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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일찍 아내의 카톡이 울리면 어김없이 둘째 아들이 보낸 것을 알고 정답을 맞추는 초등 학생처럼 동시에 ‘..구나’하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킨다. 요즘 한 살이 채 안된 딸을 보여 주며 화상으로 엄마 아빠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맡은 육아의 한 방편으로 딸의 관심을 끄는 재밋거리로 우리 부부와 보내는 짧은 시간을 여러 패키지 안에 한 아이템으로 포함시켜준 아들의 복합적인 배려가 아침 선물로 배달되고 있는 셈이다. 금방 잠에서 깬 손녀는 아직 침대에서 부시시한 머리에 세수를 하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귀엽기 짝이 없다. 시킨 것도 아닌데 아내는 감독의 지시를 잘 받은 엑스트라 배우처럼 박수도 치고, 잼잼도 하고 소리 높여 까르르 웃기도 한다. 손녀가 조금 웃기만 해도 관중을 만족시킨 희극 배우처럼 자신이 더 신이나서 안하던 온갖 개인기를 발휘한다. 톤은 더 높아지고 액션은 더 커지고 빨라진다. 옆에서 보던 나도 어느새 한 몫을 거들고 옆에서 어깨 넘어 배운 몇가지 재롱을 손녀를 위해 아낌없이 연기하고 갑자기 생각난 멘트도 근본없는 즉흥적인 액션도 현란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갖은 애를 쓰고 딸의 표정에 나타나는 리액션으로 아침의 배역 평가를 받는다. 아이가 별 반응이 없으면 연출자같은 아들은 등을 침대에 기대고 있다가 ‘알았어’ 한마디를 남기고 가차없이 카톡 촬영(?)은 예고 없이 종료된다. 명 연기를 펼치느라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않고 집중하던 두 노역 배우는 머쓱해 하며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뉘이며 잠시 올랐던 흥분을 가라 앉힌다.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맛배기 어묵 맛을 본 것처럼 관중과 감독의 시선에 늘 신경을 곤두 세워야하는 배우들과 연예인들의 어색한 한 순간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도 갑자기 굳어버린 동상같은 멈춘 순간에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피식 웃는다. 귀여운 자식의 딸을 본 기쁨이 일어나기 싫은 차가운 겨울 아침에 활력이 된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자식의 관심이 와 닿기 때문이다. 아침 신문엔, 결혼을 하고 마흔 살이 넘어서도 20대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민 언니라고 불리는 이효리가 예능에서 자신의 새로운 예능 이름을 ‘마오’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예능의 재미를 따라 던진 말이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의도는 쿨하게 말하고 즐겁게 해주려는 애드립 같은 즉흥적인 아이디어 였을텐데, 과거와 달리 인기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생각지 못했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 외교의 이웃으로 부터 오히려 역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아마도 프로그램을 제작한 곳에서는 연출자와 제작관계자들이 어떻게 수습을 할 것인가 방안을 찾고 시청자들의 인기와 관심도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심이 깊을 것이다. 이제 더 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외모와 실력의 탁월함과 성품의 매력에 더해 상대 국가의 문화와 역사의 민감한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의 댓가를 감수해 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인기있는 소설가인 ‘알랑 드 보통’ 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뜻을 “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차이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스탕달의 말도 인용을 했다. 둘 다 주위사람들에 의해 내가 형성되는 것이라는 불가분의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는 말이다. 또 나로 인해 타인이, 또 타인에 의해 나의 진정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말로 설명이 된다. 며칠 전 오랜 만에 다녀 온 시내에는 아직 겨울 낙엽이 뒹굴고 지난 시절 지내 온 기억들이 도시 이곳 저곳에 묻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도시는 여전히 숨쉬고 우리가 함께 살아 가는 이 곳에, 우리의 흔적이 여전히 기억되어 남을 것이다. 나를 배려한 세밀한 관심은 사랑으로 서로에게 기억되고 새 힘을 얻으며 살게 한다. 손녀의 작은 웃음이, 무심한 아들의 멋없는 카톡이, 며칠 전 불쑥 말없이 다가와 쑥스럽게 건네 준 하이스쿨 형준이의 그림이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보낸 이 봄이, 더욱 화사한 이유이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27/08/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정원일 요즘 새로운 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사가 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최근엔 애플이 자율 주행 전기차를 2024년까지 생산 할 것이라는 소식이 실렸다. 작으면서도 고성능의 배터리를 개발하고 눈과 같은 ‘라이더 센서’를 개발해서 아이폰이 나왔을 때처럼 획기적인 차가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종종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테슬라 전기차처럼, 근사한 모양뿐만 아니라 첨단의 기술력이 탑재되고 자율 주행 기능이 가능하다고 하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 팬데믹으로 여행을 다니지 못하니 가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속출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인기 있는 관광 도시를 팩키지화해서 외국을 가지 않아도 머리에 헤드셋을 쓰면 관광지가 화려한 색감을 덧입고 입체로 생생하게 눈에 다가오고 전자 센서가 부착된 조끼만 걸쳐도 바람과 온도, 차량이나 배의 진동이나 풍랑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AI도우미가 등장을 해서 독거 노인의 집에서 청소를 한다든지 문을 열어 주고 심부름도 가능하고 말을 걸면 대답도 하고 제법 감성 담긴 인사도 나눈다고 한다. 누군가, “예쁜 도우미는 더 비싼가?” 라고 질문해서 AI 애기를 하다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짓궂은 상상력이 발동해 “ 비싸도 좋은 도우미 한 두개 사두면 좋겠네..”라고 내심 편한 발상을 덜컥 말했다가 그 자리에 있던 아내들로부터 싸늘한 눈총을 받고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기혼 중년의 다 말못한 아쉬운 표정이 기억난다. 팬데믹에 여러 AI가 등장하며 우리는 더욱 신기한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데믹은 많은 고통이 수반되고 폭발하고 싶은 자유를 제한하지만, 다투듯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현실이 따분하지만 않도록 움츠러든 아쉬움을 기발한 가상 현실로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앞으로 어떤 획기적인 세상이 펼쳐질지 오히려 암울한 시대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마이애미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고글을 끼고 기차에 올라타니 뉴욕에 맨하탄에 킹콩이 나타나 실제 내가 탄 기차를 향해 거대한 팔로 내려치며, 기차가 흔들리고 성난 킹콩의 괴성을 들으며 기차가 끝없이 추락하고 물에 몸이 젖고 빠져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고 혼비백산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때쯤 놀이기구가 멈춰서서, 현실이 아닌 것을 감사하며 소스라친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있다. 어수룩한 호주 촌사람들이 멋 모르고 첨단 도시의 놀이 기구를 탔다가 현실감이 더 했을 것이다. 마치 악몽을 꾸고 깨어난 것처럼 진짜 같았는데 현실은 아닌 것이다. 