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내러티브
너무도 착한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집안을 차지한 계모는 여왕처럼 군림하며 온갖 구박하며 힘든 가사 노동을 떠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이 술렁이는 큰 파티(잔치)가 열리고, 주인공은 특별한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비루함을 탈피한다. 그러나 잔치는 금세 끝나고 주인공은 다시 남루하고 초라한 본인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파티의 주최자에겐 주인공은 이미 가장 완벽한 이성으로 각인이 돼있다. 결국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던 그곳에서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통해 주인공은 초라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 모두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결혼식을 올리고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대부분 서양 전래동화 ‘신데렐라’를 떠올릴 것이다. 또 누군가의 머릿속엔 화려한 궁정, 유리구두, 호박마차가 스쳐갈 것이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영향이다.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오직 서양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350여 종의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첫 신데렐라 이야기로 기원전 5세기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을 꼽는다. 당시 이집트엔 전설적인 미모를 지닌 여성 로도피스가 있었다. 로도피스는 발칸반도 동부인 트라키아 출신의 노예였는데 이집트로 팔려와 매춘부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로도피스의 신발 한 짝을 매가 물어가 파라오 앞에 떨어뜨린다. 이 인연으로 로도피스는 이집트의 왕비가 된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던 여성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짝과 만나는 신데렐라 서사의 전형이다. 이후 이 서사는 세계로 퍼진다. 서양으론 ‘양모 소녀’(터키), ‘고양이 체네렌톨라’(이탈리아), ‘상드리용’(프랑스), ‘재투성이’(독일), ‘골풀 모자’(영국)로 전해진다. 동양엔 ‘아름다운 헤나’(예멘), ‘한치 이야기’(인도), ‘콩쥐팥쥐’(한국), ‘누카후쿠와 고메후쿠’(일본)로 발전한다.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 서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인류 문화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도 다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어디서든 여성들은 억압받았고,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했고, 결혼 제도를 통해 신분 상승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특히 이 서사는 계모가 전처소생인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머리에 ‘계모는 나쁜 사람’이라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물론 동화 ‘백설공주’에도, 한국의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에도 예외 없이 성미가 고약한 계모가 등장한다.
계모는 나쁜 사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사건은 반복됐다. ‘조선왕조실록’엔 중전의 자식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후궁들이 등장한다. 로마시대 황제 자리를 둘러싼 다툼도 마찬가지다.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의붓자식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처의 자녀는 떼어버리고 싶은 ‘얼굴의 혹’보다 성가실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동학대’ ‘계모’ 등의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해보시라. 얼마나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은가? ‘인간이 이토록 악하고 잔인해질 수도 있는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만한 기사가 범람한다. 영화 ‘어린 의뢰인’의 실화사건인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개요는 다음과 같다.
“2013년 칠곡에서 엽기적인 아동 학대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역시 계모에 의하여 자행된 것이었다. 그녀는 8살 된 의붓딸을 심하게 때린 뒤 피해자가 복통을 호소하였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장간막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아이를 숨지게 방치하였다. 아이가 사망한 이후에는 언니였던 12세 자녀에게 동생을 죽였다고 허위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이를 강요하기 위해 아이를 세탁기에 가두어 돌리고, 성추행과 물고문을 하는 등 친부인 배우자와 함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듯 계모에 의한 학대치사 사건들은 치명적인 폭행이 적어도 2년 이상 지속되어 아동이 결국 사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희생양이 필요한 계모?
재혼은 재혼대로, 초혼은 초혼대로 힘들다. 재혼은 이미 이뤄놓은 결과물을 합치는 것이어서 더 어렵다. 초혼이라면 결혼생활을 하면서 규칙이 마련된다. 그런데 재혼 커플 사이엔 ‘결혼생활은 이래야 한다’는 서로의 고정관념이 충돌한다.
결혼을 미루다가 나이 들어 초혼한 이들 중엔 아이는 한없이 착하고 예뻐야 한다는 환상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런 환상 때문에 굳이 아이 딸린 남자(여자)와 결혼하는 미혼남녀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밤에 잠을 안 자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말을 안 듣고 반항하면 환상은 깨진다. 아이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남의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결혼 전에 각오했다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자식은 전처가 키울 테니까, 혹은 부모님이 키워줄 테니까 아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믿고 결혼했는데, 막상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억울하다. 이게 인간의 마음이다. 부부 간에 갈등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둘 사이에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고 싶다보니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려든다. 재혼을 했는데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어디엔가 화풀이를 해야 한다. 자신이 힘들다보니 아이를 학대한다.
