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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방황하며 전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의 역사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맞아 고국을 떠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다른 민족들도 사회 과학적으로는 ‘디아스포라’라고 불린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 말은 호주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인 교민들을 부르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호주에 살고있는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혹은 호주 사람입니까? 또는 한국계 호주인입니까? ( Are you Korean or Australian or Korean- Australian?”). 1세대의 부모들은 2세대, 3세대에 이르는 후손들의 정체성을 어떤 대답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던 뉴욕의 한 젊은 한국계 변호사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인생을 탈바꿈하는 계기를 맞았다. ‘전후석 감독’,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쿠바의 한인 이민자 일 세대인 헤로니모를 알게 된 것이다. 헤로니모는 스페인식 이름으로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임은조)이 정식 이름이다. 그 사람의 3세대 후손을 쿠바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전후석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3월 20일, 퀸즐랜드대학교 St. Lucia 캠퍼스에서 특별한 토크쇼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와 초선(Chosen)을 기획 촬영한 전후석 감독이 브리즈번을 방문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었다. 나는 이번 이벤트와 관련해서 참으로 큰 기대를 하고 설렘 속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감독이 출연했던 유튜브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나와 내 가족이 바로 ‘디아스포라’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전감독의 얼굴은 영상을 통해서 익숙했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갓 40을 맞은 나이답지 않게 더 젊어 보였고 헌칠한 키의 훈남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한 청중이 그에게 ‘전후석 영화감독, 전후석 변호사, 조셉 전’ 중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은가를 물었을 때 조셉으로 불리는 게 좋다며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석감독이 잘나가는 뉴욕의 변호사라는 직업을 뒤로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헤로니모’라는 인물에게 빠져들면서부터였다.전감독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쿠바 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니모(임은조)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며 독립운동의 정신과 뜨거운 조국애를 느꼈다고 했다. 헤로니모는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의 중심에서 사라져간 영웅 같은 한 인물을 알리고 그를 통해서 한국 이민자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전감독의 강연은 강의실에서 그에게 온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가슴을 적시는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특히 성경의 한 구절인 선한 사마리안의 이야기를 예시로 말했을 때, 그 순간 내 가슴안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으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종족이었다.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희생자를 구해낸 사마리안이 바로 디아스포라라고 말했다. 이 성경 구절의 인용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풍요로운 지혜를 전달해주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디아스포라 적인 정체성은 의식적 경계성, 온전한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과 환대 성이라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전후석감독은 <헤로니모> 프로젝트가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닿아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의 한인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그는 “이 사람(헤로니모)을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겠다는 설명하기 힘든 끌림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는 미국에서 이민자와 유색인종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던 도널드 트럼프가 막 집권한 때이기도 했다. 전감독은 더 큰 세상을 향한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수식어”라는 책을 출판했었다. 전후석 감독은 미국 내 한인과 중국 옌볜의 조선족부터 쿠바·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한인,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요르단 한인들까지 두루 만나며 고민의 답을 찾아 나갔다. 그는 그 고민의 결과가 “민족의 개념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애정은 그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빅토르 휴고의 말을 인용하며 디아스포라(이민자)를 표현하기도 했다. “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 (디아스포라)이다 .”이 또한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갑자기 뒤바뀌게 만든 쿠바의 혁명가였으며 한인 리더였었던 헤로니모(임은조)의 역사를 추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전후석 감독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그는 오늘도 미래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한인들의 숨겨진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 믿어진다. 멋진 그에게 홧~~팅을 보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26/03/2024
스토리 브릿지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면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어온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일 년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은 가득 채워져 있는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기만 하다. 하지만, 일 년의 마지막 순간들이 지나가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 한해도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고 헤어지기도 하는 삶의 순리를 겪은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독일 작가 F.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참으로 멋진 말을 다시 찾았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해서 규정된 궤도를 따라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고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었는지 아니면 보조 역을 충실하게 했는지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았다면 그만큼 아쉬움도 덜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해 동안 베풀었던 사랑, 나눔, 배려, 감사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든, 세상의 어떤 것과 맺은 인연이든지 간에 그 소중함을 사랑하려 한다. 떠나가는 한 해에 감사를 표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본다.  올 한해는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해가 된 것 같다. 20여 년이 넘도록 일했던 하이스쿨에서 은퇴를 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십여 년이 넘도록 살아서 정이 많이 들었으며 내 삶의 한 부분을 담아낸 곳이다. 발이 머물고 내 머리를 눕힐 수 있으며 늘 새로운 기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집이다. 이제 나는 이 한 해 동안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뜻깊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을 함께 안고 12월을 보내려 한다. 12월은 마치 한 장의 책을 덮으며 새로운 챕터로의 문을 열어주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동안의 경험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채워졌고, 이제는 그 책을 닫고 미래를 향한 다음 장을 기대하는 시간에 서 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 들과 만남에 감사하며, 그 소중한 시간이 삶에 큰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은 12월을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달로 표현했다. 체로키 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 족은 ‘침묵하는 달’, 퐁카 족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명칭을 정해서 달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영적인 능력을 갖췄던 사람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묵상하게 만드는 단어로 사용한 것을 보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져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뜻이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에서 첫 알파벳 “H”와 마지막 알파벳 “t”를 빼면 귀(ear)라는 말이 중간에 있다. ‘H’는 머리(Head)를 상징하고 ‘t’ 는 발가락(toe)을 상징한다. 