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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을 볼 수 있는 바닷가 도시, ‘포트 린콘(Port Lincoln)’ 굴이 많이 나는 동네에 있는 산책로(Oyster Walk)오늘은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바닷가 도시, 포트 린콘(Port Lincoln)으로 떠난다. 해산물의 도시(The Seafood Capital of Australia)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각종 물고기와 해산물이 풍부한 동네다. 참치가 유난히 많아서일까, 참치를 멀리 던지는 특이한 시합을 하는 동네이기도 하다.오랫동안 운전했다. 드디어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운전하여 해안에 자리 잡은 동네(Cowell)에 도착했다. 그림엽서에 나올만한 작고 아름다운 동네다. 해안에 있는 놀이터가 눈길을 끈다. 바닥에서 물이 뿜어 나오고 머리 위에서는 물을 퍼붓는 물놀이 공원이다.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에 좋다. 바닷가 마을에 어울리는 놀이터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주위를 걷는다. 해안에 있는 자그마한 야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며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목적지에 야영장을 이미 예약했다. 미리 목적지를 정한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여행하다 보면 후회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듯이. 삶을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야생 타조가 거리를 노니는 국립공원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이번에는 도로에서 나비 떼를 만났다. 나비들이 앞유리창에 계속 부딪히며 죽어간다. 어느 구간에서는 비 오듯이 떨어지는 나비 때문에 서행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동차 유리와 보닛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비에게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나비가 되기까지 각고의 시간을 보냈을 터인데. 나비 떼를 벗어나 얼마나 달렸을까. 오른쪽으로는 끝없는 밀밭, 왼쪽으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이 펼쳐진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다. 천천히 운전하며 주위 풍경을 즐긴다. 동행자가 있다면 운전을 맡기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오래 기억에 남도록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본다.전망대에서 바라본 포트 린콘(Port Lincoln) 전경도로는 또 다른 바닷가 동네로 안내한다. 동네 입구에는 큼지막한 사일로(Silo)가 있다. 밀을 보관하는 창고일 것이다. 호주에서 농산물을 취급하는 가장 큰 회사 이름(Viterra)이 쓰여있는 사일로에는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네를 상징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런데 낙타 그림도 있다. 이외다. 호주 북부 내륙에는 야생 낙타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남부 해안에 낙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곳에도 야생 낙타가 서식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코핀 베이(Coffin Bay National Park)라는 국립공원에 있는 야영장에 도착했다. 포트 린콘에서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반갑게 맞는 직원에게 이 동네는 무엇으로 유명하냐고 질문해 보았다. 대답은 굴 양식장과 물고기가 많은 동네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쿠폰 한 장을 건네준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굴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할인권이다.다음날에는 포트 린콘을 찾았다. 쇼핑도 하면서 이곳저곳 둘러볼 생각이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바람도 심하게 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심한 바람이 분다. 관광객 대부분이 자동차 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심한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이다. 몸을 건물 벽에 기대고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풍경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나 바람을 사진에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동네, 싸일로에 동네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시내에 들어섰다. 바닷가에 줄지어 있는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낯선 동네를 걷는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임을 직감할 수 있는 거리 모습이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식당을 겸하고 있는 생선 도매점을 찾았다. 메뉴를 보니 회도 있다. 그러나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회를 보니 전문으로 하는 주방장 솜씨가 아니다. 메뉴를 살펴보아도 마음에 드는 음식이 없다. 호주 사람들이 흔히 먹는 생선튀김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생선회를 곁들인 얼큰한 매운탕 맛을 모르는 호주 사람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국립공원에 있는 야영장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든다. 특히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Oyster Walk)는 매력적이다. 매일 아침 산책로를 걷는다. 걷다 보면 다양한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식물과 새들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 보인다. 조개에 대한 안내문이다. 조개가 많이 서식하는데 200개까지만 잡을 수 있다는 경고가 쓰여있다. 얼마나 많기에 200개까지 잡도록 허용하는 것일까.해산물의 도시답게 어선이 줄지어 정박한 항구해변에 내려가 본다. 작은 조개가 백사장에 가득하다. 혹시 죽은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어 깨뜨려 보았다. 살아있는 조개들이다. 그러나 살을 발라 먹기에는 너무 작다. 물이 빠졌을 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큰 조개가 있을 것이다.한 시간 걸었다. 그러나 산책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시간을 걸어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장소다. 문득 산책을 즐겼던 칸트라는 철학자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고 할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 철학자다. 그의 깊은 사상은 산책을 통해 나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동네에는 야생 타조들이 많다. 야영장에도 사람을 무시하며 캐러밴 주위를 배회하는 타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도로 한복판에서 서성거리며 차량을 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주위가 어두워지면 야영장은 타조를 대신해 캥거루 놀이터로 변한다. 사람이 찾아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캐러밴 주위를 서성거리는 캥거루들이다.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늘은 국립공원 깊숙이 자동차로 들어가 보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차에서 내려 벼랑 끝에 가 본다. 하늘은 비가 내릴 것 같은 검은 구름으로 서서히 뒤덮이고 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아래에서 출렁이는 바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자연의 웅장함을 돋보이게 한다.  황량한 국립공원 해안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캠프장에도 가 보았다. 공동화장실만 덩그러니 있는 열악한 환경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인간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가끔은 지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반짝일 것이다.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을 추억도 많이 가지고 갈 것이다. 삶을 되돌아보아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평범하지 않았던, 고생했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지 않던가. 여행과 삶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21/12/2023
시골 엽서

[이강진의 시골엽서]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호수라고 하지만 물은 보이지 않고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황무지에 세워진 광산 도시(Broken Hill)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도시(Port Augusta)로 정했다. 내륙의 황량한 들판을 벗어나는 날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표지판이 보인다. 다음 주유소까지는 200km를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다. 연료 게이지를 쳐다보게 된다. 휘발유는 충분하다. 지평선이 보이는 도로에 다시 들어선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호주의 전형적인 내륙(out back)의 모습이다. 두어 시간 운전했다. 쉴 곳을 찾는데 윤타(Yunta)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장거리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 가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그래서일까, 여행객을 위해서 카페를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보인다.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호텔이라는 간판이다. 호텔이라고 하면 고층 빌딩 혹은 고급스러운 건물을 떠올리며 지낸 세대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호텔은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도시. 강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뉴 사우스 웰즈(NSW)를 벗어나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에 들어서니 농작물 검역소가 있다. 검역소 앞에는 몇 대의 자동차가 줄을 서 있다. 내 차례다. 채소 혹은 과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채소는 없으나 사과를 가지고 온 것이 생각난다. 사과를 압수당했다. 냉장고까지 열어보며 채소가 있는지도 알아본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방역에 철저한 호주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산이 가로막는다. 굴곡이 심한 도로를 운전해 산을 넘으니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다. 이렇게 많은 풍력 발전기는 처음 본다. 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본다. 50여 개,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짐작해 본다. 포트 오거스타에 들어선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기이한 장면이 보인다. 호수라고 하는데 물은 보이지 않고 하얀 소금만 보인다. 잠시 들려 소금인가를 확인하고 싶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야영장으로 향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지냈다. 편하게 쉬고 싶다. 나만의 샤워장이 있는 장소(Ensuite Site)에서 지내기로 했다. 물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언제부터인가 야영장에서도 자신만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도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셀 수없이 많은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가볼 만한 장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가까운 곳에 전망대가 있다. 일단 높은 장소에 올라가 동네를 관망하기로 했다. 전망대는 물탱크로 사용했던 타워를 개조한 것이다.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엉성하고 오래된 계단이라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딘다.전망대 올라서니 바로 앞에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오랜 시간 흘러온 강물이 쉼을 얻는 장소이다. 그러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확 트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을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섭섭하다. 그러나 수량이 많은 강물이 흐르는 것만 보아도 마음조차 시원해진다. 물이 귀한 내륙에서 지내다 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소금 벌판을 찾았다.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차가 주차해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소금이 맞는지 확인해 본다. 짜다. 소금임이 틀림없다. 호수가 분홍색을 띠기도 한다는데 지금은 하얗기만 하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분홍색으로 변할 것이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분홍색으로 물든 소금 호수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한국의 사랑방을 연상시키는 작은 동네에 있는 호텔이곳에는 강물을 따라 긴 산책로가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다. 