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입니다.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사회에서 악플로 고통 받다가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신문에 등장하는 기사 거리는 웬만한 잔인한 사건이 아니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합니다. 미움과 증오가 사회 가운데 깊어지고 우리 자녀들도 미움과 증오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점차 그것에 익숙해 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 1예루살렘 성전이 BCE586에 파괴되고 멸망 당하게 된 이유를 이스라엘에 팽배한 우상숭배와 성적타락과 살인에 기인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공교 롭게도 AD 70년 같은 날 일어난 2차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는 이스라엘에 편만한 ‘근거없는 미움’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간주 합니다. 그래서 탈무드에서는 멸망의 요건이 같으므로 “’근거없는 미움’을 우상숭배나 성적 타락, 살인과 같은 심각한 죄들과 동급의 심각한 죄로 취급한다” (바빌론 탈무드,요마9b)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움과 증오의 심각성을 깨우치도록 “미움은 올 곧은 것을 굽게 한다” 또, ‘사랑은 결점에 대해 눈감게 하고 미움은 덕에대해 눈감게 한다(시랏 이스라엘)”라고 가르쳤습니다. 랍비 죠슈아는 “ 악한 눈과 악한 성정과 미움은 평범한 사람을 세상에서 제거시킨다(아버지의 윤리 2:11) “ 라고 말했습니다.
‘미움을 가지면 괜한 사람까지도 해를 끼친다’ 는 의미입니다. 어릴 때 아이들이 TV를 보며 상관없는 사람을 괜한 흉을 보고, 트집을 잡곤 할 때 “저 사람이 너한테 뭐라고 한 것도 없는데 왜 그래?” 하고 물으면 ‘그냥..’ 하고 무심코 말하곤 합니다. 때로 훈훈한 사랑과 격려 보다는 비판과 미움에 더 익숙해 져 있다는 것에 우리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결국 내 마음에 미움이 많은데, 알아 차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악한 것을 가장 금기시하는 율례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한 말 일 것입니다. 랍비들은 이말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함부로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해석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함부로 악한 일을 행한 것을 죄로 다스리겠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심상치 않은 최고의 계명으로 명시하여 경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심각한 죄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십계명 중 신을 희생자로 만드는 유일한 계명이기 때문이라고 랍비들은 설명합니다.
아마 그 대표적인 일들 가운데 하나가 IS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알라 아크바’(신은 위대하시다)라고 외치며 테러와 살상을 저지르는 일일 것입니다. 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 단체에서도 목사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신도를 호도하거나 성폭행과 자산 갈취와 진리를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의 이름을 핑계삼아 악한 일을 일삼는 것이 죄가 될 것인데도 감지 하지 못하는 것에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익숙해 져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선악을 구분하는 신적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일임과 동시에 또한 악한 일을 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에서는 “부모가 길에서 주운 물건을 가져도 된다고 말할 경우, 그럼에도 돌려줘야 한다(바바 메지아32a)” 고 가르칩니다. 직장이나 군대에서도 상사의 말을 따라 살상을 저지른 것도 엄연한 죄이고 “살인을 하지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살인을 하라는 상관의 명령보다 우선한다” 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탈무드는 “악행에는 전달자가 없다(키두쉰42b)”고 말합니다. 누가 전달했던지 악행은 행한 사람의 책임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나치 전범들 중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작전명 ‘Final Solution’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가 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폴란드를 중심으로 수용소를 세워 잡아들이고, 생체 실험하고, 가스실에서 죽이고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고 유대인의 몸에서 나온 모든 것으로 가발을 만들고 비누로 만드는 것을 실행에 옮긴 장본인 입니다. 그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 첩보요원들에게 잡혀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상관의 지시만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유대인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고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습니다. 이를 취재 했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의 죄성’에대해서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어느 누구나 악을 행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이 우리 주위에 편만하고, 그런 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죄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결국 예루살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앞에 소개한 것처럼, 랍비들은 예루살렘 제2성전이 무너진 이유는 이스라엘에 팽배한 근거없는 증오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죄성이 1차 성전 때 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이 저지른 확연한 죄악에 대해서는 70년의 포로 생활 후에 회개하고 돌아 올 수 있었지만, 근거없는 증오와 미움은 저지르는 수많은 사람이 죄를 깨닫지 못하므로 회개할 수가 없어 계속 죄만 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죄를 감각없이 짓고 있는데도 각성이 없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쿡이라는 랍비는 “제2성전이 ‘근거없는 미움’으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제3성전은 근거없는 사랑으로만 재 건립될 수 있을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CS Lewis 가 ‘악과 사랑은 동시에 복리로 증진 한다’는 말을 기억나게 합니다. 결국 사랑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 미움을 이기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사진 01: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진 02: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진 03: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저자, 유대인 정치 철학자
사진 04: 아돌프 아이히만- 포로 수용소 유대인 대량 학살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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