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밖에 다니질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자 전화로 소식을 나누는 일들이 많아졌다. 오랜 만에 외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질 않는다. 데이비드(David)는 22여년 전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던 파트너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 은퇴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몇 년 동안을 함께 일했던 유대인이다. 호주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사회에서 인정받고 화목한 가정을 이끈 가장이다. 몇 년 전 아내가 치매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북부 해변의 리트릿 단지로 이사하면서 몇년 째 혼자 살고 있다. 매주 점심을 같이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 지고 집을 오가며 가족들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 친구
흔히, 많은 유대인들이 그렇듯, 처음부터 정치와 종교 얘기는 서로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지만, 나중엔 질문도 많이 하고 서슴없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도 주제에 구애 받지않고 다양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5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의 죽음을 맞고, 그의 아담한 아파트에 갔을 때 특별히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는데, 얼마나 외롭고 허전한 마음인지를 느끼면서도, 한편 종교의 벽을 넘어 스스럼 없어진 그의 신뢰에 감사했었다. 혼자 있는 데이비드는 늘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그는 귀가 어두웠다. 보청기를 썼지만 점차 잘 듣지 못하고 때로는 딴 이야기를 한 참 하다가 전화를 끊곤 했었다. 이제 아흔을 넘고 감염에 예민하니,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로 만난지가 일년 반이 넘었다.
며칠 전 길거리에서 오래 전부터 알던 지인인 줄 알고 반가워 선뜻 다가 가다가 그 사람이 아니고, 그가 벌써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갑자기 볼 수 없다는 연민이 마음을 가득 채웠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일까, 전화를 받지 않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연락처도 없고 미리 가족들에게도 말을 해두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내에게 난데없는 하소연을 하는데 그의 이름이 전화 액정에 떠오르며 안도와 반가움에 전화를 받자 다른일을 하느라 미처 받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보고 싶었다고 살가운 인사를 전한다. 그는 곧 92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며칠 전 운전 면허를 2년 더 연장을 받았다며 어린아이처럼 자랑을 한다. 보청기를 바꿨는지 이제 말도 더 잘 알아 듣고 목소리도 여전히 명랑하다. 리트릿 센터의 고급스런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홀로 요리를 해야 하며, 가족들 안부며, 책읽은 애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을 무렵, 코로나로 모든 것들이 다 힘들어도 나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는 말에 잠시 멈칫 하게 되었다. 그의 허전함이 얼마나 마음에 깊고 간절한지를 짐작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병치레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보고 싶은 아내의 빈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허망함이 내내 그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생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안고 줄곧 살아가야하는, 매 시대 마다 옥죄이는 삶의 굴레가 야속하기만 하다. 데이비드는 92세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움직이는 것도 듣는 것과 먹는 것도 모두 어렵고, 돈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살아온 성공의 업적이 있어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는 마지막을 마주하는 결핍의 상흔이 있다.
2. 인생의 결핍
얼마 전 끝난 도쿄올림픽에 칭찬이 자자한 메달리스트들의 성공의 이면에, 또 비록 메달이 없어도 도전한 모든 선수들에겐 상처입고 결핍으로 상한 마음의 고생과 아직도 달고 다니는 고통의 스토리가 있다. 배구에서 유도에서, 양궁과 펜싱에서, 높이 뛰기와 마루 운동과 수영과 다이빙에서 실패와 낙망과 상처와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줄곧 달려와야 하는 여정이 있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이륙하는 미군 비행기 날개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가 공중에 종이처럼 흩뿌려진 수 많은 생명이 순식간에 죽음이 되는 보도가 있었다. 두려움과 재앙으로 가득할 인생의 오직 살 길이라고 믿었던 어리석기 짝이 없으면서도, 가슴 아련한 비통한 역사의 장면이 21세기 미디어에 즐비하기만 하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총을 맞고 피범벅이 되어 내동댕이 처진 딸의 죽음을 바라보는 거부하고 싶은 처절한 인생의 달래줄 수없는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헤르만 헷세가 쓴 ‘수레 바퀴아래서’의 마지막 장면 처럼, 물에 빠져 죽은 명석했던 아들의 장례에, 자신이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가부장적 아버지의 자책이 있었을 텐데도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는 무심한 것 같은 아버지의 뒷 모습에서는 평생을 다시 지울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결핍으로 가득한 황망함의 여운을 떨칠 수 없다.
오랜 팬데믹의 결핍의 배후에 신이 계시다면,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정녕 매달려야 할 안전 지대가 어디인지, 그 대답은 더욱 명확해 진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2) 8876 1870
info@itap365.comhttps://www.itap36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