오늘도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책한다. 산책로 옆에 있는 농구장에서는 원주민 학생 몇 명이 열심히 뛰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는 원주민 그룹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썰물이라 가파르게 내려앉은 선착장에서는 원주민 가족이 낚시하느라 떠들썩하다. 원주민이 많이 사는 동네임을 알 수 있다.  다음 날은 내륙에 위치한 식물원(Botanic Garden)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강물이 파고들어 만든 수십 길 낭떠러지가 인상적이다. 멀리 보이는 맹그로브 나무들은 한 폭의 그림이다. 강을 오르내리며 물고기를 낚는 배도 보인다. 잠시 강바람을 맞으며 멋진 풍경에 빠져든다.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입구에 있는 농작물 검역소.식물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카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관광버스를 보았냐고 묻는다. 땀을 흘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주차장에서 관광버스가 있는 것을 보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니 고맙다는 말을 급하게 남기고 떠난다. 일행에서 벗어난 할머니다. 오래전 단체 여행에서 길을 잃었던 나의 경험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보타닉 가든에 위치한 카페는 사람으로 붐빈다. 대부분 여행객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야채가 듬뿍 든 요리로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걷는다. 물이 귀한 사막지대다. 다른 식물원에서 흔히 보았던 키가 큰 고목이나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호수는 없다. 키가 작은 수많은 나무가 온몸을 비틀어 가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식물원 입구 산책로에서 만난 멋진 풍경.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가 깊다고 들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외모는 볼품없지만 생명력은 무척 강한 것이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멋진 외모를 자랑하지만 조금만 심한 바람이 불어도 뿌리째 뽑히는 나무와 비교된다. 우리는 좋은 것을 원한다. 어려움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 때문에 외우기까지 했던 ‘청춘 예찬’이라는 수필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했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는가’황량한 들판에 있는 식물원.좋은 환경에서만 지내는 삶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삶일까.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어려움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라는 하늘의 깊은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석가와 예수처럼 고행을 찾아 나설 자신은 없다. 그러나 찾아오는 어려움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며.식물원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에서 푸른 하늘과 맞닿은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나를 위해 하늘이 만들어 놓은 세계와 하나가 되어본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7/12/2023
시골 엽서

브로큰 힐(Broken Hill)로 향하는 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가로지른다.작은 동네 그러나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보크(Bourke)에서 며칠 보냈다. 길을 떠난다. 지평선이 보이는 풍경이 또다시 전개된다. 이번 목적지는 430km 떨어진 윌카니아(Wilcannia)로 정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했을 즈음 도로 주변에 염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야생 염소다. 타조도 보인다. 어미 타조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지금까지 도로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동물들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에 윌카니아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일단 허기를 채워야 한다. 캐러밴 서너 대가 줄지어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직원이 모두 원주민이다. 복장도 원주민 그림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원주민이 여행객을 상대로 운영하는 카페다. 윌키니아는 황량한 들판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다. 구경거리도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화와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다. 계획대로 이곳에 머물 것인가 잠시 망설인다. 브로큰 힐(Broken Hill)이라는 도시까지는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 세워진 광부 동산허기를 채우고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계획과 달리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할 일이 생긴다.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 아닌가.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호주에서 이렇게 지낼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세상일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차창 밖 풍경은 황량하다. 목초지나 농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쉬지 않고 달려 브로큰 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야영장에 들어선다. 중간에 쉬기는 했지만 8시간 넘게 도로에 있었다. 피곤하기는 하다.  그러나 하늘을 보니 해가 지려면 시간이 있다. 동네 중심가를 찾아 나선다. 생각보다 큰 도시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전망대가 보인다. 낯선 동네를 둘러보기에 최고의 장소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사람이 제법 많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뜻하지 않게 멋진 전망대에서 석양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 여행하면서 저녁노을을 수없이 보았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음 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을 찾았다. 제법 큰 공원이다. 주말이라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이 많다. 공원 근처에서는 주말 시장이 열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조촐하게 물건을 전시해 놓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장소는 커피와 간식을 파는 카페다. 화창한 주말에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는 최고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마켓을 나와 자동차로 주위를 둘러본다. 동네 곳곳에 관광객을 위한 전시관이 있다. 광산과 관계된 전시관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산이 있었기에 황량한 들판에 작은 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금광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지역에도 작은 동네가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금전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매드 맥스(Mad Max2) 박물관. 다음 날은 조각품(Living Desert Sculptures)이 전시되었다는 관광지를 찾았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있다. 그러나 직원은 없다. 입장료 10불은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즈음은 신용카드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야영장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때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곳이 많다. 지폐가 없어지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산등성이에 올라 조각품을 둘러본다.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은 나에게 없다. 그러나 황량한 광야가 작품의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이 돋보인다.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작품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처에 조성한 산책로도 걸어본다. 그러나 파리가 너무 많아 걸을 수 없을 정도다. 원주민이 살았다는 장소까지만 걸어본다. 대충 몸만 숨길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안내판에는 동물 사냥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장소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았던 원주민이다. 현대인은 하루도 지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콘크리트로 사방을 가로막은 집을 불편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드넓은 대지에서 지내던 사람들에게는.사막에 있는 야외 조각품 전시관. 인터넷에서 갈만한 곳을 찾아보니 매드 맥스(Mad Max 2) 영화 촬영지가 가까운 곳에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가 보았다. 동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술집이다. 유령 마을(Ghost Town)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이다.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 있다. 맥주 한 잔 마신다.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흙먼지 날리는 사막지대, 맥주가 생각 날 수밖에 없다.  술집에 앉아 건너편을 보니 특이하게 장식한 집이 있다. 집 앞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미술 전시관(John Dynon Gallery)이다. 실내에 들어서니 예상외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오지의 황량한 풍경을 거친 붓으로 잘 묘사한 갖고 싶은 그림들이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니 장난이 아니다. 천 불 단위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광산에서 일했던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매드 맥스 촬영지에서 만난 화랑 건물전시관을 나와 매드 맥스 박물관(Mad Max Museum)을 찾았다. 그러나 문은 닫혀있다. 영화에 나왔을 것 같은 자동차만 야외에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매드 맥스라는 영화는 오래전에 보았다. 스토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기괴하게 생긴 자동차들이 사막을 질주하던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황량한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영화의 촬영지로 이 지역이 선택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날에는 첫날 석양을 마주했던 전망대를 다시 찾았다.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본다. 호주의 대표적인 광산 기업(BHP)은 1885년 이곳에서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따라서 회사 이름에 브로큰 힐(Broken Hill)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조각품 전시관 산책로. 길 떠나는 여행객의 형상이 마음에 와닿는다전망대에는 기념관도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사람 이름이 붉은 꽃과 함께 빼곡히 적혀있다. 광산을 시작한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광산에서 순직한 사람들 명단이다. 캔버라(Canberra)에서 보았던 전몰장병 기념관처럼 꾸며놓았다. 회사가 순직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뉴스를 보면 요즈음도 심심치 않게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숨졌다는 기사를 본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작년에 산재로 사망한 사람이 2천 223명(사고874명, 질병1,349명)이라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숫자다. 하루에 6명꼴로 사망했다니.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자랑을 하기에는 낯 뜨거운 숫자다.쾌적한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영적 지도자들이 감사하며 지내라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브로큰 힐 곳곳에 있는 오래된 광산 전시관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23/11/2023
시골 엽서

