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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어제처럼 달린다. 길 따라 끝없이 쳐진 철조망 줄이 이 황무지에 누구의 작업일까 궁금했다. 옆 정보자의 말, 평생 사막에서 텐트치고 먹고 자고 다음날도 철조망을 치는 직업이 있단다. 야생짐승과 차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외롭고 힘든 작업이겠지만 임금이 어마어마하다니 황야의 무법자처럼 도전해보실 분이 계실지. 몇 달씩 길을 따라 오지에서 쇠줄만 치는 작업이며, 인간이라고는 접할 수 없는 사막에서 텐트생활을 하며 눈뜨면 반복되는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방랑자의 삶이다. 그 직업의 고독함을 즐길 줄 모르는 자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일. 사막의 외로움을 벗 삼고 뱀이나 야생동물, 그리고 개미 등과도 친해야만 버틸 수 있는 작업이다. 개미 이야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게 있다. 이상한 점은 퀸즐랜드까지 여행할 때는 웅장한 터마이트(흰개미) 집 천지였으나 이곳 브로큰힐에서는 터마이트 집은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지층 형성 상 브로큰힐이 18억 년 전 해저의 마그마 분출로 어마어마한 용암이 흘러나와 이룬 해저 퇴적층이 현재로 굳은 언덕으로 되어 그럴지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상상도 해본다. 달리고 달려 남 호주 국경과 브로큰힐의 사막 서쪽 끝에 이를 즈음 실버톤에 도착한다. 이곳은 예술가들의 열망과 영화제작자들의 아웃 백을 담기 위한 열정,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던 곳으로, 그런 애착이 없었더라면 유령마을이 될 뻔한 곳이었다. 한 때는 광산 도시로 융성했던 도로의 흔적과 대여섯 개의 갤러리, 그리고 펍도 있다. 실버톤은 영화 Razorback, Mission Impossible ll, Mad Max 2 and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의 배경이 된 진정한 오지이다.석양 무렵에 문디 문디 룩아웃(Mundi Mundi)에서 오지를 즐기는 이국적인 매력을 즐기실 분은 꼭 한 번 찾으시기를. 어쨌든 이 오지까지 조형물을 설치한 예술가의 노력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돈 안 되는 이곳에 자신의 조형물 설치를 위해 헌신하신 미술가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드린다.조금 가다 붉은 황톳길 위에 겨우 발을 붙인 조그만 녹슨 양철집에 모두 놀란다. 이런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일지 귀신일지 궁금해 다가가니 ‘존 디논의 갤러리’라는 간판까지 보인다. 사막의 무법자도 아니고 사막이 끝나는 마지막 점에 외로이 서 있는 화랑이라니!실버톤 도시에서 생각하듯 멋진 화랑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호주는 곳곳에 정말 작고 초라해 이게 화랑인가 싶을 정도의 초라하지만 진정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화랑이 많이 있다. 손수 만든 몇 가지 그림과 소품만을 늘어놓고 느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이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 욕심 없는 느긋한 그들의 삶이 진정 부럽기조차 하다. ‘존 디논 갤러리’로 달려 들어가니 인간 존 디논이 야생화를 그리며 서 있다. 화려한 야생화를 그리고 있는 예술가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아저씨다. 그는 어쩌다 양철로 만든 집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을까? 며칠씩 지나가는 길손도 못 보는 이곳에서 그리는 그림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런 고독한 삶을 선택했을까? 인간 이상으로 아니 성자처럼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로 보이지만 그는 진정 고독한 사막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게 그림 값에 외로움을 견디는 값까지 추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는 사람, 파는 사람도 신경을 쓰지 않는 고독한 공간에 흐르는 고독이 그리 고독해보이지 않는 미묘함은 왜일까. 쓸쓸한 예술가를 위하여 사진 한 컷을! 순순히 응하는 존 디논을 가운데 두고 동양 여자 둘이 포즈를 잡았다. 싫지 않은 듯 반가운 얼굴로 순순히 응하는 사막의 순진한 미술가의 눈이 참으로 맑았다. 브로큰힐의 숙소로 돌아갈 즈음 불타는 낙조가 천지를 황홀하게 물들였다. 어린 손자가 빨강 김칫국 같아 무서워 싫다던 말이 떠오른다. 오지의 낙조는 공기가 맑아 끓어오르는 황혼이 붉다 못해 지옥 불 같았다. 내 카메라로는 아름답다 못해 처절한 낙조를 담을 자신이 없었다. 오지에 와서 자연의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점점 검붉게 타는 동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달린다. 오지여 안녕!!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른 윌케니아,라는 작은 마을은 애버리진들을 강제로 모아 살게 한 곳이다. 먼지가 푸석거리는 누렇고 벌건 사막 속의 윌케니아는 온통 애버리진만 기거하는 동네였다. 푸른 시드니 쪽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허접한 오지로 밀려온 그들을 보니 몰락한 자들의 막연한 슬픔이 엄습해왔다. 잠깐 주유소가 나타나니 사람 사는 곳이라 반가워 차를 멈추었다. 이 동네에서 내려 시골 좀 둘러보려는 요량으로. 삽시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애버리진 아이들은 우리 차를 향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반갑다는 소리인 듯 얼굴은 천진해보였다. 어쨌거나 그 아이들은 피폐한 오지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존재였다.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문 열지 말고 빨리 가요.”문명에서 소외된 원시성이 풍기는 그 마을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지났다. 그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신한 미안함의 발로였을까? 아니다, 사실 그들과 가까이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긴 하나 오지 여행 중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이론적으로만 그들의 처우에 대해 분개하고 흥분하며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비겁하고 옹졸한 내 능력으로 가끔 눈에 뜨이는 그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본 동양 족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폴짝거리며 쫓아오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우리 차는 비실거리며 도망쳤다.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이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최상급 고기는 더보(Dubbo), 최고급 포도주는 머지(Mudgee)에서시드니로 오는 길에 꼭 들려야 할 곳은 더보와 머지. NSW 주의 최상급 육질이라더니 소문처럼 더보의 고기는 신선하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머물게 된 숙소에서 고기를 앞에 놓고 분석하기 바빴다. 결론은 소, 양들이 무공해의 푸르른 목초지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채식 주의자에게 한 방 맞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더보 주위의 대목장 지대의 광활한 풍요로움은 호주 최대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고기 맛을 다시 언급하면 소들 화내며 떼로 몰려올지도 모르니 이쯤 해두자.또 하나 이 지역에서 꼭 들려야할 곳은 더보 NSW 주 최대 ‘더보 동물원’이다. 해리왕자와 메건이 하필 왜 이 더운 더보에 갔을까 의아스러웠다. 역시 호주에서 가장 아프리카적인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보 동물원엔 사파리가 있어 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것 외에도 전동카트를 타고 동물원을 돌거나 개인차를 가지고 동물원을 돌만큼 광활하다. 또한 동물과 친하고 싶은 분을 위해 숙소인 방갈로가 동물원 안에 있어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새벽에는 동물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숙소가 값이 엄청 비싸다는 것쯤은 참고하시길, 더보에서 별보기 등 프로그램도 있다. 단 미리 신청해야한다. 