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광고 |

올해로 12번째인 한국영화제가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시티에 있는 엘리자베스 픽처 시어터(Elizabeth Picture Theatre)에서 개최되었다. 첫 영화제에 참석한 이후로 십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는 마음이 든다. 다른 도시에 비해서 8편이라는 적은 수의 작품이 상영되기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첫날의 첫 상영작인 ‘종이꽃’을 먼저 선택해서 보았다. 이 작품은 2020년 10월에 한국에서 첫 개봉된 영화로서 제53회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백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국민배우로 잘 알려진 배우 안성기가 장의사 역할로 나온다. 예고편을 보면서 왠지 턱~하니 가슴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첫 번째 영화로 낙점을 찍었다.  줄거리는 ‘종이꽃’을 접으며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장의사를 평생의 직업으로 살아온 윤성길(안성기 역)과 의대에 재학 중,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하반신 불구가 된 아들 윤지혁, 그리고 어느 날 앞집으로 이사 온 싱글 맘인 은숙과 초등학생인 딸 노을이 서로 얽히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사고 후에 삶의 의지를 잃은 지혁은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하지만, 간병인으로 고용된 은숙의 도움으로 서서히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은숙은 천성이 밝고 명랑하며 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는 그녀의 얼굴과 몸에 지울 수 없는 칼자국의 상흔을 남겼지만,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혁에게 “넌,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지를 심어준다. 결국 혼신을 다한 연습으로 혼자서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며, 서로의 삶에 위안이 되어주는 순간이 찾아온다. 남편 살해범으로 재판을 받은 은숙은 정당방위로 풀려나서 딸 노을과 함께 살고 싶어서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법원 판결에 따라서 딸을 지키지 못하고 재활 요양원에 감금된다. 마지막으로 은숙은 요양원에서 윤성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에 마음을 움직인 그는 시청공무원의 방해와 조폭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약자를 돕는 장례식을 정성껏 치러준다.   종이꽃은 장의사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와 숨어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비교, 가정폭력 그리고 아직도 다 밝혀내지 못한 광주 민중항쟁의 어두운 역사를 마치 뒷골목을 비춰주듯이 조금씩 들춰내서 보여주었다.윤성길은 왜 종이꽃을 만들어서 장식하느냐는 노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꽃이 귀하던 시절,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구별 없이 누구나의 상여에 마지막으로 달았던 종이꽃이었으며, 그 안에 담긴 뜻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평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귀함이다.”라고. 그래서 종이꽃은 가장 인간다운 꽃,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누구에게나 피는 꽃이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준다.문득 장엄했던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고향의 유지였던 아버지 덕분에 상여는 온통 화려한 종이꽃으로 뒤덮였으며 100여개가 넘는 깃발로 인해서 긴 행렬을 이루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던 길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영화 장면의 대사가 기억난다.  노을이는 학교 수업 중에 아이들의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참으로 순진하고 밝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밝힌다. “산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장의사가 되고 싶다”고. 죽은 사람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기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장의사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삶에만 매달리는 우리는 인생의 마감을 맞이하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다는 뉘우침을 가지게 했다. 또한 “죽고 싶다는 소리는 살고 싶다는 외침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은숙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염습하는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서 평생처음으로 보았다. 정성을 다해서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모습이 마치 거룩한 의식을 치르듯 숭고해 보였다. 장의사 윤성길이 한때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광주항쟁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총상을 당하고 쓰러져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지 못한 일, 그 아이의 애원하던 눈길을 외면했던 일이 평생 동안 윤성길의 가슴 속에 상처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사회적인 약자들을 도우며 살다가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국숫집 장사장의 장례를 진심으로 정성껏 돕기도 한다. 배우 안성기의 안정되고 무게있는 중후한 연기는 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화를 즐겨보았던 나는 안성기가 중학생으로 나왔던 ‘얄개전’ 이라는 영화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한편의 좋은 영화는 교훈을 주고 나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게도 만들고, 더 나은 삶의 시간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종이꽃’이 바로 그런 영화라는 울림을 받았다. 연출가는 삶이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겸손의 여정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3/09/2021
  스토리 브릿지

지난주에 딸이 출산을 하면서 나에게도 새로운 호칭이 하나 더 붙게 되었다. 한국 지인들은 “이제 공식적인 할머니 대열에 들었네요.” 호주 지인들은 “드디어 그랜마가 되었네요.” 라면서 축하 인사를 보내주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식 호칭에 주눅이 들었지만, 아기를 안아보던 그 순간은 경이로움과 신비라는 말 외에는 어떤 표현도 할 수가 없다. 품안에 쏙 들어오는 조그만 몸뚱이는 거대한 힘으로 나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꼼지락거리는 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져보는데 미소가 절로 베어 나왔다. 아마도 이런 마음을 손녀바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아기 하나로 인해서 집안의 기운이 달라지고 왠지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는 현실을 직감한다. 이제부터 아기의 양육과 교육은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저 튼튼하고 지혜롭게 자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될 뿐이다.얼마 전에 브리즈번이 2032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발표되었을 때 옆에 있던 사위가 “와, 우리 아기와 함께 올림픽 구경 가야겠다.” 라면서 환호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내의 부른 배를 만지며 지레 호들갑을 떠는 그 모습이 밉게 만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 속에서 예정일 보다 빨리 세상에 나온 손녀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앞날에 대한 호기심 또한 생겨난다.교육자라는 나의 직업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해외유학생을 관리하고 지도하면서 청소년들의 성장배경이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연관지어서 생각하게 된다. 성적이 부진하거나 홈스테이 가정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유 갈망형의 학생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해외에 있는 부모와 연락해서 대화를 나누면 학생의 유아적인 성격을 형성시킨 성장배경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를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하며 그저 부탁한다, 잘 지켜달라는 말만을 반복해서 한다. 한 자녀를 가진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를 응석받이로 길러서 아이들의 유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숨은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자녀교육이라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법이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자녀교육의 핵심은 하브루타 대화법으로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깨우치게 하는 교육방법이다. 유대인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하나는 “네 생각은 어때?”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질문은 아이 스스로가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브루타 대화법은 부모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의 행동이 저절로 바뀌는 대화법이라는 소개를 해준다. 좋은 질문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가르침을 알려주기도 한다.