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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진 가게쇼핑센터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 보니 여러 가게들 중에 25여 년을 한 쪽 귀퉁이에서 지켜오던 작은 컴퓨터 가게가 사라졌다. 사무실에 컴퓨터를 바꿀 때 마다, 랩톱을 살 때, 사무실끼리 기기 연결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받느라 늘 들르던 곳이 었는데 아무 기별 없이 문을 닫았다.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도 그 곳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가지를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이미 다른 사업체가 확장 차 간판을 걸었으니 찾을 길이 막연하다.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닫고, 무슨 급한 일이 있었나며 답변을 들을 수 없는 항변성 질문이 맘으로 푸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운영하던 사업을 아들이 이어 받아 부자가 함께 사업을 하던 곳이다. 아버지는 가게의 허드렛 일을 도우며 전면에 나타 나진 않지만 늘 아들이 부르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주변에 대기하 듯 머물러 있었다. 엄마도 언제 부턴가 가게에서 보이지 않더니 이젠 연배가 많은 아버지도 대를 이은 아들도, 한 곳에서 25년 넘은 오랜 가게도 다신 볼 수가 없게 되었다.   2. 사라진 추억서울 명동엘 가면 늘 들리던 횟집이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도 떠나기 며칠 전에 그 곳에 들렸는데 문을 닫고 새로운 사업체가 공사를 진행 하고 있었다. 내가 알게된 게 40년은 되었고 실향민들이 그 전부터도 오랜동안 찾아온 훨씬 더 긴 명동의 역사를 대변 할 만한 곳이다. 주인을 아는 것도 아닌데 어쩜 야속하게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닫았느냐고 볼메인 소리가 절로 솟아난다. 그 곳엔 젊은 사람들 보다는 늘 말끔하게 차려입은 점잖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주로 북쪽 출신 분들이 많았는지 톤 높은 평안도 사투리, 억양 강한 대화와 웃음 소리가 소란 스럽고 연변에서 온 일하는 아주머니의 주방을 향해 목청껏 외치는 주문 소리까지 뒤섞여 늘 에너지가 넘쳐 나는  곳이었다. 나는 신을 벗고 올라가, 늘 창가에 햇볕이 가득 들고 큰 유리창으로 명동 입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좌식 테이블에 앉곤 했었다. 때로는 가족들과 친구와 장모님과 손님들과도 편하게 만나던 곳이었다. 내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마치 값비싼 물건을 갑자기 강제로 빼앗긴 것 처럼, 2층 건물을 몇 번을 올려다보고, 머뭇 거리다 발걸음을 떼면서도 한번 더 뒤돌아 보며 이제 또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긴 세월이 지나니 많은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손님이 줄고, 주인도 나이가 드니 기력도 쇠하고 자식들이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사정이 됐나보다. 확인되지 않은 가상 정보로라도 미련남은 섭섭한 마음을 스스로 애써 설득하고 있다. 3. 마지막 한마디며칠 전, 이탈리아에서 22살된 한 여대생의 죽음을 애도 하는 미사에 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였다고 한다. 명문 대학에 다니던 이 소녀는 학과 동기인 남자친구에게 흉기에 얼굴과 목등 여러군데를 찔려 죽었다. 법무장관과 주지사와 같은 정계의 유력 인사들이 장례 행렬에 동참하고 애통해 하는 가족의 모습이 사진에 애절 하기만 하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미치광이의 잔인한 칼날에 가녀린 한 소녀의 꿈많은 인생은 그렇게 마지막이 되었다. 여대생을 추모하는 수많은 인파  지난 10월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간 많은 여성들이 시신으로 버려졌는데, 상처와 눈물자국 등을 발견했고,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흔적도 찾아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영상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가슴을 절단해 거리에 던졌다. 성폭행 도중 그녀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축제 현장에 있었던 한 남성은 BBC영국 방송에 “사람들이 살해되고, 강간당하고, 참수당하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인터뷰 했다. 이미 죽어간 여성들은 증언할 수 없고, 납치의 순간에, 강간의 순간에, 그리고 난폭하게 닥친 죽음의 순간에 이 세상에 대해, 가족에 대한 한마디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가 없었다.   애타하는 부모와 가족인질의 귀환을 위한 Rally4. 마지막 인사지난 주 한호 일보가 지면으로 출간되는 것이 이번 12월이 마지막 이라고 연락이 왔다. 모든 것엔 언젠가 끝이 있지만, 정작 마지막이라고 하니 긴 세월 때문인지 아쉬움이 깊다.  금요 단상을 써 온 것도 10여년이 되었고, 전신인 호주 동아에 글을 기고 한 것까지 하면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2년간 ‘유대인의 탈무드와 자녀교육’ 이란 제목으로 거의 매주 원고를 준비하며 열심을 냈던 기억과 신문을 보고 한 마디씩 건네준 관심은 내 글을 좋게 생각할까하는 소심한 염려에 훈훈한 위로와 감사가 되었다. 사랑하던 사람들과도 마지막 인사 없이 떠나야 했던 많은 세상 일들은 오히려 더 없이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는 사치에 속할른지 모른다. 붓으로 그려진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생명을 되찾은 환자 친구와 밤새 생의 힘을 주려고 진짜 잎새처럼 그림을 그리던 화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오 헨리는 마지막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역설적인 소망을 보여 주려 했다.  눈엔 없어진 것들이 허다하지만, 마음에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엔 그 사람이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인생은 사라진 사람을 기억한다. 비록 마지막 인사를 결코 할 수 없었던, 그런 이별이라 할지라도..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4/12/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이곳 저곳 지방을 다니고 회의도 참석하는 분주한 한국 일정 가운데 틈이 나자 아내가 냉큼 남대문 시장을 가자며 부추긴다. 손주들 입힐 옷도 사고, 며느리가 주문한 것들도 챙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사야하는 당위성 있는 목적이 설득 구실이었지만, 내심은 이리저리 느긋하게 돌아보기만 해도 즐거운 시장 구경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나도 그다지 싫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좌판에 먹거리가 가득한 옛 시장의 어릴 적 기억이 들자 이내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엔 바로 옆 명동도 들리고, 근처에 아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도 가고, 코 흘리개 시절의 초등학교도 가 보자는 회기본능의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나는 남대문 시장은 발을 들여 놓자 마자 즐비한 양쪽 상가마다 물건을 살피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이쪽 저쭉 오랜 이력이 뭍어나는 먹거리 상점들엔 호떡이며 어묵과 떡볶이, 만두와 순대를 사려고 긴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린다. 아내와는 실컷 돌아다니다가 옆에 보이는 커피 숍에서 만나기로 적절히 협상을 하고 사람이 분비는 만두와 도너스 가게 앞에 서니 입맛이 동한다. 수많은 사람이 여러종류의 만두 주문을 하고 국물도 달라하고, 설탕을 더 뿌려 달라하고, 주문을 취소하고 다른 봉지에 떡볶이를 대신 담아 달라고 해도, 여러 명의 수 십년 경력의 노련한 아주머니들은 귀찮은 기색, 피곤한 표정없이 당연히 그려러니 하며 그 요구를 쉽게 들어 준다. 그러면 따끈따끈 하고 푸짐한 만두와 설탕이 듬뿍 뿌려진 찹쌀 도너스를 봉지에 넘겨 받은 손님은 만족한 얼굴로 돈을 내고는 금새 다음 손님이 새 주문을 한다. 조금 더 줘도 조금 덜 받아도 괜찮다는 여유가 투정하는 조카들을 달래 듯 진심이 되어 손님의 마음에 와 닿는 듯 하다. 내 순서가 지나고 아직도 붐비는 그 가게 저편에는 어묵과 튀김을 사먹으러 오뎅과 국물, 튀김 대 앞에 사람들이 즐비하고 상점들은 내내 분주한 채 반나절이 지나고 있다. 수십년 만에 들른 이곳에서 아직도 아내는 손주들의 옷가지를 사고 나는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길거리 만두와 오뎅, 찹쌀 도너스의 맛을 소환 하고있다. 