도로변에는 목화 농장이 줄지어 있다. 아침저녁 온천욕으로 휴식을 취하며 모리(Moree)에서 사흘을 보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떠나야 하는 것이 여행이다. 더 깊은 내륙으로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또다시 지평선이 펼쳐진다. 수백 킬로미터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운전했을 것이다. 문득 작은 동산 하나 볼 수 없는 평야가 대한민국 국토보다 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가능한가. 상상을 초월하는 호주 대륙이다. 도로변에는 하얀 목화송이가 즐비하다. 목화 농장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목화꽃 피는 계절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목화꽃 피는 계절에 또 찾고 싶다. 기약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기착지는 부리와리나(Brewarrina)로 정했다. 작은 동네이지만 야영장이 있기 때문이다.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하자 동네가 보인다. 그러나 동네가 너무 작다. 볼거리도 없다. 한 시간 정도 더 운전하면 제법 큰 보크(Bourke)라는 동네가 있다. 바나나로 허기를 달래면서 조금 더 운전하기로 한다. 일정이 없는 발길 닿는 대로 하는 여행이기에 가능하다. 오지의 작은 마을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선수를 기억하는 공원.보크라는 동네에 들어서자 야영장 표지판이 보인다. 적당한 크기의 분위기 좋은 야영장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표정이 무척 밝고 친절한 젊은 여자가 반갑게 인사한다. 젊은 부부가 야영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도시의 삶을 등지고 오지에서 지내는 부부가 보기에 좋다. 도시의 복잡함과 경쟁에서 벗어난 삶,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삶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네를 걸어본다. 멀리 지평선 위로 아침 햇살이 눈 부시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집마다 한두 마리 키우는 것 같다. 대부분의 집 마당은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다.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우리들 눈으로 보면 원주민이 사는 집은 지저분하다. 별과 달을 벗삼아 넓은 대지에서 지내던 원주민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지내는 서구식 삶을 강요한 덕분 아닐까?영국에서 1920년대에 제조한 디젤 엔진 낯선 동네에 오면 늘 하듯이 여행 안내소(Visitor Centre)를 찾아간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안내소는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넓은 공터에는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 조각품들도 설치되어 있다. 비치된 관광 전단을 몇 개 집어 든다. 직원에게 갈만한 곳을 알아보기도 한다.  관광 안내소에서 소개한, 오래된 엔진을 시운전하는 장소에 가 보았다. 무게가 16톤이나 되는 디젤유를 사용하는 대형 엔진이다. 스팀엔진을 주로 사용하던 1920년 초 영국에서 제조한 것이다. 시드니에서 발전기로 사용했다는 설명도 있다.달링강(Darling River)에 서식하는 수많은 새. 조금 기다리니 작업복을 입은 직원 두 명이 엔진에 관해 설명한다. 듣는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3명뿐이다. 그러나 설명은 장황하다. 드디어 시운전한다. 큰 소리를 내며 꿈적할 것 같지 않은 육중한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배기관을 통해 나오는 연기가 대단하다. 소리도 요란하다. 관광객을 위해 하루 한 번씩 시운전한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지방 정부의 노력이 엿보인다.  엔진 소리를 뒤로하고 높이 뛰기 선수를 기념하는 공원에 들러본다. 퍼시 뮤럴(Percy Mural)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선수다. 표지판에는 1962년 영연방 대회(Commonwealth Game)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라고 한다. 자기 집 마당에서 연습하여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는 동네 주민이다.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라는 설명도 있다. 따라서 공원까지 조성해 자랑하는 것이다.다음 날 아침에는 배를 타러 갔다. 관광객을 태우고 20여 년 동안 운영해온 배라고 한다. 생각보다 배가 크다. 고동을 울리며 천천히 물결을 헤치며 움직인다. 강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달링강(Darling River)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달링강은 1,500km나 되는 길고 유명한 강이다.빈곤한 나라에서 의료 활동을 했던 프레드의 묘. 배 난간에서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배가 다가가면 수많은 새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옆에서도 중년 여자가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전문 사진사 같다는 나의 질문에 아니라고 한다. 단지 사진을 좋아한다고 한다. 센트럴 코스트(Central Coast)에 사는 사람이다. 집을 세주고 캐러밴으로 여행 중이라고 한다. 여행 정보를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동네에서는 공동묘지를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다. 안내지를 읽어 본다. 공동묘지에 모셔진 유명한 사람들 이름이 적혀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호주의 유명한 안과 의사 프레드 홀로우즈(Fred Hollows)가 이곳에 묻혀있는 것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찾아가 안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동네 한복판을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무덤을 찾아갔다. 프레드의 무덤이라고 특별히 장식하지는 않았다. 큰 바위 하나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그 흔한 묘비명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헌화한 꽃이 많다. 지금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봉사하는 단체가 있다. 프레드가 주장했던 ‘모든 사람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하자’라는 좌우명을 마음에 새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만든 기관이다. 호주의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외진 동네에 쉬고 있다니, 생각 밖이다.공동묘지는 넓게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아직도 빈 자리가 많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빈자리도 없어질 것이다. 공동묘지를 걷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모멘토 모리 (Memento Mori)를 읊조린다. 죽음을 기억하라는.사람들에게 강을 오르내리며 동네를 소개하는 관광선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죽음을 맞는다.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숙명이다. 세상을 향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짐은 주님께 맡기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언젠가 떠나야 할 세상에 속박되지 않은 삶을 그려본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9/11/2023
시골 엽서

투움바(Toowoomba)로 들어서는 국도에서 만난 풍경골드 코스트(Gold Coast)를 떠나는 아침이다. 캐러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 목적지는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남해안의 작은 도시 포트 오거스타(Port Augusta)로 정했다. 내비게이션으로 거리를 알아보니 2,000km 정도가 된다. 장시간 장거리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 몇 번 나누어 가야할 것이다.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전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니 적당한 거리에 피츠워스(Pittsworth)라는 동네가 있다. 야영장(Caravan Park)도 있다는 정보가 있다. 기착지로 적당한 동네다. 야영장 예약은 하지 않았다.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제멋대로 다닐 생각이다. 발길 닿는 대로.이제는 익숙해진 솜씨로 캐러밴을 자동차에 연결하고 도로에 들어선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자동차에 경고등이 켜진다. 이틀 전에 정비받았다. 그럼에도 자동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된 정비소 찾기도 힘들 것이다. 오히려 지금 문제가 생긴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피트워스(Pittsworth)의 작은 동네에 있는 대형 교회. 정비소를 찾아가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부품은 있지만 서너 시간은 걸려야 한다고 한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것이 인생 아닌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마음 편안히 먹고 근처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좋아하는 월남 국수로 점심까지 먹었다. 아침 일찍 떠날 생각이었는데, 늦게서야 길을 떠난다. 정비가 끝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브리스베인(Brisbane)과 골드 코스트(Gold Coast)를 잇는 왕복 8차선 고속도로다. 그러나 도로가 정체될 정도로 자동차가 넘쳐난다. 드디어 복잡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투움바(Toowoomba)로 향하는 국도에 들어선다. 산도 넘는다. 커브가 심한 도로다. 속도 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힘든 만큼 멋진 경치가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투움바에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이 많다.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륙에 있는 오래된 도시다. 늦게 떠났지만 가까운 곳이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피트워즈에 도착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야영장을 찾았다. 캐러밴 자리가 서너 개밖에 없는 작은 야영장이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 예상외로 주인은 인도에서 온 사람이다. 이렇게 외진 곳에 정착한 이유가 무엇일까. 커피라도 한 잔 나누면 많은 사연이 나올 것 같다. 캐러밴을 주차하고 동네를 걸어본다. 생각보다 큰 동네다. 울월스(Woolworth) 가게도 있다. 그러나 무척 작다. 이렇게 작은 울월스를 본 기억이 없다. 동네 중심가에는 축산업을 중심으로 1,900년도에 형성된 동네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작은 동네이지만 정육점이 두 개나 있다. 정육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를 키우는 동네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이다. 다음 날 아침에 자동차로 동네를 둘러본다. 교회 건물 두 개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웅장함을 겨루고 있다. 이렇게 큰 교회를 건축할 정도면 예전에는 신도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을까. 아마도 교인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대도시의 많은 호주 교회가 그렇듯이. 생각보다 붐비는 작은 동네지만 정육점이 두 개나 있다.교회를 지나 다음 골목에 들어서니 골프장이 보인다. 들어가 본다. 사무실은 자물쇠로 잠겨 있다. 입구에 봉투가 놓여 있을 뿐이다. 가격은 25불이다. 봉투에 돈을 넣어 설치된 함에 넣으면 된다. 골프도 치며 여행할 생각이었기에 골프채는 자동차에 실려있다. 금액을 지불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골프장에 들어선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기에 가능하다. 골프 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다. 사람은 없어도 관리는 잘 되어 있다. 거의 끝날 즈음에 골프 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지역 주민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것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오지의 작은 마을에서도 골프장을 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의 골프 사랑이 유별나서일까. 늦은 오후에는 동네를 걸어본다. 시골 동네치고는 거리에 사람이 제법 있다. 가게도 많은 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침술원이다. 이곳에도 침을 맞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중국 사람이 운영할 것이다. 길 건너편에는 중국 식당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중국 사람이 거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끝자락까지 걸어본다. 실버타운(Retirement Village)과 병원(Medical Centre)이 보인다. 그리고 택지를 조성해 분양도 하고 있다. 부동산 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느 시골 동네와 달리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인도인이 경영하는 야영장, 중국 식당과 침술원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이민자가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지평선까지 펼쳐진 농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저녁이다. 해가 서서히 하루를 마감하며 기울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유난히 붉은 태양이다.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서성이며 해가 넘어갈 때까지 발길을 떼지 못한다. 뜨는 해도 아름답지만, 지는 해도 아름답다. 관광지 없는 외진 동네에서 이틀을 보낸 후 모리(Moree)로 향한다. 모리는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온천으로 유명한 동네다. 거리는 300km 조금 더 운전하면 되는 짧은 거리다. 