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요즈음이다. 비바람이 불면서 빗방울이 유리 창문에 후두둑 떨어지는 날이면 한결 더 몸이 움츠러들면서 마음까지도 스산해진다. 이럴 때 제일 생각나는 것이 따끈한 온돌방 아랫목이다. 이에 대비해서 우리 사찰은 방방마다 전기 온수 보일러를 설치해서 음산한 이곳 겨울을 잘 보내고 있다. 전기로 인해서 살기에 편리한 부분이 놀랄만큼 많아졌다. 반면에 무슨 일이건 쉽게 이뤄지게 되면 삶의 깊이가 엷어지게 된다. 성취되는 결과에 따르는 과정적 경험이 축소되기에 그렇다. 나무를 때어 그 두꺼운 돌을 달구는 과정은 힘들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소중함과 고마움을 저절로 느낀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친구들과 함께 눈싸움을 하다가 저녁나절에 온돌방을 찾게 된다. 나무가 워낙 귀할 때라 아랫목엔 언제나 국방색 담요나 얇은 이불이 늘 깔려 있다. 그때에 또래의 꼬마들이 쪼르르 큰방 아랫목으로 달려들며 얼얼해진 두 손을 거의 동시에 이불 속에 들이민다. 그때에 손길을 시작으로 심장까지 전해지는 그 따끈함의 정감은 어머니의 품속보다도 더 포곤함을 느낀다. 평소에 맘에 들던 건넛집의 춘자 손을 더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덤으로 그때에 주어진다. 거의 머리가 맞닿아질 정도로 그렇게 손을 녹인 후엔 딱지치기나 다른 놀이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 저녁까지 먹고 놀다가 어느 땐 사랑방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어릴 때 그렇게 지낸 친구들은 평생을 잊지 못한다.
나의 고모님은 팔순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친구들과 계 모임을 하고 있다.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해서 일박을 한다고 했다. 밤을 새워 하는 얘기는 어릴 때에 고향에서 있었던 그때의 추억담으로 채워진단다. 고락을 함께 느낀 시간이 많을수록 그 인간적 정감은 그에 정비례하여 간직되며 나이의 수치만큼이나 더 커져 나간다. 계산과 눈치 없이 그냥 순수하게 만나고 헤어졌던 순진무구한 동심의 영향이리라.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식구는 많고 이불은 적을 때라, 한두 개의 이불을 네댓 식구가 같이 쓰다 보니 저녁이면 이불 쟁탈전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잠이 들기 전엔 그나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만 잠이 들고 나면 서로가 잡아당기느라 정신이 없다. 어느 땐 추워서 깨어보면 동생들이 똘똘 말아 덮고 자면 슬그머니 빼앗아서 덮고 잔다. 그러면서 자다 보니 어느 땐 꼬랑내 나는 두 발을 상대방의 얼굴에 갖다 대고 자는 때도 허다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어제저녁 잠잤던 얘기가 학교 가기 전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자란 형제와 자매들은 성장해서도 우애가 매우 좋다. 따뜻한 아랫목을 서로 차지하려고 발길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동기간의 인정이 더욱 깊이 스며들고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는 삶의 열정 속에서 서로 이해하며 화합하는 방법을 피차가 습득했기 때문이다.
전기로 인해서 발전된 지금은 어떠한가? 서울의 고급 아파트에선 동지, 섣달에도 런닝셔츠 차림으로 지낸다고 들었다. 인공적 편리함으로 계절의 감각을 잊고 지낸다.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조화로 살아가게 되는 평화로움의 삶의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오로지 물질적 욕구에 정신이 팔려버린다.
온돌방은 자연스럽게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아랫목은 으레껏 어른과 손님의 차지요, 윗목은 주인과 꼬마들의 몫이었다. 장유유서나 노인 우대는 그렇듯 현장에서 체감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세상이 너무나 좋아져서 방 하나에 침대 하나로 쓰고 있는 지금,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한집안에서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한다. 재산 때문에 동기간에도 불화가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모두가 따끈따끈한 온돌방 인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된 문명 속에 잿불처럼 사그라지고 있는 우리네의 정신문화, 그 둘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문명과 문화를 다 같이 창조하고 느끼는 주체는 바로 우리의 마음과 육체이다. 경중과 선후를 따져보면 근본은 생각이 된다. 그 일념을 잘 다스리면 온돌방 인정을 간직할 수가 있다.
일단은 핸드폰과 별거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외부로 인한 정보와 재미는 남의 것이다. 돈도 내 것이 되어야 내 맘대로 유용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되면 저절로 상대방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밖으로만 향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안쪽으로 되돌려서 내가 나의 마음을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 저절로 자비심이 생겨난다. 온돌방 인정을 유지함은 땔감의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의 지혜로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