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한도!
‘장무상망’(長毋相忘)과 기독교 영성”
한호일보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랜만에 지면을 통하여 인사드리게 되었고, 지면을 허락하신 한호일보 모든 임직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해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아직도 이 괴기한 전염병의 위협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독자 여러분의 무병장수,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이번이 아마도 지면을 통하여 그려내는 필자의 세 번째 ‘세한도’에 관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세한도’에 대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는 지인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세한도의 문학적 가치나 미술사적 가치 등을 논하기 보다는 그 그림의 오른 쪽 아래 찍혀 있는, 추사가 사용한 많은 낙관 중에 하나인 ‘장무상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세한도(歲寒圖)는 국보180호로 지정되었고, 그 가치로 치자면 가히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보배스러운 조선 최고의 문인화이며, 조선 문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번에 세한도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계시던 손재형 옹이 이 그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을 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분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며 그 귀한 헌신을 치하해 마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세한도는 제주도로 유배가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고독하고 답답한 세월을 사는 중에 제자 이상적(통역관)으로부터 귀한 서책을 소포로 받아 그 의리와 지조를 귀하여 여겨 그린 답례 그림이다. 이 그림이 실경산수화로서는 거의 가치가 없지만, 그 그림이 품고 그려내고 있는 소중한 미술사적 가치는 참으로 오래 기억할만한데, 제목 ‘세한도’를 가로로 쓴 다음에 세로로 ‘우선시상’ (우선아, 보거라, 우선은 이상적의 호)이 쓰이고 그 옆에 ‘완당’이라 쓰고 낙관을 찍었다. 그런 붉은색 낙관은 수묵화가 가지는 담백함에 생기를 주는 방점이 된다. 그런 붉은 낙관을 살짝 떠 받치듯이 늙은 노송의 빈 가지들이 하늘을 향하여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그런 아래로 수묵화중의 ‘초밀법’을 사용하여 짙은 묵을 연하게 뻗침으로 적막한 유배 생활을 황량함을 표하다가 다시 그림의 오른 쪽 끝으로 정사각의 붉은 낙관이 나오는데, 그 낙관의 내용이 바로 ‘장무상망’(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내용인 것이다.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는 설왕설래가 많다. 그림에 나오는 네 그루의 나무가 두 그루는 잣나무이고, 두 그루는 소나무다. 한 소나무는 늙은 노송이고, 다른 소나무는 젊은 소나무이며 이는 자신과 제자를 가르친다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아니다, 세 그루는 측백나무이고, 한 그루는 노송이 맞다. 하는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 그림 중앙에 있는 허름하고 두툼한 집은 뒤로 갈수록 더 커지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역원근법을 사용했다느니, 집의 창문이 중국식이라느니, 또 창문의 틀과 집의 앉은 방향이 두개의 입체적 시선을 한 화폭에 담았다느니 하면서 추사의 천재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조선 문인화의 전통을 따라 그림 후에 몇 자의 발문을 적었는데, 그 필법이나 배치가 당당하고 기개가 있다. 그 발문의 열 번째 줄 하반부부터 시작되는 공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라는 글이 추사의 제자를 향한 칭찬의 백미를 이루고 있는데, 논어 자한 편을 인용하면서 추사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며 유배가서 실권한 스승을 여전한 마음으로 숭모하는 제자의 깊은 정을 치하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사용한 ‘장무상망’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이다.
세상이 온통 ‘돈’ ‘돈’ ‘출세’ ‘출세’한다. 그런 혼란하고 마음 주기 어려운 시대에 서로 오래 잊지 말고 사랑과 우정을 이어 사십시다! 하는 추사의 마음이 애잔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우리에게 잊지 말고 오래 우정과 의리를 나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무슨 영화를 보려고 그리 옆에 있는 하나님의 소중한 형상들을 가벼이 버리고 등을 돌렸을까? 새해엔 툴툴 털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리라 생각해보는데 그것도 주제넘는 호기같다. 그래서 겸손히 마음 다잡고, 멀리 가지 말고 그저 내, 이 불쌍한 나 옆에, 주위에 있는 마땅히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사람들에게라도 성심으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게 하소서!하고 손을 모은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라고 말입니다. 감사하다! 살아 있음이.
사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180호 – 1844년)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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