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선과 존재의 가벼움에서 벗어나기
현대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편의를 주고 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온풍기를 튼다. 아이들도 엄마 하고는 떨어져도 핸드폰 하고는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런 현대의 삶 속에서 인간은 믿고 기다리는 일에 둔해지며 점점 즉흥적, 감정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네의 인성과 인격조차도 점점 얇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필자의 연구실 서랍 안에는 선물 받은 잉크 묻혀 쓰는 펜과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가 있다. 객기 같지만, 점점 기계화, 자동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손글씨로 잉크 묻혀가며 한 자 한 자 써보고 싶었고, 조금 여유 있을 때에는 부채를 펴 지긋이 흔들며 시를 읊조렸던 옛 선배들의 호연지기한 인성을 기억코자 그 두 물건을 제법 오래 보관하고 있다.
한자어 ‘선’ (扇)으로 표기되는 부채는 우리의 옛 역사에 의하면 ‘죽음을 맹세하는 결의의 매체’이기도 했고, 또 ‘사랑을 증명하는 일종의 연서’ 기능도 했던 것 같다. 미국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는 고종 8년에 있었던 ‘한미 소전쟁’ 당시 강화도의 광성포대에서 노획한 ‘일심선’이라는 접는 부채가 진열되어 있다 한다. 부채살마다 이 전투에 참여했던 한국 병사들의 직함과 이름을 써넣어 온 장병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투에 임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채이다. 그뿐 아니다. 임란시 동래부사 송상현은 자결하기 직전에 부채에다 ‘군신의 의를 지키기 위해 부자의 은’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부채에 적어 아버지에게 부쳤다고 했다. 이쯤되면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쫓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실존의 극한에서 그 자체가 단심의 대변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용도외에도, 부채는 여러 가지 실용적 미덕도 있다 한다. 작고하신 문화평론가 고 이규태씨의 재기발랄한 평가에 따르면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아주는 것이 일 덕이요, 흙 땅에서 깔개가 되어주니 이 덕이요, 들판에서 밥상이 되어주니 삼 덕이요, 물건을 머리에 일 때 또아리가 되어주니 사 덕이며, 햇볕을 가려주니 오 덕이요, 비를 막아주니 육 덕이며, 파리 모기 쫓아주니 칠 덕이요, 얼굴을 가려 내외를 해주니 팔 덕이며, 여기에 장단 맞추는 도구되니 구 덕이요, 무당춤 귀신 부르는 십 덕이 있는 참으로 요긴하여 옛 사람들은 이를 신물이라 했다 고 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조선 성종 때에는 부채 하나에 무명 4백 필이나 하는 초고급 부채도 있었다 하니 조선에서 부채는 무언의 재력과 신분을 상징하는 역할까지 했다보다.
88올림픽 입장식 때는 한국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한국선수단이 청홍황의 삼색 태극선을 흔들며 입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옛 선조들은 가볍게 흔들어 우리를 시원케 해 주는 부채라는 작은 물건 하나에도 많은 뜻을 담고, 의미를 실어 삶을 즐기며 살았던 운치와 멋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할 것이다.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고 가벼이 들고 다니는 부채이지만, 결코 ‘가볍다’고만 할 수 없는 의미와 무게를 지닌 조선의 부채를 보며, 20세기 중반의 냉전문학가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는 약간 포르노적인 영화로 기억되는 ‘프라하의 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밀란 쿤테라는 그의 소설에서 베토벤적인 무거움과 진지함을 선택한 의사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도,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화장장의 유골가루 같은 여류화가 사비나의 가벼움과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사랑도 모두 역사 앞에서 무슨 족적을 남기는 ‘무거운 것’이 되지 못한다고 냉소하고 있다. 의사 토마스는 자기의 바람 피우는 기질을 인하여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 가버린 아내 테레사가 마지막 작별의 편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돌아간다.’ 라는 그 내용을 깊이 묵상하다가 그렇게 아내를 힘들게 하고 그런 편지를 쓸 때의 아내의 마음에 한없는 동정을 느끼며 또 자기의 경박함을 회개하며 테레사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인간의 도리이며 가치있고 무게 있게 사는 바른 길이라 결심하고 소련의 붉은 군대와 탱크가 지배하는 조국 프라하로 돌아가게 된다. 무게있고 바르게 사는 길을 선택한 그는 체코의 비밀경찰의 압제와 통제를 받으며 의사로서의 모든 특권을 몰수당한 채 시골의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그의 사고를 애닯아 하는 테레사 앞에서 토마스는 자기 삶을 압도하는 무거움이 오히려 자기를 가볍게 해방하는 즐거움이라고 고백하며 숨을 거두고, 반면에 그의 한 때의 애정 행각의 파트너였던 여류 화가 사비나는 모든 얽매임과 구속을 싫어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뿌리와 역사를 포기한 채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자유롭고 성공적인 화가로서 자기만의 안정된 공간에 살다가 죽으면서 사비나가 유언한다. ‘자기의 시체를 화장하여 재를 바람에 흩날려 달라.’ 작가 밀란 쿤테라는 이런 두 유형의 삶: 무거움을 선택하여 의미와 가치와 더불어 고생스런 삶을 살다 죽는 토마스나 자유와 안정을 외치며 살다가 죽을 때까지도 ‘바람처럼’이라 외치고 죽은 여류 화가 사비나라의 자유, 모두 인간-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발버둥일 뿐이며 그 두 가지 모두 인간의 죄악성과 가벼움에서 기인한 탈피본능의 반작용임을 무언중에 보이고 있을 뿐이라 비판하고 있다. 묵직한 인생, 가벼운 인생 모두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찰나를 살다가 가는 것 뿐인데…
그렇다! 가벼운 바람을 일으켜 우리를 시원케 해주는 그 가벼운 부채에도 묵직한 의미가 있는데, 요즘하게의 우리의 삶들은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돌아본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 한 자 한 자 글을 쓰면서 펜촉에 긁히는 종이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새롭고, 피곤한 일과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부채를 펼쳐 천천히 바람을 일으켜 보는 것으로도 벌써 마음이 새롭다. 옛날 강화도 광성포대에서 최후의 일전을 다짐하며 ‘일심선’의 부챗살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우리의 군병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일심선에 기록된 병사들의 이름과 직함이 세월따라 무색하게 사라졌고 우리는 그 당시의 적국과 함께 혈맹의 우의(?)를 다지는 시대를 살고는데!.. 시드니의 가을은 생각하기에 참 좋다. 할 수만 있는데로 기계문명에서 벗어나고 존재의 가벼운 몸짓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며 주님께 지혜를 구한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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