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역사의 최초 기록자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교민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온 한호일보 종이신문 발행이 중지되는 시점에서 이 것을 역사로 기록해야 하는 사명 역시 우리 한호일보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한호일보는 지난 30여년간 세 명의 발행인 (故오직일(1990-2000), 전경희(2001-2010), 신이정(2010~)을 거쳤다. 이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호일보의 역사를 구성하되 초대 발행인인 오직일 전회장에 대한 정보는 당시 함께 회사를 창립한 이기주 전대표이사의 기억에 의존했다.
한호일보의 전신인 호주동아는 재일교포 3세 오직일씨의 결단에 의해 창간되었다. 1948년생(1949)인 오직일씨는 일본에서 조총련계 중고등학교를 나온 후 민단으로 전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중반 호주로 다시 이민 온 후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했고 한인 교민 사회에 기여하는 방안으로 신문을 택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생활정보 등 꽤 괜찮은 교민 잡지가 있었지만 고국의 소식과 호주 소식을 전해줄 정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신문사의 설립 의도는 동아일보의 호주 법인을 만들어 인터넷이 없던 시절 교민들이 한국 소식을 알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당시 창립멤버들은 동아일보와 밀접하게 협력했고 한국 정부의 허가도 얻어야 했다.
한국 동아일보사에 직접 가서 모든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했던 이기주 씨는 당시 공무국과 편집국에 한달 간 머무르며 신문 발간하는 과정을 보고 배우게 된다. 호주동아 창립 허가는 창립 멤버들의 경찰 신원 조회, 국정원 신원 조회를 모두 거친 후 나오게 된다.
1989년 8월부터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0년 3월 1일 드디어 주간 호주 동아의 창간호가 나온다. 이는 호주 교민 사회에 처음 나온 대판 (full broad sheet) 정론지였다. 당시에는 동아일보가 제공하는 기사 8면, 호주 기사 8면 총 16면으로 구성했다.
초대 편집국장은 조동국 기자가 맡았는데 그는 중앙일보 차장 기자까지 역임하고 호주에 이민 온 베테랑이었다. 2년 뒤 전대구매일 기자였던 박병태 씨가 편집국장을 맡게 되고 그로부터 2년 뒤 고직순 기자가 편집 주간을 거쳐 편집국장이 되어 20년간 한호일보(구호주동아)의 데스크를 지키게 된다.
호주동아일보 초창기 모든 기자들을 공채로 뽑아 신문의 품질이 유지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모든 투자가 한호일보의 유산이 되었다. 이기주 씨의 기억에 의하면 한 때 직원이 28명까지 늘어난 적도 있다.
호주 동아는 2년 후 1992년 3월 1일부터 일간지로 재창간 된다. 이 때부터 일간으로 종이신문이 발행되던 체제는 2015년 제호가 호주동아에서 한호일보로 바뀔 때까지 계속된다.
호주 동아는 처음부터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당시 호주 전체 교민이 1만명 내외이던 시절 대판 정론지로 돈을 벌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기주씨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오직일씨에게 신문이 경제성이 없다는 점을 수 차례 이야기했지만 오 전 회장은 “한국 사회에 신문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점점 좋아지겠지 내가 이거는 내 사비를 털어서 할 테니 어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호주 동아는 오직일의 헌신에 의해 창간되고 운영된 신문사였다. 오직일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고 그가 말년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다 일찍 작고한 것에 대해 큰 아쉬움을 표한다.
경영이 어려워진 신문사를 인수한 것은 전경희 2대 발행인이었다. 그는 통신/IT 전문가였으나 당초 신문사에 직접적인 경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2001년 신문사를 인수한다. 그러나 인수 직후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면서 전경희씨가 직접 신문사 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전경희 씨는 이후 10년간 회사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경희 씨는 “동포사회에서 신문사 운영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직원 10명을 두고 일할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미국과 함께 유일하게 동포신문 일간지를 운영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고직순 전 편집인에 의하면 당시 호주의 불경기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호주동아일보의 일간지 발행 전통을 지켜낸 데는 전경희 2대 발행인의 공로가 크다. 다만. 이 시기는 교민 신문, 잡지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는 등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시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현 신이정 발행인이 경영이 어려워진 호주동아일보를 인수한다. 신 회장은 이미 큰 적자가 예상되던 신문사 경영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어민신문의 발행인이었던 부친의 영향과 교민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신 회장은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교민 사회에 금전적인 기부를 해 왔다. 조금 더 다른 영향력을 커뮤니티에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신이정 발행인 체제에서는 특히 여러가지 특별한 시도를 한 것이 눈에 띈다.
특히 2014년 3월 주말판 유료화를 단행한 것은 교민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가지가 당연했던 교민 언론계에 돈을 받고 신문을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몇 개월만에 유료화 조치가 철회되면서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데 대해 신이정 회장은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었지만 내가 유료화를 결정했다. 구성원들이 정성들여 만든 신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일렀다는 비판도 있지만 최소한 교민 사회가 신문을 바라보는 태도는 확인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이정 회장은 2014년 12월 한국어와 중국어로 운영되는 호주 한인 최대의 모바일 앱서비스 마이시티(2015년 12월 아이탭(iTAP)으로 업그레이드)를 인수하게 되고 2015년 호주동아가 한호일보로 바뀌면서 종이 신문 발행이 주 1회로 줄어들게 된다.
2023년 6월 30일 20년 넘게 데스크를 지킨 고직순 전 편집인이 회사를 떠난데 이어 2023년 12월 22일 자를 마지막으로 종이신문 발행이 전면 중단된다.
종이신문이 중단된 원인에는 지난 시론에서 밝혔듯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에너지 위기 속 단가의 상상, 독자들의 열독률 하락, 온라인 신문이 늘어나는 추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교민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신이정 발행인은 “언론은 다른 사업과 다르다. 재정적인 출혈을 하며 언론을 끌고 모든 교민 신문사들은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분들이 동포 매체에 대해 소중한 마음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많은 갈등을 하다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결정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리: 한호일보 편집인 손민영 gideon@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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