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을 나는 이미 학생들을 통해서 많이 체험하고 있다. 학생과 상담을 하면서 “왜 그렇게 했니?”라고 야단을 치기 전에 먼저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고학년들의 수업방식은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에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주면서 스스로 깨우치고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강요하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교육이 아닌 창의적인 교육이 아이를 발전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적과 스펙이 뛰어난 한국인 학생과 그보다는 뒤떨어지는 유대인 학생 두 명이 하버드 대학교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면접에서 한국인 학생은 떨어졌고 유대인 학생은 대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그 이유는 유대인 학생은 일상적으로 아버지와 하브루타 대화를 하면서 대화의 기술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브루타 대화법은 서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유대인의 전통 토론법을 말한다.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켰을까? 유교문화의 배경 속에서 태교와 유아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자녀들의 인성교육과도 연관되는 문제이다. 스승의 십년 가르침보다 어머니의 뱃속 열 달 가르침이 중요하고, 어머니의 열 달 가르침보다 아버지의 하루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태교란 임신 중 임산부가 주의해야 할 사항 정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을 준비하는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적극적인 교육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딸도 태교를 한다고 좋은 음악도 즐겨듣고 건축디자인에 더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학교건물을 디자인 하면서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고, 편안하게 공부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해내었다. 디자인은 그 사람만이 가진 내 안의 독창적인 생각이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게 만드는 어려운 작업이다. 아이도 엄마의 그런 기운을 받아들여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은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조선시대 명문 종가들은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했는데, 평생 책 읽는 아이로 만들어라, 자긍심 있는 아이로 키워라, 스스로 재능을 발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라고 가르쳤다.  다산 정약용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매니저'로 직접 나서라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손녀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교육에 간섭하지 않는 ‘쿨한 할머니’가 되기, 그리고 경이로운 신비를 경험했던 첫 마음을 잊지 않는 다정한 친구 같은 그랜마가 되어 보려한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6/08/2021
  스토리 브릿지

베란다에 만든 작은 화단에는 삐죽 키만 자란 야자나무가 겨울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모습이 점차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보는듯해서 안쓰럽다.지난 한달 반 정도는 집콕, 방콕이라는 말을 체감하며 지낸 시간들이다. 무릎 뼈를 다쳐보니 평소에 잘도 걸어 다녔던 내 다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오른다.  매일 매일하고 싶은 일이나 만남을 자유롭게 누렸던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깨우치는 요즘의 나날들이다.  지금의 나는 나를 헹구어 내는 삶의 연습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자야말로 풀꽃의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게 푸르다고 하는데 진정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아직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상의 삶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러주고 싶다.  첫째, 살아가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정말 좋은 일이며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지를 생각해보자.둘째,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 어떠한 길인지를 고민해보고 실천하지 못할 일이라면 입 밖에 내지 말고 차라리 침묵하는 법을 배우자.셋째, 누군가가 1등이 되기 위해서 너무 힘들게 외쳐대면 ‘2등이면 어때’하는 마음의 여유를 부려보며 작은 여유는 큰일을 위해서 필요한 휴식이라고 생각해 보자.  큰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깨어지는 것을 보고 작은 파도가 겁이 덜컥 났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파도에게 뒤에 있는 다른 파도가 알려준다. 우리는 그냥 깨어지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의 일부라고, 그래서 우리는 바다가 되는 거라고 말해준다.  1cm 만큼의 여유를 베풀고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도 훨씬 더 좋아질 것을 왜 힘들게 손안에 움켜쥐고 살려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나누는 기쁨에 대해서 조금씩 더 진솔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1855년에 미국 대통령이 인디안 추장에게 시애틀의 땅을 백인들에게 팔아 달라고 요청했을 때, 시애틀의 추장은 “이것은 우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고 백인들은 총으로써 우리들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이며,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가 있나요. 이 모든 자연은 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신이 만든 이 자연을 인간들이 마음대로 나누어 가질 수는 없다면서 백인들의 신과 인디언들의 신은 같은 신이라고 응답했다. 진정으로 나눈다는 것, 양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들의 가슴은 진작 알고 있는 것을.예전에 꿈 분석 심리학 강의를 들을 때 다양한 콤플렉스의 종류에 대해서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영원히 젊은 상태에 머물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청춘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이 콤플렉스가 젊음에 집착하게 만들고 개인의 성장을 막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어린 시기에 품었던 꿈을 다 이루지 못한 미련과 회한이 마음에 남아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하고 남겨둔 후유증인 셈이다. 이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은 현재에 붙들려 매이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늘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청춘 콤플렉스는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보이며 과거만을 돌아본다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는 멋진 명언까지도 새겨들었다.도전 없는 삶은 껍질만 보이지 알맹이가 없는 과일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런 청춘 콤플렉스의 일종에 조금은 빠져있었던 것 같다. 유아적인 사고를 지니면서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을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유리창을 통해서 비춰드는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한여름의 눈부신 햇살보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겨울햇살이 더 정겹고 따사롭게 느껴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우리들의 소중한 삶이 고약한 역병으로 인해서 블랙홀로 빠져드는 듯한 시간 속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헤쳐 나갈 길이 보일 것이다. 영원한 절망이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TV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의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은 베스트셀러 저서 ‘감사의 힘’에서 어릴 때부터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알았던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에너지가 바로 ‘감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긍정의 힘은 삶의 가능성을 키운다.감사하는 태도는 정말로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준다.우리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우리는 감사하는 태도를 통해 더욱 사려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그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아침에 눈을 뜨고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라는 요술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어보면 어떨까. 나에게 무슨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날는지 기대하는 기분도 꽤 괜찮을 것 같다.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9/07/2021
  스토리 브릿지