아마 요즘은 더욱 기술이 발전 했으니, VR 헤드셋을 쓰면 훨씬 더 현실 보다 더 진짜같은 적나라한 가상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형이며 실제 우리가 사는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미래에 다가 올 시대를 그의 물리학 이론에서 발견했던 것일까? 그는 이미 시간과 공간은 제한 있는 것이 아닌 단지 영원에 연결된 과정일 뿐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과거,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지속적인 집착적 환상”이라고 강조한 것은 마치 작년부터 이어진 팬데믹 상황이 단절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은 미래로 연결되고 그리고 영원으로 가는 다리와 같다고 설명하는 것 같다. 결국 영원에 다다라야 실제로 존재하는 영원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무엇이 실재로 남았는 지 분별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작은 일을 큰 일처럼 여기며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며 산다. 지나고 나면 별 일이 아니었는데 괜한 의심을 하고 노여워하고 고심으로 잠을 설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우리 마음 속의 가상 현실은 종종 별의 별 상상과 의구심의 시나리오로 나래를 편다. 집착해도 맘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멋대로 편집한 가상 환상의 왜곡된 결론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을 써 두었나보다. 집착하며 현실을 살아도 결국 맞닥뜨리는 영원에 존재하는 미래 현실은, 마음에 실재가 이루어지는 믿음의 진정성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니까.. 설날에, 혹 미운 시댁 식구를 만나도 결국, 너그러운 마음을 먹기에 달렸다. 가상 현실(VR)은 현재의 집착적 환상을 깨닫게 하는 반면 교사이다.

  11/02/2021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미국 LA에 사는 의사 친구로부터 모처럼 소식이 왔다. 초등학교 때 이민을 떠났던 중고교 시절을 지나서 지금까지 막역하게 지내는 평생의 친구이다. 카톡엔 코로나-19 로 건강한지, 아무 일 없는 지 궁금해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거리두기 완화 정책을 서두른다는 의사답게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볼멘 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경찰의 인종차별적인 과잉진압으로 한 흑인 남성(조지 플로이드)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건이 마치19 82년에 일어났던 LA 폭동 처럼 큰 시위로 번지고 있는 인종 차별 폭동으로 점철된 미국의 현실을 꼬집으며 곧 보고싶다는 말로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한국에서, 호주에서, 유럽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간 조지 플로이드를 추념하는 시위의 원성이 높다. 미국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호주에서도 살다보면 영어로 소통이 잘 안되고 코로나가 창궐하며 아시안들이 괜한 주범인양 억울한 눈총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처음 호주에 와서, 오자 마자 어느 전자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호주 상사가 일을 시키면 도대체 무엇을 시키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무거운 연장 도구(Tool Box)를 쓸데없이 끙끙 거리며 가져오고 한 군데 정리만 하면 될 일을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지 몰라 마루 전체를 청소하는 웃지 못할 고생을 하곤 했었다. 한국에선 화려한 경력과 좋은 직장의 고위 간부로 있었던 과거 이력을 저버리고 몸으로 이런 저런 일을 때워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많은 주변 동포분들의 가슴 아픈 이민자의 설움을 익히 들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언어 때문에,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와 억울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앞선 세대의 고생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갓 호주에 정착하며 도전하는 젊은 세대들이 겪는 수없이 억울한 일들은 어제 오늘의 생소한 일이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절규 했지만 3-4명의 경찰관들이 몸을 눌렀고 그 중 한 명이 무릎으로 8분 이상 목을 짓누른 무자비한 진압으로 그는 결국 기절을 했고 숨을 거두었다. $20 짜리 위조 지폐가 사용됐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극이었다. 건장한 흑인 남성은 그렇게 억울함을 항변하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신음과 마지막 발버둥은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 발을 구르며, 목청을 다해 선처를 호소하던 지나가는 목격자들이 보다못해 전화기로 찍은 생생한 동영상으로 온 세상에 퍼져나갔다. 살려고 버둥대는 아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본 그의 부모, 가족들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흑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인생과 또 자식들의 인생까지 차별과 무시를 겪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이 됐을까? 이 일은 종교의 자유와 인권의 자유를 외치며 죽음을 불사하고, 먼 대양과 대륙을 건너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청교도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비전만큼이나 미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그야말로 아직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이 취임 선언을 하는 21세기에 몇 개 안되는 공인된 기독교 국가이다. 이곳에서 드러나지 않은 억울한 신음이, 억울한 탄식이 보이지 않는 땅으로, 공중으로 쏟아져 나온 수없는 세대의 아픔이 쌓였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을 때 아내 사라의 아이디어로 이집트 여종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그 첫 아들이 열서너살이 됐을 때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라가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 아들에게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이 씨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리라는 특별한 약속을 주었다. 이삭이 젖을 뗄만한 즈음, 돌 같은 잔치 날에, 큰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심하게 놀리며 짖궂게 하는 것을 본 90세 넘은 엄마 사라는 견딜 수가 없어 남편에게 쫓아내라고 강력한 민원을 넣었다. 고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말을 들어 주라고 하자 결국 여종과 큰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게 되었다. 쫓겨난 하갈은 난데 없이 죽음 같은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저 꽃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나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장성해 이제 겨우 종살이에서 살만해 지자 모든 것을 잃고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갈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 보다 그의 젊은 인생 가운데 당한 억울함으로 광야에서 울부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하갈에게도 나타나서 그들을 위로하고 큰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비록 다른 약속을 주었지만 창조주는 공평하신 분이다.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주인이시다. 