한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괴롭힘을 당하는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요.” DP 최종회는 다른 모든 군인과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안준호를 쫓는 카메라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최종회의 제목은 “Onlookers” 즉 방관자들이다.한국의 20대 남성은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군대에 간다. 그것을 병역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자원하는 자리는 아니기에 군대에 “끌려 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간다. 적당히 순응하고 버티다 제대하자.” 매해 수십만의 젊은 남성들이 약 2년 동안의 강력한 병영 생활의 기억을 가지고 사회에 쏟아져 나온다. 아까의 질문을 다시 던져 보자. 왜 군대가 이 세상과 닮아 있는 것일까? 군대에서 의식화되고 교육받은 남성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인간 사회는 원래 부조리한 군대와 같아서 그런 것일까?한국 사회는 군대를 닮았다. 그 곳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남성들은 20대 초반 군대에 가서 원래 친숙한 그 문화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채로 제대를 하고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아간다. 그래서 한국의 공무원 사회도, 직장도, 인간 관계도 심지어 교회도 군대를 닮아 있다.얼마 전 한 대형 교회 목사님의 출근 장면을 티비로 보았다. “1호차 골목길을 돌았습니다.”라는 무전 소리가 들리고 곧 목사님이 중형 자동차에서 내린다. 목사님은 차렷 자세로 서 있던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예비역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단장 부대 방문 장면 같다. 악수하던 사람들은 관등 성병을 복창했을까?  여성만 있는 사회라고 해서 이러한 군대 문화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간호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태움”이라는 문화는 사람을 교육하려면 괴롭혀야 한다는 가치관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넓고 깊게 퍼지고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군대에서 상급자란 덜 일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그 “상급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책임 없는 권한을 갖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사회적 책임을 다 할 리 없다. 군대의 삶을 체화한 사람들은 일반 사회 생활에서도 소위 “부적응자”들을 소외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들은 소위 사회 부적응자들을 “고문관” 이라는 군대 용어로 지칭한다. 사회에서 뒤 쳐진 사람들을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돕는 일들에 대해 한국처럼 반대가 심한 선진국이 어디 있을까?  나는 한국 사회의 많은 모순과 문제들이 모든 남성이 강제로 군대에 가야하는 독특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DP가 제기하는 문제는 개별 사건에서 침해되는 인권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한국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크리스챤이라면 이러한 문화에 대해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양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 두고 찾아 나섰다.예수는 소위 창기와 세리와 같은 “부적응자”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는 또한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오셨다. (마20:28) 이런 점에서 군대 문화와 기독교 가치관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고, 군대 문화는 교회가 극복해야 할 것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드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 역시 PTSD를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25년전 군대 경험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25년간 DP에 묘사된 문화를 계속 경험해 왔다는 것을 새삼 발견한 충격 때문이다. 또한 군대도 세상도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방법이 거칠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조석호 일병의 마지막 말은 결국 옳다.  잘못된 것을 보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분처럼 겸손과 사랑과 희생을 통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선포하고 행동해야 한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말하듯이 말이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5-17)손민영 리뷰어

  15/12/2021
  Eastwood NSW

BTS의 등장은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다듬어진 ‘아이돌’음악산업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다. 기획자 방시혁의 인터뷰를 보면, 기존 아이돌 음악계가 얼마나 철저하게 ‘돈’을 버는 기획중심 공장으로 변해, 창작자의 개성과 창조성을 억누르고, 기존 방송계의 엘리트 연줄을 이용해 대중에 대한 접근권까지 독점해 왔는 지 잘 드러난다. 돈을 낼 수 있는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것들을 조합, 매끄럽게 가공해서,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안무를 넣고, 거기에 대중적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고도의 마케팅과 고객 관리까지 동원하는 말 그래도 ‘기획 산업’ 으로 말이다. 그러는 동안 음악 자체의 주인이어야 할 작곡자, 가수, 연주자 등은 1회성 수단처럼 격하되고, 창조성이나 사회의식 같은 것은 상업논리에 눌려 숨쉴 틈도 못 찾는다. 이에 반해 BTS는 이런 기존 산업계의 문법을 부정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생활, 활동, 창작까지 격려했기 때문이다. 때맞춰 이미 SNS로 시작된 언론권력의 해체는, 영상과 음악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방송국 네트워크를 장악 독점하는 기성 기획사들의 횡포에 맞서, BTS 기획자들은 처음부터 유튜브를 통해 직접 청중들에게 다가갔고, 특히 팬 관리에서도 비효율성을 감수하며 가수와 청중이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보장했다. 이를 통해 아미 (ARMY)라는 열정적인 팬클럽이 만들어지는데, 다른 비슷한 모임이 경험하지 못한authenticity 진정성을 강조하는, 개성, 의미,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자라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헌신, 충성, 집중도는 거의 종교적 수준이다.여기에 한국 음악산업이 그 엄청난 유학비를 들여가며 만든 전문가들을 통해 서구음악계의 첨단 기교를 따라잡게 되고, 주로 아시아계에 국한되긴 해도 한국 음악에 대한 인지도가 커진 상황은, BTS의 국제진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Black Life Matters”운동 (미국의 외형상 민주주의, 평등주의 분위기이면에 여전히 현존하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인종차별문화에 대한 비판) 속에서, 미국 주류언론과 문화계가 ‘미국의 다양성 모델’을 상징하는 예로 한국문화와 창작자들에 대해 주목을 하면서 힘을 더 받은 듯 하다. 봉준호가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BTS가 미국 각종 음악상을 휩쓴 현상들은 주류문화계의 이러한 분위기 변화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한류를 아시아권이나 서구내 아시안계들만 즐기는 하위문화 수준에서, 모두가 존중하는 위상으로 옮겨간 것이다. BTS는 이 과정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이런 분위기에 더 도약한 그룹이기도 하다이번에 나온 My Universe도 이런 흐름을 힘을 더해줄 것 같다. 특히 미영 음악계에서 인기 팝밴드 콜드플레이와의 협업은, 인기가 전 같지 않은(?!) 이 늙은 밴드에게 새로운 청중을 소개해 주었을 뿐 아니라, BTS에게는 서구주류음악계에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확인서 역할을 한다. 음악적 구성으로는 최근 팝이 그렇듯이, 유행하는 힙합과 듣기 익숙한 소프트 락적 요소를 혼합하고, 다양하고 자극적인 편집기술을 동원해, 대중의 호감도를 최대화하는 일반 상업음악 문법을 답습한다. 여기에 아이돌 장르의 특성을 살려, 여러 가수들의 짧은 역할들을 하나로 묶어, 다양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가볍기에 더 즐기기 좋은 오락성을 선사한다. 그동안 한류는 감정의 과잉, 중심 서사의 부실 (전체 이야기의 초점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산만함)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지만, 여기서는 도리어 이것이 더 낳은 마케팅 요소가 된 듯하다. 전체의 맥락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고, 조각을 띄어 여기에 의미와 감동을 부여하는 데 더 익숙한 틱톡세대에게 더 큰 매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My Universe는 가사나 MV 이미지의 전체 서사, 혹은 전체 흐름이 뭔 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BTS의 청중들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의 조각, 그리고 그동안 관계와 소통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를 증폭시키는 도구로 BTS를 사용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극적 사용자의 자세는 ‘서사와 저자의도’에 대해 무관심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고, 또 이런 문화를 강화시킨다. 보통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일단 걱정스럽게 보는 신앙인들도 많지만, BTS의 경우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팝문화가 담은 가사와 이미지로 인해, 청중에 미칠 영향을 걱정해 왔다면, 이제는 해석의 주도권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뜻, 청중들의 더 적극적인 해석과 걸러 보기를 당연히 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 속의 가치와 신앙 기준이 분명하다면, 이 음악은 당신의 관점을 표현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화 매체는 그 자체가 가진 메세지와 저자의도라는 경계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때문에 이들의 가사와 이미지도 간접적으로나마 계속해서 청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My Universe의 노래 가사 자체는 우주를 바탕으로, 인간 관계속에서 경험하는 자기회복, 자신감과 정체성 발견을 노래한다. 이점에서는 기존의 팝 문화 가사에서 나타나는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 경향은 여전히 강하게 확인된다.  많은 BTS 노래의 가사들 처렁, 이 노래에 대해서도 최근 청소년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사회적 인증압력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사자체가 그런 성격이 분명해서 라기 보다는, BTS의 주소비세대들이 없어진 기회, 커지는 경쟁 속에서 기본적인 자존감까지 흔들리는 현실을 반영한 자기이미지의 투과가 가깝게 보인다. 그런 깊은 메시지를 담기엔 가사의 언어가 너무 간단하고 가볍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청소년, 청년들이 느끼는 자존감의 위기 앞에서, 성경적 답변은 훨씬 깊고 무겁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가능해진 창조자와의 관계 회복과 이를 경험케 할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이 답이라는 것, 그리고 이 답이 우리와 이웃을 포함한 온 창조세계와의 온전한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BTS의 my universe는 특히 관계, 서로의 사랑을 통한 자존감의 회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성경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자기 상실 경험에 대한 답이 자기에 집중하거나 나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 집정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관계를 통한 해결책은 또다른 상실로 이어지기 쉬운 인간적 땜방에 불과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결국, 인간 위기는 창조자, 이웃, 자연세계 모두가 서로 소외되어 버린 영적 현실을 인식하고, 창조주의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두가 연결될 수 있음을 설명해 주고 싶은, 간절한 아쉬움이 남는 그런 음악이었다. 이전의 수많은 일반음악 속에서도 느꼈듯이 말이다.어쨌든 전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핀잔하기엔, BTS의 음악은 ‘틱톡’처럼 소비되고 유통되는 음악임을 이해해 줘야 할 것 같다. 다행히도 돈의 지배가 너무나 노골적인 음악계에 대한 반성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도, BTS는 듣기가 덜 죄스럽다. 위에 고민했던 성경적 주석을 달아줄 수고를 더 한다면, BTS에 같이 열광을 하는 것도 괜찮은 신앙인의 삶의 일부가 될 것 같다.김석원 리뷰어

