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 셀 수 없는 요인이 와인의 맛과 향, 풍미에 영향을 미치며 과학적 바탕 위에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독특하게 탄생한다.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점검해 본다.
포도 재배 환경
재배 환경에 따라 포도 품질이 현격히 달라지고 이에 따라 와인 품질도 달라진다. 프랑스에서는 토양을 의미하는 떼루아(Terroir)라고 하여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와인 산지를 나눌 때 떼루아를 기본으로 경계를 나눈다. 떼루아는 최상 품질의 포도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환경적 구역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주 시라즈(Shiraz)는 병충해에 강하고 거친 환경에 잘 적응해 호주 전역에서 재배된다. 반면에 기후에 민감한 포도 품종도 있다. Pinot Noir 포도는 선선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포도 품종이다. 이 와인의 경우 와인 산지를 확인하여 선선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카버넷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은 일조량이 풍부한 환경에서 잘 자라므로 그런 산지의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청포도인 세미욘(Semillon)의 경우 껍질이 얇아 잘 터지는 품종인데 보트라이티스(Botrytis) 곰팡이균에 취약하다. 이 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달콤한 보트라이티스 와인이 유명하다.
이 와인을 선택할 때는 곰팡이 균이 잘 자라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의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포도는 선선한 기후에서 자란 것이 향과 풍미가 깊다. 과일이 선선한 기후에서는 익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풍미가 깊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더운 지방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익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향과 풍미는 떨어지는 반면 달고 잼 같은 맛이 강하다. 기후는 맛과 향뿐만 아니라 포도 성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온이 낮으면 항산화 작용이 강한 카테킨 성분이 올라가고 높으면 항산화 작용 염증에 효과가 있는 쿼세틴 성분이 올라간다. 또한 습한 지역에서는 항산화 작용, 항염증, 항암 작용을 하는 레스베라트롤 성분이 올라간다. 공부할 때 헌터벨리 와인 성분을 분석했는데 특정 연도에 생산된 와인에서 레스베라트롤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이유를 조사해 본 결과 그 해 헌터벨리는 기록적인 가뭄에 시달렸다. 토양 또한 중요하여 어떤 토양에서 재배되었느냐에 따라 포도 향과 맛이 달라진다. 선선한 지역의 모래가 많은 토양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모래가 열을 오래 보관하여 향이 짙은 포도가 생산된다. 반면에 더운 지역의 모래가 많은 곳에서 재배된 포도는 색깔, 산도가 떨어진다. 진흙이 많은 더운 지역의 포도는 강하고 묵직한 포도가 생산된다. 청량하고 산도도 있으며 과일 향이 많이 나는 화이트 와인은 선선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제격이다. 반면에 묵직하고 진한 레드 와인을 원하면 일조량이 많은 지역 것을 택하면 된다. 재료인 포도를 어떤 형태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와인이 탄생한다.
효모
이스트라고 불리는 효모는 당분을 섭취하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단세포 생물이다. 이스트는 빵을 만들 때도 사용되지만 와인을 발효시킬 때도 사용된다. 와인 주조용 효모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개발되었다. 특정한 향이 많이 나게 하는 효모, 당분이 높은 포도에서도 발효를 잘하는 효모, 알코올 농도가 높은 곳에서도 죽지 않고 발효를 하는 효모, 화이트 또는 레드 와인에 적합하게 개발된 효모 등 다양하다. 어떤 효모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와인 향과 맛이 달라진다. 공부할 때 학교에는 같은 포도이지만 각기 다른 효모로 와인을 만드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각 와인의 향을 맡아 보았는데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같은 포도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향이 달랐다. 효모의 선택으로 와인은 또 변신한다.
와인 제조
레드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포도의 줄기를 제거하고 알을 터트린 다음 효모를 넣고 발효를 시킨다. 약 2~3주 정도의 발효가 끝나면 압착기에 넣고 뽑아낸 와인을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통에 숙성시킨 다음 병입 작업을 하면 끝이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과정은 레드 와인과 같은데 발효할 때 포도알을 압착기에 넣고 짠 주스만 가지고 발효하는 것이 다르다. 한마디로 레드와인은 포도알과 같이 발효를 시키고 화이트와인은 생포도를 압착하여 나온 주스만 가지고 발효한다. 과정은 간단하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와인 품질이 달라진다. 와인메이커들은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묵직하고 진한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 알이 완전히 익었을 때 수확한다.