그래서 머리(Head)부터 발끝(toe)까지 잘 들어주고(ear) 사랑(Heart)을 나누며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단어의 깊은 뜻을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스럽다. 은혜와 축복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과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12월에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힘든 이웃을 배려하며,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열린 마음의 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 안에 촛불 하나 켜서 다른 이의 가슴안에 옮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월에는 내 이웃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마지막 달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해에는 더 욕심내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서 나잇값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부터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비타민을 나눠주는 그런 여유를 부리고 싶기도 하다. 일 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올 한 해 동안에 겪었던 일들과 추억을 돌아보며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흘러가는 강물을 억지로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편안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에 조금의 후회만 남기고 마무리를 잘해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기다려보는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필자의 칼럼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24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운이 함께하는 나날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1/12/2023
스토리 브릿지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휘황한 불빛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매일 새롭게 느껴지는 우리 동네의 야경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확인하는 시간의 신호처럼 여겨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함에 기대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 여류시인은 “여자는 나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불행한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완전한 성숙함을 나타낼 수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의욕,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갈등을 만들기는 하지만 의식이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따스함을 안개처럼 내 주위로 흩날리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는 요즘의 일상이다.  그림 그리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친구와 함께 마운트 탬버린에 있는 예술의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산 입구에서 마을까지의 길은 내가 찾아가는 곳이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를 눈으로 냄새로 느끼게 해주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는 아~ 하는 소리를 내뱉게 하고 열린 차창 사이로 산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산속에서 호흡하는 진한 솔잎 향은 도시의 쌓인 먼지를 묻힌 채 산을 오르는 나에게 몸과 마음을 정화 시켜주는 듯했다. 점차 산이 겹쳐지면서 눈 아래 동네가 시야에서 멀어지고 숲 길가에 나타나는 집들은 마치 스위스 산장의 어느 마을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Welcome to Village”라는 나무 팻말을 보며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카페와 아트갤러리, 독일산 뻐꾸기시계 집, 깊은 산에서 흘러나온 정갈한 물로 빚어낸 와인 전시장이 있고,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을 파는 가게들, 모두가 나름의 개성을 뽐내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도 배고픔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하기에 가장 멋스럽게 보이는 베란다를 가진 카페를 선택해서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었다. 그 맛은 산속의 풍광이 주는 신선한 매력 탓인지 그냥 맛있다는 말 외에는 어떤 묘사도 할 수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온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세상의 행복이 다 담겨있는 듯한 여유와 느긋함이 보였다.  유난히 산을 좋아하는 친구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여생을 산의 한 모퉁이를 보금자리 삼아 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가지고 있다. 작은 갤러리를 마련해서 자신의 그림을 걸어놓고 오가는 길손에게 관람시키면서, 한 잔의 차와 비스킷을 제공하며 2불의 입장료만을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다시 비스킷과 차를 사고, 그래도 돈이 조금 더 모이면 교회에 헌금도 하고, 또 불우한 이웃을 돕고 싶다는 밝은 소망을 품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그런 말을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친구의 모습에서 사람은 자연과 함께할 때 가장 순수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부근에 있는 부동산 가게에 들어가서 매물로 나와 있는 갤러리와 주택을 사진으로 구경했다. 그중에서 가격과 외형이 꽤 괜찮아 보이는 집을 보여달라고 하니 마침 한 집이 비어있다는 반가운 말을 들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뚱뚱한 호주 아저씨는 골드코스트에서 개발하는 주택단지 프로젝트까지 보여주는 선심을 베풀어 주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로 찾아간 집은 산속에 있는 전형적인 하얀색의 팀버하우스이며 현관에는 청동색의 종과 갈색 도자기 판에 “Rose Cottage”라고 새겨진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턱 하니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둥근 공 모양의 유리 자재로 만든 디자인의 글라스 스튜디오가 뒤뜰에 자리하고, 그림을 걸 수 있는 마루방에는 우아하고 탐스러워 보이는 벽난로가 방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층 침실에는 윤이 나는 갈색의 마루가 길게 깔려있고 장미꽃 무늬가 새겨진 커턴 뒤로 정원이 보였다. 천장은 삼각형의 나무무늬로 장식되어있고 침실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 서니 산의 전경이 한눈에 담겨왔다.  목욕탕에는 스파, 샤워실, 욕조가 황금빛 손잡이들로 장식되어있으며 창문은 뒤뜰에 있는 자목련 나무와 연결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와 살아있는 나무들이 서로 얽혀서 하나의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벌써 하나로 뭉쳐진 듯 보였다. 너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글을 쓰고, 우리 서로 그렇게 어울리며 살아보자는 허망한 소망을 잠시 품어본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소녀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서 짓든 나의 이상형인 집을 보게 되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나만의 집을 찾은 것이다. 이 층의 침실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힘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화가인 집주인이 백만장자라는 환상적인 말을 귀에 흘려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의 운전에도 나는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밤의 꿈길은 아주 편안하고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예쁜 집이 더는 환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붙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많이 황홀했고 많이 행복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내 속에 숨겨져 있었으며 내 꿈이 스며든 집을 찾았고, 그곳에서 잠시라도 앉아 있는 행운을 누렸으니까.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시간의 환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그리워하는 마음이 스멀대듯 솟아난다. 알게 모르게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스침 속에서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작은 미소, 따뜻한 인사, 차 한 잔의 여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삶에 색깔을 더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시 젖어 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3/11/2023
스토리 브릿지

