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업소록 |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푼 가장 큰 축복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안겨준 것이라 생각한다. 호주의 아열대 도시에 살면서 일 년 내내 눈 부신 햇살과 풍성한 초록의 자연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 할 일이다. 거리마다 풍성한 나뭇잎을 늘어뜨린 수많은 나무를 보면서 생기를 얻는 듯한 기분이 든다. 초록색이 주는 산뜻함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며 박하사탕처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참 좋다. 그래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왠지 산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바다보다는 산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바다를 그리워하던 한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점차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깊어질 뿐이다. 지난 오월에는 한국에 방문해서 봄의 정취가 피어나는 산의 아름다움을 실컷 눈에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강원도 동해에 있는 한 실버타운에서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오랜 지인이 미국에서 40여 년 동안 살았던 이민자 생활을 접고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며 정착한 곳이다. 내가 천사라고 불러주는 지인은 나와 20대 중반의 청춘 시절을 함께 했었던 직장동료였지만 찐 사랑의 동생이다. 남편과 함께 강원도 지역에서 살고 싶었던 그녀는 드넓은 산자락 아래에 있는 멋진 실버타운에 이주해왔다. 등 뒤에는 굽이진 산들이 길게 누워있고, 창가에 서면 망상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가 한눈에 쏴~하니 들어오는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환경 덕분에 나도 같이 어울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편안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이주를 잘 결정했구나 하는 느긋함이 엿보였다. 얼굴에 항상 미소를 띠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동생이지만 그녀의 과감한 결단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미국에서 살았던 40여 년의 삶을 재정리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약 200여 명이 넘는 시니어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개인의 삶 또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뒷산으로, 바다로, 산책을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노년의 행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동해에 머물면서 부근의 시골 마을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는 즐거움은 역시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기쁨이다. 이름만 익히 알고 있던 정동진에 가서 큰 선박 모양의 식당에서 먹었던 싱싱한 생선회의 화려하고 기막힌 맛, 우연히 지나가다 들린 옥계라는 시골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맛보았던, 대구뽈찜은 내가 먹어본 한식 중에서 첫손가락을 꼽을 만큼 맛있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허름해 보였던 식당 안에는 반전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수십 년 묵은 약초로 만든 약주 병들이 벽을 메우다시피 전시되어있었으며, “강원도 향촌 토종음식 연구소”라는 나무 간판이 턱 하니 한쪽에 걸려있었다. 대~~~박! 이럴 때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이다. 비 내리는 날, 개울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양푼이에 담긴 한 잔의 막걸리와 도토리묵, 그리고 감자전 안주로 잔을 부딪치며 쌓은 또 하나의 추억은, 나를 오랫동안 따뜻하게 지탱해줄 것만 같다. 주일에는 묵호 시내에 있는 묵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실버타운에서는 교회 신자들을 위해서 셔틀버스를 제공해주었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묵호 성당은 성지로서도 알려진 곳이다. 성당 안에는 젊은이들보다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신자들이 앉아있었다. 소도시나 시골의 인구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현실을 교회 안에서도 체험한 셈이다. 한쪽 벽면에는 길게 늘어트린 천에 “제발, 느긋하고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보자.”라는 내용의 문구가 쓰여있어서 우습기도 했지만,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좀은 여유롭게, 좀은 느긋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자. ”라는 교훈을 소도시의 작은 성당에서 다시금 깨닫게 될 줄이야. 삶의 기준을 잃고 멀리에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을 위한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안내문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앞만 보고 급하게 달려가는 우리들의 세태에 대한 요구처럼 들렸다. 우리는 과연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한 책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았다. “예전에는 마음의 모양을 상상했는데 최근에는 마음의 질량을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경중인지를 재보고 가늠하며, 그것을 얼마 동안 지고 있었고, 얼마 동안 지고 있을 것인지를, 언제 가벼워지고 언제 무거워지는지 그 무거움이라는 것이 내게 기꺼울 것인지 버거울 것인지를. 무게 말고 질량을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을 마음의 고유를. ” - 다정을 지키는 다정(김소원) 저서 중의 일부- 나는, 내가 매일 받는 은혜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맞이하는 이 시간을 깊고 넓게 지내자는 마음 다짐을 해본다. 이런 생각이 바로 마음의 질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눔의 삶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다면 질량의 무게를 가볍게 해줄 것이라는 간단한 원리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황현숙(칼럼니스트)

11/07/2024
스토리 브릿지

유리창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 방물 소리의 여운은 내가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으로 되돌아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어깨 위로 스며드는 으스스한 찬 기운이 어느새 초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름의 끝 무리와 초가을의 서늘함이 뒤섞인 날씨를 느꼈는데 몇 주 사이에 몸을 움츠리게 할 만큼 계절이 변해버렸다. 시간의 흐름에 등이 떠밀린 듯 초고속 세월행 기차를 탄 기분이 든다. 올해의 운세에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는 기운이 깃들었는지 지난 몇 개월 동안 바깥으로 많이 나돈 것 같다. 은퇴할 당시에 바랐던 일 중의 하나는,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동안에는 낯선 도시에서의 이방인이 되어보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드넓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디고 싶은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긴 시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 첫 번째 방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호찌민( 옛 사이공)에 가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씨를 보여주는 4월 말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민주평통 아태지역 국제회의에 2박 3일 일정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약 300여 명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족을 동반한 평통 위원들의 큰 모임이었다. 해외 지역 자문위원의 역할은 통일을 위한 의견 수렴과 현지 외국인들과 통일 외교 활동, 그리고 재외동포 사회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형성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올해, 해외에서 임명된 자문위원의 전체 숫자는 136개국에서 약 4000여 명이며 임기는 2년이다. 이번 베트남 콘퍼런스는 동남아와 태평양 지역을 아울러서 열린 국제회의였다. 브리즈번에서 하노이로 가는 직항이 없는 덕분에(?) 한국을 경유하는 경로를 택했다. 출발 전부터 첫 방문인 베트남의 문화와 음식에 대한 기대로 몹시 설레었다. 비자 발급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이민성 사이트로 들어가서 비자를 신청하니 일주일 정도 걸려서 비자가 나왔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4월 평균기온이 25-34도로 알려졌지만 체감 온도는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다. 호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에 힘들 만큼 무더웠다. 첫날, 회의장 입구에는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 민요 아리랑을 연주하길래 앞에서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춰주니 음악을 통한 교류 탓인지 금세 친밀감을 느꼈다. 통일 담론에 대한 진지한 토의와 분임조를 나누어서 발표도 하며 회의의 주제에 맞게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인터뷰 신청을 받아서 간략한 소견을 적어서 제출하기도 했으며 한몫을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롱 베이라는 유명한 관광지에서 크루즈를 하며 점심도 했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위원들과 네트워크를 쌓기에 더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인맥이란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만남을 만들어 가는 것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사가 끝난 당일 밤에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으로 날아갔다. 나는 사이공이라는 도시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보다. 오래전에 뮤지컬 ‘사이공’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었다. 