규정 속도보다 천천히 달리며 주위 풍경을 즐긴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이 계속된다. 지평선 끝자락에 보이는 숲이 가물가물하다. 사막에 있다는 신기루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농장도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농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농장이다.주로 동구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온천장으로 유명한 야영장 모리에서 온천장으로 유명한 야영장을 찾았다. 야영장에는 수온이 다른 온천장이 4개나 있다. 큰 수영장도 있다. 안내판에는 지하 720m에서 퍼 올린 물이라고 쓰여 있다. 깊은 지하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몸에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운전에 지친 몸을 39도 온천수에 담근다. 좋다. 무엇을 더 원할 것인가. 온천장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어보면 영어가 아니다. 동유럽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국말도 들린다. 한국말로 인사를 하니 무척 반가워한다. 심지어는 저녁까지 초대한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모리는 지난번에 온 적이 있다. 따라서 관광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도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시간을 보낸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시드니에서 왔다고 한다. 열흘 묵으면서 수영과 온천욕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관광보다는 온천욕을 목적으로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관광지 없는 작은 동네에서 바라본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 해 노인 연금을 받아서일까. 무위도식(?)하는 은퇴한 사람으로 넘쳐나는 온천장이다. 무위도식,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의미 있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의미 있는 삶이 있을까. 어느 사상가의 주장처럼 의미 있는 무엇을 한다는 사람들이,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만들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는 전쟁까지 일으키면서.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삶을 가꾸어 가려고 한다. 타인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난 나만의 삶을.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26/10/2023
시골 엽서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1879년부터 바다를 지켜왔다는 등대한국 사람은 물론 동양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동네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시골에 있는 집이라 대지가 넓고 집도 크다. 혼자 지내기에는 정원 가꾸는 것을 비롯해 할 일이 많다. 따라서 작은 집으로 이사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우체통에서 발견한 복덕방 전단을 보고 연락해 보았다. 그런데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 달도 걸리지 않아 집이 팔린 것이다. 이사 갈 곳을 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캐러밴이 있기 때문이다. 호주를 둘러볼 기회가 주어졌다고 마음을 토닥여 본다. 동네 사람들과 떠들썩한 파티도 두어 번 치렀다. 드디어 동네를 떠나는 날이다. 나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집을 나선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일단 골드 코스트(Gold Coast)로 향한다. 골드 코스트에 인터넷으로 알아본 집이 있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야영장에 도착했다. 이사 준비에 쉴 틈 없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저녁에는 낯선 동네를 걸으며 새로 펼쳐질 삶에 대해 생각도 해본다. 피곤해서일까 아니면 큰일을 끝내서인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까만 바위가 특이한 모양으로 줄지어 있다.다음 날은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던 집을 보러 나선다. 마음에 든다. 그러나 아직도 공사 중이다. 얼마간 호주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시설 좋은 야영장에서 밀린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낸다. 여행을 위해 자동차 서비스도 받았다.오늘은 주변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걷기에 좋은 날이다. 핑갈 헤드(Fingal Head)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바다 깊숙이 길게 뻗어 있는 반도가 인상적이기 때문이다.내비게이션에 의지해 목적지로 향한다. 바다를 향해 도도히 흐르는 강(Tweed River)을 건너 핑갈 헤드에 들어섰다. 왼쪽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바다가 넘실거리는 1차선 도로다.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들어가 본다. 도로 끝에 도착하니 작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끝자락에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니 등대가 있다. 귀엽게 보이는 작은 등대다. 등대 앞에는 1879년에 완공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나무.등대를 지나 바다를 향해 조금 걸으니 예상하지 않았던 풍경이 나온다.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바위다. 오래전 제주도에서 중국 관광객 틈에 끼어 보았던 주상절리가 떠오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붐비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상하는 자세로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여인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파도와 씨름하며 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낭떠러지 끝까지 걸어가 검게 타버린 바위를 바라본다. 용암과 바다가 충돌하여 만들어 낸 걸작품, 2,300년 전에 빚은 작품이라고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용암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육중한 바위가 물처럼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등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다. 넘실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다. 바다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책로 끝자락에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인상적이다. 나무 뒤로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한 폭의 그림이다. 크고 작은 도마뱀이 산책로 근처에서 서식하고 있다.검은 바위 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가 마주하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조금 전에 보았던, 명상하는 여인처럼 생각을 내려놓고 들숨과 날숨을 보듬어 보기도 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빠져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가슴을 파고드는 신선한 바람과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다, 근심 걱정이 있을 수 없다. 행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라는 것은 과거 혹은 미래에만 존재하다고 하는 성인의 말이 떠오른다. 현실과 무관한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는 주장이다.다음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무척 더운 날이다. 변덕스러운 날씨다. 수없이 들어온   ‘이상기온’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한다. 야영장에서 가까운 해변을 찾아 나섰다. 해변을 따라 운전해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웅장한 탑이 있는 전망대(Point Danger)에 도착했다. 다행히 주차장에 한자리가 비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특이한 건물이 관광객의 시선을 받고 있다.주위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전망 좋은 관광지다. 그래서일까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 중국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하는 동양인 남녀도 있다. 신혼여행 중인가 보다. 꾸밈없는 해맑은 웃음이 보기에 좋다. 주위를 걷는데 특이한 주택이 앞을 가린다. 언덕 위에 위치한 우주선처럼 보이는 집이다. 이렇게 특이한 모양의 집을 지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집에 거주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올라온다. 사회가 만든 틀에 갇혀 지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졸부’는 아닐 것이다.전망대를 벗어나 해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다. 백사장은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으로 붐빈다. 산책로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도마뱀이 많다. 도마뱀이 길을 가로 막기도 한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도마뱀도 있다. 먹이를 구하는 도마뱀일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이 호주에는 차고 넘친다.파도를 막아주는 아늑한 백사장. 멀리 골드 코스트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바다 건너 멀리 골드 코스트의 수많은 빌딩이 보인다.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는 산책로다. 오래 걸었다. 끝까지 걷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선다. 반나절을 걸었지만 풍광이 아름다워서일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호주의 동해안은 어느 곳을 가도 풍광이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해안을 따라 우거진 산림이 전개된다. 내가 살던 동네도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광을 가지고 있다.  하루 더 지나면 이곳을 떠난다.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남해안으로 갈 계획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바다와 푸른 숲은 포기해야 한다. 큰 쇼핑센터도 없을 것이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내륙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른 풍광이 여행을 살찌울 것이다. 바다는 서핑을 즐기는 남녀로 붐빈다.사람은 한곳에 영원히 안주할 수 없다. 좋은 곳이라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끝이 있듯이. 떠남이 있었기에 나에게도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삶을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마주한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12/10/2023
시골 엽서

사흘 배낚시 & 사흘 골프의 ‘골낚 여행’산책로에서 마주한 일출.시드니에서 자동차로 3시간 떨어진 북쪽 해안가에 살고 있다. 한국 사람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다. 혼자의 삶이다. 따라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에서 강의도 찾아 듣는다. 지금은 나름대로 혼자의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지인들은 가까운 곳에서 함께 지낼 것을 권한다.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오랜만에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골프와 낚시하며 지내기로 한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골낚(골프와 낚시)’의 여행이다. 목적지는 사우스 웨스트 록스(South West Rocks)라는 곳이다. 집에서 150km 정도 북쪽에 있는 동네다. 동해를 끼고 있는 동네에 서쪽(West)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뉴질랜드 같은 동쪽에 있는 나라에서 보면 서쪽이겠지만. 동서남북이라는 것은 바라보는 입장에서 달라지는 것 아닌가.떠나는 날이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오락가락한다. 함께 가기로 한 이웃 자동차에 골프채와 가방 하나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운전하지 않아 좋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날씨가 궂다고 포기할 수 없다. 두어 달 전에 예약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지나간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멋지다. 수없이 운전하며 다니는 낯익은 고속도로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아 바라보는 차창 밖 경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운전자가 아닌 탑승객의 시점에서 경치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삶도 시점을 달리해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숙소에 도착했다. 집을 떠난 남자들의 모임이다. 숙소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는 클럽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이 되려면 멀었지만, 일찌감치 술잔을 기울인다. 아내로부터 떠난 기쁨(?)일까.