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40도, 이번 주도 40도의 폭염이다. 더울 때는 서늘한 영화관으로 간다. ‘패신저스(Passengers)’. 할리우드 여배우 중 최곳값을 받는 제니퍼 로렌스와 ‘우주의 수호자’의 크리스 프랫이 주연이다. 지구의 환경오염과 식량부족을 피해 대체 행성으로 가던 중, 기계 오작동으로 크리스가 동면에서 깬다. 90년을 더 가야하는데 홀로 일어났으니 무인도에 난파된 로빈슨 크로스와 다름 아니다. 길이가 천 미터 되는 최첨단 회랑에서 조깅을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거대한 독방 감옥일 뿐이다. 1년을 버티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삶을 포기하려 할 때, 동면 중인 한 아름다운 여성을 보게 되고 며칠을 고민한다. 자신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그녀를 깨울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녀를 죽이는 셈이다. 그녀가 원래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는 결코 도착할 수 없게 되니까.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이 살기 위해 그녀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을까?
지금 미국의 이목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시대의 풍운아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고 그가 지명한 연방대법원 판사 ‘고서치’다.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연방대법원은 총 9명의 종신직 판사들로 이뤄지는데 마침 한 사람이 세상을 떴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트럼프는 깜짝쇼처럼 ‘고서치’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놀랬지?. 난 내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내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그랬잖아. 연방대법원 판사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보수적 진영 사람을 뽑겠다고!” 이제 공은 넘어갔다. ‘고서치’는 트럼프 반대파 사람들이 좋아할 성향의 사람이다. 보통 때 같으면 같은 성향의 ‘고서치’ 인준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정적인 트럼프가 지명했으니 매우 떨떠름하다. 헌법적 가치 수호의 대의를 위해 초당적으로 ‘고서치’를 인준해 줄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를 반대하는 당의 이익을 위해 ‘고서치’를 내칠 것인지... 한 걸음 더 나가보자. 만약 ‘고서치’가 인준을 받아 연방대법원 판사가 된다면 그 자신 역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금 미국 정치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트럼프가 남발하고 있는 행정명령들에 대한 법적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줘야 할 때가 올 것 같은데, 그 때 ‘고서치’는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나머지 8명은 4대 4로 팽팽하기 때문이다. 만약 고서치의 평소 성향처럼 헌법가치에 충실한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을 지명해준 대통령을 탄핵하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건국의 기초인 헌법적 가치를 따를 것이냐, 자신을 세워준 트럼프를 따를 것인가, 이것이 ‘고서치'의 문제로다.
요새 한국 영화나 TV드라마의 주인공은 검사가 대세다. 황정민 검사와 강동원 죄수가 나왔던 ‘검사외전’, 강동원이 드디어 검사가 된 ‘마스터’가 히트를 쳤다. TV에서도 지성이 검사로 나오는 ‘피고인’ 그리고 남궁민 남상미 주연의 ‘김과장’도 대인기다. 요즘 세태를 반영한다. 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들은 검찰과 재벌이며,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돈과 권력이 바르게 쓰여지면 나라가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는 자책성 경고다. 검사는 법을 집행하고, 죄인을 감옥에 집어넣는 권한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 앞에서 무너진다. 재벌들도 꼼짝 못한다. 한 인간을 1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 움쩍 달싹하지 못하게 가둬둘 수 있는 권한, 제국의 황제들이나 가졌던 권력이다. 대통령의 운명도 검사들과 헌재 재판관들 손에 넘겨졌다. 어떤 판결이 나든지 대한민국은 요동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것인가? 양심인가? 헌법인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익인가? 사무실 밖에서 요동치는 시위대의 함성인가?
한국의 탄핵정치 파장이 호주까지 몰려왔다.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게 생겼다. 둘이 붙으면 결국 태극기는 불타버린다. 둘 다 지는 게임이다. 자기 신념과 당파를 지키기보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 세상 정치는 마키아벨리가 정리한 것처럼, 인간과 짐승의 야합이다. 인간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짐승 같은 교활함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이런 정치판에서 한 편을 선택할 때,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시대를 살며 내리는 우리 인간의 결정은 결코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영원한 진리에 근거한 판단으로 공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며 물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이지?” 완벽한 대답이 자신 앞에 서 있음에도, 빌라도는 로마황제 자리를 향한 정치적 꿈을 따랐고 예수는 버렸다. 그 결과 2천년 넘도록 저주받은 이름이 되었다.
다시 ‘패신저스’로 돌아간다. 이기적 욕심을 가지고 자신을 동면에서 깨운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고 비난하며 죽이려 발버둥치던 그녀였다. 우주선이 폭발하는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나서는, 그 남자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제 둘은 하나가 되어, 딱딱한 금속 바닥 위에 묘목으로 가져가던 나무를 심는다. 89년 후, 동면에서 깨어난 5천여 명의 승객들은 발견한다. 우주선 중앙에 만들어진 푸른 동산을. 이기적 욕망과 살인적 분노로 시작된 그 두 사람은 비록 사라졌지만, 생명이 넘실거리는 에덴동산을 남겨 주었다. 용서하고 사랑해 주었던 결과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