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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우리 사회는 힘든 인간관계의 시대로 변환되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끊어버렸고 헛기침 한번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하늘 길이 막혀서 그리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고 친밀함을 표하는 악수조차 눈치를 보며 나누는 세상이 되었다. 백신 주사가 개발되었지만 깨어진 인간관계의 회복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유명한 미래 학자들은 우리의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측을 말하지만 실제적인 해결 방안은 그 누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뚫어질까 해서 오랜만에 한국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기에는 모든 면에 걸쳐서 힘든 현실임을 알기에 실시간 뉴스를 잠시 보았다. 뉴스의 대부분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과 서민들의 힘든 삶을 우선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보도 내용 중의 하나는 정부가 기초생활비를 주는 대상자를 선정하는데에 배달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역병이 번지면서 배달사업이 커져가니 수입이 늘어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거리의 신풍경으로 음식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자전거 뒤에 큰 가방을 올려놓고 바쁘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사회생활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입맛에 맞는 요리를 골라서 핸드폰으로 클릭만하면 문 앞에 배달해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는 탓이다. 부엌에서 주방기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점차 현실화 되어가는 사회현상으로 여겨진다. 특히 역병이 퍼진 이후로 음식배달은 낯선 이와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접촉을 줄이는 방안으로 일종의 면역 처방처럼 인식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배달사업은 일종의 배달문화로서 새로운 사회콘텐츠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의 배달의 역사는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 도성은 새벽 네 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밤새 술을 마신 술꾼들이 술자리가 마무리 될 무렵이면,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장안의 유명한 맛 집의 해장국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 조선실학자인 황윤석의 일기에 “수년간 과거시험을 공부한 시험생들이 시험을 치고 난 다음날, 귀향하기 전에 동료들과 점심 메뉴로 냉면을 시켜먹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주로 궁중에서만 먹던 고급 냉면이 부유층 양반들에게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어서 유명 맛 집에서는 냉면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상업이 발전했던 조선 중흥 기에는 장터 곳곳에 유명한 맛 집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정조 시대에 들어서 술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정조는 신하에게 조사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 당시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채제공은 정조에게 백성들의 일상에 대한 자료를 이같이 제출했었다. “애주가들의 술안주는 김치와 자반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근래에는 백성의 습속이 교묘해져서 신기한 술 이름을 내기에 힘써, 현방의 쇠고기나 시전의 생선을 따질 것도 없이 진수성찬과 맛있는 탕이 술잔 사이에 어지러이 늘려 있으니, 시정의 연소한 사람들이 술보다는 안주를 탐하느라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발췌) 새벽종이 울릴 때에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해장국이 있다. 남한산성의 한 유명한 맛 집에서 만들어서 통금이 해제되는 시간에 맞추어서 밤새 술을 마시던 사대문안의 양반들에게 배달을 했었다는 재미난 기록도 남아있다.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 성내의 맛 집이 유명했었는데 배추속대, 콩나물, 표고버섯, 쇠갈비, 전복에 토장을 풀어서 온종일 푹 고은 해장국이다. 푹 끓인 해장국을 단지에 담은 후에 솜으로 싸서 밤새 달려서 새벽 무렵에 재상의 집으로 뜨끈한 해장국을 배달했었다는 기록이 ‘해동죽지’에 적혀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음식 배달의 문화는 1930년대에 들어서 대중화하게 이르렀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한 시간에 약 이십 리를 걷는데 하루 밤낮을 달린다면 거의 오백리가 된다는 기사가 동아일보(1931년 1월 2일)에 실리기도 했다.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싶다. 꼬불꼬불한 장안의 길은 힘든 다리품을 팔아야만했던 그들에게 바로 삶의 전쟁터였던 것이다. 1906년 7월14일 만세보 신문에 “회갑연, 각 단체의 회식 모임이나 관, 혼례에 필요한 분량의 음식을 요청하시면, 거리가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라는 배달 광고가 처음으로 실리기도 했다. 또한 조선 최초의 한식전문 음식점이었던 명월관에서는 주문받은 음식들을 다양한 그릇에 담아서 교자상까지 차려주는 출장 배달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한정식 출장 뷔페서비스의 시초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음식을 담아 나르던 통도 나무통에서 가벼운 철가방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2009년, 한국 디자인 문화재단은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 생활 디자인 중의 하나로 중국집 철가방을 선정했었다. 배달문화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호주에 살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식 배달문화, 오토바이를 타고 철가방에 담긴 짜장면, 짬뽕 같은 국민요리를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정부가 배달인들을 위한 특별 위험 상해보험의 특혜라도 인정해준다면 그들의 배달 직업에 작은 보람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고된 현장에서 배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거리의 질주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으면 좋겠다. 배달사업이 점차 바뀌는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서로 공존하는 편리한 배달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나에게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한 생각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연둣빛 나뭇잎 새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마음껏 들여 마시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누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감사할게 너무 많은 날들을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바람에 살랑대는 작은 나뭇잎 하나에서도 세상의 행복과 평온을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넓은 파초 잎 위에 동글동글 맺힌 이슬방울이 너무 맑고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엄마, 너무 신선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사는 이 행복에 두 손이 절로 모아진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우리가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쟁반 같은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이 곧 다가온다. 팔을 한껏 뻗쳐서 보름달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안아보고 싶다. 환한 빛이 어둠에 가려지는 이 세상을 걷어낼 수 있도록 달님에게 절하며 소원을 한번 빌어 볼까... .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5/02/2021
스토리 브릿지

한국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와서 기다리던 한국 입양아 부모들이 반기며 서로 얼싸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한국 속담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랄까. 늘어난 주름살과 듬성듬성 드러난 하얀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 얼굴로 변해있었다. 2008년 ‘한인의 날’ 행사에서 다 같이 손을 잡고 ‘만남’이라는 한국노래를 열심히 불렀던 호주인 양부모들과 아이들을 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초반의 나이였던 꼬마들이 하이스쿨 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으로 변해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고 소식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찡해오는 우리 한국 아이들. 오랜만에 만나는 그들이 모두 정겹고 내 자식처럼 느껴졌다. 양부모들과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재결합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 자리에 특별 초대 손님으로 불러준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한인의 날’ 행사 때 무대 위에 온 가족이 출연해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리키씨는 자녀가 모두 일곱 명이다. 자신의 친자녀가 다섯 명이며 두 명의 한국 아이들을 입양했는데 지금도 한 집에서 대가족으로 살고 있다며 최근 소식을 들려주었다.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셀리는 주말이면 딸 픽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우버 운전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딸 엘리는 바이올린, 피아노, 네트볼 등 많은 과외활동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바쁘게 만들지만 예쁜 딸로 잘 성장하고 있다. 훤칠하게 잘 생긴 데이빗은 어느 새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데이빗의 아버지 이안은 식탁에 앉자마자 건축학을 공부하는 아들 자랑에 열을 올렸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아빠가 된 이안에게 “참, 고맙다. 