 꽃샘바람과 함께 찾아온 다양한 이벤트들이 태양의 도시를 더욱 눈부시고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한낮에 서서히 뜨거워지는 열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도시는 풍성한 에너지로 채워지는 듯하다. 그런 에너지를 품어내는 영향 탓인지 여러 행사가 이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에 브리즈번에서 있었던 몇 개의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사회 참여활동이란 느슨해지는 생활에 자극을 받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이론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나는 이런 행사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역동성과 변화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글로벌 이벤트10월 중순에 만난 첫 이벤트는 “2023 아시아 태평양지역 도시 정상 그리고 시장포럼(2023 APCS: Asia Pacific Cities Summit & Mayors’ Forum)이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도시의 지도자들과 도시 운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도시형성(Shaping Cities for our Future)”이라는 주제의 포럼이 10월 11~13일까지 3일 동안 브리즈번 컨벤션센타( Brisbane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에서 열렸다. 브리즈번 시는 각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이번 포럼을 통해서 수준 높고 국제화한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고, 미래를 위한 도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다시 소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이번 포럼에는 171개 도시, 118명의 시장과 부시장, 1,500여 명이 참가해서 각 도시의 대표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수상 경력이 있는 역동적인 프로그램 및 중요한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대전시와 세종시가 이번 포럼에 참석했으며, 세종시의 부시장이 정원 도시를 지향하는 세종시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 발표를 했었다. 브리즈번 시는 대전시와 자매결연을 한 도시로써 한국에 대한 친밀도가 높은 편이다. 필자는 취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신기술 개발 부스에서 자연환경을 중요시하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호주의 친환경 부스에서는 70살 된 거북이와 도마뱀 같은 야생동물을 전시하며 호주인의 자연 사랑을 홍보하는 듯했다. 처음 만져보는 노란색 작은 거북이 등과 말랑말랑한 손발을 만져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회의실 안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발표자들이 슬라이드 동영상을 이용해서, 현재와 미래의 도시 변형에 관해서 설명하며 발전해나가는 자신들의 도시를 열심히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아드리안 슈리너(Adrian Schrinner) 브리즈번 시장은 2015년, 다음에 개최될 도시를 물음표로 남기고, 채널9의 방송 호스트인 실비아 제프리(Sylvia Jeffreys)가 2023년 APCS 포럼의 종결을 선언하면서 3일간의 큰 행사는 막을 내렸다.  두 번째 이벤트지난 주말, 브리즈번 컨벤션 전시실에는 퀸즈랜드의 음식과 환대(Food & Hospitality)에 관련하는 산업 분야의 업체들이 부스를 차리고 홍보에 나섰다.나는 요리를 잘 못 하지만 보고 먹는 것은 꽤 즐기는 편이라서 흥미가 생겼다. 마침 홍보부스를 차린 한 업체 사장님의 초대로 관람자로서 전시회에 참석하는 기회를 얻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구수한 음식 냄새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입안에 군침이 돌게 했다. 입구에서 등록하고 방문객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당당하게 목에 걸고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종류의 부스들이 줄을 서듯 늘어서 있었다. 주로 음식을 요리하는 신개발품 오븐이나 유기농 음료수, 냉동식품들의 부스가 많이 전시된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음식 시식이었다. 맛있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을 맛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각각의 부스마다 각종의 피자, 파이, 베이크, 닭고기 요리, 유기농 음료수와 무료로 제공되는 선물이 푸짐했다는 점에서 신나는 모험을 찾아다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람객들은 음식 접시를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부스마다 탐험하듯이 돌아다녔다. 오븐을 생산하는 한 업체에서 제공한 피자의 맛이 일품이었는데, 앞에서 홍보하던 요리사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뒤따른 서비스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운 아저씨는 뒤돌아선 나를 부르며 냉동 피자 두 판을 냉장 가방 안에 넣어서 선물로 주었다. 할리우드 배우 같은 자신을 알아봐 주어서 좋았다는 농담을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날렸다.  단연코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최고 요리사를 뽑는 요리 경연대회를 꼽을 수 있다. 전시회장의 한가운데에 설치된 부엌에서는 대회에 참가한 요리사들이 음식 재료 손질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심사위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 재료와 손질하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채점을 하고 있었다. 마치 텔레비전 (Ch10) 서바이벌 요리 게임인 “Master Chef”의 현장에 서 있는 듯 여겨졌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의, 식, 주’ 3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역시 잘 먹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에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두 개의 특별한 이벤트에 참석했던 날들은 나에게도 뜻깊은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런 기회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정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6/10/2023
스토리 브릿지

[스토리브릿지] 예술을 즐기는 시니어들 사진 1 백마를 탄 네드 켈리의  연인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접하는 시간 속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예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우리의 내면세계를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화센터에서 나무껍질을 사용해서 호주의 야생 자연풍경을 작은 판자 위에 그림처럼 만들어내는 예술의 멋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예술을 만날 때는 자신과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은 두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를 다른 시각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은퇴 한지 이제 겨우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뿐이다. 나는 마치 청춘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처럼 집에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예술 분야를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 과정에 등록해서 부족한 나의 일부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시계탑으로 잘 알려진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인 브리즈번시청의 3층에는 ‘브리즈번 박물관(Museum of Brisbane)’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현대화된 기획 전시회를 자주 열어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다. 8월과 9월에는 도자기 전시회를 열어서 작가와 수집가들의 소장품인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주와 해외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도자기 예술가인 카알리 존슨(Kaylie Johnson)이 기획한 “차, 그리고 작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도자기 여행”이라는 이벤트의 티켓을 사서 참석했었다. 나는 이미 혼자서 두 번씩이나 도자기 전시회를 구경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대감 없이 가보았다. 그러나, 작가와 함께하는 관람은 역시나 달랐다. 도자기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듣고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니 도자기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나 사연이 다르듯이 도자기 작품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티타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찻잔에 어린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의 휴스턴에서 호주로 이주한 한 여성 참석자는 유명한 찻잔 세트를 사기 위해서 힘들게 일한 돈으로 구매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졌던 나눔의 시간이 인상적이어서 며칠 후에는 그녀의 개인 작업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여유와 시간을 맘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은퇴 후유증을 겪지 않아도 될 듯싶다.  주말에는 문화센터의 시니어 회원들과 함께 벌리헤드(Burleigh Heads)에 있는 마가렛 올리 갤러리(Margaret Olley Gallery)로 버스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91세의 이본느 할머니 덕분에 즐거운 버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걷기는 하지만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해 보이며 대화를 나누는데, 오래전의 기억력이 뛰어난 할머니였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에 와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니 그 열정이 놀랍기만 했다. 