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일본의 문학을 비교하며 (상)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한국 현대문학은 태생이 아주 불행하였다. 고전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 근대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이행이 되는 과정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시대가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권이 빼앗긴 것은 1905년이었고 조선총독부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10년부터였지만 이미 갑신정변(1884)과 갑오경장(1894)과 을미사변(1895) 때부터 일본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즉, 60년 동안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무렵 일본으로부터 문학을 배웠다. 서구의 문학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기에 임화는 ‘이식문화론’를 주장하였다.
신문학사의 연구에 있어 문학적 환경의 고구란 것은 신문학의 생성과 발전에 있어 부단히 영향을 받아온 외국문학의 연구다. 신문학이 서구적인 문학 장르(구체적으로는 자유시와 현대소설)를 채용하면서부터 형성되고, 문학사의 모든 시대가 외국문학의 자극과 영향과 모방으로 일관되었다 하여 과언이 아닐 만큼 신문학사란 이식문화의 역사다. (…) 신문학은 서구문학의 이식과 모방 가운데서 자라났다.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임화의 주장을 반대하자면 우리 문학이 조선조 후기에서 대한제국의 근대이행기를 거쳐 현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자유시 이전에 신체시가 있었고, 그 전에 가사와 창가가 있었기에 발전의 단계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한시와 시조도 계속 창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발전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박지원의 한문소설이 과연 발전하여 『춘향전』과 『별주부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로 갔을까? 판소리계 소설에서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을 거쳐 신소설로 이어지는 계보를 확실히 그릴 수 있을까? 우리 소설문학이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하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들의 딜레마이다.
최남선은 1904년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하였다. 1906년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했다. 1907년 6월 와세다대학 정치학과가 주관한 모의국회가 조선의 국왕이 일본에 알현하러 오는 가상의 상황을 토의 안건으로 삼자 이에 반발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대표를 맡았고, 이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광수는 일진회의 후원으로 1905년 일본으로 유학, 다이세이(大成) 중학교를 거쳐 메이지 학원으로 편입했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에 일제의 회유로 메이지 학원을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잠시 교편을 잡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1915년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ㆍ8독립선언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데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두 사람 다 초기에는 이와 같이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분명했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변절하여 친일문인의 대표자가 된다.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의 종교철학과를 오상순이 1917년에, 영문학과를 정지용이 1929년에 졸업하는데 투옥되지 않았더라면 윤동주도 영어로 논문을 써 동 대학 영문학과 졸업장을 받았을 것이다. 시인 김억, 김소월, 김동환, 김영랑, 김기림, 백석, 임화, 이상화, 유치환, 이장희, 이용악, 오장환, 구상, 김종삼, 김수영, 김춘수 등이 일본 유학파다. 그 당시엔 일본 유학파가 아닌 문인이 드물었다. 그만큼 우리 문학은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김동인, 전영택, 염상섭, 홍명희, 현진건, 주요섭, 계용묵, 박영희, 이기영, 조명희, 이태준, 김사량, 황순원 등이 일본 유학파다. 나도향은 일본에 가긴 했지만 학비가 집으로부터 안 와서 포기하고 귀국했다.
이제 동아(東亞)의 천지는 미증유의 대전환기에 들어 있다. 태양과 같은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국 정신의 동아 대륙에서 긴 밤을 몰아내는 찬란한 아침에 있다. (중략) 모름지기 필봉을 무기 삼아 시국에 동원하는 열의가 없어선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제하 대표적인 문학지 『文章』의 창간호 권두언마저도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제 찬양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아부였던 것이리라.
