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록다운 8주 차. 집에 갇혀서 하는 일은 먹는 일이다. 누가 말했듯이 ‘돌 밥’이다. 돌아서면 밥, 또 돌아서면 밥.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일단 커피 한잔을 끓이고, 어제 만들었던 마늘 빵을 한쪽 먹었다. TV를 틀었다. SBS 세계 뉴스 시간인데, 그리스 편이다. 벌써 몇 달째 불타오르고 있다. 그리스어(Greek)는 모르지만 알파벳은 읽을 수 있다. ‘Avgaria’. 생소한 지명이지만 주민들의 비명은 뉴스를 타고 여기까지 들린다. ‘이건 완전 재앙이에요. 우리는 버림받았어요. 소방차는 볼 수도 없고, 우리 차들도 다 타버렸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점점 다가오는 엄청난 열기를 느껴요. 우린 여기서 타 죽는 걸까요?” 산불이 번지고 있는 곳은 민주주의의 요람 아테네 근방이다. 이미 언덕 위 파르테논 신전은 산불 연기로 가득하다. 산불이 더욱 심한 곳은 에게해 건너편 터키다. 지중해에 면해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들을 중심으로 북쪽과 대륙 내부로 계속 번지고 있다. 심지어 동토의 땅이라 기억하는 러시아의 시베리아도 100여 군데가 타고 있다. 독일은 홍수로 진흙탕이 되었다. 그 넘쳐나는 물을 밑으로 부어 버리면 좋겠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러시아 공산주의가 무너지더니, 이제는 서구 문명과 민주주의의 요람마저 불타고 있다. 그러면 뭐가 남는 거지?
2.
등 뒤 부엌에서 아내는 야심 찬 일을 시작했다. 메밀국수를 한 소쿠리 삶았다. 메밀은 살이 안 찐다는 생각에 겨자를 맘껏 풀어서, 아기공룡처럼 목으로 불꽃을 발하면서 배부르게 먹었다. 그렇게 아침 시간이 일단 지나갔다. 거실에는 나만 남아 이 글을 쓰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하다. 그러다가 뒤쪽에서 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했다. 소리가 좀 더 커지더니, 뭔가 굴러가면서 쨍그랑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다. 어젯밤 음료를 마시고 닦아 놓은 샴페인 잔!. 달려가 보니 과연 그랬다. 비싼 건 아닌데, 식구 중 누가 선물 받아온 잔이다. 목이 길고 잔 자체도 길고 좁다. 밑에 둥근 받침은 있지만, 무게 중심이 위에 있어서 잔을 닦을 때나 말릴 때 주의해서 세워 놔야 한다. 록다운 시절이라 샴페인 터뜨릴 계제는 아니기에, 음료수를 따라 마시고 닦아서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세워 놨었는데, 오늘 아침에 자리가 옮겨졌던 것 같고, 그 후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5분이 지나갔는데, 조금씩 움직이면서 결국은 타일 바닥으로 떨어지고 깨져버렸다.
3.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제 그 잔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잔을 안전한 곳에 옮겨 놓았어도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터였다. 현재 지구의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다. 그것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가 산불, 홍수 그리고 코비드-19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원인과 결과를 부인하지 못한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외치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한 귀로 흘려 보냈었다. 특히 부자 나라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 경고를 무시했고, 화석연료를 무진장 소비하도록 부추겼다. 자동차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공장 굴뚝은 이산화탄소를 무한대로 뿜어 대며 지구 온도를 올려 댔다. 아마존 밀림을 태워 그 땅에서 재배한 옥수수로 소를 먹이고, 그 소를 잡아먹으며 인간 체중을 늘려갔다. 그 결과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은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더 뿜어내는 독가스 공장이 되었고, 1800년에 10억이었던 세계 인구가 이제는 79억이 되었다. 진정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번식 능력에 감탄할 뿐이며, 그 무게를 버텨주는 지구가 대견할 뿐이다.