코비드 때문에 숫자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밤별을 보고 사파리 동물구경을 하라 권하고 싶다. 여기서 석회암동굴이 있는 웰링턴이라는 곳도 강추한다. 예술가라면 그곳에서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콜린 맥컬로우의 기를 받아보시는 것도 권한다.더보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머지(Mudgee)에서 시드니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을 지내기로 했다. 문명세계와 가까워진다는 또 다른 즐거움과 더불어 귀가하기 전 머지 와인 산지에서의 하룻밤은 상큼한 유혹이었다. 머지 와인과 더보의 쇠고기, 양고기 바비큐로  머지 펜션에서의 정찬은 평생 잊을 수 없을 황홀하고 멋진 추억이 되었다. 고생과 긴장 속에 호주 오지를 돌고 온 문명인(?)에게 고기 한 점 와인 한 방울, 머지 베이커리의 곡식 빵은 신의 물방울이자 목동들의 노력의 축제였다.오지를 다녀오니 만사가 감사할 따름이라며 여자 둘이 신이 났다. 게다가 돌아갈 집이 있으니 더욱 행복했다. 오지에서 한 방울씩 아껴 씻던 뜨거운 샤워물의 짜릿한 행복감은 내 인생의 퍼즐에서 제일 큰 조각이 될 것이다. 우편함 사진 첨부           머지에서 시드니로 들어서며 막연한 그리움과 즐거움을 주는 예술품에 반해 빙그레 미소 짓는다. 사열 받는 프랑스 장난감 병정처럼 늘어선 각양각색의 기쁨이 가득한 우편함들이다. 빨 노 파 초록색으로 단장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모여선 꼬마병정들의 사랑스러움에 넋을 놓는다. 사람 냄새가 퐁퐁 솟는 우편함이 늘어선 걸 보며 우리는 행복해 한다.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은 아기자기 아름답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접촉을 바라는 마음에 인간사회의 포근함과 따듯함이 절로 솟아난다. 제주도에 갔을 때 어느 폐교에서 우편함을 설치해놓고 느리게 가는 손 편지를 쓰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날로그시대의 종말을 아쉬워하며 그들은 아직도 손 편지를 기다리고 손 편지를 넣으며 과거를 체험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이미 다 사라진 우편함이, 여기 호주에선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회상에 잠긴다.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걸까? 그렇지, 농장 사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우편함 덕분에 집배원 아저씨는 수십 마일씩 달려야하는 수고를 면제받는다. 느림을 맛보고 살았던 시절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시드니 외곽에서 느낀다. 아직 이런 오지의 고립된 삶을 즐기는 자연인들이 많은 호주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아름다운 바다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오지를 가느냐고 사람들은 물었다. 나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떠났던 브로큰힐, 언덕이 깨어져나간 듯 줄지어 서 있는 곳. 죽은 듯 보이는 오지 사막에서 치열하게 생명이 살아 숨 쉼을 체험한 순간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 사막의 거친 마른 나무, 거친 돌, 누런 풀, 마른 흙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꼬물거리며 용솟음치고 있었다. 누런 풀 속에 보호색으로 변장하고 치열하게 숨어사는 산양이랑 캥거루의 강인한 생명력이 감동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마른 흙과 돌덩이도 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지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그래, 사막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 지구상에 공존할 것이다. 인간이 사막을 황폐시키지 않는 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 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그림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목하 기대된다.

  23/12/2021
  문학지평

코바의 태양은 저녁 시간인데도 놀이에 빠져 집에 갈 시간을 잊은 소년처럼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뒹굴어댔다. 팔레트의 붉은 물감이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파란 하늘을 자두 빛에서 라벤더 색깔로 바꾸어가며 화려한 유희를 벌이기도 했다. 코바 캠퍼장의 무인 코티지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시든 상추가 되어 일몰을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짐을 풀었다. 제발 더위라는 악마의 그늘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5박 6일의 여정에 4인분의 식량과 옷가지 등의 짐은 사륜구동의 천정에 올라가 있으니 차 지붕에서 트렁크 짐을 내리기 바쁘다. 사막에서 만약을 대비하여 시드니에서 구비한 25리터의 기름통 두 개와 생수통이 차 트렁크를 점령해야만 했기에. 코티지는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와 손바닥만 한 남루한 공간이었지만 온종일 사막의 땡볕에서 허우적거리던 허약한 동굴 인들에게는 천상낙원이었다. 이 오지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오로지 이 캠프 사이트뿐이라 시드니에서 아예 6일간 4인분의 식량을 장전하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4인의 먹보들은 서로 자기가 준비한 식품을 나열하며 생색내기 바쁘다. 원래 식성 좋은 4인방이 오지에서 굶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야지랑을 떤다.“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야!”“와, 안 먹어도 헛배 부른 자, 그대는 굶는 게 어때?”남편이 내 숟가락을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잠시의 실랑이 중에 남은 2인방이 열심히 비빔밥을 축낸다. “아차, 저런 게 어부지리이것다.”우리 2인방도 달려들어 허겁지겁 비빔밥을 흡입한다. 만나가 따로 있나? 점심으로 먹고 남은 음식을 모아 만든 비빔밥 한 끼가 바로 천상에서 내려온 만나려니. 벌게진 얼굴로 숟가락질하는 아귀 같은 게걸스러움에 우리는 마침내 깔깔거리고 만다. 아무리 먹보귀신들이라도 무사 운전을 축하하며 와인 축배 드는 것을 놓칠 수는 없지. 오지에서 맛보는 와인 맛이 꿀맛이다. 40도 이상 되는 길을 온종일 달린 터라 아껴 홀짝거리는 와인 한 잔에 벌써 반쯤 눈이 감긴다. 소박한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온종일 달구어진 샤워 물은 천연 온수가 되어 40도는 넘을 듯 뜨겁다. 물론 물이 귀한 이곳은 집집마다 우기에 빗물을 모아 빗물 통에서 나오는 이 물이 생명수다. 당연히 설거지도 작은 그릇에 모아 그릇을 함께 통 목욕시킨다. 낡은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양철지붕을 식힐 정도는 아니라 온열 에어컨이 돌아가는 듯 4인방의 얼굴 모두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이 높은지 에어컨이 노인의 가래기침처럼 길길 거린다. 남편이 걸터앉은 낡은 이층 침대의 난간이 위태롭게 덜렁거린다. 살을 좀 더 뺄걸 그랬다며 침대보다는 자신을 탓하는 남자가 갑자기 존경스럽다. 오지에 있어 준 이 집의 낡고 작은 물건 하나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이 넘쳐나니 광야에서 도를 닦던 성자들의 고충이 생각난다. 불만장이인 나도 오지에 남아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면 좀 착해지려나.잠자기 전 밖을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우리 차 주위로 온통 캠퍼 밴들이 가득하다. 나도 호주 캠퍼 밴 방랑객들처럼 달랑 캠퍼 밴 한 대에 몸을 밑기고  길 아닌 길을 헤매는 환상에 빠져 든다. 동화작가 폴 제닝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꾸면서. ‘그때 ‘물 소녀’가 자신의 몸인 물을 한 방울씩 먹여 사막에 온 소년을 살리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스토리가 전개되던 사막은 넓고 황량하기 그지없었지. 지금 이곳 코바처럼.’리빙 데저트, 사막은 살아 있었어.죽음 같은 반 건조 사막.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더위가 푹푹 익어가고 있었다. 코바 구경을 하고 최종 목적지 브로큰힐을 향해 떠나야한다. 더워지기 전에 먼 길을 달려야하기 때문이다. 코바는 브로큰힐의 명성을 잇는 주변 도시로, 석탄 실은 기차가 그곳에서부터 동부 시드니까지 달렸던 거다. 