중앙대 일어학과를 정년퇴임한 손순옥 교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광수의 초기 소설을 읽다가 일본 소설을 표절한 곳이 여러 곳 보여서 연구논문을 써 발표하려다가 이미 친일문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데 표절까지 들춰내면 우리 문학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이라서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라 입증할 도리가 없지만 그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일본의 시와 소설을 안 읽었을 리 없다. 표절까지는 아닐지라도 자기가 쓴 작품 속에 일본인의 작품이 형식에서건 내용에서건 음으로 양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일일이 세부적인 영향 관계를 따지고 밝히면 이 땅의 문학 연구자는 더욱더 고개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일본의 녹음서방(綠蔭書房) 출판사에서 2001년에 『근대조선문학 일본어 작품집 1939〜1945』 전 6권을 제1기 제1회 배본분으로 출간하였다. 그 뒤로도 계속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일본이 자랑스럽게 낸 그 책을 교토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내심 피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의 도서출판 해토에서는 2005년에 『은빛 송어』라는 작품집을 출간했는데 이효석이 일본어로 쓴 작품의 한글 번역본이다. 소설 5편과 수필 9편이 실려 있는데 가장 큰 주제는 ‘내선일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나온 모든 이효석론의 수정을 요구하는 책이다.
우리가 식민지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일제강점기 때의 영향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자. 2023년인 지금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위상은 어떻게 다른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광복 80주년이 될 텐데, 그때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일본에서 또 한 명이 나온다면? 일본은 1968편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4년에 오에 겐자부로가 이 상을 받았다. 2017년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 국적이지만 이민 2세대로 혈통은 완전히 일본인이라 일본은 세계화에 성공한 자국의 수상자로 간주한다. 10여 년 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으므로 생시에 탈 확률이 아주 높다. 서방세계의 문인 9명이 탈 때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문인을 다 합쳐서 1명이 타기 때문에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이 아니지만 일본인이 또 탄다면 우리 문학의 자존심이 또다시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왜? 우리 문학인 중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이가 고은 시인과 신경숙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료를 입수해 살펴보았더니 이 두 문인만 번역시집, 소설집이 번역원 사업으로 20권 이상씩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개인 시조집은 단 1권도 없었고, 작고 시인은 14명, 생존 시인은 44명의 시집이 번역원에 의해 번역되어 있었다. 44명 중 유독 고은 시인의 시집만 20권 이상 번역된 것이 신기했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번역원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령 고은 시인의 『만인보』 선집이 스웨덴어로 번역된다고 하자. 스웨덴어를 전공한 한국인 번역자에게 일임할 수 없는 일이다. 스웨덴어로 고은의 시가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감수할 스웨덴인이 필요할 것이다. 출판사 섭외는? 책 디자인은? 작품 해설은? 몇 개 나라로 발송을? 홍보는 몇 개 국어로? 권당 천만 원 이상이 들 일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 일이 행해졌을 터인데 두 사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일본이 타지 못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과 각본상을 탔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몇 억이 봤다고 한다. 빌보드 싱글 혹은 앨범 차트 1위를 방탄소년단, 슈퍼엠, 스트레이 키즈, 블랙 핑크,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다섯 팀이 해냈다. 일본은 사카모토 큐가 유일하기에 이것도 우리가 자랑할 만하다.
그런데 문학 쪽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플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는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권이 넘게, 『해변의 카프카』는 100만 권이 넘게 팔렸다. 그의 『양을 쫓는 모험』 『1Q84』 『기사단장 죽이기』 같은 소설도 100만 권에 육박하는 판매 부수를 보였다.
소설가 한강이 멘부크상을 받자 한국의 언론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를 받았다고 대서특필했지만 공쿠르상은 프랑스 내의 문학상이고 맨부크상은 대영제국 내의 문학상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은 매스컴이 지어낸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받은 프란츠 카프카 상, 예루살렘 상, 카탈로니아 국제상 수상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상을 이미 받은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좀 씁쓸한 일이겠지만 기적이 아니다. 우리나라 소설가 중 50개 이상의 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루키의 소설은 45개 국가로 번역되었는데 최근에 50개국을 넘어섰다. 소설가 송영 선생이 모스크바에 다녀온 뒤에 이런 말을 했다. 90년대 초였다.
“모스크바에서 제일 큰 서점에 갔습니다. 한국 시인의 시집이나 소설가의 소설책이 러시아어로 번역된 게 있으면 사려고 물어봤더니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서점에 쌓아놓고 파는 소설이 있어서 펼쳐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습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십권씩 팔리는 일본 작가의 소설. 소설가이기에 더욱더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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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게재된 이 글은 필자 이승하 교수(시인, 중앙대)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註)
〈필자 소개: 이승하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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