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시끌벅적 말이 많다. 낮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본다. 내일 새벽 낚싯배를 타야 하는 일정에도 아랑곳 없이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산책로 주변에 있는 캐러밴 파크는 집 떠난 사람들로 붐빈다.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 이른 아침에 선착장으로 향한다. 일행을 태운 고기잡이배는 새벽 바다 물결을 헤치며 떠난다. 대양으로 나가는 길목은 파도가 심하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걸쳐야만 한다. 파도가 심하다. ‘일엽편주(一葉片舟)’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낚싯배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느낌이다.대양에 들어서니 파도가 조금은 잠잠해졌다. 갈매기 대여섯 마리가 배를 따라온다. 먹을 것을 찾아 따라오는 갈매기들이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주위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더 높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경주하던 조나단이라는 갈매기.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조나단 같은 갈매기는 고깃배 뒤를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진정한 나만의 삶이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삶에 휩쓸려 고깃배를 따라다니던 세월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배는 두어 시간 이상 대양으로 나와 시동을 끈다. 낚시가 시작된 것이다. 파도 때문에 배가 심하게 기우뚱거린다.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상태에서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낚시를 시작한다. 묵직한 추가 달린 낚싯줄에 미끼를 달고 바다에 드리운다. 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깊은 바다다. 수심이 70여 미터라고 한다.추가 바닥에 닿았다. 금방 묵직한 입질이 온다. 힘겹게 낚싯줄을 감는다. 큰 고기가 물려서일까, 낚싯줄 끌어 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걸려 힘들게 올리니 팔뚝 크기의 고기가 두 마리나 걸려 있다.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잡은 고기를 들어 보이며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료.배낚시에 몰두하는 강태공들.낚싯대를 넣기가 무섭게 고기는 계속 올라온다. 옆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다. 해변에서 물고기와 신경전을 펼치며 하는 낚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세월 낚을 여유가 없다. 고기가 뜸하다 싶으면 근처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반복하며 낚시한다. 돌아갈 시간이다. 서너 시간 고기와 씨름하느라 힘들기도 하다. 항구에 돌아와 고기를 손질한다. 큼지막한 고기가 셀 수없이 많다. 통째로 가지고 가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대충 살만 발려내고 몸통은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펠리컨과 갈매기에게 던져준다. 펠리컨들도 배가 불러서일까. 살이 많은 생선만 받아먹고 껍질 같은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배부른 펠리컨들이다.다음날도 동녘이 밝기 전에 항구에 나가 배를 탄다. 오늘은 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다. 몸이 서늘하기도 하다. 비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이런 일을 예상한 모양이다. 비옷으로 단단히 중무장하고 있다. 낚시하는데 파도만 높지 않으면 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비 올 것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서 걱정이다. 어제와 같이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대양을 달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배를 따라 돌고래 서너 마리가 따라온다. 배에 가까이 붙어 배와 달리기를 하는 돌고래들이다. 파도를 헤치며 질주하는 돌고래의 모습을 코앞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돌고래의 선하게 보이는 눈이 인상적이다.한참을 달려 낚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제와는 딴판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세월을 낚는 시간을 갖는다.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낚싯줄을 드리운다. 그러나 열 마리 조금 넘는 물고기에 만족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고깃배 타는 날이다. 오늘은 지난 이틀보다 파도가 더 심하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날씨도 춥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추위를 견디며 낚시한다. 조금 지친다. 극한 직업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어부의 삶이 떠오를 정도다. 어부는 돈을 벌기 위해서, 나는 돈을 쓰면서 힘든 일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고달프지만, 돈을 쓰며 하는 일에는 즐거움이 가미되어 있다. 동네 중심가에 조성된 산책로.바위로 둘러싸인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해변.삼일간의 낚시는 끝났다. 오늘부터는 골프 치며 지낸다. 새벽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침에 산책로를 혼자 걸어본다.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다. 유난히 멋진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수평선 끝자락에 머뭇거리고 있는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다. 외로움이란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거절당한 소외’라는 말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번 여행은 하루 종일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외로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고독함은 마음 한쪽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실,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각자 삶의 주인은 혼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앞에 서는 날 다른 사람과 동행할 수 없지 않은가.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혼자의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고독한 삶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1/06/2023
시골 엽서

- 글로스터 방문기(1) 소 떼가 도로를 막고 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 가벼운 옷을 입고 지냈는데, 긴팔을 찾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무의식 속에 한국 겨울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일까, 추운 곳을 찾아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추위를 맞볼 수 있는 지역은 근처에 없다.  문득 우리 집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글로스터(Gloucester)라는 동네가 떠오른다. 가까운 곳이라 몇 번 가 보았다. 겨울이면 눈이 내리기도 하는 배링턴 탑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 입구에 있는 작은 동네다. 인구는 2,000명을 조금 넘는 정도다. 추위를 맛볼 수는 없어도 서늘한 날씨는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걸을 만한 장소는 글로스터 관광안내소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요즈음 구름이 오락가락하며 비를 뿌리는 날씨의 연속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비가 올 확률이 낮다.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산으로 들어가면 비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와도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비구름이 오락가락한다. 산속의 해는 일찍 떨어진다는 오래전 소설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서둘러 물 한 병 챙기고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골길에 들어선다.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계곡 사이를 달린다. 창문을 열었다. 적당하게 싸늘하고 신선한 바람이 온몸을 쓰다듬는다. 녹색으로 뒤덮인 산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을 나서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배링턴 탑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 도로변에 있는 전망대에서 사진도 찍으며 글로스터에 도착했다. 여행 안내소를 먼저 찾았다. 산책(Walk)이라고 쓰인 팸플릿이 많다. 팸플릿 앞에서 서성거리는 데 직원이 도움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걷기 좋은 곳을 찾는다는 나의 말을 듣고 지도를 보여주며 갈만한 곳을 알려준다. 직원이 무척 친절하다. 한마디 질문하면 서너 개의 팸플릿을 가지고 와서 설명한다. 서비스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왜 이렇게 친절한가, 손님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원의 조언대로 카페에서 점심을 챙겨가기로 했다.카페에서 신문을 보며 아침을 기다리는 노부부.가게와 카페가 줄지어 있는 동네 한복판은 평일 아침이지만 활기에 넘친다.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주위를 기웃거린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그룹이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삼삼오오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 나누는 동네 사람도 많다. 식탁에 앉아 있는 노부부가 인상적이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와 빨간 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애완견을 데리고 주문한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시골에서 큰 욕심 없이 세월을 보낸 삶이 엿보인다.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여행 안내소에서 추천한 공원(Copeland Tops)으로 향한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할 장소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다. 관광버스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 주변에 주차하고 공원에 들어선다.  이곳에는 두 개의 산책로가 있다. 짧은 산책로는 2시간, 긴 산책로는 4시간 걸린다는 안내판이 있다. 짧은 산책로를 택했다. 산책로 이름이 흥미롭다. 감추어진 보물(The Hidden Treasure Loop Track)이라는 이름이다. 무슨 보물일까, 추측했던 대로 이곳에는 금광이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금광을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맞지 않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무성한 숲속을 나 홀로 걷는다.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작은 폭포들이 앙증맞게 물을 떨어뜨리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한여름이라면 물에 발을 담그며 지내기에 최적의 장소다. 아주 오래전 자주 다녔던 도봉산 계곡을 떠오르게 한다. 글로스터(Glocester)를 찾아가는 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지금은 폐쇄된 금광의 모습.얼마나 걸었을까, 금광이 보인다. 지금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금광이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1877년에 금광이 들어섰다. 규모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서 269kg의 금을 채굴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금을 채굴했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금광을 벗어나 조금 걸으니 아이들과 함께 온 그룹이 보인다. 뉴캐슬(New Castle)에서 왔다는 모녀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면서 산책을 끝냈다.다음 목적지는 배링턴 탑 국립공원에 있는 글로스터 톱스(Gloucester Tops)라는 곳이다. 한 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먼 길이다. 서둘러 떠난다. 가는 길은 포장이 잘되어 있다. 그러나 급경사와 커브가 심하다. 높은 산이 많기 때문이다. 산을 넘어가는 도로에서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이 멋지다. 드라이브 코스로 추천하고 싶은 아름다운 도로(Scone Road)다.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도로변에서 풀을 뜯는 소가 많다. 자동차를 많이 보아서일까, 지나가는 자동차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강물을 건너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물을 건널 수 있게 콘크리트 도로를 조성했을 뿐이다. 도로 위로 강물은 흘러가고 있다. 강수량이 많으면 자동차도 다닐 수 없는 도로다. 이번에도 강을 건너야 하는 도로를 만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로에 소가 떼를 지어 있는 것이다. 소들은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시 소가 달려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난감해하고 있는데 뒤에 자동차가 왔다. 