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안에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관리위원회는 방역지침에 따라, 식료품 등 필요한 물건을 격리자들의 문앞까지 배달해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쓰레기며 재활용품을 개인적으로 버리는 바퀴달린 통을 제공해 준다. 각층의 복도나 승강기는 소독과 청소를 더 자주하고 있다. 이는 모든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들의 수는 더 많아 질 것 같다고 한다.
오미크론 변이가 쓰나미처럼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2월까지 절정에 이르다 3월쯤에는 수그러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종의 감기라 여기며 더불어 함께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경쓰이는 것들이 많다. 어제는 3차 접종주사를 맞았다. 50대 1의 확률로 감염방지에 도움이 될꺼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새해 시작부터 이런 일들로 움추려드는 일상이 유감스럽다.
멜본의 한 친구 목사가 팔지에게 전화를 했다. 2000년에 빅토리아/타스마나아 주총회의 다문화선교 목사로 사역할 때부터 알게되었다. 함께 여행 다니며 부부끼리도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또한 내 후임으로 같은 사역을 맡게되어, 몇번 시드니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새해를 맞아 어떤 새로운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새로운 일은 없고, 무료한 은퇴 생활에 오미크론과 동거하느라 불편하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는 타스마니아로 와서 파트타임 목회자로 일하라고 했다. 그런 변화가 필요하고, 또 지구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한 곳이라 한번 숨쉴 때마다 수명이 5분씩 더 길어질거라고 말해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러나 실상은 제한된 현재의 상황이 갑갑해서 유감이었다.
새해의 첫 금요단상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어떤 생각이나 주제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 스러웠다. 나는 주로 생활 주변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들을 가볍게 써오곤 했다. 그래서 지난 몇주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뒤돌아 보았다. 딸 집에서 성탄절 만찬을 했다. 작년 끝날에는, 두 친구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집앞 선착장의 작은 불꽃놀이를 보며 새해 첫 시간을 보냈다. 딸 식구 5명이 세배를 와서, 함께 가까운 해변에 가서 놀았다. 미국의 아들 가족들과는 화상으로 만났다. 특별하거나 신박한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것들을 통해서도 어떤 의미와 기쁨, 감동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회복없이 일만 계속할 경우 탈진되어 그렇게 될 수 있다. 아마 내 상태는그 반대인 것 같다. 변화없는 일상의 반복으로, 정신이 무기력해지고 감정까지 둔해진 것 같다.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도 방전되어 버린듯 싶다. 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더욱 그런 판단이 분명해졌다.
그 친구는 신학대학 상담학 교수로 은퇴했으며 나와 비숫한 연배로 자주 연락하고 있는 마음의 벗이다. 시드니에 화목한 세 자녀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 분의 제안으로 금년 성탄절 가족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민감한 때라 온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그렇게 했노라고 하셨다. 그 분은 작년 초반까지 건강문제로 힘든 치료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직도 그 분의 체력은 나보다 더 약한 상태인 줄 안다. 그러나 지난 일년간 새로운 책 저술에 전념해 왔다. 이제 원고를 다 마치고 편집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매일 생각하며, 자료를 찾고 글쓰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 자체가 삶에 리듬과 활력, 의미를 주었다고 말했다. 공감되는 말이다. 같은 기간에 오히려 건강한 내게는 어떤 형태의 묵직한 과제나 치열한 도전이 없었다는 것이 매우 유감 스럽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나 청력, 기억력 등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지금도 사랑하며 꿈꿀 때 가슴이 뛴다. 사는 보람과 의미를 느낀다. 그것을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될까? 할 수 있을까? 얼마의 생각 끝에 언뜻 내 자신과 자녀들 및 친구들을 위해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지금까지 책 출판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 로마의 키케로는 “잡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쓰려고 한다”고 했다. 지금도 종이값에 못미치는 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들, 내 삶의 여정에 동행했던 귀한 친구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기회를 놓쳐 못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나누고 싶다.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성찰하는 과정에, 불편하고 뜨악한 실체를 대면하는 아픔과 후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쓴약처럼 유익이 될 줄 안다.
그런 바램을 갖는 것만으로는 또 다른 유감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현실적인 실천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목표는 금년 9월 말까지 원고를 마치고, 편집과정을 거쳐 11월안에 전자책(E-Book)으로 출판하고 싶다. 한 연구보고서에서, 인간행동의 5%만이 의식적이고, 나머지 95%는 환경이나, 상황의 필요에 의한 반응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목표를 향해 단계적으로 행동하는 구체적인 계획뿐만 아니라, 내 생활 습관과 환경도 이를 위해 집중할 수 있도록 바꾸려고 한다. 특별한 건 아니다. 작은 몇가지를 바꾸고, 멈추고, 거절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 삶속에 일과 쉼을 오가는 그 리듬과 파동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내면의 활력과 몰입을 경험하며, 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감정적인 유대감이 더 두터워 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최정복 (호주연합교회 은퇴 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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