호주에서 문학 활동을 하면서 글쓰기의 멘토가 되어준 한 시인이 나에게 명언처럼 들려준 말이 있다. “이민사회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이민자다.” 그 말에 머리를 갸웃하며 이민의 삶이 만만치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 30여년이 넘는 긴 시간을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분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오래전에 상영된 영화의 제목처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이 사회에 골고루 퍼져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도 한 장을 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물을 찾아서 뺏고 빼앗으며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 명의 추적자에 대한 스토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치열한 싸움에서 살아남는 한 명이 모든 것을 가진다는 설정은 이기적이고 물욕적인 사람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도 그런 부류들이 널려있음을 뉴스를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통제된 주 경계를 뚫고 역병을 퍼뜨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철저한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다행이도 나는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또 둘러보아도 따뜻한 마음씨에 인정 많은 지인들이 내 곁에 항상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단순히 주고받는 물질적인 이해로 얽히면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그저 사랑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마음을 가지면 편해진다. 나는 요즘 건강과 나이가 비례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주눅이 들은 상태이다.  지난 몇 해 동안 건강문제로 자녀들이나 지인들에게 계속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평소에 기관지가 약한 내가 역병에게 두 손을 들고 항복할까봐 우려하며 작년 한해를 보내기도 했었다. 거기에 골다공증 주사를 맞고 비타민 D와 칼슘을 섭취하며 온 몸을 떠받치는 뼈를 다칠까 긴장하며 살았다. 그러나 간혹은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불운도 찾아오는 터라 얼마 전에 무릎 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긴 부츠 같은 스프린트를 신은 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있는 나를 위해서 지인들은 먹거리를 양손에 들고 병문안을 오고 있다. 나의 식탁이 갑자기 풍성해졌다. 한국인의 정서와 인심은 먹거리로 몸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모양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부탁하라는 친정 언니와 같은 따스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분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와서 식욕이 떨어진 나를 위해 함께 먹어주는 지인들, 모두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직장동료들은 위로의 카드와 꽃다발을 집으로 배달시켜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털어놓을 말벗은 꼭 필요하다. 특히 아플 때의 공허함은 가슴 안으로 휑하니 찬바람이 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 섬뜩함을 데워 주는 약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훌훌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이 서로의 눈만 쳐다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친구를 말한다. 나에게 필요한 친구는 가슴을 열고 손을 벌려주는 친구, 엄마의 손길처럼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이며, 작은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구를 말한다. 난 이미 대박 난 이민자가 되어있다. 내 마음에 와 닿는 친구가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더 깨달아가는 중이다. 사람은 옛사람이 좋고 장도 오래 묵은 장이 깊은 맛을 더해준다고 한다. 30년이 넘는 이민생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지나갔지만 오래된 우정은 나를 안아주는 포근한 담요처럼 느껴진다. 오늘 하루가 중요하고 다가올 내일에 희망을 걸며 내 곁에 있는 지인들의 사랑을 느낀다. 집에서 휴식하는 동안에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고마운 인연들을 잘 이어나간다면 인생은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기에.      파푸아뉴기니에서 30여 년 동안 원주민 소녀들을 위해서 고등교육을 시키며 돌보는 플로렌시아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수녀님인데 외방 선교 수녀님들의 노고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재는 수도인 포트모스비에서 두 시간 이상 비행기를 더 타고 가야하는 외진 섬에 분교를 다시 설립하고 원주민 소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오랜만에 도시에 나오게 되어서 전화를 하신다고.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으니 답답한 일도 많을 것이다. 다리를 다쳤다고 하소연하는 나에게 “하느님께서 푹 쉬라고 휴식시간을 주시는 모양인데, 하필이면 다리를 다쳐서 쉬게 하실까? 안 다치고 쉬게 해주면 더 좋을 텐데..” 라고 말해서 함께 웃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로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수녀님에게서 엄마와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아직 그 곳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은퇴 후에는 수녀님의 교육적인 일을 돕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위로를 받고 싶어서 한국에 계신 은퇴한 신부님께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할 때가 있다. 다리를 다쳤다는 말에 안쓰러워하면서도 이번 기회에 한번쯤 생각해보라며 화두 같은 말을 툭 던져준다. “그동안 살면서 다리보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요?”라고. 가슴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사용했던 내 신체 부분들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몇 주 후에 다리 보호용 스프린트를 떼어내면, 장미향기 풍기는 로션을 잔득 바르고, “고맙다, 내 다리야.” 하며 감사를 전하는 마사지를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4/06/2021
  스토리 브릿지

눈부신 햇살이 커튼 사이로 흘러들면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게 해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먼저 바친다. 이마에서 가슴으로 성호를 그으며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화살기도를 하늘로 쏘아 보낸다. 아무리 바쁜 하느님이라도 에둘러 아침인사를 날려 보내면 ‘마음의 평화’라는 선물을 보내줄 것 같아서다. 마음이라는 것이 가슴 안에 있는데 변화무쌍해서 하루에도 사계절을 다 겪으며 지내는 날도 있다. 그렇듯 대하기가 어려운 마음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이런 말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이 말의 깊은 의미는 마음의 변덕과 조절의 힘듦이 아니라 머리(지식)로 아는 것과 가슴(감성)으로 깨달아 실천하는 것의 차이를 뜻함이다. 모든 말이나 행동은 나에게서 벗어나기 전에 잠시 가슴 안에 담아 놓았다가 다시 끄집어낸다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을 텐데. ‘머리(지식)로 앎 + 가슴(감성)으로 깨달음 = 손발에서 완성(실천)’ 이라는 그럴듯한 이론 공식이 만들어진다.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세운 베트남 출신의 승려 탁 닛한은 “살아있는 지금, 이순간이 기적”이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마음의 채널’에 대한 멋진 풀이를 해놓았다. “마음은 수천 개의 채널이 있는 텔레비전과 같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하는 채널대로 순간순간의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 분노를 켜면 우리 자신이 분노가 되고 평화와 기쁨을 켜면 우리 자신이 평화와 기쁨이 된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을 어떤 채널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진다. 분노와 미움의 채널에 있는 걸까? 그러면 빨리 채널을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평화와 기쁨, 그리고 감사가 머물고 있는 채널일까? 그렇다면 거기에 채널을 고정시켜서 실컷 즐기며 감상해보는 것이 좋겠다. 만족스러울만큼 감상하고 나서 또 다른 채널로 이동하면 사랑과 나눔이라는 가르침이 있는 채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채널을 고정시켜서, 사랑에 더하기 열정(Love + Passion)을, 나눔에서 빼기 위선(Sharing – Hypocrisy)이라는 공식을 우리들의 삶에 적용시키면 더 오랜 시간 감상하고 싶은 채널이 될 수 있다. 그런 채널을 찾아서 꼭 붙들고 살아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보람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알려준다. 오늘부터 마음의 채널을 어느 곳에 고정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한번쯤은 가져봐야 할 듯싶다. 그리고 기쁨채널과 행복채널을 찾을 수 있을는지 지금 리모컨을 작동시켜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다가오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요즘의 나날이다. 