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봄날이 다시 찾아왔다. 따사로운 기운이 살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와서 움츠렸던 어깨를 다독여주며 감싸는 듯하다. 하얀 뭉게구름과 눈부신 햇살은 맑고 푸른 하늘에 천연의 아름다운 구름그림들을 마음껏 그려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렇듯 멋진 자연의 풍성함을 그리워하면서 시리고 추운 시간들을 보내며 살았다. 이젠 두 팔 벌려서 주어진 이 계절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제 사람들을 그만 괴롭히고 가는 겨울과 함께 썩 물러가라.”하는 주문을 걸어둔다.
브리즈번에는 해마다 9월이 되면 도시를 들썩이게 만드는 다양한 공연의 봄 축제가 시작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Brisbane Festival’이라고 써진 분홍색의 축제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끼며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거리 제한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대한 불안한 심리로 인해서 섣불리 공연장에 발을 내딛는다는 게 망설여진다. 단 하루만이라도 역병의 공포와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연을 즐기며 쉬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해본다.
퍼시픽 1번 고속도로(Pacific Motor Way, M1)를 타고 골드코스트를 향해 남쪽으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해서 팜비치(Palm Beach)라는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개들이 수영하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개들의 해변(Dog Beach)이 별도로 있는 곳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벌써 수많은 개들이 백사장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열린 공간에서는 사람이나 개들도 낯선 이와 쉽게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서로 웃음 지으며 ‘하이’하며 손을 흔들고 개들은 다가와서 머리를 비벼댄다. 마치 세상의 모든 개 종류들이 다모인 듯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바닷물로 뛰어들며 수영을 즐기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에 웃음이 절로 터진다. 아! 여기가 바로 개들의 천국이며 한마디로 개판(?)인 세상이다. 세계적인 휴양지 골드코스트 해변의 한 모퉁이에 개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독 비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독 비치에서는 유난히 사람과 개의 관계가 부모와 어린 자식의 관계처럼 친밀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공을 입에 물고 모래사장과 바닷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들, 그 옆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 꼬마들, 그리고 패들보드를 타는 십대 청소년들 모두가 같은 물속에서 노는 모습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보인다. 북극곰 같은 나의 애견 에스키모(사모예드 종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느긋하게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에스키모가 바닷물에 젖은 털을 힘껏 터는데 투명한 물방울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햇살에 반사되며 피어오른다. 독 비치에서 개들의 재롱을 보며 함께 했던 그 시간이 바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순간이라 여겨졌다.
하늘을 둥글게 가린 초록색 나무들이 긴 터널처럼 우거진 숲길을 삼십 여분 달려서 스웰 조각축제(SWELL Sculpture Festival)가 열리는 커럼빈비치(Currmbin Beach)에 갔다. SWELL 조각 축제는 국내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조각 작가들의 작품을 10일간(9월11일-20일)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설치해서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전시회이다. 올해는 4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 행사는 매년 275,000 여명이 방문하며 조각가들은 마스터 클래스, 어린이를 위한 예술 활동, 조각 워크샵 및 지역 음악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커럼빈비치에 도착하니 긴 백사장에 조각 작품들이 드문드문 전시되어 있었는데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사회적 거리를 고려해서 배열되어 있었다. 모든 조각 작품들이 너무 긴 거리에 분산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을 다보지 못한 채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몇 작품들이 눈에 두드러져 보였지만 작품 해설이 부족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으며 상상력으로 채우기로 했다. 하얀 실크 천을 재료로 만든 작품은 배의 돛대를 연상시켰는데 왠지 한국의 무속신앙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다에서 진혼제를 올릴 때 무녀가 하얀 천을 흔들며 바다에 빠진 영혼을 위로하며 건져 올리는 의식이 연상되어서였다. 나무로 만든 참치 모양의 물고기 상, 나무재질의 원색 파라솔 세 개를 뒤집어서 백사장에 눕혀 놓은 작품, 섬세한 디자인의 고기잡이 돛단배, 누워있는 여인상 등.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조각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른 하늘 캔버스에 하얀 뭉게구름이 만드는 환상적인 조각, 하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드넓은 바다야말로 가장 초자연적인 예술 작품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백사장 무대 위에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에는 작가들의 혼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 작품은 보는 관람객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영적인 힘이 스며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짧았던 하루 여행에서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마음의 때를 벗겨낸 듯 개운해진 기분이 든다. 사람(Human)으로서 개들의 천국(Dog’s heaven)에서 같이 놀 수 있었고,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면서 공해에 찌들었던 시야를 깨끗하게 씻어내었다. 사람은 역시 자연과 함께 할 때 에너지가 재생성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존재를 알고 위로받으며 행복해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정화된 시간이 필요한 나날들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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