영화의 낭만적인 한 장면처럼 열대 나무가 우거진 도로 위를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가냘픈 몸매의 베트남 아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국적인 풍경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거리에는 검은 매연을 내뿜는 모터사이클 부대가 무질서하게 질주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말하는 교통지옥의 현실이었다.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너무 순진하게만 바라보았던 나의 시각이 부끄러워졌다. 사회적 문명은 쉬지 않고 변하며 바뀐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지인의 안내로 호찌민 궁전과 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호찌민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시,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이념을 가진 베트남 제2의 도시로서 지속적인 성장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특이한 사항은 수많은 한국인이 ‘베트남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다고 했다. 꿈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성공적인 미래가 되기를 한국인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답게 경제면에서 뇌물과 권력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도 있었다. 물가는 아주 싼 편이며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이 빈부의 차이가 심하다고 했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물건을 사거나 호텔비를 지불할 때 돈의 단위가 너무 커서 계산이 혼란스러웠다. 같은 아시아권에 속하지만 이렇듯 다른 문화와 생활 속에서 일주일간 많은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굿바~~이, 베트남( Tam Biet Viet Nam) ~~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 베트남의 찐 더위에 지쳤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10도 이하의 낮은 기온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 예상치 못한 날씨의 변화를 맞은 것이다. 온도 차이만큼이나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여의도에는 눈 부신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주변을 밝혀주었다. 여의도 콘라드호텔의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주변의 공원과 대교, 수많은 고층빌딩의 숲……. 서울은 이제 나에게는 익숙했던 예전의 삶터가 아니라 낯설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방인의 도시로 변해있었다. 붉은 해가 한강 물 밑에서 치솟듯 떠오르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환희가 가슴안으로 퍼져나갔다. 스카이라운지에서 한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하늘가로 번져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감성에 빠져들기도 했다. 멀리서 날아온 막냇동생의 휴가를 위해서 오빠 부부가 베푼 호의로 편안한 휴식을 취했던 멋진 한 주일이었다. 나는 노인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는 큰언니를 만나기 위해서 부산과 양산으로 바쁘게 다녔다. 비바람이 치는 드센 날씨였지만 오랜 지인인 J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방문을 할 수 있었다. J를 보면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느낄 수 있다. 큰 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서너 달 전에 요양병원에서 일반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었다. 중환자 노인 병동에서 호스를 꼽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의식이 분명치도 않은데 내 이름을 계속 말하니 텅 빈듯한 동공에서 눈물이 흐르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한 병실에 누운 같은 상태의 노인들을 보니 아무런 말이 필요 없이 눈물만 흘렀다. 한국에서 벌어진 의료진들의 심각한 사태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의사의 부족으로 응급실 입원마저도 힘들었다는 설명에 더 나은 시설의 병원으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했단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을 하는 의사가 자신들의 개인 욕심으로 얼마나 많은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게 했을지 분노가 치밀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자신의 사업과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이 인생 팔십에 그렇게 허물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 만난 병원 대표는 노인환자를 마치 하나의 비즈니스 손님으로 대하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를 입원 전에 머물렀던 요양병원 시설로 다시 옮기게 되었다. 복지사와 함께 중증 노인을 치료하는 곳을 둘러보면서 여기가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문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은 눈에 보이듯 손등과 손바닥처럼 맞닿아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해주었다. 내 마음의 쓰라림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 대표와 복지과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생길 문제와 치료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나누고 서류에 사인도 했다. 언니를 병원에 두고 돌아서는 내 발길은 너무 무거워서 돌덩이가 매달린 것 같았다. 비바람은 왜 그리도 드센지 내 심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너무 우울해서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를 못했다.  예전에 브리즈번에 교환교수로 오셨던 친분이 깊었던 교수님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경기도에 있는 에덴 파라다이스라는 봉안당에 방문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에 봉안당에 안치된 사진을 보고, 비치된 화면에 방문자의 글을 남기면서 또 한 번의 아픈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친한 지인이 미국에서 옮겨와서 머무는 동해에 있는 실버타운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었다. 시니어 재외동포들의 역이민 실태를 체험해본 것이다. 언젠가 실버타운에서의 체험 숙박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생각이다.  이번의 여행을 통해서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더 깊은 아픔도 느꼈지만, 인생이라는 한순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공부를 했다고 여겨진다.그래서 “긴 ~~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황현숙(칼럼니스트)

07/06/2024
스토리 브릿지

은퇴한 지 어느새 10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은퇴를 결정하기 전에는 여유를 갖지 못했던 나의 삶을 생각했으며, 아무 곳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갈망했다. 그리고 세상사가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기본상식을 경험한 나이도 되었으므로. 그저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주는 느긋함을 기대하며 들뜨는 마음이 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싶다. 그런데 한계를 느끼는 것은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시간이 남아돌 거라는 착각 속에서 세웠던 여러 가지 계획 중에서 하나씩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는 있지만,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밤중에 쏴~하고 나무들 사이를 내지르는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부딪힘,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설칠 때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경험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숫자가 더해지는 내 나이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12월경 크리스마스 무렵에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한 곳에서 십여 년이 넘도록 살다 보니 장안에 쌓여있는 수많은 짐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분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이 나이에 왜 이리 가진 것이 많은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를 곱씹어 보기도 했다. 이제는 더 가질 필요도 없고 나눔을 실천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생활을 하고 싶어졌다. 사용하던 가구들, 옷, 소중한 나의 분신인 책 그리고 컬렉션 장식품 등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지금의 새 아파트에 들어서면 거실이 휑한 느낌이 든다. 자선단체에 기부할 상자 안에 마구마구 담아서 넘겨줄 때는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이제는 마음이 가볍고 아주 편안한 느낌이다.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자기 효능감이 우리의 통제능력을 되찾아줄 수 있다. 이제는 남은 시간 동안 소소한 변신을 시도하며, 살면서 깨닫게 되는 지혜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한국입양아 호주 부모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30여 년이 넘는 우정을 지키며 각자의 다른 자리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만나왔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전한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고 추억에 젖는 호주 엄마 아빠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린다. 일 세대 입양아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서 결혼하고 자녀들을 키우며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딸 두 명을 입양한 로즈와 앤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 후에는 여행을 즐기며 손자들을 돌보기도 한다. 나는 로즈를 항상 천사라고 부른다. 사근사근하고 다정한 말투 안에는 늘 애정과 격려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글학교에서 첫 수업을 시작하던 날을 회상하며 가슴이 찡해왔다. 코흘리개였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호주사회에서 당당하게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주 정부 수상실에서 수상 보좌관으로 일하는 K, ABC 방송국의 클래식 음악 담당 PD인 C, 모두가 자랑스러운 한국계 호주인이다. 