그 나라는 공평과 정의가, 출신 성분이 달라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의 약속이 존재하는 곳이다. 비록 종같은 하갈이라도, 왕후같은 사라일지라도 그들을 향한 주인의 마음은 동일한 위로와 사랑의 약속을 담고 있다. 억울한 세상.. 진정한 해답은 그 분께만 있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1/06/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정원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이 되고 난 지난 4년 동안도 전 세계에 드라마 같은 이변을 심심찮게 연출해 주었다. 종종 범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파격적인 뉴스로, 때로 놀라운 기대감과 또 적잖은 실망을 안겨 주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미국 대선의 투표가 시작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게의 신문과 미디어는 온통 미국 대선 이야기로 서두의 헤드라인을 채우고 있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을4년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전 부통령)가 새로운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투표이다. 트럼프는 북한과 핵 문제로 갈등의 극단을 치닫다가, 극적인 평화 모드로 70년 만에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평화 선언을 하는 영화 같은 연출을 감행 했었다. 앞으로도 그의 돈키호테같은 성향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엄청나게 큰 만큼 과연 그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를 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국민이 직접 투표는 하지만 선거인단을 선출해서 승자 독식의 선거인단의 숫자를 확보하는 복잡한 셈법이어서 지금도 막바지 개표가 이루어 지고 있지만 엎치락 뒤치락 아직 누가 확실히 대통령에 오를지 장담할 수가 없다. 지난 밤 일찌감치 승리 선언을 한 트럼프의 진영에 대해, 아침이 밝자마자 바이든 쪽에서도 진전된 몇 개 지역의 선거인단의 확보를 근거로 이제 승리는 완전히 우리 것이라고 호언 장담을 하였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쪽에서는 몇 개 선거 지역과 우편투표의 부정이 있다며 개표를 중단 시키고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의 부패한 사회에 환멸을 느낀 청교도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일구었다는 민주 국가의 모습치곤 우리의 치졸한 정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기대치 않은 위로를 받는다. 아마 진흙탕 같은 소송전이 이어지면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는 내년 1월이나 되야 대통령이 정해 질 것이라고 진단이 나온다. 트럼프는 여러 획기적인 일들로 국가 경제를 살리고 전세계를 놀래키는 평화조약을 이끌어 내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돌발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력 때문에 내부의 팀원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오히려 적군으로 돌아서게 하는 사례를 많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일했던 각료들 뿐 아니라 같은 당의 고위 정치인들과도 등을 돌리게 하는 일들이, 사소한 스캔들로 분쟁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뉴스에 우리의 기억을 때마쳐 쇄신하는 스타성을 잃지 않았다. 초기 개표와 달리 바이든 진영에서 승기를 잡게된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알래배마 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이었던 존 매케인 의원이 이번 선거에 살아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매케인을 존경하는 알래배마의 주민들이 상대 당이지만 바이든과 진실한 친구 관계를 유지 했던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바이든을 지지하며 패배를 가져오게 했다고 진단한다. 당연히 내 텃밭이라고 여겼는데 배신의 결과가 산출되고 결국 대세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면 두고두고 후회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권세는 하늘이 세운다는 말처럼, 죽을 고비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왕이 되었던 주몽과 죄인처럼 도망 다니다 결국 위대한 왕이된 다윗을 떠올리게 한다. 신의 섭리가 함께 하는 그들에게는 분쟁과 모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위기와 배신의 순간들에 놀라우리만치 사람에 대한 미련한 신뢰와 마음의 의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아군을 감동시키고, 오히려 적이 아군이 되게하는 것은 이득실을 따져 쉽게 내 버릴 수 있는 순간들에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내면의 진정성의 확인에 있다. 중세의 조반니 피코 델라(1463-1494)가 봉건 시대의 암흑기에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해 외쳤다. 그의 연설은 타락과 부패와 죄악으로만 정죄된 인간의 모습에서 르네상스(문예부흥)를 태동하게 하고 후에 계몽주의 시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변화시킨 위대한 각성이 되었다. 역사를 주관하는 신의 관심은 끊임없이 신의 존엄을 닮은 피조물의 생명의 회복에 있다. 비록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지만 신은 그의 영원에 속한 신적 신비를 우리에게 담아 두셨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인생이 에덴의 평화를 가득 누리게 하려는, 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기대해 본다.

  05/11/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새벽에 할 일이 있어 일찍 일어나 내 방에 들어 가려는데 둘째 아이의 방에 불이 켜져 있고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좀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는 적이 없는데 웬일인가 생각해 봤더니 오늘 친구들과 케언즈(Cairns)로 여행을 간다고 했었다.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 6-7명이 결혼 전에 마지막 여행으로 우정을 나눈다는 벅스 파티(Bucks Partt)를 가는 것이다. 이미 결혼 날짜가 잡힌 친구 몇이 있고 서로 바쁘고 다음 달에도 한 명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 이번 주말이 적기라고 생각 했나보다. 잠시 부시럭 거리더니 이제 떠난다고 차려 입은 옷 매무새가 이미 휴가 모드로 접어들었다. 주섬 주섬 양손에 옷이며 가방과 신발을 집어 들고는 슬리퍼를 챙겨 가겠다며 이쪽 저쪽에 들고 있던 것을 가방에 쑤셔 넣는 모습은 하이 스쿨 때, 운동복을 양손에 들고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놓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가던 수년 전 아침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그 때 보다 키가 좀 더 크고,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결혼식 때 멋지게 옷을 입을 거라는 자신의 가상한 기대와 달리 아들은 예전 보다 몸이 좀 더 불었다. 옷이라서 그저 걸쳐 입은 것 같은 알록달록 붉은색 셔츠와 본 적 없는 것 같은 짧은 주황색 반 바지가 아직 좀 추워보여서 “안추워 ?” 했더니, 케언즈는 30도가 넘는다고 하며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미 아들의 마음은 더운 해변가의 모래 사장에 가 있다. 아직 챙길게 많고 밖에는 픽업해 주기 위해 온 여자친구가 기다리는데 아빠의 애정 담긴 관심은 귀찮은 방해물과 같다. 거의 문을 뚫고 나가다시피 아들은 아직 어두운 새벽에 남자들 만의 거창한 우정 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손님이 오기 전에는 좀처럼 켜지 않는 정문 베란다에 모든 불들을 켜서 대낮같이 밝혀 두고 목욕탕과 복도와 자신의 방에도 불을 켜 두었다. 목욕탕도 아들의 방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한 번씩 뒤집어 놓은 것 같다. 