실제로 버스 안에는 손에 지팡이를 든 은발의 할머니 참석자들이 많아서 예술을 즐기는 시니어들의 멋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마가렛 올리 갤러리는 호수처럼 보이는 강을 마주하고 드넓은 평야와 하얀 구름이 펼쳐진 자연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담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을 들어서니 작품소개를 해주는 봉사자가 있어서 작품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각 전시실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있어서 제법 큰 규모의 갤러리임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인 작품은 호주의 의적으로 알려진 네드 켈리의 연인으로 알려진 한 여인이 반나체로 실물 크기의 흰색 말을 타고 있는 조각품이 복도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 개척시대의 유명한 전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한 전시실에는 녹색의 야광을 띤 유리조각품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는데 “녹색 빛 속에서(In the Glow of Green)라는 제목으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에는 마가렛화가가 살았던 부엌이나 거실을 그대로 옮겨와 재현해 놓아서 그녀의 생활을 회상할 수 있기도 했다. 마가렛 올리 화가는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술 갤러리는 나에게 미적 감각을 키우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들은 나에게 끝없는 지식과 감동을 선사해주며 예술의 신비로운 경험을 갖게 하는 여정으로 이끌어준다.   네드켈리의 연인마가렛 올리(Margaret Olley, 1923-2011)화가는 호주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이며, 그림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인생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예술적 스타일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풍부한 색채와 질감을 활용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주로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렸으며, 그림 속에 사물과 인물을 섬세함으로 담아내는 것이 그녀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녀는 감정과 풍부한 세계를 화폭에 담았으며, 작품 감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정과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마가렛 올리는 호주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여성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 모범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서 간단한 물건과 풍경조차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한 느낌이랄까.   마가렛 올리의 정물화비록 한나절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호주예술가들을 이해하고 호주인 시니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있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 시니어 할머니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버스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8/09/2023
스토리 브릿지

최근 은퇴한 퀸즐랜드 발레단 감독 리 쿤신 (사진: 황현숙)은퇴한 지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인생의 여정은 한 시점에서 또 다른 시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 여정 중에서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은퇴는 단순히 일의 끝이 아닌, 더욱 풍요로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에 새겨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조금씩 실천하는 것으로 도전을 해본다. 은퇴 후의 시간은 그동안 묵혀두었던 책을 새롭게 꺼내보는 듯 느슨한 기분이 든다. 희미해졌던 흥미와 호기심이 서서히 나를 깨어나게 하고, 삶의 여유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은퇴 생활을 보람 있게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1. 새로운 취미와 관심사 발견하기2. 자발적인 봉사활동3. 건강과 웰빙 관리5. 지식 습득과 교육6. 여행과 탐험7. 창작과 기록요약된 위의 일곱 가지 주제에 맞추어서 나 자신을 주입해보며 그에 걸맞은 활동들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나의 첫 번째 새로운 관심사를 취미, 건강 그리고 웰빙을 겸해서 시니어 발레 클래스를 선택했다. 시니어 발레수업은 숨겨져 있는 미적 감각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매력적인 예술 활동인 것 같다. 나는 발레공연을 즐겨보는 편인데 직접 발레를 배운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공연을 볼 때마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모습과 동작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퀸즐랜드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리 쿤신(Mao‘s Last Dancer: 영화 “마오의 마지막 댄서” 실제주인공)을 어느 사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최근에 그는 예술 감독직에서 은퇴했으며 발레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소개되는 발레리노(남자 무용수)이다. 영화의 실존 인물인 주인공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16세에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을 탈출한 리 쿤신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진: 황현숙)실제로 “마오의 마지막 댄서” 영화를 본 후에 감동하고 발레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년 전에 브리즈번 박물관에서 리 쿤신의 전성기 시절의 발레공연 사진들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그가 춤을 추는 우아한 발레 동작과 날렵해 보이는 아름다운 몸매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발레는 시니어들의 굳어진 근육운동을 도와주고 부족한 체력과 유연성을 제공해준다. 그것은 단순히 운동이나 무용 기술을 익히는 것 이상으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다루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여겨진다. 처음 배우는 토슈 포인트 연습이나 아라베스크 자세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성장은 점차 발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안드리아 선생의 우아하고 멋진 동작들을 흉내 내기에도 버겁다. 몸의 유연성이 부족한 은발의 할머니 학생들은 실수하며, 숨이 차게 뛰어다녀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시니어 발레를 배우면서 느낀 점은 나이와 경험에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시기에 더욱 깊이 있게 학습하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은 마음과 영혼을 활력 차게 만들어주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요즘 두 살배기 손녀도 제 엄마의 손을 잡고 발레아카데미에 열심히 다니며, 팔불출 할매와 함께 발레의 매력에 푹 빠져가는 중이다. (공식을 만들면: 귀여운 내 손녀 찐 사랑 할매= 발레 짝꿍!) 또 다른 여가를 보내고 싶은 일은 사회 참여활동을 고려하고 있다. 이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 정부 공증인 (Justice of the Peace)으로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공공 단체기관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재능기부를 할 예정이다. 내가 베푸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 된다면 그 또한 남은 생애를 멋지게 장식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오의 마지막 댄서의 실제 인물 리 쿤신과 함께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은퇴 후 도전하는 시니어 발레, 나만의 행복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주제 아래서 나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하며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것은 마음의 만족감을 높여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강만 따라준다면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여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넓은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멋진 기회를 나이와 상관없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이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4/08/2023
스토리 브릿지