  30/11/2021
  Eastwood NSW

한국이라는 배경여태까지 한국 밖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는 niche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본의 ‘스시’만큼 익숙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minor한 매력, 나만 알고 싶은 인디밴드 같이 특별하고 조금은 비밀스러웠으면 좋다 여겨지는 그런 문화였다.언뜻 스쳐 들어본 먼 곳의 작은 나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을테고, 화려하면서도 비굴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바로 그 점이 세계적인 열광의 불씨를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중 하나 지하철 역은 초현대적인 미래 영화를 보는 것만큼 단정하고 세련되어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성기훈은 빛 바랜 흑백 사진처럼 세피아 감성에 물들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빈부격차의 피해자, 사회의 끝자락에 버둥대는 삶을 적나라하고 처량하게 담아냈다. 마치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면서, 오징어게임은 머나먼 작은 나라 한국의 진입장벽을 낮췄다.영상에서 진행되는 게임들은 한국 어린이들의 전통놀이로 이루어진다. 각 나라에서의 유니크한 버전이 있는 놀이들이지만, 추억의 회상을 통해 한국적인 색감을 입혀 나갔다. 어린이는 없는 어린이의 놀이에, 어린이는 참여하지도 이해 하지도 못할 피 터지는 처절한 경쟁이 겨뤄진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이 드라마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 나간다.사랑할 수도, 편을 들 수도 없는 등장인물들‘오징어 게임’의 특징은 길지 않은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인물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그 중 성기훈과 조상우를 통해 감독은 인간내면의 더저 깊은 아래로 숨길 법도 한, 가장 처절한 탐욕과 잔혹함을 증폭시켜 화면에 담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감독의 짓궂은 으름장이 들린다 -  ‘옳고 그름, 선과 악, 누가 더 나쁜 인간이고 좋은 인간인지 어디 한번 나누어봐라.’냉철하고 이득과 불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조상우는 시청자가 판단을 내릴 때 마다, 미미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비친다. 한국 사회에서 성기훈보다도 밑바닥으로 취급 받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에게 전화와 차비를 내어주는 장면은, 극 초반에 시청자들의 판단력을 흐린다. 사람이 한번쯤은 실수를 할 수 있지, 그래 사실은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인가 보다. 감독은 이 딜레마를 거기서 놔주지 않는다. 그는 고독하지만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만은 계속 걱정한다. 나름 염치도 있고 부끄러운 줄도 아는지 차마 얼굴을 내비치지 못한다. 그저 먼 곳에서 복잡하고 극 중 가장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 볼 뿐. 오징어 게임에 돌아가서 달고나 모양을 고를 때, 찰나의 순간이지만 고민하는 상우의 모습, 목소리까지 내면서 기훈을 붙잡는 그가 선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여지를 다시 한번 던진다. 후에 게임의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고 그가 뱉는 말들은 가시 같이 날카로워진다. 끝내 ‘아, 그는 인간다운 모든 부분을 상실했구나’라고 결론을 내릴 때쯤, 그는 양심의 무게를 안고 있었음을 자결로 보여주고, 아들로서의 책임감과 후회 속에서, 기훈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반면에 쓸모는 없어도 사람이 참 좋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성기훈은 ‘저 사람 저렇게 물러서 어떡하지’ 걱정을 시키다가도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는 반전의 남자다. 경마에 미쳐 인생 한방의 꿈을 쫓는 듯한 도박중독자로서의 모습은 코믹하지만 그 내면과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노름돈을 타는 순간, 사체업자들에게 끌려가 화장실에서 매몰차게 맞는 그는 아들로서도, 아빠로서도 책임감을 상실한 듯 보인다. 딸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한다고 하기에는 그는 경마의 유흥을 격하게 즐기고, 그래도 아들이라고 최선을 다해 돌보는 노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짓이 익숙하다 못해 무디어져 있다. 그에게도 물론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과거의 사건을 떨쳐내지 못하고 성장은 커녕 철이 들지 못한 모습은 상우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유약하지만 인간 냄새가 난다.그는 오징어 게임 내내 긴장을 늦추 지도,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다. 눈빛은 불안하게 떨리기 일수고, 언제든지 상금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 최선은 구슬치기에서 극중 내내 극진히 돌보고 함께했던 오일남을 속이고 져버리는 행동까지 이르렀다. 패배의 끝은 죽음 임을 알면서도, 기훈은 자신에게 선하게만 대했던 이의 병을 이용해서, 애초부터 정직함이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군다. 게임에 질 위기에 처하자 도리어 화를 내기까지 한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부탁했던 상우와는 반대로, 마지막까지 딸을 저버리고 미국 행 비행기를 타지 않는 기훈은, 인간이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의 표본이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어그러진 그리스도인의 모습한국 사회를 최대한 다양하게 담아내는 것이 감독의 의도라면 그리스도인은 아마 빠트릴 수 없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초대부터 그래왔듯이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는 온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에는 부정적인 이유로 더 많이 집중을 받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극 중에서 기독교인으로서는 보기에 불편했지만 강렬했던 부분들이 있다. 낭자한 피와 폭력성, 인간의 잔혹함을 통해 보여지는 죄성에 대한 모습은 둘째 치고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극도로 왜곡해서 담아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먼저는 기독교인 참가자로 그려진 244번이다. 말의 앞뒤도 맞지 않고, 스스로 유리한 대로 하나님을 가져다 쓰는 그는 외형도 비호감인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 중년 아저씨. 광기어린 그의 모습은 보고 있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희생도 거부하며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다 죽게 된다. 비정상적인 행동과 광기가 번뜩거리는 그 눈빛은 기독교의 본질을 모두 상실했다. 세상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는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 나아가 주연급 임팩트를 가졌던 지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만행을 공개하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교회 목회자와 관련된 여러 성 스캔들을 모티브로 가져온 것일까? 지영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목사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삶이 불행을 넘어 기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녀에게 지옥보다 더한 불 구덩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목회자에게 고통받았던 그녀의 마지막이 한편으로는 희생과 배려를 담은, 그나마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감독이 그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고 강렬하다.여기서 우리가 고민하고 넘어가야하는 점은, 세상이 기독교를 바라볼 때 갖는 위와 같은 왜곡된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이다. 단순히 화를 내며 단호하게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잘못이라고 시인하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것일까?감독이 그려내고 싶었던 어그러진 기독교의 모습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극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그 의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게임을 우승한 기훈이 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 쳐졌을때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던 그리스도인은 뱀 같은 눈빛으로 기훈의 상태를 묻기도 전에 전도를 시도한다. 전도에 열중한 나머지 기본적인 사람으로서의 도리도 챙기지 못한 넌더리 나는 모습이다.우리는 왜곡되었지만 진실이 담긴 이 현실 속에서 진리와 사랑을 더욱 붙들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는 드라마 속에 그려지고, 또 널리 퍼지게 될 어그러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경계하며, 또 다짐해야 할 것이다 - 현실판 244번이 되지 않기 위해.돈과 죽음, 그리고 사람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문화사회와는 거리가 먼 한국이지만 그 중에도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을 끌어 모아 놓은 것에서 분명한 감독의 의도다가 엿보인다. 누구든 돈은 필요하고, 또 돈에 쫓겨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다. 개천에서 용 난 엘리트도, 탈북한 소녀가장도, 큰소리와 핵 주먹이 특기인 조폭도 돈을 탐욕하고 돈 없이 살기를 거부한다. 목숨을 건 사투를 기꺼이 감내한다. 극에서 그려지는 돈의 값어치는 딱 그만큼이다. 사람의 목숨 값. 그 값은 자신의 목숨에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목숨도 자신의 돈을 위해 기꺼이 취한다. 망설임은 그저 스쳐가는 찰나의 바람이다.대회의 첫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참가자들은 게임에서의 탈락이 죽음이라는 걸 모른다. 첫번째 탈락자가 총을 맞고 쓰러진 직후에 상황이 이해가지 않지만 무언 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잇따라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겁에 질려 허둥지둥, 영문을 모른 채 그저 그 곳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 발버둥이 오히려 죽음을 빨리 불러온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하지 못한다.어쩌면 이 사람들은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돈의 절대적 힘에 이미 한번 좌절하고, 공포에 떨며 삶의 끝을 상상했던 경험이 있다. 투표를 통해 극적으로 이 대회에서 빠져나간 뒤, 다시 돌아오게 되는 참가자들이, 그 절박함이 그 증거다. 한발자국 물러서서 보면 감독은 그저 정신나간 사람들의 광기를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나 고민해본다.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누리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생명의 소중함, 선,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지만, 돈이던 죽음이던, 피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람으로 하여금 내던져버리게 만든다. 메이저 리그 입성오징어 게임은 전세계 앞에서 한국을 알렸다.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광기를 가득 담아서. 화려하고 정갈한 그림과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기, 그 내면에는 오늘 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경험하고, 이해하고, 살아내고 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오징어 게임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다. 살아 있다면 모두에게 잠재 되어있는 필사적인 발악을 내숭 없이 증폭시켰다. 거기에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이라는 감미료를 첨가해 대형 스크린을 가득 매웠다. 그럼으로 감독은 흔히 말하는 사이다를 선사하고, 보는 이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민주홍 리뷰어