호주인 부모들은 자신에게 입양된 자녀들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 가르치며 자녀들도 자신을 소개할 때 코리안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서양 문화의 결합이라 말하고 싶다.  최근에 가장 놀라운 소식은 k-문화와 K-팝 음악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찾아서 한국을 방문했던 H가 있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좌절감을 속으로 숨겨두고 살았던 아이였는데 큰 변환의 접점을 맞은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녀들의 소식과 다른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양부모님들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그 빛은 “사랑”인 것을.  “행복, 그것은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만남 안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호주에서 지낸 나의 시간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한국입양아와 양부모들과 만남,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을 더 넓고 새롭게 만들어주었으며 우정 이상의 행운이었다는 믿음을 가진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발견할 때에 비로소 가장 나다운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에너지가 솟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은퇴 전, 학교에서 바쁜 일상을 보낼 때는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그런데 막상 짐가방을 싸려고 하니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어떤 지인의 말을 빌리면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데, 나는 지금 시간의 변경선 위에 서 있는 모양이다.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만큼 또 주어질 만큼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 다짐을 하게 만든다. 영원할 수 없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새로운 삶을 보람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 좋은 친구들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며 만남을 계속하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의 한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황현숙(칼럼니스트)

23/04/2024
스토리 브릿지

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방황하며 전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의 역사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맞아 고국을 떠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다른 민족들도 사회 과학적으로는 ‘디아스포라’라고 불린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 말은 호주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인 교민들을 부르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호주에 살고있는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혹은 호주 사람입니까? 또는 한국계 호주인입니까? ( Are you Korean or Australian or Korean- Australian?”). 1세대의 부모들은 2세대, 3세대에 이르는 후손들의 정체성을 어떤 대답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던 뉴욕의 한 젊은 한국계 변호사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인생을 탈바꿈하는 계기를 맞았다. ‘전후석 감독’,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쿠바의 한인 이민자 일 세대인 헤로니모를 알게 된 것이다. 헤로니모는 스페인식 이름으로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임은조)이 정식 이름이다. 그 사람의 3세대 후손을 쿠바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전후석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3월 20일, 퀸즐랜드대학교 St. Lucia 캠퍼스에서 특별한 토크쇼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와 초선(Chosen)을 기획 촬영한 전후석 감독이 브리즈번을 방문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었다. 나는 이번 이벤트와 관련해서 참으로 큰 기대를 하고 설렘 속에서 그 사람을 기다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감독이 출연했던 유튜브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나와 내 가족이 바로 ‘디아스포라’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전감독의 얼굴은 영상을 통해서 익숙했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갓 40을 맞은 나이답지 않게 더 젊어 보였고 헌칠한 키의 훈남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한 청중이 그에게 ‘전후석 영화감독, 전후석 변호사, 조셉 전’ 중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은가를 물었을 때 조셉으로 불리는 게 좋다며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석감독이 잘나가는 뉴욕의 변호사라는 직업을 뒤로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헤로니모’라는 인물에게 빠져들면서부터였다.전감독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쿠바 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니모(임은조)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며 독립운동의 정신과 뜨거운 조국애를 느꼈다고 했다. 헤로니모는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의 중심에서 사라져간 영웅 같은 한 인물을 알리고 그를 통해서 한국 이민자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전감독의 강연은 강의실에서 그에게 온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가슴을 적시는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특히 성경의 한 구절인 선한 사마리안의 이야기를 예시로 말했을 때, 그 순간 내 가슴안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으로부터 멸시를 받았던 종족이었다.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희생자를 구해낸 사마리안이 바로 디아스포라라고 말했다. 이 성경 구절의 인용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으로 풍요로운 지혜를 전달해주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디아스포라 적인 정체성은 의식적 경계성, 온전한 이중성, 혼합성, 다양성과 환대 성이라고 간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전후석감독은 <헤로니모> 프로젝트가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닿아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의 한인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그는 “이 사람(헤로니모)을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겠다는 설명하기 힘든 끌림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는 미국에서 이민자와 유색인종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던 도널드 트럼프가 막 집권한 때이기도 했다. 전감독은 더 큰 세상을 향한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수식어”라는 책을 출판했었다. 전후석 감독은 미국 내 한인과 중국 옌볜의 조선족부터 쿠바·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한인,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요르단 한인들까지 두루 만나며 고민의 답을 찾아 나갔다. 그는 그 고민의 결과가 “민족의 개념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의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애정은 그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빅토르 휴고의 말을 인용하며 디아스포라(이민자)를 표현하기도 했다. “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 (디아스포라)이다 .”이 또한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갑자기 뒤바뀌게 만든 쿠바의 혁명가였으며 한인 리더였었던 헤로니모(임은조)의 역사를 추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전후석 감독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그는 오늘도 미래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한인들의 숨겨진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 믿어진다. 멋진 그에게 홧~~팅을 보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26/03/2024
