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족 상이 있어 급히 한국에 왔다. 금요일 새벽에 부음 소식을 듣고 저녁 비행기를 탈 수 있었으니 기적 같은 일이다. 코비드로 인해 수많은 제약조건이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렇다. 먼저 호치민시티로 가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비자대금을 지불해야 했지만, 단 1초 망설임 후 카드를 긁었다.
장례 절차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날씨는 계속 좋았다. 식장이나 오가는 모든 길에는 노랗고 붉은 단풍잎이 절정이었다. 이럴 때 한국에 와 본적이 없었다는 식구들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아름다워요!”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우리 가족은 서울 시청 앞의 한 숙소로 안내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급히 달려온 자들을 위한 고국의 따뜻한 배려였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현수막. 이름하여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우리가 도착한 그 날 밤 10시에 일어난 일이다. 오늘 현재, 사망자 156명, 부상자 173명의 기록이 세워져 있다. 해밀턴 호텔 옆 골목, 18.24제곱미터의 면적에 엄청난 인파가 몰림으로 일어난 참사 중 참사다.
정말 놀랐다.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구나!” 꽃 같은 젊음을 불태우기 위해 몰려들었다가 허망하게 가버린 그들을 기리기 위해, 한 송이 꽃을 들어 바치는 조문객들의 행렬을 내려다보며, 난 황망했다. 가족 한 분을 추모하기 위해 달려온 내가, 156명의 죽음 앞에 서 있다니.
2.
장례절차는 과거지향적이며 또한 미래지향적이다. 과거지향적이라 함은 한 마디로 ‘회한’이다. 뉘우치고 한탄한다는 뜻.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할 걸!’ 그래봐야 소용없다. 가슴치고 후회하며 슬퍼하다가, 먼저 가신 그 님 따라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누가 세상 떠나면서 ‘다 이루었다’ 만세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미래지향적기도 한데, 그 이유는 잊혀졌고 숨겨졌던 이야기들의 재발견 때문이다. 시청 광장을 바라보며 왼쪽에는 덕수궁이 있다. 난생처음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파르르 휘날리다 수북이 쌓여가는 은행 잎은 정말 아름다웠다. 난 이 돌담길을 혼자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 때문은 아니다. 사진 찍느라 뒤쳐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물리적으로 박제시키는 방법은 사진 밖에 없다. 그 사진으로 우리는 과거를 소환한다. 덕수궁에서는 오래된 사진들을 특별전시 중이다. 백 여년 전, 늑대 같은 열강들 속에서 조선을 지켜 보고자 했던 고종 왕가의 사진들이다. 그것들을 보면서 회환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세계 10위권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생각하며 경이감과 안도감에도 사로잡혔다. ‘와! 정말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 난 거지? 이건 정말 기적이야’
3.
제 정신이 돌아온 식구들 역시 SNS로 사진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장롱속에 깊이 들어가 있던 사진들. 하나씩 전파를 타고 퍼지기 시작한다. “와! 젊은 날의 당신이 이렇게 아름답고, 핸섬하고, 날씬했나요?” 우리들 생각 속에 굳어져가던 주름살이 조금씩 벗겨진다. 10년전, 30년전, 그리고 어린 시절의 보들 거리는 살을 눈으로 어루만지면서, 인생의 손익계산서가 다시 만들어진다.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좀더 자주 만나요. 좀더 사랑하며 살아요!”
그래요. 사랑하는 당신.
물기와 온기가 빠져나가는 낙엽의 계절이지만, <회한과 울음의 분향단>은 이제 뒤로 하세요. 미래를 향한 찬란한 <빛과 생명의 화환>을 당신에게 올려 드리니까요.
김성주 목사 (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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