자기가 소리를 질러서 아이를 울려놓고는 아이가 징징댄다고 학대한다. 아이가 말을 잘 들으면 야단치지 못한다.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약속을 강요하고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깨끗하면 야단치지 못한다. 그런데 자신이 씻겨주지 않고는 아이가 지저분하다고 야단친다. 겁에 질린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대소변을 못 가리면 그걸 핑계로 아이를 욕실에 가둔다. 아이가 열어달라고 소리치면 그런다고 또 때린다.
아이가 산만하고 마음에 안 들면 학대는 더욱 심해진다. 보통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어린이는 발에 ‘모터’를 단것처럼 하루 종일 움직이고 계속 사고를 친다. 충동적인 양상도 있어서 뭐라고 하면 맞서서 소리 지른다. 아이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하는 행동인데, 계모는 아이가 반항한다고 여겨 학대를 합리화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발달이 느린 아이도 학대의 타깃이 된다. 남의 아이인데 발달이 느리다면 평생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게 끔찍하다.
이처럼 계모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계모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본능적으로 남편의 사별한 혹은 이혼한 아내 자식들을 자기가 낳은 자녀들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다. 남편에게 전처를 생각나게 하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질투심은 차치하고, ‘남편이 전처 아이를 더 애틋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애들이 나이가 많으니 대부분의 상속을 받지 않을까? 그 아이들 때문에 늘 후처 취급당하지 않을까?’는 생각에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
계모이기 때문이 아닌, 성품 탓
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계모는 ‘나쁜 여성’으로 보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로 나쁜 계모는 생각보다 적고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단지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그만큼 특이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계모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동정심은 타고난다. 여성은 본질적으로 모성을 가졌다. 대부분의 계모는 어느 정도 동정심을 지녔기 마련이다. 착한 여성은 착한 계모가 되고, 못된 여성은 못된 계모가 된다. 즉 본래 그 여성의 성품 탓이지, 계모이기 때문에 아동을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못된 친모보다 착한 계모가 더 나은 경우도 많지만 단지 뉴스에 보도되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 계모가 학대하는 것은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 역시 나중에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때려서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문제, 주거환경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또 도와줄 사람이 없을수록 아동학대는 늘어난다.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 중에는 자신도 어려서 학대받은 이가 많다. 어려서 폭력에 노출된 트라우마나 불우한 성장과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감정 조절 못하는 뇌를 물려받은 자녀는 훗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이들 여성 폭력범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정신장애는 경계선 성격장애임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여성 폭력사범들의 공통점은 40%에서 76% 정도가 어릴 때 성폭력 피해에 노출된 적이 있으며 25%~73% 정도가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았던 피해자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계모의 갈등과 아픔
‘계모(繼母)’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다. 이혼과 재혼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에 계모도 늘어나고 있다. 동화나 드라마, 각종 뉴스로 덧씌워진 ‘나쁜 계모’의 이미지와 사회적 시선은 감내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는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므로 모성 본능의 사랑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시선이 작동된다. 유전자가 1%도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 어머니의 내리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물론 계모에게 유전적 계승은 없다. 맹목적 사랑 역시 친모보다 옅을 수 있다. 대신 계모들에겐 더 강해진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다.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실패한 첫 결혼도 그랬고, 새엄마로 살아가는 점도 그렇고. 나는 왜 남들처럼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할까 고민하고 그런 게 열등감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남들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재기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의붓딸도 보란 듯이 잘 키우는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먹는 거나 입는 거나 모두 좋은 것으로 골랐다. 새엄마가 집에 오더니 애가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재혼하게 되면 미움과 싸워야 한다. 밉지만 않아도 얼마나 행복할까 싶을 정도다. 작은 미움이 큰 미움으로 정말 쉽게 번지더라. 그 감정의 소모 때문에 너무 쉽게 지친다.”
그들은 주변에 인정받으려는 의지도 있었고, 가정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존재를 강하게 각인 받고 싶은 욕심도 컸다. 최근에 필자와 만난 한 중년 여성의 고백이다.
“엄마와 사별한 아버지에게 특별히 감사한 것은 재혼을 하신 것입니다. 아주 어릴 적에 만나 새 엄마는 소위 살갑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에게 가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주셨어요.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 키워보니, 배 아파 낳지 않은 ‘남의 아이’ 키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정의)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가족 간에) 관계 맺음의 질에 달려있다.” - 정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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