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는 이종섭 당시 대사(사진:연합뉴스)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호주 교민 사회를 흔들며 부임한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선을 앞둔 윤석열 정부로서는 사안 종결을 바란 고육지책이었겠으나, 적어도 교민 사회에는 미봉합된 과제를 남겼다.
일명 '도주대사'라 불리며 정치적, 외교적 논란에 휩싸였던 이 전 대사는 재외공관장회의를 명분으로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지난 금요일(3월 29일) 사의를 표명했다.
한국 외교부는 윤 대통령이 이 전 대사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치적, 외교적 손실을 무릅쓰고 단행한 대사 임명이 25일 만에 사임으로 되돌아왔다.
채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던 이 전 대사는 임명 소식 때부터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국방장관이었던 이 전 대사를 외교관으로 발탁한 목적은 윤 정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공수처 수사에서 그를 빼내기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윤 정부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의 압력은 거셌다. 야당은 물론이고, 총선을 앞둔 여당 국민의힘 일부 후보들은 이 전 대사 임명 결정에 등을 돌렸다.
이 전 대사의 사임 소식이 전파를 타자, 해외 언론에서도 이번 사태를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부패(corruption) 수사를 받고 있는 호주 주재 한국 대사가 임명 4주 만에, 총선을 2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은 채상병 순직 사건과 한국 교민과 호주 정치인의 반응을 소개하며 "외교가 정치적 계산에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평가했다.
이 전 대사의 급작스러운 귀국에 관해서는 "이 대사가 체면을 살리고 국민적 분노를 달래면서 귀국할 수 있도록 외교적 쇼를 벌였다고 볼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또한 더 디플로맷은 "논란이 많은 인물을 호주 특사로 파견했다가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한-호주 간 외교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을 받아 온 윤 정부의 이번 인사는 교민 사회를 분노케 했다.
대표적으로 시드니 촛불행동은 캔버라에서 시위를 벌이며 대사 임명 철회와 이 전 대사의 자진 사퇴를 요구해 왔다.
아이탭과 한호일보가 2주 전 약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4.7%가 촛불행동의 시위를 지지했다.
6개 재호 한인단체의 대사 임명 환영 성명이 나온 후에, 시드니 한인회는 정치적 공방을 중단하라는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인회는 "일부 교민"의 찬반 의사 표명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한인사회 내부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촛불행동은 시드니 한인회의 호소문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다수의 교민이 대사 임명을 부적절한 인사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3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진행한 아이탭과 한호일보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민들은 시드니 한인회의 호소문보다는 촛불행동의 반박문에 훨씬 긍정적이었다.
약 800명의 응답자 중 86.6%가 시드니 촛불행동 반박문에 공감한 반면, 한인회 호소문에 공감한 응답자는 7.9%에 그쳤다.
응답자 87.9%는 정치적 찬반과 공방은 교민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한다는 한인회 견해에 반대했다.
9만9천900명이 넘는 절대 다수 교민은 이종섭 대사의 부임에 철저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한인회의 주장에 대하여는 응답자의 91.1%가 동의하지 않았다.
한인회 호소문이 호주 교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90.4%가 아니라고 답했다.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가 28.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이 대사 임명 사태가 단순한 정치 진영 논리를 넘어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42.4%는 중도, 17.9%는 성향 없음, 11.4%는 보수라고 본인을 설명했다.
현재 주호주 한국대사관은 차석인 정무공사가 대사를 대리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교민 사회가 당면한 이 전 대사 부임은 일차적으로는 일단락된 셈이다.
다만, 시드니 한인회가 "10만 교민을 대표한다"고 언급한만큼, 한인회가 교민 사회와 결부된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교민을 대변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과제는 남아 있다.
이용규 기자 yklee@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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