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에 썸머 힐에 있는 양로원을 다녀왔다. 그동안 몇몇 지인들이 그 곳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코로나 등등으로 그저 안부만 묻곤 하였다. 이 달 초에 아흔이 넘은 또 다른 어른이 그곳에 입주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직접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들리는 바엔 아는 이가 다섯 분이라 해서 간단한 선물을 다섯 봉지에 준비해서 갖고 갔었는데 그중 한 분은 얼마 전에 별세하셨단다. 90년대 전후 불광사라는 사찰의 신도회장을 역임했던 그 분은 노년엔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편안하게 가셨 다니 다행이었다.
그 곳에 계신 대부분이 그렇지만 거동이 많이 불편하고 청력과 기억력이 감퇴되어 의사 소통이 매우 힘든 상태에서 30여분간 한 방에서 머물다가 나왔다. 양로원을 방문하고 나올 때 마다 일행 중 대부분은 풀 죽은 모습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혼잣말을 하곤 한다.
“나도 조금 있다가 저렇게 되어 이곳에 오게 될 것인가?”
자문자답의 그 말에 대한 각자의 속대답은 과연 어떠할까? 본인의 속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는 장차 이런 곳에 오지 않게 될 것’ 이었다. 과연 지금의 내 생각이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를 기준으로 앞날을 예측함엔 상당한 오차가 생길 수가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보편타당한 생존의 법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 시설에 모여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도 자기 발로 거뜬히 걸어 다녔을 땐 우리들과 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본인 역시 건강할 때 스스로가 타인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수행만 잘 하게 되면 고약한 병엔 걸리지 않을 것이라…’ 그러다가 호주에 와서 장기간 살게 되면서 위암에 걸리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스스로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결국 2005년 2월 한국으로 건너가서 상당 기간 병원 신세를 졌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수술 전후의 정신과 육체적 고통은 당해본 이만 아는 이심전심의 경지다.
그 반대급부로 정신만 잘 차리고 보면 얻는 것도 상당하다. 하나를 잃게 되면 또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이치가 고통 속에 숨어 있다. 이른바 일실일득(一矢一得)의 조화의 이치이다. 그 가능성의 획득은 반조의 작용에서 나온다. 막힌 거울의 반사 작용을 이용해서 자신의 얼굴에 붙어 있는 눈곱을 털어 내 듯이 고통을 행복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려면 스스로의 마음을 순도 높게 바라보는 침잠의 시간이 필요하다. 밖으로 향하는 생각은 많은 정보로 인해 분별을 불러오고 그 속엔 언제나 불안과 불만으로 인한 갈등이 생겨난다. 반면에 자신을 향한 침잠의 시간속엔 통일된 정서로 인해 참자기와 만나게 된다. 그때가 비로서 고통의 에너지가 즐거움과 행복의 느낌으로 전환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비 안 새는 집과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으며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역전마다 즐비하게 널려 있으니…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즐겼던 옛 선사들은 말한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 그 무엇이던가?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쉬는 것이니라’ 우린 너무나 많은 것과 큰 것을 바란다. 거기엔 항상 불만과 불안함이 동반된다. 노후에 양로원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들의 생명체이며 우리 주변에서 함께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바로 내 생명을 보전해 주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밥 한 술을 내 힘으로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에 합장하고 감사드림이 바로 그 때문이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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