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잔인한 살인 소식과 총격 살상의 보도가 실리는 것은 예사의 일이다. 신문은 으레 그런 것이라는 통념은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끔찍한 소식이 실려도 무심하게 지나치게 한다. 그런데 요즘 한 배우의 교통 사고 소식이 실리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신문과 방송이 온통 그의 사고에 집중됐었다.
대중의 관심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톱스타는 아니었지만 예능에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최근들어 오히려 더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중 이었다. 아버지도 배우이었던 45 살의 싱글남은 별다른 스캔들도 없이 지난 20년동안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그저 평범한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였다.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지 않는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원래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화려하기 보다 외로워 보이고 까칠한 그의 말은 오히려 수줍음과 매정하지 않은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예능에서도 다른 연예인들처럼 맘껏 까불지 못하는 어색함을 가졌다. 갑자기 다가온 임기응변의 순간에 멋진 멘트를 날리지 못하고 당황해 하는 표정에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 배어있다. 예능인데도 멋적어 하며 용기낸 소심한 몸짓은 그의 내면의 순수함을 엿보게 한다.
그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검진을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아직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가슴을 움켜 쥐며 앞 차를 들이 받고 상가 건물 계단으로 떨어지며 차는 전복이 되고 그는 두개골 손상으로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수려한 톱스타도 아니었는데 그의 죽음이 던져 주는 공허함은 왠지 큰 상실감으로 남는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다. 바로 늘 옆에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인생의 한계 앞에 우리는 이별과 좌절을 경험한다. 영화를 찍고 함께 예능을 같이 했던 동료 연예인들은 그의 죽음이 주는 충격을 삭히기 어려운 가보다.
그는 사자성어를 맞히는 게임에서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구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예능에 나온 것을 정말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헛점으로 각인되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TV에 나온 동료들의 고백과 눈물은 화려하지 않은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남겨 준 그의 40여년의 삶의 진심 어린 고백에 대한 회신인 듯하다.
꾸밀 수 없는 그대로, 화려하지 않은 채로, 과장되지 않은 몸짓으로, 내면에 수줍은 소심함 그대로, 감추고 싶은 소년의 순진함으로 살아 온 그의 허점 많고 속정 깊은 내면에 대한 사람들의 반증이다.
며칠 전 상을 받으며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주신 상인 것 같다며 인사말을 했는데.. 이제 뒤늦게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만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데 남의 일 같지 않은 안타까움이 탄식이 된다.
오늘도 검찰의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투신한 유능한 검사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남편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부르짖는 아내의 절규에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열심히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왜 이렇게 죽게 하냐는 권력에 대한 절망과 통한의 울부짖음이다. 모든 죽음에는 아픔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모두 의미있는 죽음이지만 무심한 채로 잊혀지는 많은 죽음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종종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있다. 지옥을 가는 것 같은 절망의 길에도 선한 것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또 선의를 선택한 절망의 길은 천국으로 새로운 길을 나게 할 것이란 소망을 엿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은 아련한 허전함과 그리움을 남긴다. 아직 살아가는 인생엔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어도 선한 것을 택해야 하는 숙제를 남긴다. 미숙하고 헛점 많은 인생이지만 수줍은 진심은 떠나는 사람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하는 비밀의 능력이 있다. 우리 곁을 떠나는 그가 정말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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