고마운 분이구나” 하는 인사를 맘 속으로 전했다. 자신이 입양한 한국 아이들을 사랑과 깊은 애정으로 키워주는 호주인 양부모들을 만나면 왠지 빚진 듯한 기분이 든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며 자신들이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게 모국을 알려주기 위해서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양부모들도 많이 있다. 나는 오래전 그들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글학교에 특별반을 만들어서 한국말과 문화를 5년 정도 입양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색동 클럽’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서 양부모들과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씩 만나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그때 만났던 양부모들과는 지금도 집안 대소사에 서로 초대하며 긴 시간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입양아 가족들과의 첫 만남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인회 모임 날이 되면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의 한국 교민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참석하며 한국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양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데려왔는데, 키가 자란 아이들에게 어릴 때 가져온 한복 크기가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한복 입히는 것을 잘 몰라서 저고리 위에 치마를 덧입혀서 데려온 여자애들도 있었다. 나는 한복을 고쳐 입히면서 그들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입양아협회 회장이었던 리오 씨와 미팅을 하면서 내 생각을 밝히니 대찬성을 하며 자기도 돕겠다는 제안을 했다. 퀸스랜드 입양아 부모들은 호주와 한국 우정 그룹(AKFG)을 만들어서 한국문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에 그들로 인해서 기쁨과 아픔을 나누는 많은 일을 함께 해왔다. 어린아이로 입양 와서 십 대 청소년기를 맞으며 겪어야 하는 정체성의 갈등,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괴로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며 한국 엄마의 역할을 다 채워줄 수는 없었지만 토닥여주며 작은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의 핏줄을 나누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친부모와의 상봉이 이루어졌을 때는 한국에 나가서 그들을 지켜보며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갔을 때는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서 크게 감동하기도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호주 땅에서 내 마음의 자녀가 되어버린 입양아들. 내가 믿고 존경하는 양부모 친구들은 정겹고 반가운 사람들이 되었다.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서로 식사비를 내겠다고 몸을 밀치는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정이 물씬 풍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이번 재회를 통해서 우리는 늘 함께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남반부와 북반부의 먼 거리를 연결해서 엄마, 아빠, 아들, 딸의 인연으로 맺어졌지만,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남의 노랫말처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사랑해~~, 사랑해~~ , 너를, 너를 사랑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란 서로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사람들은 점차 냉혹해지는 이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양부모들의 한국 자식 사랑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쌓으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오랜 만남을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일이 우리의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7/09/2018
스토리 브릿지

작년 이맘때쯤에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라서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202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여운 때문이었다. 20이 두 개 겹치는 귀한 숫자가 왠지 예견하지 못할 행운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을 가졌었다. 그러나 새해가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했던 엄청난 경험을 했으며, 지구가 분노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귀가 아프게 들었다. 한해가 끝나가는 지금 사람들은 얼마나 반성했으며 또 다른 자연 파괴를 자제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정말 궁금해진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끝없이 펼쳐진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사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 서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힘든 경험을 한 뒤에야 더 강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굿바이! 2020 쥐띠의 해! 모든 힘든 일들을 이제는 과거라는 이름으로 띄워 보내고 싶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한동안 메말랐던 갈증을 풀어주며 답답했던 기분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느낌이다. 태풍에 떠밀려 휘몰아치는 비바람이지만 메마른 흙먼지를 씻어내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으니 한결 상쾌하게 보인다. 나는 한 여름날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좋아하며 가늘게 흩뿌리는 이슬비도 좋아한다.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방울의 맑고 섬세함이 아름답게 느껴져서다. 청춘의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작은 물방울의 흐름을 보며 감성을 느낄 수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속에서 마무리하는 한해의 끝자락은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시작을 실감하지 못한 채 보내게 된다. 아열대 도시에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건만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12월은 매서운 찬바람과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을 치는 거리의 인파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켜준다. 태어나서부터 이미 깊숙이 입력된 무의식의 기억이다. 기억이란 잊힌 것 같아도 무의식 세계에 남아서 꿈을 통해 영상처럼 의식으로 끌어 올려지기도 한다. 지난주에 아주 특별한 분들을 만나서 이른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오래된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슴에 안고 사는 할아버지들, 그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호주인 참전용사들이다. 연세가 90세를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들은 ‘노병은 살아있다.’ 라고 과시하는 모습으로 굽어진 어깨를 펴며 노병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골드코스트 한인회(회장 전주한)와 민주평통이 주관해서 퀸스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 노병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만찬을 주최했다. 매년 중요 행사로 치루는 만찬이지만 해마다 참석인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연세가 많은 노병들이 70여년의 세월을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안전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내놓고 위험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가슴에 작은 선물바구니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보은’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노병들은 남은 생애를 보내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아픈 기억의 끈을 놓지 못할 것만 같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여생을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텔레비전 앞에 앉는 시간도 길어진다. 역사물을 즐겨보는 편이라서 지나간 드라마까지 찾아서 다시 보기를 하게 된다. 보면 볼수록 역사속의 정치와 인간관계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맞아떨어진다. 최근에 보았던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인지 역사물인지 헷갈리는 장르인지만 어김없이 정쟁을 일삼고 죽이고 죽이는 일이 반복된다. 터무니없는 스토리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권력은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지금의 한국정치를 보면 수백 년 전 양반계급들이 저질렀던 패악들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변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역사물은 흥미롭고 늘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긴 여름방학을 맞았으니 역시나 한국드라마의 중독성에 빠져 들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제는 새해를 맞기위한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따른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항상 새로운 길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 가슴 안에 쌓여 있는 기억들을 정리된 하나의 글로써 표현하는 것도 자아를 극복하는 길이 라고 생각한다. 잊고 싶은 2020년이지만 결코 잊히지 않을 한해가 될 것 같다. 2021년, 소의 해에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면을 되찾을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호주에 사는 한국 교민들도 새해에는 가정에 복된 일들이 많이 생겨서 대문 밖으로 큰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파이팅~~~~!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17/12/2020
