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잔뜩 끼어 있던 어느 날 오후에 어떤 지인이 내 처소를 방문했다. 그는 얼마전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같이 사업을 했던 사람의 근황에 대한 최근의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다. 나도 그 분을 알고 있는 터라 처음엔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다가 나중엔 그이의 허물을 보기 시작했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얘기가 길게 늘어졌다.
나는 이런 저런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격한 넋두리를 늘어 놓던 중 그가 나의 눈치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띠우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스님, 내가 좀 심하게 긴 말을 한 듯합니다. 산중에서 조용하게 수도하고 있는 분에게 쓰잘데없는 세상 얘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그는 차를 두세 잔 연거푸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안개처럼 그의 갈 길을 헤메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사는 과정에서 허물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는 참 잘못도 있겠지만 그 대부분은 틀어진 관계 속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면서 평가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친할 땐 장(長)점을, 그 반대의 경우가 되면 단(短)점을 더 많이 드러 내려고 한다.
같은 사람, 같은 내용을 대상으로 칭찬을 허물로 바라보게 하는 그 핵심 세력은 과연 무엇일까? 흔히 말하듯 이 세계는 나와 남이 함께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되길 우리 모두는 희망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만이라는 자기 중심적 사고나, 내가 더 낫다는 우월의식에 사로 잡히게 되면 우리들이 희망하는 세계와는 정반대가 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시비가 생기고 미움과 증오로 발전되어 심하게 되면 살상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상대의 단점 보다는 장점을 들춰내서 말해 줄 수 있는 지혜로움이 요구된다.
옛말에 ‘마음이란 세계는 워낙 오묘해서 칭찬이란 좋은 말을 자주 사용하면 그 지혜롭고 아름다운 마음이 우주를 덮고도 남지만 흉, 허물을 많이 보게 되면 그 옹졸해진 마음이 바늘 구멍에도 못 들어가게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마음씨는 동반자적 세력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다른 이의 장점을 말해주게 되면 내 마음속의 좋은 장점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어 있다. 타인의 허물을 말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늘진 세계에서 벗어 나려면 상대방의 좋은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밝은 마음의 한 마디의 생각이 중요하다.
법구경(法句經) 이란 짧은 경전의 말씀이 생각난다.
‘생선을 싼 종이엔 비린내가 나지만 향을 담은 그릇엔 향내음이 배어 있다.’
기후 스님 (시드니 정법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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