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유대인의 고립은 경제 인식에 대한 전환을 가져오고 유럽과 세계의 상권을 잠식해가는 계기가 되었다는것을 살펴 보았다.
어떤 인식, 즉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는 삶의 방향과 영향력을 좌우하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키와 같다는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는 바와 같이, 질문을 많이 하는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뻔한 질문보다는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라는 것을 배우며 자란다. 이는 질문은 생각을 유발하고, 그 때 답을 다 얻을 수 없다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주요 명제에 대한 지혜를 얻고 인식의 변화와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질문의 의도에는 인식, 즉 세계관의 변화에 방점이 있는 셈이다. 신의 존재는? 진정한 행복은? 인생은 ? 죽음은 ? 등의 질문은 한 가지로 답하기 어려운 난해한 주제 임에 틀림없고 대답하기 애매한 묘한 질문들은 세대를 거쳐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1. 질문과 세계관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19세기의 문제가 ‘신은 죽었다’라는 것이라면, 20세기는 ‘사람이 죽었다’ 라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 명제 안에는 과연 신은 실존 하는가, 사람은 왜 죽었다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유발하고 있다.
‘신의 죽음’이라는 주제와 이에 대한 질문은 19세기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기하였고 여러 철학자들과 페오도르 도스토옙스키 같은 철학자가 ‘카라마쵸프의 형제들’이라는 저술 등에서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명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과정을 거쳤다.
‘신의 부재’에 대한 논쟁은 산업 혁명과 과학의 발전을 거듭하며 자리잡은 그들의 세계관은 나치의 시대에까지 이르는 극단의 사상이 되었다. 극단적 민족주의자인 히틀러는 ‘유대인의 전제적인 신’을 멸망 시키는 것을 그의 일생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의 아리안족의 생태적 우수성을 기반으로 유토피아를 꿈꾼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가졌다.
그의 인식 속에는 결코 신은 존재 하지 않았고 급기야 신을 대적할 뿐 아니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행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의 최고 지성이라고 불리는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세상의 무성한 잔혹함을 어떻게 윤리적 가치에 준해 반박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무신론자인 그는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지성인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세상의 방종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단순한 질문은 삶의 전반에 총체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천지 창조 – 미켈란젤로
2. 탈무드의 대답 어느 철학자가 랍비 르우벤에게 물었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일까요?”라고 묻자 “그 사람은 창조주를 부인하는 사람일 겁니다.” “왜 그렇죠?”라고 반문하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는 도덕률에 대해 “보십시요, 이 사람은 그가 그 것들의 근원(신)을 부인할 때까지는 이 법률의 어떤 것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토세프타 쉐브옷3:6)“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역설적이지만, 창조주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어떠한 선한 도덕률도 부인하려고 달려들 것이란 말이다. 신의 개입이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무신론자의 반박이 랍비에게 가장 골치 아픈 상대라는 말이다.
정의의 여신과 모세의 십계명
3. 현대 문명의 세계관서구의 세속적 현대 문명은 ‘지성과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도덕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어느 작가가 마치 ‘꺽인 꽃의 문화’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덕과 자유는 마치 꺽여진 꽃의 생명이 유효할 때까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를 내는 것처럼 뿌리가 없는 한 결코 지속적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의 개입이 없는 도덕과 윤리는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결국, 인생의 변덕스런 욕망과 세상의 권력과 호기심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는 사상누각이 될 것이기 때문(윌 허버그, ‘유대교와 현대인’, p91-92)”이라고 유대 철학자는 조언한다.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인생을 건축하는 든든한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볼테르 같은 철학자는 “내가 아는 변호사, 재단사, 주차요원, 심지어 나의 아내가 신을 믿는 다면, 적어도 내가 덜 사기 당하고, 덜 갈취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 했다고 한다.
탈무드는 “ 만약 신이 죽었다면, 현대에 누가 근친상간이나 수간같은 끔찍한 일에 대해 옳고 그른지 제대로 말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현대 휴머니스트들은 동물들이 그것을 즐기는지, 아닌지, 그들의 권리에 대해 항변할 것이다.(어빙 크리스톨, ‘After world, p161)’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휴머니즘의 발상은 자칫 진리의 주체를 망각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독일의 내 놓으라는 지성들이 온 세상을 송두리채 파괴하는 전쟁의 망상으로 치닫고, 반 인륜적인 잔인한 살상을 저지른 근대 역사가 바로, ‘신의 부재’로 가득한 세계관이 창출한 결과를 상세히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