  02/11/2021
  Eastwood NSW

시작하는 글2020년 최고의 모바일 게임을 뽑으라 하면 단연 원신을 뽑을 것이다. 골든 조이스틱에서 전체 2위를 차지했고, GDC 어워드에서는 베스트모바일게임상을 수상할 정도로 한 해 동안 많이 사랑받아 온 게임이다. 게임 공개 당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표절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금번 리뷰는 게임의 특징과 내용,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게임의 리뷰 진행하고자 한다. 기본적인 게임의 정보는 아래와 같다.게임제목: 원신(Genshin Impect)출시일: 2020년 9월 28일가격: 무료개발사: 미호요(miHoYo)등급: 12세 이용가게임플랫폼: iOS, 안드로이드, PC, PS4/5, 닌텐도스위치, 등게임소개먼저 이 게임은 중국의 미호요(miHoYo)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오픈월드 기반의 RPG 게임이다. 미호요의 첫 번째 게임 ‘붕괴3rd’가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기에 ‘원신’도 처음부터 많은 기대 속에 발표된 게임이다. 현재 iOS, 안드로이드는 물론 컴퓨터와 플레이스테이션 및 닌텐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렛폼으로 출시되었다.게임의 스토리 라인은 헤어진 남매를 찾아(유저는 처음 남매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음) 떠나는 여행으로 ‘티바트’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여행을 통해 전개되는 스토리를 미션을 통해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기본적으로 오픈월드이다보니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로 지역탐사, 암벽, 수영, 비행 등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음식물의 채집과 함께 목재, 광물 등을 모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요리시스템과 광석조합, 연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미의 요소가 있고, 그 속에서 직접적인 전투와 비경(던전)탐험 등을 통해 방대한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다. 기본 4명의 캐릭터를 선택하여 모험을 진행하며, 각각의 캐릭터는 전투와 같은 행동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도 있지만, 모험가의 경험(서책)을 통해 레벨을 쉽게 올릴 수 있다. 또한 필드 탐험 등을 통해 모험레벨을 올려 더 다양한 퀘스트를 받아 진행할 수 있으며,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만의 원소 및 무기체계는 다양한 전투방식을 즐기는 재미를 더해준다.게임의 장단점먼저 이 게임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뽑으라고 한다면 방대한 맵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다. 오픈월드 방식에 걸맞은 다양한 퀘스트와 스토리라인, 그리고 유저 스스로 자유롭게 여행하며 만들어가는 진행방식은 모바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음을 보게 된다.둘째로 게임 진행을 위해 과도한 과금을 유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RPG게임의 특성상 캐릭터나 무기를 뽑기 위해 사람들의 과금을 유도하고, 그것으로 게임 회사들이 생존하기 때문에 확률이 낮은 뽑기형 아이템을 사야만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유도한다. 물론 원신이 전체 게임매출 1위라는 점은 과금이 포함된다는 것이지만, 다른 게임들처럼 과금없이 게임을 하려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점이 강점이다.끝으로 마일드한 게임의 흐름이다. 과격하고 부수고 때리고 죽이는 방식의 게임들이 주를 이루는 게임시장에서 원신은 밋밋할 수 있는 RPG장르로 승부한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대화체나 모든 면이 다 마일드한 수준의 대화들인데도 불구하고 게임 순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게임의 즐길거리를 배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과 그래픽뿐 아니라 원소와 직업군에 따른 다양한 조합방식은 분명 심심한 액션의 느낌 속에서도 지속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게 만든다.반면 게임의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분명히 보인다. 먼저 모바일 환경으로 개발되었음에도 모바일에서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Crash(게임이 중간에 튕겨서 꺼지는 현상)이 종종 발견된다. QA시스템을 갖추고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게임의 안전성이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둘째로 게임의 마일드함이 어느 수준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 나타나도 의심하지 않는다. 마음이 상할 말에도 웃으며 넘긴다. 성물이 도둑맞았다고 하는데도 의심이 되니 같이 동행해 달라는 친절한 안내를 한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화체계에서 오는 괴리감은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신앙의 눈으로 본 원신먼저 원신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그만큼 모바일에서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 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 게임을 1년 이상 즐기고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이 폭력적이지 않고,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모험과 퀘스트를 즐기게 하는 것들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하지만 게임의 배경에 대해서는 확실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분명 RPG 게임 속 세상이 허구이기에 이를 감안하고 게임을 즐기면 된다 말하겠지만,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보면 걸리는 몇 가지 장치들이 존재한다.가장 먼저 게임의 제목이다. 원신(源信)은 일본의 고승으로 정토사상과 관련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정토사상이 무엇인가? 부처의 자비로 구원을 받고 싶다는 종교적 욕구임과 동시에 구제불이나 보살이 사는 곳(정토)을 의미한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도 원신의 의미를 언급할 때 ‘신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신의 눈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신과 같은 존재로 세상을 살아간다.둘째 스토리 라인에서 보이는 강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바람의 신인 벤티는 스스로 신이지만 신으로서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는다. 자유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가 용과의 싸움에서 한 말을 보면 그 의미가 더 잘 드러난다. ‘누구도 이 땅을 다스릴 책임을 지게 해서도 안되고 모두가 자유롭게 서로 세워가는 도시가 되어야 해!’우리 모두가 서로를 구속할 필요도 없고 서로가 자유롭게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상대화 된 포스트모던적 사고체계를 메시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한다.이상에서 살펴본 내용들은 다른 게임에서 비교적 숨겨진 메시지처럼 등장하는 사상들이지만, 원신에서는 아주 선명하게 전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나가는 글게임이란 장르에서 신앙을 이야기할 때,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교육용 게임, 신앙생활 게임이 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까? 게임은 즐거워야 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해야 하고, 나름 중동석이 있고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즐기는데, 그 모든 것을 제하고 나면 아마 남아있는 게임은 하나도 없으리라 생각된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게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 자녀들과 이해를 나누어야 한다.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평가해 보고, 이야기를 지속해야 한다. 원신은 수많은 이야기거리와 방대한 세계관, 하지만 그 속에서 발견되는 불편한 메시지까지 많은 대화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선택은 자신들의 몫일지 모르나, 늘 이야기하듯 제재보다는 같이 나누는 가운데 두 도성의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20/10/2021