비가 오면 진흙 길이던 이 길엔 화려한 대리석은 아니지만 내실로 가득한 깨끗하고 편안한 거리가 되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를 쓰던 목소리 대신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유로운 표정이 이 거리를 대신 하고 있다. 아직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장사 준비를 하고, 하루 종일 손님을 맞으며 수십년 살다보니 주인도 나이가 들고 찾아오는 손님도 나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이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생 돈을 벌어 자식들을 키우고 대학도 보내고 유학도 보냈을 것이다. 이제 어린 손주들도 생기고 버스를 타고 전철역의 상가를 오가며 바삐 일하고, 우리가 오가는 시내의 어디에 그들의 자녀가 살고 있을 것이다. 가난 했지만 이 세대에 함께 살아간 사람들로 인해서 지금의 한국이 되었고 다를 바 없이 인생을 살다보니 나이가 들고 삶에 진심이 담긴 여유가 찾아들었다.커피 숍에 앉아, 아직도 따끈따끈한 봉지를 여니 김이 모락 모락나는 고기 만두와 설탕이 듬뿍 발린 찹쌀 도너스가 먹음직스럽다. 상인의 여유로운 진심이 와닿으니 더욱 마음이 편하다. 인색하지 않은 진심은 표정으로, 행동으로, 여유로 진실을 증명한다. 아직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남대문 시장은, 이 세대를 함께 살아온 나이든 우리의 얼굴을 닮았다.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2/11/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주 중에 ‘이스라엘과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호주 유대인 커뮤니티가 준비한 대중 모임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며칠 전 팔레스타인의 극단 이슬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가을 명절인 장막절이 끝나는 안식일에 5천여발의 로켓을 쏘고 수백명의 무장 테러 공습을 감행해 이미 1000여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망자와 2000여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1. 안식일의 공격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선 음악 축제에 모인 젊은이들을 낙하산을 탄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내려와 무차별 사격으로  260여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붙잡아 머리채를 휘어 잡고 옷을 벗겨 나체로 질질끌며 오토바이나 트럭에 태워 인질로 잡아갔다. 도처에서 살상이 일어나고, 유아들이 40명이나 한꺼번에 죽고 임신한 여인의 배를 찔러 태아와 함께 죽이는 일과 외국인들을 포함해 150여명이 넘는 인질이 잡혀갔다. ‘알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으로 전개된 끔찍한 살상은, 유대인의 안식일에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보복의 전쟁은 더욱 거세지고 잔인한 유아 참수와 강간과 살상으로 울부짖는 민간인들의 슬픔은 어느 쪽을 편들 수 없이 가혹하고 처참 하기만 하다.     세계 곳곳에서 하마스의 기습 테러를 규탄 하고 있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게, 팔레스타인을 두둔하는 시위도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버드의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260여 다문화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호주에서도, 바로 며칠 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 공격의 원흉이라며 맞불을 놓는 반 유대주의 시위가 일어 났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2. 신의 이름의 시위나는 몇몇의 호주인들과 아는 유대인들과 만나기로 연락을 하고 아내와 함께 시드니 동부에 있는 Dover Heights의 한 공원을 찾았다. 이름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찐 부자들의 동네라는 명성처럼 집들이 웅장하고 고급스럽다. 주최측은 보안을 유지하느라, 참석하는 사람의 각자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허락된 사람에게만 당일 오후에 개인적으로 참석 장소를 알려주는 치밀함을 놓치지 않았다. 1시간여나 걸리는 곳이니 일찌감치 출발을 했는데도, 부근에 이르자 이미 머리에 키이퍼를 쓰고 이스라엘과 호주국기를 손에 들거나 몸에 감싼 수 많은 유대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파킹을 하느라 밀린 차들로 골목마다 움직일 틈이 없다. 간신히 차를 돌려 한참 온 길을 따라 멀찍이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걸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앞에는 먼 발치서도 크게 보이는 초대형 스크린이 양 옆에 세워져 있고 중앙 스테이지엔 밴드와 사회자와 주요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언덕 꼭대기에 바닷 바람이 거세지고 대형 국기와 손에 든 작은 국기들이 더욱 세차게 펄럭이고, 만명은 넘어 보이는 셀수 없는 수많은 인파와 스피커를 통해 순전한 피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절절한 애도와 이들이 역사 가운데 반복적으로 겪어온 수많은 반 유대주의의 핍박의 호소가 절정에 달한다.  행사에는 주 수상이 참석하고 그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하며 그들 편에 서겠다는 감동어린 연설과 연방 수상을 대리한 당의 유력 인사의 애도와 시드니 대회당의 최고 랍비의 격려와 위로의 기도가 행사의 권위를 더한다. 유대인의 최고 구심점이 되는 유대인 연합 위원회의 선출된 30대 수장의 당찬 연설은 이들의 오랜 교육과 정체성과 품격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잠시, 우리도 숫자는 비슷하고 열정은 만만치 않은데, 이런 행사를 연출해 내기엔 호주 정부를 움직일 만한 위상과 민족 구심점이 부실한 듯 하다는 자존감 스크래치 나는 생각이 순간 스친다.   행사는 이들의 ‘신의 이름’이 담긴 전통 노래와 국가를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해산 되었다. 감정이 솓구쳐 소리를 지르는 일도, 상대를 비난하는 난폭한 언사도,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의 거들먹 거리는 위협도, 질서를 어지럽히는 거친 행동도 볼 수 없이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삼삼오오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머금으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상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3. 병적 이원론세상엔 신의 이름으로 점철된 많은 전쟁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홀로코스트, 중세의 마녀 사냥,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 르완다, 스탈린, 레닌의 구소련, 모택동의 중국 대혁명의 대량 학살이  그렇다.어느 철학자가 병적인 이원론은 신의 이름으로 선한 사람들을 모집해 악한일을 자행 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 이데올로기이다. 수없는 지성들이 나치의 사상을 만들고 지적 위엄을 더했다. 성서학자 게르하르트 키텔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데거, 세기의 위대한 법 철학자 칼 슈미트가 그 중심에 있었다. 나치 선동의 주동자 요세프 괴벨스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독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 지성 중의 지성이다. 아우슈비츠의 악명높은 의사 맹겔레는 인류학에 기반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었다.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결정한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의학 박사이었고  당시 인구의 2% 정도만이 대학 졸업자였는데, 친위대 장교들의 41%가 대학 졸업자였다고 한다.  시대의 지성들이 모두 반 인륜적인 악을 행하는 비인간화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오히려 유대인으로 인해 피해 받는 희생자로 둔갑하고 남에게 악을 행하는 명분을 삼았다. 극단적 이원론으로 발전한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극성을 부린다.  TV에는 매일, 가족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가족과 인질로 잡혀간 딸을 애타게 부르는 유대인 아버지의 슬픈 모습이 가득하다.    새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 3 계명의 의미가 무겁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2/10/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1.