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분들과 함께 불루마운틴 산자락으로 소풍을 갔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바위 길이 의외로 많았다. 무릎이 시원치 않은 분과 뒤에 남아서,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무료했기에 숲 속의 빈터 주변을 차분하게 둘러봤다. 바쁘게 올라갔으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보였다. 나지막한 높이의 댐 때문에 고인 물 위로 신비롭게 걸어 다니는 초능력 모기들, 산사태 난 벼랑 위에서 허연 뿌리를 드러낸 채 강인하게 살아가는 유칼립투스, 산불에 그슬려 속이 시커멓게 타서 텅 비었는데도 새로운 줄기를 뽑아내는 이름 모를 불사목, 단단한 외피를 뚫고 거미줄보다 더 미세한 꽃술을 수도 없이 피어 내는 환희의 나뭇가지들..
새롭게 발견한 자연의 세계였다. 바삐 가기를 잠시 멈추고, 고요히 주목하는 사람에게 열려지는 자연의 세계, 그것을 발견한 감동이 있었다.
2.
약 1년 전, 홀로 계시던 옆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에게 상속되는데 몇 개월이 걸렸고, 그 후 매물로 나온 집은 금방 개발업자에게 팔렸다. 건축 시기를 보는지 집은 방치되어 있다. 그 집 뒤 뜰을 바라보는 내 맘은 심란하다. 새 주인은 잔디를 깍지 않는다. 할머니 계실 땐 정확하게 두 주에 한번씩 정원관리사가 왔었다. 뜰 가운데 심겨진 큰 망고나무에는 언제나 열매가 달려있어서 마치 에덴동산 같았었다. 그런데 이젠 흉가처럼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는데, 희한하게도 요샌 풀들 자라나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아마도 땅 자체가 아는 것 같았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알아, 너무 망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것 같았다.
3.
캥거루 아일랜드를 갔다. 뛰노는 캥거루는 몇 마리 보이지 않는다. 크레이들 마운틴에 갔다. 안장 얹을 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뭘 하러 그곳에 힘들여 갈까? 물론 때묻지 않은 자연을 보기 위함이다. 캥거루나 말을 은밀하게 품는 자연, 그 자체를 보러 간다. 자연과 동물은 하나다. 서로를 소비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공생 공존한다. 문제는 사람이다. 아무리 잘 관리한다는 국립공원에 가도, 사람 손이 닿았던 곳은 훼손된다. 완벽했던 자연의 상호공존 조화는 깨진다. 사람들은 세련된 개발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문명의 결과물은 쓰레기일 뿐이다. 개발 과정 속에서 자연은 훼손되고, 동식물은 착취당한다. 자연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정말 불필요한 존재다. 사람은 원래 자연계를 잘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 그런데 사람이 망가지니, 망가진 사람은 자연도 망가뜨리며 산다.
4.
얼마전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촌의 한 건물 15층을 방문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고 1미터 정도되는 길이의 빤짝이 장식을 베란다에 걸어 놓으셨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현란한 빌딩숲을 감상하고 있는데, 말벌 한 마리가 날라왔다. 파리도 모기도 힘들어 못 올라오는 곳에 말벌이 올라온 이유는 그 빤짝이 장식물 때문이다. 꽃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빤짝이 주위를 붕붕대며 집적이고 있었다.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꽃술이 있을 리 없으니, 결국은 날라가 버렸다. 이상했다. 사람이 만든 아파트 빌딩 숲에 살다 보니, 말벌의 후각과 미각이 망가져 버린 모양이다. 벌 입장에서는 인간이 밉다. 일년 내내 모은 꿀을 몽땅 빼앗긴다. 대신 주어진 값싼 설탕물만 쪽쪽 빨아먹고는 정체불명의 꿀을 만들어 낼 뿐이다. 심지어는 인간에게 간택되어, 인간 살에 침을 쏘게 만든다. 벌침 맞은 인간은 치유 받고, 벌은 대신 죽는다.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이다. 자기 하나 먹고 살고 즐기기 위해, 온 지구를 말아먹는다. 그런 인간의 본능 속에는 돈 욕심과, 불타오르는 정욕, 그리고 오만한 자존감이 또아리 틀고 있다.
5.
나 역시 그 본능에 따라 움직였고, 그렇게 2018년을 살았다. 은혜를 나누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처도 주고받았다. 그래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후회가 적지 않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좋다. 이기심 가득한 세상에, 이타적 삶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으니 좋다. 난 지금 이렇게 이기적인 삶과 이타적인 삶의 중간에 서 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중간에서 한 쪽을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난 말벌과는 다르다. 말벌의 오감 본능은 학습되고 길들여지며 퇴화될 수 있지만, 난 육감을 넘어 영감까지 소유한 인간이 되어간다. 육으로 오셔서 영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나는 소망 속에 산다. 이번 해 보다는 좀 더 많은 은혜를 나누고, 좀 더 적게 상처를 주고받을 내년을 고대하는 소망으로 산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담임 목사) holypillar@gmail.com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