화이트 와인과 같이 청량감이 있는 와인을 만들 때는 산도가 적당할 때 수확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만들려면 당도가 최고도에 달했을 때 수확한다. 발효과정에서 껍질과 씨앗에 있는 탄닌을 많이 우러나게 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발효하기 전에 포도에 고전압을 가하여 세포막을 선택적으로 파괴시키는 방법, 효소를 이용해 껍질의 세포를 파괴하는 방법, 열을 가하는 방법, 포도의 잡균을 제거한 다음 오랜 시간 동안 껍질과 씨앗의 성분을 우러나게 하는 방법 등을 이용하여 와인의 무게감(body)을 높이는 작업을 한다.
발효 과정에서도 온도에 따라 포도를 저어주는 횟수에 따라 탄닌 우러나는 양이 달라져 와인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 레드 와인의 경우 발효가 끝나면 압착하여 뽑아낸 와인을 숙성시키는데 압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와인 품질이 달라진다. 압착을 많이 하면 와인의 양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포도 껍질과 씨앗에 있는 탄닌, 폴리페놀 성분이 높아져 쓰고 텁텁하고 자극적인 와인이 만들어진다. 와인 뒷라벨에 보면 Free run juice로 와인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것은 압착을 하지 않고 파쇄, 와인제조 과정에서 스스로 배어 나온 주스로 와인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레드 와인의 경우 이런 와인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며 대체로 일반 와인에 비해 가격이 더 나간다. Soft pressed라는 문구도 있는데 압착을 과도하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와인 또한 일반 와인보다 맛이 부드럽고 둥글지만 가격이 높다. 이런 와인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헌터벨리 와이너리에서 와인 시음을 했던 적이 있다. Free run juice로 만든 고급 화이트 와인을 맛보았는데 맛과 향이 너무 순해서 화이트 와인 특유의 산도와 청량감이 떨어졌다.
발효가 끝나면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청징이란 과정이 있는데 와인을 맑게 하거나 정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청징 과정을 통해서 와인의 색깔, 쓴맛, 떫은맛, 탁하게 되는 현상, 나쁜 냄새, 나쁜 맛 등을 조정한다. 탄닌 성분이 너무 많을 때는 계란 흰자위나 우유 등을 넣어 탄닌 양을 조절한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와인이 또 한 번 변신한다.
블렌딩
기후와 작황에 따라 매년 만들어지는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들쑥날쑥한 와인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블렌딩을 하기도 하지만 좀 더 복합적이고 풍부한 향과 맛을 내기 위해 블렌딩을 한다. 단일 품종의 와인보다는 여러 품종이나 여러 스타일의 와인을 블렌딩 할 때 훨씬 풍미 있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자신만의 독특한 와인을 창조해 내는 블렌딩의 예술이 입혀져 와인은 비로소 탄생된다.
숙성
완성된 와인을 어디에서 어떻게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와인 맛과 풍미가 또 달라진다. 바닐라 향이 배어나는 아메리칸 오크는 강한 향을 내어 바디감이 높은 와인에 적합하다. 반면에 프랑스 오크는 좀 더 부드러운 탄닌이 우러나 와인 맛이 대체로 부드럽고 와인 자체에서 나는 향을 많이 손상시키지 않는다. 오크 향을 이겨낼 만한 구조적으로 단단한 와인만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이런 와인은 대체적으로 맛과 풍미가 복합적이고 가격도 올라간다. 가벼운 와인은 포도의 향과 맛을 최대한도로 살리기 위해 오크통에서 숙성시키지 않는다.
기본적인 포도의 특성을 이해한 다음 와인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이해하면 좀 더 가깝게 와인에 다가갈 수 있다.
유영재 (와인 사이언스 박사) yungyoo@hotmail.com
사진 1: 필자의 와인 성분 분석, 찰스 스터트 대학교 화학 실험실(Charles Sturt Univ Chemistry laboratory)
사진 2: 효모 실험,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화학 실험실(Western Sydney University Chemistry laboratory)
사진 3: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 와이너리, 포도 품종별로 표본 재배하는 곳
사진 4: 레드와인 제조 과정, 파쇄과정(Cru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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