내가 은퇴를 한 후에 첫 번째로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있다. 뉴욕에 사는 오빠 부부가 처음으로 브리즈번을 방문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우리 남매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3년 7월이 되어서야 오빠는 북반구 미국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남반구 호주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오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마치 연인을 기다리듯 긴장과 설렘으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오빠가 호주를 방문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린 듯하다. 막내동생에 대한 유난한 사랑은 뉴욕과 브리즈번 사이의 지리적인 먼 거리를 잊게 할 만큼 늘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카톡이라는 정보기술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덕분이다. 그래서, 서로 간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남매가 살아가는 다른 두 공간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오빠 부부가 브리즈번을 방문하기로 한 후에 3주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양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동생이 사는 호주라는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70대 중반인 오빠는 아주 세심하고 자상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호주에 오면 코알라와 캥거루를 직접 볼 수 있는지, 오페라 하우스에도 갈 수가 있는지를 호기심에 차서 여러 차례 묻곤 했었다. 나는 오빠 부부가 도착한 날부터 떠날 때까지의 여행일정을 세우면서 건강을 염려했는데 한낱 우려에 불과했다. 여행지에서 보여준 왕성한 에너지는 나이를 잊을 만큼 활력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도착 첫날의 즐거움은 점심으로 시작되었다. 1800년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환영의 잔을 부딪쳤다. 식후에 시내 구경을 하면서 깨끗한 거리와 바둑판처럼 연결된 길의 배치에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뉴욕과 브리즈번, 두 도시의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는 오빠가 그토록 보고 싶다던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나러 브리즈번 외곽에 있는 론파인 야생동물 보호구역(Lonepine Sanctuary)에 갔다. 나무 둥지에 붙어서 하루에 18시간 이상 잠을 자는 코알라지만 다행히도 잠이 깬 상태로 있는 코알라들과 눈을 마주치는 행운을 얻었다. 오빠 부부의 얼굴에는 실물로 보는 코알라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카메라를 누르며 즐거워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조용했던 론파인에도 관광 붐이 새롭게 부는지 관광객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코알라를 직접 안고 사진을 찍는 포토샵 이벤트의 하루 예약이 이미 이른 오전에 마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상상만 하던 코알라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은 오빠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넓은 풀밭 위에 군데군데 드러누운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펄쩍거리며 뛰어가는 캥거루를 보며 즐거워하는 오빠 부부의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선샤인코스트의 긴 해변과 골드코스트의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야간 벼룩시장 구경하기, 미숫가루처럼 부드러운 하얀 백사장에서 맨발로 걸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모든 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벽돌처럼 하나씩 가슴 안에 쌓였을 것만 같다.  골드코스트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스펙타큘러 쇼( Australia Outback Spectacular Show)를 관람했다. 백인 정착인들이 이 땅에 자리 잡으며 살아온 고된 개척사를 말 묘기와 함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호주의 역사를 시작한 애버리지니를 호주 땅의 첫 거주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전통문화와 삶의 모습을 영상으로 먼저 보여주었다. 백인들이 부시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들의 힘든 공동체 생활을 소 떼 몰이, 양무리, 야생말 길들이기, 부시 화재와 같은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호주인의 전통 레인코트를 걸친 기병대들이 호주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주 국기를 손에 들고 힘찬 행진을 하는데 가슴 뛰는 감동을 받았다. 손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면서 “아~~ 내가 어느새 호주를 사랑하는 진짜 호주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시드니에 여행을 다녀왔다. 가능한 이름난 장소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에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다링하버에 숙소를 잡고 가까운 지역부터 가이드와 함께 본다이 비치, 메리 대성당, 바랑가루와 오페라 하우스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오빠 부부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감동에 젖은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블루마운틴, 로라마을, 동물원에도 가보았고, 다른 지역에도 갔었지만. 도시 중심가의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걷는 야간 투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한눈에 바라보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야간 풍경 그리고, 불빛에 휩싸인 시드니 도심의 아름다운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하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가는 야간걷기 투어는 예전의 어떤 여행보다도 더 깊고 진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함께 만들었던 시간은 우리 남매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날 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오빠와 올케언니의 호주 방문이 뜻깊고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했기를 바라며, 이런 소중한 추억들이 오래도록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공통의 추억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가 나이 들어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기쁨은 형제애를 표현하는 것이며 따뜻함을 느끼고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3주간의 만남을 정리하면서 오빠 부부가 남은 생애를 건강하고 서로에게 향기로운 부부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자신들의 집이 있는 곳, 뉴욕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가시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7/07/2023
스토리 브릿지

6월, 한해의 반 자락인 이달의 마지막 주,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던 숙제를 과감하게 풀어버렸다. 지난 2월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던 일을 학교 측에 통보하고 은퇴를 신청했었다. 십 대 청소년들과 이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생각이나 외형적인 모양새까지 꽤 많이 젊게 살아온 날들이다. 나의 그런 모습에 익숙했던 학교 동료들이나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왜, 왜 은퇴를 하는데, 말도 안 돼!” 교장은 나와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지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었나요? 아직 삼십 대가 아닌가요?”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공립학교에서 지낸 이십여 년은 내 삶의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그동안 만났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같이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이십여 년간 유학생 프로그램(International Student Program)과 IB 프로그램(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 11, 12학년 준학사 과정)은 학생들과 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일을 통해서 글로벌교육을 실감할 수 있었고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호주 공립학교에 유학을 온 학생들과 부모들을 만났다. 나의 특별한 업무는 언제나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과의 갈등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성숙함도 배웠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감정과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지원하면서 십 대 청소년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또한 나에게 큰 보람과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볼 수 있었고,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학생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 다국적의 유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나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었으며, 이를 통해서 나 자신의 역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며 세대를 떠나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게 한다. 은퇴 결정은 누군가가 학교를 떠나라고 등을 떠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때가 찾아왔음을 깨달은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축하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순간이 왔네요.”