작업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창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니 가까이 가면 소가 비켜줄 것이라고 한다.  소 떼를 향해 천천히 돌진(?)했다. 조금 비키는 것 같던 소가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난감해하고 있는 나의 모양을 본 뒷사람이 자동차를 한쪽으로 비킨다.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신호다. 후진하여 뒤에 있는 자동차를 먼저 가게 했다. 뒤에 있던 자동차는 거침없이 소를 향해 운전한다. 비키지 않는 소를 조금씩 건드리기도 하면서 다리를 건넌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소 떼를 지나 그림 같은 초원을 가로지른다. 가파른 비포장 산길을 한참 운전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산책로가 10개 이상 있다. 그러나 늦은 시간이다. 폭포가 있다는 산책로(Glocester Falls Track) 하나만 둘러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두 대의 자동차만 덩그러니 주차해 있다. 늦은 시간이어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산속이라 날씨도 약간 서늘하다. 점퍼를 걸치고 한 시간 걸린다는 산책로를 걷는다. 조금 들어서니 전망대가 있다. 수많은 산이 지는 햇빛을 받으며 출렁거린다. 시야가 넓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음까지도 넓게 열어준다. 거대하지 않지만,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계단식 폭포. 산책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큰 폭포는 아니다. 작은 폭포들이 계단식으로 떨어지며 나름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폭포까지 내려가 보았다. 청년이 삼발이에 큼지막한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폭포를 담고 있다. 상류에서는 젊은 여자 혼자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 같이 온 남녀일 것이다. 간단히 손 인사를 주고받은 후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는 작고 오래된 자동차 한 대만 주차해 있다. 폭포에서 만났던 청춘남녀가 타고 온 자동차일 것이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것이다. 오늘 숙박은 어디서 할까. 은근히 걱정된다. 그러나 인사를 나누던 해맑은 표정이 떠오른다. 걱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풍경과 하나 되어 현재의 삶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는 청년은 이미 노인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고갱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갱은 일생을 청년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고갱의 삶을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인의 삶이 아닌, 청년의 삶을 꿈꾸어 본다. 어리석은 삶을 꿈꾸어 본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2/05/2023
시골 엽서

200m 높이의 ‘엘렌보로 폭포’를 보면서..산속 깊은 계곡에 번지수가 적혀있는 우체함어젯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심하게 몰아쳤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베란다에 나가니 피어오르는 운무(雲霧) 위로 얼굴을 내민 산봉우리들이 반긴다. 비가 내린 덕분에 시야도 맑다. 오래전에 가 보았던 엘렌보로 폭포(Ellenborough Falls)가 생각난다. 호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폭포다. 지금 바라보는 산봉우리 어딘가에 숨어 물을 떨어뜨리고 있을 것이다. 비가 왔으니 볼만할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가기로 했다.폭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한 시간 조금 더 운전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비포장도로를 운전해야 한다. 많은 비가 내렸으니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하늘에는 아직도 비구름이 오락가락한다. 하루 더 지내고 떠나기로 마음을 바꾼다. 은퇴한 삶 아닌가. 조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가고 싶은 날 떠나면 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호주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특별한 준비 없이 폭포로 향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호주 특유의 시골 풍경이 차창 밖에 펼쳐진다. 초원과 숲이 어우러져 있는 작은 산등성이가 계속된다. 끝없이 넓은 목초에서 한가히 노니는 수많은 소가 수채화 그림을 연상하게 만든다. 집 몇 채가 오손도손 모여있는 작은 동네를 지나친다. 잘 정돈된 자그마한 공동묘지도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도로변에 있는 언덕에 잠깐 주차했다. 주위 풍경이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매닝강(Manning River)이 굽이치며 흘러간다. 푸른 초원으로 뒤덮인 넓은 들판 구석에 서너 마리의 가축이 한가로이 서성거리고 있다. 이러한 경치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높은 언덕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저택이 있다. 저택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을 것이다. ‘경치가 밥 먹여 주냐’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지내면 마음도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인의 주장이 떠오른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시야가 짧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도 좁을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다.폭포에 가까워지면서 도로는 숲속으로 들어선다. 도로 이름이 바뀌지 않는 외길이다. 따라서 가끔 보이는 집이지만, 번지수가 천 단위를 넘어선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우편함에 2934라는 숫자가 보인다. 이렇게 외진 곳을 삶의 터전으로 택한 사람과 술 한 잔 나누고 싶다. 외로운 삶을 어떻게 이겨내며 지낼까. 아니 외로움을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외로움을 친구 삼아 지내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깊은 산속에 터전을 잡은 사람이 떠오른다.  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하니 현수막과 함께 크고 작은 텐트들이 보인다.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시위 현장이다. 코알라를 비롯해 야생 동물이 사는 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알라 사진을 걸어 놓은 텐트도 보인다. 인간의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개발이 아니라, 불편해도 자연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오래전 보았던 공익 광고가 생각난다.산림 개발에 반대하며 농성하는 사람들폭포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다. 젊은 남녀가 캠핑카를 열어 놓고 늦은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곳에서 식당을 개업하느냐고 묻는 나의 농담을 웃음으로 받으며 멋진 하루 보내라고 인사한다. 주차장 근처에 마련된 탁자에는 화려한 탁자 보를 펼쳐 놓고 노부부가 빵과 커피를 즐기고 있다. 노부부가 타고 온 캠핑카에는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번호판이 붙어 있다. 이곳까지 오려면 수천 킬로미터를 운전했을 것이다. 호주 전역을 여행하며 삶의 끝자락을 함께하는 부부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주차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골짜기 아래로 물 폭탄을 퍼붓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판에는 폭포 높이가 200m라고 적혀있다. 폭포도 장관이지만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낭떠러지를 타고 떨어진 물은 계곡 사이를 흘러가고 있다. 긴 여정을 거쳐 바다에 도착할 것이다.아침에 베란다에서 마주한 운무가 낮게 깔린 풍경산책로를 따라 폭포 아래로 내려간다. 가파른 길이지만 잘 정돈되어 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산책로에는 물에 젖은 낙엽도 있다. 미끄러지기 쉽다.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이름 모를 버섯들이 보인다. 물기를 듬뿍 머금은 싱싱한 나뭇잎이 보기에 좋다. 공기도 신선하다. 울창한 숲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폭포폭포가 떨어지는 아래까지 내려왔다. 아래에서 올려 보는 폭포는 더 웅장하다. 물 떨어지는 소리도 장관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청년이 운동화를 벗어들고 무엇인가 찾고 있다. 거머리가 있다고 한다. 나도 자세히 보니 작은 거머리 한 마리가 청바지에 붙어 머리를 쳐들고 있다. 징그러운 거머리다. 그러나 거머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 나름의 생존방식 아닌가. 폭포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거머리 때문에 취소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간다.가파른 산책로를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중간에 숨을 돌리기도 하면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또 다른 산책로를 찾았다.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한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숲에서 내뿜는 촉촉한 향기를 가슴 깊이 마시며 걷는다. 걷기 명상이라고 하던가,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흙내음도 몸으로 느끼려고 정신을 집중하며 천천히 걷는다.산책로에서 마주친 개미집산책로 끝나는 곳에 설치한 전망대에 올라 폭포를 마주한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폭포가 인상적이다. 다른 폭포를 보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모두 보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망대를 떠나 돌아가는데 커다란 개미집이 눈에 들어온다. 퀸즐랜드 내륙에서 수없이 보았던 개미집과 다름없다. 더운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개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장기가 올라온다. 주차장에 있는 카페를 찾았으나 영업하지 않는다. 영업시간도 적혀있지 않았다. 주인 마음대로 장사하고 싶을 때 문을 여는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는 엿장사 마음대로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초원에 있는 젖소들의 한가한 모습카페를 찾아 폭포 입구에 있는 동네(Elands)에 가 보았다. 작은 동네다. 그래도 초등학교는 있다. 우체국도 보인다. 그러나 카페는 없다. 가지고 온 음료수와 초콜릿으로 대충 때울 수밖에 없다.작은 동네를 둘러본다. 복덕방에서 세워놓은 큰 간판이 보인다. 수많은 산이 파도처럼 널려있는 경치가 내려 보이는 집이다. 이러한 집에 살면 신선이 된 기분일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까. 몸이 아프면 어떻게 대처할까. 외롭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현실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작은 동네이기에 어려움이 다가와도 함께 헤쳐 나갈 것이다. 걱정은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이라는 것은 현재보다는 이미 지나간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다. 내일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지금을 만끽한다. 멋진 풍광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으며 주어진 시간에 전념하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6/04/2023
시골 엽서