  Eastwood NSW

이혼, 결혼의 또 다른 과정이자 새로운 관계일 수 있을까<결혼 이야기>는 이혼의 과정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일까?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이혼이 결혼의 끝이나 실패가 아니라, 결혼의 또 다른 과정이자 새로운 관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혼 후 남남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자녀가 부모 사이를 오가며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이혼의 상처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뒤에는 오히려 상대에 대해 애틋함이 생기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전남편이나 전 부인을 만날 수 있게 되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결혼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영화를 보았다.영화의 시작은 찰리(애덤 드라이버)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내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인지 무심한 듯 가볍게 툭툭 내뱉는 찰리의 목소리에는 니콜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다. 찰리는 “니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는 칭찬으로 독백을 마무리한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니콜도 찰리가 어떤 좋은 점을 지닌 사람인지 들려준다. 니콜은 찰리에게서 자신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찰리는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반면에 자신은 확신이 없어서 정반대라는. <결혼 이야기>의 포스터는 여유로운 캘리포니아의 감성을 지닌 니콜과 현대적인 뉴요커의 감성을 지닌 찰리가 얼마나 다른지 잘 보여준다.남자와 여자는 다른 존재<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도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참 다르게 지으셨다.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생활하게 되면 남녀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다름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만 옳다는 이기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불화를 낳게 된다.“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와를 칭송했던 아담은 타락 이후 하와에게 자신의 죄를 떠넘기면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고 하와를 지칭한다. <결혼 이야기>의 초반부는 이렇듯 서로 다른 존재인 남녀가 함께 부부 생활을 공유하면서 느끼게 되는 ‘차이’를 말하고 있다.이혼 전쟁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임재영화는 시편 118편 24절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한 것이라’는 찬양을 흥얼거리며 커튼을 열어젖히는 니콜의 엄마를 보여주면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동한다. 이후 영화의 중반부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등장하면서 이혼 소송 과정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이혼 소송은 어마어마한 변호사 비용과 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전쟁이다. 이를 조롱하듯 찰리가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 의자에 놓인 쿠션에는 ‘Eat, drink and remarry’라는 글씨가 우스꽝스럽게 박혀 있다.두 사람은 왜 이혼이라는 난장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이혼을 더 원하는 쪽은 니콜인 것 같다. 오랜 세월 결혼 생활에 대해서 성찰하면서 점점 왜소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본 니콜은 변호사 앞에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영화는 중반 이후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면서 서로의 잘못을 후벼파기 시작하면서 절정에 치닫는다. 해서는 안 될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찰리가 고통스럽게 절규하며 “Oh, God!”를 부르짖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니콜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내가 그들에게 한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하나님이 행하시는 영적 심장의 이식 수술을 가리키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언약을 암시하는 에스겔 말씀은 내게 있어 부부 관계의 회복이 필요할 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혼 이후의 찰리와 니콜, 두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Being alive!지난했던 이혼의 과정이 합의되고 찰리는 뉴욕으로 돌아온다. 극단 동료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찰리는 뮤지컬 배우처럼 'Being alive'를 열창한다. 마치 결혼 생활의 희로애락에 대한 뒤늦은 통찰을 고백하듯.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중략) 내가 이겨나가게 해 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살아가자”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손수 남자와 여자를 부부관계로 맺어주시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도록 주례하셨다. 하지만 타락 이후의 부부는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아내와 남편에게 주신 에베소서 5장 말씀도 '주께 하듯' 하지 못해서 혹은 '그리스도'의 존재를 망각해서 '복종'과 '사랑'이라는 계명을 무거운 율법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부 사이의 연합은 무엇일까. 기독교에서는 부부 사이의 연합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 오묘하고 큰 비밀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성부-성자-성령 각각의 인격이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도 그러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니콜이 결혼생활 10년 동안 찰리에게 맞춰 사느라 나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자기희생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주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양보나 희생은 기쁨이나 상급이 될 수 없다.사랑은 율법이 아니다오래 기억될 <결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의외로 작고 사소한 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혼 이후에도 계속될 찰리와 니콜의 결혼 이야기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노아 바움백의 자전적 스토리를 영화화한 <결혼 이야기>는 이혼이라는 '선택'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것만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혼 이후, 상처를 어떻게 돌보고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에 있다.<결혼 이야기>에는 크리스천에게 불편함을 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지만 부부 관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갈등과 상처를 어떻게 보듬으며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서 묵상하게 만드는 ‘결혼’에 관한 영화다.<결혼 이야기>에는 크리스천에게 불편함을 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지만 부부 관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갈등과 상처를 어떻게 보듬으며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서 묵상하게 만드는 ‘결혼’에 관한 영화다. 이주영 리뷰어