오랜만에 목도한 장면이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방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새벽이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미래를 계획하는 자식은 아직 무엇을 해도 예뻐 보인다. 허술하고 미숙해 보여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용납이 된다. 아직 어린 아이같은 어리숙함도 연인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소년을 챙겨주고 싶은 모성으로 반 하는 듯, 아들을 향한 미래 며느리의 눈은 늘 사랑을 담았다. 며칠 전 유대인들은 로쉬하샤나라고 불리는 신년을 새롭게 시작했다. 아직 9월이지만 우리와 달리 그들의 달력을 따라 5779년도를 시작하였다. 세상의 기준과 다르지만, 그들은 새로운 다짐과 새로운 소망을 꿈꾸며 9월에 새해를 시작한다. 세상의 기준이 있어도 꿈은 갖는 사람의 몫이다. 소망은 가진 자만의 자산이다. 집안을 어질러 놓고 떠난 아들은 친구들과 신나게 놀 것을 기대하며 우정을 나눈다는 명분을 삼았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소망을 핑계삼은 즐거움이다. 아이들이 크듯 앙상한 겨울을 뚫고 화려하게 피어난 목련이 지면 넓은 공중을 가득 채우 듯 찬란한 보랏빛 자카란다가 보란 듯 피어오른다. 신의 자비를 담은 자연은 계절 마다 소망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춥고 긴 겨울 동안 목련을 기다리던 봄의 소망이 사라질 무렵, 곧 보랏빛 여름의 희망을 꿈꾸게 한다. 9월에 꿈꾸는 새로운 시작은, 세상을 사랑하는 신이 계시기에 여전히 즐겁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3/09/2018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사무실이 있는 이스트우드에는 지난 몇 년간 중국 이민자 인구가 늘어가면서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점차 식당과 식료품점, 가구점, 보석상, 가전제품, 잡화상들도 부쩍 늘었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고 상가가 많아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차들이 붐비자 자연스레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주차 단속 요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말할 것도 없고 평일 점심만 해도 주차를 하느라 애를 먹어야 한다. 급한 나머지 아무데나 차를 대고 속히 일을 보고 돌아오다보면 주차 벌금티켓을 받기 일쑤다. 종종, 자기 차에 티켓을 발부하는 단속 요원을 보면 황급히 달려와 그저 잠시 다녀 온 건데 한번 봐달라고 애절하게 선처를 비는 광경이 눈에 띄곤 한다. 대체로 의기양양한 단속요원들은 선처를 베풀 마음이 없고 단속을 많이 할 수록 자신의 작업 수행 성과가 높아지는 점수를 쌓는 입장차이가 있으니 결국 타협이 불가능하고 스타일만 구기고 상황은 종료가 되기 마련이다. 그 중 머리가 희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덩치가 크지않은 한 단속 요원은 종종 뭇 시민에게 두려운 요주인물이다. 주차 현장에서 그 사람에게 발견되면 턱을 치켜올리고 아랫 사람을 다루는 봉건 영주처럼 차를 즉시 빼라고 고압적인 명령을 하던가, 일장 연설을 하고 결국은 티켓을 발부한다. 호된 훈육에 혼이난 위세에 눌린 죄인(?)은 입이 나와도 할 말이 없어 기껏해야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비싼 주차비 티켓을 손에들고 억울한 발길을 돌린다. 이스트우드에 특수 파견된 보안관 같은 권력을 즐기는 그의 위세는 자기 직업의 성실한 수행자로 충분히 자기 합리화로 포장할 법하다. 과거, 완장을 부여 받은 어린 홍위병들이 거의 폭도로 변하여 옆집에 살던 이웃과 동네 시민을 잔인하게 죽이면서도 시대적 혁명과 과업을 완수한다는 그럴 듯한 권력의 명분을 삼았던 끔찍한 역사가 있었다. 모든 권력에는 늘 설득력 있는 보안관 같은 지위를 장착한 명분이 있었다. 어제(호주 시간 9월 30일)는 미국 대선의 후보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TV 토론 대결이 열렸다. 언론은 과거 약 8천여 만명이 시청했고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1억명은 볼 것이라고 거대한 선거의 규모와 세계적인 관심의 크기를 예측했다. 트럼프가 4년여 전 등장 했을 때도 한마디 한마디 그가 던지는 말들이 많은 파장을 일으키는 정치인다운 절제와 고도의 전략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신문은 TV 토론이 난장판이었다고 논평을 했다. CNN앵커들은 “내가 본 가장 혼란스러운 토론이었다” “이것은 토론이라기 보다는 불명예 자체다” 라고 혹평을 남겼다. 1시간 30분간 동안 정책의 진정성이 드러나기 보다는, 상대를 약 올리고 조롱하는 설전으로 일관됐다. 트럼프는 상대의 발언 중에도 끼어들어 ‘사회주의자’이며 나이든 ‘무능한 정치인’ 이라며 인신 공격을 퍼 부었고, 바이든은 ‘닥쳐’라고 응수했다. 여느 시장이나 동네 골목에서 있을 법한 싸움을 본 듯하다. 그들은 코로나를 핑계 삼아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팔꿈치 인사도 하지 않았다.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세계 최강의 기독교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로서의 인품의 깊이와 품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셈이다. 이들은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게된 미국의 서부 시대를 대변하는 보안관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들이다. 체코의 문필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시골 의사’라는 그의 소설에서 같은 집안의 마부에게 하녀가 겁탈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나라의 녹을 먹어야하는 국가 의사로서 병이 심각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먼저 찾아가는 의사로서 자신의 직무를 핑계삼아 힘없는 여인의 인생을 방치한 주인의 내면으로부터의 방관을 문제 삼았다. 시민들과 사회를 위해 일하는 즐비한 의사와 변호사와 경찰들과 선생들과 돈 많은 부자들과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마저도 허락된 지위의 권력이 최대한 자신의 갑질을 위해 사용되는 일들이 동네마다, 골목마다 충분히 있을 법하다. 오히려 순진한 희생양같은 선량한 시민들만이 수시로 야심으로 가득한 살쾡이 같은 성정의 못된 권력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을 뿐이다. 추석이 되어 이스트우드 상가는 가족들과 함께 명절 저녁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발걸음으로 더욱 분주하다. 자비를 베풀려는 지, 다행히 오늘은 노란 야광 조끼 입은 보안관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01/10/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유리창으로 닫혀진 창고처럼 쓰는 샤워실에 세워 둔 여러 개의 여행 가방이 문득 눈에 들어 온다. 그 중에는 내가 오랫동안 들고 다니는 작은 기내용 가방도 있고, 용량이 큰 가방, 또 아내가 들고 다니는 붉은 색 작은 가방도 있다. 다닥다닥 가지런히 붙어 있는 것들 중에는 특별히, 지난 크리스마스 파격 세일 때 좋은 것을 싸게 샀다며 좋아하던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이 새롭고 바퀴도 잘 구르는 실용성도 있는 중간 사이즈의 새 가방도 끼어 있다. 대부분은 이번 3월에 한국을 들러 해외 여행을 갈 때 들고 갈 예비 가방들 이었는데 몇 달동안 대기만 하고 있다. 마치 현장 출동을 해보지 못한 데뷔 못한 실력있는 연습생 처지 처럼 앞으로도 반 년은 적잖이 이런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까지 전 세계가 함께 진통을 겪고, 서로 해외 여행객의 입국 금지를 앞 다투 듯 발표하고 있다. 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큰 기쁨을 탈취 당한 것 같은 상실감이 잠시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때 벌려 놓고 하려던 일들은 어떻게 정리하지 하는 생각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포기 하니 다른 방도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는 허탈함도 든다. 시간이 지나니 한편 부질없는 거품낀 생각인데, 혼자 감동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도취적인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는 자각도 생긴다. 교회도 사찰도 성당도 친한 유대인 친구의 회당도 모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되었다. 