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절된 여행길
한 지인이 태즈메이니아 호바트를 간다. 멋진 자동차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가는 도중은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명소가 가득하다. 호주에서 제일 높은 2,228미터의 코지어스코산과 호수 및 스키장이 있고, 피싱타운으로 유명한 버마구이가 있으며, 멜번에 도착해서는 진한 향기의 커피가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가? 사람과 함께 차도 날라주는 밤 배(night ferry) ‘스피릿 오브 태즈메이니아’ 호 갑판에서 올려다보는 남십자성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랑하는 사람을 뒤에서 지그시 안고 양팔을 올려 주면서, 함께 바라보는 수평선 끝에는 데본포트 항구의 불빛이 반짝반짝. 모로코의 카사블랑카가 이보다 더 좋을까? 새벽 배에서 내려서는 풍요로운 들판에서 뛰노는 소와 양을 쫓아 차를 달린다. 높고 낮은 구릉을 넘고 넘으면 크레이들마운틴 앞에 선다. 타닌의 갈색으로 물든 비둘기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때쯤이면 속세의 검은 때는 이미 다 빠져 있다. 남극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거대한 앨버트로스를 따라 조금 더 달리다 보면, 호주 최고의 청정도시 호바트를 내려다보는 웰링턴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면 이미 신선이 되어 있을 터.
그런데 멜번에 다시 코비드 록다운이 걸렸다는 긴급 뉴스가 들려왔다. 감염자 가족 4명이 NSW 남쪽 해안 도시까지 진출했었다는 공포의 비보까지 들려왔다. 정말 멜번은 불쌍하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4번이나 더 많이 록다운이 걸렸다. 한 주 록다운을 하면 10억 불 + 멘탈 헬스 비용이 들어간다. 14일 동안 추가 감염자가 나오질 않아야 겨우 록다운이 해제된다. 유독 멜번이 그렇게 고생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20~39세의 젊은이들이 많고, 아주 사교적이라서 그래요. 함께 모여서 뭘 하는 것을 진짜 좋아해요. 식당이나 바에 가고, 아이스크림도 함께 먹어요. 멜번 도심이 그리 크지 않은데, 그 한곳에 모여서 복작복작하다 보니, 다른 도시들에 비해 코비드 감염확률이 높은 거지요.” 그렇게 멜번에 닥친 또 다른 코비드 재앙 때문에, 일생일대의 멋진 자동차 여행을 계획했던 지인은, 그냥 비행기를 타고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2. 세계화 재앙.
현재의 코비드 재앙은 세계화의 결과물이다. 얼마 전만 해도 ‘세계화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쳤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로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힘써 만든 상품과 문화를 세계 각국에 내다 팔았다.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최첨단 고급 물건들을 수입해서 도시와 집을 치장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위해 수많은 비행기와 선박들, 사업가들이 하늘과 바다를 누볐고, 일상에 지친 보통 사람들까지도 모험정신을 일깨우며 땅끝까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덜컥 코비드가 발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 실크로드를 역주행하면서 전 세계를 감염시켰다. 그 결과는 세계화의 반대, 록다운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통 금지는 물론, 개인은 자기 숙소에 감금되다시피 묶여 버렸다. 결국 이번 코비드 재앙의 원인은 세계화다. 세계화 상황이 아니었으면, 코로나바이러스도 중국 우한에서 극성을 떨다가 집단면역이 이뤄지면서 잦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된다. 극도로 발달한 세계화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 팬데믹의 시작은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이다. 시작은 미국인데, 대량 참사가 일어난 것은 유럽이고,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한국인 14만 명도 포함되어 있다. 3.1운동이 일어나던 그즈음, 한국은 이미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3. 그렇다면 세계화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세계화는 인간의 본능이며 숙명이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는 온 세상에 충만하도록 방랑하며 탐험했고, 정착했다. 그런 세계화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인간 탐욕이 빚어내는 정복 전쟁의 비극과 팬데믹 재앙의 어두운 면이 있지만, 흑암 속에 살던 인간을 빛으로 끌어내는 밝은 면도 있다. 우리의 조국이 무지와 가난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서방 선교사들이 찾아옴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영국의 토마스, 호주의 존 데이비스 등이다. 이들은 모두 20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작은 고향에서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세계 복음화의 깃발을 들고 땅끝인 조선으로 달려왔다. 그들이 타고 왔던 배에서 몇 달 동안 바라봐야만 했던 북극성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특히 존 데이비스는 1889년 8월 멜번을 떠나 10월 4일 부산항을 거쳐 인천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5개월을 지내며 한국어를 공부했고, 다시 20일 동안 도보여행으로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 험한 여정에서 천연두에 걸렸고, 폐렴까지 걸려서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허망한가? 먼지와 비참으로 가득한 조선에 무엇하러 와서 젊은 피를 쏟다가 죽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복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 멜번에 위치한 빅토리아 장로교회에서 70여 명의 선교사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조선의 척박한 땅을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된 20~30대 청년들로 인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결국 세계화는 인간의 본능이며 숙명이다. 지구 땅끝까지 가야하고, 대기권을 벗어나고 은하계로 진출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어떤 세계화에 헌신하느냐의 선택이다. 이생의 자랑을 위한 탐욕적인 세계화인지, 아니면 가난과 속박의 굴레를 벗겨내는 세계화인지.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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