  05/10/2021
  Eastwood NSW

줄거리 (스포일러 주의!)킹덤 아신전은 남으로는 왜구의 위협이 증가하고 북으로는 파저위 여진족이 세를 확장하던 혼돈의 조선시대  북방의 끝 압록강 유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아신은 조선 땅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 가운데 “성저야인”이라 불리던 이들의 자식으로 이들은 여진족에게도 조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주인공 아신은 번호부락이라는 마을 공동체 족장의 딸로, 그들은 당시 가장 사회적으로 천대시받던 백정집단이다. 아신은 병환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백년 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폐사군안에 들어가게되고, 그곳에서 발견한 동굴안에서 불사초를 담은 내용의 벽화를 보게 된다.한편 여진족 '파저위' 부족 일행은 조선의 삼을 캐기 위해 “폐사군”으로 향했고 모두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조선 최북단을 지키는 군관 민치록은 행여 이 사건이 여진족 무리가 규합하여 왜란으로 가뜩이나 혼란한 조선을 위협하는 불상사를 우려한다. 하여 그는 아신의 아버지 타합을 시켜 그것이 조선인이 벌인 살인사건이 아닌 단지 호환이라고 소문을 퍼뜨리지만 결국엔 모든게 탄로가 나고 만다.그 결과 조선의 밀정노릇을 한 타합은 여진족들에게 손발이 잘린채 죽는날을 기다리며, 번호부락 사람들은 모두가 몰살을 당하게 된다. 조선사람에게는 천한 상것으로 취급받고, 동포인 여진족에게는 배신자로 치부되었던, 그러면서도 조선인으로 관직을 받는게 희망이었던 “성저야인” 그들의 최후이다.  아신은 이 모든 불행이 민치록을 비롯한 조선인과 여진족 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며 생사초를 통한 복수에 나선다. 이제는 좀비가 되어버린 마을 사람들에게 아신은 절규한다. “조선 땅과 여진 땅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고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왜 좀비물이 인기일까?과거 공포물에 나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들은 전율과 초능력을 갖는것에 대한 사람들의 로망스를 상징했지만 좀비가 된다는것과 같은 자극적인 면은 없다고 말한다. 당시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초능력으로 인해서 우리가 두려워했다면, 좀비의 경우는 우리 자신이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음울한 사실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우리와 세상을 기꺼이 공유했지만 좀비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킹덤아신전의 배경은 현대가 아닌 과거 조선 시대로 설정함으로서 관객에게 객관적 입장에서 공포를 즐기도록 했고, 왜구및 여진족등 외침의 위협이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의 중심(해원조씨)은 썩을대로 썩어있는 정치상황이 우리에게 충분히 이해되며, 여진족, 폐사군, 생사초등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에 기반하여 민치록의 “애국충정”으로 스토리를 전개한 것이 영화 흥행을 가져온 요소가 아닌가 싶다.그렇다면 왜 좀비가 영화나 게임등 문화컨텐츠 여러 영역에서 뿌리잡게 되었을가? 그것을 대중문화가 그 당면한 시대가 처한 환경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수 있겠다. 오늘날과 같이 이상기후나 자연재해가 속출한다든지, 폭탄 테러리스트나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더 이상 국가들의 권한밖에 있으며, 국제협약과 기구들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일때 이러한 좀비물이 유행한다는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더욱이 코로나와 기후이변등으로 대변되는 오늘낭의 위기상황과더 나아가 종말에대한 우려까지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좀비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이티 부두교주술사의 마술에 빠져영혼이 통제당한 채주술사의 노예처럼 일한다는그 좀비들과,  존 스토트가 '제자도'에서 지적했던 다원주의, 물질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외모 지상주의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세상 풍조를 따르는 우리들과 과연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생명의 복음이 퍼져야할 이유킹덤 아신전의 색상은 죽음색이다. 아신의 세계관은 냉소주의이며 허무 그 자체이다. 그녀가 원하는것은 절망에서 나오는 복수이며 죽음과 파멸일뿐 그 어디에도 희망이나 미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저변엔 무엇이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세지는무엇일까? 민치록이 그녀의 요구에 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치록은 그렇게밖에 할수없는 이유가 나름 있지만 말이다. 민치록, 파저위 여진족, 아신의 행동은 그들 자신들만의 정당한 이유에 근거한다.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빛의 종교이다.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인도해 내는게 복음이다.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는게 우리이다. 기독교의 색상은 하늘과 진실을 말하는 푸른색이거나 봄으로 표현되는 파릇파릇한 초록색이다. 순수와 순결, 거룩의 흰색이라고 해도 좋겠다. 빛의 상징인 노란색도 맞겠다. 아뭏튼 죽음색과 대비되는 색인것만은 분명하다.크리스천의 가치는 믿음 소망 사랑이다. 아신에게는이 세가지 키워드가 단지  “복수”일 뿐이지만... 영화는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할수 있는지를 말해준다.영화는 우리에게 좀비가 되라고 떠다미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좀비됨을 거부하고, 좀비가 아닌 참 사람이 되어, 희망의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말한다. 그런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남아 있느냐고도 반문한다. 그 물음에 우리는 무엇을  답할 수 있는가?어떤 이유이든, 어떤 형태로든 세상은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너희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그러한 질문에 접한 우리가, 그리고 교회가, 행여 생존을 위해 뒷좌석에 밀려나 나 혼자만의 안위만을 간구한채 웅크리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21/09/2021
  Eastwood NSW