스토리 브릿지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면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어온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일 년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은 가득 채워져 있는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기만 하다. 하지만, 일 년의 마지막 순간들이 지나가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 한해도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고 헤어지기도 하는 삶의 순리를 겪은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독일 작가 F.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참으로 멋진 말을 다시 찾았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해서 규정된 궤도를 따라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고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었는지 아니면 보조 역을 충실하게 했는지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았다면 그만큼 아쉬움도 덜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해 동안 베풀었던 사랑, 나눔, 배려, 감사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든, 세상의 어떤 것과 맺은 인연이든지 간에 그 소중함을 사랑하려 한다. 떠나가는 한 해에 감사를 표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본다.  올 한해는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해가 된 것 같다. 20여 년이 넘도록 일했던 하이스쿨에서 은퇴를 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십여 년이 넘도록 살아서 정이 많이 들었으며 내 삶의 한 부분을 담아낸 곳이다. 발이 머물고 내 머리를 눕힐 수 있으며 늘 새로운 기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집이다. 이제 나는 이 한 해 동안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뜻깊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을 함께 안고 12월을 보내려 한다. 12월은 마치 한 장의 책을 덮으며 새로운 챕터로의 문을 열어주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동안의 경험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채워졌고, 이제는 그 책을 닫고 미래를 향한 다음 장을 기대하는 시간에 서 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 들과 만남에 감사하며, 그 소중한 시간이 삶에 큰 의미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은 12월을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달로 표현했다. 체로키 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 족은 ‘침묵하는 달’, 퐁카 족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명칭을 정해서 달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영적인 능력을 갖췄던 사람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묵상하게 만드는 단어로 사용한 것을 보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던져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뜻이다. 심장(Heart)이라는 단어에서 첫 알파벳 “H”와 마지막 알파벳 “t”를 빼면 귀(ear)라는 말이 중간에 있다. ‘H’는 머리(Head)를 상징하고 ‘t’ 는 발가락(toe)을 상징한다. 그래서 머리(Head)부터 발끝(toe)까지 잘 들어주고(ear) 사랑(Heart)을 나누며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단어의 깊은 뜻을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스럽다. 은혜와 축복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과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12월에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힘든 이웃을 배려하며,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열린 마음의 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마음 안에 촛불 하나 켜서 다른 이의 가슴안에 옮길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월에는 내 이웃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마지막 달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해에는 더 욕심내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서 나잇값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부터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비타민을 나눠주는 그런 여유를 부리고 싶기도 하다. 일 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올 한 해 동안에 겪었던 일들과 추억을 돌아보며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흘러가는 강물을 억지로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편안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에 조금의 후회만 남기고 마무리를 잘해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기다려보는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필자의 칼럼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024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운이 함께하는 나날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1/12/2023
스토리 브릿지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휘황한 불빛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매일 새롭게 느껴지는 우리 동네의 야경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확인하는 시간의 신호처럼 여겨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함에 기대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 여류시인은 “여자는 나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불행한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완전한 성숙함을 나타낼 수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의욕,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갈등을 만들기는 하지만 의식이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따스함을 안개처럼 내 주위로 흩날리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는 요즘의 일상이다.  그림 그리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친구와 함께 마운트 탬버린에 있는 예술의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산 입구에서 마을까지의 길은 내가 찾아가는 곳이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를 눈으로 냄새로 느끼게 해주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는 아~ 하는 소리를 내뱉게 하고 열린 차창 사이로 산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산속에서 호흡하는 진한 솔잎 향은 도시의 쌓인 먼지를 묻힌 채 산을 오르는 나에게 몸과 마음을 정화 시켜주는 듯했다. 점차 산이 겹쳐지면서 눈 아래 동네가 시야에서 멀어지고 숲 길가에 나타나는 집들은 마치 스위스 산장의 어느 마을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Welcome to Village”라는 나무 팻말을 보며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카페와 아트갤러리, 독일산 뻐꾸기시계 집, 깊은 산에서 흘러나온 정갈한 물로 빚어낸 와인 전시장이 있고,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을 파는 가게들, 모두가 나름의 개성을 뽐내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도 배고픔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하기에 가장 멋스럽게 보이는 베란다를 가진 카페를 선택해서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었다. 그 맛은 산속의 풍광이 주는 신선한 매력 탓인지 그냥 맛있다는 말 외에는 어떤 묘사도 할 수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온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세상의 행복이 다 담겨있는 듯한 여유와 느긋함이 보였다.  유난히 산을 좋아하는 친구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여생을 산의 한 모퉁이를 보금자리 삼아 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가지고 있다. 작은 갤러리를 마련해서 자신의 그림을 걸어놓고 오가는 길손에게 관람시키면서, 한 잔의 차와 비스킷을 제공하며 2불의 입장료만을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다시 비스킷과 차를 사고, 그래도 돈이 조금 더 모이면 교회에 헌금도 하고, 또 불우한 이웃을 돕고 싶다는 밝은 소망을 품고 있는 멋진 사람이다. 그런 말을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친구의 모습에서 사람은 자연과 함께할 때 가장 순수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부근에 있는 부동산 가게에 들어가서 매물로 나와 있는 갤러리와 주택을 사진으로 구경했다. 그중에서 가격과 외형이 꽤 괜찮아 보이는 집을 보여달라고 하니 마침 한 집이 비어있다는 반가운 말을 들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뚱뚱한 호주 아저씨는 골드코스트에서 개발하는 주택단지 프로젝트까지 보여주는 선심을 베풀어 주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로 찾아간 집은 산속에 있는 전형적인 하얀색의 팀버하우스이며 현관에는 청동색의 종과 갈색 도자기 판에 “Rose Cottage”라고 새겨진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턱 하니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둥근 공 모양의 유리 자재로 만든 디자인의 글라스 스튜디오가 뒤뜰에 자리하고, 그림을 걸 수 있는 마루방에는 우아하고 탐스러워 보이는 벽난로가 방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층 침실에는 윤이 나는 갈색의 마루가 길게 깔려있고 장미꽃 무늬가 새겨진 커턴 뒤로 정원이 보였다. 천장은 삼각형의 나무무늬로 장식되어있고 침실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 서니 산의 전경이 한눈에 담겨왔다.  목욕탕에는 스파, 샤워실, 욕조가 황금빛 손잡이들로 장식되어있으며 창문은 뒤뜰에 있는 자목련 나무와 연결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와 살아있는 나무들이 서로 얽혀서 하나의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벌써 하나로 뭉쳐진 듯 보였다. 너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글을 쓰고, 우리 서로 그렇게 어울리며 살아보자는 허망한 소망을 잠시 품어본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소녀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서 짓든 나의 이상형인 집을 보게 되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나만의 집을 찾은 것이다. 이 층의 침실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힘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화가인 집주인이 백만장자라는 환상적인 말을 귀에 흘려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의 운전에도 나는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밤의 꿈길은 아주 편안하고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예쁜 집이 더는 환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붙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많이 황홀했고 많이 행복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내 속에 숨겨져 있었으며 내 꿈이 스며든 집을 찾았고, 그곳에서 잠시라도 앉아 있는 행운을 누렸으니까.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시간의 환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그리워하는 마음이 스멀대듯 솟아난다. 알게 모르게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스침 속에서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작은 미소, 따뜻한 인사, 차 한 잔의 여유로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삶에 색깔을 더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시 젖어 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3/11/2023
