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교육선교회 로뎀나무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가정의 신앙교육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기독교인 가정에 필요한 신앙교육 방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호주의 역사적 상황과 보편적 교육문제를 같이 참고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가정에도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2.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7) 마지막
기독교 세계관이 내 삶에 스며들게 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세계관은 복음과 성경 전체 흐름에 대한 현대적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의 변화, 기독교화의 핵심은 이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들려지고, 나눠지고, 확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성경 전체 이야기고 기독교 세계관의 주제이기도 하다.
바돌로메우가 지적한 대로, 이 세상은 다양한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들로 덮여있다. 이 시대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고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도 이상한 세계관에 끌려다니기 쉬운 상황이다. 이런 유혹에 자신을 지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세계관을 잘 정립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번 그런 강의를 듣거나, 설교로 도전을 받았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이후에도 무의식적으로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 생각을 인도하는 삶의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자꾸 이야기하고 나누어야만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경 한 구절이나 일부 만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고 광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다. 다시말해 단순히 노아 이야기, 아브라함 이야기, 모세 이야기 하나를 가지고 다룰 수 없으며, 성경전체를 엮어 이야기할 때만이 표현될 수 있다. 다시말해, 창조, 타락, 구속의 전체 흐름으로 게속해서 이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자주 이야기하고, 새롭게 이야기하고,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호주에 사는 한인들은 비교적 더 나은 입장에 있다. 호주 기독교안에는 이에 도움이 되는 좋은 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 신학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바로 그 것이다. 이 운동은 성경을 조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흐름으로 보는 가운데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전체 흐름을 강조해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설교해 왔다. 미국과 한국에서도 최근들어 성경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어쨌든 호주 안에서는 훨씬 오래된 시도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문화가 있음에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기회 낭비다.
호주 사회가 오랫동안 거쳐온 세계관 전쟁은, 이제 이민자들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도 성경의 전체 이야기, 기독교 세계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의 창조, 타락, 구속 이야기를 세미나든, 성경묵상 시간이든, 구역예배든, 성경공부든, 설교든, 가정예배든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자꾸 시도해야 한다. 더 깊고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길 기원한다.
교육에서 가정의 역할을 회복하라
우리 시대의 세번 째 도전은 우리가 분별의 능력을 갖추는 훈련을 하고, 성경의 큰 그림을 계속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환경’ 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교육과 변화를 원한다면 좀 더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학자들은 이러한 교육을 위해서는 가정과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생각해 보면 아주 상식적인 답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윤리 과목을 잘 가르쳐도, 이를 실천하게 하는 것은 시험이 아니다. 도리어 이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분위기, 까먹을 때마다 자꾸 주지시켜 주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 주는 사람의 존재다.
이런 학교, 교사가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우리 시대에 좋은 교사를 찾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교육을 학교에서 한 지 2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런 기대는 너무 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학교나 대학은 그 문을 연지 천년이 넘었다지만,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교육이 주로 이뤄진 곳은 따로 있다. 바로 가정과 지역공동체다. 어쩌면 산업사회 때문에 붕괴된 가정과 지역사회때문에라도 학교가 생기고, 학교가 더 강화되어 왔고, 또 그 기대를 저버리는 일에 다들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교육의 위기는 원래 교육을 했던 장이 무너진 때문이지, 단순히 학교 때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의 가정, 지금의 지역사회 상태로는 교육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때문에 먼저 가정과 지역사회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가정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서로 많이 대화하며, 같이 예배하며, 서로 관계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은 신명기 6장 4-9절의 쉐마, 특히 6절,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에 잘 나타난다.
교육에 있어서 가정의 역할 회복은 가장 단순한 결단에서 시작된다.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경험을 듣고, 이를 성경적인 지혜로 걸러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 관계의 확장, 가정 관계를 돕고 격려하고 지원하는 장소로 교회가 바로서야 한다.
결론
세계관 운동에 대한 몇 가지 실천 계획만으로도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길 확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싸움은 보기만큼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을 읽어보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믈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세속화의 위협, 세계관 전쟁의 현실은 영적으로 바로 깨어있도록 우리를 도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분별력을 제대로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몇 가지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시도들이 다 성공한 것도 아니고, 항상 잘해 온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맥빠지고, 속상하고, 힘들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싸움에 나설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도 이 싸움의 결론이 이미 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복음의 승리말이다. 그 비전을 마음에 품고, 분별, 복음, 가정의 회복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한다.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