영화몇몇 지인들로 부터 유럽에서 상을 받은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이 직접 나와 질문도 받는 시간이 있으니 와 보라는 카톡을 여럿 받았다. 제목이 흥미롭고 궁금증이 발동해 영화 상영 장소 부근에 사무실이 있는 아들도 합류해서 저녁도 같이 먹을 겸 아내와 함께 오랜만의 영화 나들이를 하였다. 이미 도착해 빽빽이 앞자리들을 메운 관객들 사이사이로 내가 교회와 사회에서 아는 오랜 지인들의 뒷 모습이 군데 군데 보이고 이미 입구에선 떡과 샌드위치, 물과 은박지로 싼 김밥과 귤이 담긴 도시락을 나눠 주려고 봉사자들이 손길이 분주하다. 단상 정면엔 감독을 환영 하는 사인이 걸려 있고, 단상 위를 가득 채운 커다란 스크린엔 이 모임의 취지와 관계자들을 소개하는 글귀가 비춰지고 내가 평소 아는 지인의 축사가 상영 전 마지막 순서로 진행 되고 있었다. 교민 행사에 자주 가본 적이 없어 어색하리란 우려를 알기라도 하는 듯,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 한것 처럼 비워있는 자리를 잡아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 할 수 있었다. 좀처럼 이런데 오는 걸 꺼려하는 아들이 바로 옆에 앉아 의외로 불편한 기색이 없으니 더욱 안심이 된다. 2. 평화와 사랑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1950년 대의 한국의 암울한 시대로 곧 바로 소급되었다. 세계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남북 전쟁을 치른 후 북한에는 약 10여만명 이상의 전쟁 고아가 생겼났다고 한다. 그들이 동부 유럽의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체코,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에 난민처럼 보내지며 약7년여의 세월 동안 그 땅에서 살아간 어린 아이들의 삶의 흔적을 좇아 사료들을 찾아내  영화의 이야기로 삼았다. 초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앳된 아이들이 긴 기차 여행을 마치고 낯선 동구의 땅에 발을 디뎠다. 전쟁에 내동이쳐진 고아들의 우울하고 위축된 모습이리라는 예상과 달리 또래들과 이국 선생님들의 환영을 받으며 밝은 얼굴로 낯선 이국 땅의 생활이 시작 되었다. 다른 언어와 문화와 다른 이념을 가진 나라들이었지만 인터뷰에 등장한 80대의 교사들과 학급 동료들은 한결 같이 언어와 이질 문화는 이들과 친분을 쌓아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일년이 채 되기 전 이들은 이미, 소통의 벽을 훌쩍 뛰어 넘어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에도 깊은 우정과 연인의 애정을 쌓아가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어깨 동무를 하고 껴안으며 운동도 하고 소풍도 가고 함께 먹고 배우며 환하게 웃는 이들은 의지 할 곳 없는 외로운 전쟁 고아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지 않고 따스한 우정과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웬만하면 텃세도 부리고 갑질을 할만한 충분한 여건인데도 사진과 기록과 영상은 그저 짖궂은 장난과 사소한 농담을 주고 받던 차별없는 친구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한껏 담겼다.  이들 중에는 그 당시 북한에서 파견된 한국인 교장과 여려 어려움을 넘어 공식적으로 결혼 하게 된 제오르제타 미르초유(87)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도 담겼다. 아이도 낳고 결혼도 했지만 결국 북한으로 철수하며 ‘주체사상’ 수립의 여파로 외국인들과의 교류와 결혼을 배격하는 정서가 만연했고 지방으로 파견되며 연락이 단절된 남편과 영영 헤어져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 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평생 남편이 살아 있다고 믿고 한국어를 잘 배워야 남편과 만날 때 소통을 잘 할 수 있다며 루마니아-한국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폴란드에는 ‘집에 온 손님은 신이 찾아 온 것과 같다’ 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당시 2차 세계 대전 후 모든 동구 국가 역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소원이 빵 한 조각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어 보는 것이 었지만, 그 빵을 북한의 전쟁 고아들과 쪼개 나눠 먹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고 회상 했다. 아직도 북한 친구들의 이름과 노래를 기억하며  그들을 그리워 한다. 이미 70년 세월이 흘러 80대의 노인들이 되었지만, 그들의 동심에 담긴 우정과 사랑의 기억은 평생 보고 싶은, 그들의 땅에 진정한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득 담았다. 3. 기억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아온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세상 사람들은 역사를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기억을 기억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에 머무를 수 있지만 기억은 역사가 개인의 삶이 되고 민족의 지속성과 생명력을 보장하는 강렬한 능력을 동반 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평안북도 출신이시다. 일제와 남북 전쟁을 경험한 실향민으로 호주에 까지 와서 살았지만 평생 그리던 북의 형제들과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 관객 중에는 그 시대를 몸소 기억하는 80-90대의 연배들이 여럿 계실 것이다. 영화는 감정을 유발하기 보다 사료들을 잠잠히 되 짚어가는 과정을 담은 것인데도,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한 민족이 죽고 흩어지고 그리워 하며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 가지만, 동구의 알지못하던 사람들이 베푼 순수한 온정과 따스한 사랑이 이제 역사를 넘어 수많은 이들의 삶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파킹 시간 때문에 조금 일찍 자리를 떠나 돌아 오는 길에 아들이 “하나님은 이 땅에 모두 평화롭게 살라고 만들어 줬는데, 사람들이 죽이고,미워하며 전쟁터로 세상을 만들었다며, 이제부터는 폴란드와 동구권 사람들을 만나면 잘 해 줘야겠다” 고 한다. ‘김일성의 아이들’ 영화에는 역사를 통해서 ‘평화와 사랑’을 기억 하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듯 하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7/09/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흔히 Gender Party라고 불리는 태아 성별 파티를 며칠 전 집 마당에서 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첫째 며느리 가정을 축하하기 위한 제안이 성사 된 것이다. 이 이벤트는 가족들이 모여, 의사로부터 성별이 담긴 레터를 처음 부터 당사자가 받지 않고 이벤트를 준비 하는 사람에게만 전달하고, 이를 맡은 씩씩한 둘째 며느리는 철두철미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기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당일 아이들을 데리고 모두 집에 모이게 되었다. ‘이벤트의 여왕’이라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 둘째 며느리가 연출자가 되어 극비리 기획한 이벤트는 가족들이 극중 배역을 맡 듯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축구공을 마당 가운에 세워 놓고 가족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첫째 아들이 달려와 축구공을 차면 공이 터지면서 딸이면 핑크 가루, 아들이면 파란 가루가 공중에 가득 퍼지고, 그 때 관중들(가족) 중에 축포를 들고 대기하던 나와 첫 째 며느리가 그와 동시에 축포 밑둥을 힘차게 당기면 색종이가 공중에 펑하고 퍼져나가는 것이다. 목소리가 당당한 둘째 며느리가 큰 소리로 여기에 서 있으라, 저기에 갖다가 둬라 진두 지휘를 하고 드디어 ‘Run’ 하고 소리치자 큰아들이 달려나와 공을 차니 파란 가루가 창연하게 퍼지며 놀래 얼떨결에 당긴 축포에서는 새파란 색종이가 공중으로 가득 퍼진다. 아들인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따라 나왔던 세명의 꼬맹이들은 어른들이 ‘와, 아들이다!’ 하며 지르는 탄성과 하늘에 퍼진 가루와 색종이를 잡으려 깡총깡총 뛰며 신기해 한다. 가족들이 달려와 첫째 며느리에게 둘째도 아들이네! 하며 축하하고 안아주고 등을 두드린다. 둘째 며느리가 역시나 훌륭한 연출을 마치고 극비 보안을 유지 했던 의사의 성별 소견이 담긴 봉투를 전달하니 드디어 ‘Male’ 이라고 쓰여진 레터를 모두 확인 할 수 있었다. 흥분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와 첫째 며느리가 준비한 특별 메뉴를 먹으며, 딸만 둘인 둘 째 아들이 “형네는 아들 둘, 우리는 딸 둘 완벽한 숫자네..” 