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5월 어느 날, 오페라하우스를 향해 걷는 우리 모녀의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다. 정오의 산들바람은 우리들의 뺨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는데 시드니 하버의 물결은 태양이 보석을 쏟아 놓은 듯 반짝거렸다. 주변은 화창한 날씨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고 길 한쪽에 일렬로 설치된 레스토랑들의 흰텐트 안에는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에서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들이 오페라하우스에서 관람한 연극은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시드니의 한낮 풍경이 무색하게도 몹시 무거운 주제의 실화극이었다.
역사의 매운 바람에 휩쓸린 사람들의 이야기, 보통사람들이 불행히도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탓에 겪어야 했던 엄청난 상황들을 주로 제작하는 이 극단은 노르웨이에 본거지를 두고 유럽 여러나라의 아티스트들과 연계하여 20여년간 공연을 해왔다고 한다. 그 날 본 연극의 제목은 We Come From Far, Far Away.‘우리는 아주 멀리서 왔어요’였다. 그저 멀리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온갖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까지 온 난민 청소년들과 대화를 통하여 제작되었다.
극 중에서 15살된 소년이 어머니가 마련해 준 돈을 모자 속에 넣어 푹 눌러 쓰고 친구와 함께 트럭에 숨겨져 도착한 곳은 해안가였다. 불법으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까지 태워주는 이들에게 큰돈을 지불하고 캄캄한 밤에 배가 떠났다.
정원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너무 많이 태웠으니 도중에 배에 문제가 생겨 개인 소지품을 모조리 바다에 던져야 했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캄캄한 바다에서 작은 배로 뛰어 내려야 했다. 절망하며 먼저 내리는 친구의 손을 잡아 주었는데 그는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대개 이런 식으로 25,000명이나 수장되었다고 한다. 구명조끼라고 받은 것은 기능을 할 수 없는 모조품이었다.
소년은 그리스에서 자기에게 무서운 얼굴로 무어라고 소리치는 가게 주인으로부터 캠프용 작은 텐트를 구입했다.
얼마나 떨렸을까. 두려운 가슴을 조이며 이동할 때마다 소년은 공포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마치 죽은 친구가 곁에 있는 것처럼 혼자 말로 주고 받으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떨쳐냈다.
드디어 오슬로에 도착한 소년은 경찰서를 찾아가 난민신청을 하면서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 동안 살얼음판을 건너는 지독한 공포와 긴장이 풀리면서 자신의 온 몸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내는 소년을 바라보는 나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훌쩍이는 소리가 관객석을 적시고 있었다. 무서운 바다, 잃은 친구, 엄마를 생각하며 15살의 소년이 구사일생으로 먼 북유럽까지 왔으니 그 끈질긴 생명력은 기적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소년은 청소년 난민센터로 보내지게 된다.
오페라하우스의 스튜디오, 그 큰 공간에 직경 8미터가 되는 몽고 유목민의 거주 텐트가 설치 되어 있었다.
유목민들의 실제 거주 텐트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들어서 보통은 문이 한 개인데 연극을 위하여 만든 문은 네 개나 된다. 연극 자체는 몽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관객들은 배우들의 안내에 따라 그 몽고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네명의 배우 중 두명의 남자배우는 관객들이 모두 착석할 때까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텐트 안에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2/5 가량이 무대로 사용되었고 무대에는 작은 캠프용 텐트가 한가운데 놓여 있다. 벽에는 구명조끼, 경찰 퍼펫 등 장치물이 걸려 있다. 관객들은 나머지 공간에 비교적 푹신하게 마련된 바닥에 앉는데 미리 신발을 밖에 벗어 놓게 되어있었다.
가장자리에는 벤치가 몇 개 놓여져 있어서 우리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관객수는 미리 예약한 시드니의 어느 하이스쿨 학생과 선생들 합해서 80명이었다고 한다. 60명가량이 비교적 편하게 채워지는 공간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수인 셈이다.
감히 비교도 안되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 정원을 훨씬 넘은 배처럼 닫힌 공간에 모두 끼어 앉아 연극에 몰두할 때에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중동여학생이 눈물을 닦으며 옆자리의 친구에게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에 발발하여 10년이상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동안 민간인 40만명 이상이 죽고 국민의 절반 이상인 1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여늬 청소년들과 똑같은 보통아이들이 시리아에서 태어났기에 삶터가 폭파되어 잿더미로 변하고 귀중한 생명들이 파리목숨처럼 죽어가는 가운데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니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능력이 없는 유럽국가들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어쩔 것인가.
지금도 내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 어디 시리아뿐인가.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종교적, 민족간의 갈등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멈출 줄을 모르니 무고한 아이들이며 민간인들의 삶이 언론에서 소개될 때마다 그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무너진다.
연극이 끝나자 몽고텐트의 한 면을 바깥쪽에서 조금 풀어 올렸는데 금세 시원하게 통풍이 되니 모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배우들이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한 뒤에 질문과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또래의 하이스쿨 학생들의 적절한 질문에 산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왜 이런 연극을 만들었어요? 등. 주연배우가 답하기를“사실은 함께 탈출했던 소년의 절친은 투르키예 국경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배로 옮겨 내리다가 바다에 빠져 죽어간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친구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을 보고 충격이나 상처를 받은 청소년들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서 카운슬링 전문가가 앞에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푸근한 아줌마 같은 인상을 주는 여성이었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연극을 통해서 상황을알리고 인간애를 느끼게 하려는 그들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만했다.
이 복잡한 지구촌에서 과연 해답이 나오기는 할까. 오직 하늘의 큰 힘에 의지하며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우리 모녀는 정오에 지나갔던 하얀텐트의 레스토랑에 자리 잡고 와인이 포함된 세트메뉴를 골랐다.
압둘라 라는 실제 인물을 떠올리며 지금쯤 성인이 되어 있을 그에게 건배를 올렸다. 하버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즐거운 모습으로 우리들 곁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한다는 진실을 새삼 느꼈다. 씁쓸했다.
권영규/수필가, 이효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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