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학교에서 보낸 날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앞날의 남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행정빌딩 복도의 교장실 앞에 한국의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둘이 학교의 보호자로서 의젓하게 버티고 서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파계승 탈춤전수자이며 솟대와 장승의 명인 김종흥 선생님의 작품이다. 십여 년 전에 브리즈번에서 탈춤 공연을 하며 그 자리에서 유칼립투스 나무를 직접 깎고 다듬어서 만든 아주 귀한 예술 작품이다. 그 작품들을 고맙게도 우리 학교에 기증해 주셨다.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기꺼이 하시는 그분의 마음에 호소해서 두 장승을 학교의 가디언으로 모셔온 것이다. 그리고 장승 작가는 나와 함께 학교 강당에서 안동 하회탈춤 공연을 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려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열띤 환호를 받았었다. 교장은 장승에게 ‘인두루필리학교의 수호신(Guardian of Indooroopilly State High School)’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교장은 나의 은퇴를 축하하는 송별모임 모닝티 파티를 학교회의실에서 열어주었다. 송별회 장소가 바로 장승이 서 있는 곳과 가까워서 장승을 껴안고 기념 촬영을 했다. 왠지 감회에 젖어 들며 숙연해지는 마음이 되었다. 가장 친한 동료가 편지를 낭독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감정을 자제하고 있던 나도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는 답사의 한 부분에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비록 떠나지만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한국문화 예술품을 학교에 남겨두고 갑니다. 교장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인두루필리학교의 가디언에게 일 년에 한 번씩 기름칠해서 장승에 금이 가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세요.”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했다. 한국의 부천영화제에 몇 번 다녀온 이후로 나만 보면 김치와 막걸리를 좋아한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사람이다. 따스한 동료애가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조용히 스며드는 듯했다. 다음날에는 성당 교우들과 함께 바이런 베이에 데이투어를 가는 행운을 가졌다. 마치 나의 은퇴를 위로(?)해주는 듯 들뜬 기분이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바이론 베이의 바다는 여전히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사파이어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확 트인 태평양의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의 절벽에 우뚝 솟은 하얀색의 등대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먼 길 험난한 항로를 헤쳐오는 배를 인도해주는 구원자의 역할, 그 등대의 불빛이 다가올 나의 새로운 미래에도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모아본다. 아자~ 아자! 은퇴자! 홧~~팅!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9/06/2023
스토리 브릿지

베란다 창을 통해서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밝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은 완벽한 푸르름이 눈에 스며들 듯하다. 맑고 서늘한 기운이 밴 오월 하늘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은근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 기운을 받아서인지 태양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었다. 오월은 역시 축제의 달이다! 축제 하나브리즈번에는 매년 오월이 되면 국제 작가 축제( Brisbane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가 열린다. ‘브리즈번 작가 축제’는 올해로 61회를 맞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2023 작가 축제(5월10일-14일)가 열리는 올해의 ‘문학 주빈 국가’는 한국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놀라움과 반가움이 겹쳤다. 작년에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를 줌 화면으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저주 토끼(Cursed Bunny)’라는 단편 소설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는 정 작가의 능숙한 영어 대담으로 진행되었으며 작품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올해에는 시드니한국문화원의 초대로 작가들의 대담 프로그램에 청중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든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브리즈번을 방문한 한국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일하는 날이 겹쳐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정보라 작가와 최은영 작가와의 대담, 그리고,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의 대담회에 참석해서 그들의 작품 세계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호주인 청중은 “한국에서는 단편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최 작가는 “단편은 짧은 내용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작가들이 중편이나 장편보다 단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이영주 시인은 자작 산문시를 낭독했으며, 배수아 작가는 자신의 소설 일부를 낭독해서 청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어서 호주 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대담회가 끝난 후에 잠시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호주에서도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대신 전해달라는 시드니 Y시인의 부탁을 전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첫 한국인으로 ‘브리즈번 작가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은 ‘엄마를 부탁해’로 200만부 이상의 책이 팔렸으며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가 신경숙씨였다. 한국의 K-Pop뿐만 아니라 K-문학도 세계로 뻗쳐나가는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흐뭇한 마음이 된다.브리즈번 작가 축제에서 대담하는 한국 작가들 축제 둘호주의 어머니날(Mother’s day)은 오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이날만큼은 자녀로부터 특별 귀빈 대우를 받아도 당당할 수 있는 날이라 여겨진다. 부모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에게 평생 무료 봉사를 제공해주는 일이 마치 의무처럼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올해 어머니날에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다. 딸의 절친이 딸과 어머니들의 의상 스타일을 바꿔주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우리 모녀를 초대했다. Styling Station Australia라는 이름의 지역사회 단체가 있는데 주로 여성들을 위한 비상업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행사로 생긴 이익은 지역사회의 불우한 여성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봉사자인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각 초청자 개인에게 어울리는 의상(모자,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핸드백)을 골고루 입혀보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 세 벌을 무료로 증정해주는 이벤트였다. 의상은 라벨이 붙은 새것이며 모두 유명 브랜드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딸과 친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입어보며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는 평소에 즐겨 입는 캐주얼을 몇 벌 입어보고 쉽게 선택을 했다. 팀 대표는 우리에게 샴페인을 권하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주었다. “이 이벤트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축하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방법입니다.”라면서 홍보를 부탁했다. 어느새 예정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가게 문을 나서는 우리의 손에는 묵직한 옷 가방이 들려있었다. 만약에 이런 옷들이 기증문화로 변환되지 않는다면 자연환경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옷을 많이 생산하는 대기업에서 팔리지 않는 옷이나 계절을 넘긴 옷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매립지에 버리게 되는데 화학물질이 들어간 섬유는 썩지 않기 때문에 땅을 병들게 한다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세 벌의 옷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친환경 정책에 한 몫 했다는 자부심까지 덤으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적극적인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작은 일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이벤트였다. 축제 셋시내 보타닉가든에서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Botanica Festival)가 브리즈번 시내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5월12일 부터 21일까지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는 조각예술가들의 작품을 야외에서 전시하는 예술조각품들의 전시회다. 