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전 약간의 비가 와서 산불은 많이 줄었다고 하나 언제 다시 불씨가 되살아 날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로 인해 수 십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해서 임시 수용소에서 고생을 하며 지낸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주에는 소방 항공기에 탑승했던 미국인 3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하니 더욱 더 마음이 무겁다.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산불을 끄다가 산화한 그 분들의 영전에 두 손 모아 고개 숙여 명복을 빌고 싶다.
자연 재해중 가장 위험한 것이 불이다. 강도를 만났거나 매우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 불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화가 없던 시골에선 불이야! 하고 큰 소리를 쳐야 이웃 사람들이 몰려 왔기 때문에 우선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초가집 지붕만 있던 시절 우리집 건너편 남순이네 집에서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불을 끄려 하나 물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70 여 호나 되는 동네에 자연 우물 두 개로 식수를 해결하던 시절이니 불만 나면 몽땅 태우고 만다. 그래도 안간힘을 다 쓴다. 그 무거운 멍석을 끌어 올리는 이, 박 바가지로 소변을 떠서 지붕에 끼얹는 이, 주인 할머니는 담벼락 아래에서 주저 앉아 지붕을 쳐다 보며 울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 초가집은 순식간에 모두 타서 주저 앉고 만다.
지금은 소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화마의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만 큰 산불을 진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불은 그 만큼 인명과 재산을 손실케 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여름이 오고 지속적인 건조함이 이어지면 누구나 산불을 걱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전엔 몇 군데서 발생하는 작은 규모라 연례 행사처럼 그냥 지나가는 일인 듯 가볍게 넘기고 말았는데 올해는 우리 모두가 체감할 정도로 심하다 보니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산불만 불이 아니다. ‘석탄, 백탄 타는덴 연기나 풀풀 나지만 이내 가슴 타는덴 연기도 없다네’ 이처럼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마음 불을 꺼보려고 애썼던 우리 민족이 아니었던가? 이른바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이 화병(火病)은 그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병이 생기지 않고 또 발화했을 때 빨리 그 불길을 잡을 수 있을까? 대승 경전인 법화경에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어느 부잣집에 아들 3 형제가 살았다. 그들의 아버지는 이제 살만도 해서 청산에 들어가서 수도를 하고 오랫만에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자기집이 불타고 있었다. “얘들아! 지금 우리집이 불 타고 있단다. 빨리 나와라” 라고 소리쳤으나 아들들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놀이에 빠져서 정신이 없었다. 3형제는 각자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것, 누렁이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놀며 그 재미가 제일이라고 우기며 아버지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희희덕 거리며 그 놀이에 취해 있었다. 집은 점점 불길이 심해서 곧 주저 앉게 생겼는데도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때 깊은 사색에 잠긴 그들의 아버지가 멋지게 생긴 흰 소가 끄는 수레를 갖고 왔다. “얘들아 이 수레는 너희들이 타고 있는 그것들 보다 천만배나 멋지다. 이 새로운 수레를 한번 타보지 않으렴?”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멋진 흰 소, 거기에 금, 은 등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가마를 본 그들은 지금까지 타왔던 자신의 수레들을 버리고 황급히 흰 소가 끄는 수레 앞으로 몰려 나왔다. 그때야 집이 무너졌고 3형제는 불이 타고 있던 집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백우(白牛)가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태평가를 부르면서 푸른 초원을 누비며 희희낙낙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계가 바로 불 난 집과 같다는 것이다. 혼란과 불안이 상존하는 곳, 시기와 질투, 증오의 깃발과 구호가 난무하는 길거리에서 우린 화병이 터져 나오는 그 붉음의 응어리를 보고 있지 않는가? 그런 일들이 일상이 되어 버린 듯한 현실 속에서 책임 있는 집 주인은 불을 끌 그 어떤 방안도 내어 놓질 않는다. 어쩌면 그 불 난 틈을 이용해 뒷 거리에선 그들의 사욕을 채우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익숙해진 탐욕의 그늘에서 지내온 그들이기에 집에 불이 났다고 소리쳐 봐야 들은 척도 하질 않는다. 권력을 휘두르고 재욕과 색욕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는 재미가 훨씬 더 크다고 오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난 불로 인해 곧 가산이 탕진되고 가족들도 화마에 휩쓸릴 텐데도 자기들이 타고 있는 욕심과 무지의 수레라는 재미에 넋이 나간 군상들을 3형제에 비유한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이 출현하신다. 오랫동안 그대들이 타고 즐겼던 3종류의 수레는 불난 집에 살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권력과 금력, 그리고 이성 등등 욕락을 충족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언제나 불만과 불안을 낳게 되고 그로 인해 늘 고통이 따라 다니는 것이 마치 불난 집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흰 소가 끄는 황금 마차가 등장한다. 백우는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다. 허욕을 줄이며 함께 나눌 수 있는 공존의 지혜, 그것이 바로 진리적 삶에 입각한 지혜로운 이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 누구나 얻고자 하는 황금은 내가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 씀씀이다.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자비심의 발로이다. 그 생각을 내고 실천함은 특정 종교가 제시하는 고상한 삶의 행동 양식이 아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자연질서에 의한 순수한 것이며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흡족한 부를 누릴 수 있는 최첨단의 묘약이다. 우린 무수한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들의 무수한 인연 관계속에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을 더 위하는 것이 나를 더 편안하고 복되게 할 수 있다는 지혜로운 생각을 일상에 실천할 때 천불이 나는 마음속 화마는 저절로 그 불씨가 사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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