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고 있는 우드포드의 지세는 경사가 좀 심한 곳이라 전망은 좋으나 땅 사용도는 낮은 편이다. 2년 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이따금씩 비탈진 곳을 바라보면서‘토굴을 하나 지어봤으면…’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곤 하였다. 오죽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곁에 손바닥만 한 텃밭이 하나 있는데 낮은 곳에서 쳐다보니 흙도 많은 듯해서 일하기도 수월하고 지상에 그리 크게 올라 오지도 않을 듯하였다. 하지만 다른 생각과 일에 밀려서 그럭저럭 지냈다. 그러다가 록다운이 시작된 6월경부터 이때다 싶어 호미 하나만 들고 그 일을 시작했다.
창고를 정리할 때 눈 여겨 봤던 각목, 판자와 이곳 구석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여러가지를 주워 모으면 너끈하게 토굴 하나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짝이 맞게 된 것이다. 나는 약골이라 삽이나 괭이질은 겁이 나나, 앉아서 하는 호미 일은 즐겨한다. 곧장 땅을 파기 시작했다. 시내 인근의 땅을 파보면 금방 딱딱한 붉은 흙이 나와서 일하기가 매우 힘이 드는데 이곳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흙 파기가 쉬워서 내 뜻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니 재미가 났다. 갈 곳도, 오는 이도 없으니 일의 능률이 높아져서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정도 파고들어 가니 이게 웬일인가? 그 속엔 이 집을 지을 당시 못쓰게 된 벽돌 조각이나 돌 등이 소복하게 묻혀 있지 않은가?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파고 또 팠다. 이것 들로 벽을 만들고 흙만 넉넉히 바르면 멋진 토굴이 되는 것이다. 또 뭔가 짐작되는 곳 밑바닥까지 흙을 걷어내고 보니 방 하나 정도의 크기가 반석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뒷날 이곳에 토굴을 하나 지으리라는 예상을 하고 벽돌 등을 묻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땅을 팠다.
오직 호미 하나로만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다가도 잠이 깨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에 잠긴다. 생각에 골몰하면 묘책이 나온다. 판판한 반석을 재어보니 가로세로 2m 40cm에, 1m 60cm 정도의 방은 될 듯 하다. 고작 한 평 정도의 크기지만 한 사람이 들어가 앉고 누울 공간으론 충분하다. ‘아무리 그래도 기둥 역할을 할 힘 받는 곳이 몇 군데 있어야 하는데…’하고 고심하던 중 이곳 저곳에 내팽개쳐져 있는 플라스틱 우유 박스가 떠올랐다. 그것은 상당히 단단하고 썩지도 않아서 매우 좋게 느껴졌다. 그곳에 깨진 벽돌 조각과 흙을 짓이겨 넣어서 차곡차곡 쌓으니 멋진 기둥이 된다. 다섯 개를 쌓으니 지상까지 올라오고 3개를 더 포개니 거의 2m 높이가 된다. 지붕이 문제였지만 봐둔 것이 있었다. 일하다가 남아 있는 널빤지 등등의 나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것을 볼 때마다 생각하곤 했었다.
흔히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얘기하지만, 이 일을 하다 보니 일거삼득(一擧 三得)이 되었다. 못 쓰는 것들을 주워 모아 재활용하면서 구석기 시대의 토굴까지 생겼으니… 하여튼 집 주변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던 못 쓰는 돌조각 등이 총동원되었다. 이것도 집이라고 벽을 만드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였다. 흙과 함께 벽을 만들다 보니 모양은 울퉁불퉁 볼품이 없어도 가능한 실용적으로 살려고 하다보니 벽을 두툼하게 만드는데 흙이 많이 쓰여졌다. 마침 경사진 곳이라, 여러 차례 흙으로 메꾸니 더 큰 힘이 되었다.
땅을 파다 보니 맨 아래는 반석이고 그 위엔 노란색의 모래흙이며 그 위는 외부에서 가져온 흙으로 작은 돌과 섞인 황토, 또 그 위엔 검은 색깔의 거름흙인듯 하고 마지막으로 잔디를 깔기 위한 흙… 그야말로 층층이 흙이었으니 호미 하나로만 집을 짓는 본인에게는 그야말로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땅을 파다가 보니 거북이처럼 생긴 큰 돌이 나왔다. 생각 끝에 작은 연못을 양쪽으로 2개를 만들었다. 빗물을 받는 2개의 큰 물통을 믿고 낸 나름의 아이디어였다. 처음에 생각만했던 일들이 점점 그 모습을 갖춰가고 힘들게 여겨졌던 문제들이 깊은 사유 속에서 척척 해결되어가니 손목이 얼얼하게 아파도 호미질을 할 땐 신바람이 난다. 거기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연못까지 생겼으니…
안팎으로 흙이 덕지덕지 발린 토굴을 바라본다. 꼴은 우스워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훈훈할 것이다. 그곳에 홀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길 일을 생각하면 가슴 속이 훈훈해짐을 느낀다. 이 모두가 코로나 덕분이다. 생각에만 맴돌았던 일이 그로 인해 실천에 옮겨졌으니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일이건 발생하게 되면 불편이 없을 수가 없다. 본인은 지금까지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무슨 힘든 일이 발생하면 그 상황을 역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이번 코로나의 경우도 그 습관의 하나에 해당한다.
불경에선 말한다. 무슨 일이건 시작도 과정도 그 결과도 좋아야 된다고 하였다. 항상 마음 한켠에 도사리고 있었던 진짜 토굴을 하나 만들고 너구리처럼 그곳에 들어앉아서 궁상을 떨어봤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곳 호주에 와서 겁 없이 땅을 파고 괴상한 황토방을 하나 만들었으니…
없던 토굴의 형상이 하나 생긴 것은 한 생각 때문이고, 그 생각이 현실화된 건 코로나 덕택이다. 그 생각의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불편을 안겨주는 코로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둘 모두가 존재의 원천이며 생명력의 진원지라고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동질성의 다른 모습과 이름일 뿐이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도움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피차에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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