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추석과 노동절
1.
“와, 추석이다!...” 그런데 뭐가 좋지? 보름달 힐끗 본 것? 떡 하나 더 먹은 것? 뭐 그 정도다. 학생들 방학 중이고, 지난 월요일은 노동절 연휴라 조금 휴일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한국적 추석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와, 추석이다!...’라 한 것은 한국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열흘을 머물다 인천 발 귀환 비행기를 탄 것이 지난 목요일, 추석 전날이다. 이미 연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인천 공항은 여행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코비드 3년 후 첫 번 맞이하는 추석 연휴 때문이란다. 이번엔 처음으로 콴타스를 탔는데, 완전 만석. 말 그대로 빈 자리가 하나도 없다. ‘헤어질 결심’을 할 정도로 힘들었다.
“다음부터는 콴타스 절대 안 타. 한국 국적기를 탈 거야!” 그러나 허망한 바람인 것이, 코비드 기간 동안 근근히 유지해 왔던 ‘모닝캄’이 9월 말로 끝났다.
정말 코비드 말년 때가 그리웠다. 텅 빈 공항, 널널한 좌석 등. 오랜만에 비좁은 만석 비행기를 타다 보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들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콴타스는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1920년 퀸즐랜드 롱리치에서 시작된 항공 서비스였으나, 날로 위상이 높아져 세계 2위가 되었다. TV에서 “I still call Australia home’이란 콴타스 테마송이 흘러나오면 늘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랭킹 17위다 (Skytrax). 미국 Delta항공이 20위 인 것에 비해선 좀 낫지만, 대한항공 10위에 비하면 한참 뒤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지난 16년 동안 CEO였던 알란 조이스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퇴직금은 $24M. “와, 대박!...” 더 이상한 일은 코비드 기간 동안 받은 정부 지원금이 $2.7B, 그런데 갚을 의무가 없단다. “아, 피 같은 세금...”
2.
공항 이야기까지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시드니 공항을 드나들 때마다 인천공항과 너무 비교된다.
입국 티켓을 발행해 주는 무인기들이 3군데 있었는데, 마지막 쪽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2번째로 돌아갔다.
무인기 5개 중 2개는 작동하지 않는다. 불만을 꾹 누르고 참고 있었는데, 한 여직원이 오더니 종이릴을 갈아주고 갔다. 그래도 리셋이 안되는지 화면에 모래시계 모양만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인천공항 생각이 많이 났다
엊그제 차 밧데리가 방전돼서 NRMA로드 서비스를 불렀다. 밤 9시에 털털한 호주 아저씨가 와서 느긋하게 갈아줬다.
새 밧데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냐 물었더니 메이드 인 코리아라며 최고라고 엄지척을 해 준다. 한국 차도 아주 좋단다.
더 이상 10년전 한국이 아니다. 호주에서 한국산 제품은 대 환영이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사는 동안, 한국은 대단히 발전했다. 비행기나 공항뿐만이 아니다.
3.
그러나 여전히 “호주는 나의 홈”이다. 그러니까 불평할 수 있다. 사랑하니까. 삶의 모든 여건이 완벽한 곳은 없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들락날락 하는 일은, 내 삶의 지극히 작은 일부다. 그 순간을 잘 견디고 이기면, 신천지가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천국 같은 해변, 향기로운 커피 그리고 안전한 사회. 그렇다면 입출국과정의 불편함은 오히려 안전장치다.
호주는 티베트 설산 속에 존재하는 샹그릴라와 같다.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춥고 좁고 불편한 동굴 길을 참고 지나가야 한다. 그 때 비로서 샹그릴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에 추석이 있다면, 여기는 노동절이 있다. 노동자의 천국이다. 시드니공항 출입국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제3세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더욱 그래 보인다. 그들은 호주에서 살기 위해 바늘구멍보다 더한 험로를 거쳐 정착했는데, 이젠 호주 국경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호주가 그 동안 인구를 늘려가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애써 지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때문이다.
그들 속에는 우리 한국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호주의 경쟁력을 이끌어 올리는 것은 우리 책임이다. 각각 존재하는 곳에서 호주시민으로, 세계 시민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한국 추석과 호주 노동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욱 좋다. 한국도 잘되고, 호주도 잘되고. 그게 나의 기도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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