앞으로 내게 주어질 시간이 이미 주어진 시간보다 더 짧을 것이라는 조급함 때문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늘 나에게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 동안에 그저 최선을 다해서 나머지의 삶을 스스로 후회하지 않도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니며 살게 된다. “고통은 씨를 뿌리는 일이고 갈망은 꽃을 피우는 일이며 눈물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금의 삶 앞에서 좀 더 겸손해지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죄에 해당한다는데 고통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한 걸음만 더 걸어 보세요.’라는 위로의 말을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우리의 삶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또 다른 행복채널의 사랑스러운 삶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한다.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베풀며 사는 시간이 되어줄 수도 있음이다. 몇 년 전, 퀸즐랜드 대학교에서는 티베트에서 온 달라이 라마의 제자들이 자기들의 전통의식을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을 공연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 영혼이 티베트의 깊은 산 속에 떠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심오한 악기 소리에 심신이 가라앉는 느낌의 전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들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전하려 세계를 떠돌고 있다면서 호주사람들이 자기들을 기억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하며 발을 딛어야 하는 땅을 빼앗긴 채 오랜 세월을 떠돌고 있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이 생겨났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달라이 라마를 힘으로 억누르는 자들에 대한 거부감도 생겼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자유가 빨리 찾아와서 순례의 길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마음에 담아 보았다. 사람들은 한 걸음씩만 더 양보한다면 지혜롭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점차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것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내 곁에 혹은 내 뒤에 누가 서있는지를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사는 세상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깃든다. 우리는 귀한 것과 값진 것들이 내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지만 정작은 눈을 가리고 귀를 닫은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관계의 복잡함이 점차 단순해지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7/05/2021
  스토리 브릿지

부활시기를 지내는 이 계절은 경건한 마음이들만큼 투명한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인다. 파란색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는 풍경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하며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손가락 하나 뻗혀서 그 푸름을 툭하니 찔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사는 이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호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매년 부활시기가 되면 낯선 곳으로 찾아가고 싶은 방랑벽이 생긴다. 역병이 돌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외국의 어느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새롭게 접하는 문화 체험에 감동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는 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며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런 설렘은 삶의 지혜와 내게 다가오는 또 다른 시간을 맡기 위한 준비를 시켜주는 힘이 되어준다. 여행지의 새로운 장소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신비롭고 신선하며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찾아나서는 여행은 낯선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한동안 하늘길이 막혀있으니 해외여행은 꿈처럼 그리워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부딪히는 새로운 문화체험은 지역사회 안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민족들로 이루어진 이민사회인 만큼 각 커뮤니티에서 벌이는 축제에 참석하며 떠나지 못하는 여행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면 어떨까 싶다. 호주에서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을 문화적인 차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성격 탓이라고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나의 친한 호주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반가움에 나를 끌어안으며 뺨에 입을 맞춘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서 그런 강한 반가움의 표현을 절제하고는 있다. 난 지금껏 한 번도 호주친구들의 뺨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 적응이 잘 안 되는 애정표현을 되돌려 해주기엔 낯선 문화에 익숙지 않은 성장 배경의 탓이라고 변명하면 될는지. 또 하나의 낯선 문화, 다른 나라의 전통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경험이 있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맛보고 싶어서 맛집 투어를 즐겨하는 편이다. 오래 전에 딸과 함께 정통 인디언 식당에 간적이 있다. 강한 카레 냄새를 풍기며 노란색의 긴 쌀밥이 멋진 접시에 담겨 나왔다. 식당에서 수저를 제공해주지 않는 식사를 받아본 적은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시작한 식객들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밥을 꾹꾹 눌러서 둥글게 만들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열손가락을 쪼~옥 쪽 소리 나게 빨아먹는데 나의 식욕은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각 나라의 음식문화에는 그 나름대로의 먹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는 되었지만 제대로 따라 하지는 못했다. 세련되지 못했던 낯선 문화 속의 식사여행을 어설프게 경험해본 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주말 투움바(Toowoomba)에 하루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에서 서쪽으로 13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9월이 되면 꽃 축제가 열리는 전원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 일찍 출발할 때 따뜻했던 기온이 2시간을 조금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갔을 뿐인데 스웨터를 걸칠 만큼 쌀쌀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지리학적으로 투움바는 분지지역이라서 계절별 기온 차가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그 집 가족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집주인은 전직 변호사이며 은퇴 후에는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가벼운 점심 모임이었는데 이혼한 전 부인과 재혼한 현재의 부인 그리고 자녀들이 함께 있어서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불편한 자리였다. 성장한 자녀들은 새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편안한 일상의 가족처럼 친숙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인 가정의 배경이라면 과연 그런 만남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한국 아줌마라서 그런 것인지 그런 분위기에 편하게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나의 갈등은 식사를 하는 동안 가족 분위기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변화되어가는 현대 가족사회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적응을 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플로마과정의 언어과목 교과과정에는 5가지 핵심 토픽이 있는데 그중에 ‘글로벌 이슈’라는 주제가 있다. 거기에는 기후변화, 문화와 예술, 자연환경, 인종차별 등 다양한 소주제들이 포함된다. 글로벌 이슈는 현대인들에게 직면한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주제 중의 하나로 문화와 관련된 주제로 학생과 토론을 해보았다. “한국인으로서 다른 문화권에 사는 것이 우리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12학년인 한 여학생의 답변이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호주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으며, 문화적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호주에서 한국커뮤니티도 역시 한 그룹에 속하지만 다른 공동체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민족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나가 되는 공동체, 즉 조화로운 다민족 공동체를 이루어야 민족의식이 아닌 애국심이 성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바로 그런 점이 저의 세계관에 미친 영향이 아닐까요?”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의 답을 제대로 이끌어낸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의문에 빠져든다. 인간의 잔인함이 자연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반격의 서막을 올리는 코비드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미래의 세상을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던 전통 문화라는 말이 과연 살아남을 수는 있을는지 의구심마저 생기는 요즘의 나날들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9/04/2021