스토리 브릿지

 꽃샘바람과 함께 찾아온 다양한 이벤트들이 태양의 도시를 더욱 눈부시고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한낮에 서서히 뜨거워지는 열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도시는 풍성한 에너지로 채워지는 듯하다. 그런 에너지를 품어내는 영향 탓인지 여러 행사가 이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에 브리즈번에서 있었던 몇 개의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사회 참여활동이란 느슨해지는 생활에 자극을 받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이론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나는 이런 행사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역동성과 변화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글로벌 이벤트10월 중순에 만난 첫 이벤트는 “2023 아시아 태평양지역 도시 정상 그리고 시장포럼(2023 APCS: Asia Pacific Cities Summit & Mayors’ Forum)이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도시의 지도자들과 도시 운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도시형성(Shaping Cities for our Future)”이라는 주제의 포럼이 10월 11~13일까지 3일 동안 브리즈번 컨벤션센타( Brisbane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에서 열렸다. 브리즈번 시는 각 도시의 지도자들에게 이번 포럼을 통해서 수준 높고 국제화한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고, 미래를 위한 도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다시 소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이번 포럼에는 171개 도시, 118명의 시장과 부시장, 1,500여 명이 참가해서 각 도시의 대표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수상 경력이 있는 역동적인 프로그램 및 중요한 네트워킹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대전시와 세종시가 이번 포럼에 참석했으며, 세종시의 부시장이 정원 도시를 지향하는 세종시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 발표를 했었다. 브리즈번 시는 대전시와 자매결연을 한 도시로써 한국에 대한 친밀도가 높은 편이다. 필자는 취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신기술 개발 부스에서 자연환경을 중요시하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호주의 친환경 부스에서는 70살 된 거북이와 도마뱀 같은 야생동물을 전시하며 호주인의 자연 사랑을 홍보하는 듯했다. 처음 만져보는 노란색 작은 거북이 등과 말랑말랑한 손발을 만져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회의실 안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발표자들이 슬라이드 동영상을 이용해서, 현재와 미래의 도시 변형에 관해서 설명하며 발전해나가는 자신들의 도시를 열심히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아드리안 슈리너(Adrian Schrinner) 브리즈번 시장은 2015년, 다음에 개최될 도시를 물음표로 남기고, 채널9의 방송 호스트인 실비아 제프리(Sylvia Jeffreys)가 2023년 APCS 포럼의 종결을 선언하면서 3일간의 큰 행사는 막을 내렸다.  두 번째 이벤트지난 주말, 브리즈번 컨벤션 전시실에는 퀸즈랜드의 음식과 환대(Food & Hospitality)에 관련하는 산업 분야의 업체들이 부스를 차리고 홍보에 나섰다.나는 요리를 잘 못 하지만 보고 먹는 것은 꽤 즐기는 편이라서 흥미가 생겼다. 마침 홍보부스를 차린 한 업체 사장님의 초대로 관람자로서 전시회에 참석하는 기회를 얻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구수한 음식 냄새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입안에 군침이 돌게 했다. 입구에서 등록하고 방문객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당당하게 목에 걸고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종류의 부스들이 줄을 서듯 늘어서 있었다. 주로 음식을 요리하는 신개발품 오븐이나 유기농 음료수, 냉동식품들의 부스가 많이 전시된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음식 시식이었다. 맛있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을 맛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각각의 부스마다 각종의 피자, 파이, 베이크, 닭고기 요리, 유기농 음료수와 무료로 제공되는 선물이 푸짐했다는 점에서 신나는 모험을 찾아다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람객들은 음식 접시를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부스마다 탐험하듯이 돌아다녔다. 오븐을 생산하는 한 업체에서 제공한 피자의 맛이 일품이었는데, 앞에서 홍보하던 요리사 아저씨의 허락을 받고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뒤따른 서비스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운 아저씨는 뒤돌아선 나를 부르며 냉동 피자 두 판을 냉장 가방 안에 넣어서 선물로 주었다. 할리우드 배우 같은 자신을 알아봐 주어서 좋았다는 농담을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날렸다.  단연코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최고 요리사를 뽑는 요리 경연대회를 꼽을 수 있다. 전시회장의 한가운데에 설치된 부엌에서는 대회에 참가한 요리사들이 음식 재료 손질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심사위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 재료와 손질하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채점을 하고 있었다. 마치 텔레비전 (Ch10) 서바이벌 요리 게임인 “Master Chef”의 현장에 서 있는 듯 여겨졌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의, 식, 주’ 3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역시 잘 먹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에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두 개의 특별한 이벤트에 참석했던 날들은 나에게도 뜻깊은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런 기회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정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6/10/2023
스토리 브릿지

[스토리브릿지] 예술을 즐기는 시니어들 사진 1 백마를 탄 네드 켈리의  연인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접하는 시간 속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예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우리의 내면세계를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화센터에서 나무껍질을 사용해서 호주의 야생 자연풍경을 작은 판자 위에 그림처럼 만들어내는 예술의 멋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예술을 만날 때는 자신과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은 두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를 다른 시각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은퇴 한지 이제 겨우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뿐이다. 나는 마치 청춘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처럼 집에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예술 분야를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 과정에 등록해서 부족한 나의 일부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시계탑으로 잘 알려진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인 브리즈번시청의 3층에는 ‘브리즈번 박물관(Museum of Brisbane)’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현대화된 기획 전시회를 자주 열어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다. 8월과 9월에는 도자기 전시회를 열어서 작가와 수집가들의 소장품인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주와 해외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도자기 예술가인 카알리 존슨(Kaylie Johnson)이 기획한 “차, 그리고 작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도자기 여행”이라는 이벤트의 티켓을 사서 참석했었다. 나는 이미 혼자서 두 번씩이나 도자기 전시회를 구경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대감 없이 가보았다. 그러나, 작가와 함께하는 관람은 역시나 달랐다. 도자기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듣고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니 도자기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나 사연이 다르듯이 도자기 작품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티타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찻잔에 어린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의 휴스턴에서 호주로 이주한 한 여성 참석자는 유명한 찻잔 세트를 사기 위해서 힘들게 일한 돈으로 구매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졌던 나눔의 시간이 인상적이어서 며칠 후에는 그녀의 개인 작업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여유와 시간을 맘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은퇴 후유증을 겪지 않아도 될 듯싶다.  