매일 저녁 5시 이후,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으면 아름다운 색채로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공원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꿈의 파열, 땅의 휴거’라는 제목을 붙이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공연을 펼쳤다. 뻥튀기 기계처럼 생긴 검은 상자에서 비눗방울 같은 하얀 구슬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데 투명한 방울이 손에 닿으면 연기로 변해서 사라졌다. 오염되어가는 자연환경을 물방울과 사라지는 연기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타니카 축제 열 개의 작품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고 보타닉공원을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형광 빛을 발하는 색색 가지 실을 엮어서 동굴처럼 늘어뜨린 작품, 큰 나무에 화려한 레이저 조명을 비추며 음악과 영상이 뒤섞여서 춤을 추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내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개성이 뛰어나서 보는 내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연못 위에 떠있는 ‘언덕(Hills)’이라는 작품은 물 아래에서 솟아 나온 하얀 건축물처럼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조각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에서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창조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간혹 환상의 세계를 경험해보거나, 나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서 삶에 윤기를 보태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보다는 스스로 자기를 잃지 않는 자신감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웃는 날도 점차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5/05/2023
스토리 브릿지

뜨거운 열기를 한껏 내뿜던 한여름의 햇살도 이젠 슬며시 꼬리를 사리며 자연의 법칙에 밀려나고 있다. 빛살이 스산하게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피부에 와 닿는 4월의 끝날이다. 참으로 무더웠던 날들에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유난히 파란 하늘과 뭉실하게 떠 있는 하얀 구름 뭉치를 보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라는 어느 시인의 글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육신의 변화를 먼저 느끼게 된다. 몸의 여기저기에서 보내는 불편한 신호는 나이가 들어감을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만큼 나 자신도 한 발자국씩 뒤로 밀려 나가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그냥, 가을이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와 버렸다.한국에서 4월 5일은 식목일이며, 중국풍습에서는 일 년 24절기 중 가장 청명하고 따뜻한 봄날이며 중국의 4대 전통명절의 하나인 청명절(Qingming Festival)이다. 이 축제는 중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중국인 커뮤니티 구성원들 사이에서 경축하는 날이며, 주요 활동은 조상의 무덤을 청소하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후손들은 조상숭배와 제사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다. 청명절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군주 진문 공이 처음으로 한식 절 다음날을 청명절로 정했다. 그때부터 청명 날에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생겨났다.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는 청명절에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청명절이 현재를 살아가는 자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집안 행사인지 최근에 다녀온 여행을 통해서 실감 할 수 있었다.나는 청명절 날짜에 맞추어서 사돈집 가족들과 함께 말레이시아, 시부(Sibu)에 있는 안사돈의 묘지에 다녀왔다. 몇 년 전에 급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안사돈은 50대 중반의 멋쟁이 전문직 여성이었다. 비보를 들었던 그 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해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성묘를 가는 차량으로 도로가 가득 메워져서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한 차는 한 시간여 산속으로 길을 달려서 집안의 묘소에 도착했다. 대리석으로 조성한 어마어마한 조상 묘의 규모에 먼저 놀라고, 옆의 묘소에 온 다른 조문객들이 큰 깡통 안에서 종이돈을 태우는 짙은 연기에 두 번째 놀래며, 불꽃을 터트리며 청명절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요란한 제례에 세 번째로 놀라게 된다. 다행히 사돈네 가족들은 조용히 촛불과 꽃다발을 바친 후에 고개를 깊이 세 번 숙이며 명복을 비는 의식을 치렀다. 익숙지 않은 다른 조문객들의 축하식을 보며, 요란한 제사의식도 가능하구나 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중국문화와 한국문화 사이에 비슷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체험을 통해서 서로의 다른 모습과 풍습을 엿볼 수 있었다.눈 부신 햇살이 퍼지며 안사돈의 비석을 비추는데, 박사모를 쓰고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앞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해 놓은 바깥사돈의 텅 빈 묘소가 있었다. 산자의 무덤을 미리 보는 마음은 결코 편치않았으며 나의 미래가 겹쳐 보이는듯했다. 생전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안사돈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겠지라는 내 나름의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었을까. 자녀들은 이미 성공한 프로 직업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함께 나누지 못하는 슬픔도 큰 것 같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묘비 앞에서 울먹이는 자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언제 이곳에 다시 올지 모를 작별 인사를 조용히 속으로 되새겼다. “안녕히, 편안하게 휴식하세요.”라고.이제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 동안, 계절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삶의 여유가 있을 때 남기는 기억이 더 아름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풍족함보다는 부족함을 느낄 때, 그리고, 외로움을 느낄 때, 가슴으로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베풀고 나누는 삶이 교만이 되지 않도록 할아버지 다람쥐가 손자 다람쥐에게 해주는 충고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돕는다거나 자선을 베푼다는 표현은 교만을 불러오는 것이야, 나누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 것을 덜어 나눈다고 했을 때 신이 보기에도 좋은 것이야.”나는 많은 것들을 좋아한다. 무엇을 좋아할 수 있는 감정, 그 무엇엔가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의 멋이 될 수 있다.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고는 삶의 존재와 재미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섣부른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진실로 삶을 사랑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이 가을에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6/04/2023
스토리 브릿지

지난 몇 주간의 날씨는 여름 햇살의 뜨거운 맛을 톡톡히 보여주려는 듯 지글거리며 땅 위에 쏟아져 내렸다. 호주 전체가 여름이 되면 산불이나 홍수로 한바탕 여름 치레를 하게 된다. 북반구의 한국에는 이례적으로 눈이 몇 십 센티나 쌓였다는 으스스한 기후 소식을 전하며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10시간 정도 하늘을 날아가면 온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이 지구상에 평행선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그리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선조들의 예전 삶이 아직도 살아 숨 쉬며 현대인의 마음과 눈을 매료시킨다. 유난히 뜨거웠던 날 중의 하루, 한국전통 민화 자선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로열 브리즈번 병원(Royal Brisbane Women’s Hospital)에 다녀왔다. 이번 자선 전시회는 한국 전통예술 문화를 호주사회에 알리며 브리즈번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민화 작가 남수진 씨의 개인전이다. 전시회(1월 30일- 3월 31일)는 로열병원 자선단체를 후원하는 특별 이벤트로 진행된다고 한다. 병원 그라운드 층의 복도를 따라서 벽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민화라고 하면 개구쟁이 같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사팔뜨기 호랑이와 나무 위에 걸터앉은 까치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한국적인 특색이 잘 드러나는 까치 호랑이 그림에서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상의 상징이고 호랑이는 액을 막아주는 벽사의 상징이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민화는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풍자를 동물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민화 속의 호랑이는 산중의 왕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해학적이며 백성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나누는 지도자를 상징한다. 