스토리 브릿지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11월의 중순 즈음에 접어들면 미디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성탄 전야와 성탄 미사만을 경건하게 성당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썰렁하기만 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지난 연말 무렵, 소나기가 쏟아지던 한여름 밤에 재즈 기타연주를 들으며 동료들과 함께 했던 그런 축제의 날을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좋은 뉴스만 들으며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가끔씩은 빛처럼 우리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따뜻한 소식도 전해진다. 오늘 아침뉴스에 소개된 젊은 소방대원의 미담은 나의 하루를 훈훈한 온기로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며칠간 드세게 쏟아진 비로 인해서 하수구에 쓸려 내려간 어린 고양이를 지하 하수구에 내려가서 구조해내는 모습이 뉴스시간에 방영되었다. 구조한 아기 고양이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는 젊은 소방대원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방송 진행자는 그 소방대원을 향해서 “그대가 영웅입니다”라며 감동스러워 했다. 사랑을 베푸는 일에 대해서는 크고 작음의 잣대는 결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밝히는 열세개의 이야기’ 라는 책에 소개된 실제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해본다. 내가 소리 없이 베푼 작은 자선은 보는 사람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해준다. # 첫 번째 이야기: 어떤 낯선 사람이 길거리에 세워져있던 자동차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유리가 깨어진 부분에 예쁜 색종이를 붙여놓았다. 그 낯선 이는 “당신의 차가 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들도 때로는 남의 불행에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 두 번째 이야기: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개를 치료했던 수의사에게 개 주인의 어린 손녀가 서툴게 쓴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다. " 내 강아지의 다리를 고쳐주어서 고맙습니다. 비록 그 개는 다리가 세 개뿐이지만... ." 그 수의사는 " 내가 왜 치료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일이었다.” 라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 보답과 감사는 우리 생활에 적절하게 필요한 영양제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 세 번째 이야기: 비가 퍼붓는 거리에서 혼자 앉아있는 몸이 불편한 홈리스 노인에게 어느 여자가 우산을 받쳐 들고 계속 서있어 주는 장면을 목격했다. 길 건너편에 세워져있던 천막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머뭇거릴수록 결정은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으뜸가는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해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가슴은 단단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그만큼 삭막해져서 부드러운 생명의 싹이 제대로 움트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느 공간, 어느 시간 속에 서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세상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내가 가진 두 개 중에서 하나를 내 이웃과 나눠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만약에 내가 열네 번째의 감동적인 사연을 만드는 주인공이 된다면 정말 멋진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하면 남은 시간도 즐거워지는 법이다. 인간 비타민이라 불리는 가수 이수현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다. ‘레몬트리’ 라는 노래를 들으면 새콤달콤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왠지 통통 뛸 듯한 생기가 풍겨 나오는 듯하다. “ 또 아침이 오는 그 소리에 난 놀란 듯이 바빠져야 하겠죠. 또 무언갈 위해서 걸어가고, ~~ ~ 나의 마음을 상쾌하게 할 거야.”라는 가사가 참 좋다. 음악은 늘 마음의 치유자가 되어주고 위로자가 되어준다. 힐링이 필요한 나날들이다. 북미 인디언인 체로키 부족은 11월을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는 사색을 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로 받아들인다.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삶에 대한 해답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달 11월에 걷는 산책길과 사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을 가슴 안에 깊이 새기면서..

26/11/2020
스토리 브릿지

유리창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 방물 소리의 여운은 내가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으로 되돌아왔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어깨 위로 스며드는 으스스한 찬 기운이 어느새 초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름의 끝 무리와 초가을의 서늘함이 뒤섞인 날씨를 느꼈는데 몇 주 사이에 몸을 움츠리게 할 만큼 계절이 변해버렸다. 시간의 흐름에 등이 떠밀린 듯 초고속 세월행 기차를 탄 기분이 든다. 올해의 운세에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는 기운이 깃들었는지 지난 몇 개월 동안 바깥으로 많이 나돈 것 같다. 은퇴할 당시에 바랐던 일 중의 하나는,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동안에는 낯선 도시에서의 이방인이 되어보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드넓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디고 싶은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긴 시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 첫 번째 방문,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호찌민( 옛 사이공)에 가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씨를 보여주는 4월 말경에 하노이에 도착했다. 민주평통 아태지역 국제회의에 2박 3일 일정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약 300여 명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족을 동반한 평통 위원들의 큰 모임이었다. 해외 지역 자문위원의 역할은 통일을 위한 의견 수렴과 현지 외국인들과 통일 외교 활동, 그리고 재외동포 사회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형성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올해, 해외에서 임명된 자문위원의 전체 숫자는 136개국에서 약 4000여 명이며 임기는 2년이다. 이번 베트남 콘퍼런스는 동남아와 태평양 지역을 아울러서 열린 국제회의였다. 브리즈번에서 하노이로 가는 직항이 없는 덕분에(?) 한국을 경유하는 경로를 택했다. 출발 전부터 첫 방문인 베트남의 문화와 음식에 대한 기대로 몹시 설레었다. 비자 발급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이민성 사이트로 들어가서 비자를 신청하니 일주일 정도 걸려서 비자가 나왔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4월 평균기온이 25-34도로 알려졌지만 체감 온도는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다. 호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에 힘들 만큼 무더웠다. 첫날, 회의장 입구에는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 민요 아리랑을 연주하길래 앞에서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춰주니 음악을 통한 교류 탓인지 금세 친밀감을 느꼈다. 통일 담론에 대한 진지한 토의와 분임조를 나누어서 발표도 하며 회의의 주제에 맞게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인터뷰 신청을 받아서 간략한 소견을 적어서 제출하기도 했으며 한몫을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롱 베이라는 유명한 관광지에서 크루즈를 하며 점심도 했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위원들과 네트워크를 쌓기에 더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인맥이란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만남을 만들어 가는 것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사가 끝난 당일 밤에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으로 날아갔다. 나는 사이공이라는 도시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보다. 오래전에 뮤지컬 ‘사이공’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었다. 영화의 낭만적인 한 장면처럼 열대 나무가 우거진 도로 위를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가냘픈 몸매의 베트남 아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국적인 풍경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거리에는 검은 매연을 내뿜는 모터사이클 부대가 무질서하게 질주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말하는 교통지옥의 현실이었다.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너무 순진하게만 바라보았던 나의 시각이 부끄러워졌다. 사회적 문명은 쉬지 않고 변하며 바뀐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지인의 안내로 호찌민 궁전과 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호찌민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시,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이념을 가진 베트남 제2의 도시로서 지속적인 성장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특이한 사항은 수많은 한국인이 ‘베트남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다고 했다. 