하자 둘째 며느리가 “다음엔 우리도 반드시 아들을 낳을 거에요” 한다. 요즘 세대에, 셋째를 마다 않는 며느리의 다부진 아이 사랑이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새 생명을 축하하는 웃음이 온 가족의 얼굴에 번진다. 한국의 출산율이 걱정이다. OECD 국가 중 최 하위이고 이대로면 수십년 후엔 국가 존재가 위태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출생 기록은 있는데 2,000여명의 영 유아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됐다고 한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경기도 수원에서 한 여성이 아기 2명을 출산하고 살해한 뒤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한 사건이 드러났다. 화성에서는 친모가 1개월 된 영아를 인터넷에서 알게된 어떤 사람에게 넘겨 주었고 가져간 사람의 신원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아파트단지 분리 수거장에서 탯줄이 잘린채 나체로 발견된 남아의 시신이 발견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변기에 버리거나 생 매장을 하거나, 아이를 보호처에 몰래 맡기고 자기 출처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그런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다 사정이 있겠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는 마음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싸이코패스 살인범들을 연상케한다.  범죄자들의 뇌를 연구하던 ‘제임스 팰런’이라는 뇌 과학자가 자신의 가문에 흉악한 살인자와 범죄자가 많은 싸이코 패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싸이코 패스는 감정이 없고 대담한 호기심을 행동에 쉽게 옮기고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문의 3대에 걸쳐 대물림이 되면 유전적으로 사회 전체가 악화되고 회복 하는데만 수세기가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학대 없이 잘 양육된 경우는 자신처럼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고 융화하며 잘 적응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이다. 그는 자기가 신에게 드린 제사가 거부당하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이자 시기심으로 동생을 때려 죽였다.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무감각한 존재로 살아가는 지 모른다.  신은 이것을 고치려고 직접 설득도 하고 혼도 내며 부단히 애를 썼지만 생명 보다 죄를 더 사랑하는 인간 모두를 구해 낼 수 없었다. 급기야 신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그가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스스로 증명 하려고 하였다. 존재감 없이 죽어간 아벨 처럼 신은 자신이 죽어서 신과 관계하는 생명으로 살게 하려 죽기를 택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참된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데 있다’고 말했다.  비록 세상에, 생명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수두룩 해도 사랑이 많은 하나님으로 인해 그 생명을 세상의 끝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최대의 복지를 마련 해 둔 셈이다. 그가 바로 생명에 최고로 목숨 건 생명 수호의 끝판 왕이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앞 마당엔 아직 치우지 못한 파란 가루와 금박 색종이들이 새 파란 겨울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환하게 반짝인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20/07/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MZ 세대는 세련되고 산뜻하다. 유행처럼 말을 짧게 하고 거침이 없고 자신 만만하고 자기 표현이 분명하고 다른 문화권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똑부러지고 똑똑한 세대로 인식되어 있다. 흔히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지난 몇 세대에 걸친 당연한 불만이 없어지고, 오히려 기성 세대 스스로 먼저 그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세대로 대우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 되었다. tv에서도 신조어를 창출하고 자유 분망한 젊은이들의 튀는 말과 행동을 부러워하며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촌스럽고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는 꼰대 세대로 취급되기 일쑤이니 기를 쓰고 아는 척하고 친한 척하는 것이 방송인들의 흔한 제스쳐가 되었다. 최근에도 BTS가 10주년 공연을 할 때 40만명이나 전세계에서 모이고, 세계 음반 차트를 좌지우지하는 블랙핑크와 대세를 이루는 밴드들의 세계적인 인기가 뒷받침하고 있으니 나무랄 수 없는 충분 요건을 갖췄다. 요즘에 전 국민을 놀래키는 몇가지 사건이 연거푸 신문에 실렸다. 모두 20, 30대 초반의 MZ 세대라 불리는 젊은 사람들의 사건이기에 더욱 놀랍고 충격적이다.  1. 정유정부산에서 같은 또래의 한  영어 과외 강사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을 잡고 보니, 23살의 얌전하게 생긴 평범한 여성 이었다. 죽여 훼손한 시신을 담을 캐리어를 아무일 없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끌고 가는 CCTV에 잡힌 모습은 모두를 아연실색게 한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는 진술과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라고 적은 메모는 조그만 여성 안에 이런 참혹한 생각이 꿈틀대고 있었다 것이 믿을 수 없는 충격이 된다.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당연히 할 일을 한 듯 뭇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 섬뜩 하기만 하다. 검찰은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족과의 불화, 대학 진학 및 취업 실패 등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고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이 어우러져 범행에 이르렀다”고 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갓 23세 이다.2. 한국의 폴포츠한국의 폴포츠라 고 불리던 한 가수가 어제 “이제는 제 목숨으로 제 죄값을 치르려 합니다”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2011년에 ‘ 코리아 갓 탤런트 ‘ 라는 유명 경연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실력있는 성악 전공 가수이다. ‘불후의 명곡’ 같은 인기 프로에도 나와서 톱 가수들과 실력을 겨루고 가난과 암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성실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면모를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 그가 여러 암투병 한다는 것이 거짓이고, 후원 받은 돈으로 술집을 들락이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하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그것을 시인하고, 방송과 공연으로부터 퇴출당하게 되었다. 후원 받은 돈을 돌려주기 위해 식당에서 서빙과 아르바이트 등의 여러 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그는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는 받은 사랑이 많아 모든 걸 안고 가겠다고 했지만, “ 비난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중에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없었다”고 마지막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직 30대 초반의 나이다. 3. 새로운 여정그들은,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동경했지만 커보이기만한 이 세상을, 인간 모두가 덧입고 사는  죄의 근성에서 헤어날 방법을 모르고 살았다. 죄성이 괴물처럼 내면에서 자라고 사람들이 혐오하는 사람이 되가는 동안 죄를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가족도, 선생님도, 비난을 견딜수 있게 하는 한 두명의 내 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엔 온통 죄를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한데 용서와 참회를 알려주고 기도해 주는 어른도 종교 지도자도 주위엔 없었다. 