말라가는 대지에 갖힌 말라버린 영혼들영화 “드라이”는 광활한 대지를 먼지 바람으로 덮어버리는 가뭄처럼, 인간의 죄성에 의해 갈라지고 황폐하게 된 인간의 현실, 그리고 죄의 결과에서 영원히 피할 길이 없음을 잘 드러내는 영화다. 영국계 호주 작가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주정부 영화부서에서 지원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그렇듯이, 소박하고 원시적이기까지 한 호주 환경을 배경으로 이야기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사건 전개로 진행된다. 여기에 산만의 여지가 없을 만큼 집중적인 카메라의 포커스 앞에서, 여과없이 드러나는 호주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단순한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모든 것들을 드러낸다.이 영화의 배경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시골 마을 케와라, 이곳에 젊은 농부루크가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다. 영화의 시작은 루크의 옛 친구인 연방경찰 폴크가 장례식을 위해 고향에 갔다가 루크의 부모님의 부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면서 시작된다. 죽은 루크의 아내가 남긴 메모에서 ‘그란트’란 이름이 발견되고, 루크의 농장을 탐내고 있었던 ‘그란트’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그란트는 폴크가 살인자로 의심받아 그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었던 죽은 엘리의 오빠였기에, 사건을 팔수록 폴크의 옛 상처들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의외로 실제 범인은 폴크에게 가장 교양 있게 대했던, 이 마을과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교장 휘틀럼으로 밝혀진다. 노름빚에 몰린 그가 학교 지원금 (그란트)을 사취하는데, 그 사실을 루크의 아내가 밝혀내자 살인사건을 벌이고, 이를 모두 루크의 행위로 뒤집어씌웠던 것. 이 사실을 밝혀낸 폴크는 과거 친구들을 생각하며 엘리가 죽었던 냇가로 갔다가, 엘리의 가방을 발견하고 엘리를 죽인 것이 엘리의 아빠이자 오랫동안 그녀를 학대했던 엘리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다시 마을로 향하며 영화는 끝난다.이 영화는 세가지의 배경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여러가지 메시지를 우리에게 도전한다.오랜 가뭄으로 황막해진 대지는, 개척정신과 기술 발전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연세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뭄은, 호주에서는 화석 연료 문명시대의 부작용을 말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대자연의 제약을 보여주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토지 매매’에 대한 이해 갈등은 환경문제도 결국 이를 통해 반응하는 인간에 의해 더 큰 모순과 문제,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드러낸다.이런 광활한 대지에 소박하게 놓인 마을은 인간이 그동안 보여준 모험심과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모이면 생기는 모순, 특히 자기 죄악을 감추기 위해 희생양을 세우는 데 거리낌 없는 인간 군집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우리 인종, 우리 가족, 우리 그룹을 앞세워 벌어지는 셀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이, 이 한심할 만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졌던 교회가 이들의 삶과 가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별로 기독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와 신앙에서 말하는 사랑과 은혜가 노예제도, 백호주의, 인종차별이라는정치적/ 사회적 통념이나 경제적 이해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했던가.  그나마 장례식장이라도 제공해 개인들을 위로해 준다는 정도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의 묘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희생된 엘리와 그 희생양으로 마을에서 도망가야 했던 폴크, 그의 탈출은 결국 남은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마을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축복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도록 자신을 이용했던 친구, 루크의 죽음 앞에서 그의 억울함을 푸는 과정이 자신과 엘리에 대한 진실 규명으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삶에서 성공과 실패의 구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다. 동시에 폴크에게 가장 친절했던 교장 위틀럼이 루크를 죽인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겉모습과 교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이 영화는 기독교나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아픔, 갈등, 모순들은 우리가 가리고 싶어하는 인간죄성을 잘 보여주는 예화 역할을 한다. 그냥 보기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 손으로 해결 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직접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창조자의 사랑을 알기에, 이 영화는 은혜를 더 분명히 보게 하는 ‘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석원 리뷰어

  07/09/2021
  Eastwood NSW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의 혼인 건수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인구 변화, 사회/경제적 상황, 인식 변화 등의 여러 요소들로 인하여 2012년부터 9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교회 안에 결혼하지 않은 지체들이 증가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동체 안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고 믿고 있는 교회 안의 분위기 때문이다.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일까? 마치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듯한 저 발칙한? 질문에 답해 주는 웹툰이 있다. 안정혜 작가의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연스레 묵인하고 감당해야했던 성차별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여성 혐오적인 마음을 발견했다. 그 마음과 함께 성차별적 신학이 정당화된 교회 안에서 남성들에게 권위가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맞는지 알기 위해 이 작품을 시작했다.‘비혼주의자’와 ‘마리아’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누군가에게는 제목부터 불경스럽게 느껴질 이 웹툰은 참 흥미롭다. 마리아라는 한 청년이 비혼주의자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한국 사회와 교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탄탄한 스토리로 엮어냈다. 결혼을 준비하던 마리아는 예비 배우자에게 상처를 받아 비혼을 선포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나 동생 한나를 통해 참석하게 된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신랄한 논쟁을 하고, 예비 배우자였던 사역자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을 돕는 과정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해 나간다.“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써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그거는 아니지. 니 언니 시집 보내기 전까지는 한나 니도 안 되는 것이여.”“너 미쳤니? 너 그리스도인이야! 예수 믿는 사람이야!! (결혼은 당연히 해야지.)”“나는 당연히 결혼은 창조 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일단 여성 그리스도인은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제일 소중한 사명인 것처럼여기는 분위기”“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어도 보지 못했다.”“목사님은 저한테... 그냥 아버지 같은... 영적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우리가 흔히 교회 안에서 듣는 이야기들이다. 이 웹툰은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독서 모임을 통해 거침 없이 논쟁을 하고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교회 안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진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교회와 신앙에 회의적이었던 마리아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남성과 여성, 그리고 교회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고 참된 신앙에 눈을 뜨게 된다.이 웹툰은 자연스러운 전개 가운데 유교적 문화, 가부장적 사고방식, 성차별의 기저에 깔린 성경 이해와 해석, 페미니즘, 사제주의, 그루밍 성범죄, 현실에 맞지 않는 교단법,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 여성 혐오, 남성의권위를 강조하는 교회 안의 교육, 우상숭배 등의 문제들을 잘 다루었다. 이를통해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에 있는 남성들에게는 던져진 문제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반성을 돕고, 여성들에게는 스스로 답을 찾아 자립 가능한 신앙의 길을 걷도록 의식을 깨워주는 웹툰이다. 신앙은 개인의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향유하는 것이다.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대표적 성경 구절은 창세기 2장 18절과 3장 16절이다. 2장 20절의 돕는 배필의 ‘돕는’을 뜻하는 히브리어 ‘עֵ֖זֶר(에제르)’는 보조적인 도움이 아닌 스스로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가 도움을 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주로 하나님의 도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을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3장 16절의 남자가 여자를 다스린다는 내용 역시 죄로 인한 저주의 일부로써 주어진 것이지 창조 질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면상 다 다루지 못하지만 웹툰 안에는 이러한 설명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첫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창조 질서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일까? 팀 켈러에 따르면 세속주의는 개인을 우상으로 여김으로써 가정을 거부하지만, 뿌리 깊은 전통 종교들은 반대로 가정 그 자체를 우상처럼 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단 기독교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는 가정과 양육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온 것이다. 스탠리하우어워스는 《교회됨》이라는 책에서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적 종교들과 다르게 ‘비혼’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팀 켈러는 자신의 책 《결혼을 말하다》에서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 독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좋은 조건이며, 결혼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고 하였다.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에 대해 압박감을 주지 않았다. 당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상속 받을 자녀가 없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머지 않아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며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믿음 가운데 독신을 선택하는 것을 권하기도 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결혼도 독신도 다 복음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전 7:7).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동시에 비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는 포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결혼하고 출산을 하는 것만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아니다(창 1:27-28). 문자적인 해석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선교사들을 앞세워 전쟁과 침략을 일삼던 역사의 전철을 밟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뒤에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라는 명령도 주셨다. 단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너머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종종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들과 성경적 가치를 혼동하곤 한다. 성경적 가치들은 문화와 함께 전승되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혼과 비혼, 모두 복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혼인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복음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이 웹툰은 떼 본 적 없는, 주체로서의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떨렸다. 만약 당신이 그리 길지 않은 이 웹툰을 끝까지 보게 된다면, 굉장히 큰 유익과 도전이 될 것이다.Jona Lee 리뷰어

