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데믹
작년 3월 말, 시드니는 모든 것이 셧다운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호주는 코비드 영향권에서 조금 비껴난듯 싶다. 악수를 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공회당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연말이면 거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은 다르다. 신문에 난 기사 몇 개를 인용한다. “이제 넥스트 팬데믹은 각국에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수준의 안보 위협으로 떠올랐다. 위험한 바이러스는 50만종, 밝혀낸 것 0.2%뿐.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간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기후변화로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고 생물 종(種)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야생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숙주인 인간으로 옮겨 타고 있다. 바이러스는 통상 새로운 숙주를 만나면 더 가혹하게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점점 더 자주, 강도 높게 인류를 휩쓸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문제다. 인간은 대단히 모순된 삶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망가뜨리면서 자신 혼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이기적 존재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바이러스 핵폭탄이 터질 수 있다. 몇 년 전 사스(SARS)로 인한 사망자 수는 774명, 메르스 858명, 에볼라 11,325명인데,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3월 10일 현재 2,628,752명이다. 다시 한번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어떻게 될까? 해법은 우리에게 있고, 지금부터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2. 미나리
팬데믹이 창궐했던 지난 1년, 우리집에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그 수확물 중의 하나가 ‘미나리’다. 물만 주면 잘 자라나는 그 ‘미나리’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두 달 전인가 영화를 봤다. 화면 질이 별로 였다. 조금 보다가 졸았는데, 깨 보니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봐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상들을 휩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엊그제 좋은 화질로 다시 봤다. 여전히 그저 그런 영화였다. 음악이 좋고, 차분한 진행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할머니와 엮어가는 이민정착 스토리는 진부했다.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몇배 극적인 이민자의 삶이 내 주위에는 수없이 많다. 만약 우리들의 이민 역사를 아이삭 정 감독 + 호주인 라클란 촬영감독 + 배우 윤여정과 천재 꼬마 앨런 김 등을 붙여서 영화로 만든다면, ‘미나리’메 못 미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제작비도 단 2백만불 밖에 안 들었다. 그 정도면 집 팔고 은행 융자 얻어서, 자신의 이민 역사를 영화화 하여 100배의 수익과, 세계적 명성을 얻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의 마음을 정해야 했다. 영화 ‘미나리’가 그 많은 상을 받을 만한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3. 이민자 가족
‘미나리’의 핵심은 ‘이민간 가족’이다. 배경이 되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비록 얼굴이 편편한 한국계가 중심되어 만든 영화지만, 엄연히 ‘미국 영화’다. 이미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인이 만든 영화 수준에 대한 사전학습이 되어 있었던 상태다. 문화적으로는 생소한 결이지만, 자기들 땅으로 들어와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보려는 또다른 이민자 삶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맛갈나게 영어를 구사하며 인터뷰를 소화하는 할머니 윤여정에게 열광한다. 우리는 그 반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할머니는 진부하게 익숙한 할머니다. 이민간 자식을 찾아오며 고추가루/멸치 봉다리를 주섬주섬 끄집어 내는 할머니. 살벌한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해온 허름한 가방 속에서 왕밤 하나를 꺼내, 이빨과 혀로 살을 발라내 손주 입에 넣어 주려는 할머니. 우리는 그 할머니가 때로는 지겹다. ‘그랜마 스멜’이 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심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교회에서, 딸이 드린 100불짜리 헌금 지폐를 몰래 집어내 숨기는 할머니의 몰상식에는 창피할 뿐이다. 할머니는 그토록 역설적인 존재다.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정작 아프거나 돌아가시면 눈물 펑펑 쏟으면서, 결국 그 할머니를 닮아, 그 할머니가 되어가는 우리들.
세상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가족’이다. 사회적 부정부패의 진원지는 가족 이기주의이며, 참혹한 전쟁의 진원지는 민족 이기주의일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조부모와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어리고 젊은 이민 2,3세대들이지만, 그들 역시 부모가 되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가족은 서로의 자리를 바꿔갈 뿐이다. 특히 이민 생활은 가족과 지지고 볶다가 한 그릇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삶이 전부다.
4. 에필로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뇌졸증에 걸려 창고를 태워 먹은 할머니. ‘나 같은 할망구, 내가 없어져야 애들이 잘 살지’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그 때 7살 먹은 손자가 할머니를 쫓아 달려간다. 심장에 구멍이 있기에, 뛰면 안되는 아이다. 그런데도 달린다. 점점 더 빨리 달린다. 무려 25초 동안, 달리는 그의 모습을 호주 출신 촬영감독이 클로즈업 시킨다. 그 장면을 보며 감동이 밀려왔다. 할머니 앞을 가로막으며 그 꼬마가 외치는 말, ‘할머니 어디가요? 이쪽이 아니예요. 우리 집은 저쪽 이예요.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에 가요!” 그러면서 서로 손을 잡는다. 할머니는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풍 맞은 오른쪽으로 기우뚱 기우뚱하며 걷는다. 그리고는 바퀴 달린 이동식 주택 거실에서 5식구가 함께 잔다. 그 장면을 되새기며 글을 쓰는 동안 내 눈에 눈물이 홍건해졌다. 그 눈물로 우리의 이민 ‘미나리’는 자란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난 미나리를 심으리라!
영화 ‘미나리’가 진부하다면, 내 마음이 진부해진 까닭이다. 이민 삶에 찌들려, 감정이 메마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세상에 소중한 것이 뭔지를 모르는 무정함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 ‘미나리’에 대한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회개한다.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이미 돌아가신 애들 할머니를 향하여, 오늘도 자생하는 미나리가 흥청대는 개울 옆 길을 홀로 걷고 계시는 애들 할아버지를 향하여.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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