  스토리 브릿지

비 내리는 주말의 아침이라서 그런지 몸과 마음은 느긋하게 풀어지며 텔레비전 뉴스쇼에 눈길이 간다. 사회를 보는 앵커들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동영상들을 보여주며 웃음거리를 풀어놓는다. 그런 후에는 직접 동영상의 주인공들과 영상 인터뷰를 하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유튜브(YouTube)나 틱톡(Ticktok)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주인공들을 찾아서 직접 소통을 시도하며 화제의 인물을 추적하기도 한다. 코로나 역병이 번진 후로는 사회적인 격리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점차 닫혀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외로움이나 우울증으로 인해서 점차 인간관계의 형성이 어려워지는 물리적 격리의 사회현상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몰이가 ‘나 홀로 족’의 증가를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방송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위로의 선물같은 코믹 동영상들을 소개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세상살이가 좀은 편해질는지. 오늘 아침에 소개된 짧은 동영상들 중의 하나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자신이 키우는 4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는 영상을 틱톡에 올린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5.2밀리언이나 되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목욕 후에는 주인 남자와 고양이들의 얼굴에 마사지 팩을 올리고, 눈에는 동그란 오이조각까지 올려서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네일 서비스까지 받는 고양이들의 표정은 정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한번 웃을 때 마다 한 가지씩 걱정거리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창조한 ‘안아주는 기계’의 동영상은 내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피어오르게 했다. 투명한 비닐을 긴 나무 막대에 씌워서 손을 뻗고 몸을 안으로 밀어 넣으면 안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고안된 포옹기구였다. 그 창작물을 사용한 이웃 여인은 정말 누군가가 자기를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스러워했다. 편안하게 안아주는 행동은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사랑을 전달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2016년도에 덴마크의 한 IT 기업이 자폐증 환자의 심리 안정과 일반인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되는 ‘포옹기계’를 만들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포옹 기계인 '오르비스 박스(OrbisBox)'는 안에 들어간 사람이 누우면 사방에서 폴리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패널이 신체를 압박해서 누군가 자기를 꼭 안아주는 느낌이 들도록 제작되었다. 이 IT 기업은 충분한 실내 공간으로 인해서 안에서 음악을 틀 수 있고 자폐증 환자의 예민증을 완화시키는 충분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를 앓는 환자의 수가 매년 중가하고 있다는 의학지의 발표도 있다. ’나 홀로족, 방콕, 혼술,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처럼 사회구조의 변화가 안아주는 기계를 생활 필수품으로 여기는 세상이 될까봐 우려된다. 몇 년 전 ‘프리 허그(Free Hugs: 자유롭게 안아드려요)’라는 캠페인이 지구촌의 젊은이들에게 유행병처럼 번진 일이 있었다. 유튜브에서 수년이 지난 오리지널 ‘Free Hugs’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면서 새롭게 감동을 받았다. 자유롭게 안아준다는 것은 일종의 ‘사랑나누기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Free Hugs의 시작은 시드니에 사는 ‘후안 만(Juan Mann)’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약 4분정도되는 짧은 동영상이지만 수백만이 넘는 지구촌의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았다. 어떤 한 남자가 ‘Free Hugs’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드니의 중심가인 피트 스트리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후안은 슬픈 가족사를 겪은 후 안아주기 캠페인을 벌리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안아주는 후안의 표정은 너무나 편안하고 다정해보이며 후안에게 안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묻어나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자유롭게 안아주기 캠페인’은 시드니 출신의 록밴드 ‘Sick Puppies’가 자원봉사로 동영상에 배경음악을 올리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국경 없는 사랑의 고리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메시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할머니 한 분은 안기고 나서 후안의 눈을 그윽이 바라보며 뺨을 어루만져주는데 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거리에서 포옹을 하던 후안을 내쫒았던 경찰도 나중에는 웃음을 지으며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감동을 더하게 했다. 후안 만이라는 사람이 시작한 ‘Free Hugs’ 캠페인은 혼란한 이 세상에 한줄기 사랑의 빛을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용기가 큰 물결을 이루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진심어린 따스한 포옹으로 인해서 사랑의 체온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여겨진다. 나도 ‘Free Hugs’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동안 ‘Free Hugs’가 열세를 떨칠 때 브리즈번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백인 청년이 ‘Free Hugs’ 피켓을 들고 사람들에게 팔을 벌리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을 때, 용감한 한국 아줌마는 팔을 벌려서 그 청년을 안아주며 “넌, 정말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다. 요즘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힘든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게 만들었고 헛기침 한번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하늘 길도 막혔고 그리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거나 안아보지도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백신 주사를 맞기 시작했으니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마음껏 행복하게, 자유롭게, 안아주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우리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사진 : 시드니 청년 후안 만의 프리 허그 운동

  25/03/2021
  스토리 브릿지

요즘의 우리 사회는 힘든 인간관계의 시대로 변환되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끊어버렸고 헛기침 한번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하늘 길이 막혀서 그리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고 친밀함을 표하는 악수조차 눈치를 보며 나누는 세상이 되었다. 백신 주사가 개발되었지만 깨어진 인간관계의 회복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유명한 미래 학자들은 우리의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측을 말하지만 실제적인 해결 방안은 그 누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뚫어질까 해서 오랜만에 한국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기에는 모든 면에 걸쳐서 힘든 현실임을 알기에 실시간 뉴스를 잠시 보았다. 뉴스의 대부분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과 서민들의 힘든 삶을 우선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보도 내용 중의 하나는 정부가 기초생활비를 주는 대상자를 선정하는데에 배달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역병이 번지면서 배달사업이 커져가니 수입이 늘어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거리의 신풍경으로 음식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자전거 뒤에 큰 가방을 올려놓고 바쁘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사회생활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입맛에 맞는 요리를 골라서 핸드폰으로 클릭만하면 문 앞에 배달해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는 탓이다. 부엌에서 주방기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점차 현실화 되어가는 사회현상으로 여겨진다. 