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의 이 문장이 새로운 기술시대를 확신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디지털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켰지만 유독 공연장과 강의실만큼은 이 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둔감했었다. 관객과 학생은 21세기 디지털 세대로 첨단을 달리는데도 예술가와 교육자는 20세기의 양식에 매달려 19세기와 다름없는 공연장과 강의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원격강의는 특히 음악대학의 실기수업에 격렬한 변화를 가져왔다. 원격레슨을 낯설게 직면한 교강사들은 부지런히 정보를 주고받는다. 주로 교강사와 학생의 1대1 대면 레슨으로 진행되어 온 음대 실기 수업의 경우 대부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하는데 아직은 최적화된 플랫폼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여럿이 협업을 이뤄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실내악, 오케스트라, 합창 등의 강의는 기술적 구현이 더더욱 요원해 보인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강사와 학생 혹은 지휘자와 개별 연주자를 단선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연주자들 사이 입체적 연결, 게다가 다른 사람의 소리를 경청하며 동시에 조응해야 하는 앙상블 본연의 미덕에는 기술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학교에선 협업이 필요한 실기수업을 6월 말 종강 이후 집중수업으로 최대한 연기하고 있다. 코로나가 상당부분 안정된다 해도 비말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비닐 커튼과 아크릴 차단벽을 동원해 교강사와 학생, 혹은 학생들 사이의 물리적 분리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요 근래 음악계에선 뿔뿔이 격리된 연주자들을 랜선으로 연대시키는 ‘모자이크 앙상블’이 유행처럼 퍼지는 중이다. 특정 곡이 정해지면 우선 어떤 템포로 연주할지 메트로놈의 숫자를 공유해야 한다. 연주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캐주얼한 평상복을 입고 자신의 연주모습을 촬영하는데,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리 주어진 메트로놈 템포의 준수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에 즉흥적으로 공명하고 조응하는 앙상블의 미덕은 사후 편집의 편의성을 위해 억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자이크 앙상블의 매뉴얼에는 음악에 관한 지침보다는 부수적인 것이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단순한 배경을 선택하되 창문을 등지는 역광을 피해야 하고, 특정 브랜드를 노출한 의상은 자제하며, 세로보다는 가로모드로 촬영하되 반주트랙은 스피커가 아니라 헤드폰을 활용해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직까지 음악교육의 온라인 전환은 걸음마 단계 수준에 불과하다. 원격실기 강습의 목표는 오프라인 레슨을 최대한 재연하는데 급급하고, 앙상블의 입체적 연대는 단선적 연결에 제한되어 있으며, 공연예술 특유의 현장감과 즉흥성은 인위적인 편집으로 왜곡되고 있다. 단기적인 효율성에만 몰두하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과 탄력성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음악계, 혹은 음악 교육계에 불어 닥친 언택트 문화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연결’에 있다. 원격과 비대면의 물리적 환경 속에서 교강사와 학생, 연주자와 연주자, 혹은 연주자와 청중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 단순한 접속에 매몰되지 않을 소중한 접촉의 가치를 재정립 할 수 있어야 하겠다.
코로나는 공연예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며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급변한다 해도 예술가는 그 격렬한 파고 속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과 지켜야 할 것을 꾸준히 각성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맹목적으로 뒤따라 쫓을지, 아니면 파수꾼처럼 예술의 오래된 방식을 의연히 지켜야 할지 올곧이 헤아리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도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할지 모른다. 섣불리 이상적인 담론은 경계하되 알찬 실천부터 찾아가기로 하자. 오늘의 우리뿐만 아니라 내일의 그들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02) 8876 1870
info@itap365.com
https://www.itap36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