이 같은 민화는 오래전부터 그려온 미술이며 조선 시대에 서민 계층에서 주로 그렸던 실생활을 나타낸 민간예술로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 몇 년 전에 잠시 민화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완성된 작은 작품을 가보처럼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 특히 민화 속에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 민간신앙 같은 민중 문화의 내용이 담겨있어서 그 시대의 상징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민화는 병풍, 족자, 장롱 등에 전통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서 집안의 장식품으로 널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실생활을 그림으로 나타내서 한국인의 정서가 짙게 배어난다. 그리고 민화는 소박한 형태로 해학 미와 화려한 색채감이 돋보여서 동양화와는 또 다른 세련된 한국적인 미를 보여준다.궁금증을 담아서 남수진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대학에서 서양화(유화)를 전공했던 그녀는 15여 년 전 민화의 멋에 빠져들어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를 병원 자선단체와 협업하게 된 계기는 지난 몇 년간 주변의 지인들이 항암치료를 받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결국, 자신이 환자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통해서 봉사하는 길이 있음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로열병원 자선단체의 협조를 받아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을 당연한 듯 실천하는 그 마음이 민화 속의 향기 없는 꽃처럼 조용히 피어날 것처럼 보인다. 호주 사회에서 한국 전통예술의 멋을 현지인들과 함께 공유하며 사회적인 나눔을 실천한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하다. 남 작가는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소품으로는 주로 연꽃, 모란 같은 식물류와 새, 나비 그리고 용, 봉황을 그렸다. 민화 자체가 부귀영화, 다산, 장수 또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좋은 의미로 집안을 장식할 수 있다.전통 혼례를 올릴 때 기러기 조각상을 혼례상에 올리는 이유도 부부간의 오랜 금실을 표하는 상징물이다. 옛 선조들의 운치 있는 예술적 감각을 현대사회에서 되살려내는 일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남 작가는 한국 전통 민화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스스로 맡아서 제자 양성과 호주 사회에 한국 예술을 알리고 있다. 현재 브리즈번에서 민화를 배우는 학생 수도 점차 늘어나서 지난 2월 초에는 마운트 쿠사에서 제자들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자주 전시회를 열어서 바쁜 활동을 하게 될 것 같다며 기대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작품의 가치가 환우들을 위한 소중한 기금으로 쓰이기를 기대해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사진 1: 민화 작가 남수진 사진 2-4: 남수진 작가의 민화 작품 

23/02/2023
스토리 브릿지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한 이후로 어느새 23년을 더 보탠 새해를 맞이했다.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는 00의 숫자 때문에 세상에 크나큰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떠들썩했던 그 시간도 이제는 한편의 에피소드로 남겨졌다. 나는 이제 더는 새해의 특별한 소망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새해맞이를 하고 있다. 나이 듦과 더불어 코로나 역병이 활개 치고 다닌 지난 3년의 후유증 탓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듯하다. 쉼 속에서 불안의 심리를 벗어내고 정신적인 휴식과 내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시기에 이른 것 같다. 딸의 강압적인(?) 권유에 두 달 전부터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체력을 키우는 중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닌 올빼미형 인간이라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넷플릭스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요즘 나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은 유튜브의 오디오북 소설이나 미래 인문학, 문화 심리학 같은 강좌인데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강사는 대학교수이며 말솜씨가 빼어나서 듣는 내내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앞날의 은근한 걱정들, 은퇴 후의 삶, 이런저런 고민을 겪고 있는 순간에 아주 적절하고 단순한 논리를 찾았다. “맞아, 이거야,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문화 심리학 전문가인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특강 “지금,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까?”를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느낌이 왔다. 나는 그동안 노후 예견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일에 대한 싫증이 서서히 다가옴을 느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다면 다가올 공허감과 소속감이 없어지는 불안 심리로 인해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 몸과 마음을 푹 쉬어주며 재충전을 해야 하는 방학 기간에도 편치않은 ‘일 중독’ 증세가 내면에 깊숙이 잠재해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김정운 교수는 20세기에는 사람들이 근면 성실하게 일만 잘하면 되었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은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세계적인 학자 중에는 유대인이 많은데 그들에게는 독특한 안식 문화가 있다. 그것은 노동과 휴식에 대한 철학이 머릿속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규칙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한 사고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나온다는 주장에 머리가 절로 끄덕여진다. 우리 내면, 심리구조의 밑바닥에는 행복과 재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깔려있다고 한다. 창조적인 삶은 충분한 휴식 후에 나온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재미있게 지내면서 쇠퇴해가는 두뇌 세포에 안식을 줘야 할 듯싶다. 재미, 감탄, 창의성은 함께 간다는 강의를 들으며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재미있는 일을 찾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만들기보다는 한 가지씩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올 한해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내 마음의 양동이가 얼마나 채워져 있을는지 지금부터 벌써 궁금해진다. 재미에 보탬을 더해서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고, 작은 행복에 잠시라도 빠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재미있는 일을 어린 손녀와 함께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 보았다. 1월의 재미있는 일 하나나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안데르센의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디즈니의 만화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만화영화의 주제가나 음악은 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쉽사리 친숙해진다. 주말에 딸 가족과 함께 브리즈번 예술극장(Brisbane Art Theatre)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관람했다. 소극장의 객석은 부모들과 동반한 어린이들로 가득 채워졌었다. 이제 15개월 된 손녀가 가장 어린 관람자로 기록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세상에 나와서 나와 눈을 마주친 시간은 고작 1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은 어린 아기지만 음악 소리를 들으면 몸을 흔들고 리듬을 쉽게 타며 흥이 많은 태생적 음악 꾼으로 보인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객석의 어린이와 어른들은 한목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손녀가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느끼는 재미의 맛도 쏠쏠하다. 안데르센 동화책의 원작 속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물거품이 되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이 뮤지컬에서는 왕자와 인어공주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줘서 박수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마친 배우들이 객석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가는데, 가장 어린 관람객인 손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환한 웃음을 날려 보냈다. 뮤지컬 공연이 주는 재미에 보태서 손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의 프로젝트 중에서 한 가지는 해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바로 이런 것이 행복이고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떤 동화책이나 소설도 행복한 결실을 보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끝이란 말에 행복이 더 보태져서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5/01/2023
스토리 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