꿈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성공적인 미래가 되기를 한국인으로서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답게 경제면에서 뇌물과 권력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도 있었다. 물가는 아주 싼 편이며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이 빈부의 차이가 심하다고 했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물건을 사거나 호텔비를 지불할 때 돈의 단위가 너무 커서 계산이 혼란스러웠다. 같은 아시아권에 속하지만 이렇듯 다른 문화와 생활 속에서 일주일간 많은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굿바~~이, 베트남( Tam Biet Viet Nam) ~~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 베트남의 찐 더위에 지쳤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10도 이하의 낮은 기온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에 예상치 못한 날씨의 변화를 맞은 것이다. 온도 차이만큼이나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여의도에는 눈 부신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게 주변을 밝혀주었다. 여의도 콘라드호텔의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주변의 공원과 대교, 수많은 고층빌딩의 숲……. 서울은 이제 나에게는 익숙했던 예전의 삶터가 아니라 낯설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방인의 도시로 변해있었다. 붉은 해가 한강 물 밑에서 치솟듯 떠오르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환희가 가슴안으로 퍼져나갔다. 스카이라운지에서 한잔의 칵테일을 마시며 하늘가로 번져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감성에 빠져들기도 했다. 멀리서 날아온 막냇동생의 휴가를 위해서 오빠 부부가 베푼 호의로 편안한 휴식을 취했던 멋진 한 주일이었다. 나는 노인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는 큰언니를 만나기 위해서 부산과 양산으로 바쁘게 다녔다. 비바람이 치는 드센 날씨였지만 오랜 지인인 J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방문을 할 수 있었다. J를 보면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과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느낄 수 있다. 큰 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서너 달 전에 요양병원에서 일반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었다. 중환자 노인 병동에서 호스를 꼽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의식이 분명치도 않은데 내 이름을 계속 말하니 텅 빈듯한 동공에서 눈물이 흐르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한 병실에 누운 같은 상태의 노인들을 보니 아무런 말이 필요 없이 눈물만 흘렀다. 한국에서 벌어진 의료진들의 심각한 사태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의사의 부족으로 응급실 입원마저도 힘들었다는 설명에 더 나은 시설의 병원으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했단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을 하는 의사가 자신들의 개인 욕심으로 얼마나 많은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게 했을지 분노가 치밀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자신의 사업과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이 인생 팔십에 그렇게 허물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 만난 병원 대표는 노인환자를 마치 하나의 비즈니스 손님으로 대하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를 입원 전에 머물렀던 요양병원 시설로 다시 옮기게 되었다. 복지사와 함께 중증 노인을 치료하는 곳을 둘러보면서 여기가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문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은 눈에 보이듯 손등과 손바닥처럼 맞닿아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해주었다. 내 마음의 쓰라림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 대표와 복지과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생길 문제와 치료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나누고 서류에 사인도 했다. 언니를 병원에 두고 돌아서는 내 발길은 너무 무거워서 돌덩이가 매달린 것 같았다. 비바람은 왜 그리도 드센지 내 심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너무 우울해서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를 못했다.  예전에 브리즈번에 교환교수로 오셨던 친분이 깊었던 교수님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경기도에 있는 에덴 파라다이스라는 봉안당에 방문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에 봉안당에 안치된 사진을 보고, 비치된 화면에 방문자의 글을 남기면서 또 한 번의 아픈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친한 지인이 미국에서 옮겨와서 머무는 동해에 있는 실버타운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었다. 시니어 재외동포들의 역이민 실태를 체험해본 것이다. 언젠가 실버타운에서의 체험 숙박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생각이다.  이번의 여행을 통해서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더 깊은 아픔도 느꼈지만, 인생이라는 한순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공부를 했다고 여겨진다.그래서 “긴 ~~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황현숙(칼럼니스트)

07/06/2024
스토리 브릿지

지난 몇 달 동안 기관지염 증세가 점차 심해지면서 최근에 호흡장애를 일으키게 되었다. 심한 기침으로 인해서 갈비뼈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매순간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을 쉬는 것은 자연스런 생체현상이라서 그 중요성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내 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경고신호를 이미 여러 번 받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불찰이었다. 그 결과로 미련 곰탱이 라는 소리를 들으며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의사는 나의 기관지염증이 심각한 상태라서 항생제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입원하는 날부터 간호사들이 나를 호칭할 때는 이름보다 10병동의 1024호로 불렀다. 일주일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매일 3교대를 하는 많은 간호사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서 나이팅게일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경우도 있었고 그들의 직업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도 했다. 손등에 주사액을 넣기 위한 연결부를 찌르는데 미숙한 기술로 인해서 정맥의 피가 불끈 거리며 솟아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혈액응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에 배 주위에 주사를 놓는데, 초보와 노련한 간호사의 차이는 주사바늘을 빼고 나서 얼마만큼의 피가 스며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호주에 온 이래로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적이 결코 없었다. 한겨울의 날씨를 느끼게 하는 낮은 온도의 에어컨과 밤새 환하게 켜진 형광등 불빛으로 인해서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4명의 침대가 있는 병실에는 나를 제외한 3개의 침대에 매일 다양한 응급환자들이 머물다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간호사들이 나를 표현할 때 사용하던 말,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환자(independent patient)가 그래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피소드 1; 치아를 찾는 할머니] 연세가 90세 넘어 보이는 소피아 할머니가 초저녁에 옆 침대로 입원하셨다. 양로원에서 긴급 입원하신 분인데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며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겨우 커튼하나로 칸막이가 된 병실에서는 모든 소리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히 귀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할머니는 “내 이빨이 어디에 있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진료를 거부하고 음료도 드시지를 않았다.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할머니는 지금 마타병원(Mater Hospital)에 있어요. 이빨은 당신의 딸이 가져갔습니다.” 두 사람은 똑 같은 말을 계속해서 주고받는데 옆에서 듣고 있으니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딸에게 당장 전화해주고 당신의 이빨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당혹스런 간호사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했는데, 딸이 할머니의 치아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니 “너는 왜 내 허락도 없이 내 이빨을 가져갔니. 당장에 가져와.” 치매에 걸린 노인답지 않게 또렷한 발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말하는 것을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의사는 수술 전에 할머니에게 단식을 시키기 위해서 틀니를 뺐었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커튼을 걷었는데 메마른 작은 체격의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매서운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었다. “너는 저 사람들을 믿니? 그리고 너는 내 이빨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휴... 할머니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저는 간호사를 믿어요. 그리고 저도 할머니 이빨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답니다. [에피소드 2; 기저귀 찬 할머니] 물리치료를 받고 병실로 돌아가니 심한 구린내가 속이 뒤집힐 만큼 진동하고 있었다. 