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는, 죽어서 하늘의 법정에 선 사람들이 받게될 질문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 했는가?”, “돈을 많이 벌었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했는가?”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한인, 중국인, 인도계 등 이민자들은 특히 자녀들이 돈을 많이 벌거나 의사나 변호사같은 전문직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 지면 자녀를 잘 키우고 성공했다며 기뻐하고 자랑합니다. 물론 기뻐할 일이지만 돈을 벌고 신분 상승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높은 지위에 올라 능력과 스펙은 쌓였지만, 인품이 갖춰지지 않은 많은 상사나 지도자를 경험하고는 적잖은 충격과 상처를 입곤합니다.
더 나아가,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주위로부터 듣거나, 스스로 알게 된다면 좌절과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시상대에 오를 것을 꿈꾸며 달려 왔는데, 결승점에 이르자 실격 판정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충만하라(be fruitful and multiply)” 는 명령에는 세상 속에서의 역할의 양면성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물론, 숫자와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사람의 숫자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게 하는 사람은 마치 진정 번창하는 일을 방관하며 오히려 재를 뿌리고, 신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바벨로니안 탈무드, 예봐못63b)”라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것을 강조한 경고성의 지침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제적 위상이 세계10위권으로 G7에 초청받는 외교적 국격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실제 우리의 내면이 선진 문화의 품위와 격조를 갖췄기 보다, 외형에 비해 품격의 내실이 부족함을 자성하는 사회적 비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진정 열매맺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성이라고 가르칩니다.
1. 삶의 양면과 균형
탈무드는 영적 필요 뿐 아니라 장래 직업에 대한 교육과 현실적인 문제에 등한시하는 부모를 비난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업이나 직업 교육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는 아들이 도둑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 가지이다(바벨로니아 탈무드, 키두쉰29a)”라고 부모의 역할에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다지 민감하게 생각지 않는 것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돈은 벌었지만 거만하고 자기 자랑을 일삼는 졸부들처럼 종업원을 업신여기는 갑질하는 부자들에게나, 영적인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족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가장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랍비 라반 감리엘은 “세속적인 직업과 결합된 토라 공부는 유익한 것이다. 죄를 멀리하게 하고 일과 관련 없는 이 두가지 균형을 멀리한 토라 공부는 결국 무의미하며, 오히려 죄의 근원이 된다(아버지의 윤리2:2) 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재능이나 또는 도덕적 능력 하나 만으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훈련과 직업 훈련이 결합된 균형 잡힌 삶이 존경을 얻게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게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를 할 때도 자신의 수입의 10% 이상을 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어느 누구도 20% 이상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균형성을 유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또한 유대주의가 가난을 일종의 저주처럼 여겨 온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세상에 어떤 것도 가난보다 더 비참하지는 않다. 가난에 찌든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고 상기시켰습니다. 탈무드는 “만일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가난을 저울에 잰다면, 가난이 그 모든 것들보다도 더 무겁다(출애굽기, 라바31:12, 14)”라고 지적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종교성을 실천하는데 있어서도 세상 속에서의 실제의 삶에 대해 성실하게 부를 축적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현실 속 양면의 균형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존경 받는 사람
탈무드는 인생의 가장 큰 선행은 죽은 자에게 베푸는 ‘선’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헤브라 카디샤 (Holy brotherhood)-거룩한 형제'라고 불리는 유대인들 중 가장 인품과 덕망을 갖춘 소수의 인물이 장례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산혜드린의 공회원이며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성과 사회적 입지가 확고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장례를 주도한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 삶의 진정성을 현실에서 찾으려고 하는 유대인들은 세상 속의 삶에 비중을 많이 둡니다. 랍비 나흐만은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불건전한 욕구로부터 기인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가진 불건전한 욕구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집을 짓거나 아내를 맞이 하거나 사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람이 가진 욕구는 불건전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육신을 덧입은 창조물로서의 한계에대한 수용이며 또한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강조합니다. (창세기, 라바 9:7)
예컨데, 어느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특수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해서 그가 나쁜 의사는 아닙니다. 또 사람은 부와 명예와 욕정을 갖고 살고 세속적 충동을 가졌지만 그것의 동기가 100% 순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행동은 얼마든지 선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현자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대단한 선행이지만, 탈무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에게서 배고픔 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탈무드의 이상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야 말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에 대해, 하늘이 내려 주는 특별한 기적과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신에게 칭찬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신적 품격과 현실 속의 균형성을 늘 기억하는 일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내재한 신분 상승의 혜택을 모두 덧입은 셈입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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