두명 이상 만나는 것을 금하고, 만나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제발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것(Stay Home)이 전 세계의 공통 슬로건이 되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사람이 주도 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막강한 권력자와 독재자가 세상에 많이 등장 했어도 온 세상이 이렇게 한 묶음으로 함께 고통받는 전무후무한 세상을 우리 눈으로 직접 목도 하며 사는 시기는 없었다. 이번 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발표하면서 “과거 역사에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있다”라고 한 말처럼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현실이 생활에서 경험되고 있다.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사람들은 모두 온라인이나 전화, 이메일, 페이스북 또는 카톡이나 화상 회의로 만나니 실제 얼굴을 보며 만나는 건 집에 있는 두 마리 개와 아내 뿐이고 음식을 먹거나 TV를 볼 때를 빼고는 대부분 혼자의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 문득 ‘하루가 참 기네’ 하는 느낌이 새롭다. 여럿이 만나서 하던 일들을 혼자 생각해야하니, 그것도 오랫동안 해보지 않은 나름 어색한 일이다. 유튜브에 세계사, 철학 강좌를 듣다 보니 생각 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시각이 일리있는 지성적 반성을 불러 일으킨다. 밖에 나가 식사를 할 수 없으니 여느 식당의 감사함이,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카페의 향기로운 커피의 향내의 그리움이,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의 포장없는 편안함이 불현 듯 소중한 선물 이라는 자성이 든다. 차를 몰고 조금만 가면 바닷가의 시원한 정취와 일렁이는 파도의 힘과 산에 오르면 신선한 공기와 오를수록 신비한 신이 만든 자연의 거짓없는 건강함은, 나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그 존재 자체가 황송한 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열화같은 축구도, 미국의 프로 농구도, 수영장과 체육관도, 영화관과 도서관도, 미술관과 박물관도 내가 당연히 즐기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어 섰다. 많은 것에 기대어 나의 행복을 대체하던 것들이 영원히 나에게 공급되는 실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으로 나의 행복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완전히 내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거품과 같은 것을 의지하고 기대며 안심하고자 했던 자기 합리화는 세상이 멈추어 서니 심각하게 포장된 인생의 내실없는 결핍 앞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만약 신이 이해되지 않는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는 바로 그 분이라면 거품많은 세상과 벌거벗은 보잘 것 없는 나의 실체를 보게 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신은 지금 쯤 진심없는 많은 숫자의 식상한 예배와 기도를 거부하고 계신 지 모른다. 각자의 인생 앞에서 진정어린 홀로서기를 진리 앞에서 시도해 볼 모처럼의 기회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고 있는 지 모른다. 시대와 인생을 간파한 지혜로운 철학자들은 ‘인생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의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신과의 진실한 관계성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이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뒷 마당에 무성한 잡초를 뽑아야겠다. 미뤄 놓았던 책들을 읽고 쓰려고 했던 글들도 정리를 해야 겠다.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몇 글자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 이제 나 혼자, 조용히 신에게 다가가는 홀로서기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하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 (시편23:1-3)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2/04/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거칠고, 반항적이고 거침이 없어 보이는 한국의 미소년들이 세계의 팝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BTS)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돌 랩/록 그룹이다. 기성 세대에겐 좀 생소하지만, 이들은 데뷔하면서부터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의 랩과 댄스가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노래에는 사랑과 아픔이 있고 희망과 즐거움이 있으면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항과 도전이 있다. 절제 가운데 튀는 파격, 카리스마 속의 빠른 템포, 반항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자유를 갈망하는 애절함이 담긴 그들의 표정은, 마치 젊은이들의 가슴에 담긴 갈망과 염증을 활화산이 폭발하듯 용암을 토해 내는 것 같다. 그들의 무대엔 금방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게 하는 마성의 기가 잠재한다. 그룹의 이름도 ‘어떤 총알이라도 막아내는 방탄’이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7명으로 대부분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2013년 6월 3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했다고 하니 이들이 음악을 시작할 때는 불과 10대 중후반의 청소년들이었을 것이다. 고된 3년의 인턴 기간을 지낸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고 미국으로 또 국경을 훌쩍 뛰어 넘어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 시키고 있다. 며칠 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참석해 ‘DNA’ 라는 노래를 선보였다. 이 장면이 ABC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고 미국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초대를 받아 ‘마이크 드롭(MIC Drop)’ 이라는 곡을 처음 보여주었다. 사회자와 방청객을 메운 백인, 흑인 소녀들의 절규에 가까운 환호성은 마치 비틀즈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를 연상케 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미국 미디어와 인터뷰를 할 때, 우리는 한국 사람이지만 어릴 때부터 외국 드라마로 영어를 배우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세상 저쪽에 사는 세대의 문제와 갈등을 공유하고 세계 젊은이들의 생각과 정신을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자신들의 음악은 세상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환호하는 팬들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들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초점을 흐리지 않는다. 리더의 유창한 영어는 사회자의 예상치 않는 질문에도 자유분방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다. 거칠어 보이는 음악과 겉 모습과 달리 그들의 말엔 부드러움과 점잖은 생각이 배어있다. 그들은 이미 20대 초반에 미국에서 개최된 2017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K-POP 그룹 최초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인터내셔널 슈퍼스타’ 라고 불리며 단독 무대를 펼치는 영예도 얻었다. 