죄 값이 무엇인지 모르고 23세 여성이 살인을 했다. 죄 값을 치르려고 30대의 청년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그들은 죄에 대해 지식이 없었다. 세대가 변해도 인간은 죄와 더불어 사는 죄인일 뿐이다. 신은 일찌감치 죄짓는 인생을 위해서 죄의 법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대신 죽게해서 인생의 죄 값을 치르게 하셨다. 원래부터 인생은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운 신은 의외로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다. 누구든 참회를 하면, 거기에서 세상이 막지 못하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모든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믿으면 되는 일이다.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22/06/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1. 거짓 메시야최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나오자마자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 1위, 홍콩,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베트남과 같은 많은 나라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관심을 받았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연일 1,2위를 차지 한다는 소식은 뿌듯하지만 이번 상위권 등극은 개운치 않은 뒷끝을 남긴다. 그 폭로 내용이 충격적이고 과연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일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이해할 수 없는 의구심이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를 메시야라고 부르는 네 명의 거짓 메시야와 거짓 선지자들이 실제 어떤 인물들인지 파헤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았다. 특히 ‘JMS, 신의 신부들’ 에서는 그를 맹신하는 젊은 여신도들이 성관계를 통해 메시야의 은총을 덧입는 것처럼 수 많은 사례들이 소개돼 충격을 안겼다. 어느 방송에선 이대로 지속됐다면, 젊고 키가 170cm 넘는 예쁜 여성들이, 무려 만 여명에 이르도록 피해를 당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이미 수년 전 동일한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서 10년을 복역하고 약 5년 전에 출소 했는데 이런 일들이 또 발생하고 있다. 신도가 수 만명에 이르고 그 중심 지도부는 모두 한국의  명문대학 출신들이고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추종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이다. 지성을 대표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를 분별하지 못하고 수 십년 동안 오히려 ‘거짓메시야’의 꼭두각시가 되어 많은 사람을 영적 혼동과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주범이 되어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거대 우상 오늘 신문엔 북한이 탄도 미사일(SRBM) 등에 장착할 전술핵 탄두를 전격 공개했다고 보도됐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가까운 유럽의 크림 반도와 같은 백령도를 강제 점령하고 핵 미사일로 협박을 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사진엔 늘 그렇듯이 당당해 보이는 30대 김정은 앞에는 굽신 거리며 메모를 하며 매 순간 그의 눈치를 살피는 나이 지긋한 노년의 간부들이 등장한다. 당 대회를 하면 분위기를 압도하는 거대한 붉은 홀에 가득한 북한의 지성들이 혼이 나간 듯 박수를 치며, 마치 메시야를 만난 듯 앙망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가 나타나면 뭇 시민들도 한복을 차려 입고 껑충껑충 뛰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환영한다. 탁월한 두뇌로 핵을 개발하고 전세계의 정보망을 해킹하는 능력의 지식인들이 전세계가 악의 축이라고 외면하는 독재의 나라에서 충성하는 사고는 사뭇 JMS의 추종자들을 닮았다. 얼마 전 다녀온 그리스엔 고대로 부터 남아있는 신전들이 즐비하다. 여사제들과 혼음을 하며 신 앞에 제사를 지낸 거대한 건물의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 올림프스 산에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에도,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 많은 사람들이 돈을 준비하고 예물을 준비해서 거룩한 곳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제녀와 여 사제들과 성적 유희를 통해 자신의 영혼이 신께 드려지고 자신의 영혼과 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을 것이다. 수 천년에 이르기까지 우상에게 자신의 영혼의 평화와 구원과 생의 축복을 간구하며 그들은 모두 죽고 짐작할 수 없는 세계로 사라졌다. 3. 악인의 형통이번에, 넷플릭스에 고발된 ‘거짓 메시야’ 무리들은 모두 성도가 수만에 달하는 대형 집단들이다. 호주의 작은 교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성장을 이루고 그 위세와 카리스마에 눌린 맹종과 어수룩한 방임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하는 원인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그 속의 엘리트 집단은 더 매혹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리 준비된 친절과 촘촘히 설계된 관계의 그물망 안에 갇히게 되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말라는 성경의 말이 진심이 된다.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용모가 준수한 청년이었다. 요셉을 유혹하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겉옷을 벗어 놓고 도망치자 오히려 자기를 겁탈 하려했다고 모함하여 그를 감옥에 갇히게 하였다. 욕망으로 가득하고 술수에 능한 보디발의 아내는 그 후에도 형통해 보이는 부러워 할 만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남편을 속이고 주위를 속이는 더욱 고도화된 거짓의 탁월한 능력은 얼마든지 또 다른 희생자를 거듭 양산했을 법하다. 표호하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찾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뜬 눈으로 코를 베이고, 그물망에 걸린 듯 허구 인생을 살다가 알지 못하는 죽음의 세계로 사라지는 수많은 영혼을 안타까워한 분이 있었다. 어리숙하고 욕심에 찌든 죄 많은 영혼이지만, 건져내 숨통을 열어 주려고 이 세상을 직접 만든 신이 보낸 분이다. 그래서, 이 예수에게만 혼미한 세상의 확연한 해답이 있을 뿐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30/03/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1. 방문새해가 되어, 오랜만에 친하게 지내던 장로님 댁에 들렸다. 1990년쯤 같은 교회에서 만났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일찌감치 호주 이민을 선택한 장로님은 이곳 대학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나도 영어를 배운다며 등록을 했다가 몇년 동안 같은 학교를 한 차로 다니며 장로님이 가르치는 과목도 몇 과목 수강하면서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 땐 아이들도 어렸지만 이젠 모두 시집 장가를 가고 큰 딸은 이미 대학을 다니는 아이를 두었다. 팬데믹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인 권사님에게 암이 생겨 항암 치료 때문에 자주 올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항암 치료가 호전적이고 교회도 나가며 일상을 병행할 수 있게 되어 비로소 들르게 되었다. 권사님의 얼굴은 반가워하며 평온한 얼굴이다. 일부러 점심 때를 피해 오후에 잠시 들린다며 불쑥 들렸는데, 저녁을 먹고 가라며 상을 차려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과 나물들로 예전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되살리며 밀린 얘기를 오래 나누게 되었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아이들도 다 커서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어린 아이처럼 솔직한 속내를 말한다. 언젠가 뵐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반가움 가운데도 슬픈 마음이 한 켠을 채운다.  곧 들르겠다며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 왔다. 