특히 역병이 퍼진 이후로 음식배달은 낯선 이와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접촉을 줄이는 방안으로 일종의 면역 처방처럼 인식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달사업은 일종의 배달문화로서 새로운 사회콘텐츠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의 배달의 역사는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 도성은 새벽 네 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밤새 술을 마신 술꾼들이 술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이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장안의 유명한 맛 집의 해장국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 조선실학자인 황윤석의 일기에 “수년간 과거시험을 공부한 시험생들이 시험을 치고 난 다음날, 귀향하기 전에 동료들과 점심 메뉴로 냉면을 시켜먹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주로 궁중에서만 먹던 고급 냉면이 부유층 양반들에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어서 유명 맛 집에서는 냉면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상업이 발전했던 조선 중흥 기에는 장터 곳곳에 유명한 맛 집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정조 시대에 들어서 술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정조는 신하에게 조사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 당시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채제공은 정조에게 백성들의 일상에 대한 자료를 이같이 제출했었다. “애주가들의 술안주는 김치와 자반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근래에는 백성의 습속이 교묘해져서 신기한 술 이름을 내기에 힘써, 현방의 쇠고기나 시전의 생선을 따질 것도 없이 진수성찬과 맛있는 탕이 술잔 사이에 어지러이 늘려 있으니, 시정의 연소한 사람들이 술보다는 안주를 탐하느라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발췌) 새벽종이 울릴 때에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해장국이 있다. 남한산성의 한 유명한 맛 집에서 만들어서 통금이 해제되는 시간에 맞추어서 밤새 술을 마시던 사대문안의 양반들에게 배달을 했었다는 재미난 기록도 남아있다.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 성내의 맛 집이 유명했었는데 배추속대, 콩나물, 표고버섯, 쇠갈비, 전복에 토장을 풀어서 온종일 푹 고은 해장국이다. 푹 끓인 해장국을 단지에 담은 후에 솜으로 싸서 밤새 달려서 새벽 무렵에 재상의 집으로 뜨끈한 해장국을 배달했었다는 기록이 ‘해동죽지’에 적혀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음식 배달의 문화는 1930년대에 들어서 대중화하게 이르렀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한 시간에 약 이십 리를 걷는데 하루 밤낮을 달린다면 거의 오백리가 된다는 기사가 동아일보(1931년 1월 2일)에 실리기도 했다.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싶다. 꼬불꼬불한 장안의 길은 힘든 다리품을 팔아야만했던 그들에게 바로 삶의 전쟁터였던 것이다. 1906년 7월14일 만세보 신문에 “회갑연, 각 단체의 회식 모임이나 관, 혼례에 필요한 분량의 음식을 요청하시면, 거리가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라는 배달 광고가 처음으로 실리기도 했다. 또한 조선 최초의 한식전문 음식점이었던 명월관에서는 주문받은 음식들을 다양한 그릇에 담아서 교자상까지 차려주는 출장 배달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한정식 출장 뷔페서비스의 시초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음식을 담아 나르던 통도 나무통에서 가벼운 철가방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2009년, 한국 디자인 문화재단은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 생활 디자인 중의 하나로 중국집 철가방을 선정했었다. 배달문화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호주에 살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식 배달문화, 오토바이를 타고 철가방에 담긴 짜장면, 짬뽕 같은 국민요리를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정부가 배달인들을 위한 특별 위험 상해보험의 특혜라도 인정해준다면 그들의 배달 직업에 작은 보람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고된 현장에서 배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거리의 질주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으면 좋겠다. 배달사업이 점차 바뀌는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서로 공존하는 편리한 배달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나에게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한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연둣빛 나뭇잎 새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마음껏 들여 마시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누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게 너무 많은 날들을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바람에 살랑대는 작은 나뭇잎 하나에서도 세상의 행복과 평온을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넓은 파초 잎 위에 동글동글 맺힌 이슬방울이 너무 맑고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엄마, 너무 신선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사는 이 행복에 두 손이 절로 모아진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우리가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쟁반 같은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이 곧 다가온다. 팔을 한껏 뻗쳐서 보름달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안아보고 싶다. 환한 빛이 어둠에 가려지는 이 세상을 걷어낼 수 있도록 달님에게 절하며 소원을 한번 빌어 볼까... .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5/02/2021
  스토리 브릿지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눈부신 햇살과 함께 새해는 밝았다. 긴 여름휴가를 가졌지만 갈 곳은 제한되어 있어서 간혹 독 비치(dog beach)가 있는 바다를 찾거나, 탬버린 산속 깊숙이 위치한 농장을 찾아서 휴가를 지냈다.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함께 하는 휴식을 취했던 그 순간은 진정한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새해에는 늘 그렇듯이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지고 한해의 계획을 첫 달에 세워본다. 하지만 코로나 대역병이 확산된 이후로 희망사항을 꿈꾸고 실천해나가는 나날들이 아니라 삶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에 대해서 “역병이 미래를 바꿀 것이다.” 혹은 “미래의 세상에 크나큰 문명의 전환을 가져 올 것이다.”라는 예견을 하고 있다. 비대면의 사회에서는 생활 방식이나 활동들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는 깊은 공감이 간다. 예측되는 개인의 생활은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마스크 착용이 거의 의무화되다시피 해서 얼굴을 인식하기가 힘들어졌다. 마스크는 얼굴의 70%정도를 가리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존재감과 연결고리가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 개인의 실존과 관련해서 나의 문제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한 과학자는 이제 녹색인간 증명의 시대가 올 것이며, 개인의 삶과 일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와서 국가가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언택트 시대가 오면서 오프라인의 모든 일들의 30%는 온라인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유튜브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해서 바뀌게 될 주거 환경과 교육의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강의를 들었다. 일부 내용을 요약해보면 개인적으로도 큰 공감이 가며 현재 큰 변환점에 서있는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져준다. 그 교수는 “COVID 19는 세상을 바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원격수업으로 많은 학생들이 한 장소에 모일 필요가 없어지며 미래의 학교는 지금처럼 큰 규모를 유지해야 할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제시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이제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서구사회에서 만든 학교 시스템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던 어른들 세대의 삶을 반복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학교 시스템을 만들어 새 시대를 열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이 바뀌면 관점도 달라지고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갈 이야기를 공간의 관점에서 풀어야 하는 이유라고 문제점을 제시해준다. 공간의 변화가 가져올 관계의 변화에서부터 도시의 변화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건축전문가의 강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형화된 사각형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머리를 맞대며 대면수업을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지난해에 충분히 경험했었다. 호주에 입국하지 못했던 고교 유학생들은 컴퓨터 화상을 통해서 만났으며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랐지만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던져주고는 해외여행자들의 입국을 통해서 변종 대역병이 다시 번지고 있다. 브리즈번에는 해외여행자들이 2주간 머무는 검역호텔에서 일하던 청소부가 코로나에 걸린 줄도 모르고 일주일동안 참으로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 후유증은 죄 없는 일반인들에게로 돌아왔다. 