최근 선보인 Mic Drop 은 미국 등 57개국의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비슷한 많은 20대들이 아직은 꿈같이 여기는 최고의 자리에 이르고 이젠 더 높은 곳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많은 인생의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20대의 인턴들이 우리 주위에 허다하다. 실패와 좌절의 아픔이 있지만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힘차게 격려한다. 성공한 인턴의 노래는 실패했어도 좌절치 않게 하는 가사 말을 담았다. 좌절의 총알이 날아와도 뚫을 수 없는 방탄의 든든한 방패는 바로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란 메시지이다. 새로운 문을 두드리며 들어서는 새로운 인턴들의 앳된 모습이 신선하다. 아직 또 다른 기회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다가가는 젊은 도전은 특별한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아도 용납될 수 있다. 모두가 최고에 자리에 오르는 것이 원래 인생의 이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않아도 이런 청소년들의 고백이 있으면 그들은 실패한 젊음이 아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좀 더 일찍 인턴과 같은 반듯한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만큼 성숙의 과정을 거친 그들의 음악과 내면의 메시지는 온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다. 그들에게는 깡패같은 모습이 있어도 실제 젊잖은 내면이 있다. 이들의 노래는 겉은 거창한 지위로 도배돼 있어도 깡패의 방식으로 사는, 인턴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많은 인생의 허망한 빈틈을 뚫는 총알이 된다. C.S Lewis는 사랑과 악은 동일하게 복리로 증진한다고 말했다. 또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진정한 인턴의 시절을 새로이 시작해야 할 때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30/11/2017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2020년이 시작되고 머지 않아, 한인들이 많이 사는 이스트우드 지역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인들로부터 감염되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꺼려 하는 동네가 됐다. 식당에 눈에 띄게 손님이 없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늘 붐비던 야채 가게와 정육점, 카페, 한인식품점 등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그저 몇몇 사람의 고객을 제외하곤 예전 같은 활기를 찾아 보기 어렵다. 잘 가던 식당에 오랜 만에 들렸더니 주인은 10여년을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적이 없었는데 정말 큰 일이라고 한다. 영화관도 짐(Gym)이나 수영장도, 항공사와 여행사와 호텔도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한에 사는 중국인들이 박쥐나 쥐, 낙타 같은 야생 동물들을 먹는 것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고 보도가 있었다. 남의 나라, 다른 문화의 식성까지 다 들춰 참견할 순 없지만 참 별의 별 것을 다 잡아 먹는다는 온 세상의 핀잔을 피하긴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백인들이 모인 장소에 가면 괜히라도 중국 사람은 아닌 양 옷도 깨끗이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다녀야 오해를 받지 않는다고 귀띔을 한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동안 상황이 급변해서, 한국의 대구 지역에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전국의 방역체계를 뚫고 퍼지는 괴현상이 일어났다. 온 세상의 뉴스가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이미 한국인의 입국 심사를 격상하고, 이스라엘은 입국을 차단했을 뿐 아니라 현지에 있는 관광객들과 방문자를 자국 전세기에 태워 한국으로 돌려 보내는 일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행했다. 어제 한국의 확진자의 수가 1200명을 넘었고, 최대 1만 명의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는 미국 JP모건의 전망은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게 한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러스가 머잖아 종식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잘 관리되고 있고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던 것과는 판이한 현실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만해도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석권하면서 온 국민이 한국인인 자부심을 한껏 자랑스럽게 생각 했는데 며칠 새 온 세상에 대역 죄인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세에 ‘신의 재앙’이라고도 불렸던 페스트(흑사병)는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2400만명이나 죽게 한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중국인들이 병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그 시대엔 유대인들이 온통 누명을 쓰고 그들이 살던 게토에서 쫓겨나고 잡혀가고 화형에 처해지는 일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느라 매주 집안 청소를 거르지 않는 청결 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결함을 핑계 삼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당시의 우물을 사용할 때 쥐나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뚜껑을 닫아 두어 페스트에 걸리지 않자 그들만 걸리지 않은 것이 바로 병을 일부러 일으킨 증거라는 누명을 씌웠다. 누군가 정치적인 희생양을 삼아야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면할 수 있는 세대를 막론한 세상의 속성이 지속될 뿐이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야 했던 힘없는 자의 설음이 그저 억울할 따름이다. 페스트처럼 치사율이 높았더라면 지금 이 시대에도, 유대인처럼 유럽에서 천덕 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비극이 우리에게도 재현될 수 있다. 페스트는 그 시대의 봉건 영주들과 제도에 대한 심한 회의를 불러왔고 결국 봉건시대의 종식과 근대로 진입하는 변화를 맞이한 계기가 됐다. 우리는 이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 뒤에 어떤 역사적 결론이 내려질 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한국은 극장도 문을 닫고 시장도, 병원도 문을 닫고 있다. 교회도 성당도 설립이래 예배와 미사가 중단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젠 사람들과 악수를 해서도 안되고, 만나서도 안되고,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일도, 힘을 합해 함께 기도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떠들고, 온정으로 허깅을 해 주기 보다 내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상대가 혹시 보균자가 아닌지를 경계해야 하는 불신의 시대가 됐다. 무심코 바라보는 TV에는 혼자 남아 생존해야 하는 마지막 시대를 비유한 암울한 영화의 장면들처럼 모두 마스크를 끼고 회의를 주재하는 생소한 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이 잡힌다.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채 생명을 살려 보려고, 현장에서 흰 방역복으로 머리에 헬멧을 쓰고 발끝까지 무장한 방역 스탭들과 마스크를 군대 차량으로 호송하기 위해 작업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곧 지구가 멸망하는 장면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우울함으로 내려 앉는다. 육체도 그렇지만, 영혼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개발된 백신이 없다면 손써 볼 방법이 없다. 