근처 동네 ‘월카(Walcha)’ 나들이 전화 인터넷 안되는 곳.. 호적한 사색의 시간 즐겨숲에는 수많은 고목이 자라고 있다. 부담 없이 이곳저곳 끌고 갈 수 있는 자그마한 캐러밴을 가지고 있다. 애지중지 집에만 모셔둘 수 없다. 애완견을 핑계로 산책하는 사람처럼, 캐러밴을 핑계로 집을 나서게 된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문득 허블우주망원경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엉뚱한 천문학자의 제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에 망원경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뜻밖에 수천 개의 은하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다.나에게도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동안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위주로 다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혹시 아는가. 나만의 볼거리를 만날 수도 있을지. 가을의 문턱이라고 할 수 있는 3월이지만 아직도 더운 날씨다. 많은 사람은 시원한 바다를 찾아 나선다. 나는 사람들 발길이 뜸한 산속에 있는 작은 야영장을 목적지로 정했다. 지금까지는 시설 좋은 야영장에서 주로 지냈다. 그러나 이번에 가는 야영장은 빗물을 받아 마실 정도로 외진 곳이다.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일단 식수를 자동차에 싣는다. 물이 맞지 않으면 고생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생필품도 필요 이상으로 챙겼다. 근처에 있는 동네 월카(Walcha)에서도 많이 떨어진 장소다. (영어 단어만 보면 ‘왈차’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 가는 데 사람들은 월카라고 발음한다.) 집을 나선다. 길에 비포장 산길도 있다고 한다. 조금은 걱정된다. 그러나 비만 오지 않으면 다닐 수 있는 도로라고 들었다. 자주 다니던 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 이상 운전한 후 내륙으로 들어가는 국도로 핸들을 꺾는다. 높지 않은 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풍광 좋은 시골 도로가 계속된다. 차창 밖으로 들판에 물을 주는 거대한 기계(?)가 보인다. 무슨 농사를 짓는 것일까.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오지에서 예상 밖이다. 조금 더 운전하니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도 보인다. 국도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들어선다. 작은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교회임을 직감할 수 있다. 정원이 잘 꾸며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염려했던 비포장도로를 만났다. 처음에는 갈만했으나 숲으로 들어서면서 도로가 험해지기 시작한다. 가끔 자동차에서 내려 도로를 살펴보아야 할 정도로 길이 험하다.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캐러밴을 끌고 가기에는 쉽지 않은 도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운전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혼자 독차지한 야영장. 인기척이 없으면 작은 캥거루들이 뛰어노는 잔디밭이다.야영장에 들어서자 주인이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부부가 살면서 야영장과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시드니에 살다가 20여 년 전에 산이 좋아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개성 있는 삶을 선택한 부부다. 예상했던 대로 손님은 거의 없다. 숙박시설에서 지내는 부부가 손님의 전부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고의 장소다.늦은 오후가 되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너른 야영장 잔디에서 포도주잔을 앞에 놓고 무념(無念)의 시간을 보낸다. 파란 하늘이지만 검은 구름이 간간이 지나가며 비를 뿌리기도 한다. 검은 구름이 지나간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수많은 새가 날갯짓하는 모습이다. 하늘에 시선을 자주 보냈다면 집에서 볼 수도 있는 구름이다. 그러나 일상에 파묻혀 지내는 평상시에는 하늘 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산속에서 바라보며 황홀감에 젖었던 깃털 구름.전화와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 격리된 곳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다. 하늘에 시선을 주고, 숲과 하나 되어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난다. 현재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부러움 없는 삶이란 이런 것인가, 야영장을 운영하는 부부의 해맑은 표정이 떠오른다.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잠자리 들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주위는 이미 어둠에 잠겼다. 일찌감치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는다. 새들이 적막을 깨고 있다. 집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새소리가 대부분이다.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린다.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이다. 밖으로 나오니 인기척에 놀란 작은 캥거루들이 숲으로 도망가기에 바쁘다. 왈라비(wallaby)라고 불리는 작은 캥거루보다 더 작은, 토끼보다 약간 큰 캥거루 떼가 밤이면 잔디에 나와 지내는 것이다. 새벽을 즐기던 캥거루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수량이 적어 볼품없는 작은 폭포.오늘은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라고 한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로 들어선다. 길이 가파르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한 걸음씩 내디딘다. 폭포가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가니 작은 계곡이 나온다. 폭포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은 계곡이다. 그래도 물이 많이 흐르면 나름대로 멋진 풍경을 자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산책로에서 만난 희귀한 버섯.폭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는데 특이한 돌멩이로 보이는 것이 길옆에 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돌멩이가 아니다. 버섯이다. 이런 모양의 버섯을 본 기억이 없다. 독버섯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손쉽게 구하지 못하는 귀중한 버섯일 수도 있겠다. 산책로 주변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고사리 철에 오면 손쉽게 한 바구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나무에 둥지를 튼 이끼도 눈길을 끈다. 초록색이 유난히 선명한 이끼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니 건너편에서 지내던 부부가 짐을 꾸린다. 떠난다고 한다. 잠깐 인사만 나눈 사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지금부터 야영장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호강을 누리게 된 것이다.다음 날도 산책로를 걸었다. 주위를 압도하는 높은 고목이 눈에 들어온다. 큼지막한 몸통에 커다란 옹이(상처)가 있다. 주위에 있는 고목들도 자세히 보니 거의 모든 나무가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커다란 가지가 잘려 나간 상처가 보인다. 밑동이 크게 손상된 나무도 있다. 그러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지금은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과시하는 고목들이다. 하긴 상처 없는 삶이 있을까. 모든 삶은 나름의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주는 기계시간이 남아돈다. 책을 읽는다. 음악도 듣는다. 의자에 앉아 멍때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촌음(寸陰)도 아껴 쓰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지낸 학창 시절이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라면 목표를 세우고 바쁘게 지내야만 해야 하는 것일까. 주어진 하루하루를 화초 가꾸듯 보듬어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삶으로 채워나가는.이곳에서는 식사도 제공한다고 한다. 떠나기 전날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식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 부부와 함께 앉아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자식은 딸만 한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딸이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아무런 기대 없이 찾아온 야영장이다. 기대가 없어서일까,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수도사를 뜻하는 몽크(Monk)의 어원은 ‘홀로’라는 그리스어(monachos)에서 유래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홀로 지냈다. 수도사 아닌 수도사 생활하며 며칠 지낸 것이다. 그 덕분에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는 기분이 든다. 허블우주망원경처럼 새로운 은하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나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수도사처럼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신비스러운 존재에게…이강진 (자유기고가, 전 호주 연방 공무원) (kanglee699@gmail.com)

09/03/2023
시골 엽서

방파제를 걸으며 바라본 석양올해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불꽃놀이 보며 연말을 보낸 것이 어제 같은데, 세월 빠르다는 판에 박힌 말이 저절로 나온다. 새해가 되었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 없는 은퇴 생활이다. 소소한 집안일을 한다. 동네 바닷가를 걷는다. 책도 읽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도 많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달력 한 장이 넘어가고 2월로 접어들었다.일상적인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집을 떠나 지내는 것이다. 가고 싶은 목적지를 찾아본다. 집에서 두어 시간 운전하면 도착할 수 있는 남부카 헤드(Nambucca Heads)로 정했다. 가까운 곳이라 몇 번 들렸던 동네다. 바다가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숙박을 한 적은 없다.떠들썩한 휴가철이 지나서일까.. 야영장(Caravan Park)을 쉽게 예약했다. 위치와 시설이 좋은 야영장이다. 따라서 다른 야영장에 비해 가격은 비싸다. 한 사람이라고 해도 두 사람 지내는 것과 같은 가격이다. 혼자 지내는 사람을 위한 가격은 왜 없는 것일까. 숙소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짐을 챙긴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챙겨야 할 물건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외진 동네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내는 짧은 여행이다. 혹시 잊고 온 물건이 있으면 동네에서 구입할 생각으로 대충 짐을 꾸려 자동차에 싣는다. 캐러밴을 자동차에 연결하고 길을 떠난다. 한여름이 지난 2월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덥다. 에어컨을 켜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도로에 캐러밴을 끌고 가는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문득 호주에는 놀러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시간과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여행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즐기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 걱정은 하지 않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캐러밴이 야영장을 차지하고 있다.차박의 삶을 즐기는 여행객들의 전형적인 밴 자동차파도 소리 들리는 해안에 자리 잡은 야영장에 도착했다. 휴가철이 지났다고 하지만 빈자리가 많지 않다. 자리를 배정받고 캐러밴을 주차하는데 건너편에 있던 사람이 와서 주차를 도와준다. 혼자 캐러밴 주차하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고맙다.캐러밴을 주차하고 물건 정리하는데 잊고 온 물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가림막을 치는 데 필요한 망치가 들어 있는 연장통을 싣지 않았다. 야영장에서는 필수품에 가까운 야외용 의자도 가지고 오는 것을 잊었다.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요즈음 깜빡할 때가 많다. 망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빌려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자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남는다.호주에서 가장 길다는 바다 생물들을 조각한 작품방파제 바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흔적을 남겨 놓았다더위도 식힐 겸 바닷가 방파제를 걷는다. 파도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방파제에 길게 늘어진 바위들은 다양한 그림과 글로 치장되어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다. 가족 이름과 함께 1983년에 이곳에 왔다는 글이 고래 그림과 함께 쓰여 있다. 핑크 색을 듬뿍 담은 바위에는 남자와 여자 이름이 사랑스럽게 쓰여 있다. 한국 사람 이름도 2022년 12월이라는 날짜와 함께 쓰여 있다.저녁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갈만한 곳을 알아본다. 동네 정보가 나온다. 인구는 7,000여 명 정도다. 남부카(Nambucca)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해변과 멋진 바다 풍경이 동네 소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다음 날 아침 자동차로 작은 동네를 둘러본다. 전망대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찾아간다. 서너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동네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취색을 내뿜는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모래 둔덕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경치다.풍경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큼지막한 카메라를 든 중년 남자가 다가온다. 호주를 여행하며 도큐먼트를 촬영한다고 한다.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카메라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동영상을 주로 찍는 카메라다. 호주 전역을 관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부럽다.전망대를 떠나 해안 도로를 따라 운전한다. 한적한 해변에 도착하니 밴(봉고차)이 주차해 있다.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떠돌아다니는 여행객이 사용하는 자동차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문에 비치타월이 걸려있고 어수선한 잠자리가 있는 내부가 보인다.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방파제 바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흔적을 남겨 놓았다야영장으로 돌아와 늦은 오후를 보낸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떠난 여행이 아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는다. 