맞은편 침대에는 양로원에서 입원시킨 80대 중반의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양로원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얼굴의 반쪽이 완전히 보라색 피멍으로 변했고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십여 명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둘러서서 그 환자를 보고 있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변을 본 할머니를 간호사 두 명이 기저귀를 갈고 몸을 닦아주는데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호주에서 간호사 일이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주사 바늘을 몇 번씩 잘못 찔러서 나를 힘들게 했던 원망이 어느새 존경심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병력의 환자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정신질환을 가진 40대의 남자가 격리 병실에서 밤새 소리를 질러서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을 몹시 힘들게 했었다. 다음날 아침 그 남자의 병실 앞을 지나다 보니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다 큰 아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그 모습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가지는 모성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가 불편하고 몸집이 큰 환자를 휠체어에 앉혀서 남자간호사가 작은 기중기로 들어 올리는 모습도 보았다. 밤새 전화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던 여자 환자는 나를 불면증 환자로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다들 몸이 아파서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해서 입원했던 환자들이었다. 모두들 건강을 회복하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빨은 이제 제자리에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해보고, 피멍든 할머니의 얼굴도 본래대로 곱게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들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 100세 시대라는 말도 부담스럽게 들린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며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다. 호되게 아프고 나서야 가장 평범한 진리인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고 혼자서 먹을 수 있다는 작은 행동에도 그저 감사하는 마음이 들 뿐이다. 수난의 시간이 지나면 빛의 부활이 다가온다는 믿음에 의지해본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29/03/2018
스토리 브릿지

토요일 아침은 늘 느긋하고 기분 좋은 날이 되어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좋고 한가로운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오늘처럼 가볍게 비가 흩날리는 날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가까운 보타닉 공원으로 봄맞이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강물 위에 떨어지며 물결무늬를 만드는 빗물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며 강기슭에서 풍기는 나뭇잎들의 신선한 내음을 깊이 들여 마신다. 한 주일 동안 내 안에 쌓여있었던 먼지들을 걸러내고 몸과 마음이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아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작은 숲길로 접어들며 빗물을 머금은 초록나뭇잎들의 싱그러움을 눈에 담아보고,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향내를 가득히 들이마셔 본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특별한 것도 많지만 특별하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날들이다. 고교 12학년생들은 지금 마지막 시험을 치며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늘길이 막혀서 자녀들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는 유학생 부모들은 애틋한 마음을 이메일에 담아서 보내온다. 나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크리스는 이제 작은 어른이 되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첫 계단을 밟게 됩니다. 졸업 후에도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건강하고 밝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세요. 제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지난 몇 년간 애썼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겠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냈다. 졸업을 축하하며 내 마음을 다해서 한 명씩 껴안아주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 얄궂은 세상에 살다보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진다. 언제쯤 이 답답한 우울증을 훠얼~~~ 훨 날려 보낼 수 있으려나. 지난주에 주니어 학생들이 운동장 양편으로 늘어서서 12학년 졸업반 선배들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큰 박수와 환호로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해졌다. 학생들은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십대시절을 보낸 학교를 떠나며 시원섭섭한 감정이 먼저 들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보내는 선생님들에게는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그 속마음을 알면 좋을 텐데. 유학생 회장을 맡았던 J군이 이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국선생님이 항상 제 곁에 계셔서 큰 힘이 되었고 유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시간을 내서 선생님 꼭 찾아뵙겠습니다.” 내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환하게 번져나간다. 공립학교의 국제부서에서 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가슴 아린 아픔도 웃음도 번갈아서 주는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어린 십대 청소년들이기에 깊은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아를 만났을 때는 회초리를 들고 싶을 만큼 격한 감정이 일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일조차도 결국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받는 활력과 가르치는 즐거움이 한데 어울려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모가 많았던 날들이라 여겨진다.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았으며 사람과의 만남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가족과 나를 염려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세상을 뒤엎어버린 무서운 역병이 아직도 떠돌아다니지만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현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R U OK ? 괜찮으세요?” 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연대감을 가져야 할 변화의 시점에 서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이다. 프로이드나 칼 융의 심리학을 밑바탕에 깔아놓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저자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솔직하게 밝히며 삼십대의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늘 괜찮다.’ 라고 말하다보면 스스로가 내면의 상처를 입게 되고 내안의 무언가가 치유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눈물을 흘리고 싶으면 울도록 내버려두고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충고도 해주고 있다. 작은 일상에서 상처받는 나를 안으로 움츠러들게 내버려 두지 말고 바깥으로 끌어내서 제대로 돌봐주며 치유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달해준다. 그래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기쁨을 느끼며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니까. “행복이 뭐 별거인가요?”라는 말처럼 내 옆에서 잠을 자는 북극곰 같은 예쁜 에스키모(사모예드 종)를 끌어안으면서 정말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29/10/2020
스토리 브릿지

사람들은 오래된 추억을 실낱같은 그리움으로 가슴 한편에 소중하게 담아둔다. 잊어버린 듯 희미해진 옛일들이 하나씩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스며 나오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에 눌리며 단지 잊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 뿐이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나만의 지난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참으로 이상한 마법의 시간 속에 걸려들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사이가 멀어져가니 자주 만나서 수다 떨던 일도 먼일같이 느껴진다. 우리 눈에 눈물이 없다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한다. 우리의 가슴이 점차 메말라가지만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따뜻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참선 공부를 오래한 지인에게 화두처럼 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사람은 변화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생기기 때문에 삶 자체를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어깨가 눌려지는 무거움 때문에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곧 사람의 본성론입니다.”라는 철학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불안한 심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곡선의 길이라도 느슨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라 여겨진다. 