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께서“성령을 받아라!”하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성령은 선물입니다. 선물의 포장을 뜯어보세요. 그 속에 자비의 열매, 용서가 살포시 들어있습니다.
용서는 무엇일까요? 용서는 높은 자가 아래 사람에게 내려주는 관대함의 하사품이 아닙니다. 대상관계가 틀어지기 이전처럼 나를 받아들이는 조건 없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선물로서 용서가 지향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이 남아있던 곳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입니다. 바로 평화입니다. 용서는 평화를 이루는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받아야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구할 상대가 사라져 없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큰일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체 평생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 없기를 바라지만 실재로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서로 용서하면 그 열매, 곧 평화가 우리 안에서 맺습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꽃이라면 그 열매는 평화입니다. 사도들 머리 위에 불혀 모양의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불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성령의 불꽃 속에 들어가면 생명처럼 살아나고 성숙하여 겸손의 옷을 걸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임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불, 성령께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변화하도록 온전히 이끌어 주십니다.
“태워버리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신명 4,24)과의 접촉은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내면의 불꽃이신 성령은 영혼을 정화하고 우리를 성숙한 삶으로 이끌어 정신을 비추고 마음을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 순간 용서는 사람을 수락하는 치유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느님께 이미 용서받은 것처럼 나도 상대방을 용서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이미 내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용서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회심이 어려운 것은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나를 만나려면 성령의 위로를 받으세요.
예수성탄의 주변 인물들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리고 엘리사벳의 태속에 세례자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수님 성탄은 바로 성령에 순종한 겸손함이었습니다. 겸손함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림입니다. 요셉, 엘리사벳, 즈카르야, 세례자 요한 특히 마리아는 성령을 통한 예수님 잉태소식을 천사께 그리고 성령에 가득차서 들었는데, 그 첫 자리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은혜였습니다.
사람은 영(pneuma)과 혼(psyche) 그리고 몸(soma)의 3중 구조 단일체로 태어났습니다. 몸은 움직이고, 영은 기도하고, 혼은 영과 몸 사이에서 갈 방향을 선택합니다. 몸의 음식이 빵과 밥이고, 몸을 위해 체력 운동을 하듯이, 혼의 음식은 하느님 곧 영의 말씀이고, 혼을 위한 운동은 내 안에서 영이 하는 기도입니다. 말씀을 잘 알고 이해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마음 안에 말씀과 영만을 품고 있어도, 하느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움직이십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영에 의해 태어나신 기쁨의 축제 생일입니다. 예수성탄의 주변 인물들이 영에 순종하여 교만이 아니라 겸손의 복을 받으셨듯이,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들과 같이 영에 순종하도록 주님은 초대합니다. 영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래서 가난한 자들과 코비드-19로 어려움에 처한 자에게 예수성탄의 축복을 나눕니다.
특히 내년부터는 끝없이 사람들을 용서해 온 아픈 지구가 이제는 사람의 생태적 회심인 삶의 구체적인 변화로 되살아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곽승룡 비오 신부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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