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첫 도입부의 이야기는 두가지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하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이고, 다음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두 가지 다 특별한 종류의 실패에 관한 것이다.
자유와 책임
1. 실패의 역사
첫번 째 사건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이야기이다. 먹지말라한 열매를 따먹고, 부끄럽고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만이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깊이 숨어들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디 있느냐?’고 찾을 때 그들은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숨었다고 대답하고,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묻자, 아담은 이브가 먹게 했다고 핑계를 댔고 이브는 뱀이 꼬여서 먹었다고 남 탓을 했다. 둘 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남 때문에 먹게 된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큰 죄로 여기고 벌로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 내었다.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나는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한 벌이다.
두번째 사건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가인이 아벨을 들에서 죽였을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 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동생의 피가 땅속에서 부르짖는데,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하고 탄식하였다.
탈무드는 이것에 대해, 가인은 ‘나는 아니라’고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가인은 내가 왜 타인의 안위까지 신경써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는 ‘도덕적 책임’을 부정했다고 평가한다. 아담과 이브가 개인의 책임을 부정했지만, 한 단계 더 나가 ‘도덕적 책임’에 대해 그 중요성을 부각 시키는 것이다.
세상의 윤리는 ‘정의는 강한 자의 편’이라고 흔히 말한다. 강하면 옳은 것이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다윈의 강한 종자의 이론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없이 나만 강하면 정의는 실현되는 셈이니 생존의 문제는 간결해 질 수 있다. 그것이 세상에서 시대를 거슬러온 가인의 항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탈무드는, ‘이 두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의 시작에 발생한 실패를 거듭한 리더의 덕목인 ‘개인의 책임’과 ‘도덕적 책임’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권력과 책임
2. 모세 이야기
어린 시절, 모세는 자라서 유대인들이 종으로 일하는 것을 보게 됐는데, 이집트의 관리가 한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일어난 사건을 토라는 , “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하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날 유대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는 과정에서 그들이 모두 자신의 살인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 그가 좌우를 살펴 어느누구도 간섭하려하지 않음을 보고..” 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성경적 사건은 ‘방관자 신드롬’을 발생시킨 과거 뉴욕의 한 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어느누구도 끼어들어 구해 내지 않았던 사건을 상기시킨다.
후에, 사회 과학자들은 이 일에 대해, 아무도 구하러 달려오지 않는 방관자들의 영향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은 급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서겠지 하는 ‘책임의 방조’ 를 조성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종이었고 누구든 이집트 관리자의 엄중한 권력 앞에 남의 일 때문에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모세를 움직이게 했고 바로 그가 리더가 되게한 것이라고 탈무드는 설명한다. 탈무드의 리더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실패를 지적하고 불평한다. 하지만 ‘ 토라의 리더는 무엇이 잘못 되었을 때, 바로 잡는 사람이고 그들이 바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 ’이라고 탈무드의 ‘티쿤 올람’ 정신을 리마인드한다.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브라함 3. 최고의 성취를 위한 선택
세상의 위대한 문명과 종교는 모두 ‘수용’을 말한다. 폭력과 핍박과 가난과 고통의 세상에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순리이고 다가오는 세상은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탈무드의 리더는 그저 수용하지 않고 대항하고 심지어 신을 직면하면서도 호소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아브라함은 “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5)” 하고 도발했다. 모세는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출5:22) 하고 말했고, 에례미야는 “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하고 항변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응하기를 원하고, 토라는 바로 ‘사람의 책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탈무드는 ‘ 인생의 최고의 성취는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일에 대한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선택과 성장의 리더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 있느냐?’고 불렀다. 랍비들은 이것은 첫 사람 아담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울리는 공명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자유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지 우리에게 일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한다. 가인이 죄를 범하기 전에 찾아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주위와 우리 안에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하는 분이시다. 책임있는 인생은 반응하는 것이다. 바로 타인의 어려움을 내 책임으로 간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누구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의 선택에 있다.
행동하는 리더
탈무드는 우리가 아담과 이브처럼 탐욕의 소리를 들을 것인지, 가인의 내면에서 소리치는 분노의 소리를 귀에 담을 것인지, 또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정의와 평화의 땅으로 만들라는 창조주의 말씀을 따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고 조언한다. 마치, 까다로운 주제를 너무 쉬운 숙제 처럼 말하는 얄미운 학교 선생님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숙제를 잘하려고 수긍하는 것이 좋은 학생의 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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