  24/08/2021
  Eastwood NSW

빛과 어두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선택 앞에서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너무 뻔한 답이 나온다고 느껴지는가? 그러나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라면 어두움 가운데서 희망을 선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우리는 구원의 감격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영적 도전’은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원작명 ‘The Shawshank Redemption' 의 직역이 쇼생크 구원 혹은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면, 영적 도전을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1994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된 흥행작들 때문에 당시에는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비디오로 출시 되면서 전세계 관객들이 뽑은 인생영화 1위로 인정을 받았다. 아마도 영화가 제시하는 구원이란 주제가 모든 인간 내면에 울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자유가 없는 곳에는 희망도 없다/ 희생을 통한 구원 경험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희망이다. 희망은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고, 자유한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은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쇼생크 감옥에서는 이런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밥을 먹으라면 먹고, 씻으라고 하면 씻고, 화장실을 가라하면 가는,수감자들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상실된 상태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자신의 이름 마저도 번호로 불려질 뿐 이었다.여기에 성공가도를 달리던 부은행장 출신의 젊은 인재, 앤디 듀프래인가 쇼생크 감옥으로 들어온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두번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 곳에 들어와 위대한 선택들을 통해 수감자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동료들에게 자유인처럼 밝은 태양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해 주고, 6년간의 노력 끝에 감옥 내 도서관과 음악 감상실을 설치할 수 있게 만들고, 젊은 죄수의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간수들의 세금 신고를 도와 주는 등, 자신의 유용함을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그는 큰 곤역을 치룬다. 하지만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 곳에 자기를 기꺼이 희생해 희망을 공급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선택영화의 감동은 세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앤디와 레드 그리고 브룩스를 통해 각인된다. 레드와 브룩스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각각 40년 50년간 지낸다. 레드도 감옥 안에서 못 구하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유능한(?) 죄수였고, 브룩스 역시 오랜 수감생활의 노하우(?)덕분에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룩스가 50년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자, 그가 다시 접하게 된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고,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 잡았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생활에서 모든 선택과 결정을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I don’t like here. I’m tired of being afraid all the time I’ve decided.’   '결국 브룩스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 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비교되는 인물이 레드다, 엔디가 탈출을 성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40년 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브룩스가 머물게 된 숙소와 일터가 브룩스와 같았다는 설정은, 이들이 닥친 같은 충격을 잘 드러낸다. 레드역시 변화된 세상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앤디가 쇼생크를 탈옥하기 전날에 했던 말과 약속들을 떠올린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바쁘게 살던가, 바쁘게 죽던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바쁘게 살기를 선택 할 것이다” ‘희망은 자유를 주고, 자유는 선택을 준다.'그리고 묘연한 한마디 '태평양 연안에서 만나자' 역시 레드를 브룩사와는 다른 선택, 두려움을 떨치고 평생 처음으로 희망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가두던 제한들을 벗어던지고, 앤디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결국 앤디 꿈에 그리던 태평양 바닷가에서 앤디와 재회하게 되고 영화는 마친다.세상의 요구 앞에서 두려움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치 영화 속의 쇼생크가 아닐까?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고, 그 방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하거나 혹은 거스르면 따르는 고통 때문에, 꼼짝없이 세상이 원하는 방식에 따라,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 가는 게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죄없던 앤디가 쇼생크라는 감옥에 들어와 절망 속의 죄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그 곳을 떠나는 모습에서 예수님을 연상 떠올린다. 바로 이 때문에 쇼생크 탈출 속에서 나는 소망과 구원, 선택과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열어 주신 구원의 문 앞에서, 우리는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 열려진 구원의 문은 그리스도안에서 소망을 품은 자 만이 선택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레드의 고민처럼, 우리도 현실 속에서 소망을 품는 결정은 솔직히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한다면, 소망은 우리의 것이 된다.  심사장면속에 레드속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영화의 전체 흐름은 세번에 걸친 레드의 가석방 심사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는 수감생활 20년째, 30년째, 그리고 40년째 때 심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석방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품었던 앞의 두번 심사는 좌절감만을 안겨줬다. 수감 40년째 다시 찾아온 심사에서, 레드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심사 위원들에게 답변한다.(당신은 자신이) '교화되었다고 생각 합니까?' '오래전 바보 같은 어린 녀석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도 이젠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젊은 놈은 오래 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이 늙은 놈만 남았습니다. 쓸데없이 나의 오후 시간을 뺏지 말고 그냥 돌아가십시오'앞의 두번의 심사에서 그는 자신을 적극 변호했지만, 희망은 절망이 되었고,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앤드를 통해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자기 현실을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함 속에서, 심사관들은 도리어 감동을 받고 석방으로 이어진다레드 같은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현실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디서 찾아질까? 우리의 죄성과 소망을 가장 잘 드러내신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는 두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가와 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하지만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 갈수록 우리는 소망과 기쁨 그리고 자유의 영역은 더 커진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예수를 믿는 진짜 이유기도 하다김정근 리뷰어는 오래된 영화를 좋은 고기를 씹듯 계속 음미하며 누리며, 록다운에 답답함 속에서 사람들과 차 한잔을 나누는 여유를 그리워하고 있다.