최근에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자주 선보이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흔들리니 시간여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통해서 작은 위로라도 가져보라는 의도가 아닐까. 그래서 시간여행자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필요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우게 만든다. 시간여행은 보통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된 일을 바르게 고치거나 혹은 미래로 가서 닥쳐올 재앙을 미리 막는 설정으로 되어있다. 두 개의 다른 내용으로 연출된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라는 미국영화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나 역시 뚜렷한 주제의식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판 영화인 어바웃 타임은 평범한 한 남자대학생이 스무 살이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자기 집안의 성인이 된 남자에게 유산으로 물려받는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듣게 된다. 남자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주어진 행운을 즐기기도 하고 한편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돌아가서 지난날의 사람들과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과거의 사건을 바꾸게 되면 미래가 바뀌고 삶 또한 다르게 변한다. 놀라운 비밀과 능력을 아들에게 알려준 아버지였지만 폐암에 걸려서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고 싶은 아들은 과거의 젊은 청년이었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담배를 끊고 건강을 지키라는 충고를 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거절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하게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면 자랑스러운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전해주는 메시지에 내 가슴이 울렸다. 아버지는 인생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배웠던 삶의 지혜를 아들에게 들려주며 행복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아들아,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 매일을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가며, 매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가고, 그것이 진짜 삶의 행복이라는 걸 배우게 된단다.’ 나에게 시간여행이 허락된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10살 미만 무렵의 어린 시절과 20살의 풋풋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에 내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나를 기다린다는 믿음은 가질 수 있다. 체격이 큰 편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막내딸을 배위에 올려놓고 잠을 잘도 재웠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포근했던 아버지의 체온과 토닥여주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버지와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바다냄새 물씬 풍기는 홍합탕과 함께 달콤한 동동주를 마시며 맷돌에 갈아서 갓 구워낸 구수한 빈대떡을 나눠 먹기도 했다. 자전거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힘껏 페달을 밟으며 파도가 넘실대는 해운대 백사장을 신나게 달려주었던 나의 아버지. 어리광 피우던 막내딸이 대학생이 되어서 함께 술잔을 나누는 부녀사이가 되었으니 참 많이 흐뭇하셨던가 보다. 아직도 철이 덜 든 이 나이의 나를 어찌해야 하나. 따뜻한 그리움이 커지는 날에는 잠시라도 시간 여행자가 되어보고 싶다. 만약에 나에게 주어진 수명 시간을 디지털시계처럼 내 팔목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멈추고 싶은 순간 : 어바웃 타임(About time)”은 색다른 내용을 담은 한국드라마의 제목이다. 드라마는 젊은 남녀의 삼각관계라는 기본적인 사랑이야기 안에 뮤지컬이 들어가고 플러스로 죽음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아릿한 삶의 휴머니티를 담아냈다. 여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수명시계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7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가 차사고로 죽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다른 사람의 수명시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수명시계는 사람들의 팔목에 그 사람의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디지털시계처럼 날자, 시간, 분, 초까지 정확한 숫자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남은 시간이 여주인공의 눈에 보일 때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자책감에 몹시 괴로워한다. 결말은 절실한 사랑의 힘은 죽음이 닥쳐와도 연인을 갈라놓을 수 없는 끈질긴 운명으로 엮어놓는다. 여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은 차사고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지만 두 연인들은 예전보다 아주 더 많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남아있는 삶의 수명시간에 연연해하며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나 자신이 궁금해졌다.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수명시계가 언제까지 나를 끌고 갈려는지. 하루하루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오늘을 살고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둔다. 그리고 사람, 삶, 사랑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철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30/07/2020
스토리 브릿지

태양이 눈부신 아열대 도시의 겨울도 계절의 추위를 실감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새벽녘에 기온이 영상 5-7도 까지 내려가면 으스스한 한기에 온몸이 졸아드는 느낌이다. 브리즈번의 한 겨울은 눈이 쌓여 얼어붙는 한국의 겨울과는 다르지만 살갗에 스며드는 찬 기운이 제법 매섭다. 뜨끈한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이 계절에 바이러스까지 한 몫을 보태니 어깨가 더 움츠러드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집에는 온돌방과 다다미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식구들은 주로 큰 온돌방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모여서 놀았다. 장작불로 뜨끈뜨끈하게 데워진 온돌방의 아랫목에는 널찍한 솜이불을 깔아놓았는데 온장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따뜻한 솜이불 밑에서 언니 오빠의 발들이 뒤엉킨 채 엄마가 만들어 준 다양한 군것질거리를 먹었던 그 겨울의 추억들이 그립다. 내가 기억하는 온돌방의 온기는 한국 사람이 지닌 따뜻한 심성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갓난아기 때부터 혼자 침대에 눕혀놓는 서양사회보다는 두툼한 솜이불이 깔린 온돌방에서 엄마의 팔을 베고 잠들었던 우리들의 속정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가 삭막해지는 요즘에 따끈따끈한 아랫목 같은 인간관계가 필요한 시간이다. 우연히 펼친 일간지 신문 한 면에 중년의 한 남자가 어려보이는 십대 소녀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사연을 대충 정리해보면 그 여자아이는 겨우 십대 중반의 나이로 음식과 마약을 사기위해 거리에서 몸을 팔며 홈레스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십대의 시기를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방황하고 혼란을 겪었던 평범한 소녀였다. 이른 새벽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중 순찰중인 경찰에게 붙들렸다. 그 여자아이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것뿐이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마약도 사고 음식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돈을 조금 더 모으게 되면 엄마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서 비행기 표를 사고 싶었다고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빠는 망가진 자신의 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또 무엇을 느꼈을까. 그 아이는 아직도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이며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응석을 부리면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며 누가 벌을 줄 수 있을까. 주변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관심을 보였다면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십대 하이스쿨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일은 참으로 큰 인내심이 요구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지의 정령을 믿으며 자연을 사랑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는 자연 그 자체를 스승으로 삼아서 겸손하고 순종하며 침묵하게 만드는 참된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진정한 예의는 말보다 행동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모닥불 앞이나 나이 든 어른들, 특히 손님 앞을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불구자나 못생긴 사람을 놀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인성교육을 시켰다. 예의 있는 행동과 절제된 모습의 교육을 가르쳤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현명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날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참 교육의 본보기 같아서 공감이 간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라라를 만나서 딸 부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젠 삼십대 초반으로 접어든 라라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서너 살의 어린애로만 보인다. 