해가 질 무렵에 어제 걸었던 방파제를 다시 찾았다. 석양을 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더위를 피해서일까, 방파제를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바다 끝에 보이는 산을 넘어간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심호흡하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빠져든다.다음 날 아침은 일찍 일어났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도 없이 혼자 지내는 캐러밴 생활이기에 가능하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방파제를 산책한다. 해가 뜨기 전이지만 많은 사람이 걷는다. 큼지막한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 넣고 대어를 기다리는 강태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방파제 끝까지 걸으니 바다에서 엷은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해가 떠오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핸드폰에 일출을 담으려고 분주하다.게으름 피우며 아침을 보내고 동네 중심가를 찾았다. 가게가 줄지어 있는 중심가에는 사람이 제법 많다. 카페에는 여느 동네와 다름없이 브런치(brunch)를 즐기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시선을 끄는 것은 경찰서를 둘러싼 담벼락에 조성된 모자이크다. 돌고래, 문어 등 바다 생물들을 섬세하게 타일로 조각해 놓았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작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호주에서 가장 긴 조각품이라고 한다.점심시간이다. 호주를 여행하며 가장 아쉬운 점은 한국 같은 맛집이 없다는 점이다. 식사하기에 무난한 재향군인회가 운영하는 클럽(RSL Club)을 찾았다. 남부카 강(Nambucca River) 옆에 위치한 현대식 건물이다. 식당은 경치 좋은 3층에 있다. 분위기가 좋다. 강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4인용 식탁을 차지했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라고 구석진 곳에서만 식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당당하게 맥주 한 잔과 스테이크 햄버거를 앞에 놓고 풍경을 즐긴다.남부카 헤드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길이는 3.5km 정도 되는 적당한 거리다. 하루 한 번 이상 산책로를 걸으며 시간을 보낸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큼지막한 물고기 떼를 만나기도 한다. 물안경 쓰고 바다 경치를 즐기는 수영객, 카누를 저으며 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그리고 수영하는 그룹도 볼 수 있다.방파제를 걸으며 바라보는 바다 풍경과 파도 소리도 일품이다. 낚싯대를 펼쳐 놓은 강태공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방파제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먼저 좋은 곳으로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많은 글과 사진이다. 태어난 날짜를 보면 나와 비슷한 나이도 많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다시 확인한다.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언젠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 라틴어는 전혀 모르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구가 떠오른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 파티), 현재에 충실하라(카르페 디엠)불편한 캐러밴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메멘토 모리, 아모르 파티, 카르페 디엠을 되새김질하면서.. 

16/02/2023
시골 엽서

아침 일찍 낚시터를 찾은 강태공을 태우고 수상 가옥으로 향하는 보트설악산과 동해안에서 한국 풍경에 흠뻑 젖어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호주에서 원했던 목적을 대부분은 달성했다. 설악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간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등산복 차림의 청년 한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빈 차로 도착한 버스는 두 명의 승객만 달랑 태우고 떠난다. 청년마저도 등산객으로 붐비는 다음 정류장에서 하차한다.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버스가 경사와 커브가 심한 도로를 따라 계속 산을 오른다.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산 풍경이 일품이다. 운전하는 기사도 풍경에 반해서일까. 도로변에 잠시 버스를 세우고 핸드폰에 설악산 풍경을 담는다. 설악산이 명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버스가 산에서 내려와 마을이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승객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서울에 가까워지면서는 버스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 출퇴근과 관계없는 이른 오후지만 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난다. 한가한 시골 생활에 익숙해서일까. 이제는 복잡한 도시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다음날은 친척을 찾아 나섰다. 청주에 사는 친척이다. 오래전 청주에서 지낸 적이 있으나 지금은 그 당시 살던 곳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이 많은 아파트와 자동차로 붐빈다. 친척은 평수가 넓고 분위기도 좋은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복잡한 서울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직장, 아이 교육 등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다음날 친척과 함께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향해 떠난다. 시골길이지만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다. 산을 돌고 돌아 도립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지역 특산물을 풍성하게 진열한 가게가 도로에 줄지어 있다. 한국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오랜 세월을 버텨온 소나무와 정자가 친구가 되어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쾌청한 날씨다. 호주에 살면서 한국에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뉴스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요즈음 쾌청한 가을 하늘이 계속되고 있다. 바늘로 콕 찌르면 비췻빛 물이 쏟아질 것 같은 한국의 가을 하늘이라는 글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읽었던 글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도립공원 입구에는 전기 자동차가 줄지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야 더 많은 것을 보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호주에서 만났던 젊은 의사가 떠오른다. 한 달 정도 호주 시골길을 걷기로 했다며 민박하는 우리 집을 찾았던 의사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몇 개월씩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유별난 여행객들이다.문경새재 산책로는 걷기 편하게 잘 닦여 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숲속에 조성한 흙길이다. 아스팔트나 인공적으로 조성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흙을 맨발로 밟는 것이 몸에 좋다고 생각해서일까. 신발을 벗어들고 걷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고개를 오른다. 한눈에 보아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오래된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정자 옆에는 온몸을 비틀며 삶을 버텨내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오래된 정자와 소나무가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이다.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떨어지는 아담한 폭포 앞에 잠시 머문다. 한국의 물레방아를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시냇물 옆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음식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오래전 한국에서 살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과거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산을 넘었다고 하는 문경새재 과거길얼마나 걸었을까. ‘문경새재 과거 길’이라 쓰인 바위가 보인다. 과거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렸던 산길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입구에 ‘마당바위’라 불리는 널찍한 바위가 있다. 이곳에 도적들이 숨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덮치기도 했다는 설명서가 있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책로에는 ‘금의환향 길’이라고 쓰인 바위도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 고향에 돌아갈 때도 이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시험에서 성공하지 못한 많은 사람도 이 길을 걸어 고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과거 시험과는 거리가 먼, 하루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보따리를 들고 이 길을 걸은 사람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길이라 불러주어야 하나.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숲속을 걸어 산등성이에 올랐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원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되돌아 내려간다. 어느 정도 걸으니 공원 입구에서 보았던 친환경 전기 자동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전기로 운행하기 때문에 매연 공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나오는 음악은 소음 공해다.한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물레방아도립공원 입구에 다시 도착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사과 축제를 위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요를 가수(?)가 멋들어지게 뽑아내고 있다. 사과는 대구가 주산지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주산지가 문경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비롯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니.오늘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같이했던 지인을 만났다.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은 낚시터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수상 좌대를 예약했다고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며 지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가을로 접어든 산길을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저수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에는 20여 개의 수상 좌대가 있다고 한다.호주에서 바다낚시는 가끔 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붕어 낚시를 해본 적이 있지만 기억이 아물아물하다. 보트를 타고 좌대에 도착했다. 지인은 능숙한 솜씨로 서너 대의 낚싯대를 설치해 준다. 수심에 맞추어 찌도 조절해 주었다. 서너 대의 낚싯대를 걸쳐놓고 붕어를 기다린다. 세월을 낚기 시작하는 것이다.예상대로 나의 낚싯대는 조용하지만, 지인의 낚싯대는 바쁘다. 산속에 둘러싸인 호수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진다. 두툼한 점퍼로 무장해야 할 정도로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하다. 드디어 나도 한 마리 잡아 올렸다. 나에게 걸려 나온 붕어가 제일 크다. 한마리밖에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금메달감이다. 아침에 호수를 바라보니 물안개가 환상적이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현실같지 않은 풍경이다. 낚시보다는 주위 풍경에 매료되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른 아침에 온 낚시꾼을 태운 배가 안개 자욱한 호수위를 그림같이 흘러간다. 한마리밖에 잡지 못했으나 손맛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한국에서 산을 찾으면 호주와 달리 대부분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좋다.한국 방문을 끝내고 비행기에 오른다. 호주에 가면 만날 이웃들이 떠오른다. 바로 옆집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살고 있다. 베란다에서 눈을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아랫집 사람은 폴란드 사람이다. 가끔 만나 식사를 나누는 이웃은 독일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고마운 이웃은 영국 사람이다. 그리고 이웃들은 나를 한국 사람이라고 부른다. 모든 호주 국적을 가진 호주사람이지만.비행기에서 내리면 호주 땅이다. 이웃들은 한국 방문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호주에 살지만 한국 사람으로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5/12/2022
시골 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