주말에는 문화센터의 시니어 회원들과 함께 벌리헤드(Burleigh Heads)에 있는 마가렛 올리 갤러리(Margaret Olley Gallery)로 버스 여행을 다녀왔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91세의 이본느 할머니 덕분에 즐거운 버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걷기는 하지만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정해 보이며 대화를 나누는데, 오래전의 기억력이 뛰어난 할머니였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에 와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니 그 열정이 놀랍기만 했다. 실제로 버스 안에는 손에 지팡이를 든 은발의 할머니 참석자들이 많아서 예술을 즐기는 시니어들의 멋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마가렛 올리 갤러리는 호수처럼 보이는 강을 마주하고 드넓은 평야와 하얀 구름이 펼쳐진 자연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담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을 들어서니 작품소개를 해주는 봉사자가 있어서 작품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각 전시실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있어서 제법 큰 규모의 갤러리임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인 작품은 호주의 의적으로 알려진 네드 켈리의 연인으로 알려진 한 여인이 반나체로 실물 크기의 흰색 말을 타고 있는 조각품이 복도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 개척시대의 유명한 전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한 전시실에는 녹색의 야광을 띤 유리조각품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는데 “녹색 빛 속에서(In the Glow of Green)라는 제목으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방에는 마가렛화가가 살았던 부엌이나 거실을 그대로 옮겨와 재현해 놓아서 그녀의 생활을 회상할 수 있기도 했다. 마가렛 올리 화가는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술 갤러리는 나에게 미적 감각을 키우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들은 나에게 끝없는 지식과 감동을 선사해주며 예술의 신비로운 경험을 갖게 하는 여정으로 이끌어준다.   네드켈리의 연인마가렛 올리(Margaret Olley, 1923-2011)화가는 호주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이며, 그림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인생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예술적 스타일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풍부한 색채와 질감을 활용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주로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렸으며, 그림 속에 사물과 인물을 섬세함으로 담아내는 것이 그녀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녀는 감정과 풍부한 세계를 화폭에 담았으며, 작품 감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정과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마가렛 올리는 호주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여성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 모범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서 간단한 물건과 풍경조차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한 느낌이랄까.   마가렛 올리의 정물화비록 한나절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호주예술가들을 이해하고 호주인 시니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있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 시니어 할머니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버스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8/09/2023
스토리 브릿지

최근 은퇴한 퀸즐랜드 발레단 감독 리 쿤신 (사진: 황현숙)은퇴한 지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인생의 여정은 한 시점에서 또 다른 시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 여정 중에서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은퇴는 단순히 일의 끝이 아닌, 더욱 풍요로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에 새겨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조금씩 실천하는 것으로 도전을 해본다. 은퇴 후의 시간은 그동안 묵혀두었던 책을 새롭게 꺼내보는 듯 느슨한 기분이 든다. 희미해졌던 흥미와 호기심이 서서히 나를 깨어나게 하고, 삶의 여유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은퇴 생활을 보람 있게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1. 새로운 취미와 관심사 발견하기2. 자발적인 봉사활동3. 건강과 웰빙 관리5. 지식 습득과 교육6. 여행과 탐험7. 창작과 기록요약된 위의 일곱 가지 주제에 맞추어서 나 자신을 주입해보며 그에 걸맞은 활동들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나의 첫 번째 새로운 관심사를 취미, 건강 그리고 웰빙을 겸해서 시니어 발레 클래스를 선택했다. 시니어 발레수업은 숨겨져 있는 미적 감각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매력적인 예술 활동인 것 같다. 나는 발레공연을 즐겨보는 편인데 직접 발레를 배운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공연을 볼 때마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모습과 동작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퀸즐랜드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리 쿤신(Mao‘s Last Dancer: 영화 “마오의 마지막 댄서” 실제주인공)을 어느 사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최근에 그는 예술 감독직에서 은퇴했으며 발레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소개되는 발레리노(남자 무용수)이다. 영화의 실존 인물인 주인공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16세에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을 탈출한 리 쿤신의 이야기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진: 황현숙)실제로 “마오의 마지막 댄서” 영화를 본 후에 감동하고 발레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년 전에 브리즈번 박물관에서 리 쿤신의 전성기 시절의 발레공연 사진들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그가 춤을 추는 우아한 발레 동작과 날렵해 보이는 아름다운 몸매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발레는 시니어들의 굳어진 근육운동을 도와주고 부족한 체력과 유연성을 제공해준다. 그것은 단순히 운동이나 무용 기술을 익히는 것 이상으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다루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여겨진다. 처음 배우는 토슈 포인트 연습이나 아라베스크 자세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성장은 점차 발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안드리아 선생의 우아하고 멋진 동작들을 흉내 내기에도 버겁다. 몸의 유연성이 부족한 은발의 할머니 학생들은 실수하며, 숨이 차게 뛰어다녀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시니어 발레를 배우면서 느낀 점은 나이와 경험에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시기에 더욱 깊이 있게 학습하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은 마음과 영혼을 활력 차게 만들어주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요즘 두 살배기 손녀도 제 엄마의 손을 잡고 발레아카데미에 열심히 다니며, 팔불출 할매와 함께 발레의 매력에 푹 빠져가는 중이다. (공식을 만들면: 귀여운 내 손녀 찐 사랑 할매= 발레 짝꿍!) 또 다른 여가를 보내고 싶은 일은 사회 참여활동을 고려하고 있다. 이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 정부 공증인 (Justice of the Peace)으로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공공 단체기관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재능기부를 할 예정이다. 내가 베푸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 된다면 그 또한 남은 생애를 멋지게 장식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오의 마지막 댄서의 실제 인물 리 쿤신과 함께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은퇴 후 도전하는 시니어 발레, 나만의 행복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주제 아래서 나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하며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것은 마음의 만족감을 높여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강만 따라준다면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여 세계의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넓은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멋진 기회를 나이와 상관없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이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4/08/2023
스토리 브릿지