라라는 두 살 무렵 호주양부모에게 입양된 한국 딸이다. 지금은 어엿한 의사가 되어서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를 오가며 병원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나와 라라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한글학교에서 맺어졌다. 나는 삼십여 년전 한인회 정기모임에서 호주인 양부모들과 한국 입양아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와서 옷고름을 매어 달라는 부탁을 했으며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오는 감동을 받았다. 양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한국문화와 언어를 배우게 하고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인연으로 한글학교에 특수반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양부모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호주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한 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던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서 열심히 가르쳤다. 호주양부모와 입양어린이들은 훌륭한 학생들이 되어 주었으며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추억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호주엄마, 아빠와 맺은 인연과 우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나의 가장 좋은 호주친구들이며 입양아들은 나의 사랑하는 또 다른 한국인 자녀들이다. 그리고 마음에 남겨진 예쁜 내 아이들이기도 하다. 나는 성인이 된 아이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새 부부에게 축복을 보내며 호주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바라보는 우리들의 두 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아차린다. 양부모들은 입양한 자녀들을 위해서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의 고향을 같이 방문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가르쳤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는 멋진 사회인이 되어있다. 딸이 중학생이었을 때 내게 했던 약속이 생각난다.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아이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어요.” 내가 양부모들에게 왠지 빚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었는데 그 의미를 잘 이해했던 것 같다. 요즘은 딸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입양아 아이들과 친구를 맺어서 서로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딸 덕분에 내 마음에 남겨진 아이들과 소통이 쉬워지고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김치를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볼 만큼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호주인 양부모와 같은 삶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많아진다면 거리에서 헤매는 아이들은 결코 생겨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7/08/2020
스토리 브릿지

9월, 봄날이 다시 찾아왔다. 따사로운 기운이 살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와서 움츠렸던 어깨를 다독여주며 감싸는 듯하다. 하얀 뭉게구름과 눈부신 햇살은 맑고 푸른 하늘에 천연의 아름다운 구름그림들을 마음껏 그려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렇듯 멋진 자연의 풍성함을 그리워하면서 시리고 추운 시간들을 보내며 살았다. 이젠 두 팔 벌려서 주어진 이 계절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제 사람들을 그만 괴롭히고 가는 겨울과 함께 썩 물러가라.”하는 주문을 걸어둔다. 브리즈번에는 해마다 9월이 되면 도시를 들썩이게 만드는 다양한 공연의 봄 축제가 시작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Brisbane Festival’이라고 써진 분홍색의 축제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끼며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거리 제한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대한 불안한 심리로 인해서 섣불리 공연장에 발을 내딛는다는 게 망설여진다. 단 하루만이라도 역병의 공포와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연을 즐기며 쉬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해본다. 퍼시픽 1번 고속도로(Pacific Motor Way, M1)를 타고 골드코스트를 향해 남쪽으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해서 팜비치(Palm Beach)라는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개들이 수영하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개들의 해변(Dog Beach)이 별도로 있는 곳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벌써 수많은 개들이 백사장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열린 공간에서는 사람이나 개들도 낯선 이와 쉽게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서로 웃음 지으며 ‘하이’하며 손을 흔들고 개들은 다가와서 머리를 비벼댄다. 마치 세상의 모든 개 종류들이 다모인 듯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바닷물로 뛰어들며 수영을 즐기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에 웃음이 절로 터진다. 아! 여기가 바로 개들의 천국이며 한마디로 개판(?)인 세상이다. 세계적인 휴양지 골드코스트 해변의 한 모퉁이에 개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독 비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독 비치에서는 유난히 사람과 개의 관계가 부모와 어린 자식의 관계처럼 친밀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공을 입에 물고 모래사장과 바닷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들, 그 옆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 꼬마들, 그리고 패들보드를 타는 십대 청소년들 모두가 같은 물속에서 노는 모습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보인다. 북극곰 같은 나의 애견 에스키모(사모예드 종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느긋하게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에스키모가 바닷물에 젖은 털을 힘껏 터는데 투명한 물방울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햇살에 반사되며 피어오른다. 독 비치에서 개들의 재롱을 보며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바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순간이라 여겨졌다. 하늘을 둥글게 가린 초록색 나무들이 긴 터널처럼 우거진 숲길을 삼십 여분 달려서 스웰 조각축제(SWELL Sculpture Festival)가 열리는 커럼빈비치(Currmbin Beach)에 갔다. SWELL 조각 축제는 국내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조각 작가들의 작품을 10일간(9월11일-20일)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설치해서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전시회이다. 올해는 4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 행사는 매년 275,000 여명이 방문하며 조각가들은 마스터 클래스, 어린이를 위한 예술 활동, 조각 워크샵 및 지역 음악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커럼빈비치에 도착하니 긴 백사장에 조각 작품들이 드문드문 전시되어 있었는데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회적 거리를 고려해서 배열되어 있었다. 모든 조각 작품들이 너무 긴 거리에 분산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을 다보지 못한 채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몇 작품들이 눈에 두드러져 보였지만 작품 해설이 부족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으며 상상력으로 채우기로 했다. 하얀 실크 천을 재료로 만든 작품은 배의 돛대를 연상시켰는데 왠지 한국의 무속신앙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다에서 진혼제를 올릴 때 무녀가 하얀 천을 흔들며 바다에 빠진 영혼을 위로하며 건져 올리는 의식이 연상되어서였다. 나무로 만든 참치 모양의 물고기 상, 나무재질의 원색 파라솔 세 개를 뒤집어서 백사장에 눕혀 놓은 작품, 섬세한 디자인의 고기잡이 돛단배, 누워있는 여인상 등.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조각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른 하늘 캔버스에 하얀 뭉게구름이 만드는 환상적인 조각, 하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드넓은 바다야말로 가장 초자연적인 예술 작품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백사장 무대 위에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에는 작가들의 혼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 작품은 보는 관람객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영적인 힘이 스며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짧았던 하루 여행에서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마음의 때를 벗겨낸 듯 개운해진 기분이 든다. 사람(Human)으로서 개들의 천국(Dog’s heaven)에서 같이 놀 수 있었고,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면서 공해에 찌들었던 시야를 깨끗하게 씻어내었다. 사람은 역시 자연과 함께 할 때 에너지가 재생성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존재를 알고 위로받으며 행복해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정화된 시간이 필요한 나날들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24/09/2020