다행히 신은 우리에게 영혼이 치유될 수 있도록 백신을 일찌감치 마련해 주셨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마음에 수혈되면 오염된 영혼이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도록 이미 이 천년 전에 ‘신의 한 수’를 보여주셨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27/02/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새해가 되면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이니 연말 휴가로 느슨해진 시간에 널려진 집안 청소를 이곳 저곳 하게 되었다. 두 아들이 분가를 하고 나니 이리저리 뒹귈던 옷가지며, 신발이며, 군것질 봉지며, 운동 기구들도, 한결 단촐해졌고 둘(부부)이 사는 집은 사용 반경이 휠씬 줄어들었다. TV를 보는 방과 내가 읽던 책들이 이곳 저곳 펼처 있는 곳을 제외 하고는 나에게 떠다 맡긴 청소 구역은 그다지 할 일이 없다. 슬금 정리한 흔적만 남기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갑자기 차고에서 ‘악’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뛰어가 보니 아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고 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말을 잘 잇지 못한다. 왜 그래? 하고 다시 물으니, 쥐, 쥐 하며 차고에 쥐가 죽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큰 일은 아니라는 안심이 되었지만 동시에, 죽은 쥐를 치워야하는 무거운 숙제가 바로 나에게 전가되고 있었다. 왠일인지 나는 어릴 때 부터 쥐가 싫었다.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을 조금 유보하면 쥐가 끔찍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생긴 모양도 너무 징그럽고 털 색깔도 살아 움직이는 몸짓도 몸서리 치게 싫다. 죽은 쥐를 어디에 담아서 치울까 생각 하니 정말 난감했다. 아이들이 분가 하기 전에는 둘째 애를 시켜 늘 이런 궂은 일은 쉽게 해결하곤 했는데 이제 내 밑에 기르는 개 두마리 외엔 미룰데가 없는 허접한 형편이 되었다. 어릴 때 홍수가 나면, 동네 한 가운데를 지나는 다리에 떠오른 쥐 꼬리를 잡아 공중에 빙빙 돌리며 장난을 치던 아이가 그 때는 동네의 많은 꼬마 추종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다행히 쥐는 죽은 지 오래 됬는 지 박제처럼 말라있었다. 아직 살이 물컹하고 늘어져 있지 않으니 그다지 끔찍하지 않게, 복사 종이를 담았던 빈 박스와 와 쇠 부삽을 사용해 난제는 해결되었다. 그렇게 2020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은 쥐의 해, 경자년이란 이름표를 달고 우리에게 등장했지만 사실상, 새해로 온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일 뿐이다. 12월 말일과 다름 없이 1월 1일은 새해로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고 서로에게 소망의 복을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것이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부모와 형제와 가족들에게 실현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지겨운 인생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왜 이렇게 인생이 길지?‘하고 푸념을 한다. 전화로 인사를 드리니 90을 바라보는 장모님은 “ 올해는 꼭 나 좀 데려 가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하며 사위에게 그저 웃기만 하기엔 마음이 무거운 응석을 부리신다. 기대감과 소망이 없다면 새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무거운 짐을 끌어야하는 버거운 나날의 연속일 뿐이다. 젊을 때 호기로 새긴 문신을 언젠가 철이 들면 지우고 싶어하듯, 새해가 되면 새 출발을 위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하지만 아프고 슬플수록, 상처와 사무침이 깊을수록 그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많은 앳된 젊은 연예인들이 연말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있었다. 악플에 담겨 있는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사실에 그들은 절망한다. 나만 알고 가리고 싶은 비밀이 발가 벗겨지면서 그들은 숨을 곳이 없다. 새 날이 주어 지지만 그것이 다시금 과거를 반복하는 무거운 흑암의 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와 주위 상황을 보면 얽혀진 타래를 어떻게 새해에 풀어 갈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세상에 눈을 돌리면 전쟁과 패권의 경쟁으로 2020년에 어떤 일이 일어 날 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신은 영원으로 부터 하루를 우리에게 토해 놓는다는 현자들의 격언이 있다. 새 날은 세상의 때가 뭍지 않은 영원에 속한 신선한 하루로 주어진다는 말이다. 나의 형편과 상관없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백의 스케치북과 같다. 그러므로, 새 날은 내가 망처 논 과거의 연장이 아니다. 고대,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던 슬픔 많은 에레미야는 감옥에도 갖히고, 민족의 멸망을 바라보며 타민족에게 포로로 잡혀 가는 절망을 날마다 겪었지만 이렇게 고백했다. “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 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에레미야 애가3:22-23). “ 비록 변변치 못한 과거가 있더라도, 세상과 달리, 신은 그 분께 속한 영원의 보따리로 부터 우리에게 또 새 날을 선물하신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6/01/2020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신문에 잔인한 살인 소식과 총격 살상의 보도가 실리는 것은 예사의 일이다. 신문은 으레 그런 것이라는 통념은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끔찍한 소식이 실려도 무심하게 지나치게 한다. 그런데 요즘 한 배우의 교통 사고 소식이 실리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신문과 방송이 온통 그의 사고에 집중됐었다. 대중의 관심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톱스타는 아니었지만 예능에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최근들어 오히려 더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중 이었다. 아버지도 배우이었던 45 살의 싱글남은 별다른 스캔들도 없이 지난 20년동안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그저 평범한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였다.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지 않는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원래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화려하기 보다 외로워 보이고 까칠한 그의 말은 오히려 수줍음과 매정하지 않은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예능에서도 다른 연예인들처럼 맘껏 까불지 못하는 어색함을 가졌다. 갑자기 다가온 임기응변의 순간에 멋진 멘트를 날리지 못하고 당황해 하는 표정에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 배어있다. 예능인데도 멋적어 하며 용기낸 소심한 몸짓은 그의 내면의 순수함을 엿보게 한다. 그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검진을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아직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가슴을 움켜 쥐며 앞 차를 들이 받고 상가 건물 계단으로 떨어지며 차는 전복이 되고 그는 두개골 손상으로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수려한 톱스타도 아니었는데 그의 죽음이 던져 주는 공허함은 왠지 큰 상실감으로 남는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다. 바로 늘 옆에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인생의 한계 앞에 우리는 이별과 좌절을 경험한다. 영화를 찍고 함께 예능을 같이 했던 동료 연예인들은 그의 죽음이 주는 충격을 삭히기 어려운 가보다. 