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가 웬 일인지 저녁을 사겠다며 시내로 가자고 한다. 생각해 보면 결국 내 돈으로 내는건데 그래도 큰 소리를 치는 선심에 기꺼이 동의를 하였다. 차를 타고 가면 주차가 힘드니, 데이트도 하고, 운동삼아 사무실에 차를 두고 가자며 전철을 타고 모처럼 시내로 향했다. 전철은 한가롭고 한 칸을 비워 표시된 곳에 앉으니 예전에 외국에 나가 여행을 했던 기억도 나고, 소풍 나온 아이처럼 시내의 즐거움에 소소한 기대가 서린다.
얼마 전 시내에 시드니에서 가장 큰 호텔이 생기고 시푸드부페(Seafood Buffet)가 문을 열었다는 소문을 아들로부터 들은 아내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시내에서 전철을 내려 찾다보니 새로운 위치에 정확한 주소가 나타나질 않아 근 한 시간을 시내 이쪽 저쪽을 헤메게 되었다. 어느새 발도 아프고 땀도 나고 배도 고프다. 주소도 대강 알고 가이드를 하는 대담한 안내자는 감으로 방향을 잡고 만보도 넘게 건강을 챙겼다며 짬새 위기 관리를 한다. 호텔에 가까이 다다르니 그 소문에 걸맞게 건물의 높이와 모양과 크기가 위용을 드러낸다. 언제 이런 큰 건물이 시내에 들어 섰는지 코로나로 꽤나 오래 시골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 실감이 된다.
호텔의 부페는 소문만큼 화려하거나 음식이 고급스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아 전화로 부킹도 받지 않는다던 콧대 높은 마켓팅 전략과 달리 레스토랑은 빈 자리가 여러 곳 눈에 띄었다. 못 들어갈 수 있다는 염려와 달리 쉽게 자리를 잡고 아내가 열심히 골라온 접시를 마주하고 앉으니 이곳저곳 신혼 부부들로 보이는 젊은 커플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바깥의 하버를 바라보며 야경을 찍고 가슴에 기대어 예쁜 샷을 찍으려는 여성의 미소와 잘 찍어 점수를 따려는 신랑의 가상한 노력이 더욱 상큼한 경치가 된다. 금새, 결혼한지 얼마 안된 큰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둘째 아들이 먼저 결혼하고 늘 쓸쓸해 보였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가녀리고 예쁘고 마음씨 착한 첫째 며느리는 아들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여름에 가까운 바다에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아들 부부가 감사하다며 저녁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저녁 자리에서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열은 선물 상자에는 임신을 표시하는 리트머스 자가 진단기가 들어 있었다. 임신을 알고 먼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며느리와 아들이 낸 깜찍한 아이디어이다. 보는 순간 뭘까하는 기대감과 궁금증은 금방 어떤 선물보다도, 가슴 속으로부터 샘처럼 솟아 오르는 기쁨이 되고 감동이 되었다. 아내도 뛸 듯이 좋아하고, 톤 높은 탄성이 주위 테이블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좀처럼 우는 것을 본적 없는 아들이 눈물을 훔치며, 귀여운 아내가 자기 아이를 임신을 하고 이제 아빠가 된다는 것에 기뻐하며 감격해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맺힌다.
게를 좋아하는 아내는 다른 것들은 젖혀 두고 몇 번 게만 골라 먹더니 금새 케익을 먹으며 거창한 저녁 부페는 막을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하버의 바람이 살에 차가운 겨울의 정취가 즐겁고, 올 때와 달리 금새 전철역에 도착하니 순조로운 귀가가 되었다.
이제, 록다운이 시작되니 이마저 추억이 되었다.
9월 말에 예정일인 며느리는 자그마한 몸에 벌써 불룩 임산부 티가 난다. 첫 손자가 태어나면 기쁨이 배가 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둘째의 임신 소식까지 있으니 감동의 연속이다. 비록 록다운으로 맘대로 다니지 못해도, 제약이 있어도, 우리에겐 추억과 기쁨의 원천이 주위에 산재하다.
신이 아낌없이 내려 주시는 생명과 은혜 덕분이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02) 8876 1870
info@itap365.comhttps://www.itap36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