여러 지역이 3일 동안 다시 록다운에 들어갔다. 나는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5일 동안 연장하면서 이 소중한 시간들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역병에 대한 분노가 새삼 치솟았지만 잘 극복하고 있다. 록다운은 해제되었지만 퀸스랜드 주총리는 1월 22일 오전 1시까지 더 지켜본 후에 확진자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오늘 벌써 6명으로 늘어났다는 업데이트된 뉴스에 아찔한 기분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오늘은 괜찮은지 내일도 안전한지를 묻는 비대면 인사가 일상화되어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품에 끌어안고 사는 듯하다. 코로나 시대와 인종차별의 문제가 심각한 요즘 세태에 맞춰서 영화와 드라마의 주제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보고 있다. 첫째, 흑인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의 수가 증가했는데 장르에 상관없이 사랑의 상대역이 백인 배우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좀비가 자주 등장하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을 떠돌며 산사람과 접촉을 한다든지, 저승사자가 그 영혼들을 끌고 가려고 사투를 벌리는 내용들이 많아졌다. 또 다른 주제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공존하는 현 한국사회에서 젊은 성소수자(LGBTQ)들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웹툰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상업적인 영화에 비판만을 할 수 없는 시대로 변했다. 이런 사회적인 시대의 흐름은 내가 살아가는 현 세상이며 내가 변해야 한다는 암시를 던져주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가족 휴먼드라마와 로코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그나마 위로를 받으며 긴 여름방학을 심심치 않게 보내고 있기는 하다. 한국에 있는 지인이 나무에 하얀 고무신 한 짝이 걸린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귀한 백신을 구했으니 잘 받으라는 안부 인사(?) 와 함께.. 멀리에 떨어져 살지만 아직도 유머를 나눌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할 뿐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8/01/2021
  스토리 브릿지

작년 이맘때쯤에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서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202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여운 때문이었다. 20이 두 개 겹치는 귀한 숫자가 왠지 예견하지 못할 행운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을 가졌었다. 그러나 새해가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했던 엄청난 경험을 했으며, 지구가 분노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게 들었다. 한해가 끝나가는 지금 사람들은 얼마나 반성했으며 또 다른 자연 파괴를 자제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정말 궁금해진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끝없이 펼쳐진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사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 서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힘든 경험을 한 뒤에야 더 강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굿바이! 2020 쥐띠의 해! 모든 힘든 일들을 이제는 과거라는 이름으로 띄워 보내고 싶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한동안 메말랐던 갈증을 풀어주며 답답했던 기분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느낌이다. 태풍에 떠밀려 휘몰아치는 비바람이지만 메마른 흙먼지를 씻어내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으니 한결 상쾌하게 보인다. 나는 한 여름날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좋아하며 가늘게 흩뿌리는 이슬비도 좋아한다.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방울의 맑고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져서다. 청춘의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작은 물방울의 흐름을 보며 감성을 느낄 수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속에서 마무리하는 한해의 끝자락은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시작을 실감하지 못한 채 보내게 된다. 아열대 도시에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건만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12월은 매서운 찬바람과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을 치는 거리의 인파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켜준다. 태어나서부터 이미 깊숙이 입력된 무의식의 기억이다. 기억이란 잊힌 것 같아도 무의식 세계에 남아서 꿈을 통해 영상처럼 의식으로 끌어 올려지기도 한다. 지난주에 아주 특별한 분들을 만나서 이른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오래된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슴에 안고 사는 할아버지들, 그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인 참전용사들이다. 연세가 90세를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들은 ‘노병은 살아있다.’ 라고 과시하는 모습으로 굽어진 어깨를 펴며 노병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골드코스트 한인회(회장 전주한)와 민주평통이 주관해서 퀸스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 노병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만찬을 주최했다. 매년 중요 행사로 치루는 만찬이지만 해마다 참석인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연세가 많은 노병들이 70여년의 세월을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안전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내놓고 위험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가슴에 작은 선물바구니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보은’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노병들은 남은 생애를 보내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픈 기억의 끈을 놓지 못할 것만 같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여생을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텔레비전 앞에 앉는 시간도 길어진다. 역사물을 즐겨보는 편이라서 지나간 드라마까지 찾아서 다시 보기를 하게 된다. 보면 볼수록 역사속의 정치와 인간관계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맞아떨어진다. 최근에 보았던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인지 역사물인지 헷갈리는 장르인지만 어김없이 정쟁을 일삼고 죽이고 죽이는 일이 반복된다. 터무니없는 스토리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권력은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지금의 한국정치를 보면 수백 년 전 양반계급들이 저질렀던 패악들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변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역사물은 흥미롭고 늘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긴 여름방학을 맞았으니 역시나 한국드라마의 중독성에 빠져 들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는 새해를 맞기위한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따른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항상 새로운 길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 가슴 안에 쌓여 있는 기억들을 정리된 하나의 글로써 표현하는 것도 자아를 극복하는 길이 라고 생각한다. 잊고 싶은 2020년이지만 결코 잊히지 않을 한해가 될 것 같다. 2021년, 소의 해에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되찾을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호주에 사는 한국 교민들도 새해에는 가정에 복된 일들이 많이 생겨서 대문 밖으로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파이팅~~~~!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17/12/2020