내가 은퇴를 한 후에 첫 번째로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있다. 뉴욕에 사는 오빠 부부가 처음으로 브리즈번을 방문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우리 남매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3년 7월이 되어서야 오빠는 북반구 미국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남반구 호주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오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마치 연인을 기다리듯 긴장과 설렘으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오빠가 호주를 방문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린 듯하다. 막내동생에 대한 유난한 사랑은 뉴욕과 브리즈번 사이의 지리적인 먼 거리를 잊게 할 만큼 늘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카톡이라는 정보기술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덕분이다. 그래서, 서로 간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남매가 살아가는 다른 두 공간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오빠 부부가 브리즈번을 방문하기로 한 후에 3주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양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동생이 사는 호주라는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70대 중반인 오빠는 아주 세심하고 자상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호주에 오면 코알라와 캥거루를 직접 볼 수 있는지, 오페라 하우스에도 갈 수가 있는지를 호기심에 차서 여러 차례 묻곤 했었다. 나는 오빠 부부가 도착한 날부터 떠날 때까지의 여행일정을 세우면서 건강을 염려했는데 한낱 우려에 불과했다. 여행지에서 보여준 왕성한 에너지는 나이를 잊을 만큼 활력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도착 첫날의 즐거움은 점심으로 시작되었다. 1800년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환영의 잔을 부딪쳤다. 식후에 시내 구경을 하면서 깨끗한 거리와 바둑판처럼 연결된 길의 배치에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뉴욕과 브리즈번, 두 도시의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는 오빠가 그토록 보고 싶다던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나러 브리즈번 외곽에 있는 론파인 야생동물 보호구역(Lonepine Sanctuary)에 갔다. 나무 둥지에 붙어서 하루에 18시간 이상 잠을 자는 코알라지만 다행히도 잠이 깬 상태로 있는 코알라들과 눈을 마주치는 행운을 얻었다. 오빠 부부의 얼굴에는 실물로 보는 코알라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카메라를 누르며 즐거워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조용했던 론파인에도 관광 붐이 새롭게 부는지 관광객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코알라를 직접 안고 사진을 찍는 포토샵 이벤트의 하루 예약이 이미 이른 오전에 마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상상만 하던 코알라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은 오빠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넓은 풀밭 위에 군데군데 드러누운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펄쩍거리며 뛰어가는 캥거루를 보며 즐거워하는 오빠 부부의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선샤인코스트의 긴 해변과 골드코스트의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야간 벼룩시장 구경하기, 미숫가루처럼 부드러운 하얀 백사장에서 맨발로 걸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모든 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벽돌처럼 하나씩 가슴 안에 쌓였을 것만 같다.  골드코스트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스펙타큘러 쇼( Australia Outback Spectacular Show)를 관람했다. 백인 정착인들이 이 땅에 자리 잡으며 살아온 고된 개척사를 말 묘기와 함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호주의 역사를 시작한 애버리지니를 호주 땅의 첫 거주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전통문화와 삶의 모습을 영상으로 먼저 보여주었다. 백인들이 부시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들의 힘든 공동체 생활을 소 떼 몰이, 양무리, 야생말 길들이기, 부시 화재와 같은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호주인의 전통 레인코트를 걸친 기병대들이 호주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주 국기를 손에 들고 힘찬 행진을 하는데 가슴 뛰는 감동을 받았다. 손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면서 “아~~ 내가 어느새 호주를 사랑하는 진짜 호주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시드니에 여행을 다녀왔다. 가능한 이름난 장소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에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다링하버에 숙소를 잡고 가까운 지역부터 가이드와 함께 본다이 비치, 메리 대성당, 바랑가루와 오페라 하우스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오빠 부부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감동에 젖은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블루마운틴, 로라마을, 동물원에도 가보았고, 다른 지역에도 갔었지만. 도시 중심가의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걷는 야간 투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한눈에 바라보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야간 풍경 그리고, 불빛에 휩싸인 시드니 도심의 아름다운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하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가는 야간걷기 투어는 예전의 어떤 여행보다도 더 깊고 진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함께 만들었던 시간은 우리 남매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날 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오빠와 올케언니의 호주 방문이 뜻깊고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했기를 바라며, 이런 소중한 추억들이 오래도록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공통의 추억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가 나이 들어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기쁨은 형제애를 표현하는 것이며 따뜻함을 느끼고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3주간의 만남을 정리하면서 오빠 부부가 남은 생애를 건강하고 서로에게 향기로운 부부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자신들의 집이 있는 곳, 뉴욕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가시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7/07/2023
스토리 브릿지

6월, 한해의 반 자락인 이달의 마지막 주,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던 숙제를 과감하게 풀어버렸다. 지난 2월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던 일을 학교 측에 통보하고 은퇴를 신청했었다. 십 대 청소년들과 이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생각이나 외형적인 모양새까지 꽤 많이 젊게 살아온 날들이다. 나의 그런 모습에 익숙했던 학교 동료들이나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왜, 왜 은퇴를 하는데, 말도 안 돼!” 교장은 나와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지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었나요? 아직 삼십 대가 아닌가요?”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공립학교에서 지낸 이십여 년은 내 삶의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그동안 만났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같이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이십여 년간 유학생 프로그램(International Student Program)과 IB 프로그램(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 11, 12학년 준학사 과정)은 학생들과 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일을 통해서 글로벌교육을 실감할 수 있었고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호주 공립학교에 유학을 온 학생들과 부모들을 만났다. 나의 특별한 업무는 언제나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과의 갈등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성숙함도 배웠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감정과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지원하면서 십 대 청소년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또한 나에게 큰 보람과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볼 수 있었고,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학생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 다국적의 유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나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었으며, 이를 통해서 나 자신의 역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며 세대를 떠나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게 한다. 은퇴 결정은 누군가가 학교를 떠나라고 등을 떠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때가 찾아왔음을 깨달은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축하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순간이 왔네요.”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학교에서 보낸 날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앞날의 남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행정빌딩 복도의 교장실 앞에 한국의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둘이 학교의 보호자로서 의젓하게 버티고 서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파계승 탈춤전수자이며 솟대와 장승의 명인 김종흥 선생님의 작품이다. 십여 년 전에 브리즈번에서 탈춤 공연을 하며 그 자리에서 유칼립투스 나무를 직접 깎고 다듬어서 만든 아주 귀한 예술 작품이다. 그 작품들을 고맙게도 우리 학교에 기증해 주셨다.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기꺼이 하시는 그분의 마음에 호소해서 두 장승을 학교의 가디언으로 모셔온 것이다. 그리고 장승 작가는 나와 함께 학교 강당에서 안동 하회탈춤 공연을 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려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열띤 환호를 받았었다. 교장은 장승에게 ‘인두루필리학교의 수호신(Guardian of Indooroopilly State High School)’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교장은 나의 은퇴를 축하하는 송별모임 모닝티 파티를 학교회의실에서 열어주었다. 송별회 장소가 바로 장승이 서 있는 곳과 가까워서 장승을 껴안고 기념 촬영을 했다. 왠지 감회에 젖어 들며 숙연해지는 마음이 되었다. 