지금은 쇠락한 시골 사막지대지만 호주의 거대한 탄광지대였던 명성답게 붉은 황토 흙에 철제장식으로 된 낡은 기차 전시물이 성황이었던 당시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오지까지 진출한 인간의 선각자 정신이 오늘을 이루게 한 게 아닐까?브로큰힐코바를 뒤로 하고 차는 최종 목적지인 브로큰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브로큰힐은 호주 최초의 광산 도시로 1800년대 유럽, 특히 독일, 영국 등 심지어는 필리핀에서까지 원정 온 노동자들이 개발한 광산촌으로, 아니 큰 도시가 될 정도로 한 때는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이곳이 오지가 끝나는 지역이다. 그러니 브로큰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끊어진 언덕, 부러진 언덕, 고장 난 언덕, 부서진 언덕...등 적당한 어휘를 생각해 보시라.호주는 어디를 가나 낡은 전통을 귀히 여겨 앤티크가 즐비하며 그것을 즐기는 게 관광의 제일 큰 목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과거를 알아야 발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어 가끔씩 정체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중 하나가 어느 동네를 가나 전국적인 체인으로 운영하는 비니스(Vinnies)라는 자선 목적의 중고 가게다. 물건이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을뿐더러 물건을 사주면 기부하는 셈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브로큰힐 비니스에는 엔티크 제품들, 특히 영제 중고 그릇이 가득한 걸 보니 역시 브로큰힐이 과거 풍요로웠던 광산 붐의 도시임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도 그때 득템한 작은 소스 그릇 다섯 개가 브로큰힐을 기억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 있는 애장품으로 남았다. 호주를 여행하는 분이라면 도시마다 마을마다 있는 비니스를 들러볼 것을 권한다. 그곳에 가면 한 눈에 그 마을의 수준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정보가 필요치 않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동서가 ‘비니스회장’이라 멤버로 가입하려면 사전에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ㅋㅋ 비니스 마니아라서 여행 때 꼭 들려야한대서 우리가 여행 중 붙여준 호칭). 브로큰힐이 가까워오자 펼쳐진 광야에 ‘The Living Desert’ 라는 간판이 보였다. 완전 죽은 사막 같은 곳이 살아있는 사막이라니 의아할 수밖에. 그러나 중간에 멈추어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때야 ‘살아있는 사막’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 길 앞을 모르는 이 우둔한 인간이여!생태계 사슬이 이어지는 사막은 죽은 듯 살아있더라.어디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를 파리 떼의 습격이라니! 손톱 크기 정도는 되는 왕파리 떼의 습격 때문에 보초를 서서 쫓아주기 전에는 도저히 라면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청바지까지 뚫고 들어와 물어대는 아픔이란! 발을 동동 구르고 한 사람은 연신 파리를 쫓아주어야만 한 사람이라도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라면을 흡입하고 도망치듯 다시 차로 올랐다. 그런데 일행 중 누군가가 이야기하다가 대형파리를 흡입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단백질 섭취라고 신나는 체하면서 은근히 주눅이 든  당사자는 캑캑거리며 죽을 지경이니 나조차 위속에 파리라도 들어간 듯 속이 거북했다. 이 파리 녀석들 때문에 호주 오지 노인들은 입을 작게 벌려 우물거리며 말해 영어가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 팀도 되도록 대화를 삼가고 눈짓 손짓으로 대화를 했다. 그 큰 파리를 흡입하면 오지에서 온전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나마 벌레방지 스프레이로 무장을 했기에 망정이지. 오지 규칙 제 1호. 남편은 놓고 가도 벌레방지 스프레이는 꼭 가져가라.도대체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저 사막에서 어떻게 파리가 번식하는 것일까? 달리는 내내 의심은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죽은 듯만 보이는 건초가 무수한 생명을 살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위성지도를 보니 부연 은하수처럼 보이는 길. 그것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바짝 마른 건초 속에 우기의 수분을 숨겨두고 최소한의 수분만을 쓰고 있는 거다. ‘저게 ’와디‘야!, 황토 흙 사이로 난 희미한 색의 골은 우기에 물이 흘렀던 거야!’나는 갑자기 아는 척 호들갑을 떨었다. 브로큰힐에 갈 때 배웠던 걸 벌써 돌아오는 길에 써먹었으니. 이제야 조금씩 의문이 풀린다. 고양이만큼 큰 시꺼먼 까마귀 떼가 모인 곳엔 여지없이 죽은 동물의 창자를 벌여놓은 채 까마귀 떼가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남기고간 그 찌꺼기를 먹는 왕벌만한 쉬파리 떼들. 길에 흐르는 피딱지 위로 정신없이 오가는 개미떼. ‘사막은 나름 신비하게도 공생하며 엄연히 살아있었다.’우주의 광활한 질서 속에서 약육강식이라는 생존 사이클을 돌리는 활발한 공생 공장이었다. ‘서로 먹히고 내어주는 사슬 속에서.’점점 어린왕자에서 아름다운 사막이라던 말에 공감이 가는 순간이었다.내륙 마니아 백경 그림작가 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 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그림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목하 기대된다.

  08/12/2021
  문학지평

 이마리 글, 백경 그림초록색 선은 시드니에서 브로큰힐까지 가는 여정이며 회색 실선은 돌아온 여정의 표시. 아웃백은 원래 패밀리식당이 아니라 호주 내륙의 반사막 지역을 말한다. 사진에서 흰 점으로 표시된 브로큰힐 앞의 골짜기는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대한 와디(wadi)이다.언덕마저 사라진 평평한 사막삶은 단조로운 인생의 연속이라며 여행가들은 호시탐탐 진기한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야릇한 방랑자이다. 그 낯선 곳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또 다른 낯설기를 자처하면서 정처 없이 떠난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비움의 여행이거나, 가끔씩은 욕심껏 많은 것을 채워오기에 바쁜 욕심쟁이가 되기도 한다. 미지를 향한 여정은 분명 가슴 설레지만 돌아올 집이 있기에 여행가는 더욱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떨리는 가슴으로 브로큰힐을 향한 오지 여행길에 올랐다.이제 그 추억이 빛바랜 무광 액자로 내 인생에 한 조각 퍼즐로 들어앉으려 한다. 조각난 퍼즐의 먼지를 터는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간 과거처럼 그리워하자. 인생은 랜덤의 연속이거늘 우리는 어느 순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호주 시드니에 사는 사람들조차 잠시 문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막이라는 곳을 느껴보고 싶어 했다. 어린왕자 책속의 지리학자처럼 서재에만 머무르기보다는 넓은 호주 대륙을 체험해 보고픈 욕망을 품고. “영원히 시들지 않을 듯 트래블 플래너의 꿈을 꾸는 남의편(ㅋㅋ)이여 파이팅! 길이 있기에 우리는 떠나노라.”물론 시드니 관광코스에는 사막체험이 있어 저비스 베이의 하얀 모래 위에서 낙타타기, 모래썰매 체험을 해보는 것만도 큰 행운이다. 그러나 이런 재미 다 팽개치고 호주 오지의 고생을 찾아 떠나기로 한 때는 태양의 고도가 제일 높은 1월로 찌는 듯 무더운 날씨였다.  호주 동부 시드니(Sydney)에서 출발하여 브로큰힐(Broken Hill)을 왕복하는 2400km의 대장전이라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두 번 왕복이 조금 못 미치는 거리이다. 이만하면 한국의 거리감과 호주라는 대륙의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네 명이 교대로 온종일 달려야만 겨우 첫날 밤 예정 숙소인 코바에 어둡기 전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더보(Dubbo)까지는 초록색이지만 코바(Cobar)부터는 완전 누렇고 평평한 사막지대로 사람이 사는 곳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한참 더 가면 아들레이드가 나오나 이 지도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브로큰힐은 NSW주의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브로큰힐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느낌이 벌써 심상치 않다. 