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을 하면 혼란한 순간에도 목표 하는 방향으로 정진할수 있다.
화합이라는 어려운 명제는 화합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지는것이지 결코 화합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같은 어미에게 나와도 형제가 같은 생각하길 바랄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상대 배려심을 하려고 노력하는것인데. 긴 시간과 역사속에 해소되지 않는 응어리가 뭉쳐저 마음 한컨에 조용히 잠재한다고 본다.
그러기에 지구촌 어느곳이나 어떠한 역사적 인과 관계로 질시와 미움으로 대립이 존재 하지 않는가?
50년 이전만 하더라도 사회는 계층간의 유연하지 못했으며 부와 권력은 편중되어 있었다. 이제는 바뀐세상이고 마치 인종과 계층의 변화가 우리 머리위를 날라다니는거 같다.
그렇다면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응어리는 자연히 녹거나 증발 되었을까 ? 아니라고 본다. 어떠한 형태, 모양으로 변해서 우리 사이사이 곳곳에 있다. 마치 대상 포진이 척추에 늘 존재 하듯.
그래서 “화합”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난제로 보인다.
군중보다 개인이 존중받는 21 세기 아니던가?
통신발달, 영상기록의 편리함으로 집단의 정의와 논리의 공명정대함을 크게 기대하지만 생각보다 인간의 아날로그 향취는 기술을 전혀 따라갈 생각을 못한다.
고국의 분열된 현 시국이 참으로 걱정된다. 한편으론 그 많은 시련을 겪은 삼국, 고려, 조선,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보면 그래도 살아 남은 나라 아닌가?
꼭 하고자 하는말은 지금은 누군가의 편가르기로 인해 이놈 저놈 하고 욕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잠잠해지고 그 작은 응어리를 척추속에 조용히 넣어둘 모습이 우습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Sydney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