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미나리로 세계 영화계가 떠들썩하다고 한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영어 단어로 된 새로운 뜻이 있는 미나리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한국 식물인 그 미나리라고 해서 그게 무슨 영화 제목감이 되는가 하면서 또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평론가들의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하게 이해되었다. 역시 어떤 분야이건 전문가들의 안목은 남달랐다. 평범을 비범으로, 다름을 동일체로 바라보게 하는 그들의 깊은 사유의 세계가 공감의 박수를 이끌어내게 하는, 하나됨의 장으로 승화되게 하는 힘으로 작동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얘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전혀 색다른 모습이나 내용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보인다. 이 영화는 그런 두 부분을 충족시켰기에 세계적인 화제가 된 듯하다.
미나리는 하나의 식물 이름이다. 그것이 풍토와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것은 강인한 뿌리 덕분이다. 그 뿌리는 무엇을 먹으면서 자라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살고 싶어하는 천연적 생명력이며, 이 우주 어느 곳에서나 상존하면서 그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키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생명력의 동일체 속엔 각기 다름의 개성이 존재한다. 살고있는 곳의 조건과 환경, 보고 들으며 익혀온 관습이 다른 곳에서 살아왔기에 그렇게 된다. 지구촌의 66억 가량 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다름은 그 이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선 ‘인연론’이라고 말한다. 이 세계가 형성된 과정이나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의 탄생과 존망의 과정이 창조론이나 우연이나 필연론도 아니며 단지 이것과 저것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창조와 변혁이 반복,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러한 인연 생기의 원리에 따라서 산은 높이 솟아 등산을 하게 하고 물은 낮게 흘러 배를 띄우게 하는 이익을 준다. 선과 악, 시와 비, 중상과 모략 등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한국 사회의 현재적 상황도 모두가 인연 지음에 따라서 나타나고 있는 인과 업보의 연속상이다. 그 누가 싸우라고 부추겼는가? 그 어떤 이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창조했는가? 그 모두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업자득이다.
미나리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이 거머리이다. 그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미나리 논이나 묘판 논이다. 그곳은 그들이 살기엔 천국이다. 미지근한 물이 항상 고여있으며 식물이 밀집해 있어서 숨어서 지내기가 매우 좋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피다. 드라큘라나 흡혈귀의 사촌 정도는 충분히 될 듯 한데 그들의 생일날은 바로 모내기하는 때다. 특히 묘판에 일을 할 때 보면 그들은 바쁘게 헤엄치며 다닌다. 통통하게 살이 찐 처녀들의 장딴지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다. 아마 여성의 피가 더 맛이 있는지 소스라치면서 놀라서 펄쩍펄쩍 뛰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또한 처녀들이다.
거머리들의 피 뽑는 기술은 숙련된 간호사보다도 더 실력이 있다. 피를 빨며 피가 장딴지에서 흘러내려도 본인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이니 그렇다. 주로 그 모습을 발견해 주는 것은 총각들이다. 그 모습을 본 여성들은 놀라서 기겁하면서도 거머리들을 내치지 못한다. 그 모습이 매우 징그럽기 때문이다. 그때 총각들이 다가가서 도움을 주는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몸체가 물렁물렁 하면서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기 때문에 손으론 떼어낼 수가 없다. 그땐 손바닥으로 힘있게 때려야 비로소 떨어진다. 장딴지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도 그때는 진흙으로 상처를 쓱쓱 문지르면 지혈을 하고 일을 계속한다.
우리 이웃 동네인 감나무골에선 거머리 떼어준 인연으로 결혼을 해서 거머리 부부가 탄생된 인연도 있었다.
미나리와 거머리는 언제나 함께 산다. 물이 고여 있는 곳엔 언제나 푸르게 잘 자라고 있는 미나리, 그것을 미국까지 갖고 가서 잘 키워서 아들과 손자 등 가족들에게 잘 먹여 보려는 할머니의 마음, 그렇게 선한 마음의 어른들이 있는 반면에 미나리를 의지해서 피를 빨아 먹으려는 거머리들도 이곳저곳에서 설쳐댄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 호주 거머리들은 나무 위에서 지내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머리에 낙하해서 피를 빨아먹는다고 하니 등산할 땐 언제나 모자를 착용해야 될 듯하다.
우리 동포 사회에서도 어느 구석에서 거머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을 소몰이꾼이라는 은어로 부르면서 조심하라고 하는 말은 들었으나 깜박 잊고 본인도 거머리에 크게 물린 적이 있었다.
내가 만일 정이삭 감독이라면 미나리 후속편으로 거머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막연한 희망이 무지를 바탕한 허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면 절망감의 분출은 현장 속에서 직접 체험한 역동적인 생명의 참 에너지이다. 그 절망적 삶의 밑바닥에서 참 희망의 샘물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는 지혜적 안목을 갖추게 된다면 절망은 새로운 희망의 농장을 가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05년 수술 후 절망감을 안고 봉화의 첩첩산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 때 일으킨 한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어 본다.
<희망>
희망은 날 속이는 덴 천재다
이곳보다는 저곳이
저 사람보다는 이 사람이
더 좋을 것이라고 꼬득인 그대는
바람잡이이다
그러나 난 그대가 없었던들
차 밀린 십자대로에서
납작한 뻥튀김 되어
조각조각 동강이가 났을 거다.
우린 외나무다리를 함께 건너야 하는 동반자
그래서 난 오늘도 내일을 넘본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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