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이 있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항상 선택(Choice)이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하루하루는 선택의 연속이다. 삶들은 대략 하루에 150번 정도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출근하면서 옷은 어떤 것을 입을까? 어떤 신을 신을까? 약속은 어디에서 할까? 특히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같은 고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나에도 수천 번의 고민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오죽하면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책까지 나왔을까? 이 책에서는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즉 슈퍼마켓 진열대 A의 시식대에는 잼 6종을 놓고, 다른 쪽 진열대인 B의 시식대에는 잼 24종을 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시식대에 놓인 잼이 많은 B의 쪽으로 사람이 더 몰렸다.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맛본 잼의 개수는 A, B 둘 다 서너 개 정도로 비슷했다. 그런데 실제로 잼을 구매한 비율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시식대에 진열된 잼이 적었던 A에서는 시식자들 중 약 30%가 잼을 구입했지만, 진열된 잼이 많았던 B에서는 겨우 3%의 사람만이 잼을 구입했다. 이 책의 저자 배리 슈워츠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선택 안이 많으면 소비자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탓에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그래서 아예 결정을 안 하기로 결정하고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이렇듯 선택의 폭이 넓어서 선택하는데 더 어려운 과정들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선택’하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아예 선택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물론 다양한 선택 앞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비 시장에서는 선택을 어려워하고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비자의 취향, 성격, 연령 등을 분석한 뒤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해 크게 각광받고 있다. 빵부터 속 재료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브랜드에서는 선택이 어려운 사람들, 결정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어울리는 조합 몇 가지를 선정해 이른바 ‘꿀 조합 샌드위치’를 광고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널려있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능력이었는데, 요즘은 선택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 타인의 선택에 의지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대신해 BJ가 선택을 대신 해주는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끈다. ‘전문가가 권하는 7대 여행지’ 같은 식으로, 상품 소비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이 하나의 마케팅 패턴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큐레이터 같은 남이 대신 선택해줄 순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작은 것 하나 결정하는데도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가 하면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까지 소환할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훗날 이 행동은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되었다. ‘햄릿 증후군’은 햄릿처럼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말을 ‘결정 장애’(혹은 ‘선택 장애’)라는 용어로 이미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선택의 어려움
결정장애는 의학적으로 질환이 아니다.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해 마치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사실 결정장애는 ‘사회 심리학적 현상’이다. 심리학자들은 결정장애를 ‘지연행동’(procrastination)으로 정의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기회에 노출돼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서구 심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메이비족’(Generation Maybe)이라 부른다. 결정장애는 물건을 살 때나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더욱 심해진다.
결정 장애의 원인은 다양하다. 인류사를 통틀어 경제 사회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이 결정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이유는 뭘까?
첫째, 과거보다 너무 많은 선택 기회가 주어진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과거에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선택하면 됐지만 현대에는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해결이 가능하게 됐다. 선택 기회가 너무 많아 역설적으로 결정을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어 선택의 폭이 필요 이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과잉기회’가 낳은 모순이 결정장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자기주도적 습관이 형성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나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결핍 없이 살았기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알아서 다 해준다. 아이가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보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부모가 알아서 결정을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과잉보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자녀는 결국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결정을 내려주는 것에 익숙해져 성인이 돼도 아주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 질 수 있다.
둘째, 삶의 선택은 늘 어렵다. 특히 실패의 두려움으로 인해 선택을 피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기회가 많았다. 경제성장기였기에, 좋은 대학을 못 가거나 성적이 나빠도 취직 걱정을 덜 했다. 방황하느라 시기를 놓쳐도 공부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완전히 낙오되고 패자부활전은 점점 줄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셋째는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결정을 쉽게 못한다. 삶은 순간순간이 중요하고, 그 선택은 시험과는 다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때가 많다. 답을 고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고른다는 것은 각기 장단점이 존재하며 그 합의 비슷한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이사할 걸 두고 고심한다고 해서 정답과 오답을 나눌 수가 없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완벽하지 못한 결과를 얻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거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마음속에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혹은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다. 최선을 다했으나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의 상실감이 줄여 나머지 선택을 하지 않고, 시작도 하지 않고 남겨두려는 마음이다.
선택을 위하여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아닌 이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조차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아래 항목을 체크해 보시라
1. 메뉴를 선택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결정해준 메뉴를 따라 먹을 때가 많다.
2. 혼자서는 쇼핑하지 못한다.
3. 선택하는 것이 두렵고,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4. 다른 사람의 주장에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5. 선택에 고민이 생겨 SNS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6.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면, ‘글쎄, 잠시만, 잘 모르겠어’ 같은 모호한 말을 먼저 뱉는다.
이 6개의 항목 중 4개 이상의 증상을 보인다면, 심각한 결정장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정 장애를 개선하려면 스스로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를 떨쳐버리고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무덤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참고로만 하고 항상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다보면 사소한 ‘결정 장애’ 증상을 개선될 수 있다. 다음의 목록은 뉴질랜드판 에서 소개한 결정에 도움이 될 항목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찬찬히 정리하면서(기록하면 더 좋음) 생각을 전개한다면 좀 덜 고통스러운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1.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만한 중대한 문제인가부터 짚어본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코트를 입을지 점퍼를 입을지는 오래 고민할 문제가 아닌 매우 사소한 문제다.
2.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A가 아닌 B를 선택할 경우 무슨 일이 생기기에 망설이는지 그 두려움에 직면하는 게 필요하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3.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A와 B 각각을 선택할 경우 장단점을 적어본다. 선택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이다.
4. 데드라인은 언제인가? 한없이 생각을 질질 끌면 더욱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외부의 조건과는 별대로 40분, 또는 하루, 일주일과 같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기한을 설정한다.
5. 얼마나 이기적으로 생각하는가? 종종 의사결정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 등을 생각하거나, 그들의 조언을 고려하느라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때로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주변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다.
6. 후회보다 더 큰 희망이 있다면? 지금은 좋은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내일이 되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선택이 가져올 기회는 무엇인지 적어보자. 오늘 당장 회사에 사표를 쓰는 게 내일 아침 ‘이불킥’을 하게 만들지 몰라도 또 다른 희망이 있지 않은가.
선택에 박수를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이 마치 정답으로 이뤄져 있는 것만 같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고, 영봉 높은 직장이 정답이고, 30대 중후반이 넘기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개성을 미리 재단하여 그 범위를 한정해버리고 있다. ‘완벽한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는 정답을 맞히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삶이 서너 가지 정답으로 뭉뚱그려지기엔 우리의 개성과 인격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백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만 개의 세계가 있다. 당연히 백만 개 이상의 선택이 발생할 것이다. 결정을 망설이고 미루는 것은 ‘정답이 있는 세상’과 ‘나만의 세상’과의 갈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는 것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 이후가 무척 중요해진다. 최선을 다해 그 길을 정답으로 일궈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어느 날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 선택을 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택했건 그 이후의 태도와 노력에 스스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완벽한 결정은 없다. 단지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믿어주고 거기에 온 힘을 쏟아 최고의 결정으로 만드는 일은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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