호주 역시, 청정국가인 양 점잖은 양처럼 뒷짐 지고 있지만 사실 중국/미국/한국과 더불어 ‘기후 깡패’의 일원이다. UN 보고서에 의하면 호주의 기온은 1910년보다 1.4도가 상승했다. 만약 2도까지 올라가면 지구상 생명의 절반은 사라진다. 결국 인간도 멸종할 수밖에 없으며 남는 것은 바퀴벌레와 그 동류인 바닷가재뿐이다. 먹어주는 사람이 없는 그 상황을 바닷가재는 좋아할까?
4.
So what?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과연 인간은 지구 종말을 피할 수 있을까? 원천적으로는 없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멸망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계 지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든 것이 ‘넷 제로 (Net Zero)’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가 균형을 맞추게 하자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2050년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한국도 그랬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공식 선언을 하지 안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우리가 앵거스 비프와 태즈메이니아 연어를 좀 덜 먹고, 쓰레기를 줄이며, 차 타기보다 걷고, 공정한 소비를 하고, SNS를 덜 쓰고, 온라인 구매를 절제하고, 몇 벌의 소박한 옷으로 살면서, 검소한 가구를 오래 쓰며, 적당한 규모의 집에서 살 수 있겠는가?
동굴인간(Cave-man)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작은 것에 자족하며, 이웃과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며 살자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은 태생적/본능적으로 뻥튀기 지향적이다. 검소와 절제와 이웃 배려에는 대단히 소극적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후손들이라 그런가? 우리는 입다 만 옷을 길거리 통에다 넣는다. 의도는 좋다. 남는 옷을 이웃에게 기부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수거해 간 옷은 호주에서 재소비가 다 안 된다. 대부분은 아프리카로 보내진다. 거기서도 60% 이상은 다시 버려지고 바닷가에 산처럼 버려진다.
그렇게 아프리카는 서구의 쓰레기장이 돼가고 있다. 결국 시작은 나와 당신의 몫이다. 이기심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 지구 재앙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당대의 존망에 관한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차리고 힘쓰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얼마 전 산책하러 나갔다. 열심히 걸으며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앞에 전깃줄이 보였다. 그 중간에 작고 검은 물체가 걸려 있었다. 신발은 아니었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박쥐 한 마리였다. 아니 웬 박쥐? 앞뒤 집 문을 두들기며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아세요. 언제부터 박쥐가 여기 나오기 시작했나요?” 박쥐 한 마리는 보통 2~3개의 코비드 바이러스를 지니고 산다. 혹시 그 박쥐가 코비드20이나, 21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5.
이 글을 쓰는 동안 11AM의 스타, 주총리가 등장했다. 345명의 감염자를 보고하면서, 내가 사는 근방인 베이사이드, 버우드, 스트라스필드도 추가 록다운 LGA로 선포했다. 뒤이어 나온 정신과 의사가 말한다. “이번 팬데믹은 여러분 일생에 가장 힘든 위기입니다. 정신 잡고 살아야 합니다. 운동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지 말고…” 록다운 8주 차 동안 집에 갇혀서 하는 일은 먹고 노는 일이다.
얼마나 더 연장될지 누구도 모른다. 이젠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보지만 ‘슬기로운 록다운생활’을 통해 ‘넷 제로’의 각론을 실천해 나갈 때다. 물론 힘들다. 그러나 이미 교훈을 받았다. 유리잔이 깨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후처리에는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가? 일단 빗자루로 큰 것을 쓸어 담아야 하고, 진공청소기로 몇 번을 반복해서 바닥을 쓸어 담아야 한다. 정말 하기 싫지만, 한 조각의 유리가 남아서 나와 아기의 맨발을 찔러 대면 진짜 큰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이제는 슬기롭게 살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바벨탑으로 쌓아 올렸던 것들을, 내가 먼저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다 죽는다.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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