  스토리 브릿지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11월의 중순 즈음에 접어들면 미디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성탄 전야와 성탄 미사만을 경건하게 성당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썰렁하기만 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지난 연말 무렵, 소나기가 쏟아지던 한여름 밤에 재즈 기타연주를 들으며 동료들과 함께 했던 그런 축제의 날을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좋은 뉴스만 들으며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가끔씩은 빛처럼 우리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따뜻한 소식도 전해진다. 오늘 아침뉴스에 소개된 젊은 소방대원의 미담은 나의 하루를 훈훈한 온기로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며칠간 드세게 쏟아진 비로 인해서 하수구에 쓸려 내려간 어린 고양이를 지하 하수구에 내려가서 구조해내는 모습이 뉴스시간에 방영되었다. 구조한 아기 고양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는 젊은 소방대원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방송 진행자는 그 소방대원을 향해서 “그대가 영웅입니다”라며 감동스러워 했다. 사랑을 베푸는 일에 대해서는 크고 작음의 잣대는 결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밝히는 열세개의 이야기’ 라는 책에 소개된 실제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해본다. 내가 소리 없이 베푼 작은 자선은 보는 사람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해준다. # 첫 번째 이야기: 어떤 낯선 사람이 길거리에 세워져있던 자동차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유리가 깨어진 부분에 예쁜 색종이를 붙여놓았다. 그 낯선 이는 “당신의 차가 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들도 때로는 남의 불행에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 두 번째 이야기: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개를 치료했던 수의사에게 개 주인의 어린 손녀가 서툴게 쓴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다. " 내 강아지의 다리를 고쳐주어서 고맙습니다. 비록 그 개는 다리가 세 개뿐이지만... ." 그 수의사는 " 내가 왜 치료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일이었다.” 라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 보답과 감사는 우리 생활에 적절하게 필요한 영양제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 세 번째 이야기: 비가 퍼붓는 거리에서 혼자 앉아있는 몸이 불편한 홈리스 노인에게 어느 여자가 우산을 받쳐 들고 계속 서있어 주는 장면을 목격했다. 길 건너편에 세워져있던 천막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머뭇거릴수록 결정은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으뜸가는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해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가슴은 단단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그만큼 삭막해져서 부드러운 생명의 싹이 제대로 움트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느 공간, 어느 시간 속에 서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세상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내가 가진 두 개 중에서 하나를 내 이웃과 나눠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만약에 내가 열네 번째의 감동적인 사연을 만드는 주인공이 된다면 정말 멋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하면 남은 시간도 즐거워지는 법이다. 인간 비타민이라 불리는 가수 이수현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다. ‘레몬트리’ 라는 노래를 들으면 새콤달콤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왠지 통통 뛸 듯한 생기가 풍겨 나오는 듯하다. “ 또 아침이 오는 그 소리에 난 놀란 듯이 바빠져야 하겠죠. 또 무언갈 위해서 걸어가고, ~~ ~ 나의 마음을 상쾌하게 할 거야.”라는 가사가 참 좋다. 음악은 늘 마음의 치유자가 되어주고 위로자가 되어준다. 힐링이 필요한 나날들이다. 북미 인디언인 체로키 부족은 11월을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는 사색을 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로 받아들인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삶에 대한 해답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달 11월에 걷는 산책길과 사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을 가슴 안에 깊이 새기면서..

  26/11/2020
  스토리 브릿지

토요일 아침은 늘 느긋하고 기분 좋은 날이 되어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좋고 한가로운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오늘처럼 가볍게 비가 흩날리는 날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가까운 보타닉 공원으로 봄맞이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강물 위에 떨어지며 물결무늬를 만드는 빗물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며 강기슭에서 풍기는 나뭇잎들의 신선한 내음을 깊이 들여 마신다. 한 주일 동안 내 안에 쌓여있었던 먼지들을 걸러내고 몸과 마음이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아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작은 숲길로 접어들며 빗물을 머금은 초록나뭇잎들의 싱그러움을 눈에 담아보고,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향내를 가득히 들이마셔 본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특별한 것도 많지만 특별하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날들이다. 고교 12학년생들은 지금 마지막 시험을 치며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늘길이 막혀서 자녀들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는 유학생 부모들은 애틋한 마음을 이메일에 담아서 보내온다. 나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크리스는 이제 작은 어른이 되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첫 계단을 밟게 됩니다. 졸업 후에도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건강하고 밝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세요. 제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지난 몇 년간 애썼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겠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냈다. 졸업을 축하하며 내 마음을 다해서 한 명씩 껴안아주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 얄궂은 세상에 살다보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진다. 언제쯤 이 답답한 우울증을 훠얼~~~ 훨 날려 보낼 수 있으려나. 지난주에 주니어 학생들이 운동장 양편으로 늘어서서 12학년 졸업반 선배들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큰 박수와 환호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해졌다. 학생들은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십대시절을 보낸 학교를 떠나며 시원섭섭한 감정이 먼저 들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선생님들에게는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그 속마음을 알면 좋을 텐데. 유학생 회장을 맡았던 J군이 이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국선생님이 항상 제 곁에 계셔서 큰 힘이 되었고 유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시간을 내서 선생님 꼭 찾아뵙겠습니다.” 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환하게 번져나간다. 공립학교의 국제부서에서 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가슴 아린 아픔도 웃음도 번갈아서 주는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어린 십대 청소년들이기에 깊은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아를 만났을 때는 회초리를 들고 싶을 만큼 격한 감정이 일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일조차도 결국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받는 활력과 가르치는 즐거움이 한데 어울려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모가 많았던 날들이라 여겨진다.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았으며 사람과의 만남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가족과 나를 염려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세상을 뒤엎어버린 무서운 역병이 아직도 떠돌아다니지만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현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R U OK ? 괜찮으세요?” 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연대감을 가져야 할 변화의 시점에 서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이다. 프로이드나 칼 융의 심리학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저자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솔직하게 밝히며 삼십대의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늘 괜찮다.’ 라고 말하다보면 스스로가 내면의 상처를 입게 되고 내안의 무언가가 치유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눈물을 흘리고 싶으면 울도록 내버려두고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충고도 해주고 있다. 작은 일상에서 상처받는 나를 안으로 움츠러들게 내버려 두지 말고 바깥으로 끌어내서 제대로 돌봐주며 치유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달해준다. 그래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기쁨을 느끼며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니까. “행복이 뭐 별거인가요?”라는 말처럼 내 옆에서 잠을 자는 북극곰 같은 예쁜 에스키모(사모예드 종)를 끌어안으면서 정말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29/10/2020
  스토리 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