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호주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들이라며 30여년의 인연을 고마워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순전하고 정겹게 살아온 친구 같은  장로님에겐 세상 속에 여전히 때묻지 않은 사랑이 있다.   2. 장례식사 중에 전화를 받은 권사님이 아들의 장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었다. 한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아들의 장모는 우리도 잘아는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던 성격이 소탈한 분이다. 그분의 두 딸과 아들은 우리 아이들과도 형, 동생으로 같은 교회에서 자랐고 지금도 틈틈이 소식을 듣곤 했었다.   최근 파킨슨 병을 앓다가 팬데믹으로 가족들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 하다가 한국에 가서 고통 사고를 당하고 호주로 돌아오자 입원을 하곤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며칠 후 교회에서 열린 위로 예배에 오랜 만에 만난 남편 집사님과 아들을 껴안자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귓전에 전하며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더욱 힘있게 껴 안는다.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도 슬픈 마음은 떨굴 수 없다. 조문을 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선 줄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반가운 옛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알던 분들이 먼발치서 손짓을 하고 잡은 손을 몇번씩 흔들며 건강도 묻고 근황도 궁금해 한다. 머리가 희고 주름 잡힌 세월을 피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하나도 늙지 않았다며 웃는 하얀 거짓말과 함께 반가움이 얼굴에 가득 피어오른다. 한 때 관계가 소원 했던 사람도, 생각이 달라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도 있지만 세월은 그런 쓴 기억 정도는 가볍게 묻어 버리게 하는 초능력이 있다. 슬픈 순간이지만 옛 얼굴들을 만나니 정겹고 반갑기 그지 없다. 장례는 슬프지만 천국을 동반하는 곳이다.  3. 소식몇 주 전에 알던 목사님의 별세 소식에 이어 어제도 한 목사님의 부고를 받았다. 새해를 시작하며 유난히 부고의 소식이 많다. 유족들도 지인들도 갑작스런 죽음을 쉽게 마주하기 힘들다. 공자는 제사와 전쟁과 질병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모두 세상과 죽음, 그리고 제사에 관한 것이다. 전쟁과 전염병과 죽음이 주위에 산재한 지금 시대를 예견이나 한 듯, 오랜 세월 난제로 남은 죽음의 슬픔은 기쁨이 대신 해야 비로소 감당 될 수 있는 모순을 감춘 숙명을 가졌다. 예수는 이 난제를 풀어주기 위해 세상에 왔다. 난처한 제사를 지내는 애곡의 현장에, 천지를 만든 생명의 주인이 함께 하는 천국으로,  죄 많은 인간이 죽고나서 들어 올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이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약속이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른 것 보다 늘 믿음을 칭찬하고 불신을 책망했다. 새해에 이제 겨우 발걸음을 떼는 손자 손녀들과 다녀온 아버지 산소에서, 여기 계시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반가운 사람들이 언젠가 모두 떠날텐데,  오랜만에 또 만날 수 있다면,  이 슬픔을 해결할 더할 나위없는 기쁜 소식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2/02/2023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지난 11월 20일부터 시작된 월드컵 본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한국도 탈락의 위기에서 기사 회생하면서 16강에 진출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국민들에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흥분과 승리를 쟁취하는 기쁨을 얻게 하였다. 게임을 거듭하며 알지 못했던  선수들의 기량과 이름이 부각되고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어록이 생겨났다. 1. 중꺽마한국 선수들이 만든 최고의 어록은 ‘중꺽마’이다. 이 말은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다 라는 말의 줄임 말이다. 가나에게 2차전에서 지고 16강 진출이 희박해 진 상황에서, 3차 포르투갈전에서 극적으로 역대급의 역전승을 거두게 한 락커룸의 다짐이다. 그들은 결국 16강에 진출했고, 공항에 수많은 팬들이 모이고 온 국민의 환대를 받으며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들을 향한 MZ세대의 고백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애국심을 부추킨다. 어느 해설가가 부상 당하고 피흘리는 선수를 향해 내가 다치고 피흘리고 싶다고 한 말은 그저 멋지고 싶어 한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속 마음을 대변한 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선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었다. 청와대에도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역대 최고의 보상도 받게 되었다. 거기엔 하나도 아깝지 않은 국민의 진심이 담겼다.     2. GOAT 어제는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를 3:0으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주장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 마지막 댄스가 될 것이라며 그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며칠 후 결승에서 프랑스와 마지막 대결을 하는데 잉글랜드 대표 출신인 캐러거는 “메시가 역대 최고”라며 Greatest of All Time의 첫 머리만 따서 ‘GOAT’ 즉 ‘염소 논쟁’에 불을 당겼다. 과거 펠레나 마라도나와 같은 전설과 같은 선수들처럼 월드컵에서 우승만 한다면 그가 역대 최고의 자리에도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근 한 달간 전 세계가 울고 웃으며 숫한 어록과 가십들을 남기며 한결 세계가 가까와진 느낌이다. 아프리카 아랍권의 전혀 지식이 없던 ‘모로코’가, 또 역사가 복잡해 이름도 생소한 남부 유럽의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며 최고를 향한 그들의 실력과 정신력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박수와 갈채를 보내게 된다. 세계 저 쪽 알지 못하던 여느 민족에 관심없던 그들 만의 역사와 문화를 새삼 존중하게 된다. 4강을 제외한 32개국의 대표단들은 카타르를 떠나 이미 자국으로 돌아가고, 이제 며칠 후 결승전을 치르면 아쉽게도 4년 후에나 이런 기쁨과 보람을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이 세상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남같지 않은 정이 들었다.         3. 존재의 의미지난 4년 동안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파울루 벤투도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며칠 전 자국인 포르투갈로 출국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성원해 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선수들이 보여준 프로페셔널리즘, 자세와 태도에 감사하고 선수들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경험을 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역대 감독으로서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그의 고별사이다. 그는 임원들과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무뚝뚝한 그가 눈시울을 붉히며 대한민국을 떠났다.  최고를 향한 열정으로, 최고가 되려는 고생을 함께 할 때 생겨난 진심어린 감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월드컵으로 새벽을 깨우고 피곤해 하면서도 흥분으로 지내다보니, 벌써 12월이 되었다. 어느새 또 한 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송년 모임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 오고, 벌써 몇 군데를 참석하고 이번 주엔 송년 수련회도 다녀왔다.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농담도 하며 소박한 선물을 나누면 세상에 함께 애쓰며 살아가는 예전엔 갖지 못했던 친밀감이 스며든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부여한 의미보다 존재 자체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그의 존재 인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부여한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존재의 의미가 그 존재 자체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몰랐던 것은 순전히 나의 무지 탓이고,  알지 못했던 민족과 문화와 역사 속에 존재한 사람과 국가는 모두 소중한 의미를 가진 존재들이다. 월드컵은 세상 저 끝의 모르던 사람들에게 정감을 갖게 하였다. 다시 새해를 향해 함께, ‘중꺽마’( 꺽이지 않는 마음) 로 ‘역대 최고’를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서로의 존재 의미에 새삼 눈뜨게 한다.     