우리는 여행에 들뜬 마음을 눌러보려는 듯 투덜거린다.“언덕마저 끊어진 곳이라니 볼 것 없는 누런 사막이겠지. 가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삭막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느낌!”“맞아. 우리 왜 그 오지에 가는 거야?” 패트롤 2통과 마실 물 2박스가 맨 먼저 차 트렁크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앉았다. 가는 도중 주유할 곳 없는 사막에서 두 종류의 리퀴드는 생명줄이라고 수 명의 여행가들에게 조언을 받았으니까. 땡볕에 고장이 날 경우에 대비하여 차주는 차를 조이고 기름 치는 등 철저 점검을 마친 후, 동승자들도 몸을 털며 가벼운 체조를 해본다. “앗싸, 이제 광야를 달리는 거다!” 서부 퍼스에서는 12월, 1월 등의 여름(호주는 북반구에 위치해 남반구의 한국과는 완전 반대 기후) 성수기에 양철지붕 위에 달걀을 놓으면 프라이가 된다 하니 사막의 1월은 그야말로 불볕이었다. “그래도 겨울여행은 사막 추위 때문에 움찔하지 못하니 더위가 낫지!” 라며 두 커플이 완전 의기투합이 되었다. 평소에는 별로 닮은 점이 없다고 자처하는 시동생 내외가 우리 부부와 완전 찰떡궁합인 때가 있으니 바로 여행이라는 마약 앞에 설 때이다. 끝내고 돌아서는 순간 입맛을 다시며 다시 지도 옆을 서성거리는 그런 중독증 말이다. 진정한 오지체험은 로드 킬 브로큰힐까지의 여정 중 도로에 즐비한 로드 킬이야말로 고개를 돌리게 할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다. 운전 중 로드 킬을 만나도 절대 눈을 돌리거나 핸들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받았음에도 덩치 큰 사체를 피하고 나면 공포와 애처로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빈번하게 널브러진 사체를 접하면서 점점 그런 감정이 무디어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그 동물들이 시도했던 도전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그들 중 더러는 길 건너는데 성공해 안전하게 착륙했을 것이고, 더러는 눈앞에서 창자까지 펼쳐진 채로 아귀다툼하는 시커먼 까마귀들의 밥이 되고 있었다. 어느새 그 처절한 잔해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저건 약육강식과 자연 순환의 먹이사슬일 따름이야.’사막의 동물들은 자동차라는 거대한 문명의 희생양이 되면서도 줄곧 도로를 건너는 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2차선 도로에 띄엄띄엄 무한대로 이어지는 죽음의 사체들이 그걸 말해주었다. 그것은 험난한 바다에 떠도는 일엽편주 피난민보트와 다를 게 없었다. 보트에서 떨어져 나뒹구는 군상들은 물이나 먹이를 찾아 목숨을 걸고 미지의 신세계로 이동하려다 더러는 부모와 자식을 놓친 비운의 낙오자들이었다. 앞의 죽음을 보면서도 길을 건너는 행렬을 멈출 수 없음은 도로 건너편 막연한 환상의 섬에 닿기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하필 그 지역에서 운전대를 잡았던 겁쟁이 이 운짱도 수백 킬로미터 로드 킬에 차츰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도로 위의 희생양을 보면서 인류의 도전과 역사가 되풀이되는 교훈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현인인 체 중얼거리기까지 했다.‘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희생이 따르지. 항상 더 큰 도전이 필요해.’널브러진 다섯 마리의 크고 작은 돼지가족의 몰살 장면은 동승자 모두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온 돼지 가족이 당한 참사 앞에 신경을 끈 채 차라리 운전대를 잡은 나는 달리기에만 몰두할 수 있어 어쩌면 운 좋은 운짱이었다. 다리를 벌러덩 위로 벌린 채 등으로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미 곁을 스쳐갔다. 여태 뜨거운 김이 운무처럼 솟아올라 햇살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제발 편히 잠들기를.’ 브로큰힐까지 달리는 내내 제일 큰 문제는 로드 킬을 피해야하는 운전기술이었다. 120km가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거대한 동물을 피하려면 중앙선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반대편에서 쏜살같이 나타나는 차량을 종잡을 수가 없기에 정면에서 오는 차량에 신경을 쓰면서 사체를 피해가야 한다. 그래서 이중 방어운전의 자세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동물의 충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사륜구동 보닛 아래 부분에 돌출한 기다란 쇠막대기 – 무지한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잘 모르지만- 를 붙이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차량도 많지 않고 변화 없는 일직선 도로가 운전하기 편할 것 같지만 실은 집중력을 무지하게 요구했다. 그러니 나 같은 겁쟁이 운짱에게는 옆에서 수다를 떨어주는 동승자가 구세주였다. 너무 긴장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사방에 초록 풀도 푸른 나무도 없이 누런 억센 잡풀만 무성한 들판을 양쪽에 두고 차는 하염없이 달린다. 발목정도 오는 길이의 누런 잡초인 사막의 유일한 건초 스피니펙스(spinifex)가 나타난다. 그래도 오지의 유일한 이 억센 잡초 덕분에 야생 캥거루와 산양이 살아간다니 신비의 풀이기도 하다. “원주민이 이 건초 가루를 내 무기 만드는데 끈끈한 풀로 썼다니!”그 질긴 풀은 사막의 왕자다. 죽음 같이 누런 사막에서 마침 눈에 띈 산양이 플라스틱 같은 그 줄기를 열심히 흡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발견한 생명체를 보며 의아함 반 경이로움 반으로 소리를 질렀다.. 물이 없는 곳에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경이로움도 잠시 와디가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 하얗게 보이는 ‘와디(wadi)’라는 곳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이 흘렀던 곳이지만 건기에는 마른 골짜기가 된 곳이다. 이런 사막에도 한 번 씩은 비가 온다는 증거일 테니, 오지에서도 생명이 살아가도록 설계된 자연의 질서가 경이로울 따름이다.“이런 가는 물줄기가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족적이구려!”“그렇지. 자연의 공생인 거지.”“아, 공생!” 도로와 사체에 익숙해져 운전에 자신감이 붙을 무렵 차가 끼익, 스키드자국을 내며 쏜살같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작은 송아지만큼 큰 캥거루 사체 앞에서 급정거했지만 거의 차를 들이박을 뻔했다. 소중한 세 인간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죄목으로 남편에게 항의도 못한 채 나는 운전대를 뺏기고 말았다. 난 씩씩거렸다.“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저 덩치 큰 캥거루 녀석 때문이라고!” 나는 잠깐 고개를 핸들에 박고 사체를 못 본 척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헐떡거리는 캥거루 배에서 흘러나온 창자가 부연 수증기를 내뿜는 게 어른거렸다. 고개를 돌리며 나는 정신 나간 주술사마냥 중얼거리고 있었다.“괜찮아. 조금만 견뎌. 건조한 땡볕이 너를 차라리 미라로 만들어줄지도…….”그러나 삽시간에 시커먼 고양이만이나 한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어떻게 신통한 저녁거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남편이 말했다.“자연의 섭리지. 먹이사슬에 순응하는 거야.”자연과학을 한 그의 메마른 답에 나는 다른 답을 찾아 반항하고 싶어진다. 좀 더 인간적인 답을 찾지 못한 채 의도적으로 재촉만 한다. “밖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달려요. 시간이 금인데.”그에게 운전대를 뺏긴데 대한 최대한의 보복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 멋모르고 고무줄넘기하며 불렀던 노래가 떠오르는 건 웬 일일까. 어쩌면 사체를 건너왔기 때문인가.“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어린 시절 멋모르고 부르던 소녀들 노래가 으스스한 전장 노래였음을, 무심코 달려온 이 길이 피난민 보트의 행렬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과연 이렇게라도 인간과 자연은 나름의 순환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비움의 여행이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는 사유하는 욕심쟁이가 된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숨소리처럼 속삭임이 채근한다.“오지가 너를 부른다. 어서 달려가 보렴.” 두 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넌지시 기대된다. 

