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슨 정부, 백신공급 ‘플랜 B’ 없이 우왕좌왕
몇 달 전 연방 총리실 주관으로 소수민족그룹들과 줌 컨퍼런스가 있었다. 코로나 감염 억제와 백신 공급이 주제였고 정책 홍보와 보건부의 당부 사항도 전달됐다. 필자도 이에 참여했다.
이때도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희귀 혈전 부작용에 대한 초기의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연방 최고보건부자문관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다. 혈전 부작용 확률은 수십만명 중 1명으로 매우 낮다. 백신 접종에 따른 실익이 위험보다 더 크다”면서 적극적인 접종 참여를 당부했다.
호주에서 AZ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서 희귀 혈전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는 3건(모두 40대)이었고 그중 1명은 숨졌다. ‘드물지만 심각한'(rare and severe)‘ 형태의 혈전증으로인한 사망자가 호주에서도 나오면서 AZ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백신 접종에 따른 실익이 위험보다 더 크다’는 똑같은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접종을 거듭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브래드 해자드 NSW 보건장관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의료보건업계에서도 AZ 백신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Government failure)가 상황 악화에 한 몫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정부에게 '플랜B'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이 사용 가능한 5가지의 백신 중 호주는 영국처럼 AZ백신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혈전 우려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자 부랴부랴 화이자와 노바백스에 추가 주문을 했다고 발표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하지만 언제 호주에 수입될지 확실하지 않다.
여러 선진국들이 백신 종류를 다변화했고 화이자와 모더나, 노바백스 백신 제조에 직접 투자하면서 주문을 한 나라들이 많다. 이런 나라들에게 공급 우선권이 주어진다.
반면 호주는 약간의 화이자를 주문했지만 국민 접종의 대부분은 AZ백신을 공급할 계획이었다가 큰 차질을 빚으며 낭패를 겪고 있는 것이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트럼프 미 대통령 시절 트럼프의 국빈 초대를 받아 백악관 만찬 예우를 받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호주-미국 정상간 우정도 기댈 곳이 없어졌다.
호주의 이같은 상황 악화의 배경엔 영국에 맹종하며 의존하면서 위기를 피해왔던 ‘호주의 사대주의 근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과거 호주 부유층은 자녀들을 옥스브릿지에 유학시키면서 화려한 스펙을 만들며 가문의 자랑으로 여겼다. 이런 영국 사대주의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권에 여전히 팽배한 것 같아 보인다.
또 최고의료자문관을 비롯한 국가 보건 자문위원들 중 만약을 위한 대비책(플랜B)를 준비하도록 강력 건의하지 않았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국민보건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이슈를 놓고 만약을 위한 대비책(플랜 B)이 사실상 전혀 없었다는 점은 명백한 정책 실패(government failure) 사례다.
호주 언론은 이미 금권에 길들여져 있고 호주 국민들은 지극하게 순하고 착한 편이며 정부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이러니 큰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국민 백신 보급 정책에서 큰 실수가 생긴 것처럼 기후변화에서도 호주는 분명한 로드맵이 없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관하는 2일간의 화상 기후정상회의(40개 정상 참석)를 앞두고 모리슨 총리는 기술발전으로 탄소 저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뒤에 적극적인 기후변화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광산기업계, 뉴스코프 등 강경 보수 언론계, 자유-국민 연립을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권자층)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 지향적이며 국민 다수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최선의 정책 만들기에 고심하는 정치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점이 호주 정치권의 비극이다. 백신공급 정책 실패가 기후변화 정책에서 반복될 경우 호주는 세계적으로 크게 뒤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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