15/12/2022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바야흐로 봄이 되었다. 비가 유난히 많았던 긴 겨울이 지나고, 자카란다 보랏빛 창연한 요즘은 산책로를 따라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하루에 만보는 걷는 게 기본이라며 주위에 제법 성공 사례들을 자랑하는데, 나는 애를 써야 7-8000보를 걷는데 그치곤 한다. 그것도 어쩌다 골프를 치거나 일부러 바다나 산을 찾을 때이고 평소엔 두세번 사무실이나 집 주변을 걷는 것이 고작이다. 오늘은 사무실 앞에서 점심을 먹고 날씨도 화창해, 상가를 따라 이어진 주택가까지 넓게  사이클을 그려 주변을 걸었다. 1. 현상금 광고소방서를 지나 낯 익은 집들을 지나가는데, 언뜻 어느 집 앞 펜스에 현상금이 붙은 개를 찾는 사진 광고가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온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Missing Dog이라 쓰고, 그 밑엔 현상금이 무려 $2500이나 된다고 써 놓았다. 개 이름은 ‘칠리’이고 입이 뾰족하고 코가 새까맣고 둥글고 오똑하고, 동그란 눈이 맑은 자그마한 포메라니언 종이다. 하얗고 황갈색 긴털이 샤워를 자주하고 털을 잘 빗어 줬는지 가지런하고 사진인데도 빛이 나는 듯하다. 개에 관한 정보를 담은 A1 정도의 큰 사이즈의 칼러 광고는 흰 바탕에 라미네이팅을 해서 반듯하고 비가 와도 젖거나 훼손 되지 않고 계속 보존될 수 있도록 세세한 신경을 썼다. 7월에 잃어 버렸다고 하니 벌써 4개월이나 되었다. 사람을 찾아도 그 정도 현상금을 붙이는 게 흔하진 않을텐데, 동네 집 앞 내붙은, 광고 한 장으로도 얼마나 개를 사랑하는 주인인지 짐작이 간다. 웬만한 사람보다 값이 더 나가는 드문 개이다. 좋은 종자인 것도 맞지만 사랑많은 주인을 만나니 주가가 오른 것이다.  2. 잃어 버린 개우리도 개를 잃어버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앞 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가 누가 찾아와서 게이트를 잠시 여는 사이 빠져나가 며칠 만에 동네 카운슬이나 RSPCA에서 연락이 와서 찾은 적이 있었다. 오래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도 우리 개들은 집을 찾지를 못하곤 했다. 작은 개는 집 부근에서는 다시 돌아 오곤했는데, 빈틈이 보여 뛰어 나간 때는, 너무 빨리 뛰어서 결국 잡지 못하고 동네 방네, 개 이름을 부르며 늘 다니던 산책로까지 먼 길을 돌아 다녀야 했다. 뛰쳐나간 개를 향해 나면서부터 먹이고 산책하고 했는데, 집도 못찾아오는 멍청이 같은 놈이라고 푸념을 해도 길을 뛰어들다 차에 치지는 않았을까? 앞만보고 뛰어 가다 길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배를 굶고 있진 않을까? 추울 텐데 어디 피할 데는 있을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내일 이라도 연락이 오겠지.. 요행을 바라며 밤을 보내 적이 몇번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며칠 내에 연락이 와서 다시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 10km이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락이 오거나, 개를 발견한 사람이 잘 챙겨서 동네 동물병원(Vet)에 보내 칩에 있는 정보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동안 개를 재워주고 보살펴준 돈을 내고, 주인인 것을 확인하는 몇가지 절차를 거쳐야 개를 찾을 수 있지만 반가움은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아내가 다리를 다쳐 무릎도 아프고, 우리가 긴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아들이 돌 볼 사람을 찾아 보내 집에는 개가 없다. 오늘처럼 개를 찾는 광고를 보면, 불현듯 개들이 보고 싶다. 나와 산책을 다니던 덩치 큰  ‘장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에서 자라 정이 많이 들었다. 아내는 가끔 개 얘기를 하다가, 멈칫, 보고 싶은 마음에 울컥하곤 한다. 아내는 만약 내가 죽으면, 그 때는 다시 개를 키울 것 같다고 한다.  3. ‘돌아온 랫시’우리가 어릴 때 즐겨 보던 ‘돌아온 랫시’는 한 가족이 다른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다른 개들의 공격을 받아 개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다가, 희망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잃어버린 개가 6개월 만에 4천킬로 떨어진 거리를 횡단하여 주인을 만나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시리즈 드라마였다.  사진 광고를 만든 개 주인은, 4개월이 되었지만, 이런 기적 같은 재회를 꿈꾸며  동네마다 포스터를 붙였을 것이다. 불쑥 야곱이, 끔찍이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잃어 버리고 얼마나 그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했을까?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집트에 내려가, 막내 ‘베냐민’ 마저 볼모로 잡혀가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 봄에, 이태원에서 숨진 어린 청년들을 마음에 뭍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뛰어나와 그를 껴안고 볼에 입 맞추고, 상속자의 반지를 끼워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다시 내 앞에 돌아 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캡처해 놓은 듯하다. 새 봄에, 잃어 버린 아들이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0/11/2022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아내는 끔찍히 무서워 하면서도 범죄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더 할 나위없이 기호에 딱 들어 맞는 0순위 영화이다. 아이들이 분가 후 썰렁한 집안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데 넷플렉스가 제공한 공헌도는 가성비의 만족 지수를 훌쩍 넘어 상이라도 줄만큼 지대하다. 특히나 팬데믹을 지나, 요즘처럼 지겹도록 비가 와서 집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 때엔 이만큼 대견한 효자 대안이 없다. 1. 영화 이야기아내가 며칠 동안 눈에 진물이 나도록  틀어놓고 보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에 시리즈로 나온 ‘ 다머 ’라는 범죄 스릴러 물이다. 마루를 오가며 다른 선택권 없이 나도 먼 발치서 보다가, 이내 재미에 빠져들어 자리를 틀고 앉아 몇 편을 내리 보게 되었다. 원래 제목은 ‘Monster Dahmer’ 이다. 실제 인물인 ‘제프리 다머’는 의사 아버지와 산후 우울증을 앓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에 10년에 걸쳐 17명의 남성을 살해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웠고 잦은 싸움 끝에 이혼을 하고 떠난 엄마의 빈자리는 사랑의 대상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성정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틈틈이 아버지는 흥미로워하는 어린 아들에게 동물을 해부하는 것을 배워주고 제프리 다머는 사체해부에서 변태적인 쾌감을 느끼며 자라난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만나는 남성들에게 약을 먹이고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살해하고 장기를 훼손하고 먹기까지 하는 끔찍한 괴물로 변해 간다. 아버지가 구해준 작은 아파트에서는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그의 집에서 죽음 직전에 도망쳐 나온 한 흑인의 제보로 제프리 다머는 결국 경찰에 잡히고 순순히 자신의 숨겨진 살인을 자백한다. 그는 결국 종신형에 처해져 감옥에 수감 됐지만 다른 수감자에게 살해 당하면서 그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귀엽게 태어난 아이였는데 사람을 죽이고 사체를 훼손하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괴물로 살다 생을 마쳤다.