  24/11/2021
  문학지평

수필 반쪽 사랑 삽화(박조향 그림)“엄마, 율이가 할머니 보고 싶데.”“으응? 율이가?”핸드폰 화면 가득 뽀얀 아가의 얼굴.“에구구 내 강아지 반가워라. 훌쩍 자랐네. 누굴 닮아 이렇게 잘 생겼노.”흥분한 할매의 폭풍 수다에 반응이 없다.“엄마 얘가 잠 잘 시간인데 아무리 자려고 애써도 잠이 안 와서 눈물이 난데.”“세상에나 우리 왕자님이 시인이네. 표현이 너무 시적이잖아.”“엄마, 나는 이 아이 땜에 살 수가 없어. 매사 이런 식이야. 고칠 수 없고, 구할 수 없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날 괴롭히는 거야.”딸의 싸늘한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져 섬찟하다. 천사같이 말간 손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할머니 보고 싶다고 불러놓고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5년 전 율이는 쌍둥이 중 동생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딸은 늦은 나이인데다 쌍둥이를 갖게 되어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무사히 자연분만을 성공시킨 닥터의 모습이 개선장군 같았다. 신생아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들은 마치 면봉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작고 가여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산모는 피가 거꾸로 돌아 혈압이 180을 넘어 밤새도록 비상이었다. 독한 약을 투여했으므로 모유 수유를 금했다. 심장 문제가 심각하여 다시는 임신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내 딸이 죽다 살아났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를 주문처럼 되뇌기만 했다. 딸은 어려서부터 꿈꾸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첫 작품을 개봉하고, 육아에 전념했다. 나는 작고 연약하게 태어난 아가들이 정상아가 될때까지 백방으로 갖은 노력을 다하는 딸의 모습을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살얼음을 디딘 나날이었다.엄마 하나, 아빠하나. 그런데 한 번에 태어난 아이는 둘, 이란성 쌍둥이 선과 율.  그래서 선이는 늘 엄마의 반쪽만 차지하고, 율이도 항상 아빠의 반쪽만 차지할 수 있는 게 불만이었지. 차라리 일란성 쌍둥이였으면 언제나 아빠 엄마의 무릎에 안겨있는 아가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려니 하고 덤덤할 수 있지 않았을까?  타고난 운명! 엄마 아빠는 죽을힘을 다해 선, 율을 사랑 하는데 아가들은 반만 느끼나보다.서로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겠다고 쌍으로 울어댄다. 전쟁터에서도 세월은 흘러 아가들의 돌잔치를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희생과 노력으로 아이들은 살이 포동포동한 예쁜 정상아가 되어 있어서 대견스럽고 감사했다. 기진맥진해진 딸을 위해 두문불출하고 뒤늦게 딸의 산후조리에 최선을 다했다.“엄마가 있으니까 너무 좋다. 엄마, 호주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될까?”  딸이 애처로워 무려 넉 달이나 연장체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50여 년 전 내 아이 삼 남매의 산후조리를 친정엄마가 얼마나 정성껏 해주셨는지 산모가 아주 건강해졌던 생각이 난다. 나도 내 딸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투석환자인 나는 호주 의료진의 관리하에 있어 시드니를 떠날 수 없다.율이 문제에 대한 딸의 소견은 분리 불안인 것 같다고 한다. 신생아 때부터 모유 수유도 못하고 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 신생아 전문가가 돌보았다. 그녀가 떠난 후 입주 도우미가 돌이 되도록 율이를 데리고 잤다. 그 후 4개월간 외할머니인 내가 데리고 자다가 호주로 떠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빠는 직업상 밤 촬영, 지방 출장으로 수시로 집을 비우게 되어 아이가 자다가 바스락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더듬는다고 한다.딸의 한숨 소리에 애간장이 녹는다.“엄마, 쟤 아직도 울어.”딸도 우는 것 같다. 태평양 너머로 딸의 통곡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안타까움에 가슴만 쥐어뜯고 있었다.“엄마, 글쎄 유치원 선생이 율이가 뭘 잘못했는지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는 거야. 나이도 한참 어린 게 사과를 안 한다며, ‘그런 건 집에서 가르쳐야 되는 거 아닌가요?’ 라니 그의 입을 찢어놓고 싶었어.”“에구구, 잘 참았다. 함부로 지껄이는 거 병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율이는 왜 사과 안 했대?”“부끄러워서 그랬대.”율이는 본래 말이 없는 아이. 뭐든지 나서서 잘 하는 선이에 비해 늘 엄마 뒤에 숨어버리던 율이다. 이제 겨우 만 네 살 아이의 수난이라니!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좋아하고, 읽지도 못하는 책장 계속 넘기던 율이가 기특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책을 보내주며 말했다.“해양학 박사 동문이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 해양학 동화를 출간 했기에 얼른 구입했어. 과학적인 내용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 있게 소개하고 있어 아주 재미있더라. 율이 책 좋아하니 계속 읽어주렴.”한참 동안이나 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별의별 얘길 다 했다. 조금은 건방지고 지나치게 깔끔한 딸이 평생 그런 모욕을 당하긴 처음이었을 거다. 아빠 엄마의 황금기에 태어나 강남 한복판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애라 부모 따라 이민 와서 몰락해가는 과정에서도 교회봉사를 잘 해서 칭찬이 자자했다. 청년사역에 봉사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한국에 나가 반 지하에서 적응하며 서민들의 생활을 아름답게 애기해줘 참으로 고마웠다.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주변 거래하는 상인들의 칭찬에 이 어미는 안심하고 뿌듯했다. 세탁소 주인이 나에게 꽃 화분을 보여주었다. 늘 일만 하느라 꽃구경 못 하는 자기를 위해 따님이 사주었다고 고마워해 내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한 딸이다. 이렇게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범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 실천하는 딸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어미로서 너무 안타까웠다.지난 5년간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 치료 등 별의별 상담을 다 해보았으니 지칠 만도 하지. 외할머니의 역활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미안하고 괴로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밤새도록 울며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하얀 옷자락을 끌면서 누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형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 우리 율이를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예수님이 찾고 있는 게 율이 엄마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이튿날 아침 딸에게 전화로 울면서 얘기해 주었다.  “예수님께서 널 찾으시더라. 우리 율이를 품어주시니 이젠 네 힘으로 하려고 애쓰지 말고 주님께 맡기자.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우리 대장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자.”‘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나를 돕는 구원이 어디서 오나.      이제로부터 영원 무궁히 주 나를 지켜주시리’<작가소개>박조향 선생은 국전에서 수상을 비롯 수 차례 전시회를 개최한 응용미술가로 평생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온 진정한 예술가이다. 자신의 삽화를 곁들인 수필집 <라일락향기>를 출간했으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성서와 문학, 좋은 수필에 수필을 기고했으며 시드니 문학, 한호 일보, 한국신문 등에 수 차례 수필을 연재 기고한 재원이기도 하다. 현재 워이워이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행복한 노후를 그림처럼 즐기는 선생의 다음 예술작품을 목하 기대해본다.