  17/08/2021
  Eastwood NSW

아마도 DOS Game 시절 컴퓨터를 통해 디스크를 바꿔가며 오락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페르시아 왕자>를 기억할 것이다. ‘게임의 교과서’와 같은 이 게임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UBI SOFT는 <페르시아 왕자: 어쌔신> 프로젝트를 개발하던 중 모종의 이유로 개발을 취소하게 된다. 그 세계관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2007년 등장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이다. 이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승승장구하며 유비소프트가 발매하는 게임 중 가장 많이 팔린 시리즈가 된다. 동시에 2017년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게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비교적 명성이 높은 게임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 2020년 11월 10일, 12번째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가 나오며 여전히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이 게임의 이해를 위해 어쌔신의 시작, 그 역사 속 기원을 알리는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2017년 발매)을 선택하여 리뷰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인은 ‘모든 게임의 유해성(중독성)에 대해 동의하는 바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에 대한 단절보다는 잘 알고 접근하여 지혜롭게 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게임 소개2017년 10월 발매된 게임으로, 콘솔/PC용으로 발매되었다. 개발은 유비 몬트리올 스튜디오에서 하였으며, 영국 아카데미 비디오 게임상 최고의 게임 부문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탄탄한 내용과 비주얼을 보여준다. 등급은 ‘MA15 /청소년 이용불가’이며 장르는 3인칭 오픈월드 액션 RPG로 구분되나, ‘잠입 암살 액션’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가격은 기본 89.95AUD(65,000원), Gold Edition의 경우 134.95AUD(95,000원)이다. 게임 분석배경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이며, 한 작은 마을 ‘시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바예크는 메자이[1]로 살던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이 괴한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원수를 갚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 본 게임의 시작이다. 한 가정의 복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경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 있는데, 바로 비밀결사단의 존재가 그러하다. 이집트를 집어삼키려는 세력이 그 뒤에 있고, 바예크는 이들을 하나하나 무찌르며 방대한 이집트 전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클레오파트라를 도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세력들을 처단해 나가지만, 이후 프톨레마이오스가 죽고 클레오파트라와 시저가 고대 결사단과 손을 잡은 뒤 배신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인 바예크는 이제 동료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고백(신조; Creed) 위에 단체를 세운다. 바로 그 신조가 어쌔신 크리드가 된다. 게임은 중심 스토리를 이어가는 메인 퀘스트와 어느 지역에서나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보조 퀘스트를 통해 레벨업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다양한 무기의 종류와 그에 따른 고유 스킬들이 존재하며, 모든 과정이 스토리와 연계되어 흘러가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적인 역사 고증을 통해 얻는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유튜브 <게임으로 보는 인문학 게임 야화 22~28화, 감독편>[2]을 살펴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역사적 고증을 했는지 알려준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게임을 접하면 유비소프트가 얼마나 위대한 작업을 게임을 통해 이루어냈는지 알 수 있다.둘째로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 라인이 메인 퀘스트와 보조 퀘스트로 나뉘어 유저의 기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모든 퀘스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NPC(게임 속 인물들)와 스토리를 잘 연결한 점 등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끝으로 다양한 전투를 통해 스킬을 올리는 시스템은 전사, 사냥꾼, 선지자로 발전할 수 있도록 Skill tree를 구성하였다. 사냥 등을 통해 기본 아이템을 제작, 레벨업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부적인 요소들을 적소에 배치해 두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초반 스토리라인에서 보여지는 지루함과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형제단의 존재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또한, 반복적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결국 어쩔 수 없는 반복적인 렙업 노가다를 해야 한다는 점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작은 언덕 같은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엔딩을 볼 정도로 게임을 하며 많은 장점들을 발견한 게임이며, 왜 <어쌔신 크리드>가 지금까지 롱런해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본 게임의 평가이제 이 게임을 직접 해 본 목회자로서 게임에 대한 내용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게임 속에 신약시대의 익숙한 표현과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언덕 길가에 서 있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들이나, 드라크마를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리스 시대의 옷이나 아고다, 원형극장 등의 재현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신약시대 모습의 파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이 게임이 갖는 장점일 수 있다. 역사적 고증이 치밀하게 전개될수록 로마의 폭정이나 사람들의 고통의 목소리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듯한 상상력을 키워준다. 또한 세부적인 도시의 디자인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잠입 액션 자체가 가지는 특성상 사람을 암살하는 일이 빈번하고, 소리없이 죽이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경험치를 얻게 함으로 쾌감을 주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여전히 발동하여 그것을 계속 찾게 만든다. 주인공 바예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지만, 실제로 그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게임의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잔인함의 표현(배를 가르고 시체를 손질하는 것이나 인체 절단 등)이 게임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잔인함의 간접 경험이 오히려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을 무뎌지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아울러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게임 개발팀에 대한 설명(이 게임이 다양한 종교, 성적 성향 및 정체성을 가진 다문화 팀에서 기획∙개발∙제작하였음을 명시)이 나온다. 게임 안에서 이와 같은 사항이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지만, 이집트의 종교에 대한 접근, 사후세계에 대한 표현 등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포스트모던한 모습도 게임 가운데 선명히 드러난다. 실제 주인공은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는 자로 나타나며, 그 권력의 문제들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 폭력이라는 것을 주저없이 사용한다. 약자를 돕기 위해 강자를 죽인다는 설정은 결국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기합리화밖에 되지 못한다. 게임을 하면서 성경적 가치관과 부딪히지만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공간이기에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며<어쌔신 크리드>를 처음 들을 때 일반인들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목회자의 입장에서 가장 귀에 거슬렸던 부분이 바로 제목이었다. 사도신경을 말하는 Apostle’s Creed를 그대로 차용해서 만든 Assassin’s Creed는 암살자의 이미지를 경건하게 바꿀 뿐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위해 암살을 자행하는 일을 역사 속 설정을 통해 정당화하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위험천만한 이러한 사상이 게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저 게임을 한다는 즐거움으로 플레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게임을 막을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게임이 갖는 특징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함께 이야기하며 다음세대 문화로써 게임 장르를 살펴본다면 어떨까? 게임 안에서 대화의 고리들을 찾아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함께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쌔신 크리드>는 한국과 호주에서 모두 미성년자가 불가등급이라는 점은 부모님들이 잘 알고 계셔야 한다. 성인물 구입에 큰 여과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유해한 게임물이며, 본 리뷰 역시 성인 플레이어 입장에서 작성하였기에 미성년자의 게임 접근은 분명한 제한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강현규[1] 고대 이집트에 존재했던 치안 조직 [2] 유튜브 페이지 44층 지하 던전 게임야화 22-28편 참조(https://www.youtube.com/watch?v=y1Uy5ThFTd8)

  20/07/2021
  Eastwood N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