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돌봄’.. 편견은 사라지고 내가 사랑하는 시간 되어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가족이 우선인 삶을 살다보니 자신의 행복과 건강은 늘 뒷전이던 이민자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디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언어 문제까지 겹쳐 이민생활은 더욱 고단해진다. 본 칼럼에서는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자원 봉사자를 포함,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이민자들의 호주 사회로의 융합을 위한 의미있는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되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카스 노인복지팀의 유성희 서포트 워커를 통해 서포트 워커로 일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편집자 주).
유 성희 서포트 워커가 매주 금요일 쏜리에서 열리는 소셜 서포트 그룹에서 어르신들을 도우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모습.
시드니를 종횡 무진하며 어르신들을 가가호호 방문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어느 덧 이제는 일이 익숙해지고 즐거워져서 스스로도 뿌듯하고 대견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과는 다르게 너무나 이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나의 경험과 변화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귀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오래도록 남편과 해 오던 작은 비즈니스를 코로나 여파로 접고 일년 이상을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두 아이까지 키우며 바쁘게만 살아온 내게 일의 부재는 정말 큰 변화였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모두 대학을 가게 되면서 그 변화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사회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더 이상 나는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찾아들었고 갑자기 생겨난 그 많은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뜻밖의 상황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 때 마침 카스의 사회복지 정착서비스 담당자에게 사회복지 관련 일을 문의하던 중 카스와 교육기관이 연계해서 진행하는’Certificate III in Individual Support’ 코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과정 수료 이후는 물론이지만 수료하기 전이라도 실습을 병행하면서 카스를 포함, 다른 사회 복지 기관에서의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이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호주로 이민을 오게 되어 시부모님도 모시지 않은 내가 다른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긴 격리 생활에 지쳐갈 즈음 어떤 일이든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에 덜컥 등록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부담이 훨씬 적었고 이 일을 꼭 하지 않더라도 여유가 있을 때 자격증을 취득해 놓으면 나중에 유용하게 잘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이어서 그런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교육 과정을 마치고 찾아 온 실습 기간. 팬데믹으로 인한 격리도 완화되고 카스가 주관하는 다양한 한국 시니어 그룹들도 재개하면서 그 중 몇 곳에서 자원봉사 겸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론으로만 접했던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이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운명의 시간! 실습에 들어가기 전 까지만 해도 시니어 케어는 그냥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들과의 시간은 또 다른 차원의 만남과 즐거움이었고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카스에 이력서를 냈고 감사하게도 실습 기간 중 채용이 되었다. 지금은 가정 방문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 때의 인연으로 금요일 하루는 쏜리(Thornleigh)에 있는 소셜 서포트 그룹에서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그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매일 집, 가게, 애들 학교만 오간 덕에 시드니 지리도 잘 모르고 운전도 능숙하지 못했다. 바쁜 생활로 음식도 잘하지 못하고 각종 일상 생활과 관련된 업무는 남편한테 미루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무슨 일을 요청하실지, 그리고 필요로 하는 일들을 잘 도와드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필요로 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니었다. 간단한 식사 준비부터 집안 청소, 쇼핑이나 병원 모시고 가는 일,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샤워를 도와드리고 말 벗 해드리는 일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분야 취업을 위해서는 코스 이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무엇보다 어른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과 항상 그 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고객이 내게 “내 평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어떻게 내가 아흔을 넘기신 그 분의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말씀에 그 자리에서 손사래를 쳤지만 내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어른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도움이 저 분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절실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하며 내가 아직 쓰임이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고객들을 만나며 때로는 카스 직원들에 대한 칭찬들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카스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카스 일원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내 위치에서 맡겨진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는 사명감 또한 갖게 된다. 카스 한인 정착 서비스팀 도움으로 두 번이나 거절되었는데 정부 주택을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 복잡한 Aged care service에 대한 정보를 노인 복지 팀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감사 인사 또는 코디네이터 도움으로 홈 케어 패키지(Home Care Package)신청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 등을 들을 때면 카스라는 회사가 한 고객을 위해 매우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직원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나와 연결된 고객을 위해 서포트 워커로서 나의 몫을 잘 감당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인복지나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의 취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먼저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포트 워커의 일은 금전적인 보상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르신들을 만나며 삶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게 될 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을 포함한 어르신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거쳐야 하는 노년 생활에 대한 미래도 신중히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자리를 빌어 노인 복지 분야에 들어설 수 있는 문을 열어 준 카스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기사 제공= 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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