  10/11/2021
  문학지평

  게임은 눈앞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마약의 게임에서 목표 달성은 포식자가 피포식자를 손아귀에 넣는 일이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추측하기란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그때까지도 소년이 아테나로부터 그것을 덥석 받지 않고 있었으나, 극도로 초조해진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거푸 마른 침을 삼켰다.  동영상을 분리해서 저장해야 내게 유리하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달달 떨어가며 앨범(1)을 닫고 앨범(2)을 만들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전조등을 밝힌 차가 다가와 급히 차선을 바꾸었다. 내 차를 뒤에서 박아버릴 것처럼 밀어붙이는 사이,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옆구리에 낀 채 달려 나갔다.  차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소년을 추적했다. 쇠줄이 절커덕거리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들렸다. 나는 차문을 박차고 화살처럼 뛰어나갔다. 오랜 생활지도교사의 몸에 달라붙은 관성이 재빠르게 작동해 주었다. 나는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들을 추적했다. 앞에서 달리는 소년과 추적하는 사내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액정에 담기고 있었다. 미치광이 사내가 소년을 이삼 미터까지 따라붙었다. 그가 막 소년의 뒷덜미를 잡으려는 순간 나는 고함을 질렀다.  “그만두지 못해!”  뒤돌아선 사내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파리했다. 사내가 어딘가에서 소년과 아테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면 나까지도 염탐했을 것이다. 나 외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으니까. 나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호주머니 집어넣었다. 아테나는 어디로 줄행랑을 놓아버린 것인지? 헉헉거리며 다가온 사내의 입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대머리에 듬성듬성 자란 수염과 우람한 몸의 사내를 보고 악마와 한 판 싸우리라 각오를 했다. 그가 두 손을 마주 비벼대며, 찌푸린 표정으로 나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희죽 희죽 웃었다. 곧추세운 눈썹을 실룩거리더니, 충혈이 된 눈알을 뒤집고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덮친 건 그 순간이었다.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바짝 조이며 내 주머니의 휴대폰을 빼앗아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의 발에 짓밟힌 기기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날아오는 사내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연이어 발길이 날아왔다. 무서운 힘이었다. 내 인생에 처음 경험해 보는 무지막지한 마약의 폭력에 나는 찍, 하고 길바닥에 넘어져 나뒹굴고 말았다.  내 두려움과 악마 사이엔 아무 방패막이도 없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와 맞서다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죽은 것처럼 엎드려 쓰러져 등짝을 짓밟거나 말거나 이를 악물고 견디었다. 신음을 토하며 꿈틀거리다가 무서운 한기를 느꼈고 곧 근육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졌다.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너덜너덜한 휴대폰을 주워들고 차를 몰고 집까지 올 수 있었는지? 그건 아직도 의문이다. 어떻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정아나, 밥 묵었나? 밥 마이 묵어야 한데이!  윤선생이 딸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정생, 이기 우찌된 일인교. 윤선생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헷 참, 정생 날 원망하지 마이소. 사모님이 하도 한인들 없는데 점포를 얻어달라고 해서. 존덴 죄다 한인들이 차지하고 이서서 고만.  -아, 괜찮습니다. -아임더, 정생! 내가 바시면 그 가시나를 고마 팍 발바 문질러 부리실낀데.  -관심을 가진 제 잘못입니다.  -지 혼자 처묵고 콱 디져버리지. 지새끼한테 똥 파라라꼬 길가 내모는 문디새끼! 거기 인간인교. -제가 모른 척 했어야 하는데…….  -금마들 파는 야기 어데서 온긴지 아는교. 마 배떼지에 새비너코 와가지고 똥구녕으로 배터낸 긴지도 우째 알겠는교. 아이머 여편네들 얼라집에 새비너코 와 피무치고 나온긴지. 더러번 김더. 헷 참.  아내가 도라지차를 들고 들어왔다.  -사모님, 이제 다 잘 될낌더. 심카드 경찰에게 넘기고 오는 길임더. 그새끼는 깜빵 갈 끼고, 그 가시나는 미성년자니까 훈계만 하고 보낼끼고요.  -아나 아빠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 기적입니다. 아내가 말했다.  -갸들 잔인한 거 말도 모탐더. 그 새끼 나오기 전에 점포를 한인들 마이 사는데 옴기야 될거 가심더. 통증이 가라앉자 잠이 쏟아졌다. 진통제에 마약성분을 얼마나 강하게 처방했는지, 정신이 몽롱하더니 두 사람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 끊어졌다.   몸은 망가졌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전직교사가 뭔가를 해냈다는 자긍심에 헛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지역신문의 구석구석을 읽어본다든가, 목발을 짚고 경찰서 안을 기웃거린다든가, 정신의 힘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었다. 제우스와 아테나는 경찰조사를 받는 것 같았다.  윤선생이 경찰에 넘겼다는 심카드의 동영상(1)과 동영상(2)는 기계의 특권인 사실을 똑똑하게 보여주었을 테니까. 거기다 아테나의 자백을 받아내면 제우스를 잡아 구속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일 것이다.  이민을 온 후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일을 한 것 같았다. 아나를 잘 키우고 숍을 운영하며 평범한 이민생활을 하리라 다짐했다. 한국정부가 준 장학금으로 취득한 학위와 그리고 교사자리를 팽개치고, 무책임하게 이민을 온 것에 대한 죄의식도 조금이나마 반감되는 것 같았다.  길거리 청소년지도를 하다 붙잡은 학생이, 어린 마음에 어쩌다 불량한 일을 저질렀지만, 내 교훈 한 마디에 반성을 하고 행동에 변화를 보일 때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파서 상담실에 숨어서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옛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사건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상처도 좀 가라앉은 것 같았고 침대에서 보내자니 답답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숍에 나가는 아내의 차에 올라탔다. 꼴이 말이 아니라 손님들 앞에 나가지도 못하고 창고에서 하루를 견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거기에 가보고 싶다고 아내에게 억지를 부렸다. 범죄자가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 심정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날의 그 거리가 나를 잡아끌었다. 또 직접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성이 안 풀렸다.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밤에 겪은 고통의 쾌감이 되살아났다. 문득 낯설게만 느껴지는 거리에는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한 편으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내부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길거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street drug), 한 번 손을 대게 되면 장기가 파괴되고 살이 썩고 뇌가 녹아버려도 끊지 못한다.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 특별히 나만의 일이야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전직의 책임감이든, 시민의 양심이든, 가족애든,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어깨가 무거웠다. 교육은 가장 높은 순간에서 판단해야하고 범죄자는 가장 낮은 순간에서 판단할 뿐이다, 생각을 하다 담배를 꺼내고 말았다. 찢어지는 아내의 눈길을 외면하며 불을 붙였다. 몸이 완쾌되면 아나를 데리고 그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보고 싶다는 청소년 같은 꿈이 솟구쳤다. 아테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제우스도 없었다. 그는 이미 구속이 되어 있을 터였다.  거리가 어둑어둑해지자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날 밤도 그랬다. 밤이 되면 기이할 정도로 거리가 정적에 싸이는 지역이었다. 쥐구멍 같은 엘리자베스 서킷을 돌아 나오는데 무의식적으로 내 눈을 잡아끄는 끈끈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눈을 비볐다. 잘 못 본 것인가?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다시 응시했다. 아테나였다.  모르는 소년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분명 아테나였다. 나는 아내의 휴대폰을 잡아채서 그 장면을 서너 번 찍으며 소리쳤다.  -빨리, 빨리……. 출발해, 빨리! 섬뜩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디서 제우스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럼 그렇지! 아테나는 제우스의 마리오네트 인형이니까, 제우스와 끊을 수 없는 관계였다. 코너를 돌면서야 고개를 뒤로 빼보았다. 제우스라 착각했던 남성은 다행히 환영에 불과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정이 되도록 자반뒤집기를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몇 번이나 깨어났다. 온몸의 상처가 제우스에게 짓밟히던 날처럼 뒤틀리며 고통스러웠다.  전화벨이 울었다.