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 설날을 맞아 찾아온 고국의 하늘에는 냉기로 가득 하다. 한여름의 시드니에서 하루만에 한겨울의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30도의 열탕 사우나에서 영하 17도의 냉동실에 들어선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산다는 것은 일종의 숙련 과정인데 30여년의 호주 생활에 젖어 그동안 사계절의 뚜렷한 기온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탓에 맹추위에 익숙하지 않는 것이리라.
이번 여행은 매시간 돌아가는 세상에서 고국과 타국 사이에 건강한 균형을 찾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숨어 있음을 고백 한다.
숲을 벗어나야 숲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
더구나 고향을 떠나야 더욱 고향이 그리워지듯이 타국과 고국의 거리를 두면 더욱 상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설날(구정)을 맞아 조상에 대한 성묘와 차례에 참여하기위해 고향을 찾아 떠나는 행렬을 보고 의문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봄철 어려운 보릿고개에서도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빚을 내서라도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루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관혼상제를 잊지 않고 치르던 깊은 의미는 수백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한민족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지혜가 녹아 있다.
본래 ‘나’라는 존재는 수없이 많은 조상들의 기질이 합해서 모인 만남의 장소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지나온 길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고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줄 모르면 어디로 가야될 지도 모른 법 아니겠는가 ?
가장 중요한 현실적인 이유로는 가족끼리, 동네 이웃끼리 제사와 결혼식이라는 만남을 통해 유대를 강화하고 상부상조 하는 미풍양속을 유지하려는 제도였다고 생각된다.
옛 시절에는 마을에 경조사가 나면 마을에 굴뚝 연기가 나지않았다. 모든 부락민이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해결하며 더불어 도움을 주었으니까.
한민족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유교에서는 제사는 흉사(凶事)가 아니라 길사(吉事: 좋은 일)로 여겼다.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는 게 제사의 본 뜻이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과 가문의 단결하는 힘이 위기 때 마다 발휘된 한국 사회 공동체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
인구 절벽에 서 있는 한국에서는 앞으로 형제자매는 물론 이모, 고모, 삼촌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가고 있는 우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고향 S시에서 무려 2천쌍의 결혼식 주례 실적을 가진 친구 Y씨를 만나 최근의 기록 갱신을 문의했더니 한숨이 앞선다.
왜냐하면 요즈음의 신랑신부들은 종교 예식을 제외하고는 아예 주례를 세우지 않고 서로 손을 맞잡고 결혼 선언문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며 예식(禮式)을 마친다니 어안이 벙벙 하다. 호주에서는 공인된 주례의 서명이 있어야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필자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호남선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무궁화호’라는 왕년의 급행열차가 이제는 완행열차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주중에는 경로 할인제를 실시해서 노인들에게 부담을 덜어 주고 있다. 이날 탑승한 완행열차의 변신이 나그네를 당황하게 하면서 추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전에는 완행열차를 타면 장장 10여 시간이 걸려 차비보다 간식비용이 더 들었다. 철도청 산하 단체인 홍익회에서 차안 판매 독점권을 주어 "땅콩 사려, 오징어, 소주 있어!"하며 기차칸 복도를 누비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은 간 곳 없고 도서관처럼 조용한 최신 객차에서 아동에서 노인까지 모바일 폰을 드려다 보느라 정신이 없다. 철도역에는 개찰도 검표도 없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검표원과 심지어 권총을 찬 경찰관이 검표를 하고 있는 호주와 대비가 되었다.
차창에 보이는 겨울 들녘은 을씨년스럽다. 겨울이면 그렇게 푸르렀던 보리밭이 사라지고 희뿌연 회색 들판이 남편과 사별한 아내처럼 홀로 쓸쓸히 앉아 있다.
눈이 쌓여 있는 동구 밖 아카시아 나무에 걸린 까치집은 보이는데 까치와 까마귀는 행방이 묘연하다.
한국의 지방 도시마다 7개 무지개 색중에서 골라 특성을 살리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시내에 들어서면 난개발로 전국이 대동소이해서 실망스러웠다. 지방을 상징하는 신작로 흙길이 온통 시멘트로 덮여 초가집과 기와집이 조화를 이루던 정겨운 시골 풍경은 찾을 길 없고 볼 품 없는 시멘트 건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고대의 희랍인들은 진실의 반대말을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말했다. 고국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호주를 그리워 하기 위해 삶의 균형을 맞추다 보면 진실한 삶을 위한 면역력이 길러지리라. 그리하면 소망을 발견하리라.
김봉주(자유기고가)
info@itap365.comwww.itap36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