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6월 11일 한국 천주교 대전 교구장 유흥식(70) 대주교를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바티칸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하셨다. 500여년 역사의 교황청 성직자성은 전 세계 사제와 부제들의 모든 직무와 생활에 관한 사목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의 주요 부처다. 신부들의 사목활동을 감독하고 심의하며 신학교 관할권도 갖는다.
교황청에는 9개 성(省. Congregations)으로 구성된 행정기구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와의 인연은 2013년 7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이루어졌다. 거기서 유 대주교가 이탈리아어로“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하자, 교황께서 “코레아?”하며 이탈리아어로“한국 교회는 강합니다”라며 왼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교황과의 인연은 2014년 8월 계속되었다. 교황께서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셨다. 당시 한국은 세월호 참사가 사회적 아픔이었다. 유 대주교는“젊은이들 약 3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부활절 성주간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걸 어떻게 알아들어야 합니까. 저는 그걸 하느님께 따지고 있습니다.”라며 프란치스코 교황께 물었다. 그 말을 듣고 교황께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씀하셨다.“주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이런저런 안 좋은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또 그걸 통해 더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안 좋은 것들을 더 좋게, 세월호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이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로마 교황청의 별도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성 마르타 기숙사 곧 사제들이 거주하는 공동 숙소에서 지내신다. 교황께서는 교황청 직원식당에서 식사를 하신다. 교황께서 직접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아, 식당의 맨 구석에서 벽을 향해 앉은 채 식사를 비서와 함께 하신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교황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의 교황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식사를 했다.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그 어느 교황보다 개혁적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 하지만 ‘변화’라는 말을 썼다. 교황에 선출된 직후 8명의 추기경으로 이뤄진‘교황청 개혁위원회’역시, 그 명칭을 쓰지 않고,‘교황청의 모든 기구를 다시 보는 기구’라고 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주요 부처의 장관에 한국인 주교를 임명한 것도 큰 변화고 파격이다.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는 6월 12일 기자회견에서 “교황님께서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북한이 교황님을 초청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바티칸 현지에서도 저의 임명이 북한이나 중국 문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교황청 9개 성 가운데 아프리카 추기경 2명이 장관으로 있고, 이번 유 대주교의 임명으로 필리핀 출신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아시아 2명의 장관이 탄생해, 아시아의 가톨릭교회가 교황청 행정기구에 봉사하는 그 몫을 인정받은 셈이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의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참석하실 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대전가톨릭대학교를 방문하셨다. 그 당시 필자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뵙는 기회가 있었다. 교황께서 대전가톨릭대학교 방문을 마치고,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성인의 탄생지 솔뫼 성지로 떠나기 직전 필자와 나눈 대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필자가 먼저 “교황님, 건강하시고 교황님의 저희 신학교 방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교황께서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부님! 오늘 제가 신부님의 방을 사용했는데, 방값을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하고 물으셨다. 저는 즉시 “아! 교황님, 이번 방값은 공짜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청이 있는데, 만일 제가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님을 찾아뵈면 교황님의 방을 한 번 사용할 수 있을까요?”라고 응답해 드렸다. 그러자 즉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더 환하게 웃으시면서 “당연히 그래야죠, 언제든 오세요!”하고 대답해주셨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전 세계 사람들, 신자이건 아니건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계신다. 그것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 삶의 모습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을 부르셨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신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님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린다.
곽승룡 비오 신부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 주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