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안절부절 못하며 “예스, 예스.” 대답만 하다 급히 전화를 끊은 아내는 황급히 아나의 방문부터 열어보고 “쉬!” 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세웠다. 추리닝에 다리를 끼워 넣느라 꼬꾸라지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아내는,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밖으로 나온 아내는 지갑과 휴대폰을 집어 들고 소 닭 보듯 힐끔 한 번 내게 눈길을 주었다.  -도대체 누구야? 그녀는 들은 척 만 척 했다.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 밤눈이 어두웠다.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목발을 짚으며 따라나서는 나를 아내가 밀쳐버렸지만, 치맛자락을 붙들고 택시에 탔다.  -어디 가는 거야? 몇 차례 물어도 아내는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묵비권을 행사했다.  소방차 한 대가 택시 뒤에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택시가 갓길로 빠져 길을 비켜주었다. 그때서야 불난 숍에 소방대원들이 거인의 오줌 줄기 같은 물총을 쏘아대며 불길을 잡고 있는 광경이 한 눈에 보였다.  숍 앞의 4차선 도로는 이미 물바다였다. 단층 슬레이트지붕을 뻥 뚫은 화마는 멋지게 타오르고 있었다. 일주일 새에 배가 볼록해진 달이 신나게 불구경 하는 것을 올려다보며 나는 껄 껄 껄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당신 미쳤어요?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나는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거요?  -누가 어디 웃지 말랬어요! 웃으려면 뭘 좀 알고나 웃어요. 이렇게! 이렇게요. 아내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더니 흰자위를 뒤집어서 헤실, 헤실 웃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웃음이 싹 달아났다. 섬뜩하고 오싹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찰나, 아내의 모습에서 청소년 때 보았던 실성한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 미친 여자는 동네에 불이 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나타나, 불길의 리듬에 맞추어서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했다. 쫓아버려도 가지 않고 불꽃을 보고 헤실, 헤실 웃으며 환장을 하는 여자를 나무에 묶어 놓고서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택시 기사가 입을 벌리고 뜨악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흘겨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나는 아내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카메라를 클릭하고 동영상을 찍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내의 기묘한 행동을 놓칠 수가 없었다.  아내가 불속으로 뛰어 들어 갈 것처럼 허적허적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목발을 짚고서 동영상을 찍으며 아내를 따라잡으려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타오르는 화마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아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으로 줌을 넓혀야 했다.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 다시 넘어졌다. 넘어진 채 자욱한 잿빛 연기 속에서 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액정 장면을 감상했다. 춤인지 오열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손가락을 떨어가며 동영상을 멈추지 않았다.  집을 떠난 새는, 두고 온 고향의 둥지를 그리워하느라 제 둥지가 불타고 있는데도 불구경에 미쳐서 날개를 훨훨 저어서 불길을 살린다더니, 저 여자가……. 나는 중얼 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한 참을 신명나게 찍다가 내 눈가를 만져보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연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끝)테리사 리 소설가15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11회 민초문학상 대상수상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27/10/2021
  문학지평

 가로등 뒤에서 토막 난 다리 한 개가 툭 튀어왔다. 맨살 다리였다. 오늘날 대다수의 충동범죄가 약물중독이 그 원인라고 생각하다 놀라서 움찔했다. 부리나케 차문을 열고 튀어나가다 그만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담배를 밟고 말았다. 운동화발로 담배를 싹싹 문질러 비비는데 번개처럼 여긴 한국이 아니고, 나는 더 이상 생활지도교사가 아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사건현장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가로등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린 다리 하나를 앞으로 불쑥 내민 것이었다. ‘무릎보호대’와 ‘가로등그림자’가 교묘하게 칼끝처럼 서로 맞물려서 내 눈에 마치 토막 난 다리처럼 보였고, 뱀의 머리가 그려진 짙은 바탕의 스케이트보드가 밤이라서 내 눈이 그만 착시를 일으켰다.    목덜미를 긁으며 꼬리 내린 개처럼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무성한 가로수가 충분히 차를 가리고 있었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CCTV를 확인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나는 크리넥스 한 움큼을 뽑았다. 카메라의 눈들만 남기고 휴대폰을 가렸다. 무음 닌자 캠 어플의 비밀번호를 푼 다음 옴짝달싹하지 않고 앉아서 액정을 지켜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대각선 10미터 전방이 액정에 떴다.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상대는 소녀였다. 옆얼굴을 보다가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아테나가? 설마하니! 그녀가 갑자기 허리를 접는 바람에 더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아테나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러자 본능적인 호기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친구지간일 수도 있어. 아냐, 두 사람의 하는 짓거리를 봐! 친구지간이라고 하긴 너무 이상하잖아. 나는 혼잣말을 지껄였다. 액정이 그들의 행동을 거짓 없이 보여주었다. 귓불을 꼬집자 전직의 직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친구지간이면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거나 총알보다 더 빠르게 조잘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둘의 행동은 눈을 닦고 보아도 기이했다. 나는 못을 박듯 손가락에 힘을 눌러 줌을 조절했다.    갈수록 둘의 행동거지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흔들었다. 더구나 그곳은 푸시어(마약 딜러)가 판을 치는 구역이었다. 심지어는 열 살 미만의 아이들도 마약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고 풍문으로 들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진저리가 쳐졌다. 마약 상습자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구역에 숍을 낸 일을 후회하기도 했다. 윤선생을 원망할 때도 많았다.    왜, 녀석이 초조하게 손을 배배꼬다가, 어깨를 움찔거리고, 그러다 한 쪽 다리를 떨어대는지? 옆구리에 낀 스케이트보드를 메뚜기처럼 까딱거리다가, 발바닥을 땅에 비벼대며 허리를 비트는지?    녀석의 표정은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곧추세우고 서 있는 소년은 호기심과 두려움이란 두 가지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제발 옆구리에 끼고 있는 스케이트보드를 땅에 내리고 손살 같이 도망가! 나는 한 마디 교훈을 던지고  싶어서 숨통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소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탁, 하고 바닥에 내렸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다면, 왼발을 보드에 올리고 오른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밀고 달려갈 차례였다. 성능 좋은 카메라에 달린 눈들이 잡아주는 소년의 행동을 보자 희망이 솟구쳤다. 땀에 젖어 끈적거리는 액정을 휴지로 닦다 전화벨 소리에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 어디야, 늦게 생겼잖아.    -어, ……어, 나, 나……, 곧 도착한다. ……금방, 지금 집 앞이야.  손가락을 떨며 거짓말로 둘러댔다. 껌뻑껌뻑하더니 가로등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아테나가 맞았다. 파리한 불빛을 받은 아테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내 직감에 스스로 감동했다.    아테나는 수시로 숍에 나타나 옷과 스케이트보드와 신발 그리고 모자와 액세서리들을 사갔다. 완벽한 곡선미를 가진 야릿야릿한 다리, 또 도톰한 입술에는 항상 립글로스가 반짝거렸고, 거기다 씀씀이가 헤퍼서 부유한 집의 딸이라 생각했다. 비교적 아테나 브랜드만 구입하기에 그녀를 아테나로 기억해 버렸다. 그녀는 요즘 세상에 흔치않은 꼬깃꼬깃한 지폐로 지불하는 별난 단골고객이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테나는 아빠에게 줄 선물이라며 제우스 브랜드 스노우보드 용품을 사 가기도 했다. 언젠가는, 티브이에서 보았던 낯익은 의사가 숍에 들어왔다.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에 수감된 아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인데, 후디를 찾고 있다고 했다. 기이한 우연처럼 마침 아테나가 손에 들고 있던 제우스 브랜드가 그가 찾는 사이즈였다. 의사의 표정이 하도 간절해서 내가 나서서 아테나를 설득했다. 