가장 친한 동료가 편지를 낭독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감정을 자제하고 있던 나도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는 답사의 한 부분에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비록 떠나지만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한국문화 예술품을 학교에 남겨두고 갑니다. 교장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인두루필리학교의 가디언에게 일 년에 한 번씩 기름칠해서 장승에 금이 가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세요.”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했다. 한국의 부천영화제에 몇 번 다녀온 이후로 나만 보면 김치와 막걸리를 좋아한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사람이다. 따스한 동료애가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조용히 스며드는 듯했다. 다음날에는 성당 교우들과 함께 바이런 베이에 데이투어를 가는 행운을 가졌다. 마치 나의 은퇴를 위로(?)해주는 듯 들뜬 기분이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바이론 베이의 바다는 여전히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사파이어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확 트인 태평양의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의 절벽에 우뚝 솟은 하얀색의 등대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먼 길 험난한 항로를 헤쳐오는 배를 인도해주는 구원자의 역할, 그 등대의 불빛이 다가올 나의 새로운 미래에도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모아본다. 아자~ 아자! 은퇴자! 홧~~팅!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9/06/2023
스토리 브릿지

베란다 창을 통해서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밝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은 완벽한 푸르름이 눈에 스며들 듯하다. 맑고 서늘한 기운이 밴 오월 하늘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은근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 기운을 받아서인지 태양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었다. 오월은 역시 축제의 달이다! 축제 하나브리즈번에는 매년 오월이 되면 국제 작가 축제( Brisbane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가 열린다. ‘브리즈번 작가 축제’는 올해로 61회를 맞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2023 작가 축제(5월10일-14일)가 열리는 올해의 ‘문학 주빈 국가’는 한국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놀라움과 반가움이 겹쳤다. 작년에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를 줌 화면으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저주 토끼(Cursed Bunny)’라는 단편 소설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인터뷰는 정 작가의 능숙한 영어 대담으로 진행되었으며 작품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올해에는 시드니한국문화원의 초대로 작가들의 대담 프로그램에 청중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든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브리즈번을 방문한 한국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일하는 날이 겹쳐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정보라 작가와 최은영 작가와의 대담, 그리고,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의 대담회에 참석해서 그들의 작품 세계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호주인 청중은 “한국에서는 단편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최 작가는 “단편은 짧은 내용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작가들이 중편이나 장편보다 단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이영주 시인은 자작 산문시를 낭독했으며, 배수아 작가는 자신의 소설 일부를 낭독해서 청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어서 호주 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대담회가 끝난 후에 잠시 이영주 시인과 배수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호주에서도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대신 전해달라는 시드니 Y시인의 부탁을 전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첫 한국인으로 ‘브리즈번 작가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은 ‘엄마를 부탁해’로 200만부 이상의 책이 팔렸으며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가 신경숙씨였다. 한국의 K-Pop뿐만 아니라 K-문학도 세계로 뻗쳐나가는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흐뭇한 마음이 된다.브리즈번 작가 축제에서 대담하는 한국 작가들 축제 둘호주의 어머니날(Mother’s day)은 오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이날만큼은 자녀로부터 특별 귀빈 대우를 받아도 당당할 수 있는 날이라 여겨진다. 부모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에게 평생 무료 봉사를 제공해주는 일이 마치 의무처럼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올해 어머니날에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다. 딸의 절친이 딸과 어머니들의 의상 스타일을 바꿔주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우리 모녀를 초대했다. Styling Station Australia라는 이름의 지역사회 단체가 있는데 주로 여성들을 위한 비상업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행사로 생긴 이익은 지역사회의 불우한 여성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봉사자인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각 초청자 개인에게 어울리는 의상(모자,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핸드백)을 골고루 입혀보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 세 벌을 무료로 증정해주는 이벤트였다. 의상은 라벨이 붙은 새것이며 모두 유명 브랜드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딸과 친구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입어보며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는 평소에 즐겨 입는 캐주얼을 몇 벌 입어보고 쉽게 선택을 했다. 팀 대표는 우리에게 샴페인을 권하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주었다. “이 이벤트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축하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방법입니다.”라면서 홍보를 부탁했다. 어느새 예정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가게 문을 나서는 우리의 손에는 묵직한 옷 가방이 들려있었다. 만약에 이런 옷들이 기증문화로 변환되지 않는다면 자연환경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옷을 많이 생산하는 대기업에서 팔리지 않는 옷이나 계절을 넘긴 옷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매립지에 버리게 되는데 화학물질이 들어간 섬유는 썩지 않기 때문에 땅을 병들게 한다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세 벌의 옷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친환경 정책에 한 몫 했다는 자부심까지 덤으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적극적인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작은 일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이벤트였다. 축제 셋시내 보타닉가든에서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Botanica Festival)가 브리즈번 시내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5월12일 부터 21일까지 열렸던 보타니카 축제는 조각예술가들의 작품을 야외에서 전시하는 예술조각품들의 전시회다. 매일 저녁 5시 이후,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으면 아름다운 색채로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공원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꿈의 파열, 땅의 휴거’라는 제목을 붙이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공연을 펼쳤다. 뻥튀기 기계처럼 생긴 검은 상자에서 비눗방울 같은 하얀 구슬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데 투명한 방울이 손에 닿으면 연기로 변해서 사라졌다. 오염되어가는 자연환경을 물방울과 사라지는 연기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타니카 축제 열 개의 작품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고 보타닉공원을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형광 빛을 발하는 색색 가지 실을 엮어서 동굴처럼 늘어뜨린 작품, 큰 나무에 화려한 레이저 조명을 비추며 음악과 영상이 뒤섞여서 춤을 추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내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개성이 뛰어나서 보는 내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연못 위에 떠있는 ‘언덕(Hills)’이라는 작품은 물 아래에서 솟아 나온 하얀 건축물처럼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조각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에서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창조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간혹 환상의 세계를 경험해보거나, 나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서 삶에 윤기를 보태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보다는 스스로 자기를 잃지 않는 자신감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웃는 날도 점차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황현숙(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5/05/2023
스토리 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