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동안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했다. 15년동안 쓰던 오래된 가구를 치우고 새 식탁을 사고 나니 아내가 음식을 차리고 싶었나 보다. 집에 온 지 오래된 친구 가정도 다녀갔고 미국에서 다니러 온 손님도 있어 좋은 핑계가 되었다.
손님들은 식탁이 근사하고 음식도 돋보인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손님맞을 준비로 분주한 며칠을 보낸 아내지만 칭찬을 들어서인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없다. 새 식탁을 들여놓으면서 내친 김에 다른 가구들도 바꾸다 보니 이 방에 있던 소파가 저 방으로, 책상은 창고로, 옛 식탁은 아들 방으로, 구석에서 나온 잡다한 물건들은 차고로 옮기며 며칠동안 마치 새 집으로 이사를 한 듯 제법 큰일이 되었다. 시작은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 하루 종일을 밖에서 보낸 아내가 집에 와서 며칠을 좋다고 들리라는 혼잣말을 하면서였다. 결국 남편의 지갑을 졸라 소정의 목적을 이뤘다.
손님을 치르고 난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느라 자리를 옮겨 잡은 새 식탁에 앉아보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창 밖의 목련이 유난히 화려해 보인다. 겨우 내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더니 어느새 희고 선 붉은 탐스런 목련이 가지마다 봉우리마다 큼직한 꽃을 피웠다. 겨울의 냉기 속에서 마치 죽은 듯한 메마른 가지에서 아침 햇살에 눈부실 만큼 화려한 생명이 봉우리마다 맺혔다. 식탁 한 가운데에도 손님들이 사온 노란 수선화와 빨간 장미가 노란 꽃병에 담겨 더욱 그 빛이 선명해 보인다. 마치 광도높은 조명을 비춰놓은 듯 꽃 스스로 수려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늘 옛 식탁에서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이던 조화는 꽃 병에 담긴 수선화 옆에 있으니,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혼자있을 땐 화려하고 우아해 보였는데 바로 꽃을 피운 생화 옆에서 오히려 미의 한계를 엿보인, 화려했던 퇴기의 민낯을 드러내 듯 초라함이 아련하다. 조화가 속이려는 목적을 갖지 않았을텐데, 우리 부부로부터 괜한 핀잔을 죄없는 조화가 받게 되었다. 조화는 혼자 있을 때 화려하게 보여도 생명이 있는 꽃과 함께 있을 때 그 화려함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목련은 비록 추운 겨울동안 천덕꾸러기처럼 볼품없는 민둥나무였지만, 봄이 오니 화려한 꽃을 피우며 그 생명을 자랑한다. 젊음이 그렇 듯 생명은 있는 것 자체로 그 빛을 발한다.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생명이 없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감탄하며 정열을 쏟아 낼 때가 많다. 멋지고 근사해보여 끝까지 붙잡으려고 방법을 다하던 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던 때도, 또 절호의 기회라며 자신을 변호하려고 기를쓰던 시절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심이었는지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멋 적은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생명이 없는데도 마치 탐스런 열매를 맺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현혹될 때가 많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하나 보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잠 6:24,25)”
인간은 눈 앞의 즐거움을 찾기를 즐거워하고 겉이 그럴싸해 보이면 솔깃하게 되는 죄인의 속성을 가졌다. 새 식탁 위에 올려진 수선화 송이는 집 안을 밝히 듯 빛을 발한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목련은 봄 햇살을 받으며 건강한 위용을 뽐내는 듯 하다. 식탁 위의 조화를 바라보며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무지를 깨닫는다. 자칫 화려한 세상은 음녀처럼 우리의 영혼을 사냥해서 마치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조화로 우리를 전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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