아테나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도 그녀는 웃기도 잘 웃고 입심도 뛰어났다.  아테나는 사건 전날, 문을 닫기 직전에 나타나 뱀의 머리가 그려진 스케이트보드와 방패와 창이 그려진 티셔츠 그리고 올빼미 연속무늬 운동화를 사갔다. 그래서 기억이 생생했다. 왁스와 휠도 함께 사간 것까지 잊지 않았다.  홍학의 다리 같은 아테나의 맨살다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가 걸음을 뗄 때마다 짧은 스커트가 들썩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몰카’를 찍는 흥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는 내가 이상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대가 전조등을 번득이며 달려오더니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빌어먹을! 불빛에 다들 도망갔겠군.” 중얼거리는데 가래가 끓어올랐다. 물을 마시며 곰곰 생각을 해보니 잘 된 일이었다. 식도를 타고 내러간 미지근한 물이 얼마간 마음을 식혀주어서 나는 마음 편하게 출발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한국소년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조되었으니까.  휴대폰의 전원을 끄기 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달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두 청소년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이 눈에 띈 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서였다. 둘의 모습이 마치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기형동물이 엉켜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어떤 연상 작용을 동반한 섬뜩한 현기증이 일면서 갑자기 소년의 발밑에서 세상이 비틀거리며 흔들렸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직접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는 어떠한 정화행동을 하지 않으며,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가든즈 역설’이 기억났다. 눈앞에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을 보고만 앉아 있자니, 정수리에 강렬한 뇌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담배를 한 개비 뽑았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의자를 밀고 뒷자리로 넘어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지만, 맛이 꼭 화재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신 것만 같았다. 그때서야 내가 손을 심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 손가락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을 알아내고 껄껄 웃고 싶었다.    아테나가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마치 거인처럼 팔 그림자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 바람에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주먹 그림자가 소년의 손에 닿아 있었다. 약기운이 뇌로 올라오는지 뒷골이 당겨서 뒤통수를 툭툭 때려야 했다.  아테나가 움켜쥐고 있는 주먹에 흉기나 폭발물 같은 물질이 들어있다고 유추되어 나는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 물체를 당장 낚아채야 한다는 전직의 책임감이 악몽처럼 무겁게 다가왔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눈에서 축축한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소년의 차림새는 아주 말쑥했다. 스케이트보드에서 계속 발이 미끄러지는 꼴이 영락없이 지금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 티가 났다. 보드를 마치 보물처럼 겨드랑이 꽉 껴안고 있는 모양새도 부모를 졸라 갖게 된 첫 보드로 보였다. 고급 브랜드의 형광 로고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하늘이 낳은 주황색 알 같은 달이 소년의 머리통에 후광을 드리워 똑똑해 보이게 했다. 태권도 정도는 배웠을 것 같았고, 잘 하면 누이동생 하나 정도는 있어 보였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유형일 것이고, 나이는 많아야 열두세 살, 아나 또래로 보였다. 나는 녀석을 한국인으로 간주해 버린 상태였다.  남들에게 뒤질까봐 하늘의 달이라도 뽑아 줄 것 같고, 아들이 너무나 귀해서 투명한 수족관처럼 들여다보고 일일이 간섭을 해야만 마음이 놓일 부모 밑에서 자랄 것 같았다. 반면 본인은 일 거수 일 투족을 주시하는 부모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다 툭 하면 부모와 거래를 할 것이며, 안 된다고 호통을 치던 부모는 돌아서서 고등어자반 뒤집듯 소년의 요구를 들어줄 것 같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니까.    자식의 일이라면, 다 죽어가던 몸도 벌떡 일으킨다든가 우박만 떨어져도 하늘이 무너졌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든가 할 것 같았다. 이민 일세답게 뼈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쪽잠을 자가며 일해서 소년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뒷바라지를 할 것이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인생에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할 것 같았다.    현관문 밖에다 옹기종기 신발을 벗어놓고, 앞마당 양지바른 터에는 깻잎을, 물기 많은 터엔 미나리를, 숱 많은 초록 머리카락 같은 부추는 화분에 각각 재배해서, 양파링 모양으로 오징어를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쳐 먹는 집에서 살 것 같았다.    서양인에 비해서 왜소한 소년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옷이며 신발, 학용품과 스포츠 용품은 무조건 최고급 브랜드로 사줄 것 같았다. ……컴퓨터는 애플, 신발은 나이키, 티셔츠와 바지는 폴라……. 점심은 아시안 티를 내지 않으려고 꼭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싸줄 것 같아보였다.    막상 소년은, 고여 있는 물웅덩이처럼 더디게 째깍거리는 시간 앞에서 온몸을 비비꼬아대며,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날마다 학교 앞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는 부모 때문에 친구들의 눈치를 살필 것이고, 어쩌다 길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내심을 감추려고 용감무쌍한 제스처를 해 보일 것 같았다.  -완전 망했어. 이제부터 아빠 안 믿어.  문자가 들어왔다. 1초가 급했다. 가긴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나도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어쩌자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이러고 있어. 딸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지만, ……지금 가봐야 풋볼 경기는 이미 틀렸잖아.  혼잣말을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한쪽에는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또 한쪽에는 호기심 가득한 욕망이 서로 싸웠다.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튕겨 올려 겨드랑이에 꼭 껴안는 행동이 집에서 멀리 온 것이라 짐작되었다. 반면 아테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가 마침 소년을 만난 것이었다. 아테나가 꾸미고 나온 모양새는 충분히 상습범으로 보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에 차서 소년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한편 소년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두려웠지만 상대가 소녀이기 때문에 겁쟁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도망치지 못하고 노련한 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미터 전방에서 벌어지는 그 수작의 절차와 결과가 명료하게 유추되었다.  악착같은 아테나의 행동은 제우스로부터 총애를 독차지 할 것 같았다. 제우스는 핏줄과 양육이란 두 밧줄로 딸을 당기고 늘리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절할 것이고, 제우스의 야망이 눈에 보이는 는 듯 했다. 부모마다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욕망은 각각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모두가 그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일 테니까.  만약 내가 소년이라면 단호하게 스케이트보드를 땅바닥에 탁, 떨어뜨려 재빨리 왼발을 보드 위에 올리고 오른발로 노를 젓듯 땅바닥을 힘차게 밀치고 가버릴 것 같았다. 40mm 휠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굴러가는 소리도 잠시, 아테나가 따라잡지는 못할 테니까. 손을 올려 마른세수를 하자 얼굴이 아니라 거친 바위를 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테나가 미소를 띠고 소년에게 바짝 붙어서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멋쩍어 하던 소년도 호기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주먹안의 그것을 받으려고 손바닥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도 더 이상 우두망찰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계속)테리사 리 소설가15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11회 민초문학상 대상수상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13/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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