그는 사자성어를 맞히는 게임에서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구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예능에 나온 것을 정말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헛점으로 각인되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TV에 나온 동료들의 고백과 눈물은 화려하지 않은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남겨 준 그의 40여년의 삶의 진심 어린 고백에 대한 회신인 듯하다. 꾸밀 수 없는 그대로, 화려하지 않은 채로, 과장되지 않은 몸짓으로, 내면에 수줍은 소심함 그대로, 감추고 싶은 소년의 순진함으로 살아 온 그의 허점 많고 속정 깊은 내면에 대한 사람들의 반증이다. 며칠 전 상을 받으며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주신 상인 것 같다며 인사말을 했는데.. 이제 뒤늦게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만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데 남의 일 같지 않은 안타까움이 탄식이 된다. 오늘도 검찰의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투신한 유능한 검사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남편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부르짖는 아내의 절규에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열심히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왜 이렇게 죽게 하냐는 권력에 대한 절망과 통한의 울부짖음이다. 모든 죽음에는 아픔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모두 의미있는 죽음이지만 무심한 채로 잊혀지는 많은 죽음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종종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있다. 지옥을 가는 것 같은 절망의 길에도 선한 것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또 선의를 선택한 절망의 길은 천국으로 새로운 길을 나게 할 것이란 소망을 엿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은 아련한 허전함과 그리움을 남긴다. 아직 살아가는 인생엔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어도 선한 것을 택해야 하는 숙제를 남긴다. 미숙하고 헛점 많은 인생이지만 수줍은 진심은 떠나는 사람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하는 비밀의 능력이 있다. 우리 곁을 떠나는 그가 정말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9/11/2017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일요일 아침에 교회를 가느라 도로에 들어서면 평소 줄을 늘어서 교통 체증으로 붐비던 것과 달리 한가한 길을 느긋이 달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단촐한 나들이에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비치고 꽃 향기라도 날리면 그만한 평화를 맛보는 행운도 쉽지 않다. 며칠 전 일요일에도 모처럼 비가 그치고 화창한 봄날의 선물 같은 휴일 아침의 여유가 주어졌다. 한참을 운전하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빈 트롤리를 단 큰 차 한 대가 내 차 앞을 거의 들이 받을 만큼 가깝게 쏜 살 같이 끼어 들었다.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췄지만 놀래킨 황당함과 모처럼의 평화를 빼앗긴 것에 불쑥 화가 치밀어 크락션을 누르려니 이젠 더 앞에 있는 차를 추월해 쏜 살 같이 달려 나간다. 으례 운전을 급히 하는 사람인가보다. 평소엔 얌전한 사람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급해 지는 사람들이 주위에 적잖이 있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장로님은 성품도 자상하고 목소리가 조용해서 그 말을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차분한 분인데 운전을 시작하면 마치 새로운 인격체로 변하는 것 같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서부터 작동하는 움직임과 운전 속도에 놀래고 앞 차에 들이대는 간격이 좁아 옆에 무심코 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혼자 황급히 헛 브레이크를 밟곤 한다. 성격이 난폭한 분이 아닌데 운전을 하면 그렇게 급해지나 보다. 그래서 옆자리에 앉아 있다 운전 하는 그 분 얼굴을 여러 번 다시 쳐다봤던 적이 있었다. 어느 여 집사님도 매뉴얼 차를 운전하는데 왼손 잡이 그 분은 자신이 바빠도 손님을 잘 모셔다 주는 친절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차를 타고 난 분들은 고마워 하면서도 마치 청룡 열차같은 놀이 기구를 타고 난 것 같다고 탑승 후기를 말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일요일 아침의 행복을 빼앗아 간 얼굴을 알지 못하는 무례한 운전자도 그러려니 적당히 이해가 된다. 교회에 거의 다와서 마지막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선 차를 보니 아까 나를 추월했던 바로 그 차가 부릉거리며 서 있다. 기껏 추월을 하고 서둘러 가는 것 같더니 결국 같은 지점에서 신호등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풀리면 또 서둘러 앞질러 가겠지.. 결국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도로 위에 민폐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소 거친 도로의 내전(?)을 거치고도 30여분이나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변의 커피 숖에 들러 가기로 했다. 이곳은 케익과 과자가 맛있어서 늘 손님이 붐비는 곳이다. 앞의 카운터에는 한 젊은 남자가 부시시 헝클어진 머리에, 그저 편한 옷을 대강 걸쳐 입고, 서너 살 난 어린 딸의 고사리 손을 잡고 커피와 딸기 스무디를 케익과 과자를 주문 한다. 작게 틀어 놓은 라디오의 음악 소리보다 큰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내가 시킨 심부름을 잘 수행해야 하는 착한 남편의 다짐과 사랑스런 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아빠의 자신에 찬 고백이 담긴 듯 하다. 일요일의 평화가 동네 사람들 안에, 가족들 속의 평범한 행복이 하늘에서 비치는 봄의 햇살과 더불어 가게에 가득 차는 듯하다. 마치 나에게 잠시 빼앗겼던 일요일 아침의 평화를 보상이라도 하듯... 아침엔 유명한 영화 배우의 사망 소식이 전해 졌었다. 폐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운동으로 잘 다져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그의 호언 장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잘 이겨 내리라고 기대했었다. 바로 몇주 전에도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하며 향후의 영화 계획을 소개하는 그의 말에는 자신만만한 포부가 담겨 있었다. 워낙 젊은 시절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스타답게 정치에서 연예계에서 여러 풍문을 낳으며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TV로 소개되는 많은 사진들 가운데 병색이 짙어 보이는 몇 장의 사진은 죽음 앞에 무기력한 인생을 생각해 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빠른 성공과 최고의 속도로 달려 온 것 같은 그의 인생은 화려한 인기와 명예와 부러움을 받았지만 그도 평범한 진리 안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병색 깊은 사진은 96세에 돌아 가신 할머니의 모습과 병원에서 돌아 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사진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모두 죽음이란 마지막 신호등 앞에 조용하고 겸손하다. 속도를 내야 하는 화려한 인생이 있어도, 진정한 평화와 사랑은 그저 평범한 삶의 느슨한 속도에 있음을 봄이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새삼 생각해 본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8/11/2018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