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비가 내렸다. 6개월여만의 비인듯 싶다. 그동안 정원의 꽃이며 열매가 굵어가는 살구나무 잎까지도 힘이 없고 까칠해 보였다. 정원에 물을 주면서, 수영장에 물을 채우면서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소나 양들이 먹어야 할 목초들이 메말라 어려움이 크다는 소식을 듣고 큰 비 주시기를 기도했다.
메마른 땅위에, 수목들과 수영장에 차분하게 떨어지는 빚줄기가 반가웠다. 큰비는 아니고 조용히 적시는 비라도 감사했다. 그 정겨운 빗소리를 들으며 어떤 감동을 느꼈다. 그 빗속에서 한 떼의 새들이 나무가지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요란하게 지저귄다. 저들도 신나고 기뻐서 환성을 지르며 춤을 추는 것일까? 작은 비라도 더 내리기를 바랬지만, 이틀 만에 쉽게 그쳤다. 비 개인후 햇빛은 눈부시고, 하늘은 더 맑고 푸르다. 모든 식물과 울타리 뒤로 보이는 큰 나무의 잎이 생기를 띠고 빛나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더 부드러워지고, 새로워지고 어떤 활력으로 채워짐을 느낀다.
한 젊은 친구 목사의 박사학위 및 논문출판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는 2013년 석사학위를 마친 후, 최근 남아공화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어로 쓴 그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의 석사 공부 시절 한 강좌 가르쳤던 인연도 있고, 또 비오는 날이어서 더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다.
서평 순서를 맡아서, 미리 그의 책을 읽었다. 민중의 관점에서 멕켄지의 한국선교사역을 정리 했는데, 일기, 편지, 회의록 등 일차적 자료들을 사용하여 격과 질이 높은 논문이 되었다. 멕켄지는 농어촌의 어린이와 여성들, 특히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버림 받은 나병환자를 위한 사역에 헌신했다.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혹은 작은 배를 타고 울릉도까지 순회전도를 하며 53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러한 멕켄지의 사역을 민중신학의 체계 안에서 조명한 것도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또한 멕켄지 사역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하고 균형있게 다룬 점도 좋았다. 그는 민초들을 위한 전설적인 선교사였지만, 동시에 일본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과 표창까지 받았다. 특별히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되고 순교하며, 기독학교들이 문을 닫는 그런 상황에서, 그는 끝까지 신사참배가 예배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한 인간의 역설적인 양면성을 그대로 밝힌 것은 학문적으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목회 사역을 계속하면서도 기간 안에 학위논문을 마칠수 있었던 것은, 절제와 끈기, 학문에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인 줄 안다. 그런 덕목들은 학위 자체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남편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피아노 레슨 등을 하며 경제적으로 살림을 꾸려온 사모의 내조도 흐뭇한 미소를 번지게 한다.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학위 축하패를 만들어 이 모임에서 전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박사(Ph.D) 의 의미가 ‘아내의 내조로 남편을 밀어붙여 받게된 학위 (Pushing Husband to Degree)’ 라는 뜻이라며 축하패를 그 목사 사모에게 대신 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의도적으로 만든 말이지만, 그것은 사실 이상의 진실이고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토요일 오후에는 ‘좋은 친구들’ 여성합창단 (Good Friends Ladies Choir)의 음악회에 참석했다. 여성합창단 특유의 맑은 음색이며, 어린이 및 남성중창 찬조출연이 있어 좋았다. 곡 선택도 귀에 익은 외국 클래식과 한국 가곡, 심지어는 영화와 연속극의 주제가며, 애니메이션 메들리까지 포함시켜 모든 연령의 참석자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모금된 성금은 아프리카 시에라 리온의 홍수 피해자들에게 보낸다는 좋은 뜻 때문인지 노래하는 모두의 얼굴들이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내게는 연주와 합창단원들을 향해서 그리고 낯선 나라의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게하는 시간이었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음악회였다.
연주후 다과 시간에 십수년 전에 알았던 한 지인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녀는 2년동안 음악공부를 한 후 합창단원이 되었는데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단원들은 한때 불면증이며 우울증 등의 아픔이 있었는데 공연 활동을 통해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단장은 목사의 사모요, 사춘기에 있는 자녀들의 어머니이고, 또한 대학에서 풀 타임 학생으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는 바쁜 생활인이다.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봉사와 섬김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와 새로운 활력을 받는게 아닐까 싶다.
자기에게 집중된 관심은 스스로 착각하거나 기만당하기 쉽다. 아픔과 갈등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친절과 도움, 배려는 언제나 기쁨과 보람을 준다. 먼저 자신과 가족, 이웃은 물론 알지 못하는 먼나라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감동을 준다. 그런 감동은 살리는 에너지를 생성해서 어떤 부정적인 매임에서 자유케 하며, 약함을 치유케 하는 큰 활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혹 그런 경험들이 아닐까?
지난 주말은 행복했다. 오랜 가뭄끝에 내린 단비로, 한 젊은 친구 목사의 열정과 사모의 흐뭇한 내조 때문에, 그리고 ‘좋은 친구들’의 자선음악회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조금 더 겸허하고 열린 마음, 따뜻한 시선으로 내 삶과 이웃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새로운 활력을 느끼며 이 단상을 쓰고 있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아니 이 글을 읽는 어느 한 사람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그것이 또한 새롭게 하며 자유케하는 활력을 주고 혹은 약함을 치유하는 그런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최정복 ( 호주연합교회 은퇴 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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