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의 탁월한 기술력에 빨려들어 내처 영화를 봤지만 마음엔 마치 소화되지 않는 오염된 음식이 걸린 듯 편칠 않다. 2. 신문 이야기며칠 전 한 한국인 연예인이 마약복용으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충격적 기사가 실렸다. 그는 유명 가수들에게 히트곡을 많이 만들어 준 유명 작곡가이고 명문대 출신에 고급 퀄러티 고기집으로 대박을 낸 보기 드문 성공 예능 연예인이다. 최근엔 ‘금쪽 상담소’라는 유명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인생의 성공과 내면의 다중 인격에 대해서도 드러내 놓고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그 때 그에게 이런 취약한 내면이 있으리라고 여느 시청자들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신문에선 ‘그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라는 지독한 제목을 실었다. 요즘 상담 프로에 등장하는 많은 연예인과 전문인들의 문제는 심한 우울증과 강박에 관한 것들이다. 인기있는 유명인이고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특히 가정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여파는 마음 한 구석에 늘 사랑의 결핍으로 깊이 패인 상처로 남아있다. 불안과 공허를 메울 뾰족한 대안이 없어 늘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살기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이 문제의 대표적 증상이다. 하긴 성경에도, 교육도 잘 받고 유명한 선지자인데 죽고 싶으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생떼를 썼던   엘리야나 요나같은 인물도 있었으니...    사랑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결핍은 칭찬과 선심을 의심하는 아이러니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커지면 미움과 불안으로 가득찬 괴물이 되곤 한다. 사람은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는 잠재력 다분한 존재들이다.3. 철학자 이야기 에리히 프롬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의 불안과 분리의 진정한 해답이 거기에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불안을 채우려고 사랑이 없는 성적 쾌락과 술에 취하고 마약에 빠지지만, 그것은 난폭하고 즉흥적이고 주기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명예와 부를 붙드느라 정작 중요한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사는데에 반복된 결핍의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은 원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불편한 제안을 했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성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니 ‘사랑’엔 주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가한 아들들에겐 아내와 아이들이 생기고, 독립과 동시에 새 가족으로 확장되는 변화 무쌍한 시대에 서툰 ‘사랑’ 이 되지 않아야 할 숙제가 쌓인다. 그래도, 신이 친히 보여 준 ‘사랑의 기술’이 한 가득 ‘성경’에 담겨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13/10/2022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

얼마 전 한동안 쏟아진 폭우로 이방 저방 천정에서 비가 새고, 베란다의 지붕이 조금씩 적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시커먼 자국과 큰 구멍을 남기고 구멍 속 헹하니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두고 볼 수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저 비 샌 데를 때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수를 시작했지만, 이곳 저곳 손 볼데가 눈에 띄고 하루 이틀이면 되겠지 했던 섣부른 판단과 달리 일주일이나 걸리는 준공사가 되었다.  지붕에 올라 비샌 데를 찾아 고치고 천정도 뜯어내고 새로운 판넬을 붙이고, 이방 저방 화장실과 베란다, 창틀과 외벽, 비닐도 덮고 페인팅을 하다보니 온 집안이 공사판이 되었다. 정작 집주인은 공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기술, 무용도 처지니, 저쪽 방 한군데 피난민처럼 피해 있다가, 멋쩍으면 이것저것, 거치는 것들은 창고로 보내고 창고에선 기와도 찾아보고 예전에 썼던 페인트 통을 찾아서 페인트 색도 확인 해 주는 ‘그나마 보조’ 역할을 자처해 나선다. 창고의 진실 오랜 만에 내려와 본 창고엔,  언젯 적부터 였는지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을 가서 찍어 휘장으로 만든 가족 사진도 한 쪽 귀퉁이에 세워져 있고, 지금은 완전히 은퇴한 옛 파트너와 함께 쓰던 사무실용 탁자와 서류 꽂이와 자격증 액자들도 한 쪽 구석에 쌓여져 있다. 사무실을 옮길 때 전해 줘야지 하며 잊고 있던 것이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아이들이 자랄 때부터 쓰던 고풍 식탁도 두툼한 다리와 윗판이 분리된 채로 한물 간 옛 배우의 포스터처럼 한 쪽 구석으로 내몰렸다. 공부하느라 남겨둔 책들과 노트들도, 한 때 열심히 사두었던  음향 장비와 스피커 등에도 먼지가 쌓였다. 들여다 본지 오래된 창고의 물건들이  언제 이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아스라한 옛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이미 수 십년된 고물들도 눈에 띄고 창고에는 이력을 머금은 수 많은 잔재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즐비하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애틋한 기억도,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떠 올리게 하는 물건들도 짠한 잔상으로 남는다. 창고 속엔 집 주인의 어설픈 인생이 담겼다.      대화지붕과 천정을 수리하고 이곳 저곳 건물의 부실한 곳들을 고치고, 부식된 창들을 벗겨내고 돌아가며 페인트며, 전기 일들을 연결한 목수일들이 총괄해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부터 큰 건설일을 하다 이곳에 일찌감치 35년여 전에 정착한 나이가 지긋한 분이 지휘를 하며 구석구석 새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초기엔 짜장면 집이 없어서 레드펀에 화교가 하는 개인집을 찾아가며 아쉬움을 달래고, 교민수도 얼마 되지 않아 식품점도 거의 없던 시절 애기도 할 수 있었다. 방을 고치다 옛적 파일들을 보고 내가 했던 사역에도 참석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자식들도 다 커서 분가 하고 한적한 곳으로 이사해 둘만 살고 자신의 집은 오히려 고치지도 않는다고 나랑 비슷한 소리를 한다. 처음 만났지만 얘기를 하다보니 친근감이 생기고 내 집 수리만 잘 끝내려던 생각엔, 어느새 이국 땅에서 자식들 낳고 옆집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같은 동질감이 든다.  새 모습톨스토이는 단편 ‘대자’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신’으로 대변되는 대부를 만나 삶의 여정을 통해 악이 편만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때마다 신으로부터 한가지씩 지혜를 배우는 인생을 보여 주었다. 소설은 만난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더 악한 사람이 되거나 선한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도 더 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인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탁자를 닦으려면 걸레를 빤 후에 닦아야  탁자가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타인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공사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천정도 창틀과 문들도 깨끗해 지고 외벽들도 페인트를 칠하니  새 모습이 되었다. 집안에 남아 있는 니스와 페인트 냄새가 오랫동안 수리를 미뤄왔던 묶은 때를 벗은 실감을 더한다. 비록 아직 고쳐야할 데가 많지만 그나마 조금 나아진 뿌듯함이 진하다. 다음 번 고칠 것이 있을 때면 또 얘기도 나누고, 집도 고치고 마음도 뿌듯할 것이다.  창고엔 기억이 잠들어 있고 어설픈 삶의 흔적이 묻어 있지만, 아직 공사 중인 인생엔, 여전히 변화될 새 모습을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 있다.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1/09/2022
금요단상 - 정원일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