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와인을 나누는 식탁 예절도 중요하다. 어느 나라든 식사 예절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음식을 소리 내면서 먹거나 식사 중에 트림해도 그리 큰 흉이 되지 않지만 서양에선 쩝쩝 소리 내며 먹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한다. 또한 음식물이 튀어나올 염려가 있어서 음식이 입에 있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식사 예절은 각 나라의 음식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비교할 수는 없다. 서양 음식은 뜨겁거나 매운 음식이 거의 없어서 입에 들어 있는 음식을 식히기 위한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 음식과 같이 뜨거운 음식은 식히기 위해서라도 입을 벌려 공기를 흡입해서 입속의 음식을 식히는 것이 불가피하다. 뜨거운 음식을 입어 넣고 입을 꼭 다물고 서양 사람들같이 먹으면 입안이 데어 성할 날이 없을 것이다. 뜨거운 국수도 마찬가지다. 후루룩하며 공기도 같이 흡입해야 국수가 입속에서 식는다. 뜨거운 국수를 입 꼭 다물고 먹는 것은 입을 불 속에 넣고 혹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식사 예절에서 한국 사람은 팔이 상대편 음식 위를 넘어 다닐 때도 있지만 서양에선 상대편 음식 위로 손이나 팔이 넘나드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상대 음식 위로 손이나 팔이 넘어가더라도 자기 스스로 집어 자기 앞에 놓기도 한다. 서양에선 그러지 않고 무엇 무엇을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국적인 정서에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할 때 식사 예절도 같이 알려주면 서로에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와인 따르기: 한국에도 주법이 있다. 술을 받을 때는 잔을 들어 상대방이 최대한 술을 편하게 따를 수 있도록 하고 마실 때도 윗사람 앞에서는 정면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와인을 따를 때 와인 잔을 들지 않는다. 이유는 와인을 흘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와인은 서로에게 따라주는 경우도 많지만 서양에선 돌아다니며 개인에게 와인을 서빙하는 사람이 있어서 잔을 들어 이를 따르는 사람 앞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잔을 들지 않는 것은 무례한 주법일 수 있다. 학교에서 심포지엄을 하고 저녁 만찬을 하게 되는데 주로 아시아 학생들이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받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와인을 서빙하는 호주인이 잔을 탁자에 놓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과의 자리에서 와인 서빙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와인 잔을 들어 와인을 받는 것도 괜찮다. 필자는 서양 사람들하고 와인을 마실 때도 때에 따라서는 와인 잔을 들어 상대편이 최대한 편하게 와인을 따를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방법이야 어떻게 되었든 상대를 편하게 배려하기만 하면 훌륭한 식사 매너라고 생각한다.
서양 식당에서 와인을 서빙할 때 뒷짐을 지고 와인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적 정서로는 두 손으로 공손히 따라야 하는데 뒷짐을 진다. 좀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양의 식사 습관에서 유래된 것이다. 서양에서 귀족들이 식사할 경우 하인들이 와인 서빙을 했는데 초기에는 하인들이 몸속에 무기를 숨기고 들어와 해할까 봐 옷을 완전히 발가벗기고 와인을 서빙하게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옷을 입게 하는 대신 한쪽 팔을 쓰지 못하게 뒤로 묶었다. 이것이 와인을 따를 때 뒷짐을 지는 습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손님 초대했을 때 와인을 따르고 누가 제일 먼저 맛을 보아야 할까. 주인이 먼저 맛을 보고 손님에게 권하는 것이 좋다. 자칫 먼저 마시면 무례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먼저 마시는 것은 점검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와인이 변패되지는 않았는지, 맛은 괜찮은지 등을 확인하는 차원이다. 자신이 먼저 향과 맛을 보았으니 거기에 대한 덕담을 곁들여도 식탁 분위기가 올라갈 수 있다. 식당에서도 와인을 제일 먼저 마시는 사람이 손님을 초대한 호스트이다. 와인을 가져왔을 때 자신이 호스트임을 알리면 서빙하는 사람이 알아서 와인을 먼저 따라준다. 맛을 본 후 와인에 이상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서빙하라고 말하면 된다. 만약 와인이 시거나 역한 냄새가 나는 등 변패되었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와인이 변패되었으니 다른 와인을 가져오라고 하면 된다. 식당에서는 당연히 바꾸어줄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식당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식당은 간단하게 와인 회사에 와인을 반품시키면 되므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반품시키자.
와인 온도: 와인을 서빙할 때 온도 또한 맛에 영향을 미친다. 레드 와인일 경우 상온 서빙을 한다. 차갑게 했을 경우 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화이트와인일 경우 차게 해서 서빙을 한다. 이유는 화이트 와인은 차게 했을 때 상큼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더 살아난다. 그렇다고 하여 레드 와인은 상온 화이트 와인은 차게 해서 서빙한다고 공식처럼 생각하면 안 되고 때에 따라서는 레드 와인도 차게 해서 마실 수 있는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
와인 잔 잡는 방법: 와인 잔에는 기다란 목이 있다. 이 목은 왜 만들어졌을까? 물론 멋있으라고 그랬을 수도 있지만 와인의 온도에 영향을 덜 주기 위한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의견에 대해서도 사람의 체온으로 얼마 정도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화이트 와인 같이 찬 와인을 손으로 잡고 있으면 손이 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와인은 반드시 몸통에 손을 대지 말고 다리를 잡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 또한 갖지 말아야 한다. 서양인들도 화이트와인을 마실 때 와인 잔의 몸통을 잡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다리를 잡으면 움직일 경우 아무래도 불안하니 그때는 몸통을 잡아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다. 편하게 잔을 잡고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와인 상식에 대한 글을 보면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식의 글이 많다. 모든 것은 절대적일 수 없다. 하지만 알고 상식을 깨는 것과 모르고 상식을 깨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식당에는 여러 개의 잔이 세팅되어 있어 헷갈릴 때가 있다. 가늘고 길쭉한 잔은 거품이 나는 스파클링 와인잔이다. 나머지 두 개의 와인 잔 중에서 작은 것이 화이트 와인 잔이다. 화이트 와인은 차게 해서 마셔야 하므로 작은 잔으로 자주 따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레드와인은 온도에 상관없기 때문에 잔이 커도 문제가 없다. 포크와 나이프는 밖에 있는 것부터 사용하면 된다. 호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호주인과 식사를 할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이때 와인 테이블 매너를 알고 있으면 식탁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유영재 (와인 사이언스 박사) yungyoo@hotmail.com
info@itap365.com
www.itap36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