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전문 변호사로 많은 사건을 접하다 보면, 본인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하시는 의뢰인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기소가 되었다”, “영어로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내 주장이 묵살되었다”, 심지어 “경찰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다” 등..
특히 이민자에게 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실제로 억울하게 당하신 분들도 있고 전혀 억울할 일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 다룰 내용은 최근에 진행되었던 재판에 관한 것인데, 의뢰인으로서는 ‘억울하다’는 감정을 충분히 느낄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어느 늦은 저녁 시간에 한 음주 운전자가 몰던 자동차가 의뢰인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의뢰인의 차를 치면서 시작됩니다. 의뢰인과 가족들이 차가 부딪히는 큰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고, 사고가 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운전자와 대화를 하다가 술냄새를 맡은 의뢰인의 딸이 경찰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이때 같은 스트릿에 사는 다른 30대 남자가 한손에 술병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의뢰인의 딸에게 경찰을 부르지 말고 그냥 해결하라고 하였고 의뢰인의 딸은 이를 거부하면서 시비가 붙게 되었습니다. 19세 밖에 되지 않은 이 여성은 이 상황이 두려워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그 남자는 계속해서 쫓아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상황을 본 의뢰인의 아내가 그 남자에게 조용히 하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 이웃 남자는 의뢰인의 아내를 밀쳤습니다. 이를 목격한 의뢰인은 격분하여 이웃 남자를 밀쳤는데, 오히려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당해 쓰러졌고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의뢰인은 너무 분한 나머지 다시 일어나서 그에게 뛰어가 둘은 길거리에서 난투를 벌였습니다. 이 때 경찰이 도착하여 상황이 종결됩니다.
경찰은 당시 길거리에 있던 목격자들에게 진술을 받았으나 의뢰인의 아내와 딸에게는 진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의뢰인과 이웃 남자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 후 경찰은 의뢰인만 ‘Affray’ 라는 죄목으로 기소를 하고 이웃 남자는 아무 기소 없이 풀어 주었습니다.
‘소란’으로 번역되는 ‘Affray’ 란,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폭력적인 행위를 하거나 여러 명이 집단으로 싸움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행위에 적용되는 죄목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명이 싸웠을 때,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두 명 다 기소를 할 때 이 죄목이 사용되고는 합니다. 본 사건도 폭행으로 기소를 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많아서 ‘Affray’ 로 기소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경찰이 상대방 남자는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의뢰인은 본 사건으로 인해 이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 혼자 가해자로 기소까지 되어서 참 억울하다며 제게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설명을 듣고 기소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자, 본인이 참았어야 하는 상황인데 다시 뛰어가 난투를 벌인 것이 잘못한 점이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물론 제 관점으로는 유죄 인정을 하지 않고 사건을 다퉈 볼 여지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의뢰인은 유죄을 인정하고 재판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50대 중년 남성인 이 의뢰인은 성격이 차분하고 인품이 좋은 분으로 보였지만 Affray 라는 죄목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자칫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담당 판사에게 의뢰인이 전과도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어 본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웃 남성이 자신의 아내와 어린 딸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순간 이성을 잃게 되었던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담당 판사가 이러한 저의 논리에 수긍하는 것으로 보이자, 저는 판사의 반응을 살피면서 변론을 이어갔습니다. 의뢰인이 잘못한 것은 이웃 남자가 의뢰인의 아내를 처음 밀쳤을 때 바로 한 행동이 아니라 한번 폭력이 오간 후 다시 상대방에게 달려 들었던 행동이고, 그 때 참았어야 했지만 싸움을 지속한 것에 대해 의뢰인은 상당히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말로 저의 변론을 마쳤습니다.
모든 내용을 들은 판사는 자신이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였다며 오히려 의뢰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 상황이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누군가가 내 딸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내를 폭행한다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큰 분노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본인과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드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멈출 수가 없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판사는 담당 검사에게 “상대방 남자가 왜 함께 기소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재판 결과는 ‘Conditional Release Order without conviction’ , 즉 전과가 남지 않는 자숙 명령 4개월이었습니다. 저의 15년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심각한 죄목에서 이렇게까지 약한 처벌을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뢰인은 최소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전과 기록이 남을 것을 예상했었는데 예상보다도 훨씬 좋은 결과를 받아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저 또한 판사가 의뢰인의 억울한 처지를 헤아려 주어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살다보면 운이 나쁘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는 있지만, 나 혼자 가지고 있는 억울한 마음을 적절한 방법으로 판사에게 전달하는 것은 변호사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해서는 관련 사건에 대한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H & H Lawyers
강현우 파트너 변호사
공인 형법 전문변호사
면책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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