스토리 브릿지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달려있음을 실감하며 사는 요즘이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니 주어진 공간 안에서 쳇바퀴 돌 듯 하루가 지나간다. 초기에 주어졌던 느긋한 자유는 점차 쌓여가는 불안감과 답답함으로 이어지고 마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훈련된 나의 생체리듬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단한 잠을 깨운다. 지난 몇 해 동안 인생 백세시대라는 말이 화두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았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대전염병으로 인해서 ‘나도 건강조심, 너도 오늘 하루 안녕’ 이라는 말로 내일을 모르는 긴장 속에 휩싸여 지낸다. 그러나 인간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극복해가는 지혜와 용기를 내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연대(Solidarity)’라는 단어를 쓰며 사회적 거리가 인간적인 거리로 연결되기를 기도했다. 십자가 구도의 형상화에서 직선이 상징하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순종의 관계이며, 수평은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인간관계의 메시지로 이해된다. 서로 돕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서 역병을 잘 이겨내고 인생의 최고의 시간을 되돌려 받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다. 집안에서 머무는 24시간의 여유를 새로운 지식 탐구의 기회로 삼아서 알차게 보내기로 마음을 정하니 한결 편해진다. 인터넷을 헤집고 다니다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무한대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의 개인 과외 선생으로 부족함이 없는 지식의 보물 창고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인문학 분야의 전문가인 한 역사학자의 강연에 깊이 빠져들었다. 유튜브(You Tube)에서 만난 이스라엘 출신의 인류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교수의 인류학 강연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해박한 지식과 막힘없는 말솜씨에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유발 노아 하라리는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이며, 세계적 스테디셀러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호모데우스〉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학자이면서도 단순한 역사연구가 아닌 생물학과 역사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의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연구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와 경희대학교가 함께 기획한 문명전환 강좌시리즈에서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2020년에 들어서 발생한 요즘의 세태를 예측한 듯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무척 놀라웠다. 교육 분야에 대한 내용은 학생들을 오랜 시간 가르쳐 온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학생들은 수업을 하면서 교수에게 맞다, 아니다와 같은 흑백논리를 담은 정답만을 알기를 원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무지함도 받아들이고,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편하게 느끼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빅뱅(Big Bang)이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모릅니다.’ ‘의식이 무엇인가요?’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이 아닐까요?’ ‘나는 모릅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우리가 가르쳐야 할 일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교육의 가르침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던 가슴이 한 순간에 확 뚫리는 이 기분을 ‘나도 모릅니다’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24시간 방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몸을 사리고 사는 나날들이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학생의 얼굴을 보고 손을 흔들며 서로가 안전하다는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모릅니다.” 라는 대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기다리는 학생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다. 이 문제의 답은 다가오는 다음 시간대의 질문으로 남겨놓아야 할 듯 싶다. 이젠 뉴스도 아주 가끔씩만 보려고 한다. 자라나는 불안감의 싹을 꺾어야 안정을 찾을 수 있고 지금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물구덩이 흙탕 속에서 살던 잠자리의 유충이 어느 날 날개가 솟아나며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맑은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동화가 있다.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지니고 살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힘들어 하며 사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소중함과 간절함을 잊고 있었던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의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

23/04/2020
스토리 브릿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녀들에게 평생 동안 무료 아프터 서비스를 의무처럼 베풀며 살아간다. 그런 어머니들에게도 일 년 중에 단 하루,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당해질 수 있는 ‘어머니날’이 있다. 올해, 나의 어머니날은 지난 어떤 해보다도 더 소중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지는 시간을 가졌었다.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딸 부부가 점심식사를 예약해 놓았다면서 재촉을 했다. 선샤인 코스트의 누사 헤드(Noosa Head)에 있는 일본 식당인데 운전해서 가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 그 먼 곳에 예약을 했으니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그냥 따라갈 수밖에. 선샤인코스트는 브리즈번의 북쪽에 위치한 관광지로서 해변이 65킬로미터 정도 되는 아름다운 휴양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반나절의 나들이로 끝내기에는 왕복 4시간이 넘는 자동차 여행이 아쉽기는 했지만 멋진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선샤인 코스트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누사 헤드의 팻말을 따라서 마을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니 하얀 색 페인트를 칠한 식당건물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지만 식당 안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실내에 들어서니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어서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둥실 떠있는 유리 상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전통음식 아홉 가지를 주문해놓고 칵테일을 마시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저 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몇 개의 섬들은 큰 조개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작은 보트를 여유롭게 노 저어가는 연인들의 모습, 제트스키를 타고 날듯이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음식의 양도 적을 뿐더러 간격이 너무 길어서 식사 시간이 거의 3시간이나 걸렸었다. 맛과 양보다는 멋을 보여주는 아홉 가지의 요리에 “음식도 예술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어느 새 가을 햇살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을 맞았다. 황금색 빛살이 점차 옅은 오렌지 색상으로 변해가며 바다 밑으로 잠겨드는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되는 이 오묘한 자연의 변화를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밑으로 잦아드는 석양을 보면서 신이 우리에게 보내준 놀라운 선물에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었다. 설레는 가슴 위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받아 들였다. 창가에 다가가서 유리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만져지는 것은 없었지만 어떤 힘이 가볍게 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딸 부부를 바라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찡해왔다. 친구처럼 토닥거리며 말다툼을 할 때도 있고,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기도 하는 딸에게 엄마를 대신해주는 든든한 한 남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둡고 깜깜했지만 나는 등불을 손에 든 사람처럼 이미 환해져 있었다. 비록 7시간이나 걸린 식사 시간이었지만 딸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 거리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된다. 가끔씩은 홀로되는 시간을 가지면서 지난 날 들의 기억을 끄집어 낼 필요도 있다. 내 딸이 추억을 만들어 준 것처럼 나도 자녀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질 수는 없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내 마음만이라도 잘 전달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추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보다 아름다운 감성을 통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더 행복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씩 추억거리를 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면 눈부신 가을 햇살이 나를 향해서 손짓을 해준다. 힘을 내서 또 하루의 일을 시작하며 나 스스로에게 멋진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25/05/2017
스토리 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